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많은 신한국당 김윤환 대표 (1)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고민 많은 신한국당 金潤煥 대표의 4시간 토로
  
  ●『인간적으론 괴롭지만 굴절된 歷史를 바로잡는건 大義』
  ● 『기구한 운명, 어느 누구도 나를 자기 사람으로 생각 안해』
  ● 『당초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윤리만으로 歷史가 흘러가는가』
  ● 『특별법이 박수는 받지만 표는 잃는다는 것 잘 알아』
  ● 『대통령, 혼자서 결정하는 게 문제』
  ● 『TK가 총선 에서 밀어주어야 15代 정계개편의 주도권 잡을 수 있다』
  ● 『지역구 對 비례대표제를 2대 1로 하는 게 바람직』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고뇌… 15代 국회가 되면 정계재편, 내각제, 대통령 重任制 개헌 등 모든 것이 가능해질 수도 있다』
  
  <1996년 1월 월간조선>
  
  『인간적 고뇌와 歷史바로잡기는 별개』
  
  정치권에서 현재 가장 괴롭고 어려움에 처해 있는 정치인을 꼽는다면 단연 김궐?金潤煥) 신한국당 대표가 선두에 자리할 것이다. 金대표의 약 20여년에 걸친 정치 역정(歷程)중 지금처럼 마음고생이 심한 적도 일찍이 없었을 것이다. 金대표가 놓여 있는 어려움은 그 배경이 정치적인 사안이기에 앞서 과거 한 때 보필했던 두 전직 대통령이 감옥에 들어가는 모습을 집권당 대표로서 지켜봐야 한다는 인간적인 괴로움이라는 데서 더욱 클 수밖에 없다. 金대표 스스로도 95년 12월6일 「언론인 송년의 밤」행사에 참석, 「기구한 운명」이란 말로 자신의 심경을 다음과 같이 털어놨다.
  
  『5共 말기에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내며 6共을 만들었고, 6共 때는 문민정부를 만들었다. 그 6共 때 5共과 정치적 차별성을 정리하지 않으면 안됐다. 지금은 또 여당 대표로서 6共문민정부의 차별성을 정리해야 할 운명이다. 5·6共과 문민정부에 기여했으?누구도 자기 사람이 아니라고 하는 것?참 瘦맨求? 金대통령도 나를 결코 가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95년 12월13일 오후 인터뷰를 하기 위해 시내 중심가의 한 호텔방에 들어오는 金대표는 피곤한 모습이 역력했다. 평소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복잡한 심기 때문인지 金대표는 인터뷰 5일 전인 12월8일에는 어깨 통증을 이유로 여의도 당사에 출근하지 않았다. 어깨 상태를 묻자 그는 『일종의 디스크인데 침을 맞아도 자 낫지 않는다』고 말하고 『다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기 때문이 아니겠느냐』며 허허 웃었다. 그는 盧泰愚·全斗煥 두 전직 대통령의 감옥행을 언급하는 대목에서는 『자다가도 수시로 벌떡벌떡 깰 정도였다』고 했다. 그의 얼굴 표정은 질문 내용에 따라 곤혹스러운 듯 수심에 잠기기도 하고 얼굴이 벌개지며 언성이 높아지기도 하는 등 수시로 변했다. 그는 그러나 인터뷰 도중 『인간적인 괴로움과 굴절된 歷史를 바로잡자는 것은 별개』라는 요지의 말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우리 나라에서 지금 제일 고민이 많은 분인 것 같습니다. 요즘 시중에서는 역사를 바로잡자는 것은 맞지만 방법과 절차에는 무제가 적지 않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이런 논법은 시비에 휘말리지 않으려는 데서 개발된 면도 있어요. 최소한 정치지도자라면 全斗煥 전 대통령을 구속하는 일이 옳은 일이냐, 그른 일이냐를 먼저 판단한 뒤 옳은 일이라면 다수 무리가 있더라도 구속해야 하고, 나쁜 일이라면 반대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5·6共 歷史청산 자체가 정당하다고 보십니까.
  
  『역사를 청산하고, 과거와 단절하자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내가 여기(신한국당)에 있을 수 없지요. 단지 5·6共의 나쁜 것, 굴절된 역사를 바로잡는 것은 해야 한다는 차원이지요. 내가 대통령 만나서도 「5·6共의 상징적 대표가 집권당 대표를 할 수가 있겠습니까」고 했습니다. 「한쪽에서 저더러 물러나라고 하는 이러한 상황에서 제가 대표로서 아인덴티티를 확보할 수 있겠습니까. 그럴 바에야 대표를 그만두는 것이 대통령에게도 누를 끼치지 않는 것 아니겠느냐」고 했어요. 그랬더니 대통령께서 「그게 아니다. 5·6共과의 역사를 단절하자는 것이 아니다. 비리와 부정부패, 부정축재를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느냐. 다시는 12·12와 5·18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 진상을 밝히고 역사를 바로잡고 나가야 되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애초부터 全 전 대통령을 구속시키려고 했던 것은 아닐 것』
  
  金대표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 초래하게 된 과정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89년 말 全斗煥 전 대통령의 국회 증언에서 5共 청산에 대해서는 정치적 타협을 본 겁니다. 정치적 청산을 한 거지요. 당시 여야 정치지도자들도 다 동의하고 大選과정에서도 후보들은 모두 용서하겠다고 했어요. 그랬는데 6·27 지방선거 이후에 金大中 총재가 정계에 전격 복귀하면서 5·18문제가 클로즈업 된 것 아닙니까. 물론 국민들?12·12와 5·18을 그런 식으로 적당히 어물어물하는 것을 도저히 납득하지 못한다, 반드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하면 나도 국민들의 요구에 동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비자금 사건이 터지기 전에는 「15년이나 지난 일을 지금에 와서 다시 문제를 삼아서야 되느냐」게 대체적인 입장이었습니다. 대통령도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역사에 맡기자는 입장이었고 그러나 12·12와 5·18이 정치이슈화 되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비자금 사건이 터지니까 그렇다면 용서가 안 되는 것 아니냐는 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한 겁니다. 용서하겠다는 명분이 없어진 거지요. 나도 이렇게 된 상황에서 인간적인 것은 인간적인 것이지만 정치적인 大義는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입장이고』
  
  ―대통령이 95년 12월12일 발표한 담화를 보면 왜 「역사에 맡기자」에서 「역사를 바로잡자」는 것으로 태도를 바꿨는가에 대한 최초의 설명이 나옵니다. 그러나 그것을 보면서 의아하게 생각한 것이 있습니다. 盧 전 대통령의 부정축재를 보고 굉장히 분노했다는 말씀을 하셨지만 사실은 그 이전에 이미 검찰조사나 안기부 등을 통해 부정축재 내용을 파악하고 있었는데, 비자금 문제가 신문에 터지고 사건화 되니까 뒤늦게 거기에 보조를 맞춰 화를 낸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徐錫宰 전 장관의 「4천억 비자금 발언」때는 확정적인 물증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고 봅니다. 대통령도 그 정도로 많은 줄은 몰랐다고 얘기합디다. 내가 95년 8월 대표연설을 할 때 「소급입법 안 된다」, 「이전에 합의한 대로 정치적 타협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점을 그대로 천명했어요. 그때까지도 대통령이 「역사에 맡기자」고 한 그 선상에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고 있을 때 비자금 문제가 터지니까 그렇다면 용납이 안 되는 것이라고 했던 거라고 봅니다.
  
  ―저는 담화문을 보庸?金대통령은 盧 전 대통령이 2천억원의 비자금을 숨겨놓은 이유를 정치적인 활동을 하겠다는 걸로, 다시 말하면 5·6共 세력이 다시 뭉치는 것으로 개전의 정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과 연결시켜서 이 기회에 싹을 자르기 위해 全斗煥 전 대통령도 구속시킨 것 아닙니까.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엄청난 돈이 나오니까 이럴 수가 있느냐, 그것은 부정축재지 비자금이 아니지 않느냐고 본 겁니다. 盧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뭐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고, 5共 신당설도 있긴 했지만 저는 金대통령이 애초부터 그렇게 하려고 했다고는 보지 않아요. 하지만 항간에는 5共 신당설에 대해 말이 많았던 게 사실이에요. 너무 5共 사람들이 많이 몰려다니는 것 등…. 저는 金대통령이 나름대로는 전직 대통령을 보호하려고 했다고 봅니다. 그러나 엄청난 비자금 사건으로 해서 역사에 맡기자는 이야기를 더 이상 못하게 됐고, 5·6共을 보호할 수 없게 된 겁니다. 또 지방선거 후 5·18이 정치이슈화 되고 했을 때 全 전 대통령측이 어느 정도 자숙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봅니다.』
  
  『정치적 역할 했을 뿐 권력과 결탁한 적 없어』
  
  ―金대표의 말은 金대통령이 부득이 하게 12·12와 5·18의 사법처리쪽으로 선회했다는 것인데, 하지만 실제 행동에서 全 전 대통령을 구속하고 또 수사범위를 넓혀 가는 걸 보면 金대통령의 감정이 실려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말해 대통령이 이 문제 처리를 가지고 고민했다는 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정치게임을 하는 데 있어 좋은 찬스가 왔다. 1백% 활용해야겠다는 식으로 오히려 즐기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생각까지 듭니다. 오해입니까.
  
  『그런 오해도 있을 수 있겠지만 金대통령도 역사를 바로잡자는 것이지 처벌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보복적인 차원에서 접근한다면 정치가 안정이 되겠습니까. 저도 대통령에게 가능하면 특별법을 만들지 말고 현행법대로 해서 재판해도 역사바로잡기는 되는 것 아니냐는 말도 했어요. 그랬더니 대통령께서도 「국민들이 과연 현행법대로 해서 두 사람만의 처벌로 납득하겠느냐」고 합디다. 국민들이 납득하는 선에서 최소화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 대통령의 뜻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재판을 통해 刑 확정판결을 받으면 대통령이 사면(赦免)을 해 준다든지 할 생각이 있습니까.
  
  『그것은 대통령의 뜻에 달린 것이지요』
  
  ―金대통령의 뜻은 처벌이 아니라 역사 바로잡자는 쪽에 무게가 더 실린 것입니까. 엄격하게 처리하면 사형·무기징역까지도 갈 수 있는데, 그렇다면 처벌에 대해 상당히 관용을 베풀겠다는 뜻이 있는 것입니까.
  
  『관용 쪽으로 볼 수 있는 것도 아닌가 싶습니다. 金大中 총재 등 정치지도자들도 처벌은 원치 않는다고 했고. 다시는 12·12, 5·18과 같은 일이 없도록 하는 특별법을 만들고 그 다음에 용서하자는 생각을 가져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하고 나서 관용을 베푸느냐 여부는 대통령의 권한이지 누가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보기에 12·12나 5·17, 광주사태의 진상은 이미 밝혀진 상태라고 봅니다. 검찰도 이미 12·12는 군사반란이라는 결론을 내렸고요. 기소유예를 했을 뿐이지 그렇다면 지금 하는 것은 결국 과거에 조사한 것을 재확인하는 차원밖에 안됩니다. 더 이상 새로 진실이 밝혀질 게 있습니까. 결국 검찰조사를 납득하느냐 ?하느냐는 문제인데, 정부가 왜 자꾸 진실규명 차원이라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역사의 진실이 최근의 분위기에 휩쓸려 광주사람들이나 피해자들이 원하는 쪽으로 다시 왜곡되지나 않을까 오히려 걱정입니다.
  
  『물론 조사는 다 돼 있지만 좀 더 명백히 밝혀내자는 것 아니겠습니까 단지 처벌하느냐 안 하느냐는 앞으로의 문제이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는, 즉 성공한 쿠데타도 처벌받는다는 역사적 교훈을 남기자는 차원 아니겠습니까』
  
  ―인간이 어떤 운명을 타고난다고 볼 때 金대표는 朴正熙 전 대통령과 같은 고향이고, 盧 전 대통령과는 고등학교 동기입니다. 또 5·6共에 이어 金泳三 정부에 이르기까지 정권의 핵심부에 있었는데, 그런 경력을 뒷받침해주는 정치철학은 무엇입니까.
  
  『얼마전 언론인 송년모임에서도 밝혔듯이 정말 기구한 운명인 것 같습니다. 다만 나는 그때그때 정치적 역할을 했을 뿐이지, 권력에 밀착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다면 한 정권이 끝났을 때 저도 함께 끝장났을 겁니다. 굳이 철학을 말하자면 당시 5·6共 체제 내에서 정치 테크노크라트로서 제도적 민주화에 기여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가졌었습니다. 이것이 정치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라는 소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내가 정말 권력과 결탁했다면 그 권력과 벌써 운명을 함께 했을 것입니다.』
  
  『언론은 왜 대통령에게 약속을 지키라고 못합니까』
  
  ―全斗煥 전 대통령은 정권 잡을 때는 군부를 업고 잡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6·29선언과 대통령 직선을 해서 평화적 정부이양에 나름대로 기여했습니다. 盧 전 대통령을 구속한 것은 많은 사람들도 불가피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全 전 대통령을 역사와 관련시켜 구속했기 때문에 우리가 자랑하는 평화적 정부이양의 전통도 무너진 것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정권을 평화적으로 물려준 사람이 안전하게 살 수 있어야 되지, 그런 사람을 감옥에 집어넣어 가지고는 평화적 정권교체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렇게도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볼 때 5共 정권 수립은 탄생 과정에서 정통성이 결여돼 있는데, 평화적으로 정권을 이양한 것으로 감면이나 불문에 부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과연 그것이 歷史를 바로잡는 것인지도 의문이고. 물론 6共 초에 정치적 타협이 이루어졌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결국 국민들의 정서가 그것을 용서하지 않으니까 이렇게 된 것 아닙니까. 국민들이 이해가 안된다고 하는데…』
  
  ―하지만 89년 12월, 1盧3金의 大타협에 의해 5共청산은 정치적으로 매듭된 사안이고, 全 전 대통령이 2년 동안 백담사에 「유배」됐으면 그것으로 매듭지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것으로 끝내지 못하는 정치 상황이 온 것을 외면할 수 있습니까』
  
  ―못하는 상황은 아니죠, 金대통령이 못한다고 판단한 것이지, 국민들이 그렇게 판단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고 많은 사람들도 그것으로 끝내자고 했는데, 金대통령이 판결 이전에 자신의 판단에 의해 처벌 쪽으로 간 것 아닙니까.
  
  『물론 金대통령이 「역사에 맡기자」는 당초의 말대로 왜 못하느냐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안 보는 정치 세력도 상당히 있는 것 아닙니까』
  
  ―결국 金대통령이 과거에 약속한 것은 약속한 것이지만 이제 勢가 불리해져 가니까 사법처리쪽으로 간 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런 계산에 의해서 결정할 차원이 아니라 윤리적 결단에서, 다시 말해 하늘이 두쪽이 나도 절대 약속을 지키겠다는 차원에서 결정해야 하는 사안 아닙니까. 불리하다고 과거의 약속을 1백80도 선회한다면 대통령도 그렇고 대표도 그렇고 인격적으로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것 아닙니까. 불리하다고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역사가 그런 것 아닙니까. 윤리만 가지고 됩니까. 지금의 역사적 대의는 그런 게 아니지 않습니까. 국민들은 절대적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보는 것 아닙니까. 물론 과거의 약속을 왜 못 지키느냐는 주장도 있겠지만 약속을 지켰을 경우 표출할 국민적 갈등은 도 어떻게 됩니까. 현실적인 고려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겁니다』
  
  ―지금 드러나고 있는 언론보도나 재야, 정치권, 일부 지역의 반응을 보면 요즘의 조치들이 역사적인 대의이고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겉으로 나타나지 않는 침묵하는 다수의 목소리에 대해서는 아무도 측정을 하지 않고 있는데, 그 목소리는 분명 다음 총선에 나타날 것입니다. 다음 총선 결과를 보야 국민들이 과연 이번 조치를 지지하는지 반대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격앙된 목소리로) 그렇다면 왜 언론은 그런 윤리를 못 지킵니까. 그래놓고 왜 정치권에만 윤리를 지키라고, 약속을 지키라고 얘기합니까. 현실적으로 대응할 때 역사적 대의에 거스를 수 있는 명분이 있습니까. 탈권행위를 용서하지 않는 법률을 만들자고 하는데 그것을 안 된다고 할 수 있습니까』
  
  『처벌 범위는 대통령 결단에 의해 정해질 것』
  
  ―중요한 지적을 하셨는데, 언론도 분명 책임이 있습니다. 왜 언론에서 「여기서 끝내자」「관용하자」는 기사를 한 마디도 안 쓰고 「검찰의 5·18 수사에 불만이다」,「사법처리를 해야한다」고 했느냐면, 그것이 사회적인 명분이 있는 것 같이 보이니까, 그러다 보니까 어떤 환상이 만들어진 면이 있다고 봅니다.
  
  『그런 환상 위에서 정치가 만들어 진 것 아닙니까』
  
  ―맞습니다. 하지만 그런 환상에 끌려서 정치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약속을 했더라도 성공하는 쿠데타도 용납 안 된다는 역사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비자금 사건이 안 나왔다면 그것을 보호할 수 있는 여건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물론 저도 「이걸로 끝내자」는 기사를 쓴 적이 없기 때문에 반성합니다. 하지만 대다수는 「金대통령이 막아 주겠지」하고 생각한 것 아니겠습니까.
  
  『나도 金대통령이 막아주겠지 생각하고 3당 통합도 하고 문민정부 만드는데 기여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주장할 수 없는 시대적 상황, 현실이 됐는데 어떻게 합니까. 그렇게 한다면 굴절된 정치를 옹호하는, 역사의 흐름에 거역하는 사람으로 보이는 것 아니겠습니까. 처벌은 하지 않더라도 역사를 바로잡자는 데 동의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런데 지금 처벌을 해서 역사를 바로잡겠다는 것 아닙니까.
  
  『물론 처벌을 안 하는 쪽을 원하지만 국민감정이 어느 정도 용납할지 그것도 감안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럴 경우에 생길 수 있는 갈등도 생각해야지. 어느 선에서 그걸 납득시키느냐가 정치 아닙니까』
  
  ―앞으로 歷史바로잡기 문제를 신한국당 차원에서는 어떻게 끌고 갈 계획입니까. 가령 처벌 범위를 어떻게 할 것인지. 당장 신한국당 안에서 처벌받는 의원도 나올 수 있는데요.
  
  『대통령의 결단에 의해 해결되지 않겠습니까. 어찌 됐든 앞으로는 권력찬탈이라는 것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래지향적으로 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실제 신한국당이 내놓은 특별법은 특별검사제를 배제하는 등 현행 형법을 확대한 것에 불과합니다』
  
  ―광주문제는 예민한 사안인데, 이 문제에 대해 대통령은 어떻게 해결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까.
  
  『진실 규명과 주도자의 책임소재를 일단 밝히고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광주사태를 학살로 보십니까.
  
  『학살은 아니더라도 인명살상으로 볼 수는 있지요. 또 학살로 간주될 만한 사건도 몇 건 있고. 하지만 본질 자체를 학살로 보는 것을 아닙니다』
  
  ―광주사태는 민간인 1백66명이 죽었지만, 군인·경찰들도 24명이 죽었습니다.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것은 계엄령下의 민주화요구 시위와 군인들의 과잉진압이고, 그것 때문에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 발단입니다. 그렇다면 과잉진압의 책임을 누구한테 물어야 하는 것이 문제인데, 그것은 당시 鄭雄 31사단장에게 물어야 합니다. 검찰발표를 보면 당시 공수부대를 31사단장이 지휘했기 때문입니다. 朴俊炳씨의 20사단도 광주가 이미 무장한 시민들에 의해 넘어간 후에 들어가서 진압한 것인데, 이것을 가지고 朴씨를 처벌하면 군대를 무력화시키고 명령에 불복종하는 집단으로 만들 수도 있는 예민한 문제인데도 정치권이나 언론에서 모두 광주학살로 몰아가는 상황에서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을지 의문이 갑니다.
  
  『보수세력을 위해선 그런 말도 일리가 있지만 그런 생각만 갖고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제가 잘못 얘기하면 자칫 기득권에게 욕 얻어먹고, 또 개혁세력에게도 욕먹을 수 있습니다. 이문제로 더 논쟁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아까도 말했듯이 저는 역사적 大義에 순응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그 역사적 대의라는 것이 진실에 바탕해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언론뿐 아니라 모든 국민들이, 지금 하고 있는 것이 역사의 흐름이고 대의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모든 국민들이 그렇다고 보시는 겁니까.
  
  『물론 趙부장이 말한 대로 그것은 나중에 표로 나온다고 하지만 지금 그런 것을 얘기할 수 있다고 봅니까. 물론 왜 당당히 얘기하지 못하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職을 걸면 왜 당당히 얘기하지 못합니까.
  
  金대표는 이 부분에서 답답하다는 듯 책상을 치며 크게 흥분했다. 인터뷰를 안하겠다고도 했다. 그는 화가 난 듯
  
  『저널리스트의 입장에서는 쉽게 「왜 그렇게 못하느냐」고 할 수 있지만 현실 정치인의 입장에서도 똑같이 할 수 있느냐』
  『내가 그런 논리로 얘기하면 나보고 뭐라고 하겠느냐』
  『그런 논리로 해결이 안되니까 이런 문제가 제기되는 것 아니냐』며 언성을 높였다. 그는 현실 정치인인 자신의 입장과 처지를 이해 못하는 것이 안타까운 듯
  『왜 그런 나를 몰라주느냐』고 항변했다. 격앙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화제를 선거 얘기로 돌렸다.
  
출처 : 월조
[ 2003-07-04, 13:5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코나스넷  |  리버티헤럴드  |  뉴데일리  |  뉴스파인더  |  뉴포커스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