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명의 목숨 살리고도 수줍어하는 김옥희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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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백30명의 목숨 살리고도 수줍어하는 김 옥희 수녀 - 심장병 어린이의 등대지기
  
  그랬으면서도 부끄럼 타고, 사진기 앞에선 얼굴 붉히고, 겸손해 하고, 아이의 죽음 소식엔 눈물을 참지 못하며 자나깨나 입술이 새파란 아이들 걱정을 하는 사람이 김 옥희 수녀다.
  
  <1982년 9월 마당>
  
   죽음과 친한 아이들
  
  죽음과 가깝게 있는 사람들의 눈망울은 여느때처럼 진지했다. 시한부 사형 선고를 받아 놓고 있는 그들의 눈길은 절박했다. 몇 어머니들의 눈동자는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시들어 가는 생명의 불꽃. 마감 시간을 재촉하는 하루하루의 초읽기. 바싹바싹 다가오는 그 절대 절명의 시한을 앞에 두고도 무력한 사람들. 가난하기 때문에 덮쳐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물리칠 힘이 없는 그들이다. 그런 사람들의 갈구하는 눈동자 4백여개가 한 초점에 쏠렸다. 그 초점 바로 뒤에 있었던 나는 그들의 합쳐진 눈길의 섬광을 받고 섬찟한 전율을 느꼈다. 초점에 선 사람은 흰옷 입은 마흔여섯 살의 김 옥희 수녀다.
  
  여기는 부산시 중구 대청동 메리놀병원 현관, 복도, 지난8월의 첫째 일요일, 심장병 어린이 가족회(가칭)의 정기 월례회였다. 지난 5년 동안 매달 첫 일요일엔 늘 이런 '죽음과 삶의 모임'이 이곳에서 있어 왔다. 언제나 그러하듯 이날에도 김 수녀는 지난 한 달 사이 새 삶을 얻은 네 명의 어린이들을 앞에 불러내어 인사를 시켰다. 미국 뉴욕의 성 프란시스 병원에서 심장 판막 수술을 받은 박 혜경 양(8세, 경남 양산군 일광면 칠암리 57의 2)을 비롯한 이들 행운의 아이들에게 쏟아지는 선망의 눈길들.
  
  그것은 감옥 안의 죄수가 창공을 가르는 새를 보는 그 정도의 시선이 아니었다. 죽음과 삶을 갈라놓은 격류의 강을 무사히 헤어 건너 저쪽 구원의 땅에 도달한 사람에게 던지는 절박한 부러움의 눈길, 그것이었다. 나도(또는 내 아이도) 언젠가 저렇게 될 수 있을까? 나의 새파란 입술, 뭉뚝한 손가락은 저 소녀처럼 불그스름하게, 날씬하게 돌아 갈 수 있을까? 아니 그 생과 사의 강을 시험할 기회나 주어질 것인가?
  
  이 선택된 어린이들은 김 수녀의 주선으로 헐값에 또는 거의 무료로 수술을 받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 자리는 새 삶의 뉴스만 전해지는 곳은 아니다. 김 수녀가 최 영숙 소녀(15세)의 죽음을 알릴 때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부러움으로 들떠 있던 분위기는 섭씨 31도의 무더위 속에서 싸늘하게 냉각됐다. 영숙은 지난 5월 김 수녀의 주선으로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서 심장 판막증 개심(開心) 수술을 받았다. 소녀의 부모는 가난한 행상. 그래도 백여만 원을 모아 김 수녀를 찾아왔다.
  
  김 수녀는 다른 사회단체의 성금을 끌어대어 여기에 보태고 세브란스 병원의 실비 수술 협조를 얻었다. 8백만∼1천만 원 드는 수술을 2백만 원으로 해 내었다. 최양은 퇴원 뒤 단칸 셋방에서 요양을 하다가 감기에 걸렸다. 먹고살기에 바쁜 최양 부모는 감기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감기가 악화되어 수술한 자리가 다시 터졌다. 그 때에서야 메리놀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치료비가 쌓여 갔다. 보다 못한 김 수녀는 장 기려 박사가 운영하는 청십자 병원에 부탁, 최양을 그곳으로 옮겨 20일 동안 무료 입원 치료를 받게 했다. 그러나 최양은 지난 7월15일 숨지고 말았다. 김 수녀는 최양의 죽음을 전한 뒤 떨리던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러고는 매섭게 꾸짖기 시작했다.
  
  '…여러분은 어떤 수를 써서라도 빨리 아이를 수술시키고 싶으시죠? 수술만 받게 하면 부모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시겠지요. 그것으로 여러분의 의무는 끝날지 모르지만 저의 의무는 끝나지 않아요. 수술하고도 뒤처리에 신경을 안 써 재발하면 어떻게 되나요? 수술해서 새 사람 만들어 놓아도 사회에서 사람 구실 못 하면 무슨 쓸모가 있습니까? 어머니, 왜 저를 살려 주었어요 하는 원망을 들으시렵니까? 서로 먼저 수술 받게 해 달라는 심정, 저도 잘 압니다.
  
  알면서도 냉정하게 자르는 저의 마음도 이해해 주셔야 합니다. 수술 뒤의 재생 가능성, 취업 문제까지 고려해서 저는 수술 차례를 정해야 합니다. 저의 이런 태도는 결혼은 안 해 보았으니까, 아이를 길러 보지 않았으니까 저렇게 차갑다고 욕하는 분들도 있겠죠. 저는 한 아이의 어머니는 아닙니다. 그러나 우린 회원 1천 명의 어머니가 된 심정은 갖고 있습니다…'
  
  거의가 어머니들인 2백여 명의 심장병 어린이 가족들은 숨을 죽이며 김 수녀의 호소에 가까운 꾸짖음을 듣고 있었다. 가슴에 보듬은 젖먹이, 어머니의 등판에 머리를 모로 기대고 잠든 어린이, 앙상한 팔다리, 새파란 입술, 쑥 들어간 눈, 무릎에 가슴을 꼭 붙인 채 쪼그리고 앉아 쌕쌕 가쁜 숨을 몰아 쉬는 아이들… 여기 모인 아이, 어머니, 아버지들의 생각과 행동과 가정생활을 짓누르고 있는 것은 늘 죽음의 그림자인 것이다.
  
   업어서 키우는 아이들
  
  하오 3시께부터 진료와 상담이 시작되었다. 메리놀병원 의사가 신입 환자들의 무료진단을 하고 있는 동안 김 수녀는 진료실 입구에 책상을 갖다 놓고 부모들과 상담을 한다. 얼마를 준비해야 수술이 되나요? 전세금을 빼도 백만 원밖에 없는데 어찌하오리까? 무조건 제발 우리 아이 살려 주세요! 이 아이 때문에 온 식구까지 다 죽을 지경입니다, 이젠 포기할 겁니다, 마지막으로 도와주십시오… 주로 이런 호소들이 서너 시간 이어진다. 상담이나 진료 순서를 기다리면서 동병상련의 부모들은 서로 하소연을 한다.
  
  강 순덕씨(32세, 부산진구 당감 2동 하천 1번지 12통3반)의 아들 김 종림 군(11세, 가양국민교 4학년)은 한 걸음만 디뎌도 숨이 차 오르는 심장 판막증 환자다. 등하교는 어머니가 매일 업어서 시킨다. 어릴 땐 아이를 편히 잠재우려고 몇 년 동안 등판을 침대로 제공했다. 이불을 쌓아 놓고 거기에 비스듬히 기대 엎드려 김군을 재웠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허리병을 얻었다. 강씨는 또 일부러 학교와 가까운 곳에 셋방을 얻어 놓고 있다. 김군은 감기엔 1년에 수십 번이나 걸리고 병원 출입을 학교 출입하듯 한다. 남편이 버스 운전 기사로 다행히 의료 보험 카드가 있어 2백만 원만 모으면 김군을 성한 아이로 만들 수 있다. 지금 1백10만 원을 모아 놓고 김 수녀의 도움을 청하고 있는 것이다.
  
  이날엔 멀리 여수에서 온 사람도 있었다. 회사원인 석 종길 씨(39세)의 아들 진수군(6세)은 지난해 폐동맥 협착증 수술을 받았으나 명쾌한 문제 해결을 보지 못했다. 몇 년 뒤 두 번째 수술을 받아야 완치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 때까지 살얼음판을 딛는 기분으로 그 여린 생명의 불씨를 살려 가야 하는 것이다. 불안에 가득 찬 환자 부모들에겐 수술을 받고 생을 확보한 소년 소녀들이나 그들 부모의 경험담이 더할 나위 없는 신경 안정제요 강심제가 된다.
  6년 전에 미국에서 무료 수술을 받고 제2의 탄생을 하고 그래서 지금은 그 수술날을 생일로 기념한다는 박 근자양(19세)은 월례회에 꼭 나와 스스로 상담원 구실을 한다.
  
  '그들의 눈을 보면 가슴이 찡해요. 부러움, 간절한 소망, 불안감이 뒤섞여 있지요. 저의 이야기를 들으면 불안감을 버리고 희망을 갖게 되는 것을 눈초리의 변화에서 단번에 읽을 수 있답니다.' 이 모임은 환자와 환자들끼리의 정보 교환 복덕방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곳에 와서 비로소 나처럼 불행한 아이들이 이렇게 많다는 안도감, 수술만 하면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는 이들이 많다. 넋두리와 하소연은 상호간의 위로로 승화되는 것이다.
  
  '틀림없이' 죽을 목숨, '틀림없이' 살릴 수 있는 생명
  
  이 심장병 어린이 가족회는 지난 '77년 3월에 창립되었다. 김 수녀와 전 한미 재단 단장 부인 헤리에트 하지스 할머니의 도움으로 미국의 미네소타주 미니어폴리스시 메트로폴리탄병원에 가서 무료 수술을 받았던 일곱 아이들의 부모가 주축이 되어 만든 모임이었다. 그래서 'MC(Metropolitan Club)모임'으로 부리게 되었다. 김 수녀는 이 모임 창립 4년 전부터 개인적으로 심장병 어린이 돕기 운동을 펴고 있었다.
  
  김 미카엘라로 더 잘 알려진 김 수녀는 목포에서 태어나 '66년에 카톨릭 의과 대학 간호학과, '72년엔 필리핀의 산토 토마스 대학 석사과정을 수료한 뒤 부산 메리놀병원에서 줄곧 간호원으로 일해 왔다. '73년 3월 김 수녀는 '심장 판막증에 걸려 새파랗게 질린 다섯 살 남자아이의 애처로운 눈망울'과 만나게 된다. 이 아이를 살리려고 발버둥치는 과정에서 하지스 할머니와도 알게 됐다. 할머니는 그때 이미 한국의 심장병 어린이들을 미국으로 보내 무료 치료를 받게 하는 활동을 펴고 있었다. 김 수녀는 신문사에 모금을 호소하고 하지스 할머니의 도움도 받아 이 첫 어린이의 생명을 건진다.
  
  김 수녀는 그러나 한국엔 수많은 선천성, 후천성 심장 기형 어린이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전국에 10만명은 될 것이라느니, 해마다 수천 명의 심장 기형 어린이가 태어나고 한 해에도 수백 명의 어린이들이 수술만 받으면 살 수 있는데도 가난 때문에 죽고 있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도 듣게 되었다. 이들 어린 목숨은 20세 이전에 수술해 주지 않으면 '거의 틀림없이' 죽게 되고 돈만 있으면 '거의 틀림없이' 살릴 수 있음도 알게 되었다. MC모임의 창립은 이런 김 수녀의 안타까움을 조직적인 구명(求命)활동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하게 되었던 것이다.
  
   김 수녀 주위에 몰리는 돕고 싶은 사람들
  
  8월 월례회 나흘 뒤 나는 부산시 남구 남천동 소화(小花) 영아 재활원으로 김 수녀를 찾아갔다. 재활원 사무실 옆 마루방에서 김수녀는 짐을 풀고 있었다, '심장병 어린이 상담소'의 개소(開所)준비 작업을 혼자서 하고 있었다. 김수년는 지난 8월1일부터 메리놀병원을 그만 두었다. 그 몇 달 전엔 겸직하고 있던 지산간호전문대학 교수직도 물러났다. 오로지 심장병 어린이 살리는데 모든 시간을 쓰기 위함이다. 그래서 성 바오로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재활원 안에다가 작은 상담소를 연 것이다.
  
  이미 김수녀의 주위에 몰려든 사람들이 김수녀로 하여금 이 일의 포로가 되게 한 지 오래였다. MC모임은 '79년엔 회원이 40여 명이던 것이 '80년엔 5백 여명, '82년엔 1천 여명으로 불어났다. 김수녀의 도움으로 누군가가 생명을 건졌다는 보도가 나가면 그 다음달의 모임에선 수십 명씩 신입회원이 붓는 형편이다. 부산, 경남 뿐아니라 전남, 전북, 충남, 서울에서까지 환자들이 몰려 오고 있다.
  
  도움을 바라는 사람들도 늘었지만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도 불어나고 있다. 오랫동안 김수녀가 추천한 환자들에게 실비 수술 및 정밀진단을 해주고 있는 세브란스 병원의 진동식, 홍승록, 조범구, 이웅구 박사, 무료 수술을 해 주고 있는 메트로폴리탄 병원 이외에도 미국의 캘리포니아주 로마 린다 대학병원, 뉴욕의 성 프란시스 병원, 텍사스와 아이오와의 병원들, 주한 미8군 병원, 서울대학 병원 등이 몇 년전 부터 할인 또는 무료수술의 도움을 주고 있다. 김수녀의 외로운 분투에 감복한 부산시와 언론계에선 성금 모으기 걷기 대회를 열어 1천여 만원을 모아 수술비로 쓰게 해 주기도 했다.
  
  특히 최극엔 뉴욕의 725지구 로터리클럽에서 돈을 대고 성 프란시스코 병원에서 수술을 맡는 '생명의 선물' 계획의 수혜자로 MC모임이 뽑혀 올해 안으로 50명에 가까운 어린이들이 무료수술을 받게 되었다. 지난 해 성 프란시스코 병원에서 보낸 네 명의 진료반은 김수녀의 집념과 성의에 감복했는지 한 시간도 시내 관광을 하지 않고 환자들만 진료, 수술 예정자들 명단을 뽑아 돌아갔다고 한다. 새세대육영회에서는 지난해 1억원을 내어 놓았다. 가난한 심장병 어린이들 전체를 위한 수술비 보조 성금 이었지만 조직과 준비가 잘 되어 있는 김수녀의 MC모임 회원들이 가장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익명으로, 봉급도 쪼개고
  
  이런 큰 도움 외에도 보통 사람들의 작은 도움들이 끊임없이 김수녀에게 날라 오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사는 한국 동포 지수종씨 부부는 '한국일보'에 난 기사를 읽고 1천 달러를 보냈다. 서울의 오류중학교 정해숫 교사는 매달 봉급에서 3만 원씩 떼내어 보내주다가 몇 달 전부터는 4만 원씩으로 인상했다. 부산 지산 간호전문대학의 김태웅, 권헌영 두 교수도 봉급을 쪼개고 있다. 이름을 안 밝힌 사람이 40만원을 보낸 적이 있다. 이런 작은 도움이 지금까지 1백 여명, 액수는 약 1천만 원, 어린 목숨을 살릴 수 있는 '존귀한 돈'이다. 김수녀에겐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하면서 찾아 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주로 어두운 것을 찾아 다니는 기자도, 경찰관도 김수녀를 도울 게 없나 하고 찾아 와 물어본다. 돈을 좀 벌고 무슨 보람된 일을 해 볼까 하는 실업인들도 도움을 자청해 온다.
  
  김수녀에게는 매달리고 싶은 마음 뿐 아니라 도우고 싶은 마음을 끌어 내는 분위기가 있다. 화장기 하나 없는 해맑은 얼굴, 수줍은 웃음, 소녀 같은 몸가짐. 이젠 남을 돕고 있다는 자선가의 풍모를 풍길 만한 데도 도무지 그렇지가 못하고 그래서 많은 도움을 끌어 댈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김수녀를 돕는 사람들도 김수녀의 그런 분위기에 감화된 사람들이다. 그들도 대부분 돕는 사실을 숨기려 드는 사람들이며 지속적으로, 사무적으로, 조직적으로 돕는 사람들이다. 김수녀를 알게 된 지 8년째인 나도 그를 대하면 언제나 '무슨 좋은 일을 할 게 없나?' 하는 생각이 절로 난다.
  
   선행의 조직자
  
  개인족인 선행에서 출발한 김수녀의 심장병 어린이 돕기 운동은 지난 10년 사이 크게 조직화 되었다. 김수녀는 이런 일이 몇 사람의 성금이나 신문의 온정 기사 정도로는 해결될 수 없음을 일찌감치 깨달았던 것이다. 김수녀는 스스로를 '선행의 조직자'로 생각하고 있다. 가난한 환자 가족들을, 도울 수 있는 재력과 돕고 싶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연결시키고 돕는 방법을 체계화하며 수술 뒤의 뒷바라지까지 지속적인 유대관계를 이어 가도록 작업의 설계, 감리를 맡은 것이 김수녀다. 김수녀는 무턱대고 심장병 어린이를 살려 주지는 않는다. 부모에게 최선을 다해 수술비를 모으게 한다. 거기서 모자라는 액수를 채워 넣는 것이 주로 김수녀의 일이다. 최근의 예를 보자.
  
  삼천포의 문선 국민교 4학년 박경아 양은 심장 판막증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박찬선 교장이 김수녀의 도움을 청했다.김수녀는 그 학교에서 모금운동을 펴게 했다. 학생들과 학부모까지 참여한 모금운동이 벌어졌다. 학생들은 저금통을 깨고 소풍 때 받은 용돈까지 보태었다. 한편 김수녀는 세브란스 병원 심장내과 이웅구 박사에게 부탁, 2백 만원의 할인 수술을 받도록 주선했다.
  
  지난 6월 무사히 수술이 끝났다는 소식이 교내 방송을 통해 전해지자 어린이들은 함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그 뒤 문선 국민교 학생들로부터 감사의 편지들이 70여 통이나 날라 왔다. 일일이 답장을 해주느라 혼이 났다고 한다. 5학년 김정미 양은 감사의 표시로 비장의 기념우표 2장을 동봉했다. 몇달 전에는 부산 해운대의 양현덕군(국민교 5년)의 수술비를 해운대 청년회에서 모아 수술을 받게 했으며 몇 년 전에는 버스 안내양들이 그런 모금운동으로 어린 생명을 구하기도 했다.
  
  이런 방식의 모금 운동은 도움 받는 사람으로부터는 살려는 의지를, 도우는 사람들로부터는 이웃 사랑을 불러 일으켜 우리가 잊기 쉬운 생명의 존귀함을 새삼 깨우쳐 주는 부수적 효과도 거두고 있다. 김수녀는 무지무지하게 바쁘다. 환자 상담, 10여 개 병원과의 갖가지 연락, 수많은 편지들에 답장 쓰기, 서류 관리, 관계 기관과의 협의... 이런 일들을 혼자서 해 왔다. 그러면서 간호원, 교수, 또 그 바쁜 틈을 쪼개어 지난해엔 '심장병 - 간호와 투병'이라는 책까지 썼다. 심장병 어린이들의 투병 기록과 부모들의 경험담이 실려 있어 같은 처지의 사람들에게 하나의 길잡이가 될 수 있는 책이다.
  
  '사람은 한 번 태어나서 한 번 죽는다고 하지만 내가 겪어 온 지난 날을 돌이켜 보면 어쩜 이 말은 나에겐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몇 번의 죽음 뒤에 제2의 생명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럭저럭 며칠이 지나 드디어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나는 수술대 위에 반듯이 누워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주님의 듯이옵니다.' 난 기뻤습니다. 다른 이들은 수술을 기다리는 순간이 두렵다고 했지만 난 이상하리 만큼 기뻤습니다. 내가 죽는다고 해도 하느님의 곁으로 갈 것이요, 산다면 건강을 되찾을 수 있을 터이니까요.'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잠을 자고 난 기분으로 눈을 떴을 때 ㅋ누나가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손가락을 보았습니다. 이게 왠 일입니까? 늘 시퍼렇던 손가락 끝마디에 화색이 도는 게 아닙니까! 나는 누나에게 입술 색깔이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빨간 색이란 대답이었습니다. 빨간 입술이라니! 보통 사람들의 그런 빨간 입술이라니! 파란 입술을 가리려고 손수건을 입에서 떼지 않았던 나의 입술이 빨갛게 되었다니! 그때에야 비로소 나는 새 삶을 찾았음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어린이의 심장병'에서 뽑은 세 소녀의 수기 일부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건강하다는 것이 더할 수 없는 사치임을 깨닫게 된다.
  
   돈으로 생명을 살 수 있어요.
  
  그러나 이 책에 재생의 체험 수기를 쓴 소년 소녀들은 그래도 선택된 사람들임을 김 수녀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MC 회원 1천7명(한 가정에서 형제나 자매 둘이 심장병을 앓고 있는 경우가 넷)가운데 김 수녀의 주선으로 무료 도는 할인 수술을 받은 어린이들은 2백40여 명(도미 무료 수술 70여 명, 국내 할인 수술 1백 68명)이다. 아직도 수술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약 8백 명의 MC회원. 그들의 생명의 불씨가 꺼지기 전에 그 차례가 과연 돌아 갈 것인지는 김 수녀도 장담 못 한다. 수술받은 어린이들 가운데 15명이 수술 뒤 숨지고 말았다.
  
  최근엔 이 건충 군(7세, 부산시 중고 보수동)이 죽음보다 더한 불행을 당했다. 이군을 '할로씨 4징후군'이란 선천성 심장 기형 환자였다. 이 질병은 폐동맥판 협착증, 심실 중격 결손, 우심실 비대, 대동맥의 우측 편위 등 네 가지 심장 기형이 겹친 것이다. 이군은 미국에 건너가 1차 수술을 무사히 끝냈다. 김 수녀와 이군 가족들이 이 소식에 접해 기뻐하고 있는 사이 이군은 세 차례의 수술을 받았으나 경과가 나빠 식물 인간이 되고 말았다. 이군은 식물 인간 상태로 돌아 와 가난한 집안의 한구석을 차지하고 누워만 있다.
  
  김 수녀는 '식물 인간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면서 울상을 짓는다. 그러면서 이군 가족을 도울 방법이 없을까 하고 고민을 하고 있었다. 수술을 받고 새 삶을 찾은 한 어린이의 뒤에는 그런 수술을 목타게 기다리고 있는 수십, 수백 명의 어린 환자들이 있음을 김 수녀는 늘 괘념하는 것 같다. 그들 어린이 중 많은 아이들은 아마도 영원히 수술을 받을 기회도 없이 어른이 되기 전에 저승으로 갈 것이다.
  
  '돈만 있으면 생명을 살릴 수 있어요. 아니 돈으로 생명을 살 수 있어요. 그러니 이들을 돕는 것만큼 확실하고 값진 투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돈이 할 수 있는 가장 보람된 일 아닐까요?' 그렇다. 장 여인이 팁처럼 뿌린 2억 원이라면 곧 죽을 게 확실한 심장병 어린이 1백 명의 목숨을 살 수 있다(실비 수술비 기준). 장 여인이 만진 2천6백억 원이면 국민 1인당 약7천 원, 1가구당 약 3만5천 원이다. 하루 한 끼를 1주일만 굶든지, 한 달 동안 온 국민들이 술을 끊든지 하면 이 정도 돈을 모을 수 있으리라.
  
  아니 세금이라도 내면 어떠리. 13만 명의 어린 생명을 살리기 위해 한 사람이 7천 원씩을 낼 수 없을 만큼 우리의 감정이 무디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 인간의 생명이 이 지구보다 무겁다면 13만 명의 어린 생명을 미국인들의 자선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 손으로 살린다는 것은 얼마나 해 볼 만한 일인가? 통일 다음으로 값진 일이라면 과장일까? ―이런 공상을 하면 김 수녀가 대한 민국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인간이 평생을 살아가면서 한 생명이라도 구할 수 있다면 그는 인간으로 태어난 몫을 다하는 것이다. 그런데 김 수녀는 10년 동안 2백 30명쯤의 생명을 구했다. 그랬으면서도 아직도 부끄럼 타고 사진기 앞에선 얼굴을 붉히고 겸손해 하고 아이의 죽음 소식엔 눈물을 참지 못하는 사람이 김 옥희 수녀인 것이다.
  
출처 : 마당
[ 2003-07-04, 16:2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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