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하군 살해범이 면죄부를 받는 운명의 그날(1)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근하 군 살해범이 면죄부를 받는 운명의 날-1982. 10. 17
  
  '하나의 신화가 있었다. 형사, 검사, 판사, 변호사, 그리고 사회부 기자 세계에선 이미 전설처럼 돼버린 사건이 있었다. 열 네 해가 흐른 지금도 그 사건 이름만 대면 그들은 자기 아이들 이름을 외우듯 스물도 넘는 관계자들의 성명을 줄줄 기억해 내곤 한다. 아직도 그 사건을 악몽처럼 추억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사건을 떠올리면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건을 누가 새삼 입에 올리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사람들도 있다. 가슴속을 저며 오는 슬픔과 북받치는 분노와 남기고 싶지 않은 원한과 되살아나는 복수심을 홀로 억누르며 완강하게 삶을 버티고 걸어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 사건에 짓눌려 비참하게, 한을 품고 일생을 끝맺음한 사람들도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 행로를 바꾸고 그들에게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고통을 선물한 장본인의 생사는 알 길이 없다. 살아 있다면 그는 흘러가는 하루하루를 열심히 헤고 있으리라. 1982년 10월17일이 어서 빨리 오라고 그는 빌고 있을 것이다. 앞으로 3백65일. 한 해만 지나면 그는 이 나라의 법이 보장하는 면죄부를 얻게 된다. 그리하여 신화는 화석으로 굳어지고 곧 망각 속에 파묻혀버릴 것이다.' (마당 '81년10월호 '김 기철씨는 왜 요절했나?'의 머릿글).
  
  ●검찰측 수사 요원의 수기 / 내가 범인으로 믿었던 두 사람
  ●가짜'진범'탐방기 / 나는 꼭두각시 춤을 추었다
  ●드라마의 연출가 김 금식, 입을 열다 / 세상이 또 한 번 깜짝할 일이 있을 겁니다
  ●15년의 대차 대조표 / 양심과 확신과 집념이란 이름의 폭력
  
  <1982년 10월 마당>
  
   근하 군 살해 사건일지
  
  ● 1967년10월17일:범인은 근하 군의 집 앞(부산시 서구 동대신동)에서 과외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던 근하군을 칼로 찔러 죽임. 시체를 마분지 상자에 넣어 택시로 부산 시청 뒤 해안까지 운반, 버리려다가 경찰관에게 발각돼 상자만 남겨 놓고 달아남
  
  ● '67년11월 3일:신문들, 경찰이 전 경열 씨(가명)를 진범으로 체포했다고 일제히 보도, 전씨의 모교학생들과 이웃 주민들은 엉터리 수사와 보도에 항의 데모, 전씨는 5일 밤에 무혐의로 풀려남.
  
  ● '68년 3월 8일:부산 교도소에 있던 김 금식 씨, 가명의 엽서를 경찰에 보냄. 자신이 근하 사건의 범인들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적어 넣음. 경찰이 김씨를 상대로 수사에 착수했으나 허위 투서로 결론 내리고 손을 뗌.
  
  ● '68년 4월중순∼5월 말:김 금식 씨는 다시 교도소 직원을 통해 부산 지검 김 태현 검사에게 제보. 김 검사 수사 착수, 김 금식 씨의 유도에 따라 김 기철, 정 대범, 최 형욱 씨(가명)를 체포. 이어서 김 금식 씨를 불법 출소시켰다고 대구 교도소 직원 4명도 구속.
  
  ● '68년 5월29일:부산 지검, 근하 살해범 일당 일망 타진 발표.
  
  ● '68년 6월 7일:대구 교도소, 자체 조사 결과 불법 출소 없었다고 주장, 검찰과 맞섬.
  
  ● '68년 6월12일:현장 검증.
  
  ● '68년 6월19일:검찰이 사건의 배후 조종자로 쫓고 있던 박 영태 씨가 신문사에 자진 출두, '근하 사건과 관련 없다'고 폭탄 선언. 검찰은 박씨를 다른 범죄 혐의로 구속.
  
  ● '68년 7월22일:부산 지법에서 첫 공판.
  
  ● '68년10월28일:10회 공판에서 김 금식 씨, 그 때까지의 자백을 송두리째 뒤집고 이 사건 수사는 자신의 각본에 의한 것이라고 폭로하기 시작.
  
  ● '68년11월13일:군사 법정에서 정 대범 씨도 종전의 자백을 번복, 허위 진술이었다고 폭로.
  
  ● '68년11월22일:부산 지법 박 정표 재판장이 최 형욱, 김 기철, 김 금식 씨에게 사형 선고, 나머지 네 교도관에게도 실형 선고. 12월3일 군수 기지 사령부 보통 군법 회의도 정 대범 씨에게 사형 선고.
  
  ● '69년 3월21일:대구 고등법원은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김 기철 씨 등 일곱 명의 피고인 에게 전원 무죄 선고.
  
  ● '69년 7월15일:육군 고등 군법회의는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정 대범씨에게 또 사형 선고.
  
  ● '69년 7월25일:대법원 형사1부, 검찰측 상고 기각, 대구 고법의 무죄 판결 확정.
  
  ● '69년 9월23일:대법원 형사 제2부, 육군 고등 법원의 판결을 파기, 환송.
  
  ● '70년 2월12일:육군 고등 군법회의 정 대범 씨에게 무죄 선고, 확정.
  
  ● 1982년10월17일:공소 시효 완성.
  
  그날이 오고 있다. 부산시 서구 동 대신동 김 근하군이 집 앞 골목길에서 가슴에 칼을 맞고 살해된 지 15년째 되는 날, 그날이 지나면 '내가 범인이다'고 나서도 처벌을 할 수 없는 바로 그 날짜가 눈앞에 다가와 있다. '마당'10월호가 팔리고 있을 때 그날은 지나 갈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지난해 우리가 걱정했던 것처럼 이 사건이 '곧 망각 속에 파묻혀버릴'것 같지는 않다.
  
  '마당'에 세 차례 실렸던 '근하 군 살해 사건의 입체연구'는 이 사건을 화석이 아닌 신화로 만드는 데 약간의 도움을 주었던 것 같다. 그 기사는 일부 검사들 사이에서 '필독서'로 읽혔다. 기자재 교육장에선 교재로 사용되었다. '신화 1900'이란 연극(각본·윤 대성, 실험 극장, '82년 대한 민국 연극제 공연)으로 탈바꿈하여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늘 미흡한 느낌을 갖고 있었다. 이 드라마의 주연 배우 두 명을 끝내 만나지 못하고 그 기사를 썼다는 자책감 같은 것이 항상 가슴속에 남아 있었다. 두 주인공을 찾기 위해 광고도 세 차례 내었으나 소득이 없었다. 재판 기록에 나타난 생년월일이 주민 등록상의 그것과 달라 현주거지 확인도 잘 되지 않았다.
  
  그 기사가 나간 뒤 인천에서 황 덕수라는 분이 나를 찾아 왔다. 원고 한 뭉치를 들고서. '선생님은 그들이 무고하다고 썼지만 나는 그들이 범인이라고 아직 믿고 있습니다. 내가 쓴 글을 한 번 읽어보십시오.' 그는 근하 사건 수사를 지휘했던 김 태현 검사가 데리고 다녔던 민간인 수사원 구 영근 씨의 밑에서 수사를 거들었던 사람이었다. 사법 경찰관이 해야 할 성질의 수사까지도 그 때 열 아홉 살이었던 황씨는 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 사건을 보는 황씨의 눈은 검찰측의 그것과 같았고 그래서 나의 직업적 흥미를 돋구기에 이르렀다. '그들이 범인이다'는 생각을 15년 동안 간직하여 왔다는 점에서 황씨의 견해는 검찰 뿐 아니라 무죄 확정 판결을 받고 풀려난 김 기철 씨 등을 그 뒤로도 의혹의 눈초리로 지켜보았던 일부 이웃들의 의식도 얼마만큼은 대표하고 있는 것 같았다. 더구나 황씨는 내가 쓴 원고지 5백 장분의 기사를 읽고도 자신의 생각을 고치기는커녕 오히려 나를 설득하려 들었다.
  
  '조 선생님, 너무 그렇게 검사들만 나쁘게 보지 마십시오. 선생님은 검사가 전과자의 각본에 말렸다고 썼지만 김 검사가 그럴 분이 아니에요. 한 달 동안 그들과 같이 지내고 친해지기까지 했던 나는 그들이 범인임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어요. 더구나 조 선생님은 금식이와 대범이를 만나지 않고 이 기사를 썼지 않습니까? 지금 만나 보면 다른 얘기가 나올지 모릅니다.' 그는 나의 아픈 데를 건드렸다. 아니 약점을 찌른 것이었다.
  
  근하 사건의 수사와 재판에서 김 금식 씨와 정 대범 씨는 검사들이 타고 있는 마차를 끈 두 필의 말이었다. 이 두 말은 가는 방향까지도 마음대로 잡아 나갔다. 두 말은 한창 비탈길을 오르다가 스스로 줄을 끊어버렸다. 마차는 검사들을 태운 채 비탈 저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결정적 시기에 가서 이런 반역을 한 두 사람과 만나지도 않고 그들의 심리 상태를 이미 발표된 기사나 판결문으로만 추리한 것은 또 다른 오보가 아닌가 하고 황씨는 나를 추궁했던 것이다.
  
  나는 취재의 미흡함을 보충하고 나의 믿음(그것은 또한 법원의 확신이기도 하다)을 재확인하기 위해, 그리고 황 덕수 씨와 같은 사람들의 의구심을 깨끗이 씻어 주기 위해 두 주인공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그러면 먼저 황씨가 가진 의심의 구조와 그가 이 사건에서 맡았던 역할을 알기 위해서 황씨가 써 온 수기를 한 번 읽어보자.
  
출처 : 마당
[ 2003-07-04, 16:3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코나스넷  |  리버티헤럴드  |  뉴데일리  |  뉴스파인더  |  뉴포커스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