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오보는 은폐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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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보의 날조와 사례연구(하) - 최악의 오보는 '은폐'다
  
  '폭력의 칼'인가, '정의의 붓대'인가?
  악마도 될 수 있고, 천사도 될 수 있고 사기군도 될 수 있고 자선가도 될 수 있고 공갈배도 될 수 있고, 콜롬보도 될 수 있고 죽을 사람도 살리고, 살 사람도 죽일 수 있는 현대의 마술사. 무소불능의 권력엔 그만한 의무가 따라야 마땅하다.
  
  <1982년 7월 마당>
  
  사례31
  
  지난 '78년 12월21일 '부산일보' 사회면의 두 번째 큰 기사제목은 '대낮 주택2인조 권총강도-구멍 뚫린 연말비상'이었다. 25세 가량 된 강도 두 명이 경찰관을 가장하여 동래구 온천동의 어느 집에 들어와 갑자기 권총을 꺼내 들고 돈을 요구했다. 용감한 집주인과 이웃 사람이 '강도야!'고 소리치며 덤벼들자 둘이 달아났다는 것이었다.
  
  동래 경찰서를 출입하던 '국제신문' 기자는 이 기사가 오보라고 했다. 범인이 꺼낸 권총은 진짜가 아니라 장난감 플라스틱 권총이란 것이었다. 다음날 그는 ''국제신문'사회면 톱으로 요즘 모의 권총이 범죄에 자주 이용되고 있어 장난감의 제조에도 규제가 있어야 하겠다는 기사를 썼다. 온천동의 강도미수 사건을 사례로 든 것은 물론이었다. 이 기사는 목격자들이 환한 대낮이었기 때문에 장난감 플라스틱 권총이었음을 알아보았고 그것을 빼앗으려고 총열을 잡았더니 휘어지더라고 했다.
  
  사건이 일어난 지 나흘 뒤인 12월25일 '국제신문'의 사회면 머리에는 '두 장난감 권총 강도 목매 자살, 진짜 권총 강도로 몰리자 강박관념에 쫓겨'란 놀라운 기사가 실렸다.
  '지난 22일 하오 금강공원중턱에서 나뭇가지에 끈을 매고 나란히 목매 자살한 두 청년이 모의 권총 강도 사건의 범인 인상착의와 비슷하여 경찰은 당시의 범인 목격자 네 명을 불러 자살자와 대질시켰더니 '틀림없는 범인이다'고 그들은 입을 모았다. 경찰은 공원의 두 청년이 봉급을 다 써버린 뒤 집에 갖다 줄 돈을 마련하기 위해 범행을 저지르려다가 미수에 그치고 달아났다가 권총 강도로 몰리고 있다는 강박감과 죄책감에 속죄 자살한 것으로 보고 있다. 범죄사상 범인이 속죄 자살한 예는 매우 드물며…'
  
  이 기사대로라면 '부산일보'의 오보는 장난감 권총 강도미수를 진짜 권총 강도 사건으로 과장, 어리숙한 두 사람을 겁에 질려 자살하게 만들었다는 얘기가 된다. 다음날 '부산일보'는 경찰의 범인 단정에 의문이 많다고 반격했다. 경찰이 범인 목격자들의 얘기만 듣고, 그것도 마스크를 낀 범인이었는데, 두 자살 청년을 범인으로 모는 것은 무리라고 했다. 더구나 범행 때 사용한 권총, 면도칼, 그 때 입었던 바바리코트도 경찰이 못 찾았는데 무슨 범인 단정이냐고 '부산일보'는 지적하면서 유족들의 입을 빌어 '죽은 것도 서러운데 강도라니…'라고 항변했다.
  
  '부산일보'는 또 목격자들이 말한 범인의 옷차림과 두 자살자의 그것이 다르다고 했고 자살 추정 시간이 강도 미수사건 5시간 뒤이므로(진짜 권총강도 사건으로 보도한 '부산일보'가 나오기 하루 전) 자살의 동기가 모호하다고 덧붙였다. '부산일보'는 두 공원이 서로의 가난한 처지를 비관 동반 자살을 한 것 같다는 유족의 말도 소개했다. 그런데 경찰은 두 자살 청년을 강도 미수혐의로 서류 입건, 수사를 끝내버렸다.
  
  죽은 피의자를 재판할 수는 없다. 따라서 두 청년이 과연 강도 미수범이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해답은 영영 구할 수 없게 되었다. '범인이다'는 경찰과 '국제신문'의 주장이나 '아니다'는 '부산일보'의 주장이나 모두 '견해'에 지나지 않으며, 법정의 확정 판결과 같은 객관적 진실은 아닌 것이다. 설사 두 청년이 범인이라고 해도 그 강도 미수 사건에 장난감 권총이 사용됐는지, 두 청년이 '부산일보'의 기사를 보고 강박감에 몰려 자살했는지, 단정할 길이 없다.
  
  '국제신보'의 기사가 오보라면 두 청년에게는 강도 미수범이란 누명을 '부산일보'엔 '자살유도'의 누명을 씌운 셈이 된다. 나는 어느 신문의 기사가 정말 오보였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 영원히 그 해답을 얻을 수 없을 게다.
  
  이 사건에는 세 가지의 쟁점이 있었다. 진짜 권총 강도냐, 장난감 권총 강도냐? 자살 청년 둘은 과연 범인인가? 두 청년은 정말 '부산일보' 기사를 읽고 자살했나? 이 세 가지 의문은 두 신문의 사실 해석의 차이, 그리고 경쟁심리로 해서 더욱 짙은 안개 속에 가려져 버린 것이다. 이 사례는 경쟁과 사자(死者)의 인권, 오보와 생명, 주관적진실과 객관적 진실 등 가장 심각한 부문에 문제를 던졌다. 인간이 밝힐 수 있는 진실에는 한계가 있다. 그 한계바깥은 추리의 영역에 속한다. 추리는 진실과 비슷한 것, 또는 진실에 접근하려는 노력일 뿐, 진실 그 자체는 아닌 것이다.
  
  사례32
  
  지난 '71년2월6일 일본의 삿뽀로(札幌) 동계 '프리올림픽'에 출전할 세계 각국 선수들이 모여들어 연습을 하고 있었다. 이날 이곳에 파견된 한국 취재 기자들은 일제히 '남북선수에 혈육 있다'는 기사를 한국으로 보냈다. 1면과 사회면을 시끄럽게 장식한 것은 물론이었다. '중앙일보'는 김양의 부모를 편집국으로 불러내 일본 현지의 딸과 국제전화 통화를 하게 했다. '단장의 레이스…사뽀로 프리올림픽의 남과 북'이라는 감상적 표제가 사회면 머리에서 뛰고 있었다. 김양의 어머니 한계화씨는 '기쁘면서도 슬픈 기분으로 가슴이 꽉 막히는 것은 웬일인지 모르겠어요. 이 기분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그저 꿈만 같습니다'면서 목이 메어 말을 잘 잇지 못했다고 '중앙'은 보도했다.
  
  이 기사 아래쪽에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일본말 기사가 붙어 있었다. 정작 당사자인 한 필화는 혈육설을 부인했다는 것이었다. '여자도 돌림자(化)가 있느냐? 고향이 다르다. 나는 본적이 남포이고, 한계화는 함흥이다'고 딱 잡아떼어 핏줄마저 끊으려는 북괴의 근성을 드러냈다'는 것이었다. 김양과 어머니 한계화씨 사이의 전화 대화에서도 김양은 '진짜 이모예요?'라고 반문한 대목이 나온다. 김양이 '이모는 살짝 곰보더라'고 하니 계화씨는 '여섯 살 때 헤어질 무렵엔 곰보가 아니었는데...'라고 했다.
  
  그런데도 이 날부터 대부분의 언론 기관에선 김양과 한필화를 혈육으로 못박고 나섰다. 한계화씨의 이산된 여동생이 '필화'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것밖에는 혈육의 근거가 없었는데도 이 기사는 분단의 슬픔이란 바람을 타고 신화가 되려 하고 있었다.
  
  이틀 뒤 한필성(당시38세)이란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자기가 필화의 오빠다'고 했다. 나이, 고향, 필화가 말하는 가족상황, 살짝 곰보 등 모든 점이 부합된다'는 것이었다. 이 기사는 '동아일보'가 특종했다. 그러나 다른 언론 기관에선 한계화씨를 진짜 혈육으로 계속 밀고 나가면서 한필성 씨의 얘기는 '주장'으로 자그맣게 처리했다. 한계화씨는 동생을 만난다면서 일본으로 날아갔다. '누가 진짜 혈육인가'라는 문제는 2월17일 일본의 '조일신문'이 주선한 필성씨와 필화씨의 국제전화로 결판났다. 두 사람이 오누이임이 확인된 것이었다. '동아일보'의 승리였다.
  
  이 사건의 보도에서 다른 언론 기관에선 객관적인 사실 전달에 앞서 성급한 주관적 판단을 내리는 바람에 오보를 연일 계속하고 말았다. 보도기관이 어설프게 판결기관 노릇을 하려다가 창피를 당한 것이었다. 자신이 없으면 한계화씨의 주장과 한필성씨의 주장을 객관적으로 소개하고 판결은 한필화씨에게 맡겨야 했을 것을 한필화씨가 혈육을 부인하는데도 계화씨의 말만 믿고 '이모' '혈육' 이라고 단정해버린 것이었다. 가장 간단할 것 같은 혈육 확인에 열흘이나 걸렸고 그 기간에 수많은 언론 매체가 '거짓말'을 퍼트렸다는 것은 매스컴이 판치는 이 '밝은 사회' 에서도 허위와 진실을 가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작업이란 것을 새삼 깨우쳐 준 셈이었다.
  
  사례33
  
  '검찰수사결과 이씨가 전직 경력을 살려 치밀한 사전계획을 세웠으며, 이를 위해 자금능력이 있고 배후가 든든한 장여인을 이용했던 것으로 27일 밝혀졌다'('조선일보' '82년5월28일치 사회면). 이 기사는 이렇게 고쳐져야 마땅하다. '검찰은…이씨가 전직 경력을 살려 치밀한 사전계획을 세웠으며, 이를 위해 자금 능력이 있고 배후가 든든한 장여인을 이용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27일 발표했다.' '조선' 기사는 '…밝혀졌다'고 단정하고 있다. 그러나 '…로 밝혀졌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검찰의 수사결과이며 검찰의 주관이지 객관적인 진실은 아니다. '조선'은 검찰의 주관을 객관적 진실인 것처럼 쓰고 있다.
  
  '윤노파 살해사건의 범인은 고숙종여인으로 밝혀졌다'는 기사도 경찰의 주관을 객관적 사실로 혼동한 오보이다. '경찰은…고숙종 여인을 범인이라고 발표했다'가 정확한 객관 보도다. '…로 밝혀졌다'는 내용이 그 뒤에 엉터리로 밝혀질 때는 언론이 오보의 책임을 져야하지만 '경찰은…로 밝혀냈다고 발표했다'의 경우엔 경찰이 책임을 질 문제다.
  
  '74세의 여성이 어제 스타랜 아일랜드의 아파트에서 동거하던 남자와 다투던 끝에 칼에 찔려 죽었다고 경찰이 발표했다.' '뉴욕 데일리 뉴스'의 1단 기사다. 이 사건을 한국 기자들이 썼다면 십중팔구 '74세의 여성이…칼에 찔려 숨졌다'고 했을 것이다. 기자가 현장에 가서 사건 전모를 확인한 뒤 그렇게 썼다면 흠잡을 데가 없다. 미처 현장에 가기 전에 전통보고서만 보고 기사를 작성했을 때도 그렇게 썼다면 그 내용이 틀릴 경우 기자가 책임을 지게 된다.
  
  미국의 기자들은 기사의 출처를 밝히는 데 철저하다. '경찰이 발표했다' '목격자 누구누구에 따르면' '대변인은…라고 말했다' 식으로 취재 경위, 직접 취재냐, 간접 취재냐의 여부를 밝히고 인용을 분명하게 하여 어디가지가 기자의 주관이고 어디까지가 경찰 등 취재원의 견해인지를 독자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한다. 이런 기사 작성법은 기자의 기본기이다. 미국 기자들은 이 기본기에 철저한 반면 한국 기자들은 대체로 소홀한 것 같다. 기사 작성의 기본기에 충실하면 사건을 보는 눈도 냉철한 객관적 안목으로 절로 연마될 것이다. 이것은 내용에서 형식이 우러나오는 게 아니라 형식에서 내용이 우러나오는 경우다.
  
  대부분의 오보는 이런 기본기에의 충실로 예방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신문들은 오보 피해자들이 항의하면 그때서야 '우리는 경찰조서를 보고 베꼈을 뿐이다'느니 '진정서에 그렇게 써 있더라'고 책임을 다른 데로 돌리는 수가 많다. 문제는 경찰조서를 베꼈다면 베꼈다고 기사에 써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아 항의가 경찰로 가지 않고 언론으로 오는 데 있다. 오보를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자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이다. 오보를 줄일 수는 있다. 특히 고의성이 있는 오보-과장, 왜곡, 날조는 거의가 예방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 기사를 취재하기 위해 필자가 면담한 많은 현직, 전직 기자들은 '모르고 쓰는 오보보다도 알고 쓰는 오보가 더 많다'고 털어놓았다.
  
  오보인 줄 알면서 쓰는 오보, 그것을 날조라고 불러 마땅한데 이런 것들이 많다는 것은 한국 언론의 한 특성이다. 기자를 제약하는 2대 조건 가누데 '마감시간'은 착오나 확인 소홀에 의한 오보의 원인이 된다. '경쟁'은 과장이나 날조 등 '알고 쓰는 오보'의 중요한 원인이다. 상대 기자가 쓴 기사보다도 자기가 쓴 기사가 더 큰 제목으로 뽑힐 수 있도록 충격적으로, 단정적으로, 박력 있게 기사를 쓰려다가 터무니없는 과장, 왜곡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 기자는 독자를 향해 기사를 쓰는 것이 아니라 부장이나 편집 기자를 위해 기사를 쓰는 셈이다. 부장이나 편집 기사가 기사를 크게 취급하도록 하는 속임수가 과장이나 왜곡이란 수법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할머니 자살'은 1단 기사밖에 안 되니까 할머니가 평소 며느리와 사이가 안 좋았다는 점만 강조하여 '며느리 구박에 못 이겨 자살'이란 식으로 왜곡 기사를 쓰고 소년이 농 위에 놓인 쥐약을 먹고 죽자 그 소년의 어머니가 계모인 점을 착안, '계모가 유도살인?' 식으로 소설을 쓰는 것도 자기 기사에 대한 과도한 욕심 때문이다. 취재 기자는 그가 속한 조직이 선호(選好)하는 기사를 찾아 나서게 마련이다. 데스크, 편집기자, 국장, 신문사, 더 나아가선 한국 언론의 기사 가치관에 스스로를 맞추어 가게 되는 것이다.
  
  때로는 데스크의 강압에 못 이겨 날조 기사를 쓰는 기자들도 있다. 그런 기사를 한 번쯤 안 써본 고참 취재 기자들은 드물 것이다. 부장이 기사의 전체적인 방향의 흐름에 맞추어 내도록 하는 것이다. '바람'을 위해, 선동을 위해, 이념을 위해, 계몽을 위해 진실이 구겨지는 경우다. 용기 있는 기자들이 반발을 하면 '야, 좀더 넓게 봐!' 라고 부장이 다둑거릴 때도 있다. 그래도 기자가 거부하면 부장이나 차장이 그 날조 작업을 대신할 때도 있었다.
  
  사람 이름이나 주소(신문에 번지수나 통 반이 명시되어 있지 않은 일반인은 그 실재 여부를 일단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를 멋대로 창작해 가면서
  ― '울리는 방향으로
  ―' '조지는 방향으로
  ―' '행진곡으로
  ―' 취재로
  현상을 파악하기 전에 책상머리에 앉아 기사의 결론부터 먼저 내리면 데스크가 아직도 있다면 왜곡과 과장은 피할 수가 없을 것이다.
  
  특종의 평가 기준이 바뀌어야 오보가 준다.
  
  어떤 기사를 좋은 기사로 보는가? 기사는 사건 기사와 기획기사로 나눌 수 있다. 사건 기사는 범죄·사고 등 좁은 의미의 사건뿐 아니라 통화개혁, 8·3조치 같은 주요정책도 포함하는 넓은 뜻의 스트레이트 뉴스를 말한다. 기획기사는 드러난 사건 자체보다는 사건의 숨은 뜻을 캐고 이 세상에는 떠들썩하게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사회의 밑바닥에서 진행되고 있는 중요한 변화의 흐름을 잡아내는 유의 기사다.
  
  예컨대 '불황으로 실직자가 늘고 있다' '실직자가 늘어 절도 사건이 증가하고 있다' '카바레 수와 이혼률은 상관관계에 있다'는 따위는 기획기사다. 한국의 언론계엔 사건기사의 특종을 대체로 가장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토막살인 사건의 범인을 잡았다는 기사를 특종화 했다면 기획기사 열건쯤을 놓치더라도 상관없다는 마음가짐이다. 자연히 기자들의 촉각과 정열은 사건을 남보다 몇 시간이라도 빨리, 적어도 남보다는 늦지 않게 보도하는 데 집중된다. 취재기자는 너무 많은 시간을 이 '빨리 아는데' 소모하고 있다. '어차피 알려질 사건, 한 시간 먼저 신문에 낸다고 뭐가 그렇게 대단하냐?'고 일반인들은 가끔 의문을 제기한다.
  
  기자들도 이런 소박한 질문의 뜻을 이해하고 자신들의 능력이 하찮은 문제에 낭비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렇다고 그 기자가 '사건 기사는 내가 신경 안 써도 누군가에 의해 언젠가는 알려질 것이니 나는 숨어 있는 값진 기사거리나 발굴하자'고 작심, 기획 기사 취재에 몰두한다면 얼마 안 가서 무능기자 소리를 듣고 도태되고 말 것이다. 언론계에서 통하는 특종이 논리는 일반인의 상식과는 다르다. 이 특종의 논리를 부인하고서는 이 땅에서 기자 생활을 할 수가 없다.
  
  오보가 가장 많이 생기는 부문은 시간을 다투는 이런 사건기사다. 한국처럼 사건 부문 취재 기자가 많은 언론계는 세계에서도 드물다고 한다. 범죄 수사 보도에서 피살자의 사생활이 미주알고주알 까발려지는 것은 기자가 그러고 싶어하는 게 아니라 데스크, 편집기사, 언론사, 곧 한국 언론의 일반적 풍토가 그런 기사를 귀중하게 여기고 좋아하고 있기 때문이다. '살인범 체포' 특종이 심장 판막증 어린이들의 비참한 실태를 그린 기획기사보다도 훨씬 더 높은 평가를 받는 분위기에선 그런 유의 사건 취재에 정력을 쏟기 마련이다.
  
  이런 사건 치중의 기사 가치관은 사호의 근본 문제보다는 겉으로 드러나는 단편적, 피상적인 에피소드에 사람들의 관심을 쏟게 만든다. 뿐 아니라 특종경쟁을 심화시켜 오보의 가능성을 더욱 높이게 된다. 사건 기사에 쏟는 그 시간, 한 시간 먼저 알리려고 허비하는 수십 배의 시간, 그 시간을 다른 기사의 발굴에 쏟는다면 오보는 줄어들고 '알려야 할 가치가 있는 뉴스'는 더욱 많이 알려지게 될 것이다.
출처 : 마당
[ 2003-07-04, 15:1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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