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뽀 신체장애자의 실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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早期 치료하면 정상생활 가능
  
  지난해 10월 서울의대 정형외과 이덕용(李德鏞) 최원식(崔元植) 교수님은 지체부자유학생의 85%는 수술(57%)과 물리치료(19%)를 통해 정상생활을 할 수 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서울시내 초·중·고학생 3만 7천 9백5명을 대상으로 집단검진, 지체부자유 학생들을 찾아내 조사한 결론이었다. 정박아들도 조기발견만 하면 대부분이 사회생활에 참여할 수 있다. 때문에 장애아의 조기발견과 조기치료, 조기교육인 것이다.
  
  일본에선 만 3살이 되면 의무적으로 지역보건소에 가서 건강진단을 받아야 한다. 여기서 장애아가 발견되면 아동상담소에 보내져 종합평가를 받게 한다. 그 결과에 따라 대책이 세워진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실정은 정반대다. 서울시 道峰區 수유동(水踰洞) 한빛맹아원 한신경(韓信卿) 원장은 「아이들을 골방에 버려 두어 눈도 못 보는 데다가 정신박약까지 되고 걸음도 못 걷는 2중 3중의 불구가 되어서야 시설을 찾게 되는 경우가 많다」며 「일찍 시설에 들어오면 자기 일은 가릴 수 있는 능력을 기르게 되는데, 늦게 들어오면 생활훈련도 안되고 재활직업보도도 안된다」고 지체아의 조기교육을 역설한다.
  
  釜山市 中區 영주동에선 10살난 뇌성마비 여자어린이가 수술을 받다가 숨졌는데 그제야 바로 옆집에서도 그런 아이가 있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고 한다. 그 아이가 어떻게 키워졌음을 상상하기에 힘들지 않다. 심신장애자 실태조사결과가 조사기관에 따라 큰 차이가 나는 것도 장애자를 가진 가정의 이를 숨기기 때문이다. 조사원이 찾아오면 대문도 안 열어주는 집들이 많다.
  
  정박아동계를 한번 보자. 지난 67년 慶北도교위의 조사에 따르면 정박아(만 6~14세)의 출현율은 3·16%였다. 이것을 당시의 전국아동인구수와 비교해 보면 약 30만명의 정박아가 있다는 계산이다. 76년 경제기획원 통계에선 정박아수가 18만3천9백여명으로 뚝 떨어졌다. 80년대엔 다시 정박자가 16만4천여명이란 정부통계가 나왔다. 이 숫자는 어른 정박자까지 포함하고 있다. 13년 사이에 정박자가 반으로 줄었다는 얘기다. 그건 바로 기적이다. 인구는 늘고 정박아출산의 요인도 불어만 가는데 유독 한국의 정박자수만은 격감하고 있으니 보통 경사가 아니다. 정박아출현율이 日本 3%, 영국 3.5%, 미국 3%로 세계 공히 3~4% 선인데 80년 한국통계에 따르면 우리는 1%도 안된다.
  
  그러나 사회사업전문가들은 거의 이 통계를 믿지 않고 있다. 장애자정책의 기본이 되는 실태조사조차 아직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정책수립에 많은 난점을 가져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것은 조사당국만의 책임이 아니라는 데 근본적 문제가 있다.
  
  장애자를 인간답게 살게 하는 길은 뭐니뭐니해도 스스로 생활할 수 있는 능력을 심어주는 데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자립은 바로 인간의 존엄성 회복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것 이상으로 장애아들을 손쉽게 열등감과 자학의 악순환에서 구출해 줄 수 있는 것은 달리 없을 것이다.
  『정서교욱, 정신교육도 다 좋지만 가장 시급한 것은 직업교육입니다. 어떤 장애아들은 다른 것은 다 집어치우고 사회에서 먹고 살 수 있는 기술을 먼저 가르쳐 달라고 조르기도 합니다.』
  
  信愛院 朴相根원장은 그런 이유로 자체 공장을 움직이고 있다. 지난 76년부터 돌리고 있는 목각공예공장 제품은 없어서 팔리지 못할 정도로 호평을 받고 있다. 덴마크에 내보내는 수출량을 요즘에 국내수요가 늘어 줄이고 있는 실정. 아랫 몸을 잘 못쓰는 사람은 반사적으로 손재주가 좋아 이를 장애아들이 만든 공예품은 일반제품과 당당히 경쟁하고 있다. 수익금은 모두 기술등급에 다라 원생들에게 갈라주고 있는데 1백만원 이상을 모은 아이들이 수두룩하고 2백만원 이상을 모은 아이들도 있다.
  
  이 돈은 이 불구고아들이 사회로 나갈 때 좋은 자립 밑천이 되고 있다. 여기서 기술을 익혀 목각공예학원의 강사로 취업해간 사람도 있다. 기술도 가르치고 자립자금도 만든다는 점에서 이런 시설은 장애자기술육의 한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장애자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는 직종은 시계수리업과 제화업(製靴業). 앉아서 할 수 있고 독립자영이란 게 이들의 적성에 맞기 때문이다.
  
   전무상태의 직업교육
  
  釜山市 東萊區 복천동(福泉洞) 양지(陽地)불구자기술원과 서울市 관악구(冠岳區) 봉천동(奉天洞) 三育재활원부속 직업훈련원이 국내에 있는 전부의 장애자기술훈련원이다. 이 두 기관은 모두 사회사업단체나 외국원조에 주로 경영을 의존하고 있으며 정부지원은 미미하다.
  
  陽地기술원에선 시계과 전자과를 두고 있는데, 시계과는 6개월, 전자과는 1년 과정이다. 이곳에 있는 40여명의 장애자들 중 반 이상이 지체부자유자들. 전자과는 기술을 익혀도 TV·라디오점포를 내려면 상당한 자금이 필요하므로 시계과가 인기가 있다. 申益均원장은 「멀리 강원도에서까지 기술을 배우겠다고 찾아오지만 중증장애자들일 경우 못받을 때가 있어 가장 가슴 아프다」라고 말한다.
  
  이들 장애자들은 훈련원내 합숙시설에 심한 장애자와 덜한 장애자를 같은 방에 합숙시켜 서로 돕도록 하고 있다. 이 기술훈련원 운영은 오스트레일리아선교회가 보내주는 연 6천달라의 지원금에 크게 기대고 있다. 훈련원의 수용능력은 우리나라 전체장애자 0.04%도 안된다. 여기서 들어갈 수 있는 장애자도 가벼운 지체부자유에 한정되어 있을 뿐 정박자직업교육은 꿈도 꿀 수 없는 상태다.
  
  한편 장애자들이 기술을 배워도 문제가 있다.
  「사회로부터 동정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능력만큼만 차별없이 대우해주고 불쌍한 우리를 등쳐먹지만 않았으면 합니다」
  이것은 금속공장에 취직했다가 하루 12시간씩 혹사시키고 바람에 엉덩이에 욕창만 얻어가지고 다시 부산의 어느 불구시설로 돌아온 하반신마비 청년의 푸념이다.
  
  지난 2월 25일 서울시 城東區 下一洞의 장신구제조공장 삼영금속이 부도를 내고 도산, 이 회사 덕풍리(德豊里)공장 (京畿道 廣州郡 東部面 德豊2里)이 문을 닫았다. 이 공장에선 38명의 지베부자유근로자들이 일하고 있었다. 이들은 2개월분의 임금과 퇴직금도 못받고 기숙사에 모여 앉아 괴로운 나날을 보냈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이 기업주에게 보인 반응.
  「8년전에 벌써 우리 같이 지체부자유자들을 모아 일자리를 준 林炳柱사장에게 감사할 뿐이다. 고의적인 도산이 아닌 이상 원망은 하지 않는다」
  성한 근로자들과는 퍽 대조적인 반응이었다. 끝까지 업주를 싸고도는 의리. 이것은 장애자들에게 있어서 일자리가 얼마나 귀한 것이며, 그동안 우리 기업들이 이들을 어떻게 외면해 왔는지를 반증하는 것이라 하겠다.
  
   비틀거리면 경멸, 성공하면 시기
  
  「시설을 나가 사회가 첫발을 디딘 장애자들이 사기를 당하고 때로는 폭행을 당하는가 하면 불구라고 얕잡아보고 돈을 떼먹는 사람들에게 못견뎌 다시 院으로 돌아오고 싶다고 울며불며 호소하러 올 때가 많다」고 신애원 朴相根원장은 말한다. 그들에겐 이 사회가 힘샌 자만이 활개를 치는 장글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장애자들이 사회에서 너무 잘 적응해 나가도 문제가 되는 모양이다. 꼽추로 억대부자가 된 金성훈 씨945·釜山市 海雲臺區 佑洞)는 「꼽추가 잘 사는 걸 보니 간첩이 틀림없다」는 이웃의 신고로 두 번이나 경찰에 붙들려가 조사를 받아야 했다. 「사회에서 비틀거리면 경멸을 당하고 잘되면 시기를 받는 것이 장애자」라고 탄식하는 장애자의 항변에서 인간의 본성 속에 뿌리박혀 있는 불구자에 대한 잔인한 편견을 엿볼 수 있다.
  
  지난해 12월 정부가 발표한 장애자표본조사에 따르면 전국 장애자수는 90만1천8백명. 그 가운데 32.2%는 취업, 12%는 재학중, 1%가 복지시설수용, 51% 가량은 직업없이 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자중 봉급생활자는 14.4%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장애자의 취업에 대해 가져왔던 생각은 「3%의 장애자들 때문에 97%의 성한 사람들이 불편을 겪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3%의 장애자들이 짊어진 짐을 97%의 건강한 사람들이 나눠서 져주자는 박애정신은 탁상공론이 아니면 메아리도 없는 호소에 머물러 왔다.
  
  한때 상아탑에서조차 지체부자유학생들의 자연과학계열 입학을 거부해왔으니 기업이나 사회의 편견은 오히려 당연한 현상일지 모른다. 지체부자유학생일수록 약대나 의대를 지망하여 고통받는 자를 위해 일해보겠다는 열망이 대단하다. 대학측에선 실험과 실습에서 이들이 큰 불편을 겪기 때문에 입학을 시키지 않는다고 해명하곤 한다. 마치 장애자들을 위해서 그런다는 투다. 그러나 대학이 약간만 신경을 써주고 급우들이 최소한의 인간애와 이해심을 발휘한다면 이들 장애자가 약대나 의대공부를 못 할 이유가 있을 리 없다. 장애자일지라도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인격의 존엄성을 갖추고 있으며 그들 나름대로의 보람을 갖고 산다는 객관적 사실을 무시한 채 제멋대로 주관적인 평가를 내려버리는 이런 인간에 대한 평가가 뒤바뀌지 않는 한 장애자 취업문제는 해결되지 않를 것이다.
  
  일본의 경우 큰 빌딩 엘리베이터엔 신체부자유자들이 안내양으로 일한다. 만약 한국에서 미끈하게 잘 빠진 엘리베이터걸 대신 이들을 채용한다면 손님들이 어떤 반응을 나타낼 것인가.
  
  西獨의 본에는 정박자들만이 일하는 공장이 있다. 일반공장에선 일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이들은 정박자직업훈련원을 거친 장애자들이다. 2백95명의 정박자가 50명의 지도원으로부터 작업지시를 받아가며 일한다. 공장 안은 굴림의자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게끔 문턱도 계단도 없으며 안전시설은 완벽하다. 주로 목공 선반공 포장공 인쇄공으로 인하는데 임금이외에 생활수당과 구호금이 연방 및 주정부에서 별도로 지급된다. 이 회사는 이들 정박자들에게 노후연금도 부담해 주는데 서독의 중급 노동자수준이다.
  
  물론 이런 공장의 사산이 맞을 리 없다. 이윤이 어쩌고 하는 경제논리를 장애자대책에 적용한다면 하나도 이루어질 일이 없다. 이 정박자 공장운영비의 15%만이 자체수입으로 메워진다. 나머진 갖가지 지원금. 이공장의 가장 큰 목적은 정박자들에게 「우리도 일한다」는 자부심을 심어주어 삶의 보람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일반기업의 목표가 이윤인데 대해 이 복지공장의 목표는 「삶의 가치」라는 게 다른 점이다.
  
  英國정부의 출자로 설립된 렘프로이회사 역시 영국 전역에 89개 생산공장을 거느리고 8천5백여명의 신체장애자들을 고용하고 있다. 설립된 지 35년. 이젠 일반 공장 제품과 같은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게 됐다. 연 매출액이 약 3백억원. 제품은 피혁제품 전자조립품 가구 등등. 이 공장에서 숙련공이 되면 일반공장으로 스카웃돼 갈 정도라고 한다.
  
  현재 정부가 입법을 추진하고 있는 심신장애복지법엔 취업규정이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공공건물내 매점경영은 장애자들에게 우선권을 준다든지 국영기업체나 일반기업체에 장애자를 취업 알선시킨다는 방안이 검토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전외국에선 종업원의 일정비율은 장애자들로 메워야 한다는 강제규정을 두기도 한다. 미국에선 장애자들만 할 수 있는 직종을 법으로 정해주어 그들의 취업을 보장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성한 사람들이 장애자의 영역을 침범하지 못하게 보호울타리를 정부가 쳐주고 있다. 장애자들이 성한 사람들의 영역을 침범하지 못하게 막고 있는 우리의 지나친 편견의 담장을 하루라도 빨리 헐어야 할 때가 왔다.
  
   무시되는 3%의 권리
  
  지난 3월 17일 대한적십자사 부산지사에서 지체부자유자들과 버스안내양들의 대화모임이 있었다. 여기서 많은 불평 등이 쏟아졌다.
  「승차할 때 목발을 맡기면 안내양들이 싫은 얼굴을 한다」
  「급한 발차와 정차로 차안에서 넘어지기가 일쑤다. 우리는 승강구 가까이 붙어 있어야 하는데 자꾸만 안으로 들어가라 한다」
  「목발을 잡고 오르면서 동시에 요금까지 내려니 불편하다」
  「승강구에 붙은 안전손잡이를 잡으려 해도 안내양이 등지고 서 있어 안된다」
  
  이들은 또 굴림의자를 타고 부산역에서 너비 30m의 길을 건너가려면 지하도와 육교를 이용할 수가 없이 멀리 草梁 횡단보도까지 2㎞나 돌아가야 한다고 불평한다. 또 횡단보도도 중간쯤 들어서면 신호가 바뀌어져 버린다는 것이다. 급한 김에 차도를 건너면 「병신 육갑한다」「병신 곤죠 낸다」는 상스러운 욕지거리가 쏟아지고 만다. 지체부자유자 전용 공중전화가 등장해 보았자 이런 도로사정이라면 이용할 수가 없다고 그들은 말한다.
  
  이런 불편은 모두 성한 사람들 중심으로 설계된 우리 사회의 공공시설에서 빚어지는 것이다. 외국에서는 아예 법으로 공공시설에 장애자들을 위한 특별설비를 갖추도록 정해놓고 있다. 지체부자유아 전용택시, 차도와 보도사이의 턱을 없앤 램프식횡단보다, 지하도 및 육교의 굴림의 자통과시설, 장애자전용 엘리베이터와 계단, 특별관람석, 특별판매대, 장애자전용변소, 맹인용 음악신호대, 맹인引導용 도로표지 등등.
  
  스톡홀름에선 장애자들도 버스를 즐겨 이용한다. 정류소에 장애자가 기다리고 있으면 버스운전기사가 뛰어내린다. 장애자를 고이 들어 안아 승강구 옆의 장애자지정석으로 앉힌다. 굴림의자는 접어 화물실에 넣는다. 운전기사는 사무적으로 그렇게 하고 장애자도 그런 대접이 당연하다는 듯 별달리 표정을 바꾸지 않는다. 이러한 외국의 예와 비교한다면 우리의 현실은 너무나 냉엄하고 무관심하다.
  
  지난 79년 허준(許浚)같은 유명한 한의사가 되는 것이 소원인 배재고 윤태호(尹泰皓)군이 새벽 4시 40분 굴림의자를 몰고 西小門동 집을 나서 학원으로 과외 수업을 받으러 가는 길에 참변을 당한 일이 있다. 학원까지는 2㎞. 육교와 지하도로는 굴림의자를 몰 수 없다. 할 수 없이 서울시청 앞 분수대를 왼켠으로 끼고 옛 대한일보 쪽으로 차도를 건너는 순간, 과속택시에 치어 숨졌다.
  
  장애자의 해가 되자 장애자 전용은행창구가 등장하는 등 시설문제에 단편적인 관심이 나타나고는 있으나 심신장애자복지법에 이 특수시설의무조항을 끼워 넣는 것이 근본해결책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三育재활원의 崔미원양은 국산 굴림의자에 불만이 많다. 「외제를 사 쓰다가 국산품을 사보았는데 한 달만에 바퀴의 베아링이 고장나서 못쓰게 됐어요. 다시 수입한 외제를 사 썼는데 이번엔 바퀴 속 튜브가 터졌어요. 판매처에 이야기했더니 메이커측에 부품을 편지로 주문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해요」굴림의자나 목발같은 장애자 보장구(補裝具)는 국산을 사 써도, 외제를 사 써도 다 문제를 안고 있다.
  
  아직도 우리는 보장구제조업체에 대한 자격규제기준이나 제조기준이 법제화돼 있지 않다. 국립원호병원 등 10개 종합병원에 딸린 제작소와 대한보철구기공협회에 등록된 42개 업소와 미등록 20개 업소 등 72개 업소에서 보장구를 만들고 있다. 불량품이라도 법적인 규제를 할 수 없다. 이들 업소엔 보장구에 대한 전문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거의 없다. 이런 보장구를 사 썼다가 장애가 도리어 악화되는 수도 있다.
  
  서울正立회관 정은배(鄭恩培)이사는 「전문의의 처방없이 영세업자에게 보조기를 맞추어 쓰다가 피부가 상하거나 신체기능이 악화된 아이들을 종종 본다」고 말한다. 보장구를 사 쓰는 쪽에서 보면 그것은 제2의 육신이므로 값이 아무리 비싸고 품질이 나빠도 꾹 참고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신체장애자용 보장구는 국가간 관세없이 통관시키자는 국제조약이 있으나 우리나라에선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외제는 또 비쌀 뿐 아니라 설계가 서양인 체격을 기준으로 돼 있어 사용자의 장애가 더 심해지는 경우도 있다고 三育재활원 의사 김세주(金世珠)씨는 말하고 있다.
  
  三育재활원 전자조립부 작업반장 梁일용씨는 기성복에 대해 불평을 터뜨린다.
  「장애자들은 경멸을 받지 않으려고 옷을 깨끗이 입으려고 합니다. 목발을 짚고 기성복을 입고 다니면 겨드랑이 부분이 한주일도 못 가서 터집니다. 바지는 통이 더 넓어야 하고 웃옷은 소매가 더 길어야 하는데 그런 기성복은 없더군요. 저희들의 옷은 쉬 닳고 더러워지므로 옷을 맞춰 입기도 어렵습니다」
  
  소비자나 민원인으로서의 장애자권익을 얘기한다는 것은 한국의 현실 상황에선 너무 동떨어진 얘기처럼 들릴지 모른다. 슈퍼마케트나 관청에 수화 통역자를 두고 맹인들을 위한 점자설령문을 비치하며 주요한 TV 프로를 수화 통역하는 것 등 이런 배려는 선진외국에선 일반화되고 있다. 헌꺼번에 모든 것을 다 이룰 수는 없겠지만 관공서의 민원창구나 은행창구 또는 소비자고발센터 같은 요긴한 곳에서부터 이런 제도를 실시해 봄직하다.
  
   극기의 삶
  
  위대한 장애자 「베토벤」이나 「헬렌 켈러」의 보기를 들 것도 없이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는 주어진 환경에 속박되기를 거부하고 그 환경을 극복하거나 환경자체를 개조함으로써 독자적인 운명을 창조하는 데서 선명(宣明)되어지는 것이다. 장애자의 재활성공담은 하나하나가 모두 극기와 도전의 기록이다. 병신이 아니고 인간임을 증명해 보이겠다는 집념이 인간승리를 낳은 데는 그럴만한 조건이 있는 법이다. 끊임없는 자신에의 채찍질 화목한 가정의 격려, 사회사업가의 헌신적인 뒷바라지, 교사의 감화력 등등.
  
  곱추 金성훈씨(45)는 골수결핵으로 오른 다리를 못쓰는 아내 申정숙씨(39)와 17년 전에 결혼했다. 信愛院에서 두 사람은 같은 불구고아로 만났던 것이다. 결혼 뒤 朴상근 원장의 주선으로 단간셋방을 얻어나간 金씨 부부는 맞벌이를 시작했다. 金시는 사진사, 쥐약행상, 연필장수로 전국을 떠돌아다녔다. 申씨는 섬유공장의 보조양재공. 한때 전재산인 카메라를 네다바이당한 적도 있었다. 3년만에 10만원 목돈을 마련 海雲臺에 관광기념품가게를 낸 것이 성공의 터전이 됐다.
  
  「병신부부」란 수모를 수없이 받아가면서도 金시 부부는 이를 악물고 돈을 모았다. 절약과 신용이 그의 무기였다. 모든 거래는 오로지 현금. 한번도 수표를 끊지 않았다. 세수한 물로 발을 씻고, 그 물에 걸레를 빨고, 다시 변소청소에 썼다. 포장용 끈 조각을 주어 모아 이어서 다시 사용하고 밑창 두께가 3㎝나 되는 특제 맞춤구두로 5년을 신었다. 지금 金씨는 金사장으로 불린다. 전국 관광지에 관광기념품 가게를 내놓고 있는 십억대 부자로 꼽힌다.
  
  그는 번 돈을 그의 고향인 신애원의 불구고아들을 위해 쓴다. 한 달에 한번씩은 꼭꼭 고향을 찾아와 기술교육시설 양계장 등 자립시설에 돈을 낸다. 먹어 없애는 선물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그동안 약 6백만원의 지원을 했다. 올해엔 신애원출신의 사회인들 모임인 信友會를 조직했다. 회원은 약 2백명. 이들은 앞으로 장학회를 조직, 대학교에까지 후배장애아들을 보내줄 계획이다.
  
  金씨는 가게종업원으로 장애고아출신을 자주 채용한다. 金씨의 스파르타식 지도에 못견디고 나가는 사람도 있다. 「온실같은 보호시설에서 사회의 뙤약볕으로 내팽개쳐질 불구고아들은 시들지 않도록 강하고 질기게 키워야 한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다.
  
  유성모(柳成模)씨(28·釜山鎭區 개금.開琴2洞)는 3살 때 소아마비에 걸렸다. 지난 73년에 慶南고교를 졸업한 뒤 서울약대에 응시했다. 1차시험엔 합격했으나 지체부자유란 이유로 입학이 허용되지 않았다. 후기대학이었던 慶熙대학의대에서도 같은 이유로 낙방했다. 다음해엔 釜山대 약대에 응시했으나 같은 이유로 입학이 거부됐다. 그 뒤 3년동안 柳씨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자기 분수에 맞는 생활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가슴속에서 불타오르는 투지를 오래 꺽어둘 수는 없었다.
  
  77년에 서울大에 다시 응시했다. 이번엔 1차시험에서 떨어졌다. 柳씨는 오뚝이처럼 또 일어났다. 2년뒤인 79년 東亞大에 전체수석합격을 했다. 「3修이상 3점감점제」의 핸티캡도 물리쳤다. 그러나 이 영광을 위해 그는 양보를 해야했다. 약사나 의사가 되어 장애자들을 돕겠다는 꿈을 바꿨다. 法經大 政法系에 들어간 것이다. 그는 다른 방향에서 장애자들을 돕겠다고 벼르고 있다. 「법률공부를 하여 사회복지분야의 법률적 모순을 바로 잡겠다」는 것이다.
  
  人間觀이 바뀌어져야
  
  지난 해의 정부통계에 따르면 장애자 발생원인에서 「태어나면서부터」가 5.7% 「출생후 발생」이 81.5%, 원인불명이 12.8%로 밝혀졌다. 「출생후 발생」에선 교통사고 및 외상이 25.4%로 가장 많았고 산업재해도 6.5%나 됐다. 산업화에 따라 산업재해와 교통사고에 의한 장애자수가 급증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장애자발생의 단일 요인으로는 교통사고가 으뜸이다. 이것은 60년대와 70년대의 고도성장이 치른 값비싼 대가인 것이다. 한 경제사학자의 계산에 따르면 기원 이후 2천년간 서구의 연평균경제성장률은 0.2%였다고 한다. 그러나 60~70년대 우리나라는 연평균 10%의 줄기찬 고속성장을 달성했다. 서구보다도 거의 50배나 빨리 뛰었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교통사고 산업재해 공해사고 해난사고 광산의 매몰사고 등이 급격히 늘어났다. 장애자문제를 6·25전상자문제와 같이 사회공동책임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논리가 여기에서 성립된다.
  
  한 사회복지전문가는 「장애자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민주주의 실현의 길이다」라고 했다. 97%의 정상인을 위해 3%가 장애자를 무시해버리는 사고방식은 전체주의의 논리에 더 가깝다. 민주사회가 다양성을 용인하고 소수견해를 존중하는 사회라면 3%의 「침묵의 인권」에 똑같은 발언권을 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을 보는 가치관이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고 다른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선진복지국가의 장애자대책이 기독교정신에 이념의 뿌리를 박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인간을 하나님이 만든 피조물로 보고 그 인격을 하나님이 아닌 그 누구도 훼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장애자에게 정상인과 똑같은 권리를 주자는 서양인들의 주장이 한갖 위선이 아니라 기독교전통에서 우러나온 당연한 행동 논리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기형아를 죽이고 동반자살(실제로는 살인이지만)이란 형태로 부모가 불구아와 함께 죽음의 길로 떠나곤 하는 한국적 현실은 자녀의 운명을 「내것」으로 오인하는 전근대적 사고방식이 아직 남아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대학과 행정기관의 엘리뜨 계층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사탕발림식 적선의 뒤에는 종종 「돕는 자의 쾌감」알 깔려 있고 그것을 한꺼풀 벗겨보지만 장애자를 동등한 인격자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동정의 대상으로 낮춰보려는 위선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감상주의의 극복 없이는 진정한 장애자대책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참다운 장애자대책은 「장애자 전용은행창구」나 「장애자의 해 심볼마크 부착」에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정책 우선 순위에서 이 문제를 상위랭킹으로 격상시키는 정책입안자의 결단, 곧 발상의 전환에서 비로소 세워질 수 있을 것이다. 돈 없인 장애자 대책의 실천이 불가능함을 인식하고 예산 확보에 특별한 배려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정신박약자 문제에 대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 3대 목표는
  ① 20세기가 끝나기 전에 정신박약자 출현율을 절반으로 줄이고
  ② 정박자의 3분의 1을 사회로 복귀(재활)시키며
  ③ 정박자의 인권을 일반국민의 권리와 같이 완전보장해주는 것이다……. 모든 공공 교통기관은 장애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모든 버스는 장애자가 휠체어를 몰고 도움없이 혼자서 타고 내릴 수 있도록 개조돼야 한다」(미국대통령특별법 11776호 및 신체장애자갱생법)
  
  이와 같은 국가적 의지가 뿌리내리지 않는 한 신체장애자는 항상 사회의 그늘에서 인간으로서의 권리는 물로 그들이 최소한 누려야 할 생활의 場조차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다.
  
출처 : 신동아
[ 2003-07-04, 16:0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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