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자금은 본론, 결론은 '잔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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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초점] 대선자금은 본론, 결론은 `잔금'
  
  <1997년 5월 8일 조선일보>
  
   - 김현철사건에서 김대통령 부자 사건으로 바뀐 한보사태
  
  한보 사건 수사가 김현철 수사로 비화되더니 요 며칠 사이에는 92년 14대 대통령선거 때 쓴 김영삼 후보 진영의 선거 자금이 새로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대선 자금이라는 한국 정치 부패 구조의 심장부, 그리고 이번 수사의 본론에 드디어 도달한 것이다. 본론 뒤에는 결론이 따르게 되는데 그것은 쓰고 남은 대선 자금 즉, 대선 잔금이 실명제하에서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가 하는 데 대한 해명이 될 것이다. 김현철 부정 의 혹 사건이 김영삼·김현철 부자 사건으로 본질적인 성격 변화를 겪고 있다는 것은 일종의 정치혁명적인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92년 대선이 김영삼 후보의 승리로 끝나자마자 월간조선은 그 선거 자금의 규모에 대하여 한달 동안 취재해 93년 3월호에 <김영삼의 최근 정치 자금>이란 제목의 기사를 실은 적이 있었다. 이 때는 아무도 이 대선자금이 4년 뒤에 이렇게 문제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분 위기였기 때문에 솔직하게 증언하는 사람들이 많아 깊은 취재가 가능했고 이 기사는 지금까지도 92년 대선 자금에 대한 가장 종합적인 자료로 남아 있다. 기사는 '민자당이 2백37개 지구당 조직 가동비로 쓴 자금이 약1천2백억원이었다'고 단언했다. 이와 별도로 중앙당이 쓴 돈을 약 1천억원으로 추정했다. 당이 쓴 자금이 약 2천2백억원이라는 얘기이다.
  
  <나사본> 같은 김영삼 후보의 사조직이 쓴 돈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다. 최근에 보도된 자민련의 내부 조사 자료도 92년 대선 자금 중 민자당이 집행한 것을 2천5백억원으로 추정하여 월간조선의 취재와 탔?일치하고 있다. 월간조선 기사는 대선 자금의대부분은 김영삼 후보가 재벌로부터 거둔 것이라고 못박았다.
  
  노태우 비자금 사건 수사는 재벌 회장들이 정치 자금(형법상으로는 뇌물)을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방법에 대해 최초로 정확한 정보를 제공 해주었다. 그것은 예외 없는 직접 전달이다. 수십억 때로는 백억원대의 거액을 간접적으로 전달할 바보는 없을 것이다. 유일하게 대통령으로부터 '고맙다'는 인사를 들을 수 있고 요긴한 부탁을 할 수 있는 기회이고 바로 그런 면담을 위한 일종의 통과세로 내는 돈이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김영삼의 대선자금 기사가 93년 3월호 월간조선에서 가장 큰 기사로 취급되었는데도 항의나 반론이 일체 없었다는 점이다(필자는 당시 월간조선 부장이었다).
  
  `노태우비자금'사건 당시의 수사 미스터리
  
  기자는 노태우 비자금 사건을 수사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한 검사에게 '왜 재벌 회장들을 수사하면서 김영삼 후보에게 건넸을 돈은 조사하지 않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는 {수사 기록을 잘 읽어보면 힌트가 있을 겁니다}고만 말했다. 이 수사 기록 전문을 읽어보았더니 재벌회장들의 자금 제공에 관한 진술은 92년 3월 국회의원 선거 전후에서 거?끝이 나고 그해 대선과 관련해서는 말이 없다.
  
  그런데도 노태우씨는 '대선 직전에 자금이 정상적으로 모였다'고 진술하고 있다(95년 11월16일 1차 조사). 그는 또 '기업주가 본인에게 주었다고 진술한 금액을 들어보니 일부 기업주는 3백억∼4백억원 정도를 낸 것으로 기억되는데도 검찰 조사에서는 훨씬 적게 진술했기 때문에 차이가 난 것 같다'고 했다(같은 해 11월29일 조사). 이 수사기록에는 또 투표 보름 전이던 92년 12월3일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 이현우 당시 경호실장을 시켜 3백억원의 비자금을 인출했다는 진술도 담고 있다.
  
  93년3월호 월간조선 기사도 '노 대통령이 막판에 가서 1천억원을 김 후보에게 지원했다는 설이 돌고 있다'고 썼다. 이상의 조각난 정보와 힌트들을 종합하면 독자들 나름대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김영삼의 최근 정치 자금] 기사의 한 중간 제목은 [그렇게 쓰고 또…]로되어 있다. [김영삼 대통령은 선거가 끝난 직후 현역 의원과 지구당위원장, 선거대책본부 책임자들에게 5백만원∼1천만원씩의 격려금을 돌렸다(1천명에게 평균 1천만원씩 돌렸다면 1백억원). 한 의원은 그렇게 쓰고도 나누어준 데 놀랐다고 했다] 노태우씨도 검찰에서 {87년 대선을 치르고 나니 7백억원 가량이 남았다}고 진술한 바 있다. 김영삼 후보도 선거 자금을 남겼을 가능성이 있다. 재벌로부터의 선거 자금이 막판에 몰렸을 뿐만 아니라 야당의 감시가 심해 이를 다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뇌물죄냐 사전수뢰죄냐
  
  이회창 신한국당 대표는 '법대로'를 강조하고 있다. 대선 자금과 대선 잔금을 법대로 처리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가를 알아보자.
  
  검찰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 기업으로부터 받은 2천8백38억9천6백만 원을 뇌물로 보고 특정범죄가중처벌법으로 기소했고 법원도 이를 인정했다. 정치자금이니 통치 자금이니 하는 반론은 인정되지 않았다. 똑같은 논리로 김영삼 후보가 받았을 (선관위에 신고된 이외의) 선거 자금은 형법상의 뇌물로 분류된다. 문제는 대선 자금을 받은 시점에서 김 후보는 여당 대표였다는 점이다. 뇌물죄가 성립하려면 돈 받은 사람이 공무원이라야 한다. 법조인들은 여당 대표를 공무원으로 보는 것은 무리라는 견해이다(당시에 김영삼 후보는 공무원으로 분류되는 국회의원직을 사퇴한 뒤였다). 그들은 그러나 공무원으로 보지 않더라도 사전수뢰죄의 적용이 가능하다는 데는 거의 일치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 사전 수뢰죄란 <공무원(이 경우 대통령)이 될 자가 그 담당할 직무에 관하여 청탁을 받고 뇌물을 받은 죄>이다.
  
  수뢰액이 5천만원 이상이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적용을 받아 무기 징역에서 징역10년 이상의 형을 받게 되어 있다. 이 경우의 공소시효는 10년이다. 대선 잔금을 실명제하에서 가명이나 차명으로 관리하고 있다면 도덕적으로는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되어 있으나 현행 법률로는 처벌 할 수 없다. 93년 8월13일에 제정된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 보장에 관한 긴급재정경제명령의 벌칙에는 차명, 가명 예금자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다. 과징금만 예금 액수의 60%까지 부과할 수 있다.
  
  우리 헌법은 현직 대통령에 대한 기소를 그가 내란이나 외환에 관한 죄를 저지른 경우로 제한하고 있고 그 이외 범죄에 대해서는 기소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대선 자금 문제로 김영삼 대통령이 현직에 있을 때 기소할 수는 없다. 김영삼 대통령은 한국의 정치 풍토를 근본적으로 개혁할 수 있는 두 번의 기회를 놓쳤다. 취임하자마자 과거를 일체 불문에 부치는 대신 앞으로 잘 해보자면서 지킬 수 있는 법과 돈 안드는 정치 제도를 만들 수 있었다. 95년 10월에 노태우 비자금이 폭로되었을 때도 자신의 대선 자금 부분을 고백하고 정치 제도 개혁으로 물꼬를 틀 수 있었다.
  
  이 두 번의 기회를 맞아 김영삼 대통령은 '나는 대한민국에 서 가장 깨끗한 정치인이고 너희들은 모두 썩은 자들이다'는 식의 태도를 취하고 정적의 과거를 들추어내어 약점을 잡고 자신의 위기를 타개 해갔다. 한국에서는 직선제 대통령 선거를 통해서 당선되는 사람이 자 동적으로 가장 부패한 정치인이 되게끔 구조화되어 있다. 이 상식을 권력 등으로 은폐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어 이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이제 한국의 법치와 김영삼 권력은 제로섬(Zero-sum)의 대치를 하고 있다. 법치가 살려면 권력이 죽어야하고, 권력이 살려면 법치가 죽어야 한다 .이 사이에서 타협은 없다. <조갑제 출판국 부국장>
  
출처 : 월조
[ 2003-07-04, 14:0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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