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언론파워(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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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실 개방이 정부 방침
  
  문공부의 李廷培 공보실장은 이렇게 말했다.
  『정부의 방침은 행정부처의 모든 기자실은 모든 기자들에게 개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청와대도 이 방침을 따르려 하고 있습니다. 물리적으로 많은 기자들을 기자실에 출입시키는 것이 불가능할 경우에는 각 부처가 기자들과 협의하여 결정할 문제지요. 어쨌든 정부의 공식입장은 차별없는 개방입니다』
  
  한겨레신문사의 경우, 청와대, 국방부, 서울시경 등 세 곳에서 담당기자가 기존의 기자단에 들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경에는 9개 언론사가 기자단을 구성, 기자실을 이용하는데, 한겨레와 기독교방송 기자는 바로 그 옆방인 공보계 사무실의 소파에 앉아 공보계장 옆 전화기를 주로 이용한다고 한다. 한 공보관계 공무원은 『기자실과 전화기가 정부재산이고, 전화사용료를 부처에서 부담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다면 기자실 출입을 기자단이 멋대로 규제할 수 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중앙부처 대변인 출신인 한 언론인은 『우리의 기자실 제도는 일본의 관행을 본뜬 것인데, 정부와 언론의 편익이 맞아떨어져 지금까지 존속돼 왔다』면서 『새로운 언론질서 하에서는 이 제도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으면 여론의 지탄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고 했다. 기자협회 보도 지난 9월9일자 사설에서 「기자단 해체를 생각할 때다」고 주장, 이렇게 썼다. 『…출입부처의 행정 편의적 취재활동 통제의 창구로서, 또는 각종 이권개입 가능성을 지닌 카르텔적 일선기자 조직이 아니냐는 역기능적 비판을 강하게 받았음을 부인할 수 없다. 더욱이 기자단이란 이름 하에 다른 일선기자의 가입을 거부, 국민의 알 권리를 원천적으로 위협하는 언론통제적 엠바고를 공정보도의 차원에서 이를 어겼다고 하여 동료기자를 제명했던 사실을 기억해낼 수가 있다』
  
  1966년 5월에 한국비료가 사카린을 일본으로부터 밀置杉鳴?세관에 적발된 사건은 넉 달 뒤에 경향신문의 보도로써 정치 문제로 비화되었다. 이런 지각보도에 대해 한국신문 윤리위원회는 그해 11월16일에 경고문을 발표, 「당해 세관 출입기자단은 그동안 집단적으로, 또는 개별적으로 향응과 다소의 금품을 수수한 사실을 인지하였다」고 지적, 관련기자들의 문책을 요청하였다. 이것이 금품과 기사의 관계를 언론계가 스스로 문제삼은 최초의 예였고 기자단의 한 문제점을 입증한 사건이었다.
  
  기자실 문제는 기자들이 빠지기 쉬운 특권의식과 관할지의식을 상징하고 있다. 자신이 맡은 취재 영역에 같은 회사의 기자가 들어와도 거부감을 나타내는 소아병적 「영토의식」은 오보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복잡한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복잡하고, 이는 여러 각도에서 종합적으로 파악해야 진상이 규명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부의 여러 출입기자들이 협조해야 하는데, 특정한 출입기자가 단독으로 피상적 취재로 끝내는 수가 많아 일면적인 사실밖에 전달하지 못하는 수가 잦은 것이다. 기자사회에선 담당구역을 「나와바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나와바리」는 일본 조직폭력단 야꾸자 세계에서의 관할구역을 뜻한다. 「나와바리」를 둘러싸고 폭력단끼리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곧잘 터지는 것은 그것이 수입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한 고참기자는 기자단의 문제점을 이렇게 지적했다. 『기자들의 시각은 그가 어떤 사람들과 자주 만나느냐에 따라서 크게 영향을 받는다. 기자실은 부처 안에 있기 때문에 자연히 공무원들과 많이 만나고, 저절로 그들의 시각에서 사물을 보게 된다. 소금 먹은 소가 물을 찾아가듯 기자는 정보를 따라가게 돼 있다. 기자실을 통해서 공급되는 정보에 의존하여 편하게 취재를 하다가 보면 관변측 시각이 될 경우가 많아진다. 기자실을 부처근방의 건물에 두게 되면 민원인들이 많이 찾아오는 등 그 부처의 문제점을 더 많이 보게 될 것이다. 한때 경찰기자실이 없어졌을 때 오히려 좋은 기사가 더 많았던 기억이 난다』
  
  특권의식 버려라
  
  논설위원 출신의 한 정치인은 이렇게 말했다.
  『지난 대통령 선거 이후에 독자들의 기사를 보는 자세가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해야 한다, …돼야 한다, 식의 당위론 보다는 우리 사회의 여러 견해들을 균형있게 소개한 바탕에서 대안을 제시하는 글, 말하자면 분노하는 글보다는 고민을 많이 한 글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권력에 의한 언론통제가 사라진 무대에서는 용기가 기사와 논설의 판단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었다. 필자는 이 기사를 취재하면서 오늘 날 우리 언론의 보도 태도에 대한 많은 충고와 비판을 들었다.
  
  익명을 요구한 문공부의 한 간부는 이렇게 말했다.
  『기사의 가치개념이 바뀌어야 한다. 빠른 기사보다는 정확한 기사를 더 귀중하게 생각하는 언론풍토가 아쉽다. 사회의 흐름을 알려주는 분석적인 해설기사가 많아야 할 것이다. 미래를 전망하게 하는 기사와 국제적 시야를 넓혀주는 기사가 너무 적다. 특히 북한에 대한 객관적 정보를 많이 제공해야 통일문제의 해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언론사는 해외취재망을 넓혀 한국인의 시각으로 국제문제를 보는, 그런 기사를 많이 공급해 주었으면 한다』
  
  姜仁燮 민주당부총재(전 동아일보 논설위원)는 이렇게 말했다.
  『민주주의는 과정을 중요시하는데 우리 언론은 너무 결과중심적 보도를 하고 있다. 중요한 정책이 결정돼 가는 과정을 추적하여, 여러 계층·집단의 이해관계가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정치 수준을 높이는 데는 정치인 못지 않게 정치부 기자들의 양식있는 보도태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너무 가십기사 위주가 아닌가 생각할 때도 있다. 정치인들은 기사 경향에 맞추어 자신의 행태를 조정하는데, 언론이 정치의 본질적 문제를 다루어야 정치인도 그렇게 따라갈 것이다.
  
  잡지 저널리즘이 최근에 기여한 것은 사회 현상을 종합적으로 정리하여 보여주고 있다는 데 있다. 잡지가 신문에 앞서 금기를 깨 간 공도 크다. 종합잡지가 한국에선 고급신문(quality paper)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언론사는 기자들의 재교육에 돈을 더 써야 한다. 기자가 너무 일찍 자신의 자질을 소모해 버리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워터 게이트 사건취재와 같은 집요한 추적취재를 잘 볼 수 없다. 기자가 사실을 인용하는 데 머물지 않고, 스스로 진실을 규명한다는 자세로 사건에 밀착해야 하지 않을까』
  
  출판·잡지 편집전문가인 安尙秀씨(안 그라픽스 사장)는 이렇게 말했다.
  『꼭 기자가 아니라도 언론사에 몸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에서는 대단한 특권적 신분임을 언론인들은 알아야 한다. 그리고 더 겸허해져야 한다. 기사 스타일부터 순해졌으면 한다. 제목을 보면 늘 그 상황에서 최대치의 표현을 하는 것 같다. 가르치고, 계도하고, 공격하고…이런 권위적 ·교조적 기사가 너무 많은 것 같다. 단어선택도 규명, 단행, 침몰, 공중분해, 증발, 지? 교통전생 식으로 과장과 단정이 심한 경향이다. 지면 편집도 시커먼 컷이 자주 등장하는 등 살벌한 분위기가 주조이다. 나는 기자 수첩을 자주 읽는데, 거기엔 따뜻함과 인간애가 있기 때문이다』
  
  한 전직 언론인은 『신문사를 그만두니까 비로소 언론의 횡포와 힘을 알게 되더라』면서 『언론이 좀더 정정당당해 졌으면 한다』고 했다. 특히 오보를 바로잡는 자세를 비판했다.
  
  한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중앙 6개 신문사의 어느 한 달간 오보 정정 회수가 단 1회였는데, 뉴욕 타임즈 한 신문의 같은 기간 정정 회수가 30여회였다고 한다. 한국 신문들이 뉴욕 타임즈보다 더 정확한 기사를 썼기 때문이 아니라 오보의 정정에 인색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84년 12월에 한국언론연구원이 조사한 「신문보도의 정확성」에서는 조사 대상기사(2백84건) 가운데 60.6%가 정확한 기사로 나타났다. 석간의 부정확도(41.8%)가 조간(36.4%)보다 약간 높게 나타난 것은 마감시간 때문일 것으로 분석되었다. 한국신문의 부정확도는 외국에 비해 떨어지는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기사가 취재 대상에게 불리한 내용의 기사에서 부정확도가 더욱 높게 나타나 이런 기사일수록 기사작성에 신중을 기할 것이라는 예상이 뒤집어졌다. 이는 우리 나라 기자들의 인권의식을 엿보게 해주는 자료로 보인다.
  
  대기자의 대특종
  
  지난해 4월20일 석간신문에는 19일 오후에 투신자살한 범양상선 박건석(朴健碩) 회장의 유서가 실려 있었다. 경향신문 사회부 유진오(兪珍五) 차장(당시)은 이 유서를 읽다가 섬광처럼 스치는 특종의 냄새를 맡았다. 「韓이…이번 조사로 끝까지 나를 괴롭히려는 것을 알았다」는 문장에서 「이번 조사」는 무엇인가. 「그는 많은 재산(외화)를 회사로부터 가져갔으며…」에서 「많은 재산」은 무엇인가. 「조사」와 ·「외화」를 연결시키면? 사회부 기자 25년 경력의 兪기자는 朴회장의 자살 동기는 「거액 외화도피 조사」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면 어느 기관에서 조사했을까. 재벌기업의 거액 외화 도피사건을 경찰이 손댈 수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국세청이나 검찰일 것이다. 국세청이라면 조사국이나 국세조사국이, 검찰의 경우는 대검중앙수사부나 서울지검특별수사부일 수밖에 없다.
  
  兪기자는 특종기에서 이렇게 썼다.
  
  「문제는 조사를 한 사람과 조사를 받은 사람, 어느 쪽을 취재 대상으로 삼을 것인 가인데 이는 경험을 통한 선택이다. 취재를 시작한 지 얼마 안돼 『구구사』란 대답을 듣고는 내 귀를 의심했다. 달러를 추적하는 데 무슨 전화사 간판같은 이름이 나오는가 했다. 朴회장이 자살하기 이전까지의 조사에서 드러난 9백94만 달러를 두고 『그들』사이에 통해온 은어임을 알게 된 때에는 대어를 낚았다는 흥분에 한동안 콧등이 시큰했다」
  
  이 특종은 다음날 경향신문 1판의 사회면 머리기사로 나갔다. 「범양 외화도피는 9백94만불, 국세청 조사 뒤 朴회장 자살」이란 이 기사는 범양사건 수사를 확대시키고 사회문제로 만드는 데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54세의 고참기자인 兪珍五 부장대우는 다른 기자들이 놓쳐버린, 유서의 몇 개 단어를 실마리로 삼아 한국을 뒤흔든 대특종을 한 것이었다.
  
  지난 82년에는 공해보도로 한국기자상을 받았던 兪기자는 지난 74년에도 하찮게 보이는 현상을 추적, 특종을 한 적도 있다. 경남도청을 출입하던 兪기자는 퇴근무렵에 양정국장실로 들어갔다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국장이 앉아야 할 상석에는 부지사가 앉아 무슨 회의인가를 주재하고 있었다. 국장은 과장 옆 끝머리에 불안스럽게 앉아 있었다.兪기자는 직감적으로 양정국장이 관련된 큰 부정사고가 났다고 판단했다. 회사로 돌아온 그는 경남도 산하 26개 시군의 숙직실을 차례로 전화로 불러 『별일 없는가』라고 유도성 질문을 했다. 삼천포시의 숙직원이 『보안이 잘 되고 있습니다』고 대답하지 않는가. 이것이 세 시장 등 수십 명의 공무원이 구속되거나 징계를 받게 된 삼천포 양곡창고 횡령사건 특종의 계기였다.
  
  사소한 「이상」에서 대특종을 생산하는 兪기자에게서 대기자 제도가 한국에서 정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 할 수 있다. 지금은 체신부를 맡고 있는 兪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저의 경험으로 미루어 기자는 지방 근무 경험, 사회부의 경찰출입 경력을 가지는 게 좋다고 봅니다. 저는 25년 가운데 17년을 부산, 충무 등에서 지방주재기자로 일하다가 서울로 올라 왔는데, 중앙기자들이 너무 서울 중심적인 시각에서 기사를 쓰는 것을 보고 지방적 관점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기자는 역시 나이가 들어야 사회를 보는 눈도 맑아지고,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는 여유도 생기며, 인간애를 깔고 기사를 다루는 양식을 가질 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외국에서 판사를 뽑을 때 변호사를 거친 30대 중반의 법관을 임명하는 것과 같은 이치로 기자도 연륜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기자가 가진 엄청난 영향력을 생각할 때 말입니다』
  
  대기자제도의 시험 : 高기자
  
  서울신문 체육부기자 고두현(高斗炫)씨는 국장급 기자이다. 54세의 高기자는 1960년 7월 체육부 기자가 된 뒤 28년동안 이 승부의 세계만 맡아왔다. 5년간 주간스포츠 부장을 지낸 뒤(이때도 취재를 했다) 체육부의 평기자 역할을 자원, 지난 81년부터 신문사 후배인 체육부장의 지시를 받아가며 기자로 일하고 있다. 직급은 국장급이라 월급은 물론 부장보다 많다. 서울 올림픽 때는 체육부장 역할을 맡아 경기장에 나갈 수 없었던 것이 못내 아쉬운 듯했다. 아주 자상한 인상을 풍기는 高기자는 『대기자란 말을 들으면 쑥스럽기만 하다』면서 『내가 잘 해야 이런 제도가 존속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노력을 좀 했다』고 말했다.
  
  그는 국장급 기자의 행동원칙을 이렇게 설명했다.
  첫째, 후배인 부장에게 복종, 위계질서를 잘 유지해야 한다. 대기자의 성공여부는 부장과의 인간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둘째, 늘 공부해야 한다. 월급에 비례하여 더 많이 공부해야 한다. 그래야 회사와 후배가 대기자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셋째, 건강에 신경 써야 한다. 기자는 발로 쓰는데 체력이 딸리면 기사는 그 질이 낮아진다.
  넷째, 후배들에게 늘 도움말을 주어야 한다. 기자교육 제도가 허약한 한국의 언론풍토에서는 선배가 후배를 인간적으로 지도하는 것이 최선의 교육이다.
  다섯째, 손을 떠난 기사에 대해서는 그것이 실리든, 안 실리든, 수정이 되든 안 되든, 일체 신경을 쓰지 않고 부장에게 맡겨버린다.
  
  高기자도 노기자의 장점을 「인간에 대한 애정」이라고 설명했다. 「인간이야말로 가장 흥미진진한 현장」이라고 말한 高기자는 『사물을 종합적으로 보고 판단해야 하며, 특히 비판하는 기사를 쓸 때는 얻어맞는 사람의 입장에 한번 서 보고, 그에게 해명의 기회를 반드시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올림픽에서 편파적인 판정으로 금메달을 땄다는 말을 들은 권투선수 朴時憲에 대해서도 高기자는 『편파적인 판정은 심판이 했는데 朴군이 욕을 함께 먹는 것이 안쓰럽다』고 했다. 그는 『늘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을 만나다가 보니까 정신적으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것 같다』면서 인간의 가장 원시적인 모습이 적나라하게 표출되는 스포츠를 취재하면서 패자들에게 더 관심이 가더라고 했다.
  
  대기자는 「인간」을 본다
  
  『헤밍웨이가 승자에게는 아무 것도 주지 말아야 한다고 썼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승자는 돈, 인기, 상 등 모든 것을 가지게 되는데, 최선을 다한 패자는 너무 쉽게 망각되지요』 그는 『스포츠에선 노련하다고 꼭 이기는 것이 아니다. 훌륭한 기량을 가지고도 운이 나빠 정상을 밟지 못한 선수가 얼마나 많은가. 손기정 선수에 가려 크게 각광을 받지 못했던 남승룡씨는, 금메달을 따고도 남을 기량을 갖고 있었지만, 베를린 올림픽에서 작전을 잘못 짜 동메달에 그쳤고, 지금도 그 한을 못 풀었는지 매일 옛날 그 폼대로 달린다고 한다』고 했다. 그는 『정상에 오른 선수는 그럴 만한 이유를 다 가지고 있는데 공통점은 남에게지지 않겠다는 오기인 것 같다』고 했다.
  
  프로권투 주니어 미들급 세계챔피언 자리에 오른 金基洙 선수의 이문동 집에 초대받아 간 적이 있었다고 한다. 金씨는 아이들이 아무리 심한 장난을 쳐도 제지하지를 않아 그 이유를 물었더니 이렇게 말하더라고 한다. 『셋방에 살 때 아이들이 울면 주인한테 쫓겨날까 봐 입을 틀어막으며 길렀습니다. 이제 돈을 벌어 내 집을 샀으니 아이들을 멋대로 뛰어 놀도록 하고 있습니다』
  『金선수가 셋방에 살면서 아침마다 연습을 하고 돌아오면 부인이 집 바깥에서 기다리다가 달걀 하나씩을 남편 손에 꼭 쥐어주었답니다. 아이들한테는 줄 수 없는, 돈이 모자라 두 개를 살수도 없는 그런 달걀이었답니다』
  
  高기자는 『金선수의 경우에는 가난의 한풀이로서 챔피언이 될 수 있었고, 그래서 주먹으로 번 돈을 잘 관리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고 했다. 그도 兪珍五기자처럼 기자와 판사를 비교해 가며 설명했다. 『법관과 기자는 인간을 판단하고 비판을 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사회 경험을 쌓고 인생의 희로애락도 두루 경험하여 세상과 인정의 움직임을 좀 알 수 있는 나이가 되어야 판결이나 기사가 제대로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高기자는 『기자는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또 과거에 아무리 큰 특종을 했다 해도 프리미엄이 없이 현장에서는 젊은 기자와 같은 조건에서 뛰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는 스포츠 세계처럼 비정하다. 기자에게는 오늘과 내일이 있을 뿐이다』고 했다.
  
  기자 早老는 국가적 손실
  
  과문한 탓인지 모르지만 50대의 나이에 현장에서 뛰고 있는 취재기자로는 서울의 경우엔 兪, 高기자 두 사람 뿐인 것 같다. 이번 취재를 하면서 놀란 것은 해방동이인 필자가 어느새 한국의 취재기자들 사회에서는 노년층이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해방동이란 말을 하도 많이 들어 아직도 철이 들지 않았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곤 하는 사람이 노년층이라니. 필자는 기자생활 18년째이지만 한번도 『흠이 잡히지 않을 만한 글을 한번 썼다』는 만족감을 느껴보지 못했고, 요사이도 기사를 쓴 뒤에는 늘 부정확성과 부당성에 대한 지적을 받고 있다. 그럴 때마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써 제꼈던 젊은 날의 기사들이 범했을 잘못과 그로 인해 피해를 보았을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곤 한다.
  
  그런데 이제 뭔가를 좀 알 만한 해방동이의 나이가 되면 많은 기자들이 차장, 부장 등 관리직이 되어, 한 부장의 표현을 빌면, 「모든 것을 체념한 채, 가두어진 야생마처럼」 현장을 떠나게 된다. 원숙한 기량으로써 우리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나이에 붓을 꺾는 것이다. 「이제 기사를 쓰면 제대로 좀 쓸 것 같아지는」 나이에 일선기자 제대식을 올려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언론계와 사회의 큰 손실이자 그 기자에겐 차라리 비극이다.
  
  高斗炫 기자는 『부장급이 될 단계에서 적성에 따라 관리직과 대기자 코스로 나누어 그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끔 언론계의 인사제도가 개편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제시대부터 내려오는 우리나라 편집국의 구조와 출입처의 구분방식이, 복잡한 현대사회의 현상들을 제대로 알리기에는 너무 낡았듯이 조로(早老)현상을 재촉하는 언론계의 인사제도는 성숙한 보도풍토를 구조적으로 방해하고 있다. 기자의 무기는 전화기와 볼펜뿐이고, 신문은 결국 윤전기와 기자인데, 그 동안 한국의 언론사는 인간에 대한 투자를 너무나 등한히 하였고, 그에 따른 피해는 국민들에게 전가되고 있다.
  
  취재 올림픽대회 같은 것이 열린다면 한국의 기자들은 운동선수들이 서울올림픽에서 올렸던 성적에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다. 기자 개개인의 뛰어난 취재기량을 조직화하여 좋은 지면으로 승화시키는 데는 언론사란 조직의 총체적 역량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이 점에서 전근대적 취약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한국언론 경영의 최대 문제점인 것 같다.
  
  언론자유의 외부적 환경은 마련되었으나 이 찬스를 살리기 위해서는 언론의 내부개혁이 따라야 하며, 민주사회의 견인차인 언론의 막강한 힘을 자각한 바탕에서의 겸허한 윤리의식, 과학적 경영, 그리고 직업의 전문기능 향상을 통해서 성취될 것이다. 다행히 한국언론이 겪고 있는 내부진통은 암환자의 말기 진통이 아니라 새 생명을 탄생시키려는 임산부의 진통인 듯하다.
출처 : 월조
[ 2003-07-04, 15:1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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