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이 살려준 무죄인을 우리 사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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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이 살려 준 '무죄인'을 우리 사회가 사형집행하겠다는 겁니까?
  
  <1982년 10월 마당>
  
   '법정의 무죄'와 '사회의 무죄'
  
  고 숙종 피고인과 정 재파 피고인에 대한 무죄 선고가 있자 담당 경찰과 검사들은 '우리는 저들이 범인임을 확신한다'고 했습니다. 많은 시정 사람들도 '범인은 범인인데 증거가 없어 무죄 선고를 받은 게 아닐까?'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습니다. 고씨의 남편은 고씨가 보석으로 풀려 나오자 '아직도 사회에서는 무죄 판결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법정에서 무죄 판결이 난 사람에게 영원히 붙어 다니게 되는 이 '의혹의 꼬리표'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입장을 바꾸어 봅시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판사라고 합시다. 살인 사건에 유죄를 인정하면 대부분 무기 아니면 사형입니다. '저 사람이 틀림愎?범인이다'는 확신이 안 설 때, 1퍼센트의 의심이라도 있을 때 과연 '저 사람을 죽여라'는 선고를 할 수 있겠습니까? '대강 범인인 듯하니 죽여버려라'는 식의 선고가 있을 수 있습니까? 입장을 바꾸어 생각합시다. 우리가 고 여인이고 정군이라고 합시다. 아니 그들의 가족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수사기관에선 '누가 뭐래도 저들은 범인이다, 무죄가 됐다 해도 우리는 수사를 계속하여 범인임을 입증시키겠다'고 합니다.
  
  사회에선 '정말 무죄인가?'고 계속 의심을 합니다. 이래 가지곤 불안하고 원통해서 살겠습니까? '저들은 살인범이다'는 얘기는 '저들은 죽여라'는 뜻인데 어떤 사람들이 그런 말을 공공연히 하고 다닙니까? 법에의 승복은 '판결에의 승복'에서 출발하는 데 검사들이 진행중인 재판의 결과에 대해 그런 말을 해도 되는 겁니까? 사람의 생명이 달린 문제인데…
  
   결백의 입증은 유죄의 입증보다 힘든 법입니다
  
  의심이 생겨도 확증이 없으면 상대방이 유리한 방향으로 생각을 해 주는 것이 인간의 도리가 아닙니까? 더구나 법정이 무죄 선고한 사람을 의심할 권리를 인간이 가질 수 있습니까? 법정의 판단 이상으로 개인의 판단력이 우수할 수 있습니까? 의심이 나면 안으로 삭여야지 입 바깥으로 그 의심을 털어놓으면 어떻게 됩니까? 의심할 자유는 있어도 그 의심을 공공연히 말할 자유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지금 명예 훼손 죄를 저지르고 있는 건 아닐까요?
  
  이 세상에는 밝힐 수 없는 진실이 많습니다. 결백을 제 3자에게 설득력 있게 증명하기란 유죄를 입증하는 일보다 더 어렵기도 합니다. 결백을 증명 못 한다고 해서 '결백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객관적으로 입증이 안 되는 진실도 많은 법입니다. 그러한 입증 불가능의 문제에 있어선 당사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판단을 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며 법의 정신이기도 합니다. 경박한 의심은 법정이 살려 준 '무죄인'을 이 사회가 사형 집행하는 결과를 빚게 될 것입니다. 적어도 진행중인 재판에 대해서는 경찰이나 검사 등 관계자들부터가 입을 굳게 다물고 논평을 하지 않는 양식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정군이나 고 여인은 헌법이 보장하는 '무죄인'입니다. 확정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에서 '범인이다' '아니다'는 토론이 법정 바깥에서, 신문 지면에서, 피고인들의 이웃에서 '재미 삼아' 행해지고 있을 만큼 우리의 양심이 무디어져 있습니까? 가슴에 손을 얹고 잠시만 생각해 봅시다.
  
출처 : 마당
[ 2003-07-04, 16:3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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