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언론파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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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호봉제 실시
  
  서울신문은 지난 87년에 총매출액 6백17억2천만원, 당기 순이익 7억6천2백만원을 올렸다. 지난 7월1일부터 소급적용되고 있는 임금인상률에 의해 사원들은 약 27%가 늘어난 봉급을 받고 있다고 한다(정율인상 20%, 정액인상 2만원, 상여금 50% 추가 지급). 서울신문의 인건비 비중은 지난해 약 23%였으나 올해는 30%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경영진에 따르면 올해는 약간의 적자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서울신문도 직종간의 호봉차별을 철폐, 단일호봉제를 채택하기로 노사 합의, 그 방안을 연구중이다.
  
  올해의 중앙 언론사 평균 임금인상률은 지난해 보다도, 또 타기업보다도 훨씬 높은 약 20% 수준이었다. 한 언론사 임원은 『노조에게 떡주어 달래려다가 보니까 임금이 많이 올라갔다』고 했다. 임금인상을 입막음용으로 사용하려 했다는 얘기다. 임금인상과 함께 동아일보와 서울신문 등 많은 언론사에선 시간외 근무수당을 지급하기로 합의, 그 실천을 위한 기초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한 조합장은 『야근을 밥 먹듯하는 기자들이 시간외 근무수당을 받기 시작하면 회사는 큰 부담을 지게 될 것이다. 그런 부담을 지는 것보다는 인원수를 늘려 시간외 근무를 줄이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다른 기자는 『기자들이 월급을 많이 받는다는 비판이 거센데 특근수당까지 요구하는 것이 과연 사회적 설득력이 있는 것인지 선뜻 판단이 안선다』고 했다.
  
  최근의 단체교섭에서 단일호봉제로 바뀌어진 언론사가 많다. 동아, 경향, 매일경제신문은 이미 단일호봉제를 실시하고 있다. 한국, 중앙, 서울신문은 단일호봉제에 합의, 실시를 기다리고 있다. 단일호봉제는 편집국 이외의 부서에서 오래 전부터 요구해 왔던 것이다. 동아일보의 경우, 공무국의 고졸직원 첫 호봉과 편집국 대졸 직원의 첫 호봉 사이에 10호봉의 차이를 두는 식으로 하여 기존의 직종?복수 호봉제를 통일하였다. 호봉승급에 따른 임금인상분이 기자직 이외의 직종 종사자들에게는 전보다 많게 되었다. 언론노조가 비록 공정보도를 전면에 내세우고는 있으나 임금인상도 소리 없이 수월하게 진행돼 언론사의 봉급체제는 더욱 고수준으로 오르고 있다.
  
  모 신문사 사장은 『앞으로 2∼3년간이 아주 어려운 시기가 될 것 같다. 그야말로 적자생존의 시대가 시작되었으니 앞으로는 회사의 경영상황에 따라 임금수준도 크게 차이가 날 것이다. 이제는 돈을 많이 버는 회사에서는 많이 받고 적게 버는 회사에서는 적게 받는다는 원칙이 확립돼야 할 것이다』고 했다. 동아일보 언론노조원 5백70명 가운데 기자는 2백7명, 공무국원 1백74명, 업무국원 1백82명, 기타 7명이다. 서울신문노조는 6백16명중 2백33명이 기자직, 전산·제작국 직원이 1백91명이다.
  
  신문사 노조의 경우, 기자들과 공무국(전산 부문 포함) 계통 종사자가 가장 많다. 노조활동을 주도하고 있는 기자 수는 전체 회원의 37∼38% 수준이다. 기자들은 공정보도, 다른 직종 사람들은 처우개선에 주안점을 두어 깍지를 끼고 있는 것이 언론노조의 공통점이다. 기자들은 파업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공무국 계통 사람들을 가입시켜야 회사측에 압력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 판단 하에서 제휴관계를 이루었다. 이런 동반관계는 어차피 과도적이란 것이 노조활동가들의 공통된 전망이다. 공정보도라는 목표가 달성된 뒤에는 기자들이 노조운동에서 미온적 자세를 보일 것이며, 그 뒤로는 공무국이 주도권을 잡고 주로 임금인상 등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쪽으로 변할 것이란 전망이다.
  
  일부에서는 이때가 되면 기자직 노조와 다른 직종 노조로 분리돼야 하지 않겠느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의 언론노조 쟁의에서 실정법을 어긴 경우는 문화방송 노조의 파업이었다. 일부에선 언론노조가 불법파업을 할 경우에 다른 노조의 불법 행동 등 우리 사회의 법률경시풍조를 언론이 어떻게 비판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하기도 했다. MBC노조 안에서도 이 문제를 놓고 이견이 있었으나 올림픽을 앞두고 공권력 행사가 곤란할 것이라는 판단 아래에서 방송진행에 결정적인 장애를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 부분적인 파업을 했다고 한다. 한 MBC 노조간부는 『그때는 실정법을 적용하면 처벌을 감수하겠다는 자세였다』고 말했다.
  
  유일한 성역에 견제가 없다
  
  한 신문사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6·29선언 이후 우리 사회에서 성역이 하나씩 무너져 가고 있는데 아직 도 남아 있는 유일한 성역이 언론이란 생각이 듭니다. 과거에는 정치가 언론을 장악했지만 요사이는 언론이 정치를 지배하고 있는 것 같아요. 여당은 언론을 이용해서 정치를 하려 하고, 야당은 언론을 타기 위해 정치를 하고…』 안기부의 한 직원은 『여론과 사법이 언론을 견제해야 한다고 하지만 여론을 만드는 것이 언론이고, 사법은 언론의 눈치를 보고 있는데 견제가 제대로 되겠는가. 옛날엔 우리가 언론을 견제했지만…』이라고 했다.
  
  徐基源 사장은 『이제는 우리 언론이 과거와는 다른 의미에서 책임감을 갖고 겸허해져야 할 때다』고 말했다. 『옛날엔 정부가 국가이익을 내세워 언론의 책임을 강조했었지만 이제는 언론 스스로가 그 막강한 힘을 인식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겸허하게 받아드려야 할 것입니다. 언론상호간의 견제가 언론의 횡포를 막는 한 방법이지요. 신문이 많이 생기면 자연히 그렇게 되리라 봅니다』 한 통신사의 임원은 『우리 언론도 이제는 한겨레 신문처럼 다른 언론사를 취재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지는 프레스(Press)란 고정란을 두고 있는데, 건전한 상호비판이 언론을 건강하게 만든다』고 했다.
  
  徐基源 사장은 신문이 많이 생기면 신문마다 개성있는, 다양한 언론풍토가 조성돼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견해를 소개하는 창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순복음교회가 내는 국민일보는 한때 반공을 사시로 내정했다가 바꾸었다고 한다. 세계일보도 사주격인 통일교의 성격에 비추어 보수 성향을 띌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 신문을 왼쪽에 둔다면 두 종교 계통 신문은 오른쪽, 그 사이엔 기존 언론이 자리잡아 단일색이던 우리의 언론계도 여러 가지 색감을 풍기게 될 것이다.
  
  지난 87년에 당시 언론연구원의 崔鍾洙 이사는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받은 박사논문(「한국 신문의 구조적 성격에 관한 연구」)에서 한국의 여론을 주도하고 있는 6개 중앙일간지의 성격을 분석한 바 있었다. 崔씨는 별표에서 보는 것처럼 조선, 동아, 한국일보는 자유민주주의의 가치관을 가장 강조하는 편이고, 중앙일보는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사회책임형, 경향신문의 국가발전을 강조하는 발전매체형, 서울신문은 언론의 계도성과 정부정책을 강조하는 권위주의형이라고 분류하였다. 이들 일간지가 비록 정권에 대해서는 비판적일지라도 본질적으로 체제 옹호적이라는 것을 잘 알 수가 있다. 조선, 동아, 중앙, 한국 등 4개 신문을 중도보수적 매체로 구분한다면 이 네 신문이 중심을 잡고 진보와 보수를 대변하는 신문들이 섞여 있으면 한국의 언론구조는 상당히 안정되고 균형 잡힌 모습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한 언론인은 말했다.
  
  창간기념사설에 나타난 각지 유형별 배합비율
  
  
  특정집단 대변지의 등장
  
  한겨레신문은 그 창립과정부터 기존 언론사와 전혀 다르고 지면도 이 사회의 소외된 계층의 의식을 선명하게 반영하고 있을 뿐 아니라 「금품수수의 거부 선언」등 취재행태 면에서도 깨끗함을 강조하는 등 기존 언론 질서에 충격과 함께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국민의 여론을 불편부당하게 알리겠다」는 식의 사시가 아니라 소외 계층의 입장을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특정집단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최초의 「개성있는 신문」이란 평가도 있다. 2만7천2백33명의 주주가 약 50억원의 자본금을 만들었던 한겨레는 현재 발행부수가 약 35만, 가판부수가 약 5만으로 추정되며, 올해 안에 흑자로 전환될 것이라고 한다.
  
  한겨레는 지난 9월20일부터 기존 주주들을 대상으로 증자공모를 하고 있는데 10월10일 현재 3억4천7백만 원을 모았다. 주주들 중에는 30대의 봉급생활자가 가장 많다고 한다. 출신별 기자 구성을 보면 1백50여 명 중 수습기자가 21명, 해직기자 출신이 40명, 기존 언론·출판사 출신이 약 90명. 월급이 거의 반으로 낮아지는 것을 무릅쓰고 자리를 옮긴 기존 신문·방송·통신사 출신들이 40여명에 이른다. 한겨레 신문은 기자들의 윤리강령에서 금품을 받지 않는다고 공개적인 선언을 했다. 모 신문사 출신의 한 사회부 기자는 『한겨레로 옮긴 다음에는 회식 때 양주 마시고 쇠고기 먹은 적이 없는 것 같다. 회사 근방의 구로공단 노동자들이 자주 오는 돼지갈비 집에서 주로 삼겹살 먹고 소주 마시고 있다』고 웃었다.
  
  기존 신문사에 있었으면 7백%의 보너스와 80만원의 월급을 받았을 이 기자는 월 53만원을 받고 있으며 상여금은 없다. 한겨레 기자들은 지난 여름휴가와 추석 때 위로금조로 7만원씩을 받았다. 이 회사에선 외근 기자들에게 하루 1만원씩에서 3천원까지의 취재비와 월 6만1천원씩의 활동비를 주고 있다. 사회부에는 다섯 대의 취재차를 고정배치, 취재지원면에서는 기존 언론사에 못지 않다. 한 기자는 『노사분규나 학생시위 현장에 가면 우리 기자들이 박수를 받는 경우가 많다. 그때는 멋쩍기도 하고 기분이 좋기도 하다』면서 『출입처에서는, 왜 한겨레는 그렇게 보느냐는 화제가 자주 나와 토론을 벌이고 다녀야 할 때가 많다』고 했다.
  
  한겨레 신문의 가장 큰 특징은 우리 사회에서 소수파의 견해를 대변함으로써 이 사회에 토론의 풍토, 이견개진의 분위기를 확산시키고 있는 점이라고 말하는 언론학자들도 있다. 지하철 파업문제를 놓고 기존 언론사가 일제히 「지하철은 어떤 경우에도 다녀야 한다」고 쓰면 한겨레는 「지하철은 안 다닐 수도 있다」고 썼다. 서울대학교 총장실에 난입한 학생들을 언론이 나무라면 한겨레는 「왜 학생들이 그렇게 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중요한 쟁점에 대해서 한겨레는 기존 언론의 주장과 반대에서는 경우가 많은데, 다수의견에 대한 이런 반(反)의 입장이야말로 한겨레가 존재하는 이유일 것이다.
  
  결국 취재력이 문제
  
  한겨레가 최근 북한화보를 시리즈로 게재하자, 한 50대 목소리의 독자가 전화를 걸어 『때려 부시러 가겠다』고 협박을 했다. 한겨레에선 경찰에 신고, 전경들의 보호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래도 한겨레는 전경제도 폐지론의 입장이다. 한겨레 기자들의 사고방식에서 기존 언론사 기자들과 두드러지게 다른 것은, 盧泰愚정권의 정통성에 의문을 갖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런 입장이기 때문에 기존 언론사처럼 「법은 지켜야 한다. 악법도 개정될 때까지는 지켜야 한다」라는 시각에서 사회현상을 보지 않고 불법행동에 대해서도 이해하려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한겨레의 한 기자는 『우리 신문이 실정법에 따라 등록을 한 매체이므로 盧泰愚정권의 정통성을 부인한다고는 볼 수 없다. 전면부인 보다는 문제점이 있다고 보고 그것을 감시하려는 자세다』고 했다. 한겨레신문의 기자들 중에는 이 신문의 경향성과 저널리즘의 본질적인 논리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들이 더러 있는 것 같다. 宋建鎬 사장도 창간무렵에 기자들을 모아 놓고 『한겨레는 운동권의 팸플릿이 아니다. 기존 신문의 기사문체가 그런 대로 적합하다고 본다. 기사에서 너무 의식이 튀지 않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중견일선 기자들은 수습기자나 젊은 기자들이 너무 주장을 앞세우면 취재의 중요성을 강조, 『말로 떠들지 말고 기사를 통해서 말하라』고 충고한다는 것이다. 한겨레 기자들은 가끔 「취재원에 밀착하려는 집념이 약하다」느니 「기사에서 객관과 주관이 혼동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일부 고참 기자들에 대해서는, 너무 오랫동안 현장과 멀리 떨어져 있어 기사에 대한 감이 약하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어느 한겨레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기존 신문사에서 한겨레로 옮긴 기자들 중에는 이것이 우리가 바라던 모습이 아니지 않느냐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고 주장하지요. 바람직한 한겨레의 모습은 좋은 기사를 통해서만 만들어낼 수 있고, 그런 점에서 결국 취재력에 귀착되며, 저널리즘의 원칙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고 봅니다』
  
  기자 1만명, 사이비 문제대두
  
  지난 4월1일 현재 서울에는 21개의 신문·통신사, 지방에는 10개의 신문사가 등록돼 있었다. 지난 9월말까지 서울에서 17개의 일간지, 지방에서 12개의 일간지가 추가로 등록돼 우리 나라의 신문·통신사는 60개로 늘었다. 새로 등록된 신문사는 거의가 올해 안으로 신문을 낼 것으로 보인다. 6·29선언 이후 새로 등록된 잡지사는 약 9백에 이른다.
  
  지난 1월1일 현재 한국의 언론 종사자들은 신문이 1만1천6백52, 통신이 6백66, 방송이 1만2백10명으로 모두 2만2천5백28명이었다. 이들중 편집국, 보도국, 출판국, 편성국 등 기자직으로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은 전체의 38.2%인 8천6백4명이었다. 그 뒤에 새로 생긴 신문, 잡지의 기자들을 합치면 기자란 이름으로 전국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이들은 1만명을 넘을 것이다.
  
  일간 정기간행물 등록현황 ('88.9.30 현재)
  
  
  
  최근 기자협회에는 지방에서 사이비 기자에 대한 정보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기자직을 돈주고 산다느니, 지면을 쪼개어 기자에게 판다느니, 기자가 기업체에 와서 광고를 요구하고, 지국장이 기자채용권을 행사한다는 따위의 듣기에도 민망한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 한 언론사 사장은 『머지 않아 언론공해란 말을 다시 듣게 될 것 같다』고 했다. 기자협회보도 사설에서 사이비 기자 문제를 거론했다. 이런 제목의 사설은 1970년대 초 이후 처음일 것이다. 사이비 기자의 횡포는 사회부정의 크기와 비례한다.
  
  약점을 가진 사람이나 조직이 사이비 기자의 밥이 된다. 이 문제의 해결이 어려운 것은 피해자가 그런 약점 때문에 신고를 꺼린다는 데 있는 것이다. 일부 지방지에선 1면 머리기사에 「뭐냐?」 「밝혀라」 식의 정치선전문과 비슷한 제목이 등장하는 등 신문의 질적인 저하 현상도 우려되고 있다.
  
  언론통폐합의 내막
  
  숫자상으로 한국의 언론은 1980년 11월의 언론통폐합 이전 상황으로 돌아가고 있다. 통폐합 이전에는 전국에 63개의 언론사(신문 28, 방송 29, 통신 6)가 있었다. 이것은 언론 통폐합이 반(反)역사적인 조치였을 뿐 아니라, 기능적인 면에서도 실패작이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언론통폐합 문제는 이번 국정감사에서도 쟁점이 되었지만 앞으로도 언론계에 상당한 파문을 계속 던질 것으로 보인다. 언론통폐합 때 청와대 비서실에 있었던 한 고위공직자는 이렇게 말했다.
  
  『언론사 통폐합 계획은 그해 5월27일에 발족한 국보위에서 만든 것이었다. 국보위 문공위원회는 위원장인 오자복(吳滋福)씨(현 국방장관) 밑에 許文道, 안병규(安秉珪), 염정길(廉吉正), 권숙정(權肅正) 등 전직 언론인과 허만일(許萬逸), 정태수(鄭泰秀), 김행자(金幸子), 김상준(金相駿)씨가 위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許文道씨가 중심이 되어 언론통폐합 계획을 마련, 全斗煥 상임위원장에게 보고했으나 결심을 받지 못했었다. 全위원장이 대통령에 취임한 지 석달 뒤인 11월에 갑자기 이 계획을 실천하기로 하였다. 그때도 정무비서관이던 許씨가 이 작업의 중심이 되었고 李光杓 당시 문공장관이 행정적으로 움직였다. 許, 李 두 사람이 이 작업의 실무주역이었다』
  
  당시 국군보안사의 간부였던 한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11월 어느 날 이광표(李光杓) 문공장관이 盧泰愚사령관을 방문했다. 참모가 배석했는데, 李장관은 언론통폐합 계획을 설명하면서 보안사의 협조를 요청하였다. 盧사령관은 화를 버럭 내더니, 왜 이런 것을 우리한테 시키느냐고 李장관에서 말했다. 이렇게 하여 보안사가 언론사주들로부터 포기각서를 받는 등의 악역을 맡았다』 그때 청와대를 출입했던 중앙일보 성병욱(成炳旭)씨(현재 편집국장대리)는 지난 10월14일치 중앙일보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11월8일은 토요일이었다. 全대통령은 출입기자들과 저녁을 함께 했다. 언론통폐합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全대통령은 통폐합 필요성을 얘기하면서 방송을 보상하려면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식의 소극적인 태도였다. 그 얼마 전 당시 보안사령관도 방송보상에는 돈이 많이 드는데 우리에게 그런 커패시티가 없어서…라고 대통령과 비슷한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오히려 당시 주도세력의 나이 든 층에는 신중론이 있었던 것으로 보는 게 사실에 가깝다. 그러자 강력추진파 측에서 「연부(年賦) 보상」이란 아이디어를 내 신중론의 논거를 무너뜨렸다는 것이다.
  
  그 마지막 결판과정에서 문공부 측이 일역을 했다는 게 알만한 사람들간의 통설이다」 그때 청와대 사정 수석비서관이었던 許三守씨(현 민정당 지구당 위원장)는 『이 계획의 입안, 실천에는 어떤 언론사의 경영진도 간여하지 않았다. 그랬었다면 이 계획은 실천되지 못했을 것이다. 정부측에서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소신대로 처리했기 때문에 통폐합이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기자단 폐지론도
  
  언론과 정부권력의 관계도 크게 변했다. 군, 안기부, 문공부, 보안사를 비롯한 어떤 정부기관도 이제는 『기사를 빼달라』는 요구를 하지 않고 있다. 취재를 하면 당연히 기사화된다는 전제하에서 『이왕 쓸 바에야 우리쪽의 견해를 정확히 써달라』는 식의 적극 홍보 자세로 바뀌는 중이다. 특히 언론으로부터 오랫동안 성역이 돼 있었던 군에서는 기자가 자료를 요청하면 밤새워 보고서처럼 두툼한 자료를 만들어 주기도 하는 등 판이한 태도로 변해가고 있다.
  
  盧泰愚 대통령의 측근에는 언론의 생리에 밝은 참모들이 많아 『언론을 이용하여 정치를 하려다가 언론에 되려 이용당하고 있다』느니 「권력과 언론의 밀월」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이들이 5공비리나 全斗煥 전대통령에 대한 정보를 기자들에게 흘려 언론에 의한 全씨 격하와 5공화국 단절을 시도했다는 얘기도 있다. 대통령 측근에서는, 대통령이 민정당 대표로 있을 때 민정당을 출입했던 기자들 중 몇 명을 청와대로 그 출입처를 바꿔주도록 소속 언론사에 부탁한 적도 있었다.
  
  새 신문들이 많이 생기는 바람에 행정부처의 기자실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지난 9월9일 한겨레 신문사의 宋建鎬 사장은 盧泰愚 대통령에게 보낸 공문에서 한겨레 기자의 청와대 상주 취재 허용을 요청하였다. 지난 20일 공개한 이 공문에 따르면, 지난 7월 27일에 洪性澈 청와대비서실장은 『신규 출입·취재를 희망하는 언론사들이 계속 늘어나 모든 언론사 기자들에게 출입·취재의 편의를 제공하는데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어 종합적으로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청와대의 한 고위당무자는 『대통령 실은 이미 지난 5월부터 언론사 급증에 따른 대책으로 모든 언론에 대한 청와대의 취재 개방은 미국 백악관식의 정례 브리핑을 중심으로 하고 기자들의 청와대 근무자에 대한 개별 취재는 사전 약속에 의해서 하도록 방침을 정했다』고 했다. 약 30억원의 예산으로 청와대 경내에 브리핑룸을 신축할 계획이라고 한다. 청와대에는 중앙6개 일간지와 방송 및 경제신문(매일경제와 한국경제) 그리고 부산일보 등 지방지와 연합통신을 합쳐 16개 언론사 기자들이 출입·취재하고 있다.
출처 : 월조
[ 2003-07-04, 15:2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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