蘇柄用대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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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델리에 있는 駐인도한국대사관은 건축가 고 김수근(金壽根)씨가 설계한 벽돌색의 아름다운 건물이다. 소병용(蘇秉用)대사(62세)는 1994년에 부임하였는데 『1991년(라오前총리 시절)부터 시작된 인도의 개방정책은 이제는 궤도에 올랐으며, 어떤 정당이 집권해도 거꾸로 돌릴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
  
  『이번에 좌파를 포함, 12개 정파가 연립한 새 정부가 예산안을 발표했는데 前정부보다도 더 개혁·개방적이라 기업인들이 안도하고 있습니다. 1947년에 독립한 뒤 91년까지는 영국식 사회주의 계획 경제를 추진하면서 국영기업 위주로 갔는데 이제는 민영화되고 있고 소비재 생산을 늘리며 외국자본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있습니다. 94년부터 年6%의 GNP성장률을 유지하고 있습니다(1인당 GNP는 3백46달러)』
  
  蘇대사는 한 통계 자료를 보여주었는데 올해 1∼4월 사이에 인동?투자를 결정한 국가별 순위에서 한국은 미국을 누르고 1위였다(7억 달러). 인도―한국 무역액은 지난 해 약 20억 달러(수출은 11억 2천3백만 달러), 1997년엔 3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 실망한 한국 기업들이 인도로 몰리는 경향도 있다. 중국에는 법률과 제도의 기반이 허약하고 외국인에게는 불리하게 작동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장기적인 예측을 어렵게 하는데 인도의 경우는 法治와 정치시스템이 건전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한 한국기업은 『여기 인도사람들은 全, 盧 두 대통령의 구속에 대하여 놀라?않았다』고 했다. 「법대로」에 익숙해 있는 데다가 故인디라 간디 여사도 총리직에서 물러난 뒤 두 번 감옥살이를 했고, 라오 前 수상도 지금 독직혐의로 수사대상에 올라 있다.
  
  게임의 규칙이 유지되는 나라
  
  『겉으로는 혼란스럽게 보이지만 게임의 규칙이 지켜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민주주의 경험은 영국식민?시절로 거슬러 오를 정도지요. 선거는 시끄러워도 사실상 정치가 안정돼 있는 나라입니다. 5백60개의 왕국이 있었다는 나라이기 때문에 지방자치를 넓게 허용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가족계획 같은 사업이 한국처럼 일률적으로 집행될 수 없습니다. 중앙정부가 나서서 꼭 맞는 옷을 입힐 수가 없어요. 헐렁하고 풍성한 옷을 입고 있는 것이 인도입니다. 이곳의 법치는 외국 투자가들이 의지할 만한 수준입니다. 힌두교는 다신교(多神敎)이고 이슬람은 일신교(一神敎)가 아닙니까. 힌두교가 본질적으로 일신교보다는 민주적인 것 같습니다』
  
  蘇대사는 『이곳의 엘리트들은 한국의 개발모델, 특히 중화학공업 건설이 성공한 과정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고 했다. 인도는 1960년대에 중화학 공업을 추진했으나 실패한 축에 속한다.
  
  『며칠 전에 라오 전 총리를 찾아뵈었더니 인도에 투자하여 물건을 만들기만 하면 팔리니 걱정 말고 투자하라고 그럽디다. 9억5천만의 大國이 이제는 성장쪽으로 관성이 붙었으니 산아제한을 못하듯 성장제한도 못하게 될 겁니다. 이곳은 가난하다는 것이 자산입니다. 그만큼 발전의 여지가 크다는 뜻이지요』
  
  공사장의 어린이 학교
  
  인구 약 2천만 명의 루마니아에 약 3백만 대의 자동차가 있는데 인구가 그 50배인 인도에도 약 3백만 대의 자동차가 있을 뿐이다. 이는 거꾸로 인도가 엄청난 시장이란 뜻이 된다. 大宇의 경우, 1994년에 트럭생산공장 DCM-도요타社의 경영권을 합작 투자 방식으로 인수, 11억 달러를 투자하여 年産 20만대 승용차 공장-年産 30만대의 엔진·트랜스미션 공장으로 확충할 계획을 맹렬하게 추진중이다. DCM 대우는 지난해부터 씨에로의 생산을 시작하여 앞으로 1년간 5만 대를 팔아 중형차 시장의 50%를 점유할 전망이다.
  
  내년엔 매출액이 8억3천만 달러, 2001년엔 38억5천만 달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일본의 스즈키는 인도에서 年 27만 대의 소형차(마루티)공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대우와의 혈전이 예상된다. 뉴델리 교외에 있는 DCM대우 공장의 확장 공사장에 가 보았다. 약 6천 명의 인도 건설 노동자들이 개미떼처럼 몰려와서 일하는데 거의 기계와 기구를 쓰지 않는 순수 육체 노동이었다. 그런데도 워낙 人力이 많으니까 공사진척은 빠르다는 것이다. 홍수 피해를 본 인부(人夫)들은 아예 가족을 데리고 와 공사장 한 구석에 거처케 해놓고 있었다. 밥솥을 걸어놓고 취사중인 옆에서는 어린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수업을 받고 있었다.
  
  바싹 마르고 작은 체구의 인도사람들이었지만 시키는 대로 묵묵히, 착하게 일하는 모습이 애처롭기도 하고 무섭게도 보였다. 저 다수(多數)의 힘이 무갈제국 때처럼 좋은 정치지도자를 만나 조직화되면 엄청난 질적 전환을 가져 올 수도 있으리라. 기자는 先 경제발전 後 정치발전이 개발도상국의 성공적인 개발모델이라고 믿어왔는데 인도의 경우엔 「先 정치발전 後 경제발전」의 전략이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DCM대우의 인도인 사장 S.G.아와스티氏는 『산업기능노동력의 숫자로는 인도가 세계에서 1位다』라고 했다.
  
  해마다 약2천만 명의 인구가 늘어(즉, 매년 호주 같은 나라가 인도에서 하나씩 생기는 셈) 21세기에는 중국 인구보다 더 많아질 것이라는 인도의 미래를 예측하는 데 있어서는 쓰레기더미 같은 빈민굴을 잣대로 삼는 방법도 있지만 무갈제국과 타지 마할, 라호르의 城 같은 역사, 즉 인도 민족의 이력서를 근거로 삼을 필요도 있다. 한 인간의 이력서가 그가 가진 잠재력과 발전 가능성을 점치게 해 주듯이 한 나라의 역사 또한 그러하다.
  
  16∼18세기에 세계 최대·최강·최선의 무갈제국을 건설한 인도의 저력을 우리는 알 필요가 있다. 몽골고원에서 이역만리 인도까지 내려온 몽골-투르크族의 어떤 능력과 심성과 조직과 전통과 관습이 무갈제국을 건설하고 운영할 수 있게 하였는지를 탐구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몽골族의 그런 힘은, 분명히 우리 몽골系(또는 투르크系)의 한민족도 공유하고 있을 것이며 그것을 찾아내어 21세기의 한국 경영에 활용하는 것은 바로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 그 자체일 테니까.
  
  <1996년 9월 월간조선>
출처 : 월조
[ 2003-07-14, 14:0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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