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필은 인격을 죽인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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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오보라고 하지만 그 유형을 따져 보면 위에 소개한 사례들처럼, 간단치가 않다. 오보의 참뜻은 착오에 기인한 잘못된 보도다,. 기자의 착각이나 확인 소홀로 일어나는 보도인데 여기에는 고의성이 없다. 사례4의 '여고생 자살기도', 사례8의 '직업 무당·30세', 사례9의 '분신자살' 기사들과 '80년 봄의 '호랑이 촬영 성공' 기사가 순수한 의미의 오보라고 하기보다는 날조, 또는 허보(虛報)라고 부르는 게 낫겠다. 사례5의 '석유난로 중독사', 사례 7의
  '화재 피해액 창작' 기사가 이 범주에 들겠다.
  
  날조와 오보 사이에는 애매한 유형의 엉터리기사가 있다. 과장. 오보나 날조처럼 전부가 근거 없는 기사는 아니지만 속단, 성급한 추리, 무식, 기사를 키우려는 욕심 등으로 사소한 사실을 터무니없이 부풀리는 태도가 이것이다. 사례6의 '진흥왕 순수비 도괴 직전', 요즘도 자주 나오는 '천년 묵은 백사 잡아' 따위의 기사가 대표적인 과장이다.
  
  왜곡은 객관적 사실을 재료로 이용하여 자신의 듯 하는 방향으로 기사를 몰고 가는 태도이다. 사실을 형성하는 여러 요소들 가운데 하나만 부각시켜 그것이 진실이며 전체인 것처럼 쓰는 편향된 자세다. '장티푸스 부작용의 가능성'만 보여 준 기사, 수사 책임자의 해명을 무시하고 '범인 검거'로만 몰고 간 사례10의 기사, '…당국은 단속을 외면, 시민의 의혹을 사고 있다'는 식으로 국민과 시민의 이름을 동원하여(의혹을 가진 것은 기자 자신일 뿐인 경우가 더 많다) 자신의 의도를 위장시키는 기사들이 '왜곡'의 장르에 든다. 이런 왜곡이 엉터리 기사의 대종을 이루며 가려내기도 가장 힘들다. 과장과 왜곡엔 기자의 고의성이 깔려 있다는 점에서 오보보다는 날조에 더 가깝다고 하겠다.
  
  오보, 과장, 왜곡, 날조 등 네 가지로 엉터리 기사를 대충 분류할 수는 있지만 장티푸스 접종 기사처럼 과장과 왜곡이 뒤범벅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마감시간과 경쟁은 기자의 생활을 지배하는 2대 조건이다. 이것은 또한 빛나는 기사와 엉터리 기사를 만드는 토양이 되고 있다. 가지의 빛과 그림자는 이 두 가지 채광 조건이 빚어내는 형상이다. 시간 및 인간과 끊임없이 싸워야 하는 이 특수 직업인은 하루에 한 번씩 재판을 받는다. 정오쯤 신문 가판이 쏟아져 나올 때가 그런 시간이다. 잉크 냄새 물씬 나는 상대지 신문들을 하나씩 펴 갈 때마다 가슴은 뛰고 입 속이 마른다.
  
  '연탄 가스 중독 위장한 모살(謀殺)로 판명'-이런 특종이 경쟁 지에 실렸다고 하자. 허벅지에서 기운이 싹 빠지는 것 같고 정강이가 후들후들 떨리면서 화창한 날씨가 컴컴해 온다. 특종 기사의 커트 제목은 정말 대문짝 만하게 튀어 오른다. 데스크의 '참패'를 보고하는 목소리는 떨리고 입맛만 쩍쩍 다시는 부장을 볼 면목도 없다. 특종한 그 기자를 출입처에서 대하는 건 고역 중의 고역이다. 의기양양해진 그 기자 앞에서 주눅이 든 모습을 보이기 싫어 억지 웃음을 지으며 남자답게 특종 축하 악수라도 건네야 하니까. 출입처 직원들의 눈초리도 모두 자신을 비웃는 것 같다. 집에 돌아오면 아내의 걱정스런 위로, 그것이 또 속을 뒤집어 놓는다.
  
  이런 낙종의 쇼크로 외근 기자를 그만두는 사람도 있다. 기자직을 물러난 뒤까지도 회상하기도 싫은 항목으로 접어둔다. 기자는 하루하루의 경쟁 결과가 신문지라는 점수 게시판에 공개되는 희귀한 직종이다. '월급장이'라기보다는 운동 선수에 더 가깝다. 특종의 영광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낙종의 우울을 면하기 위해서, 강박관념에 몰리는 사람처럼 기사를 찾아 헤매고 다니는 것이 기자의 전형이다. 기사에 대한 집념과 강박 관념, 시간과 사람에 쫓기는 초조, 다급함은 현실을 냉정하게, 종합적으로 따져볼 여유를 주지 않는다. 마감 시간과 경쟁, 이것은 모든 오보, 날조, 왜곡, 과장에서 공통 분모가 되는 요인이다. 이 공통 분모를 바탕에 깔아 놓고서 엉터리 기사의 원인을 각론적으로 따져 보자.
  
  단정과 외곬을 강요하는 '기사문장론'이 과장과 왜곡을 부른다
  
  수습기자들은 '역삼각형으로 기사를 써라'는 가르침부터 받는다. '사건의 핵심은 첫 문장에 요약하여 구겨 넣어야 한다'는 주의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다. 바쁜 편집 기자들은 기사전체를 읽지 않아도 제목을 뽑을 수 있는, 중요부분이 앞으로 몰린 기사를 원한다. 취재 기자들은 편집 기자가 자기 기사를 크게 취급하도록 어떻게 하면 리드를 멋지게, 충격적으로, 박력 있게 쓸 것인가를 연구한다. 문제는 그렇게 간단명료하게 재단할 수 있는 사건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는 데 있다.
  
  장티푸스 주사 사건을 다룬 '중앙일보'의 제목은 '장티푸스 주사 맞고 쌍둥이 형제 숨져' 구토 등 부작용으로 병원 가던 도중' 이었다. '구토 등'을 제외한 전부가 기사 첫 문장에서 뽑혀졌다. 첫 문장과 제목은 독자들의 사건 인식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이 부분에서 강력한 첫인상을 갖게 된 독자들은 이 기사의 끝에 붙은 대목-'경찰은...김군 형제 2명만 숨졌고 부작용을 일으킨 시간이 예방 접종 후 다섯 시간 이상 지난 다음이어서 연탄가스 중독 등 다른 원인일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사체 부검을…의뢰했다'―을 무시했을 것이다.
  
  기자가 '연탄가스중독 가능성' 대목을 뒤에 처박은 것은 '장티푸스 예방 접종 부작용'이 훨씬 더 큰 뉴스 가치를 갖고 있다고 판단한 때문일 것이다. '쌍동이가 아침에 입에 거품을 문 채 중태에 빠져 있는 것이 발견됐다'는 대목으로 미루어 냉정하게 생각하면 연탄가스 중독일 가능성이 더 높았을 것 같은 데도 기사를 키울 수 있는 값어치에선 기껏해야 1단 짜리인 '연탄가스 중독사'보다 '부작용' 쪽이 훨씬 세었다는 얘기다.
  
  같은 사건 기사에서 '조선일보'는 리드문장을 이렇게 구성했다. '…등 쌍둥이 형제가 나란히 누운 채 숨져 있는 것을 어머니 윤씨가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가족들은 사인을…장티푸스 부작용 같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같이 주사를 맞은 2천여 명의 학생들에겐 아무런 이상이 없어 경찰은 부작용과 연탄가스 중독 등 두 갈래로 조사하고 있다.' 이 기사는 사인이 애매한 상황인데도 첫 문장에 사인을 단정하여 무리하게 '구겨 넣은' '중앙일보'와는 달리 '죽었다'는 객관적 사실을 먼저 제시하고 사인은 '애매하다'고 당시 상황을 정직하게 보여주고 있다. 부모의 주장에도 휘말려들지 않았다. '중앙일보'가 기사를 주관적으로 '몰고 갔다'면 '조선일보'는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기자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던 것이다.
  
  지난 3월26일 '서울신문' 1면 머리기사 제목은 '原三國時代 이후 空白期가 밝혀졌다'고 외치고 있었다. 내용인즉 경주 박물관이 발굴한 구정동 고분군에선 단갑, 철창 등 유물이 나왔는데 이것들이 서기 2백년∼3백50년 사이 유물이기 때문에 원삼국 시대와 신라 시대를 이어 주는 귀중한 자료라는 것이다. 그런데 리드 문장에선 '신라의 역사가 깊은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느니 '…공백기가 차츰 조명되고 있다'고 뜻이 커지다가 제목에선 '공백기가 밝혀졌다'고 단정적인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고분군 몇 곳의 발굴로 역사의 공백기가 채워질 만큼 역사 고고학이 수월한 학문인가. 역삼각형의 꼭대기로 올라갈수록 메시지는 점점 기사 내용과 멀어진 것이다.
  
  버스 안내양들이 몸수색에 항의, 기숙사에서 뛰쳐나온 사건의 경우 리드 문장에선 '…기숙사를 집단 탈출하여'로 쓰고 본문에선 '뛰쳐나와'로 적는 기자들이 많았다. '집단 탈출'이란 표현이 박력이 있고 자극적이긴 하지만 기숙사가 감옥이 아닌 바에야 '탈출'이 어디 가당한 표현인가. 1명이 죽고 49명이 다친 교통사고도 리드나 제목에선 '50명 사상'이다. 그래야 기사가 커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연합통신' 사회부 서형래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과장이나 왜곡조도를 줄이기 위해선 기사 문장의 원칙부터 재검토되어야 한다. 파출소에 붙들려 온 취객이 경찰관에게 달려들어 시비를 벌이다가 벽에 머리를 부딪쳐 죽었다고 하자. 십중팔구 이 사건의 리드 문장은 '경찰관이 시민을 폭행, 숨지게 했다'로 나갈 것이다. 뒤에 상황 설명이 나오겠지만 이 첫 문장이 복잡한 사연을 거두절미, 왜곡하는 결과를 빚고 만다. 더구나 우리나라 신문들은 사회면에 기사를 많이 넣는다. 따라서 기사가 대체로 짧고 어떤 건 허리 밑이 잘려 나갈 때도 있다. 이런 단순화도 사실의 왜곡을 부르는 원인이 된다. 사건에 다라 기사가 구성되어야지 기사의 틀에 사건이 구겨 넣어져선 곤란하다' 서 기자의 지적이 옳다는 증거가 또 있다.
  
  사례14
  
  '조선일보'의 지난 4월30일치 1면 신문의 첫 문장:부산 지검은…김현장, 문부식, 김은숙 등 10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현주 건조물 방화 치사상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위반 등 혐의로, 최기식 신부, 문길환, 김영애, 허진수, 김화석 등 5명을 국가안보법, 계엄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이 기사를 읽은 최신부의 친지들은 최신부가 계엄법 위반혐의까지 받고 있는데 놀랐을 게다. 김화석 씨와 허진수 씨의 가족은 허씨와 김씨에게 보안법 혐의까지 덧붙여진 데 기겁을 했을 것이다. 몇 십 년 뒤 이 기사를 자료로 하여 글을 쓰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십중팔구 큰 오류를 범할 것이다.
  
  이 기사의 오류는 구속 기소된 열 여섯 명의 죄명이 각기 다른데도 리드 문장에 억지로 소화시키려 한 데서 빚어졌다. '…등 5명을 국가 보안법, 계엄법 위반 등 혐의로'라고 했는데 다섯 명이 모두 보안법과 계엄법을 위반한 것이 아니고 보안법만 위반한 사람도 있고 계엄법만 위반한 사람도 있다. '…보안법이나 계엄법 위반 등 혐의로'라고 했으면 오보가 아니지만 한국 기자들은 '…이나…이나'와 같은 표현을 스트레이트 기사 문장에선 기피한다. 애매하고 박력이 없기 때문이다. 복잡한 것을 억지로 간단하게 만들어 내고 애매한 것을 무리하게 명료하도록 만들면 정확성이 희생된다.
  
  같은 기사를 '동아일보'만은 정확하게 다루었다. 기사본문에선 죄명을 안 넣고 기사 끝에다가 적용 법규란을 만들어 개인별로 모두 기록한 것이다. 형사 사건 기사에서 적용 법규는 알맹이다. 이런 알맹이까지도 예사로 오보하도록 만드는 것이 한국 기사 문장의 경직된 틀인 것이다.
  
  제목은 리드문장을 다시 축약한 것이다. 자칫하면 왜곡의 왜곡, 과장의 과장으로 증폭되기 쉽다. '정순철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명 수배했다'는 리드는 '주범 정순철 추적망 압축'으로 왜곡되고('서울신문'3월20일)'수은중독으로 확실시된다'는 과장된 리드는 '단양 고씨 가족 수은 중독 판명'('국제신보' '77년3월31일)이라는 제목에서 또 다시 과장되고 있다.
  
  마감 시간에 쫓겨 생기는 오보, 고유명사와 숫자가 잘 틀린다.
  
  의령 우순경 난동사건의 피살자 숫자가 통신, 신문, 방송에서 시간마다 39명 52명, 62명, 73명으로 달라졌다가 55명으로 정착된 것은 기억에 새롭다. 일본 신문들까지도 한국 언론의 기사를 베끼다가 '73명 무차별 사살'('독매신문')이란 제목을 뽑아 오보의 국제적 전파를 초래했다. 열 명이 죽은 서울 지하철 공사장 붕괴 사고의 제1보도 '1명 사망, 셋 매몰된 듯'('한국일보' 4월9일)으로 나갔다.
  
  마감 시간에 촉박하여 사건 사고가 터지자 그 규모가 클 때 이런 착오는 거의 불가피하다. 모든 게 풍지박산 된 사고현장, 사람들은 우왕좌왕하고 사상자들은 어디로 갔는지 안보이고 어느 누구도 사고의 전반을 모르는 무질서의 상황에 맞닥뜨린 기자는 10분 또는 5분 안에 기사를 불러야 한다. 닥치는 대로 듣고 보고하여 재구성한 기사가 정확하다면 그건 기자가 아니라 신이다. 특히 사고 피해자가 여러 병원에 분산 수용되어 있을 때엔 사상자의 집계가 중복되거나 누락되는 게 일쑤다. 피해자 집계보다도 더 어려운 건 명단 파악이다. 죽은 사람에게 물어 볼 수도 없어 주민증 대조나 친면자의 확인에 의존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착오가 빚어지기 쉽다.
  
  그렇다고 '신원미상'이라고 기사를 부르기도 뭐해서 가판에는 이름을 되는대로 창작하여 메워 넣고 배달판에 가서 정확한 이름으로 치환시키는 '명기자'도 있다. 사망자수를 실제보다 더 많게 보도한 경우는 난감하다. 그래서 '누가 더 죽어 주지 않나'하는 못된 심정이 돼 병원에 줄기차게 확인 전화를 거는 것도 '오보의 시인'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사건기자의 심리에서 나온 행동이다.
  
  사례15
  
  '장성탄광 폭발 사고 때 갱내에 갇혀 있다가 구조된 두 숨진 金政(正)秀시의 이름을 한 신문에선 하루는 政秀 다음날은 正秀로 보도되는 등 한두 번 안 바뀐 신문이 없었다. 더욱이 1면과 7면이 다른가 하면 앞 기사와 뒷 기사가 달리 나온 데가 있었고 속보가 끝날 때까지 두 가지로 실려 필자도 어느 이름이 진짜인지 아직 모른다. 김씨의 나이도 31세부터 35, 36, 37 ,38세까지 날짜마다 신문마다 달랐다. 김씨의 부인 徐賢淑씨 이름도 賢順, 英順으로 잘못 소개됐다. 김씨는 처형이 한 사람 있는 모양인데 어느 신문에선 부인으로 나왔고 김씨 동생의 나이도 김씨와 동갑내기(35)가 됐다가 갑자기 30세로 내려가는 등 종잡을 수가 없었다'('기자협회보' '76년 2월1일, 장준창씨가 쓴 '신문의 오자·오식·오보'에서)
  
  기자의 기본은 고유명사를 정확히 적는 것이라고 한다. 장성사고의 경우엔 큰 사건이었기에 틀린 부분이 드러난 경우다. 보통 기사의 경우엔 이름 석자가 틀리는 수가 더욱 허다하다. 특히 이름의 한자 표기가 잘 틀린다. 애매한 경우엔 출입기자들이 멋대로 한자 표기를 통일, '맞으면 다 맞고 틀려도 같이 틀리는' 단결을 과시할 때도 있다. 취재에서 고유명사 확인 은 가장 작은 일이면서 또한 가장 중요한 일이다. 정확한 기사는 정확한 고유명사에서 출발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한쪽 얘기만 전하면 사람을 잡는다
  
  기자의 태도는 우선 객관적인 전달자의 입장이어야 한다. 기자는 사건을 해결하는 수사관이 아니다. 진리를 탐구하는 학자도, 잘잘못을 가리는 재판장도 아니다. 서툰 판단에 앞서 현상의 정확한 전달, 그것이 기자의 기본 임무다. 객관적인 보고자의 자세에 필수적인 것이 공평한 태도다. 잘잘못을 분명히 가리기 힘든 사건, 진상이 애매한 사건에서 한쪽 얘기만 듣고 기사를 쓰면 거의 전부가 오보로 된다. 코끼리의 다리만 만진 장님이 '코끼리는 기둥과 같다'고 기사를 쓰는 것과 같은 꼴이다. 여러 장님의 얘기를 종합해야 진상(코끼리)의 윤곽에 접근할 수 있다.
  
  차도, 인도의 구분이 없는 번잡한 도로에 인도를 확보하려고 길 가운데 당국이 가드 레일을 설치했다. 택시를 타고 그 도로를 지나간 어느 기자는 '도시 미관을 해치는 가드레일'이라고 생각, 기사를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며칠 뒤 그는 우연히 인도를 걸어 보았다. 가드레일 덕분에 차에 신경 안 쓰고 활보할 수 있어 좋았다. 그는 가드 레일을 보는 시각에 따라 생각이 달라지는데 새삼 놀랐다. 이 경우 진실은 무엇인가 양쪽의 시각을 합친 것이리라.
  
  사례16
  
  지난해 11월18일 '대구매일신문'은 '아내 죽이고 투신자살'이란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30대 남편이 부부싸움 끝에 20대 아내를 찔러 죽이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는 사건. '매일'은 남편의 유서를 인용, 아내를 '무단가출 하여 영화배우가 되려했다'느니 '돈을 위해 나와 사기 결혼했다'느니 '장모는 내가 해준 3천만 원어치 혼수를 다 가져갔다'느니 하는 내용을 보도했다.
  
  피살된 노 모 여인의 부모는 이 기사가 억울하게 죽은 딸의 명예를 또 다시 손상시킨 것이라 하여 대구 언론 중재 위원회에 정정 보도를 신청했다. 노 여인의 부모는 사건 때는 두 사람이 합의이혼 한 뒤였으므로 남남이었다고 했다. 노여인의 전 남편 이모씨가 가져온 혼수는 3천만 원어치가 아니라 5백만 원어치이며 '매일'은 이씨의 유서를 인용, '노여인이 혼수를 하나도 안 가져왔다'고 했으나 경찰조사에서 노여인이 혼수를 가져온 사실이 밝혀졌다고 반박했다. 그들은 '매일'이 이씨 가족 말만 듣고 죽은 사람의 명예를 훼손시켰다고 주장했다. 중재결정은 '매일'이 정정 보도를 하는 쪽으로 났다.
  
  이 경우 '매일' 기자의 입장도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시체가 발견된 것이 아침7시, 기자들이 현장에 도착한 것은 8시 이후였을 게다. 기자는 세 시간 안으로 취재를 마치고 이 기사를 작성한 셈이 된다. 그가 얻을 수 있었던 정보는 우선 가까이에 있는 곳-이씨의 유서, 이씨의 가족, 이씨의 친구나 이웃에서 나왔을 것이다. 부산에 있었던 노여인의 부모와는 그날엔 도저히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쪽 얘기만 인용, 전달한 것은 한국 언론의 현실에선 어느 정도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마감 시간이 없거나 경쟁 상대가 없었다면 충분한 취재가 되기를 기다려 기사를 썼겠지만 신문이란 것이 그렇게 유장한 배포를 가질 수는 없는 것이다.
  
  정작 문제는 '매일'과는 달리 충분한 시간을 갖고도 소설식의 기사를 쓴 '주간경향'이다. '81년 11월29일치 기사는 제목부터가 '사기결혼 아내 죽이고 자살'로서 노여인을 일방적으로 헐뜯는 내용이었다. '나는 사기 결혼을 사기결혼을 당했다는 39세 신랑…얼마나 한이 맺혀 이 같은 끔찍한 종말을 고했을까?-이 세상에서 제일 나쁘고 악마보다 더 나쁜 장모! 앞으로 3대 이상 고통을 받으라! 그가 남긴 이런 4통의 유서를 유추하여 사건을 캐보자.…이씨는 죽는 순간까지도 '…그 사람을 욕하지 마시오'라고 적어 놔 애틋한 사랑을 증명하기도.'
  
  노여인의 부모는 '이씨는 우리 딸을 죽인 뒤 시간(屍姦)을 한 남자다'면서 이 주간지의 정정 보도를 중재위원회에 신청, '주간경향'은 지난 1월17일치에서 '그 사건, 그 뒤, 대구의 부부참극'이란 제목으로 정정 기사를 실었다.
  
  한국의 언론기관은 정정 보도를 낼 때도 '우리가 잘못하여 이렇게 바로잡는다'고는 고백하지 않는 게 보통이다. 속보기사를 쓰는 것처럼 정정, 독자들에게 언론의 실수를 보이지 않도록 기교를 부린다. '주간경향'도 그런 식으로 썼는데 이씨는 이번엔 '아파트 경비원이 인사를 않는다고 욕하는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로 그려졌다. 두 달 전 기사에선 이씨를 'B직물이라는 회사를 차려놓고 사장으로서 경영 수완을 발휘해 착실한 기반을 다졌다'고 했던 이 주간지는 'B직물은 알고 보니 아버지 것이었고 생활비까지도 시어머니에게서 타다 서야 했다'고 썼다. 이씨의 일기를 근거로 노여인 쪽을 일방적으로 묘사했던 이 주간지는 이번엔 노여인이 쓴 '한 편의 시를 연상시키는 깨끗한 필치'의 일기를 바탕으로 기사를 작성했다.
  
  이밖에 어느 신문에선 자살한 시어머니의 유서를 인용 '며느리 구박에 못견뎌'라고 기사를 쓴 경우도 있는데 며느리의 해명이 생략된 이런 기사는 한쪽의 견해만 독자에게 강요하는 꼴이 된다. 그런 기사를 근거로 친척들이 며느리를 몰아세우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사례17
  
  지난해 9월29일 '조선일보': '뺨맞고 정신 이상증세. 고발 당한 교사 시달려'란 제목에서 부산 ㅅ중학교 체육교사가 학생의 뺨을 세 차례 때렸다가 '그 때문에 정신 이상증세를 보인다'고 주장하는 아버지로부터 고발을 당했다는 '연합통신' 기사를 실었다. '중앙일보'는 이틀 뒤 '뺨 맞고 돈 뜯은 학생, 선천성정신 질환자, 부산 시교위 밝혀'란 '연합통신' 기사를 싣고 학생 김 군의 아버지가 교사에게 여섯 달 동안 치료비를 물게 한 뒤 경찰에 고발했다고 보도했다. 이들 기사엔 의사나 교위 측의 견해는 실려 있으나 학부모의 말은 빠져 있었다. 따라서 '뻔뻔한 학부모'에 의해 교권이 침해당하고 있다는 인상을 독자들에게 주었다.
  
  그러나 부산지검의 수사결과는 교사에게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교사는 '세 차례의 뺨만 때린 것'이 아니었다. 급우들이 보는 앞에서 노래와 물구나무서기를 시켰으며 급우와의 태권도 대결에서는 '다리를 다쳤다'는 호소를 확인하기 위해 바지를 벗기는 등 피교육자의, 심리상태를 도외시한 처벌을 가했음이 드러났던 것이다. 검찰은 김 군의 정신병이 체벌에 기인한 건 아니라고 교사를 무혐의 처분하면서도 그의 징계를 시교위에 요청했다. 김 군의 부모는 첫 보도에 그려진 그런 비뚤어진 사람은 아니었던 것이다.
  
  사례18
  
  '강원일보' '70년3월23일치 '2백여 아동 동상에 걸려'라는 기사에서 '화천 국민교는 3월10일 교실에서 난로를 모두 철거, 교직원은 물론 아동들이 냉방 수업을 했는데 예년에 비해 영하 10도나 낮은 이상 기온으로 2백여 명이 동상에 걸려 부형들이 항의했으며 3월20일에는 수은주가 영하13도까지 내려갔는데 찬물로 교실청소를 시켰다'고 보도했다.
  
  학교측의 제소에 따라 진위조사를 한 한국 신문 윤리위원회는 냉방수업으로 동상이 생겼고 학생들이 찬물 청소를 했다는 증거가 없고 3월20일의 기온은 화천 농촌지도소의 관측 기록에 의하면 최고 영상5도 최저 영하3도였음을 들어 기사의 이 대목을 취소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학부모 쪽의 얘기만 너무 믿고 학교 쪽 해명을 제대로 취재하지 않아 생긴 오보였다.
  
  사례19
  
  지금은 없어진 '산업경제신문'은 '70년11월4일치 기사에서 당시 부평군의 ㅅ물엿 공장에서 ○○제과회사에 납품한 물엿에 모래 등 불순물이 셖여 있다고 보도했다. ○○제과에선 사실 무근이라고 정정 보도를 신문 윤리위에 제소했다. '산업경제'는 답변서에서 취재 기자가 ㅅ물엿 공장의 종업원, 공장장, 사장을 만나 취재했으며 사장은 '잘 봐달라'고 말한 적도 있다고 주장했다.
  
  윤리위에서 자체 조사를 한 결과 '산업경제' 기자는 일체의 내용을 친구로부터 듣고 썼음이 확인됐다. 그 기자는 공장 관계자를 만난 사실도 없고 ㅅ공장은 ○제과에 납품한 적도 없을 뿐 아니라 윤리위에 낸 '산경'의 답변서 내용도 허위임이 밝혀졌다.
  
  사례20
  
  '부산일보'는 지난해 7월21일 '무주택 40명 1억 원 피해'란 제목의 기사를 사회면에 실었다. '무주택 주민40여명은 그들이 낸 아파트 분양계약금 및 중도금 1억3천여만 원을 받아 골조 공사만 한 채 부도를 내고 달아나 버린 ㄷ주택대표 이아무개를 처벌해 달라고 진정하고 있다.' 이 기사에는 진정자의 호소 내용만 실려있고 피진정자 이씨 측의 말은 없다. 이씨는 부산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 보도신청을 냈다. 공사는 석 달 늦어졌으나 계약금은 전부 공사비로 썼고 달아난 사실도 없다는 것이었다. '부산일보'는 이 정정 요청을 받아들여 1주일 뒤 속보 형식의 기사를 실었다.
  
  취재 기자들의 큰 취재원 가운데 하나가 수사기관이나 언론기관에 들어오는 호소나 진정서다. 이 호소나 진정서를 취재의 한 자료로 이용하는 건 좋다. 그러나 게으름이나 고의로 해서 어떤 기자들은 호소나 진정서의 진위를 밝히려 하지 않고 그대로 지면에 부어버린다. '누구…라고 진정하고 있다'는 식의 기사다. 문맥의 논리엔 흠이 없다. 상대방이 그 내용이 엉터리라고 대어들면 '누가 사실이라고 했느냐, 우리는 진정하는 내용만 소개했을 뿐이다'고 무책임하게 발뺌한다.
  
  언론기관에 들어온 고발이나 진정서를 수사기관에 물려 그 진위를 내사케 하면서 '경찰은…라는 정보를 입수, 수사에 착수했다'고 쓰기도 한다. 경찰이란 '권위'를 이용하는 경우다. 형식논리야 어떻든 고발이나 진정의 내용이 엉터리로 밝혀지면 피진정인들은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받게 된다. 기자는 진정서의 진위를 확인할 의무를 져야 한다. 진위는 확인이 안되고 그 사안(事案)은 꼭 보도해야 할만큼 중대하다면 적어도 양쪽의 찬반 견해는 공평하게 소개해야 할 것이다.
  
  경찰의 구속영장이나 조서에만 의존, 기사를 쓰는 것도 때에 따라선 일방적 보도가 될 수 있다. 경찰은 형법이란 잣대로 진실을 밝힌다. 경찰 공문서에 나타난 진실은 '경찰적 진실'일 뿐이다. 기자의 진실은 따로 있다. 그것은 피의자와 만나야 밝혀낼 수 있다. 유능한 사회부 기자들이 피의자 보호실과의 대화를 게을리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경찰이 도범 단속 기간에 구속시킨 '2만 원짜리 절도범'은 피의자와의 대화로 배에서 쓰고 남은 페인트를 집으로 가져가다가 붙들린 어리숙한 선원으로 밝혀질 수도 있다. 현상을 정반대의 양쪽에서 볼 때 진상은 더 또렷이 드러날 것이다.
출처 : 마당
[ 2003-07-04, 14:5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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