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하군 살해범이 면죄부를 받는 운명의 그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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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범인으로 믿었던 두 사람 <글·황덕수>
  
   너 심부름 좀 할래?
  

  1968년5월2일, 해가 지고 어둠이 밀려들자 부산의 번화가 남포동 거리에는 네온사인이 휘황찬란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나는 남포동2가에 있는 '팔광류'라고 하는 무술 도장에서 관원들의 운동하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이 때 고모부의 친구로, 경찰 유도 사범을 한다던 구 영근 씨(신분은 민간인)가 나를 찾아 왔다.
  '덕수야! 너 심부름 좀 할래?'
  '무슨 일인데요?'
  '응, 누굴 미행하는 일이다.'
  '예, 하지요. 미행하는 게 여자라면 더 재미있겠는데….'
  
  나는 지레 짐작으로 바람난 어느 여자를 그 남편의 부탁으로 미행하는 줄 여기고 신바람이 나서 구 사범의 뒤를 따라 나섰다. 남포동 차도에는 검정색 지프 한 대가 대기해 있었다. 차번호는 22호가 아니면 55였던 걸로 기억된다. 구씨를 따라 그 차를 타고 달려 간 곳은 부산 지방 검찰청 앞이었다. 그는 지검 앞 '천수다방'이란 곳으로 나를 데려가더니 코피 한 잔을 시켜 주고는 나가버렸다. 코피를 마시며 얼마 동안 앉아 있자니 한 중년 신사가 다방 입구에 나타나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나를 불렀다. 다방에 앉아 있던 손님들이 그를 보자 '영감님, 어쩐 일이십니까?'며 모두들 인사를 했다. '영감'이라고 불리워진 그 사람은 안경 너머로 날카로운 눈빛을 번뜩이며 나에게 신문하듯 몇 가지를 물었다.
  
  '너 18살이지?'
  '네.'
  '너 이름이 덕수지?'
  '네.'
  '내가 시키는 일을 할 수 있겠어?'
  '네.'
  나는 얼떨결에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그의 물음에 대답을 하고는 그를 따라 다방의 2층 계단을 내려갔다. 다시 내가 타고 왔던 그 지프에 올라탔다. ㄷ자 형으로 생긴 뒷자리엔 구씨와 함께 낯선 세 사람의 얼굴이 어둠 속에 말없이 앉아 있었다. 그 중년 신사가 앞자리에 선임 탑승을 했고, 앉을 자리가 없어 나는 운전사와 중년 신사 사이의 뒤쪽 바닥에 주저앉았다. 중년 신사의 지시로 차는 움직이기 시작했고 차안에는 여전히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구 사범님, 뭐하러 가는 거요?' 나의 목소리가 차안의 정적을 깨뜨렸다.
  '도둑놈 잡으러 간다.'
  '이밤중에요? 굉장한 놈인 모양이네요. 도둑놈 같으면 경찰들이 할 일이지 나 같은 사람도 필요합니까?'
  '그래! 필요해.'
  나는 잠시 후면 전개될 상황을 제멋대로 그려보면서 호기심과 흥분으로 가슴이 울렁거림을 느꼈다. 차는 서면 로터리를 지나 가야동 쪽을 향했다. 지프는 가야동의 어느 으슥한 골목길에서 멈췄다. '덕수야, 저 자가 이상한 행동을 한다든지 도망치려고 하면 반죽음을 시켜도 괜찮으니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 구씨가 내 곁으로 다가와 뒷좌석에 타고 있던 한 사나이를 가리키며 속삭였다. '도리우찌'라 불리던 빵모자를 푹 눌러 쓰고 뒷자리의 중간에 앉아 있던 덩지가 큰 사나이었다. 자세히 보니 양손을 앞으로 모은 채 수갑을 차고 있었다.
  
  '구 사범님, 뭐하는 자입니까?' 나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슬며시 물어 보았다. 그러나 구씨는
  '나중에 알게 돼'라는 말밖에 더는 일러주지 않았다. 빵 모자의 사나이는 손짓으로 어느 지점을 가리키며 무어라고 지껄였고,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던 중년신사가 뒤를 돌아보며 구씨를 불렀다. 중년 신사로부터 무슨 지시를 받고 내 곁으로 되돌아 온 구씨는 혼잣소리로 '납치를 하라니 그걸 어떻게 해'라며 투덜거리더니 나에게 이렇게 지시를 했다. '너 저 앞 합승 회사로 가서 취직을 하러 온 척 하면서 김이수 라는 자가 아직도 배차 업무를 보고 있는지 한 번 알아 봐.'
  
   김 기철(이수)과의 인연
  
  가만히 듣자 하니 구씨는 중년 신사가 내린 지시를 다시 나에게 시키는 듯했다. 나는 내 나름대로 어떤 식으로 해야 할까 머리를 굴리며 버스 회사로 다가 갔다. 이미 밤 11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종점에 정차중인 여러 대의 합승 버스 중에 조수 차림의 젊은이들이 모여 앉아 있는 차가 눈에 띄였다. 나는 그 젊은이들한테 접근, 김 이수의 동생 뻘 되는 사람이라고 둘러 댄 뒤 이것저것 캐물어 보았다. 김 이수는 이미 그 회사를 그만 둔 뒤였고 범천동 돌산 부근에 살고 있다고 했다. 나는 이런 사실을 구씨에게 보고했고 구씨는 다시 중년 신사에게 마치 자기가 확인한 것처럼 보고를 했다. 우리 일행은 다시 차를 돌려 범내골 로터리 쪽으로 향했다. 밤12시가 넘은 모양이었다. 로터리 입구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던 입초 순경이 손전등으로 차안을 비추어 보며 물었다.
  
  '어디로 가십니까?'
  '차 넘버 보면 몰라!?' 중년 신사가 무뚝뚝하게 내뱉었다.
  '모르겠습니다. 신분을 밝혀 주십시오.'
  '야! 바빠. 빨리 바리케이드 치워!'
  '그래도 신분을 밝혀 주셔야지요.' 입초 순경은 쉬 물러서지 않았다.
  '나 부산 지검 검사야!' 그제서야 순경은 차번호판을 확인한 뒤 바리케이드를 치워주웠다. 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자 중년 신사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입초 순경이 저 정도는 되어야지! 어떤 녀석은 '차 번호 봐!'하면 얼른 경례를 붙이고 통과시키고 말거든.' 나는 비로소 이 중년 신사가 검사임을 알 수 있었고, 그에 따라 나의 호기심도 더 커졌다. 범내골 변전소 앞에 차를 세워 두고 돌산으로 향했다.
  
  돌산에는 판자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기 때문에 차가 올라갈 길이 없었다. 빵모자 사나이의 확인으로 김 이수의 집을 알아 낸 우리는 다시 큰 길 쪽으로 내려왔다. 차를 세워 둔 곳이 가까워지자 김 검사는 나에게 따로 지시를 내렸다.
  '덕수! 사람은 신의를 지켜야 한다. 그리고 무엇이든 맡은 바 책임은 끝까지 완수해야 하는 것이다. 내일 아침 일찍 이곳으로 다시 와 김 이수의 행방을 알아주기 바란다.' 그러고는 운전 기사에게 나를 집에까지 태워다 주라고 말했다. 나는 마치 검사의 수사 지휘를 직접 받는 수사관이 된 기분이었다.
  
  이튿날(5월3일) 새벽녘이 되자 나는 범천동 돌산을 향했다. 마침 김 이수의 집과 앞뒷집으로 이웃하고 있는 곳에 나의 5촌 아저씨의 집이 있었다. 나이는 나와 별로 차이가 없었지만 촌수로 다져 5촌 아저씨 뻘이 되었다. 나는 그에게 김 이수를 아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는 방 뒤 벽 쪽에 붙은 조그만 봉창문을 열어 재끼면서 말했다.
  '니가 그 사람을 어찌 아노? 바로 저 집 아이가! 저어기 세수하고 있는 사람이 이수다.'
  5촌 아저씨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흰 셔츠를 입은, 신체가 건장한 30대의 사나이가 세수를 하고 있었다. 나는 바로 돌산을 뛰어 내려와 공중 전화통을 붙들었다. 검찰청으로 다이얼을 돌렸지만 너무 이른 탓인지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검찰청 전화 번호 밑에 '김태현 검사 자택'이라고 쓰여진 번호를 돌려보았다.
  
  '여보세요.' 중년 신사, 아니 김 검사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반갑게 들려 왔다.
  '여보세요. 저 덕숩니다. 김 이수가 지금 집에서 세수하고 있는 걸 보고 전화를 겁니다.' '알았어! 저녁때까지 잘 미행하다가 검찰청으로 전화해!'
  나는 어리둥절해졌다. 지난밤엔 통금이 지나도록 쫓아 다녔는데 막상 찾고 나니 저녁 때까지 미행만 하라니!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지만 할 수 없이 종일 김 이수의 꽁무니를 쫓아 다니느라 진땀을 흘렸다.
  
  그러나 오후6시경 지금의 위치를 알려 주려고 검찰청에 전화를 거는 사이에 그를 놓쳐버렸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찾다가 끝내 못 찾고 김 이수의 집으로 올라가 보기로 했다. 터벅터벅 산길을 오르다 보니 사람들이 빙 둘러선 가운데에서 두 남녀가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말다툼을 하고 있는 남자는 바로 내가 조금 전에 놓쳐버린 김 이수가 아닌가. 아이들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번진 듯했다. 그들이 싸우고 있는 동안 나는 재빨리 검찰청으로 전화를 했다. 싸움이 주의의 만류로 시들해 갈 무렵 검사 일행이 들이닥쳤다. 구씨가 김 이수를 불러 세웠다.
  
  '여보! 잠깐 나 좀 봅시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왜 그러시요. 이웃끼리 약간 다툰 걸 가지고 누가 신고라도 했소?' 김 이수는 파출소에서 나온 사람으로 착각을 한 모양이었다.
  '아니 잠깐 알아 볼 일이 있으니 좀 갑시다.'
  '그래 갑시다. 가자면 못 갈 것도 없죠.' 그의 양쪽 팔을 구씨와 또 한 사람이 꽉 끼었다. 순간 김 이수는 뿌리치고 도망갈 자세를 취했다.
  '무슨 큰 죄를 지었다고 이러십니까?' 옆에서 구경하는 척 하고 있던 나도 합세를 했다. 합기도 도장에서 배운 연행술을 써먹었다. 이렇게 해서 몸부림치는 그를 변전소 앞에 세워 둔 지프까지 끌고 내려와 검찰청으로 연행했다. 지프 속에서 검사는 말했다. '나는 모 경찰서 수사 과장이다. 너 범일동 기원에서 김 금식이와 함께 라디오를 훔친 일이 있지?'
  
   그것은 근하 사건 수사였다.
  
  나는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굉장한 사건으로 여겼던 것이 고작 몇 년 전에 발생한 절도 사건이라니. 그럭저럭 밤12시경이 되었다. 우리는 부산 지방 검찰청 2층에 자리잡고 있던4호 부장 검사실로 들어섰다.
  '구사범님, 이따위 시시한 사건을 가지고 하루 종일 미행을 하게 만들다니, 담빡 잡아들이면 될 일을 갖고….' 나는 투덜거리며 그의 뒤를 따랐다.
  '영장이 없어 그런 것이다. 그리고 도둑은 아니니까 조금 있어봐!' 꼭 스무 고개를 풀어 나가는 듯한 알쏭달쏭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검사실에 들어서니 똥 냄새가 확 풍겼다.
  '누가 똥쌌나?'
  '내가 쌌소.' 대답한 것은 김 이수였다. 구씨가 닦으라고 신문지를 주었다. 해병대의 카키색 팬티를 벗어 김 이수는 슥슥 문지른다. 구씨가 '야, 그 팬티 버려. 새것 사 줄께'라고 하자 이수는 '사긴 누가 사주어요'하면서 다시 팬티를 입었다. 무뚝뚝하지만 듬직하고 저력이 있는 행동이었다.
  
  부장 검사실에서 다시 김 이수에 대한 심문이 시작되었다. 곁에서 코피를 마시며 건성으로 심문 내용을 듣고 있던 나는 '근하'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매일같이 신문, 방송에 떠들썩하게 보도되었던 사건인지라 '근하'라는 이름은 누구나 익히 알고 있던 참이었다. '이 자가 근하 군 유괴 사건의 범인이란 말인가?' 나는 신경이 곤두섰다. 불과 몇 시간 전에 동네 아주머니와 '너 새끼만 귀한 줄 알고 남의 자식 귀한 줄은 모르느냐'고 싸움질을 하던 이 사내가 남의 자식을 죽여 바닷 속에 던져 넣으려 했던 사람이라니!
  
  그날밤 김 이수는 몇 년 전의 절도 사건으로 긴급 구속 영장을 발부받아 부산 교도소에 수감되었다(마당 주 : 김 이수는 김 기철의 별명. 뒤에 김 기철 씨는 살인 혐의는 물론 절도 혐의도 벗었다). 그 며칠 뒤 구씨가 또 나를 찾아 왔다.
  '덕수야! 너 대신동에서 노는 대범이라는 친구 모르냐? 네 또래인데 유도, 합기도 3단에 왼손잡이라던데….'
  나는 잘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그날부터 또 예의 그 빵모자 사나이의 안내에 따라 완월동, 3백 번지 등 부산의 사창가를 헤매고 다녔다. 빵모자가 '정 대범이는 완월동X호에 잘 가는데…'라고 하면 그의 말에 따라 며칠을 두고 그곳을 헤매는 식이었다. 이 때부터 나의 한쪽 손에도 수갑이 채워졌다. 그 사나이의 한쪽 팔과 내 팔이 수갑으로 연결되었고 그 위에 바바리 코트가 걸쳐졌다. 빵모자 사나이의 도망을 방지하고, 지나다니는 행인의 눈길을 피하기 위한 목적인 듯했다.
  
  구씨의 이야기에 의하면 이 빵모자를 눌러 쓴 사나이는 현재 폭행죄로 징역8월을 선고받고 복역중인 김 금식이란 자로서, 그가 근하 군 유괴 사건의 공범이며 그의 자백에 따라 수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보도진의 눈을 피하기 위해 극비 수사를 펴고 있다고 했다. 아울러 구씨는 '우리 영감님은 유괴 사건 수사의 베테랑인4호 김 태현 부장 검사인데, 너는 김 검사의 자연석을 수집하는 심부름꾼(김 검사는 자연석 수집 취미를 갖고 있다고 했다)으로 행동하라'고 일러 주었다. 그리고 이 사건은 경찰에도 지시하지 않고 김 검사가 직접 수사를 하는 만큼 절대 비밀을 지키라고 다짐을 했다.
  
   한증탕 속의 복역수
  
  5월14일경. 그날은 근하 군의 외삼촌인 최 형욱을 연행하러 갔다. 초량동 그의 집 앞 골목에서 대기하다가 최의 도주로를 차단하는 게 나의 임무였다. 그러나 별 탈 없이 근하 외삼촌을 임의동행의 형식으로 검찰청4호 부장실로 데려 올 수 있었다. 김 태현 검사는 그에게 그 동안의 안부를 묻는 등 평범한 이야기로 말머리를 이어 갔다. 그러다가 김 검사는 갑자기 차분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이 세상에 자기 조카를 죽이는 사람도 있는가'며 타이르듯 말했다. 최씨가 당황한 듯 머뭇거리며 무엇이라고 말을 꺼내려고 하자 김 검사는 찢어지는 듯한 날카로운 금속성 목소리로 고함을 꽥 질렀다.
  '이 세상에, 이 세상에 새 발의 피 같은 어린 조카의 가슴에 칼을 꼽는 그런 놈이!' 최 형욱은 얼굴빛이 노랗게 변한 채 '아닙니다'를 연발했다.
  '수갑 채워!' 김 검사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는 얼마 전 동네 주민과 싸웠던 사실이 있어 우선 그 건으로 구속을 시켰다.
  
  한편 정 대범은 군 복무중에 체포되었기 때문에 부산에 있는 모 헌병대에 수감되었다. 나는 이따금 헌병대로 그를 데리러 가기도 했고, 그의 애인이 면회를 오면 입회를 하기도 했다. 정 대범은 면회 온 애인에게 오히려 의기 양양하게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야! 걱정마라. 내가 조그만 애 하나 죽인 덕분에 간첩들을 일망 타진하게 되었는기라. 결과적으로 나는 국가를 위해 좋은 일을 한 사람이고, 여자 간첩 두목을 잡게 되면 상금도 타게 된다 말이다.'
  
  정 대범의 주장에 따르면 그가 김 이수와 함께 3백 번지 사창가에 갔더니 북에서 내려온 여자 간첩이 책상에 칼을 꽂으면서 1백만원을 줄 테니 일을 도와달라고 했다고 한다. 뒤에 김 금식은, 그 여간첩은 단순한 창녀에 불과하며 단지 자기가 정 대범을 이 사건에 끌어들이기 위해 돈을 주고 그런 연극을 꾸몄다고 나에게 말하며 갈피를 잡을 수 없게 했다. 한 쪽 팔에 수갑을 나누어 차고 다니다 보니 어느덧 나는 빵모자 사나이 김 금식과 매우 친숙한 사이가 되어버렸다. 완전 삭발된 죄수 머리를 감추기 위해 쓴 빵모자, 죄수복 대신 걸친 기성복, 당당한 체구, 그리고 정답게 손을 잡고 걷는 다정한 형제같이 위장된 만큼 친밀도도 빨랐다.
  '형! 도망 가고 싶지 않아? 형이 도망치면 내 팔은 어떻게 되지?'
  '짜식아! 도망 가려면 못 갈 줄 알아? 걱정하지마.'
  이렇게 스스럼없이 농을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어느 날은 근하 군 유괴 사건이 북괴의 지령에 의한 것이라는 김 금식의 귀띔에 따라 간첩선이 접근할 것이라는 광안리 해수욕장 일대를 사전 답사한 뒤 우리 일행은 해운대 극동 호텔 한증탕에 들어 간 적도 있었다.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인 죄수가 일류 호텔 한증탕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니! 그에게 슬며시 한 번 물어 보았다.
  '금식이 형! 지금 징역을 사는 거요, 기분을 내는 거요?'
  '야 임마! 누가 듣는다. 내가 슬슬 불어야지 이런 식으로 이럭저럭 징역을 때울 게 아니냐.' 아무튼 그의 정보에 의해 5월27일 밤엔 대간첩 작전이 펼쳐졌다. 수영 비행장에는 각종 기관의 차량 수십 대가 몰려 들었고 요소요소에 병력이 배치되어 간첩의 출현을 기다렸지만 또 허탕이었다.
  
  이 대간첩 작전에서 나는 김 태현 검사로부터 또 하나의 색다른 임무를 부여받기도 했다. '덕수야! 너는 만약 총알이 나에게로 날아오면 몸으로라도 그것을 막아야 한다.' 경호원이라기보다는 총알받이의 역할까지 주어진 셈이었다. 작전이 실패로 돌아 간 다음날 나는 다시 한 미치광이 노인의 정신 감정을 재주껏 해 내야 했다. 아마 작전 실패의 원인이 고정 간첩에 의한 사전 정보 탐지 때문이었고, 그 당시 XX해안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움막을 짓고 '천왕사(天王寺)'란 간판을 달아 놓고 좀 정신 나간 짓을 하던 노인이 있었는데 그가 고정간첩의 용의선상에 올랐기 때문인 것 같았다.
  
   함정수사의 미끼 역할
  
  한편 이 무렵 박 영태란 의문의 사나이가 근하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었다. 김 금식에 의하면 그는 이북을 몇 차례나 왕복한 사실도 있으며 권총까지 소지하고 북괴의 지령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고 했다. 김 금식의 진술에 따라 우리는 대구로 향했다. 밤 12시가 넘어 대구역에 도착하니 연락을 받은 대구 일행은 김 금식의 안내를 받으며 대구시 비산동의 주택가에 들어섰다. 박이 살고 있는 집의 구조가 김 금식에 의해 그려졌다. 박이 눈치를 채고 달아나지 못하도록 내가 살짝 담을 넘어 들어가 대문을 열고 일행을 불러들이기로 했다. 그러나 고요히 잠든 이 동네 사람들에게 도둑 소동을 일으키며 한 바탕 소란을 피웠을 뿐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박은 이미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한 뒤였다.
  
  우리 일행-김 검사, 구씨, 김 금식과 그의 호송 책임을 맡은 교도관 두 명, 그리고 나는 대구 역전 근방의 여관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김 금식과 나와 구씨 세 명이 한 방을 썼는데 구씨는 이내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그러자 김 금식은 담배 종이를 수갑의 톱니에 물리고 두어 번 만지작거리더니 이내 수갑을 풀어버렸다. 나는 그가 절대로 도망가지 않을 것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모처럼 서로를 연결한 수갑을 풀고 단잠에 빠져 들었다.
  
  다음날 우리는 김 금식 일당이 범행을 모의했다는 대구시 서구 달성동 부엉이집과 알리바이를 조작하기 위해 갔다는 자갈 마당앞 사창가, 노동 회관 등을 돌며 예비 현장 검증을 한 뒤 여관으로 돌아 왔다. 우리의 행동이 수상했던지 여관 주인이 112에 신고, 완전 무장을 한 경찰이 출동하여 여관을 포위하는 촌극도 벌어졌다. 이날의 예비 검증에서는 근하의 외삼촌이 김 이수의 알리바이를 만들어 주기 위해 대구로 올라왔던 사실이 밝혀졌다. 그는 매일밤 뭇 사내들을 상대하는 창녀들이 사람의 얼굴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이용하기 위해 사창가인 자갈 마당을 찾아가 하룻밤을 지내면서 '나는 부산에 사는 김 이수다'는 말을 되풀이해 '김 이수'란 이름만을 기억시켜 주려고 했다는 것이다.
  
  수사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선 듯한 어느 날, 김 검사는 보따리 하나를 나에게 건네 주며 새로운 지시를 내렸다.
  '덕수 너 이 사람(부산 시경의 형사)과 함께 대구로 가서 박 영태의 거주지를 알아 내도록 해라. 그리고 네가 그 집을 다녀왔다는 증거를 남겨 둘 필요가 있으니까 그 집 아이들과 얼굴을 익혀 두도록 하고, 이 보따리는 박의 처에게 팔든지 맡겨 두든지 해라.'
  보따리 속에는 김 금식의 변장에 사용했던 옷가지와 라디오 1대가 들어있었다. 동행한 ㄱ형사가 박의 딸이 다니는 국민학교를 알아 내었기 때문에 학적부를 뒤져 대구 대봉동에 있는 박의 집을 쉽게 찾아 낼 수 있었다.
  
  박의 집은 소방 도로에 인접한 조그만 구멍 가게였다. ㄱ형사와 나는 일단 가까운 여관에 여장을 푼 다음,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나 혼자 박의 집으로 향했다. 손님도 없이 어두컴컴한 가게 문을 밀치고 들어 서며 나는 큰소리로 주인을 찾았다. 잠시 후 박의 처로 보이는 여인이 촛불을 들고 나오며 나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쳐다 보았다.
  '아줌마, 내 모르겠능교? 나요, 나.' 나는 아는 체 하며 열려진 방 문턱에 걸터 앉았다.
  '누군교? 나는 모르겠는데….'
  '아이고 아줌마도! 비산동 살 때 아저씨 밑에 있던 학규를 모르겠는교?' 나는 시침을 뚝 떼고 얼렁뚱땅 둘러쳤다. 집 안에 다른 사람은 없는 듯했다.
  '닷새 전에 출감했는데 갈 곳도 없고 해서 아저씨한데 인사나 하려고 찾아 왔는데… 아저씨 어디 갔는교?'
  '그 사람이야 항상 밖으로 나돌아 다니니 집에 붙어 있을 날이 있어야제.'
  
  박의 처는 마지 못해 대답은 하면서도 미심쩍은 눈초리로 나를 뜯어 보았다.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내일 다시 찾아 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일단 여관으로 돌아 왔다. 내 자신이 생각을 해도 나의 연극이 그럴싸 했다는 느낌이 들어 휘파람이 저로 나왔다.
  
  이튿날 오전 11시경 다시 박의 집을 찾아 갔다. 중학생 정도의 남자 아이와 국민학생인 듯한 계집아이 둘이서 집을 보고 있었고 박의 처는 보이지 않았다.
  '엄마 어디갔노?' 애들을 살살 구슬리며 물어 보았더니 비산동에 있는 이모집엘 갔다고 했다. 혹시 그곳에 박이 숨어 있을지 몰라 주소를 알아 낸 다음 가까운 공중전화로 여관에서 기다리는 ㄱ형사에게 우선 알려주었다. 그리고는 다시 박의 가게로 돌아와 쓸데없는 장난을 해 가며 아이들과 한참 놀고 있으려니까 박의 처가 돌아 왔다. 뚱뚱한 어떤 여자와 함께였다.
  '아줌마! 아저씨도 없고 하니 내사 고향으로 내려갈라요. 차비하게 돈 있으면 만 원만 빌려주소.'
  박의 처는 돈 가진게 없다고 했다. 모르는 여자도 있고 해서 이 정도로 물러 서기로 했다. 그날밤 10시경이 되자 나는 김 검사가 준 보따리를 들고 다시 박의 집으로 갔다. 보따리를 박의 처 앞에 슬그머니 밀어 놓았다.
  
  '이 보따리는 뭔교?'
  '아저씨도 없이 아줌마 혼자 사는 데 차비 얻어 쓰기가 미안해서 여관 옆방 손님 걸 슬쩍 해 왔수다.' 박의 처는 펄쩍 뛰었다. 한동안 서로 밀고 당기고 하다가 하룻밤만 보관시켜 두었다가 다음날 찾아 가기로 했다. 함정 수사를 위해서는 어떻게 하든지 보따리는 맡겨 두어야 한다는 생각에 생떼를 써 억지로 맡긴 것이었다. 만약에 그녀가 신고를 하면 나는 절도죄로, 그녀는 장물 취득죄로 엮어 넣어 박의 소재를 추궁할 계획이었다. 다음날 내가 다시 박의 집을 찾아 가 몇 마디를 나누고 있으려니까 30대의 한 사나이가 가게로 들어섰다. 인상 착의로 보아 박은 아닌 듯했다. 그는 박의 처와 반말로 이야기를 나누더니 대뜸 나에게 말을 걸어 왔다.
  
  '어이! 젊은 친구. 내가 BBS에 넣어 줄 테니 구두나 닦아 보지 그래.' 내가 싫다고 하자 그는 보따리를 받아 들고 나의 허리띠를 움켜쥐더니 지나가는 택시를 불러 태웠다. 알고 보니 그는 대구 동부 경찰서의 형사였다. 경찰서에서 그는 나를 꿇어 앉게 하더니 발길질을 했다. 나는 오히려 빙글빙글 웃으며 주머니 곳에서 명함을 꺼내 집어던지면서 내뱉었다.
  '여기 전화 좀 걸어 주시오.'
  그 명함은 같이 온 부산시경 ㄱ형사의 것이었으며, 뒷면에는 수사상 행동하는 사람이니 협조 바란다'는 글도 쓰여 있었다. 명함을 보더니 이 친구의 얼굴이 노랗게 변하여 갔다.
  '형씨! 도대체 어떻게 된 거요?' 이제는 순서가 바뀌었다. 나는 책상을 꽝꽝치며 소리를 질렀다.
  
  '당시 그 여자와 어떤 관계요? 가만히 보니 무슨 뒷거래가 있는 모양인데 당신 관직 성명 적어 주시오. 당신 때문에 수사상 차질이 생기게 되었으니 우리 영감이 날 추궁하면 난 당신한테 그 책임을 전가하겠소!' 생각지도 않던 역습을 당해 벌겋게 얼굴이 달아 오른 형사를 계속 몰아 붙이다가 그를 데리고 여관으로 갔다. ㄱ형사에게 대강의 전말을 이야기하고 그 대구 형사를 소개시켜 주었다. 대구 형사는 박이 자기의 고모부라고 했다. 친고모부가 죽고 난 뒤 큰 사업을 하고 있다는 박에게 속아 재혼을 했는데 자신이 뒷조사를 해 보았더니 전과 5범이더라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둘 사이에 이미 애까지 생겨나 할 수없이 여지껏 살고 있노라고 했다. 다행히 우리는 그를 통해 박이 살고 있는 부산의 주소까지 확인한 다음 부산으로 되돌아 왔다. 박 영태의 집 주변에서 우리는 잠복을 계속했으나 박은 집을 나가 어디를 쏘다니는지 나타나질 않았다.
  
   정말로 무죄일까?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근하 군 유괴범 일망타진'이라는 기사가 신문의 사회면을 가득채웠다. 내가 알기로는 부산 지검장의 승진 축하 선물로써 미궁에 빠진 근하 군 유괴 사건 해결을 계획보다 빨리 발표했다고 했다. 구 사범은 박 영태도 못 잡은 상황에서 너무 빨리 사건 해결을 발표했다고 투덜댔다. 물증이나 범인 조직 등 여러 가지 증거가 완전히 구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렇게 떠들썩하게 공개된 것이었다. 범인 체포가 알려진 후 대신동 근하 군 집 앞에서의 현장 검증 때는 구경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는데 이 때부터 나는 정 대범을 묶은 포승을 잡고 따라 다녔다. 대구에서의 현장검증을 위해 대구역 플랫포옴에 도착했을 때의 일이다. 정 대범이 나에게
  '야 덕수야, 내가 신호를 하면 포승줄을 늦추어 다오. 기자 새끼들 카메라 몇 개 박살낼 테니까'고 소근대었다. 포승은 엮은 끝 부분을 풀어 내면 4미터 가량 늘어날 수 있었다. 역에 내려 서자 대기했던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 플래시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정 대범이 손짓을 했다. 나는 슬쩍 포승을 늦추어 주었다. 그와 동시에 대범이의 얼굴에 초점이 맞추어진 어느 사진 기자의 카메라를 향해 2단 옆차기가 터져 나갔다. '퍽'하는 소리와 함께 나둥그러진 카메라를 힐끗 쳐다 보며 정 대범이 싱긋 웃어 보였다. 대구역에서 대구 교도소로 향하는 현장 검증 팀의 뒤로는 차량의 행렬이 꼬리를 물었다. 경찰 사이카를 선두로 구경 인파를 정리할 기동대 차량, 지프, 각 신문사의 깃발을 높이 매단 승용차, 방송국 차량 등 마치 카 퍼레이드라도 벌이는 듯했다.
  
  '덕수야 임마! 너 우리 덕분에 출세했다. 언제 이렇게 캄보이를 받아 가며 드라이브를 해 보겠나?' 대범이가 나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얼마나 배짱이 세면 저럴까. 생을 포기한 상태면 저렇게 되는 걸까, 나는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최 형욱과 김 기철(김 이수의 본명)은 시종 일관 범행을 부인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믿지 않았다. 나는 김 금식 및 정 대범과 친해지면서 따로따로 범행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그 이야기는 서로가 일치하는 것이었다. 후에 나는 그들이 모두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가 문득 김 금식이 대구 역전의 어느 여관에 누워서 한 말이 떠올랐다.
  '때에 따라 나는 사건을 1백80도 돌릴 수 있다. 나의 머리는 법전을 다 외운다.' 정 대범이 '아무래도 당신들은 범인이 아닌 것 같은데…'하고 묻는 기자들에게 한 말도 떠올랐다.
  
  '나는 이미 사형을 각오하고 있다. 이번 사건이 무죄가 되는 경우 두 번 다시 이런 사건이 안 나도록 내가 저들(최 형욱과 김 기철)을 죽이겠다. 그 자식들이 나를 이용해 요꼴로 만들었다.'
  김 금식이나 정 대범과는 이상한 인연으로 정이 들었다. 그들이 무죄 선고를 받고 나와 같은 하늘 아래서 산다는 것이 싫지는 않지만 나는 아직도 의문을 못 버리고 있다. 무죄 확정 소식을 들었을 때에는 내가 증인으로 못 나간 것이 한스럽기까지 했다. 김 태현 검사가 김 금식의 각본에 얹혔다는 것도 믿기지 않았다. 김 검사는 누구에게 속임을 당할 그런 인물이 아니었다. 남자답고, 무서우면서도 잔정이 많은 호탕한 집념의 인물이었다. 심문을 할 때의 그의 말투는 상대방의 허점과 폐부를 찌르는 섬뜻한 맛이 있었고 아랫사람들을 무섭게 다루면서도 농담도 곧잘 했으며 특히 범죄세계의 속어들을 잘 구사하여 '과연 명검사구나'하는 인상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 김 검사가 김 금식의 함정에 빠졌다니! 나는 귀신에 홀린 기분이 들 뿐이었다. 이제 1982년 10월 17일로 그 사건도 공소 시효가 끝난다니 언젠가 김 금식과 대범이를 만나 막걸리 한 잔이라도 나무면서 옛날 얘기로 돌려야 할 그날의 진실을 알아 보아야겠다. 금식 형, 그리고 대범이, 만약 이 글을 읽거든 나에게 연락 한번 주길 바라오.
  
출처 : 마당
[ 2003-07-04, 16:3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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