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민이 안은 문제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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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代 國民이 안은 問題點
  
  과밀과 경쟁을 몰고 다니는 55∼61년생(23∼29세) 베이비 붐 세대, 5백70만 명의 초상화
  
  <1984년 7월 월간조선>
  
  6·25 전란이 휩쓸고 간 폐허 속에서도 생명들은 솟아났다. 총칼이 솎아낸 수백만 명의 목숨들을 서둘러 보충하려는 듯 주렁주렁 태어난 그들에게 인구학자들은 「다출산(多出産) 세대」, 또는 「베이비 붐 세대」라는 학명을 붙여 주었다. 그들은 한국 역사상 출산율이 가장 높았던 1955∼1961년 사이에 난 사람들이다. 지금 나이 만 23∼29세의 청년들이다. 84년 1월 1일 현재 약 5백67만의 머리수를 가진 인구 집단이다. 전 국민의 약 14%, 전체 유권자의 약 24%를 차지하는 막강한 그룹 파워다.
  
  「23∼29」라는 이정표에 이를 때까지의 역정(歷程) 속에서 그들은 숱한 팽창, 홍? 적체 현상을 일으켰다. 무리하게 삼킨 음식 덩어리가 밥줄을 지나면서 불뚝 팽창하듯, 소나기가 홍수되어 강을 범람시키듯 그들은 우리 사회의 통로를 넓히고 새로 뚫고 때로는 틀어막거나 부수면서 청년으로 자랐다. 폐허 속에서 태어나 어느 선배 세대도 맛보지 못했던 물질적 풍요 속에서 자라나면서 주체 못할 잠재력을 키워 온 그들은 오늘날, 드디어 대폭발의 임계점을 넘어갔다.
  
  체력, 욕구, 정열, 도전심, 문제의식 등 모든 부문에서 절정에 도달한 이 집단은 이동과 활동이 가장 격렬한 생활단계에 접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취직·결혼·출산·면학의 적령기에 도달한 이 거대 인구 집단의 용트림은 우리 사회의 기반을 흔들고 있다. 멀지 않아 그들은 대한민국이란 수레를 끌고 달릴 준마가 될 것이다.
  
  문제는 이 수레가 너무 가볍고 고삐는 너무 약하다는 점일 것이다. 보다 더한 중대사는 베이비 붐 세대의 대폭발이 한국 사회를 엄청나게 변화시킬 것이란 점이다. 지금까지는 사회 변혁의 한 인자가 되었던 그들은 이제부터는 변화의 주체 집단이 될 것이다. 다가오는 선거에서 베이비 붐 세대가 주류인 20대는 전체 유권자의 약 36%를 점하게 된다. 「표의 힘」에서도 그들은 이 사회의 최강집단이다. 그 힘을 어떻게 행사하느냐에 따라서 그들은 한국의 정치 기상도를 좌지우지할 수도 있다. 대한민국의 진로를 결정할 「태풍의 눈」이 이들이라면 과장일까?
  
   인구 폭탄의 뇌관 구실
  
  인구 정책가들에게 베이비 붐 세대는 참으로 거북한 존재다. 한국의 인구 폭발을 제어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곧 베이비 붐 세대의 출산율을 잡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고 이시백 교수(서울대 보건대학원)는 말한다. 결혼한 베이비 붐 세대의 여성들이 「제2의 베이비 붐」을 일으킨다면 한국의 인구 계획 목표는 달성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전문가들 사이에 감돌고 있다. 84년 현재 약 6백만에 이르는 우리 나라 가임(可姙) 부인들(20∼44세) 중 약29%가 25∼29세의 베이비 붐 세대다.
  
  요즘 한 해에 태어나는 아기들의 약 81%(약 72만명)는 20대 여성들이 낳은 생명들이다. 모든 연령층 중 가장 왕성한 출산력을 보이고 있는 베이비 붐 세대는 다행히 가족 계획에 대한 매우 높은 이해심을 갖고 있다. 그래도 워낙 인구 집단이 크기 때문에 『둘도 많다』는 「두 자녀 이하 낳기 운동」이 주로 이들을 겨냥해서 새로 추진되기에 이르렀다.
  
  베이비 붐 세대의 여성들이 80년대에 가임 연령층으로 대거 편입됨에 따라 아기를 낳을 수 있는 부인들은 1990년에 가면 80년보다 약 2백만이 불어난 약 7백13만 명에 달할 것이다(한국 인구 보건 연구원 추계). 앞으로 10년간 우리 사회는 줄곧 베이비 붐 세대가 일으키는 인구 가중 압력을 받게 되어 있다. 불길한 징조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인구 증가율의 감소 추세가 최근 들어 크게 둔화된 것이다.
  
  1955∼60년의 다출산 시대에 연평균 3%에 달했던 한국의 인구 증가율은 지난 80년에 와선 1.57%까지 급격히 떨어졌으나 베이비 붐 세대가 출산을 시작하자 「제자리 걸음」에 들어갔다. 경제 기획원 추계에 따르면 82년엔 증가율이 1.58%로 오히려 높아졌고 제2의 출산붐이 한 고비를 넘기는 86년에 가서야 1.49%까지 떨어질 것이라 한다. 가임 부인들의 인공 임신 중절 경험률도 지난 76년∼79년 사이엔 39%에서 48%로 대폭 늘었으나 그 뒤 3년 동안엔 2%밖에 증가하지 않아 정체 상태에 있다.
  
  정부의 인구 계획은 오는 88년까지 출산율을 한 부부 당 2.1명 수준, 즉 인구 대체 수준으로 떨어뜨린다는 것이다(산술적으로는 부부당 2명이라야 대체 수준이지만 성장 과정에서의 사망률을 고려하면 2.1%가 그 수준). 88년에 출산력의 브레이크를 정지 상태로 밟는다 해도 기존 인구의 큰 규모가 관성에 따라 60여년간 계속 증가, 인구가 6천1백31만 명이 되는 서기 2050년에 가서야 증가율이 제로가 된다.
  
  이 목표를 이룩하기 위해선 우선 베이비 붐 세대의 출산력을 눌려야 하는데 워낙 덩치가 큰 죄(?)로 해서 『이들에겐 「한 가정 한 아이 낳기」를 권장하지 않을 수 없다』고 조남훈 연구관(한국 인구보건연구원)은 말했다. 그들을 이번에 단단히 잡아두지 않으면 그들이 낳은 아이들이 20∼30년 뒤엔 세 번째의 베이비 붐을 또 일으켜 인구 계획을 망쳐 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후의 결혼 붐이 다출산 유발
  
  55∼61년의 베이비 붐은 한국 전쟁 뒤 일어난 이산 부부의 재결합·결혼러시·장병들의 제대 등 요인들을 바탕으로 일어났다. 50∼53년의 전쟁동안 억제되고 적체된 출산력이 이 기간에 증폭된 것이었다. 출산력의 급증과 함께 영아 사망률의 격감은 인구 증가를 부채질했다. 조선 왕조 후반기 한국 인구는 고출산·고사망률의 균형으로 2백간 약 6백만 명의 선을 맴돌았다. 일제 시대부터 영아 사망률이 낮아지면서 인구는 급증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1927년의 영아 사망률은 1천 명 출산 당 2백87명이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영아 사망률은 55∼60년에 오면 1천명 당 16명선으로 뚝 떨어져 베이비 붐을 촉진하는 것이다. 84년 현재의 인구 추계에 따8?55∼61년 사이 출생자는 48∼54년 출생자보다 약 1백80만 명이나 많다. 6·25가 터진 50년도 출생자는 약 50만인데 61년 출생자는 근 두배나 되는 약 91만 6천 명이다. 이 베이비 붐의 불길을 끈 것은 62년부터 군사정부가 추진한 가족 계획 사업이었다.
  
  우리 여성들은 지난 20여년간 얼마나 적극적으로 산아 제한을 수용했던가? 지난 62∼83년 사이 가족 계획 사업에 의해 「출산이 방지된」 머리수는 부산과 인천시 인구의 합과 맞먹는 약 4백80만 명이다. 83년 한해에 출산이 예방된 수는 약 62만7천5백 명으로 거의 대전시 인구다. 대전시 규모의 인구 출현을 예방하는 데 든 돈은 약 3백30억 원에 불과, 가족 계획의 높은 투자 효율을 증명하고 있다. 한 사람의 머리수를 줄이는 데 5만3천원밖에 먹히지 않았다는 얘기다.
  
  82년 현재 가임 부인들의 피임 실천율은 57.7%, 피임 경험률은 81%, 인공 유산 경험률 50%, 1인당 평균 인공 유산 회수 3회, 불임 수술 실천율은 세계 최고인 36%다. 유교 전통이 아직 뿌리 깊은 사회에서 이런 성과가 가능했다는 것은 한국인의 놀라운 현실 적응력을 보여 주는 것이다. 교리상 인공 유산을 반대하는 가톨릭 교인들의 임신 중절률이 어느 종파보다도 높다는 통계도 있어 종교가 가족 계획에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음을 입증한다.
  
  가족 계획 사업이 없었다면 84년의 인구는 4천만이 아니라 4천5백만이었을 것이다. 산아 제한의 경제적 효과는 실로 크다. 에너지 부문 하나만 보더라도 산아제한으로 지난 20년간 약 2억 달러의 연료비가 절감됐다는 보고서도 나와 있다. 베이비 붐 세대는 말하자면 이러한 인공적 출산 통제를 받지 않았던 마지막 한국인 이었던 것이다.
  
   흐르는 곳마다 범람, 과밀, 경쟁
  
  그들이 우리 사회를 통과하면서 일으킨 가장 큰 문제는 과밀·과잉·과외 교육 현상이었다. 이들 집단이 쏠리는 곳마다 시설·교직원·정원 부족의 문제가 빚어졌다. 이런 부족은 경쟁을 조장했다. 경쟁은 교육의 과열을 유발했다. 학생들을 시험 선수로 만들었다. 베이비 붐 세대가 국민학교로 몰렸을 땐 3부제 수업, 콩나물시루 교실이 등장했다. 대학문으로 밀어닥쳤을 땐 재수생 누적과 과외 수업 문제는 절정에 달했다. 과외 금지, 폭포수 같은 베이비 붐 세대의 흐름을 통과시키기 위한 유로(流路) 확장 공사였다.
  
  유로를 트지 않을 때는 우리 사회가 그 홍수에 휩쓸릴 지경이 됐던 것이다. 베이비 붐 세대의 주류가 국민학교를 빠져 나와 중·고·대학으로 흘러든 지난 10년 동안(73∼83년) 국민학생수는 줄고 고교생은 2.4배, 대학생수는 다섯 배로 늘었다. 베이비 붐 세대는 「콩나물시루 교실」을 국민학교에서 대학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지난 70년엔 대학 교수 1인당 학생수가 18명이던 것이 83년엔 34명으로 늘었다. 83년 현재 인하대학교의 경우, 교수 1인당 학생수는 53명으로 국민학교 수준의 밀도다. 지도 교수 1인당 학생수는 전국 평균이 1백명을 넘는다. 3년 사이 재학생수가 두배로 늘어난 고려대학교의 경우, 경제사 한 과목의 수강생이 5백81명이다. 3백명 이상이 듣는 강좌수는 15개나 된다. 한 교수가 한 단과 대학의 재학생수와 맞먹는 학생들을 상대로 하는 강의는 강연일 뿐이다. 출석 부르는 데만 20∼30분 걸리니 불시 점검으로 대체할 수밖에 없고 질문이 있을 수 없다.
  
  『내리고 탑시다』 강의가 끝난 뒤 강의실을 나가는 학생과 먼저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려는 학생들 사이에 자주 오가는 말이다. 강의 뒤의 복도는 인파가 흐르는 강의로 변한다. 『하루하루의 학교 생활이 그저 사람의 물결 속에서 떠밀려 흘러가는 것 같다』고 박흥식씨(59년생·고려대 사회학과 4학년)는 말한다. 『자리 잡았니?』가 학생들의 인사다. 그렇다. 베이비 붐 세대는 그 생애를 통해 「자리다툼의 생활화」를 체득한 집단이다.
  
  지난 4월 하순의 중간 시험 기간에 고려대 도서관 앞에는 새벽 5시의 개관 시각을 기다리는 행렬이 늘 2백m 이상 이어졌다. 자리를 잡으려고 새벽 4시께부터 몰려든 학생들이었다. 2천 석 규모의 중앙도서관에 8백명만 들어가도 자리는 몽땅 점유된다. 가방 속에다 비닐 봉지 두서너 개를 넣어와서는 재빨리 옆자리에다 소유권의 물증으로 놓아두는 식의 「대신 자리잡아주기」풍조가 일으킨 가수요 때문이었다.
  
   4년 동안 한 반인 줄 몰라
  
  도서관에 늦게 오는 학생들은 「팔레스타인 난민」이 돼야 한다. 점심·휴식 등으로 잠깐씩 비는 자리를 20∼30분씩 돌아가며 앉아 공부하는 것이다. 「괴로운 줄서기」나 「피로의 대열」은 식당에서도 연출된다. 고려대의 도서관 지하식당은 오전 10시 30분부터 점심 시간이다. 그만큼 일찍 가지 않으면 자리에 앉을 수가 없다.
  
  『음식물 찌꺼기의 더미 속에서 식사를 해요. 한 구석에선 먼지를 내면서 청소가 진행되고, 그래도 열심히 먹고 있는 학생들을 보면 가슴이 찡해요. 어느 날 오후인데 학생들이 식사를 하는 중인데도 식당 관리인이 전등을 꺼버렸어요. 어느 누구도 항의를 하지 않고 식사를 계속하는 거예요. 할수없이 제가 대들었지만…』
  
  이것은 이화여대 대학원 재학생 김경순씨(57년생)의 말이다. 과밀 상태의 학생들 사이엔 대화가 빈번할 것 같으나 실제는 정반대다. 대화란 타인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다.
  
  내 한몸 가누기도 벅찬 경쟁 속에서 남에게 신경쓸 만큼의 여유가 우러날 리가 만무하다. 서울대 사대 정원식 교수는 『사은회에서 같은 과 학생들끼리도 서로 인사를 시켜야 알아 보는』풍토를 어느 신문 기고문에서 개탄했다. 최근 고려대의 어느 학과 4학년생 1백80명 가운데 40명이 여행을 갔다. 같은 여관에 들어서서야 한 반 학생이란 걸 알고 서로 인사를 한 사람들도 있었다. 4년 동안 같은 과 소속임을 모르고 지내 왔다는 얘기다. 과의 규모가 수백명 단위로 커지고 이 강의실, 저 강의실로 매일 우루루 몰려다니며 보낸 4년이었으니까. 교수·학생의 대화도, 선후배 사이의 관심도 전과 같지 못하다.
  
  『장학금이나 학점 문제가 아니면 말을 걸어오는 학생들이 없다』
  고 어느 교수는 말했다. 한때 금품이 오갈 때도 있었던 학생회 간부 선거는 어느 새 정족수 미달로 유산되는 꼴이 돼버렸다. 「군중속의 고독」은 먼 서양의 사회학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은 백사장의 모래알로 남아 있으려 한다. 모래알이 모여서 뒤엉키고 돌이 되어 굴러가는 기쁨을 그들은 외면하고 있다. 아니 외면하지 않고는 못 배기도록 하는 제도속에서 그들은 살고 있다.
  「오늘의 술 친구는 내일의 학점 라이벌」
  「탈락하여 울지 말고 내가 먼저 울려 놓자」는 우스개가 그들의 신조요 구호가 돼 가고 있는 대학, 그래서 멀티버시티, 매스버시티라 한다던가?
  
   카투사 입시 학원까지 등장
  
  해마다 80∼90만 명의 베이비 붐 세대 청년들이 사회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베이비 붐 세대의 주력은 지금 대학을 빠져 나와 군이나 사회로 흘러들고 있는 단계다. 이 흐름에 따라 문교부는 내년부터는 대학 정원을 동결할 방침이다. 『군 입대나 진학자 등을 제외하고도 매년 50∼55만 개의 새 일자리를 이들 베이비 붐 세대에게 제공해야 된다』고 이시백 교수는 말한다. 그들은 드디어 자신들의 상표인 과밀과 경쟁을 사회로 옮겨 놓기 시작했다. 그 징조는 최근 들어 부쩍 치열해진 취직 시험 경쟁률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4월에 치러진 9급 공무원 공개 시험엔 1천4백10명 모집에 5만9천8백5명이 응시, 약 42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세무직은 1백 대 1. 83년도 7급 공무원 공개채용 시험은 58.6대 1이었다. 학생들이 「기시」(記試)라고 부르는 언론사 수습 기자 시험은 보통 1백∼1백50대 1의 경쟁률을 보이고 있다. 미군부대 근무사병(카투사) 모집 시험은 「카시」(카試)라고 하는데 경쟁률이 2백 대 1에 이른다는 소문이다. 그래서 카투사 시험 전문 학원까지 등장했다.
  
  취업률도 떨어지고 있다. 취업정보지인 월간 코리아 리크루트가 조사한 전국 30개 종합 대학교의 올해 취업률은 평균 76.7%. 지난 해보다 3.9%포인트가 낮아졌다. 여기서 대학원 진학자(1`2.7%0와 군입대자 등을 빼면 순수 취업률은 47.6%에 불과했다. 대졸자의 취업 사정은 내년부터 더욱 악화될 듯하다. 대학 정원이 크게 늘었던 81년도 입학생들이 내년부터 사회로 진출하기 때문이다. 내년 봄의 4년제 대학 졸업생은 올해보다 40%가 많은 약 14만명이나 될 것이다. 『정말 심각한 취직난은 87∼88년부터 일어날 것이다』고 삼성 그룹의 어느 인사 담당자는 말한다. 군과 대학원이 대졸자 홍수에 대해 2∼3년 간은 어느 정도 완충 작용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전문대학 졸업생의 취업은 4년제 대학생보다도, 실업계 고교생보다도 더 어렵다. 83년도 전국 평균 취업률은 36.1%로 집계되었으나 기업체 취직은 22%에 지나지 않았다. 나머지는 가족이 경영하는 사업체나 자영 사업장에 종사하게 된 경우다. 베이비 붐 세대의 불운은 그 덩지에 있다. 워낙 머리수가 많으니 사람값을 제대로 못 받는 것이다. 교육에서 그랬고 지금은 취직 전선에서 그렇다. 70-년대의 인구 증가율을 연령 계층별로 분석하면 베이비 붐 세대가 대부분이었던 15∼24세가 연평균 4%로 최고였다. 이 풍성한 「인력 풀」(Pool)을 바탕으로 해서 봉제·섬유·신발 등 노동집약적 저임금 산업이 눈부시게 발전할 수 있었다.
  
  필자는 지난 77년에 세계 최대의 단일 신발 공장이라는 국제상사 사상 공장에 근무한 적이 있다. 약 2만명의 종업원 중 약 80%가 베이비 붐 세대(당시 16∼22세)였고 그 가운데 약 70%는 여자였다.
  
  베이비 붐 세대가 나이를 먹음에 따라 80년대에는 25∼34세 연령층이 가장 급속도로 팽창, 인력 과잉 현상을 빚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더구나 80년대에는 70년대와 같은 경제 성장이 어려울 것이므로 일자리 부족은 70년대의 교육 문제처럼 80년대의 가장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될 것이다. 베이비 붐 세대의 취직난은 통계로도 뒷받침된다. 경제기획원이 조사한 지난 80∼83년 사이의 실업자 변동 추세에 따르면 다른 모든 연련층에선 실업자의 절대수가 줄었는데도 25∼29세의 베이비 붐 세대 연령층에서만 실업자가 늘었다(80년의 10만7천명→83년의 11만8천명). 이것은 이 세대가 가장 격심한 취직 경쟁을 경험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접대부도 절반이 고졸 이상
  
  베이비 붐 세대에 속한 어느 미혼 여자는 기자에게 이런 농담을 했다. 『남자에게 군대가 취직난의 완충작용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자에게도 그런 작용을 하는 게 있다. 「지하의 성(性)」산업이 바로 그것이다』 윤락녀나 접대부 숫자가 군인처럼 많을 리야 없겠지만 그런 여자들의 태반이 베이비 붐 세대 소속이란 건 확실하다.
  
  고려대 최재석 교수가 최근 발표한 서울지역 접대부에 대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의 약 64%가 베이비 붐 세대였다. 놀라운 것은 이들의 학력이었다. 전문대 중퇴 이상의 학력을 가진 사람이 약 10%, 고등학교 졸업 또는 중퇴자가 약 50%였다. 이 통계는 고학력자가 많은 베이비 붐 세대 여성들의 취직난을 암시하고 있는 것 같다. 80년대의 취직난은 남자보다도 여자들에게 더 큰 타격을 줄 것이다. 제한된 일자리가 남자들에게 우선적으로 돌아갈 것임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한국 여성개발원 조사(83년)에 따르면 약 35%의 기업체는 신입 사원 모집 대상에서 여자들을 아예 제외시키고 있다. 막대한 투자로 애써 키워놓은 고급 여성 인력에 대해 정당한 시험 기회조차 주지 않는 오늘날의 사회 제도가 어떤 부작용을 빚을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고등교육 확대와 가족 계획에 의해 자녀 양육의 굴레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는, 풍선처럼 잔뜩 팽창한 양질의 여성 잠재력에 배출구를 만들어 주지 않을 때 그 풍선은 터질 수밖에 없고 무질서하게 쏟아진 잠재력은 이 사회의 고름으로 변하여 향락의 장소에서 탕진될 위험이 있다. 여성개발원 조사에 따르면 으뜸 가는 여성의 취업 동기는 「능력 발휘에 의한 자아 실현」(46%)이었다. 「윤택한 생활」의 동기보다 거의 두배나 높았다.
  
  지난해 롯데 상사는 시간제 근무의 기혼여성 판촉 사원들을 모집했다. 경쟁률은 약 4대 1. 1주에 5일, 하루 7시간 근무하면 한 달에 10여만 원을 손에 쥔다. 이런데 자가용을 모는 서울 영동의 젊은 주부가 취직했다. 「돈이 목적이 아니고 무료한 시간에 뭔가를 해 봐야겠다」는 조바심이 그녀를 몰아붙였던 것 같은데 몇 달 뒤 그만두었다. 최근 대우, 삼성이 실시한 기혼 여성 사원 모집 시험은 15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병역필 남자를 모집하듯 기혼 여성을 모집하는 이런 현상이나 시간제 취업 여성의 증가는 자선책일지는 모르지만 근본 대책은 될 수 없을 것이다.
  
   40만이나 모자라는 신랑감
  
  취업뿐 아니라 결혼 시장에서도 베이비 붐 세대 여성들은 크게 불리한 입장이다. 남녀간 수급 구조가 보통 불균형이 아니다. 25∼29세의 여자들은 약 1백91만 명인데 그들이 주로 신랑감을 구하는 30∼34세 연령층의 남자는 42만명이나 적은 약 1백48만명이다. 20∼24세의 여자보다 25∼29세 남자는 약 23만 명이 적다. 이런 인구학적 불균형은 베이비 붐 세대 여성의 신랑감들이 6·25 전쟁중 태어난 소집단 남성이기 때문이다. 신부감은 남아돌고 신랑감은 태부족인 오늘날의 결혼 시장 구조는 새롭고 심각한 사회 풍속도를 그려 가고 있다. 우선 남녀간 결혼 연령차가 좁아지고 있다.
  
  베이비 붐 시대(55∼60년)의 평균 연령차(초혼 中位 평균 연령 비교)는 남자가 4.6세 위였는데 요즈음은 2세 이하로 뚝 떨어졌다. 동갑나기 결혼이 많아지고 연하(年下)의 남자와 결혼하는 현상도 보인다. 옛날처럼 3∼5세의 연상 남자를 구하기가 힘들어진 여성들의 기민한 상황 적응이 이런 초혼 연령의 변화를 부른 것 같다. 부부의 연령차가 좁은 가정은 비교적 대화가 잘 되고 위계질서가 약한 대신 민주적이라고 한다. 가정의 민주화가 사회의 민주화에 밑거름이 된다는 가설이 사실이라면 이런 현상은 바람직한 일일지도 모른다.
  
  연령차가 좁아진 과정을 보면 남자의 초혼 나이는 25세 남짓(中位 평균)까지 낮아졌고 여자는 23세 남짓까지 높아졌기 때문이다. 여성의 결혼 연령 상승은 가임 기간의 단축을 뜻해 인구 대책엔 유리하다는 게 정설이다. 그러나 한국에선 「별무 효과」라고 인구학자들은 말했다. 60년대 초엔 신혼 여성이 결혼한 뒤 1년 안에 첫 아기를 낳는 비율이 25.8%였는데 요즈음은 약 80%나 된다. 이것은 결혼을 약속한 사이에서는 혼전 관계가 많이 이뤄져 임신 상태에서 결혼하는 비율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상담소를 통한 결혼이 많아지고 있다. 어떤 시장에서도 수급 구조의 불균형이 클 때 그것을 조절하는 창구로서 소개업이 번창하기 마련이다. 전국 결혼 상담소 협회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3백10여 군데의 상담소를 통한 결혼은 약 2만5천 쌍으로 82년보다 3천 쌍이 늘었고 전체 결혼수의 약 6%라고 한다. 이들 결혼 상담소에 중매를 신청한 사람들은 압도적으로 여자가 많다. 약 4천 명이 신청한 안네스 결혼 상담소(서울 종로3가)의 경우, 여자가 7대 3 정도로 많다. 영락교회, 순복음 중앙교회 등 큰 교회에서는 자체적으로 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는데 신청자수는 역시 여자가 훨씬 많다.
  
  교육 시장에서 정원과 시설에 비해 학생들이 불리한 입장에 빠지자 그 불리도(度)에 비례하여 과외 공부가 과열된 것처럼 결혼 시장에서 여성의 입장이 불리한 만큼 호화 혼수 문제가 심각해졌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불리를 대등으로 전환시키는 저울추가 「혼수」라는 「미끼」란 것이다.
  
  여자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40여만이란 신랑감 부족분을 감안한다면 베이비 붐 세대 여성들 중 수많은 노처녀나 독신자가 생기는 것은 막을 수 없을 것이다. 특히 교사, 간호원 등 전문 직종에 종사하는 미혼 여성들 가운데 『혼자 사는 것도 괜찮다』 는 의식이 강화되는 것 같다. 건국대 재학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 조사에서는 조사 대상자의 58%가 『경제적 능력만 있다면 혼자 살겠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결혼을 서두르지 않다가 혼기를 넘긴 직장 여성들의 부모가 딸 몰래 상담소에 중매 신청서를 내놓는 사례가 허다하다.
  
  이런 경우엔 상담소와 부모가 짜고 자연스런 중매인 것처럼 위장, 맞선을 보이는데 성사가 되면 비로소 상담소를 통한 결혼이었음을 알린다고 한다. 안네스 결혼 상담소 대표 김용현 씨는 『최근엔 결혼을 단념한 많은 노처녀들이 수녀나 승려의 길을 택하든지 사회복지 시설에서 봉사의 길을 걷는걸 볼 수 있다』고 했다.
  
출처 : 월조
[ 2003-07-04, 16:4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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