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전 총리의 세기말 좌담 - 강영훈,남덕우,노재봉(3)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기업 구조개혁 너무 서두르면 부작용
  
  사회 : 21세기를 시작하면서 우리가 직면한 과제는, IMF 체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하는 당장의 문제와, 통일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하는 두 가지인 것 같습니다. 현재의 IMF 극복 방식은 적절하다고 보십니까.
  
  南悳祐 : 정부의 경제 관리 방식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이것을 농구에 비교를 했는지, 레만 교수는 감독형, 코치형, 레퍼리형으로 나누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대개 이 3단계를 거친다고 봅니다.
  
  감독형은 정부가 경제를 장악해 主(주)역할을 합니다. 유치산업을 보호하고, 무역에서도 보호주의를 합니다. 반면 政經(정경) 유착이 있고, 부패가 많아집니다. 우리가 겪었던 것과 비슷합니다. 이 단계를 지나면 코치형인데, 정부가 한 발짝 물러서요. 그러나 필요한 부문에 지원을 해주고, 또 경우에 따라 산업 보호도 해 줍니다. 여기도 역시 정치와 경제가 하나가 되고, 아직 부정 부패도 남아 笭윱求? 일본이 대표적입니다. 레퍼리형은 정부는 심판자의 역할만 합니다. 경제에는 간섭하지 않고, 게임의 룰만 정해 줍니다. 그 룰을 지키지 않으면 처벌을 합니다. 이 단계에서는 산업자본이 금융자본과 분리되고, 모든 경영의 투명성이 높습니다. 부정 부패도 적지요. 대개 앵글로 색슨계인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우리는 과거 감독형에서 1994년부터 코치형 단계로 들어섰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면 과제는 레퍼리형으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IMF사태에서 비교적 빨리 회복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구조조정의 목적에 대해서도 국민적 합의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구조개혁의 방법과 남아 있는 과제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異見(이견)이 있습니다.
  
  우선 방법에 있어 정부가 너무 서두는 것 같습니다. 단시일 내에 뭔가를 이루려는 정치적 목적으로 비현실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때문에 필요 이상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가령 금융기관에 대해 불과 1∼2년 내에 BIS 자본비율을 현재의 4%에서 최소한 8%까지 높이라고 하고, 대기업에 대해서는 금년 말까지 부채 비율을 일률적으로 2백%까지 낮추라고 요구하고 있는데 이는 비현실적입니다. 나도 세계은행 강연과 세미나 등에서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비현실적인 조건을 강요하면 기업들은 편법을 쓰게 됩니다.
  
  실제로 株價(주가) 조작 등이 있었지 않습니까. 또 장부상의 숫자만으로 부실 낙인을 찍어 버리면 그 기업은 더욱 부실화해서 이를 처리하기 위한 금융기관과 정부의 부담이 더욱 커집니다. 목적을 분명히 하고 목적 달성에 필요한 제도적 장치와 집행을 감시하는 체제를 만들어 놓으면 기업들이 필연코 그에 적응하게 될 것입니다. 꼭 2년 안에 해야 한다, 3년 안에 해야 한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현실 무시한 원칙 내세우다 일관성 잃어
  
  姜英勳 : 지금 南총리 말씀을 들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구조조정을 빨리 하면 사람들의 의식이 따라 변할 것이냐? 소위 唯物史觀(유물사관)으로 우리가 나갈 수 있느냐? 아니면 意識(의식) 구조를 알고 바꾸면, 그에 따라 구조가 바뀌고 살아나는 唯心史觀(유심사관)적으로 나갈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구조조정과 의식개혁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가 현실의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南悳祐 : 나 자신의 경험으로 보면, 기업인은 죽여도 기업은 살린다는 정신으로 대책을 강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자면 대출금의 출자전환이 불가피합니다. 출자전환을 하면 경영권이 은행으로 넘어가는데 은행은 채권 확보에 신경을 쓸 뿐 부실기업을 정상화할 경영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부실기업을 은행에 맡기면 더욱 부실화하는 것이 상례였습니다. 때문에 나는 금융단, 세계은행, 정부 등이 출자하는 가칭 「기업갱생공사」라는 持株(지주)회사를 세워 부실기업을 매입해 국내외 전문 경영인들을 선발하여 구조조정을 하게 하고, 그 조건하에 출자전환을 하라고 제안한 일이 있습니다. 은행이 그 많은 부실기업을 끌어 안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걱정입니다.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금융과 기업의 자율화, 규제 축소, 시장원리 존중 등 좋은 말들을 많이 합니다만 정부 당국자는 원칙과 현실 사이를 왔다 갔다 하게 마련입니다. 삼성자동차 문제도 결국 부산 시민들의 반발이나 노사의 반발 등 여러 가지 정치적 현실에 부닥친단 말입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현실을 감안한 처방을 쓸 것이지 왜 獨也靑靑(독야청청) 원칙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가 현실에 부닥쳐 이탈하는가 말입니다. 그러니까 정부 정책이 일관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하여튼 기업의 구조조정을 빨리 매듭짓고 정작 21세기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궁리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나라를 투자 왕국으로 만들겠다고 했는데 과연 어느정도 그 목표에 접근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경제적 측면은 두고라도 날로 심해지는 환경오염, 범죄 증가, 노사갈등, 열악한 교통질서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너무 많습니다.
  
  이것을 체계적으로 해결하는 메커니즘이 있어야 합니다. 朴대통령은 그것을 새마을 운동으로 했습니다. 뭔가 그런 메커니즘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지식 사회다, 과학기술 사회다 하면 정말로 그렇게 되기 위해서 우리가 체계적으로 접근하고 있느냐가 문제인데, 그쪽 분야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지금의 교육상태도 아주 어지럽고…. 우리가 올바른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21세기에는 정말 인류가 위기에 처한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첫째로 식량, 토지의 문제로, 지금 토지가 인간을 수용할 수 있는 한계를 넘었습니다. 식량 위기가 온다는 것이지요. 또 물의 문제가 중요합니다. 벌써 用水(용수)가 부족해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 같은 곳은 문제가 터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또 환경보존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서 21세기는 중대한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겁니다.
  
  그럼 우리는 어떠한 포석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대체적인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데 요즘 정부가 너무 바빠서인지…. 이런 진짜 중요한 문제에 들러 붙어야 합니다.
  
  사회 경제개혁은 정치가 한다고 볼 때, 그러면 정치는 누가 개혁을 하느냐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과거에는 軍이 정치를 뒤집어 놓기도 했지만 이제 그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고, 결국 시민, 국민들이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국민들의 수준이 높아지기는 어렵습니다. 국민의 의식 수준에 영향을 주는 것은 교육과 언론 등인데, 그것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기다리기만 할 수도 없고…. 지금 시점에서 가장 현명한, 효율적인 방법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21세기 국가像은 강하고, 살기 좋고, 통일된 나라
  
  姜英勳 : 지도자들이 모범이 돼야 합니다.
  
  南悳祐 : 지금 정보화 시대라고 하는데, 정보화와 의식개혁을 연결시키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요즘 NGO(비정부기구)가 많이 생겨나는데, 이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국회 감시하러 갔다가 쫓겨 나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런 것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요즘 인터넷을 아이들이 다 잡고 있는데, 정부가 인터넷을 잡는 것도 빠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盧在鳳 : 지금 의식이라고 하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어떤 체제이든 그 체제에 맞는 의식이 결합돼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그것이 잘 되지 않고 있는 게 문제입니다. 우리에게는 立憲的(입헌적) 자유민주주의 체제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제대로 되려면 무엇보다 경쟁이 제대로 돼야 합니다. 민주주의 체제는 경제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정치적인 면에서도 경쟁을 전제로 합니다. 경쟁의 룰이 제대로 확립돼야 하고, 책임을 지는 경영, 절제있는 주장, 근검성, 이런 것들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만족할 수 있는, 만족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像(상)이 무엇이냐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무한정하게, 세계적인 제국으로 나갈 수 없는 것도 사실이고, 어떤 像을 그려야 하는 것인가? 다른 나라가 한다고 무조건 우리도 따라가야 할 것인가? 물질적으로는 어느 정도가 우리가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인가? 이런 문제들에 대해 像의 설정이 전혀 없습니다. 이것이 문제라고 봅니다. 그것이 있고 난 뒤에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南悳祐 : 그것은 결국 21세기 국가 목표가 무엇이냐의 문제가 됩니다. 그 像이 뭐냐? 나는 세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강한 나라, 살기 좋은 나라, 통일된 나라 입니다. 강한 나라의 국력에는 知力(지력), 도덕력, 경제력, 국방력이 포함되는데 금세기 전반의 쓰라린 경험이 이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살기 좋은 나라에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합니다. 돌이켜보면 1870∼1940년대의 국가주의는 영토의 확장을 목표로 하였고, 2차대전 이후 약 반세기 동안의 국가 목표는 경제력 혹은 산업력으로 다른 나라를 지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21세기는 세계화의 시대요, 「국가 후퇴의 시기」라고 학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국가목표는 침략적인 것(aggressiveness)이 아니라 국가의 매력성(attractiveness)을 높이는 것이라는 겁니다.
  
  다국적 기업들은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서로 경쟁할 것이고, 정부는 투자를 비롯한 성장요인을 국내로 유치하기 위해 매력적인 나라를 만드는 데 서로 경쟁하게 될 것입니다. 살기좋은 나라는 곧 매력적인 나라입니다. 매력적인 나라는 생활, 知力(지력), 문화, 도덕 수준이 높고 환경이 깨끗하고 법과 정의가 존중되는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북통일에 관하여는 북한을 국제사회로 이끌어 내 점진적 개방과 내부 개혁을 유도하되, 감상적이고 안이한 통일론은 경계해야 합니다.
  
   세계화 시대에도 기본은 민족국가가 돼야
  
  姜英勳 : 거기에 하나 덧붙였으면 좋겠어요. 「살기 좋은 나라」이되 「더불어」 살기 좋은 나라였으면 좋겠어요. 우리 나라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더불어 살기 좋은 나라입니다. 정보화 시대, 세계화의 시대에 국경선 개념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국가 주권의 성격도 변하고 있습니다. 환경에서의 기후의 변화, 지구 온난화 등의 문제는 단독 국가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좋든 싫든 국가간에 함께 해야 해요. 이제 인류 사회가 더불어 살고 번영할 수 있느냐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데 우리도 자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盧在鳳 : 이는 결국 超(초)국가적 차원 또는 汎(범)국가적 차원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超국가적 차원과 汎국가적 차원이 왔다고 해도, 아직까지는 외교나 국가정책의 기본단위는 국가 위주입니다. 문제는 EU(유럽연합)가 마스트리히트 조약으로 등장하면서 민족국가의 단계를 넘어가는 수준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유럽보다 민족국가 건설이 3백년 늦었고, 분단으로 인해 아직 완결된 단계라고 할 수 없는데, 유럽은 이미 이 단계를 떠나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사적으로 보면 우리는 이만큼 늦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超국가적, 汎국가적 차원도 따라가야 하지만, 우선은 민족국가를 완성하는 데 주력해야 합니다. 언젠가는 남한 중심의 통일이 된다고 전제하고, 北을 흡수해도 아무런 충격을 받지 않을 정도의 國力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우선적인 미래의 像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국력은 경제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국력의 가장 밑에는 철학이 들어서야 하고, 그 위에 차례로 과학,기술,경제,군사력,행정력이 들어서야 합니다. 이런 것이 총체적으로 들어서지 않고는 국력이 신장이 안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느 것은 아주 죽어 있고 엉망이에요. 만일 우리가 이런 걸 제대로 갖추지 못한다면 역사를 다시 거꾸로 가야 합니다. IMF 사태가 상당히 극복되긴 했지만 후진국으로 안 간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습니까? 지금 통일이 된다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그런 역량이 있습니까? 그래서, 거기에 총력을 다하는 것이 우리의 국제적 위상을 확보하는 길이고, 우리의 역사적인 숙제에 대한 바른 접근이 아닌가 생각 합니다.
  
  사회 : 자연스레 북한 문제로 넘어왔습니다. 북한은 1995년부터 식량 배급이 중단됐습니다. 배급을 포기한 것은 사실상 사회주의를 포기한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실제로 주민들은 생필품의 80% 정도를 시장을 통해 구입하고 있습니다.또 지난 5년 사이 많으면 3백만, 적어도 1백만명 이상이 飢餓(기아)로 사망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 역사상 최악의 慘事(참사)이고, 전쟁이 북한에서 한번 더 일어난 것과 같은 피해입니다. 그런데도 남한의 지식인, 정치인들은 무관심한듯 합니다. 우리 국회가 온갖 청문회를 하면서도 탈북자 문제에 대해서는 청문회 한 번 한 적이 없습니다.
  
  탈북자들이 큰 위험 없이 두만강을 넘고 있는 것을 보면 북한의 뒷문이 열린 것 아닌가 싶습니다. 북한 내에 기독교도 번져가는 양상입니다. 개방을 거부하면서 외국 원조로 식량문제 등을 해결하다 보니 대외 의존도도 높아가고 있습니다.
  
  식량배급이 끊어지니까 주민들이 식량을 구하러 이동하게 되고, 당국도 이를 막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보도 많이 유통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북한은 붕괴의 과정, 또는 본질적인 변화를 겪고 있는 듯합니다. 정책의 변화가 아니라 밑바닥부터 바뀌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남한에서는 통일을 하더라도 가장 안전한 방향으로, 또 통일비용은 우리가 부담하지 않겠다는 쪽으로 통일론이 흘러가고 있는 듯합니다. 지금이 통일의 결정적 기회라고 생각하는 견해와, 이 시기를 그냥 넘기자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21세기 남북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자유민주체제 발전이 평화통일의 첩경
  
  南悳祐 : 북한의 현 상황은 공산독재 정권의 필연적 귀결이지요. 역사의 법칙입니다. 우리는 자꾸 북한을 끌어내야 합니다. 開放(개방)쪽으로 유도를 해야지요. 외부에서 북한에 들어가고, 또 나오게 해야 합니다. 그런 과정에서도 돌발 사태가 없다고 가정할 수가 없어요.
  
  북한이 미사일을 가지고 어떻게 한다는 식으로 나오니 이쪽에서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충분히 대비하고 안보 태세에 조금도 허점을 보여서는 안됩니다. 미국이나 일본이 북한에 들어가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그 사람들이 접촉을 하게 되고, 접촉을 하면 바깥 세상을 알게 되고, 그러면 생각도 바뀌어 내부 개혁을 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姜英勳 : 4대 强國(강국)의 이해관계는 1백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학회 등에서 중국 사람들에게 우리 통일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면 현 상태로 있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설사 金正日(김정일) 정권이 무너지더라도 과연 우리가 원하는 흡수통일이 가능하겠느냐는 것은 별도 문제입니다. 중국이나 일본, 러시아가 우리의 통일을 흔쾌히 지원할 것인지, 또 미국도 과거에는 대한민국의 정책 노선에 따라 지원하는 입장이었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달라진 것으로 보입니다. 4대 강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국제 상황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부적으로는 우리가 훌륭한 자유민주주의 사회를 잘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평화통일의 첩경이라고 생각합니다. 햇볕 정책을 쓰되 저 사람들이 무력 도발을 하면 단호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현재는 북한의 개방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밖에 나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현정부는 對北(대북) 정책 3원칙 중 하나로 흡수통일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때문에 국민들 사이에는 적잖은 인식의 혼란이 생겼습니다. 우리가 통일을 한다면 자유민주주의 방식의 통일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우리 정부의 최종 지향점이 과연 통일인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대통령까지 나서 흡수통일을 하겠다는 말을 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흡수통일을 안 하겠다는 말도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을 의식하다가 국민을 혼란에 빠뜨리는 결과가 됐습니다.
  
   北韓은 1990년부터 흡수통일 위기감 느껴
  
  盧在鳳 : 흡수통일이라는 말을 남북 관계에서 처음 접한 것은 1990년, 청와대 비서실장 때였습니다. 그때 소련의 세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해 고르바초프의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너희식대로 계속 가면 동유럽처럼 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동유럽이 난리가 날 때였습니다. 평양과 세바르드나제 간의 메모랜덤(비망록)은 서로 발표하지 않기로 했는데 그가 평양을 떠나자말자 평양이 발표를 해버렸습니다. 거기에 뭐가 나오느냐 하면, 우리는 흡수통일을 절대 반대한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걸 보고, 아하, 저쪽이 상당히 위급한 상황이라고 인식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너희가 계속 고집을 피우면 남쪽으로 흡수시킬 수도 있다는, 소련의 메시지가 들어갔던 것이지요. 저도 그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전까지는 하나의 조선이니 해서 북쪽이 이쪽을 들이삼킬 기세였지 않습니까.
  
  金大中 대통령이 흡수통일을 반대한다는 뉘앙스는 金대통령의 3단계 통일론에서 본다면 평화공존과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평화공존이란 무엇이냐? 레닌이 이 말을 잠깐 쓴 적이 있고 흐루시초프가 사용했는데, 이는 현상 유지를 뜻합니다. 궁극적 목표는 다른 곳에 있지만 우선은 현상을 유지하자는 것이지요. 지금 우리가 평화공존이라고 해서 흡수통일을 안 한다고 할 때, 이것이 현상유지를 위한 것인지 아닌지 확실하지가 않습니다. 현상유지도 평화는 평화입니다. 그러나 이는 분단의 長期化(장기화)라는 이야기도 됩니다.
  
  南悳祐 :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북한의 개방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목표만은 뚜렷해야지요. 결국 체제의 통일이고 자유민주주의로의 통일입니다. 이를 국가 원수가 드러내놓고 말을 못하면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한 걸음 더 나가서 뭐를 안 한다고 해서 혼란이 온 겁니다. 그러나 실제로 하는 것은 비슷해요.
  
  盧在鳳 : 또 하나, 북한이 개방을 한다고 해서 통일이 될 것이냐?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과거 우리 나라에서도 경제가 발달하고, 소득이 증가하면 민주주의가 자동으로 온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그럴 수가 없습니다. 소련이 세계 2위의 강국으로 행세할 때도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다만 경제가 발달하고 소득이 높아지면서 사회가 다양화되면 통제하기 어렵다는 문제는 나오지만 그것이 바로 민주화로 가는 것은 아닙니다. 즉 하나의 조건은 되지만, 북한이 개방한다고 해서 통일로 간다고 단순하게 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통일이란 궁극적으로 체제의 통일입니다.
  
  소련도 스탈린이 죽고 나서 문화가 바뀌고 집단지배 통치로 바뀌고 했지만, 체제 자체가 바뀐 것은 아니었습니다. 결국 바뀐 것은 내부 와해에 의해서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무엇이냐? 통일은 결국 전쟁이냐, 내부 와해냐 하는 것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체제가 다른데 협상으로 통일되는 것이 아닙니다. 金日成(김일성)이 죽으면 북한이 바뀔 줄 알았지요? 그런데 뭐가 바뀌었어요? 사람만 바뀌었지, 체제는 안 바뀌었습니다. 내부 와해가 되면 국제적으로도 그걸 저지하기 굉장히 힘듭니다. 전쟁이라는 것은 생각할 수도없고, 국제적으로 난리가 날 상황이 되지요.
  
   자유민주주의 체제통일임을 분명히 해야
  
  이렇게 볼 때, 통일은 체제의 통일이 되지 않고는 있을 수 없다는 것에 대한 확실한 우리 내부의 합의와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같은 민족이라고 해서 통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거예요. 그래서 우리의 체제를 월등히 강화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쪽의 체제 자체가 바뀌도록 해야 합니다. 만일 저쪽에 金正日이 없어지면 체제가 무너질 것이냐? 나는 그렇게 낙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쪽 체제를 변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현재 우리가 가는 방향은 오히려 저쪽 체제를 유지 또는 강화시켜 주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거꾸로 가는 거지요.
  
  姜英勳 : 일부 진보주의 입장의 사람들이 공산주의도 자유주의도 아닌 제3의 사상-체제가 나와야 하지 않느냐는 이야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지도층에서 유의해야 할 것은 우리는 어디까지나 자유민주주의 체제 안에서 평화적으로 통일이 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공산주의 赤化혁명은 전쟁을 이야기하지만, 전쟁에서 직접 싸우지 않아도 남한이 붕괴될 수 있다는 것이 소위 민족해방전술이요, 통일전술입니다. 자기들에게 동조하는 사람을 많이 만들어서 어떤 단계에 가서 민주주의적으로 투표를 해도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체제 통합은 자유민주주의에 의한 것임을 확실히 해야 합니다. 제3의 체제로 통일한다는 발상은 문제가 많습니다.
  
  盧在鳳 : 과거 통일이라면 어떤 통일도 좋다는 풍조가 한때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우리 현대사를 권력사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무의식적으로 깔려 있습니다. 이쪽도 민주주의가 아닌데, 사람 사는 저쪽 동네도 大同小異(대동소이)하겠지, 그러면 이러나 저러나 그냥 통일이 되면 되는 것 아니냐, 이런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깔려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대한민국이 민주화를 하는 데 상당한 고초를 겪고 지금도 뿌리를 내리는 과정에 있지만, 대한민국에 권위주의는 있었지만, 전체주의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착각하고 있어요. 북쪽은 전체주의이지만, 한국에는 전체주의는 있어 본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통일될 경우 우리가 어떤 삶의 방식을 가질 것인가라는 궁극적인 문제입니다.
  
  사회 : 21세기 과제로 국제적인 페러다임은 정보화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고, 국내적인 페러다임은 정보화이면서도 동시에 민족 통일국가 건설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정보화 혁명이 전세계적으로 번지고 있고, 유럽은 脫민족국가화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추세인데, 우리 나라는 정보화가 상당히 진전되면서 동시에 통일 민족국가를 완성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로서는 국가와 國益(국익), 국민 전체의 복지를 중심으로 하고 세계 시민 의식을 갖추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姜英勳 : 세계화라는 말들을 많이 하지만, 그 기초 요소는 어디까지나 국가라고 생각합니다. 세계 정부가 들어서고 민족국가가 없어지는 것은 현재로서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민족국가를 떠나 코스모폴리탄적인 것만으로 세계화가 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민족국가로서의 기틀을 튼튼히 해서 그 안에서 세계화에 합당한 정치문화를 배양해 가야 합니다. 그게 안되면 세계화에 우리가 기여할 수도 없습니다.
  
   경제개발 때의 비장한 노력 다시 해야
  
  南悳祐 : 세계화와 관련해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할 것은 우리 나라 민족의식과 문화입니다. 한국같이 문화적으로 단일한 나라가 없을 거예요. 이것이 세계화와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느냐? 세계화 되더라도 한 나라의 문화적 특징은 오히려 더 중시된다고 봐요. 우리의 여러 가지 문화적 특징들, 예를 들어 孝(효)와 같은 보편적 가치에 한국적 특징이 있단 말예요. 이런 보편적 특징을 살려나가는 운동을 했으면 합니다.
  
  盧在鳳 : 세계화라고 하는 것은 국가적인 단위에서 모든 것이 과거보다 훨씬 다양화돼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비유를 하자면 과거 계절마다 갈아입던 옷을 이제 거의 매주 갈아 입을 수 있도록 다양하게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가 2대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역사에서 없던 일이에요. 이 세대는 나면서부터 텔레비전과 자동차가 있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면을 들여다보면 다음 발전을 위한 기본 조건들을 새롭게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에 와 있습니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朴대통령 시절에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발전시켰던 노력, 이것과 비등하거나 그 이상의 노력을 지금 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의 전환이 안 되는 상황에 놓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시적으로 보이는 것만 보고 만족하다가는 큰일난다는 얘기죠. 과거에 우리가 산업 사회로 올 때 이상의 각오로 지금 노력하지 않으면 안되고, 그걸 위해서 특히 지도층, 정치 계층이 인식을 빨리 해줘야 한다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사회 : 학식과 경륜을 겸비하신 세 분께서 장시간 좋은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 독자들이 이 좌담을 통해서 과거를 돌아본 뒤 더 자신 있게, 그리고 정확하게 미래를 내다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 월조
[ 2003-07-04, 14:5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코나스넷  |  리버티헤럴드  |  뉴데일리  |  뉴스파인더  |  뉴포커스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