劉炳宇 대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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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우(兪炳宇) 駐터키대사를 앙카라의 대사관저에서 만났다. 외무부 아주국장 출신인 兪대사는 오늘날 터키가 당면한 문제들을 이렇게 정리해 주었다.
  
  『터키어로 의사가 통하는 인구가 2억이라고 합니다. 소련 붕괴 이후 이 나라는 터키系 사람이 많이 사는 중앙아시아를 영향권 아래에 두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련 붕괴와 더불어 터키도 보스포루스 해협의 자리값을 못 받게 되었습니다. 舊소련의 목줄을 죄는 이곳의 전략적 가치가 약화되면서 나토의 지원과 미국의 원조가 줄었습니다. 이라크→터키 송유권에 의한 수입도 이라크에 대한 석유 금수조치로 끊어졌어요. 냉전체제 붕괴 이후 가장 큰 손해를 본 나라가 터키인데 그 액수가 총 2백억 달러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어요』
  
  터키와 이란의 중앙아시아 쟁패
  
  터키?繭塚?중앙아시아에 대한 쟁패는 세속회교주의와 근본주의의 대결이란 傷鄂?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터키는 최근 보스니아의 정부군(회교)을 터키에 데려와 훈련시켜주는 계획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미국이 약 3억 달러에 예산을 대고 있는 이 훈련계획은 보스니아內 세르비아系 군사력에 대응할 만한 군사력을 보스니아 정부측에 건설해 주어 균형을 이루려는 계산에서 출발하였다. 터키는 오스만 제국 시절에 이미 舊유고슬라비아가 있는 발칸지역을 통치한 경험이 있다.
  
  터키의 입장에선 보스니아에 대한 이란 근본주의자들의 개입을 차단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터키는 또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뵀?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같은 중앙아시아에서 약 2천 명의 장교들을 받아 훈련시키고 있다.
  
  『6백년 계속된 오스만 터키 제국이 사라진 지 70년이 지났지만 그 뒤처리가 안 끝났다는 느낌이 듭니다. 주변 국가간의 관계와 터키 국민으로서의 정체성 문제가 대두되고 있습니다. 아타 투르크(케말 파샤)는 유럽지향의 근대화를 통해 세속적 회교주의의 기치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터키 사람들은 「우리는 유럽인인가 이슬람인가」 하는 고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98%가 이슬람교도이지만 여름에 배꼽을 내놓는 셔츠가 유행이고 미국 도색잡지 펜트하우스 현지어판이 팔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터키는 유럽의 파트너는 될 수 있어도 그 일원으로 들어가기는 어렵다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근본주의의 도전
  
  이런 터키의 딜레마를 틈타서 이슬람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복지당이 최근 총선에서 제1당이 됨으로써 정치위기가 시작되었다. 제2, 제3당의 제휴로 제1당인 복지당의 집권은 저지되었으나 이번엔 제2, 제3당끼리의 원초적 싸움이 악화돼 6월6일엔 총리가 사퇴했다. 6월 말 복지당이 제2당(正道黨)과 손잡고 집권, 터키 역사상 처음으로 이슬람 근본주의 정권이 들어섰다. 복지당이 집권하면 군사 쿠데타는 불가피하다는 말들이 나왔으나 聯政 파트너인 정도당이 견제를 잘 構?있는지 아직은 무사하다.
  
  정치와 회교를 분리한 아타투르크 이념(케말리즘)을 계승하고 있는 군부가 이란의 영향을 받는 회교 근본주의자들의 집권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란 이야기는 끊이지 않아 이것이 오히려 복지당을 온건화 시킬지도 모른다.
  
  兪炳宇 대사는 『여기 언론은 군대·기업과 함께 기득권 세력을 이루고 있고 농민 빈곤층에서 근본주의 세력이 확대되고 있다』면서 『그들이 영향력을 넓혀 나갈 때 사회적 갈등과 정치불안이 커질까 우려된다』고 했다.
  
  이슬람 文化圈에서 서구화를 추진하면 반드시 회교 근본주의의 반격이 개시된다. 호메이니의 도전으로 이란의 팔레비 정권은 붕괴했고 알제리는 피를 피로 씻는 내전에 휩싸였다. 그러나 터키에선 군대가 확고부동하게 아타 투르크의 서구화 정책-케말리즘으로 무장하여 그것의 실천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도시에선 메카를 향해 기도하는 모습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국민들의 생활도 세속화되었다. 따라서 서구화에서 회교화로 돌아서는 일은 없을 것이지만 터키로서는 배후에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란, 시리아, 이라크에 신경이 쓰인다.
  
  한국과 터키
  
  한국과 터키 사이 무역액은 수출입 합쳐서 1995년에 약 7억 달러를 기록했다. 한국이 터키의 열두 번째 교역 대상국이다. 두 나라는 아시아 대륙 양극에 위치하여 수송거리가 멀고 물류비용이 많이 먹히는 악조건下에 있다. 兪炳宇 대사는 『금년 가을에 서울-이스탄불 사이에 정기항로가 열리게 되면 양국의 경제 교류는 민족적·문화적·정치적 유대관계 위에서 급속도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로이의 木馬로 유명한 트로이의 유적이 발굴된 곳이 터키이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에베소 등 聖바울의 전도 여행 유적도 터키에 가장 많다. 이탈리아에 있는 기독교신도들의 地下교회 카타콤을 보고 나서 터키 카파도키아에 있는 지하도시를 구경한 사람들은 後者의 장대한 규모에 놀란다.
  
  이탈리아나 스페인에 못지 않는 이 나라의 관광명소가 아직도 한국인들에게 생소한 것은 서울에서는 유럽의 공항을 거쳐야 이 이스탄불에 들어갈 수 있는 불편 때문이다. 兪대사는 『적어도 정기 여객기가 週 2편 정도로 날아야 할만큼 관광객이 몰려들 것이다』고 장담했다. 터키 사람들 사이에는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터키를 3일간 보고서 아는 척하는 사람에게는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인사하고 3년동안 보고도 아쉬워하는 사람에겐 『또 오십시오』라고 인사한다는 것이다.
  
  兪대사는 『아타 투르크 이후에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꼽히는 오자르 수상 시절에 「룩 이스트」(Look East)란 말을 써 가면서 한국의 발전 모델을 배우자는 분위기를 고취한 적도 있었다』고 했다. 터키에서 보는 한국은 한국에서 보는 터키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기자는 체감할 수 있었다.
  
  터키 사람들이 6·25 참전을 못 잊어 하는 것에 대해서 兪대사는 『1차 대전 때 독일-오스트리아 편에 섰다가 패배한 뒤 처음으로 마음껏 싸운 전쟁이었고 이것이 원래 상무정신이 강한 터키 사람들의 기분을 풀어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고 했다. 터키에서 국제경쟁력이 있는 산업은 건설업이다. 해외에서 한국과 경쟁할 정도이다. 섬유도 국제수준이다. 그 이외에는 이렇다 할 산업이 없다. 문맹률이 30%나 되고, 철도가 발달하지 않은 것이 고도산업의 발달을 저해하고 있는 요인이다.
  
  6·25 참전 터키軍 이야기
  
  한국 참전 토이기 기념탑은 터키 수도 앙카라市內 한국공원 안에 있었다. 4층 석탑 모양이다. 한글로 쓰여진 건립 취지문―.
  
  <이 탑은 토이기군?자유를 수호하기 위하여 한국전에 참전, 혁혁한 전공을 세운 바를 영원히 기념하기 위하여 건립되다. 앙카라시의 적극적인 협력을 얻어 세워지게 된 이 탑은 토이기 공화국 건립 제50주년 기념일을 기하여 한국정부가 토이기 국민에게 헌납하다. 1973.10.29>
  
  1950년 10월18일에 부산에 상륙한 터키군은 1개여단(4천5백명)규모였다. 3년 전쟁기간의 전사자는 7백31명, 부상자는 3천여 명, 실종자 2백여 명, 미송환 포로 1백95명. 전쟁기간 동안 파견된 연인원이 1만2천여 명인데 약 3분의 1이 사상했다는 얘기다. 터키군이 이처럼 사상률이 높은 것은 한 지휘관이 『후퇴하라』는 UN군 측의 명령을 거부하고 끝까지 싸우다가 중공군에 포위 당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북한 포로수용소에서의 생환율은 터키군대가 가장 높았다고 한다. 북한측은 포로들 사이를 이간시키려고 사병포로에게 지휘책임을 맡겨 장교를 부리도록 했는데, 터키군에는 그런 하극상의 유도가 통하지 않고 끝까지 상하의 지휘계통을 유지했기 때문에 생존율이 높았다는 것이다. 駐터키 대사관 金상원 무관은 터키군대의 軍紀와 전투능력을 높게 평가했다.
  
  『무기체제만 뒷받침된다면 세계 최강의 군대일 것입니다. 군인들의 사생관(死生觀)이 뚜렷하여 죽음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데다가 회교 특유의 성전(聖戰)의식으로 무장돼 있습니다. 기마민족의 전통이겠지만 작전개념도 기동과 공격을 중시하며, 집중과 분산을 조화시키는 전쟁교리를 갖고 있습니다. 밥그릇 수가 아닌 계급 위주의 지휘를 하며 지휘관의 의도를 파악하여 적극적으로 상관을 따르려는 자세입니다. 부상자에 대한 철저한 구조, 대령의 월급이 대학교수 월급과 같을 정도의 우대 등 이들의 상무정신은 제도적으로 뒷받침되고 있습니다』
  
  兪炳宇 대사는 『터키는 안보상의 위기가 없는 나라』라는 표현도 했다. 「나라를 위해 싸우자」는 명분만 내걸면 순식간에 단결이 되는, 상무정신과 애국심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말을 타고 뒤로 활을 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럴 수 있는 민족은 세계에서 몽골-투르크族뿐이라고 하더군요. 강력한 상비군과 상무정신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국민들이 좀 못살아도 넉넉하게 처신해요』
  
  귀국하여 국방부 측의 이야기를 들었더니 터키군부에서는 한국군과 긴밀한 협력체제를 구축하기를 원하고 있다고 한다. 곧 양국군 사이에 정기적인 정책협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한다. 訪韓한 터키군 고위장성들도 『우리 양국 국민은 원래 같은 뿌리다』라고 하면서 친근감을 보이려고 애 쓴다고 한다. 터키에서도 우리 조상인 예맥族과 투르크族의 관련성을 연구하는 학자가 있다고 한다.
  
  <1996년 9월 월간조선>
출처 : 월조
[ 2003-07-14, 14:0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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