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뽀 心藏 기형어린이의 삶과 죽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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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뽀·心藏기형어린이의 삶과 죽음
  
  한국에선 한해에 새로 생기는 선천성심장기형어린이들의 숫자는 4천 내지 5천명에 달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중 반쯤은 1년 이내에 사망한다.
  
  <1981년 1월 신동아>
  
   삶의 목표 메이요병원
  
  金대위는 발끈했다. 『당신 달은 길어야 앞으로 1년밖에 못살 것 같으니 포기하시죠』젊은 의사가 표정없이 내뱉는 이 말이 金대위의 절망감을 자극해서 분노의 덩어리로 바꿔놓은 것이다. 金대위는 의사의 멱살을 잡고 흔들며 소리쳤다. 『아무리 희망이 없다고 해도 의사가 생명을 포기하라고 말할 수 있나!』
  
  金대위는 입술과 손톱끝이 새파랗게 질려있는 딸 영희를 안고 뛰쳐나오며 선언했다. 『10년 뒤에 봅시다. 이 아이를 생생하게 살려가지고 데려오겠습니다』그 뒤 8년동안 金대위는 釜山의 어느 종합병원에서 선언한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의 생활 전부를 바쳐왔다.
  
  처음엔 딸의 진료보다도 생명의 연장이 문제였다. 그때 이 젊은 장교는 大邱에서 셋방살이를 하고 있었다. 겨울이 되면 온돌방의 건조한 공기가 딸의 심장과 허파와 기관지를 자극했다. 숨이 막혀 새파랗게 넘어가는 딸을 잠옷바람으로 안고 나와 택시를 잡으러 뛰어나온 시각은 자정을 넘었고 솜털같은 눈송이가 쏟아져내린다. 어쩔 줄 몰라 우와좌왕하고 있으면 차고 신선한 겨울밤 공기를 들이마신 딸이 되살아난다.
  
  金대위는 이런 소동을 몇 번이고 겪었다. 방안으로 들어가면 딸이 또 호흡곤란을 일으킬까봐 딸을 가슴에 품고 바깥에서 철야를 한 적도 있었다.
  
  지난 74년 金대위는 세브란스병원에서 딸의 심장기형은 너무 복잡해서 국내에선 치료할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는 韓美재단이 미국으로 가난한 심장병 어린이들을 보내 무료수술을 받게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신청자가 너무 많아 더 이상 신청을 접수하?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실망한 그에게 西獨유학 의사들의 모임인 韓獨협회가 심장병 어린이를 돕고 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韓獨협회의 주선으로 金대위는 딸의 엑스선사진을 서독으로 보낼 수 있었다. 사진을 판독한 在西獨 동포의사 李수길박사는 절망적인 답신을 보내왔다.
  『서독에서도 불가능합니다. 세계에서 단 한곳, 미국의 메이요병원이라야 교정수술을 할 수 있습니다. 이 병원의 수술비는 수천만원이나 됩니다. 세계 유명인사들이 몰려오는 병원이니만큼 돈만 있다고 해서 입원이 곧장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돈만 준비하시면 입원은 제가 힘을 써 꼭 되도록 하겠습니다』
  
  李박사의 답신은 金대위에게 절망속의 희망을 던져주었다. 메이요병원이란 구체적인 표적이 나타난 것이다. 이 목표에 도달하는 길은 오직 한 가지 돈의 힘 뿐이다. 돈을 벌자. 그래서 딸의 생명을 돈으로 사는 것이다. 金대위 부부의 삶은 완전히 딸을 위한 것이 됐다. 달의 생존은 부부의 생활목표며 존재이유 그 자체였다.
  
  「하지스」할머니의 도움
  
  전방근무를 할 때 金대위는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셔도 외박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아내가 딸과 함께 밤을 지샐 생각을 하면 떨어져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몽둥이 하나만 가지고 수 십리 산속 길을 밤중에 걸어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방안에선 가쁜 숨을 몰아쉬며 딸이 엎드려 자고 있고, 그 옆엔 아내가 훌쩍이고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전방에 있을 때는 부업으로 치료비를 장만하려 해도 방법이 없었다. 지난 78년에 그는 釜山으로 전보됐다. 소령으로 진급한 그는 부대장의 양해를 얻은 다음 일과 후엔 땅을 보러다니기 시작했다. 海雲臺근교의 산기슭에 사둔 땅값이 다행히 오르기 시작했다.
  
  1년사이 약 2천만원을 번 그는 딸의 메이요병원 입원비 약 5천만원을 맞추기 위해 釜山 沙上공단의 작은 공장을 친구와 함께 인수, 돌리기 시작했다. 金소령은 근무에 충실키 위해 공장경영은 친구에게 맡겼다. 이 공장은 그러나 수출주문량의 부족으로 올해 초에 문을 닫고 말았다. 겨우 본전을 건진 金소령은 이 돈을 아파트 건축업자인 친구에게 빌려주어 완공된 아파트 두 채를 얻고 이를 다시 팔아 딸의 치료비를 마련할 계획을 세웠다.
  
  지난해 9월 金소령은(35)은 신문을 보다가 釜山메리놀병원의 金미카엘라수녀(46)가 심장병 어린이들의 모임을 만들어 국내외 의료기관에 무료 또는 할인수술을 시키고 있음을 알게 됐다. 金수녀는 영희의 병세가 중증인 것을 알고 「하지스」할머니(63)에게 특별히 부탁했다. 「韓國 심장병어린이들의 구세주」로 알려져 있는 「하지스」할머니는 영희를 美國 미네소타주 미니어폴리스에 있는 메트로폴리탄 메디칼센터에 보냈다.
  
  영희는 「하지스」할머니가 무료수술을 주선한 2백명째의 어린이라고 해서 미국현지신문과 국내 영자신문에 크게 보도되기도 했다. 그러나 영희를 진단한 미네소타메디칼센터에서도 완치수술은 할 수 없다고 판단, 예注梔倖?해 주었다. 그래도 이 예비수술의 결과 영희의 파랗던 입술은 새빨갛게 변해 金소령 부부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돈 없어 죽어 가는 생명들
  
  수술의 꿈을 가진 영희양의 형편은 약 1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는 한국의 선천성 또는 후천성 심장기형 어린이들 가운데서는 행복한 축에 든다 수술비가 없어 한해에 죽어가는 심장병 어린이들은 몇 명이나 될까. 정확한 통계는 없으나 한 심장전문의사의 추산은 냉혹하다.
  
  한국에서 한해에 새로 생기는 선천성 심장기형어린이들의 숫자는 4천~5천명. 이들중 반쯤은 1년 이내에 사망한다. 부모나 의사들은 심장기형임을 알아차리지 못해 치료를 시작하기 전에 죽거나 수술도 할 수 없는 중증상태에서 숨져가는 것이다. 나머지 2천~2천5백명은 대부분 수술을 받아야 하는 환자들이다.
  
  그런데 지난해의 경우 開心수술을 할 수 있는 서울대학병원 세브란스병원 漢陽대학병원 高麗대학병원 국립의료원 慶北대학병원 全南대학병원 등 전국 7개 병원의 총수술환자는 6백명에 지나지 않았다. 나머지 1천4백~1천9백명의 어린 심장병혼자들은 갈 곳이 없다?
  
  漢陽大부속병원 흉부외과 朴英寬박사는 수술받으러 오는 환자들 가운데 반쯤은 수술적기를 지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수술비를 마련하려고 버둥대다 보면 수술시기를 놓치지가 일쑤인 것이다. 이들 환자가족이 수술비를 구하다 못해 마지막으로 호소하러 찾아가는 곳은 언론기관의 사회부. 사회부를 찾아오는 딱한 환자들 가운데 심장기형환자들이 으뜸을 차지하는 것은 이런 환자가 얼마나 많고 또 다급한 처지에 있는가를 입증하는 것이다.
  
  朴鍾順양(22)은 지난 75년 2월 한가지 꿈을 안고 고향인 全南 光山군 松亭읍에서 釜山으로 왔다. 심장판막증을 앓고 있는 동생 鍾學군(당시 15세)의 수술비를 번다는 것이 朴양의 소망이었다. 견직공장의 견습연사공으로 취직한 朴양은 월급 3만 2천원 가운데 매달 8천원씩을 떼내어 서른달 만기의 30만원 적금에 들었다. 朴양은 또 자취방을 얻고는 동생을 고향에서 데리고 왔다. 鍾學군은 병세가 악화돼 누워 지내야 했다.
  
  朴양은 공장에서 돌아오면 동생에게 얘기를 해주고 책을 읽어주며 말동무가 돼주는 것이 일이었다. 동생을 진찰한 의사들은 한결같이 『빨리 수술을 하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했다. 朴양은 겁이 나서 釜山의 어느 신문사를 찾아갔다. 한 사회부 기자가 釜山시청에 소개를 하여 朴양은 영세민의료시혜비 1백만원의 혜택을 받게됐다.
  
  朴양은 용기를 얻어 적금 30만원을 찾은 다음 지난 77년 10월 세브란스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선 釜山시의 지불보증이 있어도 당장 1백만원을 더 내야 입원시켜줄 수 있다고 했다. 朴양은 1주일동안 농성작전을 폈다. 동생을 여관에 뉘어놓고 매일 상오 9시에 병원서무과에 출근, 퇴근시간가지 담당직원 앞에 앉아 있다가 돌아오곤 했다.
  
  朴양의 집념에 감동한 의사들은 실비로 수술시켜 주겠다면서 鍾學군을 입원시켰다. 朴양은 釜山으로 내려와 사표를 냈다. 퇴직금 13만원을 타기 위해서였다. 회사에선 朴양의 뜻을 알고 사표를 돌려준 뒤 근로자20여명이 11만 8천원을 모아 치료비에 보내라고 朴양에게 주었다. 朴양의 아버지는 고향의 논을 팔아 마련한 30만원을 가져왔다. 朴양은 70만원을 모아 상경했다. 그러나 병원에선 수술은 실비로 해주더라도 인공심장판막 수입대금 1백 15만원은 내야 한다고 말했다. 당장 45만원이 더 있어야 했다.
  
  그러나 朴양의 의지력과 자금동원력은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한계에 와 있었다. 朴양은 풀이 죽은 동생을 데리고 釜山으로 내려왔다. 77년 12월 31일 자취방에서 朴양은 『내년 여름엔 꼭 해운대에 데려가 주겠다』고 동생을 달랬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동생과 함께 지낸 이 「둘만의 망년회」에서 朴양이 한 약속이 지켜졌는지의 여부는 알길 없다.
  
   1천분의 6이 선천성심장기형
  
  朴양처럼 매스콤에 호소하러 오는 심장기형환자들은 줄을 잇고 있으나 효과를 보는 환자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수술비가 5백만원에서 8백만원이나 되기 때문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개인적인 차원의 자선이나 동정으로는 해결할 수 없을만큼 환자는 많고 치료비는 엄청나다. 歐美의 통계에 따르면 선천성 심장질환 어린이의 출생률은 전체 출생어린이의 약 1천분의 6정도. 선천성 심장질환은 거의가 심장기형으로서, 기형 형태별로 20여종으로 나눠진다. 여기에다가 류마치스심장염을 앓은 뒤 생기는 후천적 심장판막증환자도 많다.
  
  한국에선 심장판막증환자가 매우 많아 이 질병이 어린이 심장질환 전체의 대명사처럼 돼 질병개념의 혼란을 부르고 있다. 이 글에선 후천적 심장판막증 환자와 선천성심장질환자를 묶어 심장기형환자로 다루기로 한다.
  
  심장기형은 청색증과 비청색증으로 대별된다. 청색증은 글자 그대로 환자의 입술과 손발가락끝이 새파랗게 보이는 증세다. 청색증환자들의 손가락 끝은 또 곤봉처럼 뭉뚝하다. 청색증의 원인은 동맥에 검푸른 정판품?섞여 흐르기 때문이다. 반면 비청색증은 외형으로는 환자를 구별하기 어렵다. 청색증은 생후에 발견하기 쉽지만 비청색증에 비해 사망률도 높아 수술을 적기에 받지 않으면 1년 이내에 절반이 죽는다.
  
  선천성 심장기형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은 좌우 心室 사이의 벽에 구멍이 뚫린 심실중격결손으로 전체의 약 28%, 다음 心房 사이의 벽에 구멍이 나 있는 심방중격결손으로 약 10%. 이밖에 할로氏 4징후증(Tetralogy of Fallot)과 대혈관도착증도 많은 축에 든다. 청생증의 대표적 질환인 할로氏4징후증은 프랑스 심장전문의 「할로」씨가 발견한 것으로 4종류의 심장기형이 복합된 질환이다. 폐동맥협착증 심실중격결손증 대동맥교차증 우심실비후증 등 4가지 기형이 공존하기 때문에 교정수술도 두 번 이상 해야 되는 것이다.
  
  선천성 심장기형의 원인으로는 염색체 이상 등 유전적 요인, 풍진 등 산모의 임신중 감염이나 약물부작용 등 여러 가지가 거론되고 있다. 선천성 심장기형의 일반적인 발생빈도는 1천분의 6이다. 그러나 심장기형 형제를 2인 이상 갖고 있는 가정의 발생빈도가 50분의 1이라고 한다. 한국에도 한 가정의 형제가 모두 이 병에 걸린 예가 많다. 이런 경우가 유전인자의 영향에 의한 발병환자들이 대부분이다.
  
  조기 사망률이 높은 심장기형이니만큼 조기발견과 적기수술이 가장 중요하다. 심장기형이 질병의 형태로 드러나는 시기는 저마다 다르다. 하로氏 4징후증은 생후 6개월에서 1년 사이, 대혈관도착증은 생후 즉시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생후 2~3년 후나, 생후 10년이 지나고서야 발견되는 수도 있다. 조기 발견엔 부모뿐 아니라 소아과의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심장기형에 대한 지식이 없는 소아과의사들은 이런 어린이들을 잘 가려내지 못해 치료의 기회를 잃게 하는 경우가 가끔 있는 것 같다고 심장전문의들은 말하고 있다. 한국 의과대학과정에서 심장기형에 대한 강의가 시작된 것은 지난 50년대 말부터였다. 이보다 먼저 졸업한 의사들은 심장기형에 대한 체계적 지식을 얻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어 조기발견에 장애요인이 되기도 한다는 것.
  
  청색증의 경우 수술적기는 과거엔 국민학교 입학시기 전후로 여겨져 왔었다. 요즘엔 조기수술기술의 발달로 생후 2~3년이 적기로 꼽혀지고 있을 정도. 증세가 그렇게 나쁘지 않는 비청색증은 수술시기의 여유를 길게 자고 있는 편이다. 대개 12~13세 이전에 교정수술을 끝내는 것이 좋다고 한다. 수술적기를 놓치면 폐동맥고혈압증같은 불치병을 일으키는 등 치명적인 부작용을 부르는 수가 자주 있다.
  
  자연치유도 드물게 있다 심신중격결손증의 경우, 12세까지의 자연치유율은 약 20%. 자연치유의 기적을 무턱대고 기다리다가 수술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반드시 심장기능을 모니터 해가며 기다려야 한다. 심장기형 어린이들의 행동엔 특징이 있다. 항상 숨이 가쁘고 감기에 잘 걸린다. 자주 쪼그리고 앉는다. 심장의 활동을 편케 하려는 반사적 행동이다. 엎드려 자고 발육이 극히 늦다.
  
   돈으로 사야 하는 어린 생명들
  
  선천성 심장기형의 약 75%는 제때에 교정수술만 해주면 생명을 건지는 것은 물론 정상인으로 재탄생시킬 수가 있다. 3첨판(우심실과 우심방사이의 판막) 폐쇄증등 약 25%의 선천성 심장기형은 수술로도 교정을 할 수 없다. 이들 환자는 1년 이내에 거의 사망한다. 開心수술의 사망률은 약 10%로 매우 높은 편. 심실중격결손의 경우엔 수술사망률이 3%에 불과하다.
  심장기형환자들에 대한 수술은 암환자에 대한 치료에 비할 수 없을만큼 그 효과가 높다. 더구나 암환자가 중년 이상인 경우가 많은데 대해 선천성 심장기형은 거의가 20세 미만의 청소년들로서 수술의 생명연장 효과면에서도 뛰어나다.
  
  그러나 여기에 한 가지 중요한 현상이 있다. 심장기형환자들의 가정환경은 경제적으로 낮은 계층이란 것이 세계적인 통계다. 특히 한국에선 이 현상이 두드러진다. 수술의 요구도와 효율성은 매우 높은데 수술비 부담능력은 극히 낮다는 이 극단적 상황이야말로 한국 심장질환 어린이들이 처함 지국의 뿌리인 것이다. 開心수술비는 어떤 수술보다도 비용이 많이 먹힌다는 점도 이 비극의 도를 더해주고 있다. 돈이 있으면 살고 없으면 죽는다는 비정의 법칙이 가장 철저하게 적용되는 곳이 심장병환자들의 세계인 것이다. 이곳은 또 5백만원만 있으면 어린 시한부 생명을 하나씩 살릴 수 있다.
  
  삼장수술비가 비싼 까닭은 수술장비 수입대가 비싸고 보통 수술 때보다도 의료진의 인원이 약 2배나 많이 투입되기 때문이다. 3~4시간 걸리는 이 수술엔 인공심폐기가 가동해야 하는데, 이것의 수입가격은 약 3천만원이나 된다. 이밖에 1백만원어치 가량의 재료비가 들며 외과의사 4, 심폐기기사 1, 마취과의사 2, 간호원 4명 등 모두 11명의 수술진이 구성된다.
  
  의료보험환자일 때는 정밀검사에 약 4만원(일반환자는 약 30만원), 수술비로 약 70만원만 본인이 부담하면 된다. 의료보험에 들어 있는 심장기형환자일 경우엔 크게 문제가 안되지만 보험에 들지 않은 환자일 경우엔 수술을 위해 가정이 파산될 각오까지 해야 한다.
  
  지난 8월 2일 필자는 釜山메리놀병원 金미카엘라수녀가 조직한 심장기형 환자모임9부산 MC회)에 들어있는 3백여명의 환자들 가운데 77명을 대상으로 설문지방식의 가정환경을 조사해보았다.
  
  처음 심장기형증세가 발견된 시기에 대해 생후 곧 증세를 알았다는 부모가 29.3%였다. 1년 이내에 어린이의 심장병발병을 알게 된 사람은 약 76%에 달해 선천성 심장질환 어린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음을 보여줬다. 1년 이후에 증세가 나타났다는 환자들 가운데 9명(응답자의 12%)은 10년이 지난 뒤 발병했다고 한다. 이들은 대부분 후천성 심장판막증 환자들로 추정되지만, 부모와 의사들의 소홀한 관심으로 발견이 늦었던 선천성 심장기형환자들도 끼어 있을 것이다.
  
  환자가 적령아동일 경우 약 66%인 25명은 학교에 다니지만 34%인 13명은 못 다닌다고 했다. 치료실태를 보면 자가치료 57.5%, 통원 21%, 치료포기 17%였다. 환자중 약 75%가 집에 방치돼 있거나 미봉책에 불과한 자가치료에 의존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들 환자가 수술적기를 놓쳐버릴 가능성은 매우 높다. 치료비부담은 월 1만원 이하가 40% 월 2만원 이하 70%(누적분포)였다.
  
  재산정도도 약 62%인 45명이 동산과 부동산을 합쳐 「3맥만원 이하」라고 대답했다. 1백만원 이하의 극빈층이 약 26%나 됐다. 1천만원 이상은 약 20%(15명)에 불과. 심장질환 어린이의 가정이 대체로 가나한 집안이란 세계적인 공통현상이 한국에서도 입증되고 있는 셈이다. 이 응답이 시실이라면 약 62%의 환자가정은 의료보험에 안 들어 있을 경우 전재산을 처분해도 수술비를 구할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면 현금으로 얼마를 구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 약 72.2%는 1백만원 이하라고 답했다. 5백만원 이상이라고 답한 사람은 1명에 불과.
  
  의료혜택의 정도도 77명 가운데 의료보호대상자 1명, 의료보험 대상자가 20명으로 전체의 28.2%였다. 비보험자 56명 중 83%인 46명은 의료보험에 들게 되면 어떤 수를 쓰든지 수술비를 마련하겠다고 대답했다. 월수입조사에서 10만원 이하라고 대답한 사람이 약 3분의 1이나 됐고 전체의 약 90%가 월수입 20만원 이하의 영세민 또는 극빈층이었다.
  
  「당장 무료수술도 못받고 수술비도 준비 안돼 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수술을 포기하겠다는 사람은 1명에 지나지 않았다. 43.7%는 집을 팔고 빚을 내겠다고 했으며 8.4%는 매스콤에 호소하겠다고 답했다. 약 46%는 돈이 생길 때가지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외국에 맡겨지는 어린 생명들
  
  절망과 희망의 갈림길에서 오늘을 살고 있는 심장기형 어린이들은 그래도 행복한 편이다. 수술의 꿈을 간직하고 견딜 수 있으니까. 1957년 이전만 하더라도 심장기형은 사형선고를 뜻했다.
  
  선진국에서 심장기형수술이 일반화되기 시작 한 것은 1958년부터였다. 한국에선 1960년에 서울의대 李영균교수가 첫 開心수술을 했다. 그러나 1960년 때의 한국심장수술은 그렇게 만족스런 결과를 보이지 못했다. 어떤 해에는 그 해에 수술한 환자 30여명이 몽땅 사망한 경우도 있었다. 심장수술은 외국에서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머리에 박히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다.
  
  우리나라에서 심장수술이 본궤도에 오른 것은 1975년부터였다. 외국에서 심장수술법을 익히고 돌아온 전문의사들이 많아지고 그동안의 국내수출경험이 쌓이면서 심장수술의 생존율도 급격히 높아졌던 것이다.
  
  1977년 7월부터 의료보험제도가 실시되면서 심장수술건수도 많아지기 시작했다. 전국에서 심장수술을 자신있게 할 수 있는 전문의사수는 15명 내외로 꼽히고 있다. 이들의 수준은 결코 외국에 뒤지지 않는 것으로 평가되어 있다. 심장전문의들은 『국내에서 수술이 불가능한 경우는 전체 심장기형 환자들의 1%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이 1%의 환자들은 세계에서도 2~3의 유명한 의사들만이 손댈 수 있는 복잡한 기형심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외국에까지 어린이들을 보내 심장수술을 받게 하는 것은 이젠 사치에 속하게 됐다고 의료계에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구나 심장병 어린이들을 외국에 보내고 싶어서 보내느냐고 항변하는 분노들이 많다. 외국에서 무료수술을 받을 수 있게 때문에 어린 아이를 낯선 타국에 혼자 보내는 것이 보통이다.
  
  韓美재단 단장부인이던 「해리에트 하지스」할머니가 한국 심장병 어린이 구호사업에 손을 댄 것은 1972년 8월이었다. 「하지스」할머니는 심장기형 어린이 하나가 길가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 이 소년을 구호하는 과정에서 한국 심장병어린이들의 문제가 심각함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외국인이 한국심장병어린이들의 문제를 우리나라 보사부보다도 먼저 깨닫고 돕기에 나섰다는 얘기다.
  
  「하지스」할머니는 한국아동심장병환자구원사업회를 조직, 미국 안에서 도와줄 병원을 찾기 시작했다. 미네소타주 미니어폴리스에 있는 메트로폴리탄 메디칼센터에서 구원의 손을 뻗쳐왔다. 지방유지들이 낸 돈으로 심장기금을 만든 이 병원에선 세계의 불우심장 어린이들을 데리고 와 치료를 해주고 있었다. 「하지스」할머니의 소개로 한국어린이들은 72년부터 미니어폴리스로 가서 무료수술을 받고 새 생명을 얻기 시작했다. 입원 및 수술비는 무료, 왕복항공비만 본인부담이었다.
  
  미니어폴리스에서 살고 있는 한국교민들도 수술전후에 외로운 어린 환자들을 자기 가정에 머물게 하여 외로움을 달래주고 있다. 어린 환자들을 미니어폴리스로 보낼 때는 한국 간호원을 딸려 보내기도 한다. 「하지스」할머니의 도움으로 수술을 받는 한국 어린이는 2백20여명에 이른다. 그 가운데 약10%는 사망했다. 「하지스」할머니 이외의 韓獨협회에서 해마다 5~6명씩을 西獨에 보내고 있다 美8군병원에서도 가끔 무료수술을 해주고 정밀진단을 실시하고 있다.
  
  메트로폴리탄 메디칼센터에서는 최근 들어 韓國에 대한 무료수술쿼터를 줄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 때 해마다 무료수술환자수가 30~40명에 달했으나 올해부터는 20명 이하로 할당인원이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한국의 경제발전상이 미국에 크게 소개됨에 다라 한국도 이제부터는 심장병어린이들을 스스로 치료할 때를 맞은 것이 아니냐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스」할머니 앞으로 접수된 무료수술신청환자수는 약3백명이나 된다. 이들을 모두 미국으로 보내려면 15~20년이나 걸려야 할 판이다. 그때까지 생존할 수 있는 생명이 몇이나 될까 하는 의문이다.
  
출처 : 신동아
[ 2003-07-04, 15:5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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