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지만만」 김종필, 모택동을 들어 김대중을 치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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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랍의 소피스트들도 그런 엉터리 같은 소리는 안했어』
  
  ―그러나 남북대결이 기본적으로 이념대결이고 이념대결은 말의 대결입니다. 이번에 李會昌 총재가 공천파동을 겪는 것을 가만히 보니까 우리 국민들이 정치에 대해서 기대하는 것이 두 가지인 것 같아요. 하나는 정치에 대해 청렴성을 기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義理도 기대한다는 것이지요. 총재님 어떻습니까. 정치와 의리는 융화가 됩니까.
  
  『어렵지만 노력해야지요. 지켜야지요. 서로 믿고 해야 주고받고 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것이 깨지면 엉망진창 사회가 되는 것이지요. 뭐 정치는 원래 이런 식이다고 하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신용 지켜야 합니다. 속된 말로 변을 눌 때는 급하니까 종이 가져와라, 뭐 해라, 빨리 나와라, 문 열어라 하더니 변을 다 눈 다음에는 급할 게 없으니까 심지어는 변소문도 안 닫고 나오면 이래 가지고 세상이 성립되겠어요?
  
  나는 그런 엄청난 거짓말을 한 적이 없어. 별짓 다해도 거짓말이 탄로나면 신뢰성 상실로 정치가는 지지기반을 유지할 수 없는 거요. 일본의 2·26 사건 때 청년장교들로부터 참살당한 이누카이 수상이 아들한테 「네가 정치하고 싶거든 거짓말하는 법부터 배워라」라고 했다는 거요. 그 아들은 거짓말하면서까지 정치할 생각이 없다고 하면서 정치에 몸을 담지 않았어요. 저 서양사람들이 한 이야기를 배워가지고 거짓말도 되풀이하면 참말이 된다고?』
  
  ―金大中 대통령은 그러나 거짓말과 약속을 안 지키는 것은 구별해주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 궤변이 어디 있어. 희랍의 소피스트들도 그런 거짓말은 안했어. 그런 엉터리 같은 소리 안했어』
  
  ―처칠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정치인은 약속을 못 지킬 수도 있다, 그럴 경우엔 왜 약속을 지키지 못했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요.
  
  『설명한 적이 있어요?』
  
  ―그렇다면 작년 여름에 金大中 대통령과 내각제 담판을 할 때 金총재께선 너무 쉽게 양보하신 것이군요.
  
  『그렇지 않아요. 金대통령이 그 이야기를 하기 전에 합당을 제의하더군. 나는 문득 3당 합당 생각이 나더군요. 그때 盧泰愚 대통령이 여소야대 상황에서 되는 일이 없어, 그래서 우리 신민주공화당하고 합당하기로 했어요. 그래도 과반수가 되는데 나중에 보니 (金泳三의) 민주당도 들어와 있더군요. 이것이 盧泰愚 대통령의 과욕이었어요. 신민주공화당하고만 손잡아도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데 과욕을 부린 거지. 이 과욕이 점점 이상하게 되는 것의 단초가 된 거지요.
  
  언제나 이 과욕이 세상을 절단내는 거야, 왜 과욕을 부리나. 金대통령도 나에게 그랬어. 「이제 내가 대통령이 되었는데, 나이가 이제 80을 내다보는데 무슨 과욕을 부릴 게 있느냐」고 말이야. 경제위기를 잘 극복해서 국민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나라 만드는 데 여생을 바치겠다고 그랬어. 그런데 한 2년이 되니까 생각이 달라진 거야. 민주당은 왜 만들어. 그 당에서 쫓겨나온 金相賢 의원이 그러대, 「나도 왜 민주당을 새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고 그러대.
  
  사실은 국민회의 잘 다독거려서 가고 자민련 잘 다독거려서 가고 이렇게 했었어야지. 그래야 국민들이 안심할 거고. 이건 내가 그 韓光玉 비서실장한테 金대통령에게 이야기하라고 그랬어요. 밥 같이 먹자는 것 안 먹고, 가서 그 이야기나 전하라고 했어요. 난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민주당을 만들어가지고 과욕부리는 건 결국 지역감정을 더 심화시킬지 모른다. 잘못하면 호남당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는데 뭣하러 이렇게 하느냐, 그랬어요』
  
  ―金총재께선 金正日이를 어떻게 보십니까.
  
  『그동안 그 과정을 보면 저 체제를 유지하는 능력은 평가해야지요. 그러나 옛날엔 敵將을 칭찬하는 것이 하나의 덕목이었다고 합니다만 저들은 하나 변한 것 없는데 그걸 어떻게 칭찬해요. 칭찬한다는 건 말이 안됩니다. 국가원수가 그러면 곤란해요』
  
  『가정교육을 제대로 못 받은 자들이 사회를 어지럽힌다』
  
  ―레이건 대통령은 현직에 있을 때 소련을 공식석상에서 「악의 제국」(Evil Empire)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정치인들은 왜 북한정권에 대해서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합니까.
  
  『그러면 언론은 왜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하지요?』
  
  ―아니, 정치인들이 먼저 이야기를 해야 언론이 쓰지요. 우리가 만들어 쓸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내가 이야기했는데 언론이 안 쓰대. 내가 이야기했어요. 어떻게 金正日이를, 적의 총수를 찬양고무할 수 있는가 말이야 라고 내가 그랬어요. 그런데 언론이 안 써요. 이 나라가 正義가 있는가 묻고 싶어. 있기는 있겠지만, 시간이 걸리겠지만. 중국의 先人들도 天網, 하늘의 그물이 있어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고 다스릴 것이다 라고 이야기했어요. 나도 當代에 정의가 구현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天網에 희망을 걸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지요. 하늘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 같지만 網이 있어요』
  
  金鍾泌 총재의 閑談은 아주 구수하고 상황묘사가 실감나기 때문에 많은 웃음을 자아내었다. 성공한 정치인들이 다 그렇지만 人名의 기억력이 비상한 그는 일제 시대 이웃집 아저씨의 이름까지 들먹이면서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집 앞에 모 회사의 지배인이던 이석태씨가 살았어요. 이분이 오토바이를 몰고 부여에서 회사가 있는 논산까지 통통거리면서 타고 다녔습니다. 우리 부락의 여인네들이 공동우물가에서 일하다가 오토바이 소리가 나면 「야, 저 통통 소리 한번 나는데 저분은 5전씩 번다고 하더라. 그러니 논산까지 가는데 몇천 번 통통 소리가 날 텐데 얼마나 벌까」하고 부러워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는 야 나도 공부를 열심히 하여 훌륭하게 된 다음에 저런 오토바이, 아니 자동차를 타고 다녀야겠다는 그런 의욕이 어려서부터 생겼습니다. 그래서 나보다 잘난 사람이나 잘하는 사람을 존경하면서 닮아보려고 애를 쓰게 된 것이오. 그런데 요즘은 누가 통통 소리 내면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면 당장 「야, 저 자는 내가 못하는 것을 하고 있구나」 하면서 「저 자가 어디서 오토바이를 훔쳐서 다니는 게 아닐까」라고 배아파한단 말입니다. 이게 될 말입니까.
  
  세상을 이런 식으로 전부 거꾸로 해 놓고는 개혁한다고 하는데 개혁대상을 스스로 만들어놓고 개혁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내가 이렇게 悲憤해도 워낙 미력하니. 하긴 나도 적잖이 잘못을 많이 한 사람입니다. 교육을 할 때 人性에 치중해야 합니다. 사람이 되지 않는 놈이 인터넷 잘 움직인들 무엇합니까. 사람을 가르쳐야 돼. 가정교육 제대로 받지 못한 자들이 지금 세상을 어지럽게 하고 있어요』
  
  『베라먹을 것들』
  
  ―자민련이 잘못한 것이 있습니다. 지난 국회에서 4·3 제주도 공산폭동으로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보상이나 명예회복을 규정한 법률이 통과되었는데 이 법률을 읽어보면 이 사건이 대한민국의 건국을 방해하기 위해서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킨 것이라는 定義가 없고 오히려 국군이 정의로운 민중봉기를 일으킨 제주도 양민들을 학살했다는 식으로 오해될 소지마저 있고 일부 세력에선 그런 방향으로 이 법을 악용하고 있습니다. 자민련도 이 법이 통과되는 데 찬성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내용 모르고 젊은이들이 그렇게 하는데 이런 것을 언론이 바로잡을 의무도 있는 것 아닙니까』
  
  ―아니 정치가 잘못해놓고 언론이 바로잡아달라고 하십니까.
  
  『정치가 잘못해도 견제하고 옳게 따져야 할 임무를 띤 것이 언론이야. 정치는 사회의 한 반영체이기 때문에 사회가 돌아가는 것과 뚝 떨어진 게 아닙니다. 그런 정치가 잘못해도 객관적인 입장에 있는 언론이 사회의 목탁으로서 이를 바로잡아달라는 겁니다.
  
  웬 녀석이 내가 4·3 사건에 관계가 있다고 떠들며 돌아다니는 미친 놈이 있었어. 내가 불렀어. 너 왜 물귀신도 아닌데 나를 물고 들어가냐하고 물었더니, 내가 그때 정보국의 북한반장을 했으니 책임이 있다는 거야. 내가 말하기를 당신은 북한반이 뭘 하는 줄 아는가라고 물으니 뭐 그런 것 하는 곳이 아닌가라고 해. 북한반은 38선 이북에 있는 군사력을 바라보는 곳이야 이 사람아.
  
  북한 게릴라들이 6·25 남침을 준비하기 위해 남한으로 나와서 후방교란을 하고 点에서 線으로, 線에서 面으로 확대해 나가는 것을 담당한 것이 남한반이다. 북한반은 북쪽을 바라보는 곳이야 그런데 왜 내가 책임이 있다고 그러느냐. 이 사람이 한다는 말이 그래도 당시의 인물 중에 내가 고위층에 있는 인물이니까 4·3 사건에 책임이 있다는 거야.
  
  이런 베라먹을 놈이 있나 싶었지만 참았어요. 김달삼이가 총사령관이 되어 일으킨 폭동을 요새 와서 잘한 거다 하고 있으니 말이 안되는 거다. 더구나 나를 물고들어가고 있는데 그러지 말라하고 타일렀습니다. 이 자가 신문사마다 돌아다녔던 모양인데 한 신문에서만 취급했어. 아주 가방을 들고 다니면서 이 속에 다 있다고 그러는 미친 놈이 있었어. 이 세상이 그럴 수가 있어, 그런 것이 하나도 따져지지도 않고 말이야』
  
  이날 金鍾泌 총리는 「베라먹을 것들」이란 말을 자주 썼다. 지역감정에 金大中 대통령도 책임이 있다고 한 자신의 말을 언론이 비판한 데 대해서도 그런 용어를 썼다.
  
  『내가 지역감정을 자극하기 위해 그런 말을 쓰지 않았음을 잘 알면서도 큰 제목으로 나를 비판하는 것은 분명히 의도적이야. 베라먹을 것들, 아 그런데 베라먹을 것들이란 말은 표준어에 없습니다. 내가 강조하기 위해 그러는 거요. 빌어먹을 것들이란 뜻이지』
  
  『그런 게 무슨 학자야?』
  
  ―毛澤東 비록을 읽으면서 느낀 것이 있습니다. 동양정치사상을 저는 두 갈래로 봅니다. 戰國시대 齊나라 재상 管仲에서 劉少奇-鄧小平-李光耀로 이어지는 실용주의 노선이 있는가 하면 毛澤東으로 상징되는 명분론-선동노선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朴正熙 대통령은 아시아적인 실용주의 노선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맞아요. 劉少奇는 정신적으로 아주 건강했어요. 그러니 毛澤東에게 대든 거야. 毛澤東이 홍위병을 선동하여 나라를 절단내니까 안된다고 했어요. 그러니 毛澤東이가 한다는 말이 大亂大治. 大亂을 일으켜야 大治할 수 있다고 했다는 거야. 그러면서 劉少奇를 숙청해버렸잖아』
  
  ―싱가포르 전 수상 李光耀는 毛澤東보다 鄧小平을 더 높이 평가하면서 그를 20세기를 대표하는 중국의 지도자로 꼽았습니다.
  
  『그것이 옳게 보는 거지요. 鄧小平은 오뚝이 인생이야』
  
  ―周恩來가 文革 때 劉少奇와 鄧小平 편을 들어 毛澤東에 맞설 수 없었다고 생각하십니까.
  
  『周恩來는 좋게 이야기하면 中庸的인 사람이고 나쁘게 이야기하면 요령이 좋았던 사람이야. 그러나 周恩來는 양쪽에서 미움을 안 받았어요. 그러면서 鄧小平을 보호하고 결국은 毛澤東의 후계자로 만들었어. 그러니까 보통사람이 아니었어』
  
  ―周恩來는 毛澤東의 허가가 떨어지지 않았다고 암수술도 미루며 참았다던데요.
  
  『본인도 암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아프면서도 이야기 안하고 정상집무를 했으니 중국사람다운 모습이에요. 毛澤東이가 周恩來를 미워했어요. 그래도 워낙 사람이 완벽하니 건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金총재께선 주로 일본책을 통해 독서를 하십니까.
  
  『우리나라 책은 내용도 별것 없지만 漢字가 없으니 읽는 데 너무 시간이 많이 걸려요. 요사이 한자를 외국어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한자는 우리 것이란 말이야. 우리말의 語源이 거의 다 한자인데 그런데도 외국어라고 하니 도대체가…. 어느 날 한글전용주의자가 찾아와서 나한테 항의를 제기했어요. 저들이 주민증의 이름을 한글로 표기하도록 해두었는데 내가 나서서 한자를 倂記하도록 했다고 따지더라고.
  
  이런 게 무슨 학자야. 동양의 같은 문화권을 파괴하고 고립을 자초하자는 게 이게 무슨 학자여. 그런 者가 왜 두루마기를 입고 돌아다니나. 한글로는 우리말의 뜻을 반도 전달하지 못해!(기자注-이 대목에서 金鍾泌 총재의 목소리는 거의 절규 수준으로 높아졌다) 「표」자를 한글로 써놓으면 무슨 소리인지 모르잖아요. 버스푠지, 기차푠지, 출사푠지 누가 알아. 쉬운 것만 찾으면 안돼. 컴퓨터가 발달되어 이제는 漢字를 써도 불편이 없어요. 우리말을 반신불수로 만들어놓고 말이야. 아이구 일찍 죽어버려야지』
  
  『오래 살라는 말은 욕이라 그랬어요』
  
  ―金총재께서 이런 말을 하시지 않았습니까, 나이 70을 넘으면 부끄럼도 두려움도 느끼지 않는다고.
  
  『그런 느낌이 있지요. 그런데 난 70을 넘은 게 두렵고 죄송스러울 뿐입니다. 내가 뭘했나. 70이 되고 보니 내가 69년 동안 뭘하고 살았는가 하는 후회밖에 없어요. 잘난 사람 많아서 내 같은 사람 꼼짝 못하지요』
  
  ―그래도 오래 사셔야죠.
  
  『오래 살라는 말은 욕이라 그랬어요. 다만 꼭 해놓고 싶은 게 있는데 잘 안되어서 용을 좀 써보고 싶다고 그러는데』
  
  ―형 되시는 金鍾珞씨가 우리 기자한테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朴대통령은 金총재한테 열등감 비슷한 걸 갖고 계셨다고요.
  
  『그런 거 없어요. 다만 초기와는 달리 중기 이후엔 신경을 쓸 만한 사람들을 주위에 두는 것을 싫어하셨어요. 그래서 죽으라 하면 죽는 시늉을 하는 車智澈 같은 이를 중용하셨지만 콤플렉스 같은 걸 느끼실 분이 아니세요』
  
  ―朴대통령의 모습을 보면 1960년대의 모습이 훨씬 소탈하고 당당하고 좋은 것 같습니다.
  
  『1960년대는 차-암 잡념이 없으셨어요. 나라를 일으켜세우는 데 전력을 다하고 역사의 심판을 달게 받겠다는 생각으로 순수하셨어요. 1970년대 후반으로 가면서 달라졌어요. 그래서 권력을 10년 이상 잡지 말라는 게 5000년 동양 역사의 가르침이지, 權不十年(권불십년)이란 게 허튼 소리가 아니오. 그런데 朴대통령께서는 그래도 10년 지나니까 달라지셨다고 하지만 요즘에 저 뭣하는 사람들은 2년이면 달라지대, 이것도 갓뎀이여.
  
  세상을 망치건 개인을 망치건 사회를 망치건 국가를 망치건 민족을 망치건 그것은 과욕에서 와요. 공자께서도 70세가 되어서야 세상을 경우에 어긋나지 않고 지내겠다고 말씀하셨는데 난 75세가 되었는데 정말 욕심없어. 그러고 보니 과욕투성이야. 터무니없는 과욕들을 부려』
  
  金鍾泌 총재는 여기서 금년 초에 揮毫(휘호)로 쓴 「洋洋天讓 悠悠古今」이란 말을 꺼냈다.
  
  『이 참 도도하게 흐르는 끝이 없는 세상 섭리 속에서 요만한 게 왜 과욕을 부리는가 그걸 이야기한 것이야. 趙형은 그걸 몰라요? 이것 야단났네, 그러면 써드릴까』
  
  『어디 한 5년 가지고 세상을 내 것으로 만들려고 그래?』
  
  金총재가 백지 위에 만년필로 쓴 「洋洋天讓 悠悠古今」은 달필이었다.
  
  『이런 우주의 섭리 속에서 과욕을 부리지 말란 뜻이에요. 나 자신에 대한 계율도 되겠지만 권력을 가진 사람들보고 과욕 부리지 말라는 뜻입니다. 터무니없는 이야기지, 그야말로 갓뎀이지. 어디 한 5년 가지고 세상을 내 걸로 만들려고 그래. 어림도 없는 이야기지. 정치가란 건 별 하자 없이 국민을 편하게 모셔가는 일꾼이면 되는 거요. 國民에게 왜 고통을 주고 불안을 주고 하는 거야.
  
  국민들은 한결같이 어제보단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나은 세상이기를 바라는 거요. 이게 바로 개혁정신이라구. 그래서 先賢들이 日日新 又日新이라고 했어. 이런 것도 욕심을 버리면 다 해석이 나와. 국민들이 그런 의지로 살아가기 때문에 세상은 개혁되고 변화 발전이 되는 거지, 정치하는 놈이 선두에서 고함친다고 되는 일이 아니에요. 정치하는 사람이 개뿔이고 뭐고 뭘 더 알아. 국민들이 훨씬 현명하다고.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만들기 위해 허리가 아프도록 노력하는 의지력, 이게 발전의 원동력이야. 그걸 안다면 국민들에게 부담주고 고통주면 안돼. 이게 그 소리야, 이게』
  
  ―일본 나카소네 前 수상 같은 분하고 만나서 대화하면 우리 정치인들하고 이야기하는 것보다도 더 마음이 통하시는 것 같던데 통하는 바탕이 뭡니까. 동양문화입니까.
  
  『나카소네 같은 사람은 禪을 해요. 아침에 일어나면 내가 잘못 생각한 일이 없는지 自問自答하면서 반성을 합니다. 나카소네는 일본의 현존하는 다른 정치인들이 따라가지 못하는 인물이야. 이런 사람은 책을 많이 읽고 연구도 많이 하고, 이런 사람과 이야기해보면 나를 포함해서 우리나라의 정치하는 사람들이 왜 공부 않나 하고 안타까워져요. 특히 기자들이 공부 안해. 공부 안하니 말귀를 못 알아듣고 그런 말귀 못 알아듣는 사람들이 쓴 기사를 근거로 논설을 써대니 그것 또 뭐야. 맞는 게 하나도 없어』
  
  金鍾泌 명예총재는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보수층의 불만과 걱정을 건드려 지지표로 동원하는 것을 자신의 선거전략으로 삼고 있다고 실토했다.
  
  『보수세력들은 걱정을 하면서 말도 별로 안해요. 행동도 안해요. 그러니 이상한 몇 사람만 있어도 그들에게 휘둘려져요. 그러나 어떤 여론조사에서도 60%가 입을 다물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돼. 이 사람들이 말하고 싶은 건 뭐요. 제발 좀 우리를 괴롭게 하지 마라. 우리 나름대로 지혜도 의지도 능력도 있고 갈 길을 안다, 그러니 제발 내버려다오. 누가 널보고 나를 끌어달라고 했느냐 말이야.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거요. 이걸 이번 선거에서 동원해야 해. 그래서 내가 한 마디 했더니 언론에서는 아, 내가 지역감정 선동한다고 말이야. 자, 이제 이야기 그만하고 갑시다, 하하』
  
   선동가 역할
  
  金鍾泌 총재는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면서 『이번엔 싸울 거요』라고 혼잣말처럼 다짐했다. 지난해 8월 중순에 총리공관에서 만났을 때보다 金총재의 표정은 맑아보였고 목소리엔 훨씬 힘이 실렸다. 대통령을 모셔야 하는 총리직을 그만두고, 또 공동정부 탈퇴를 선언한 뒤여서 그런지 조심하지 않고 거침이 없었다.
  
  이 대화록을 읽어본 독자들은 느끼겠지만 金鍾泌 총리의 인생관과 생활철학, 그리고 정치소신은 생활 속에서 우러나오는 일견 평범한 것이고 그것은 우리 역사와 미풍양속에 뿌리박은 흐름이기도 하다. 溫故知新, 日日新 又日新 같은 말들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그는 옛것과 기성세대를 거쳐 이어져오는 가치를 기초로 해야 진정한 개혁도 가능하다고 믿는 온건론자이다. 어떻게 보면 동양의 역사와 漢字문화를 교양의 토양으로 가진 마지막 世代의 마지막 정치인인 셈이다.
  
  그는 16代 총선의 성격을 기본적으로 좌파혁명이냐, 보수혁명이냐로 보고 있는 듯했다. 金鍾泌의 존재가치와 自民聯의 성패는 그의 말대로 침묵하는 다수의 보수층을 깨워 일으키고 그들의 애국심을 지지표로 동원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金鍾泌 총재는 이번 선거에서 그런 의미의 선동가 역할을 自任하고 있는 듯했다.
출처 : 월조
[ 2003-07-14, 15:2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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