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필은 인격을 죽인다(1)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오보와 날조의 사례연구(상) - 곡필은 인격을 죽인다
  
  언론을 사회의 공기(公器)라 한다. 그렇다면 기사는 공문서다. 공문서를 멋대로 변조, 날조하고 그 기재 사항을 과장, 왜곡하면 범죄가 된다. 한국의 언론은 이런 죄를 짓고 있지 않은가. 그 죄를 정당하게 심판을 받고 있는가 알아본다
  
  <1982년 6월 마당>
  
  따르릉―
  '예 ㅇㅇ신문사 당직 기잡니다'
  '수고하십니다. 애독잔데요, 뭐 여쭈어 보겠습니다'
  '물어보십시오'
  '지리산이 높습니까, 한라산이 높습니까? 신중하게 대답하셔야 합니다.'
  '내기 하셨군요?'
  '그렇습니다. 술값이 걸려 있으니 신중하게 말씀하셔야 됩니다.'
  '한라산이 한 50미터쯤 더 높습니다'
  '틀림없지요? 예?' 몇 번씩이나 다짐을 들은 뒤엔 '야, 임마! 내가 맞았다. 네 귀로 기자님 말씀 직접 들어!' 라면서 전화를 바꿀 때도 있다.
  '기자님, 확실합니까? 책임질랍니까?'(힘없는 목소리).
  당직기자는 조금 전의 '선고'를 재확인해 준다. 내기에 진 사람은 인사도 없이 짤깍 전화를 끊어버리기 일쑤다.
  
  어느 신문사나 야간 당직자들의 주요 업무 가운데 하나가 이런 '내기 심판'이다. 심판을 청구하는 이들은 대개가 서민들. 기자의 판결이 떨어지면 불복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그들은 신문의 권위, 신문의 진실을 철석같이 믿고 있기 때문이다. '기자가 그러더라' '신문에 났더라'는 말로써 진실을 입증하려는 사람들이다. 활자를 진실의 잣대로 삼는 이런 사람들이 아직도 독자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사례1
  
  지난 4월17일 '중앙일보'는 '장티푸스 예방접종을 맞은 쌍둥이 형제가 부작용을 일으켜 병원으로 옮기는 도중 숨졌다'고 사회면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동아일보'와 '한국일보'는 '부작용 때문'이라고 못박지는 않았으나 '장티푸스 접종 뒤 숨져'란 제목으로 사회면과 1면에 기사를 크게 실었다. 보사부는 사인이 밝혀질 때까지 장티푸스 예방 접종을 중단하라고 전국 시도에 긴급 지시했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해마다 한두 명이 장티푸스 예방 접종 부작용으로 죽는다고 한다. 장티푸스 예방주사를 맞는 사람이 한 해에 9백만 명쯤 된다니('동아일보') 사망확률을 대충 5백만 분의 1로 치자. 그러면 쌍둥이가 함께 부작용으로 죽을 확률은 25조 분의 1이다. 더구나 쌍둥이 중학생은 '함께' 죽었을 뿐 아니라 '동시에' 죽었다. '쌍동이가 한날 한시에 함께 부작용으로 죽을' 확률을 나타낼 천문학적 숫자 단위를 필자는 알지 못하는 게 유감이다. 이런 확률이야 어찌 되었든 '중앙일보'는 고열, 두통, 눈의 흐린 초점 따위의 일반적인 부작용 증상을 사인으로 직결시켰다.
  
  며칠 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부검결과, 사인은 '연탄가스중독'으로 밝혀졌다고 발표했다. 이 기사를 대부분의 신문들은 1∼2단으로만 실었다. 사건발생 때 '부작용 및 가스중독 등 두 갈래의 사인 조사를 하고 있다'고 가장 정확하게 보도한 '조선일보'가 3단으로 가장 크게 다루었다. 나는 사인확인 기사가 나간 며칠 뒤 우연히 만난 전직 기자 세 명에게 이 문제를 얘기해 보았다. 세 사람은 모두 그때까지도 '주사부작용'으로 알고 있었다. 바로 잡은 기사가 워낙 작게 실려 못 본 것이었다. 기자출신이 이런데 하물며 다른 독자들이야…
  
  '중앙일보' 이외의 신문들은 '장티푸스 주사 뒤 숨져'식의 제목으로 보도했으나 논리상 틀린 것은 아니다. 쌍둥이는 분명히 '접종 뒤' 숨졌던 것이다. 그러나 그 기사를 읽은 거의 전부의 독자들은 거창한, 자극적인 제목에 압도되어서라도,'예방주사를 맞고 숨졌다'를 '예방주사 때문에 숨졌다'로 이해했을 것이다. 독자들뿐이 아니었다. '연합통신'의 예방주사를 맞은 쌍둥이가 숨졌다'란 리드 기사 문장을 읽은 '부산일보' 편집기자는 사회면 머리기사에 '접종참변'이란 제목을 붙이지 않았던가.
  
  이 통신 기자도 '쌍동이가 주사를 맞은 건 사실 아닌가'고 말할지 모른다. 옳은 얘기다. 여기서도 논리상의 모순은 찾을 수 없다. 문제되는 것은 균형과 공평의 감각이다. 정확한 사인은 부검을 해 봐야 알 수 있다는 건 사건기자의 상식이다. 그런데도 여러 가지 기능성 있는 사인들 가운데 왜 '접종부작용'만 강조했느냐가 문제의 핵심이다. 한쪽만 보여주는 것도 사실 보도이다. 그러나 그 사실은 결코 진실이 아니다. '연합통신' 기사는 시실 보도가 오보일 수 있음을 실증한 사례다.
  
  사례2
  
  '한국일보'4월29일치 1면에서 '의령경찰서 경관 5명과 짜고 상황 실장이 '일지조작'이란 제목의 기사가 사진과 함께 1면 전체 면적의 반을 차지했다. 가로 제목의 크기가 9X23센티나 됐다. 이 사실은 정부 조사반이 밝혀낸 것이라고 했다. '한국일보'는 경찰관들이 출동 시간과 출동 인원을 자기들한테 유리하도록 조작, 기재했다고 썼다. 같은 날 '동아일보'는 사회면의 옆 머리기사로 조사반의 조사결과라면서 '상황실 근무자들이 우순경의 집단사살사건이 의외로 큰 데 놀라 후에 문제가 될 것을 염려, 기록부 두 쪽을 찢어내고 서로 이 사실을 비밀로 할 것을 약속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정부 조사반의 발표는 이들 기사와는 사뭇 달랐다. 조사반장(대검 형사2부장)은 '찢긴 상황실일지 용지를 대조했으나, 신고나 출동 시간 조작 등 혐의는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동아일보'와 '한국일보' 기사를 믿음직스럽게 만든 것은 그 조작 사실을 기자가 아니라 정부 조사반이 밝혀냈다는 대목이었다. 두 신문은 '조작사실'을 크게 보도한 자신들의 책임과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무엇인가를 독자에게 보여주어야 했다.
  
  '조작사실'에 확신이 있으면 조사반을 과감하게 치고 나와 자체조사를 통해 진실을 밝혀야 마땅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들의 잘못을 바로 잡는 속보를 써야 마땅했다. 두 신문은 조사반의 발표 기사를 실으면서도 '일지 조작이 없었다'는 대목을 빼버렸다. 그리곤 언제 그런 기사를 썼느냐는 듯 '일지조작'에 대해선 오로지 침묵으로 일관했다. 따라서 두 신문의 독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지금도 '일지조작'을 믿고 있을 것이다.
  
  사례3
  
  '일지조작' 기사가 나간 그 날치 '한국일보' 사회면 머리에는 우순경에게 사살된 궁류 우체국의 두 전화 교환양을 성녀로 만드는 기사가 실렸다. '피의 현장…마지막 여보세요' '죽음 문턱에서 책임 다한 두 교환양' '신고 전화에 신음 소리로 응답' '총탄 맞고도 군(郡)에 코드 연결'―이런 제목을 읽은 독자들은 1면에 난 '파렴치한 경찰관들'과 너무나 대조되는 교환양들의 직업정신에 감복했을 것이다. 우연의 일치치고는 두 기사는 선악의 기막힌 대비였던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다음날 다른 신문들은 '서울 통화중 교환양 피살…코드 안 뽑혀 첫 신고가능'이란 기사를 썼다. 군 교환으로 코드를 꽂은 것은 총 맞은 직후의 교환양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코드가 꽂혀 있었다는 얘기였다.
  
  사례4
  
  지난해 4월14일 '부산일보'와 '경남신문' 등에 '난행 당한 여고생 4층 옥상서 투신자살기도, 중상' 이란 기사가 실렸다. 이 여고생의 어머니는 언론중재 위원회에 두 신문을 상대로 정정 보도 신청을 냈다. '청년에게 욕을 당하지 않으려고 달아나다가 떨어져 허리뼈가 부러진 것이지 욕을 당한 사실이 없고 자살을 꾀한 것도 아니다. 우리 딸의 친구들까지도 신문 보도만 믿고 욕을 당한 것으로 알고 있어 그 아이는 학교도 갈 수 없게 됐다고 비관하고 있으며 치료에도 지장이 크다. 경찰조사 외 의사의 진단으로도 강단 당하지 않았음이 밝혀졌다.'
  
  이런 주장에 대해 '부산일보'쪽은 '경찰의 사건 보고서 내용을 토대로 보도했으며 4월25일자 9면에서 자진하여 정정 보도를 했으므로 재 정정은 할 수 없다'고 했다. '부산일보'의 4월25일치 1단 정정 기사는 '욕을 당한 것을 비관, 옥상에서 뛰어내린 것'을 '욕을 당하지 않으려고 뛰어내린 것'으로 바로잡는다는 내용이었다. '경남신문'은 중재에 불응했다. 이렇게 되어 중재는 성립되지 않았으나 두 신문은 그 뒤 두 번째 정정 기사를 2단으로 냈다.
  
  사례5
  
  십 몇 년 전의 일이다. 중앙지 'ㅎ 일보'의 ㅂ시 주재 기자 ㅊ씨는 짤막한 기사를 만들었다. '석유난로를 피워 놓고 잠자던 사람이 가스에 중독, 숨졌다'는 내용이었다. ㅊ기자는 이 기사가 기껏해야 1,2단쯤 나올 것이라고 예사로 생각했다. 다음날 이 기사는 'ㅎ일보'의 사회면 머리에 얹혔다. 명사회부장 ㄹ씨의 판단은 달랐다. 연탄가스 중독사는 수두룩하지만 석유가스 중독사는 처음이다. 석유난로가 주유종탄(主油從炭) 정책에 따라 널리 쓰이고 있는 시점에서 좋은 경종이 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사회부장은 ㅊ 기자에게 특종을 칭찬하는 전화를 건 뒤 '심층취재를 하여 해설기사를 써 올려라'고 지시했다.
  
  ㅊ 기자는 낭패했다. 그 기사는 자신의 창작이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이 판국에 발을 뺄 수도 없는 일, 그는 멋진 해설기사까지 써 보냈다. '문제의 석유난로' 사진도 함께. 경찰은 신문에 난 주소대로 변사자를 찾아 나섰으나 확인할 수 없었다. 난로 사진을 보고 그 제조 회사에서도 발칵 뒤집혔다. 치안국으로부터 '왜 변사 보고가 없느냐'고 꾸중도 들은 경찰은 신문에 난 '문제의 난로'사진을 면밀히 관찰한 뒤 무릎을 쳤다. 그 안면 있는 난로는 어느 경찰서의 당직실 난로였던 것이다. 여기서 문제의 기사가 날조임이 확인됐다.
  
  사례6
  
  '…때때로 이러한 고발기사는 엉뚱한 피해를 자초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몇 년 전 북한산 비봉에 있던 진흥왕 순수비(국보3호)를 무리하게 경복궁으로 이전했던 것은 대표적 예가 될 것이다. 비신에 금이 갔다고 해서 '올 봄 여름 장마를 넘기지 못하고 비석이 넘어갈 것 같다'는 신문의 엄살에 문화재 관리국은 철저한 현장 조사도 안 한 채 순수비를 옮기기로 방침을 세웠다. 그러나 막상 비신을 들어올려 보니 요지부동-서너 명의 인부가 안간힘을 해도 끄덕도 안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금이 간 부분 속으로 일제 때 굵다란 철심을 여러 개 박아 접착시켜 놓은 상태였다.
  
  공사현장에 나와 있던 한 학자는 '이 정도라면 2백년은 견디었을 것'이라고 한탄을 하는 것이었다. 전에는 서대문 밖 시내에서도 모세의 지팡이처럼 또렷이 보이던 순수비를 지금은 어디서 찾아볼 수 있는가. 경복궁 근정전 회랑 안에 초라하게 비석이 방치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신문과 방송' '77년5월 호, '서울신문' 반영환 기자가 쓴 '경쟁 내세운 추측, 과장 많다'에서 뽑음).
  
  사례7
  
  몇 년 전 어느 대도시의 고무 공장에서 불이 났다. 경찰은 피해액을 3천만 원으로 추산했다. 이 공장에서는 기자들을 찾아다니며 피해액을 늘려달라고 사정했다. 그래야 보험금 타는데 유리해진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평소 이 공장과 유대가 돈독했던 기자들은 피해액을 경찰 추산의 50배가 되는 15억원으로 하는데 합의, 기사를 불렀다. 그 날의 신문, 방송 기사에는 오랜만에 화재 피해액이 일치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화재 피해액은 경찰, 소방본부, 피해자, 언론기관의 집계가 서로 엄청나게 달라 기사에도 천차만별로 나오는 것이 통례였다)
  
  사례8
  
  지금은 없어진 '국제신보'의 경찰 출입기자 ㅅ 씨는 어느 형사 사건의 경찰 조서를 베꼈다. 사건관계자의 신상 사항을 '직업무당30세'로 메모한 그는 기사를 쓸 때 '○○○(직업 무당·30세')로 적었다. 이 사람이 며칠 뒤 신문사에 와서 '이럴 수 있느냐?'고 항의했다. 그제서야 ㅅ 기자는 '직업 무, 당30세'를 엉뚱하게 기록했음을 알았다.
  
  사례9
  
  '79년 6월2일 아침 부산진 경찰서 출입 기자들은 형사계 당직실에서 한 장의 변사보고서와 접했다. 부산진구 범전동 박 아무개(당시49세) 여인이 자기 방에서 불타 죽은 시체로 발견됐다는 내용이었다. 경찰은 이 보고서에서 '박 여인은 네 아들이 애를 먹이는 데다가 생활고를 비관, 분신 자살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해석을 내리고 있었다. 기자들은 '경찰의 해석'을 믿고 아무도 현장에 가지 않았다. '분신자살' 기사가 1단으로 나온 것은 물론이었다. 이 기사를 보고 박 여인의 아들들이 경찰과 신문사에 '자살할 이유가 없다'고 항의했다. 다시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다음날 박 여인의 막내 이원우(당시 21세)를 존속 살인 혐의로 구속했다. 이는 어머니 이름을 도용, 생명보험에 들게 한 뒤 목 졸라 죽이고 시체를 불태웠던 것이다.
  
  사례10
  
  '79년6월22일 오전 부산 동래 경찰서 출입 기자들은 일제히 '칠산동 토막살인사건의 진범으로 목욕탕 보일러공 검거' 기사를 데스크로 전화 송고 했다. 일선 수사 간부로부터 따로따로 귀띔을 받은 것이었다. 마감 시간 직전에 이 중대한 정보를 얻은 기자들은 확인할 겨를도 없었다. 전화로 기사를 허겁지겁 부른 뒤 기자들은 사후 확인을 위해 수사 책임자인 치안본부 수사 지도과장과 부산 시경 부국장을 덮쳤다. 두 책임자는 '자백은 받았지만 그 보일러공은 범인이 아니다'면서 '내 목을 걸고 말한다'고 다짐하는 것이었다. '부산일보'등 대부분의 신문들은 배달판(가두 판매판 두 시간 뒤에 찍힘)부터 기사를 바꾸었다.
  
  제목을 '범인검거'에서 '범행자백'으로 돌리면서 '범인이 아니다'는 수사책임자의 말도 넣었다. '국제신문'(필자는 그 때 이 신문사에서 이 사건을 취재했다)은 '경찰이 완벽을 기하기 위해 바람을 잡는다'고 넘겨짚었다. 수사 본부장보다는 형사 계장을 믿기로 한 '국제신문'은 수사본부장의 부인 해명을 묵살해버리고 계속 '진범 검거'로 밀고 나가면서 '진범'의 사진까지 실었다. 다음날 피살자의 신원이 밝혀지면서 보일러공에 대한 혐의는 벗겨졌다. 그 대신 피살자의 전 애인 이 양길(당시 25세)이 범인으로 지명 수배됐고 며칠 뒤 붙들렸다.
  
  사례11
  
  1907년7월18일 '대한매일신보'는 호외를 냈다. '동경 전보(통신을 뜻함)를 들은즉 이 준 씨가 충성심에서 우러난 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자결, 세계 각국 대표들 앞에 피를 뿌려 만국을 크게 놀라게 했다.'
  
  사례12
  
  건설부는 2백86억 원을 들여 저수량 7억9천4백만 톤의 합천 다목적 댐을 연내에 착공, 오는 '82년에 준공키로 했다'('77년6월15일의 여러 신문, 방송, 통신기사. 합천댐은 '82년 현재 준공은커녕 착공도 안돼 있음). '건설부는 낙동강 하구언을 오는 '80년에 착공키로 했다'('77년 9월9일 여러 신문, 방송, 통신기사. 2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착공 안 되고 있음). '부산시는 부산을 전국에서 처음으로 헌혈 도시로 선포키로 했다. 헌혈 도시가 되면 혈액 관리법에 따라 헌혈만 할 수 있고 매혈은 금지된다'('국제신문' '77년 1월8일, 아직껏 선포 안되고 있음)
  
  사례13
  
  '79년 3월24일 '중앙일보' 사회면의 두 번째 큰 기사제목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남해안 수산물 공해병 유발 우려' '김, 미역, 굴 등 중금속에 오염' '수은은 허용치 20배' 그런데 기사는 제목과 좀 달랐다. '부산 마산 울산의 바닷물이 중금속에 크게 오염되어 이 해역의 김, 미역, 굴 등 수산물도 위험하다'는 게 요지였다. 기사의 주제는 수산물이 아니라 바닷물이었다. '수산물 공해병 유발 우려'라는 제목은 '바닷물이 이렇게 오염돼 있으니 수산물도 크게 오염돼 있을 것이란' 추정에 근거한 것으로 핵심과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이 기사는 '부산 수대 원종훈 교수가 지난해('78년) 8월에 조사한 해수의 중금속 오염치'를 나열했다. 원교수(지금은 작고)는 이 기사를 읽고 경악했다고 했다. 이 기사에 소개된 부산 수영만의 수은 오염도는 평균 0.016PPM, 카드미움은 평균 0.018PPM, 구리는 평균 0.225PPM이었다. 원교수의 진짜 측정치는 수영만의 수은이 0.16PPB, 카드미움 0.18PP, 구리 0.25PPB였다. PPB(Part Per Million)은 1백만 분의 1을 뜻한다. '중앙' 기자는 PPB에서 PPM으로 단위 환산을 잘못하여 (PPB를 천만 분의 1로 안 듯) 측정치를 실제보다 백 배로 일제히 증폭시킨 것을 원 교수는 발견한 것이었다. 기사는 환산의 잘못으로 '수은은 기준치의 스무 배'라고 했는데 실제는 기준치를 훨씬 밑돌고 있었다. '아직은 안전'으로 뽑혀져야 할 제목이 '공해병 유발 우려'로 둔갑한 것이다.
  
  이 기사는 백 배로 부풀어진 측정치를 근거로 하여 이 해역의 수산물을 재배 제한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었다. '중앙'은 '특종'의 여세를 몰아 일대 캠페인을 전개한다. 사설은 '작음의 보도는 충격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다'고 했다. '중앙'은 이틀 뒤엔 옆 머리기사로 '부산시와 경남도는 수영 마산 울산 등 남해 연안 세 해역을 특별대책 지역으로 지정키로 하고 수산진흥원과 대상 수역의 범위를 협의중이다'고 크게 보도했다. 부산시가 그 때 협의 중이었던 것은 공해 대책이 아니라 '언론 대책' 있었다. '중앙'이 '충격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다'고 개탄해야 할 대상은 바로 자신이었던 것이다. '중앙'은 원교수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잘못을 바로잡지 않았다. 원 교수는 수산청의 항의와 해명 요구에 직면, 진땀을 빼야 했었다.
출처 : 마당
[ 2003-07-04, 15:0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코나스넷  |  리버티헤럴드  |  뉴데일리  |  뉴스파인더  |  뉴포커스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