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씨는 아직 무죄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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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씨는 아직 '무죄인'이다.
  
  <1981년 10월 마당>
  
  형의 확정 판결 이전에는 피고인을 무죄인으로 대우해야 한다는 것은, 모른 사람이 없을 만큼 널리 알려진 만국 공통의 법 정신이다. 이 정신은 경찰의 수사와 검사의 구형과 하급 법원의 선고에 모두 착오가 있을 수 있다는 신중하고도 겸허한 마음가짐에서 우러나온 것이며 인간의 판단 능력이 결코 완벽한 것이 될 수 없음을 깨달은 사람들의 지혜이기도 하다.
  
  원효로 윤 경화 할머니 피살 사건의 수사와 보도에서는 이 원칙이 너무 쉽게 무너졌다. 경찰과 언론은 구속이 되자마자 조카며느리 고 숙종 씨를 '범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법원의 확정 판결 훨씬 이전에 두 기관은 만천하에 고씨의 유죄를 확정 판결해버린 셈이다. 신문들이 경찰의 범인 단정에 의문을 제기하기는 했다.
  '공소 유지 이문'
  '심증은 있어도 확증이 없다'
  '자백도 임의성이 없다'는 식으로 물음표를 찍었으나 그런 기사가 난 그 날짜의 신문 사설엔 '남의 일 아닌 혈연원한'이란 제목의 논설이 나타나 고씨가 범인이란 전제 아래서 논리를 전개하기도 했다.
  
  이런 보도 태도는 사회부 기자들의 의문 제기에도 불구하고 '고씨는 범인임에 틀림없다. 다만 그것을 입증할 수 있는 확증이 없을 뿐이다'는 생각을 일반인들에게 주었다. '심증만 있고 확증이 없다'는 데 신문들은 왜 고씨를 '범인'이라고 단정하고 있는가? 어떤 판사가 확증이 없는 상태'에서 고씨의 생명을 빼앗는 유죄 판결을 내리겠는가? 물론 기자들이 고씨를 '범인'으로 불렀다 하여 고씨의 육체적 생명이 달아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보도는 고씨의 사회적, 정신저긴 생명을 빼앗는 것이나 다름없으며 그런 상처는 법정에서 무죄로 밝혀진다 하더라도 보상될 수 없는 것이다.
  
  언론이 법률상 '범인'이 아닌 상태의 고씨를 '범인'으로 불렀다 하여 그 책임이 추궁당하지는 않는다. '경찰이 그렇게 공식발표했고 판사는 구속 영장까지 발부하지 않았느냐?'고 되물으면 끝이다. 신문은 기댈 언덕이 있다는 얘기다. 이 언덕이 있으므로 안심하고 '언론 재판'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런 '기대는 태도'는 기자의 사명을 저버리는 자세다. 진실 확인의 의무를 스스로 포기하고 그 책임을 경찰에게 양도해버리는 자세와도 통한다. 공식발표를 무조건 받아들이겠다는 자세이기도 하다.
  
  '그 발표 내용이 잘못된 것으로 뒤에 밝혀지더라도 책임은 발표 기관이 질 문제다'는 생각은 '사실 전단(발표 내용의 보도)의 의무만 다하면 됐지 진실 확인의 의무야 알 바 아니다'는 사고방식으로 발전할 위험성을 갖고 있다.
  
  언론이 사실 전단의 기능과 함께 진실확인의 의무를 다할 때 비로소 '이 사회의 감시자'란 평을 듣게 될 것이다. 언론이 경찰 수사의 방식과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고, 또 동업자의 기사까지 공격하고 나선 용기는 정말 상찬할 만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범죄 보도의 원칙'을 지키는 엄격성과 '만일의 실수'를 예상하는 겸허함을 갖추어 갔으면 금상첨화이겠다는 얘기다. 고씨는 살인 혐의자일 뿐 아직 살인범은 아닌 것이다.
  
출처 : 마당
[ 2003-07-04, 16:0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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