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증 없는 사형집행(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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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무죄 확신하는 변호사
  
  대법원의 상고기각판결, 이로써 오휘웅에 대한 사형 선고는 확정되었다. 오휘웅은 서울구치소에서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사형 집행 명령을 초조하게 기다리는 상황에 몰렸다. 이제부터 나는 기자의 입장에서, 상식인의 입장에서 이 사건을 판단해 보려 한다. 지난 6월 하순 나는 먼저 이범렬 변호사를 만나러 갔다. 덕수궁 바로 앞에 있는 그의 사무실을 찾아가면서 나는 변호사들을 만날 때마다 항상 느끼는 의문을 갖고 갔다. 변호사들의 변론은 그들의 확신에서 나오는 것인가, 아니면 직업적인 기능상의 작품에 불과한가?
  
  이범렬 변호사는 『처음 국선으로 선임됐을 때 나는 그 사건을 아주 가볍게 생각했다. 양형 부당 정도로만 짐작했다. 공판 조서부터 읽기 시작했다. 대여섯 장쯤 읽으니 저절로 담배불을 끄게 되더라. 우선 사건이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메모를 시작했다. 국선이란 생각은 나지도 않고 이것은 해볼 만한 사건이란 의무감부터 생겼다. 1심판결이 오판이었다는 확신을 갖게 되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1심 재판장 김진우가 이 사건을 못잊어하고 있는 것과는 다른 이유로 이변호사는 이 사건의 기억을 자세히 간직하고 있었다. 그는 지금도 그 사건이 오판이었다는 확신을 굽히지 않고 있다고 했다.
  
  법정신문에는 관여하지 않았는데도 이 변호사는 기록도 참조하지 않고 10년 전 그 사건의 자세한 전말, 즉 범행 시간 ·증인의 이름까지도 술술 이야기 했다. 간간이 [세상 물정을 모르는 판사들]에 대한 한탄조의 불만을 섞어가며 그는 시종 노기 띤 어투로 이야기했다. 그는 알리바이 문제를 중점적으로 이야기 했다.
  
  『조서에 나타난 그런 범행 시간 안에는 도저히 오휘웅이 살인을 할 수가 없다. 오휘웅이 살인 기계가 되어 아무런 감정 없이 여기저기를 부리나케 쫓아다니며 기계적으로 팍팍 목졸라 죽인다 해도 그 시간 안에선 불가능하다』이 변호사는 자백의 임의성과 물증의 중요성을 많이 따지는 요즈음의 재판 경향에서는 그 사건이 잘 되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하면서, 『옛날엔 의심이 나면 형량을 반으로 깍아 선고하는 게 관례였는데 요즈음엔 의심나면 무죄선고로 법이론이 발전되었다』고 했다.
  
  이 변호사를 만난 다음 나는 이 사건관계 기록 수 천장을 전부 복사하여 친구 변호사에게 갖다 주고 그의 조언을 구했다. 직업의식을 떠나 아주 자유롭게 내릴 그의 판단을 알고 싶었다. 며칠 뒤 그는 이런 견해를 전했다. 『수사는 한심하고 변론도 좋았다고는 볼 수 없다. 이범렬 변호사의 상고이유서는 설득력이 있지만, 알리바이 문제는 기록만으로는 누구도 판단하기 어려운 것인데 여기에 너무 중점을 둔 것 같다. 변호인들은 수사에서 형사소송법상의 원칙들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점을 중점적으로 추궁했어야 되지 않았을까? 1심부터 좋은 변호사가 붙었다면 충분히 깰 수 있는 사건이었다』
  
   고문 입증됐으면 무죄
  
  이 사건 수사가 형사소송법상의 원칙에 위배되고 있다는 이야기는 자백이 고문 등 강압상태에서, 즉 임의성이 없는 상황에서 나왔다는 얘기다. 따라서 그런 자백에 기초한 판결은 잘못된 것이란 논리가 되는데, 그것은 여대생 피살 사건의 정재파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 법원의 논리이기도 하다. 상고 이유서와 대법원 판결문을 읽어보면 마치 학술 논쟁을 대하는 기분이 든다. 장갑, 지문 등 결정적인 물증이 하나도 없는 재판이니까.
  
  판단은 모두 진술·목격·기억 등 형이상학적인 자료를 근거로 이뤄지고 그 자료들은 지문과 같은 객관적 물증이 아니므로 입장에 따라 해석이 다르게 내려진다. 오휘웅의 귀가 시간에 대해 변호인은 증인들이 시간에 민감할 수 있는 상황에 있었으므로 그들의 기억은 정확하다고 했고, 대법원은 그 증인들이 오휘웅과 친밀한 신도들이기 때문에 진술을 믿기 어렵다고 했다.
  
  대법원 판결문은 또 증인으로 나온 한 의사의 『해부학상 경험에 따르면 여자가 남자를 목졸라 죽인 예을 알지 못한다』증언을 유죄 판단의 한 이유로 들었다. 이것은 대법원 재판부의 수준을 알려주는 판단인데, 한 의사의 좁고 짧은 경험에 판단을 의존한 것은 모험이었다. 1978년 부산진구 범천동에선 다방 마담이 잠든 동장(남자)을 여관방에서 목졸라 죽인 적이 있었던 것이다.
  
  두이분의 경우, 술과 아티반을 많이 먹여 거의 혼수 상태에 있는 남편을 목졸라 죽이기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대법원은 또 오휘웅에게 유리한 증거인, 정시화의 목에 난 네 곳의 상처(변호인은 주저흔이라 주장)와 이마의 손톱자국(변호인은 여자 것이라 주장)에 대해선 언급을 않고 있다. 이런 식의 [해석]들이 축적되어 사형선고를 내리는 논리구조가 형성되었다. 인간의 생명을 끊어버리는 중대한 판단을 가변적인 [해석]에 근거하여 내릴 수가 있는가? 판사들로 하여금 유죄판단을 내리게끔 한 가장 중요한 자료는 오휘웅의 자백이었다.
  
  재판부는 오휘웅의 자백 내용이 진실된가를 판단하는 데 주력했을 뿐 그 자백이 어떻게 나왔는가에 대한 진지한 탐구는 없었다. 물증이 없는 상황에서 자백마저 고문 등 강압 상태에서 이뤄졌다는 것이 입증되면 도저히 [사형 선고]는 나올 수 없게 된다. 이 사건에서의 [고문입증]은 사형 선고의 논리적 기반을 뒤엎어버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오휘웅은 경찰에서의 자백과 검찰에서의 부인 뒤의 자백이 고문에 의한 것이라고 법정에서 진술했었다. 이 진술을 대법원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고 그 대신『검사로부터 고문을 받은 바 없다』는 1심에서의 진술을 임의성 있는 자백의 한 근거로 채택했다. 그러나 이 진술은『피고인에게 본 검사가 고문한 사실이 있는가요?』란 물음에 대한 답변으로 나온 것이었다. 오휘웅은 검사가 고문한 것이 아니라 검찰청 지하실에서 경찰관들이 고문한 것이라고 진술하고 있으므로 『검사로부터 고문을 당하지 않았다』는 말은 검찰이나 경찰에서 고문을 받지 않았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마땅하다.
  
  『손댔다』고 당시 형사 실토
  
  나는 지난 8월초 인천의 모변호사 사무실에 근무하는 안덕훈을 만났다. 그는 이 사건 수사 당시 인천 경찰서 조사계에 근무하다가 정년퇴직을 세 달 앞두고 유치장 감독으로 배치되어 열흘 쯤 오휘웅을 관찰할 수 있었던 사람이다.
  
  『30년 동안 경찰관 생활을 했지만 오휘웅은 도저히 살인범처럼 보이지 않았다. 살인범들은 붙들리면 순순히 자백하고 나선 후련해 하면서 기가 팍 죽어버린다. 오휘웅은 기가 죽지도, 부끄러워하는 빛을 보이지도 않았다. 고민 당황도 않고 태연자약했으며 검찰로 넘어가면 풀려나올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었다. 그가 범인이란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두이분은 담요를 덮어쓰고 종일 경만 외고 있었다』
  
  경찰을 떠난 탓인지 그는 퍽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오휘웅이 고문당하는 걸 봤느냐』고 나는 물었다. 『보지는 않았지만, 그런 상황에서 고문이야 으레 하는 것 아닌가? 둘 가운데 누가 먼저 자백했는지를 문제가 안된다. 어차피 양쪽을 오가면서 두들겨 맞추는 건데…. 경찰이야 미제사건을 해결했다 하여 검찰에 넘기면 사건이 재판에 넘어가 무죄가 되든 유죄가 되든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간첩 사건이야 확정 판결이 어떻게 나왔는지 꼭 알아보지만』
  
  경찰에 있을 때 오휘웅은 유치장 바깥에선 다섯 번이나 진술 조서, 녹음, 자술서를 통해 자신의 범죄를 자백했는데 유치장 바깥에선 살인범, 안에선 누명 쓴 사람―오휘웅이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아닌 바에야, 상반된 두 얼굴의 수수께끼는 고문이나 위압이란 낱말로서만 풀 수 있을 것이다. 지난 8월6일 나는 다시 인천으로 갔다. 오휘웅을 직접 문초했던 5명의 형사 가운데 세 명을 만났다. 세 사람 모두 경찰에서 퇴직, 생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여기선 일단 세사람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ㄱ, ㄴ, ㄷ으로 한다. 49세의 작은 공장 상무인 ㄱ은 『오휘웅이는(재판 받고) 나온 줄 알았는데 집행됐읍니까?』하고 반문부터 했다. 한 30분간 이야기를 하다가 슬쩍 『그때 오휘웅이를 쪼았습니까?』고 물었다. 『쪼았읍니까?』란 말은 고문했느냐란 뜻이다. ㄱ은 『강력범 수사에선 안 때릴 수가 있읍니까?』라고 했다. 『쫀다』는 게 무슨 뜻이냐고 되묻길래 [손 대는 것]이라 했더니 피식 웃으면서 『손이야 댔지』라고 했고, 그 옆에 있던 ㄷ은 『그런 수사에선 손을 안댈 수가 없습니다』고 말했다. 심하게 했느냐고 하니까 심하게는 하지 않았는데 자백이 나오더라고 두 사람은 말했다.
  
   장갑도 지문도 못찾고 사형선고
  
  내가 친구 변호사에게 전직 경찰관들의 실토를 이야기했더니, 그 변호사는 고문의 입증은 위법행위에 위한 수사가 있었다는 뜻임으로 재심 사유가 된다고 했다. 그러나 오휘웅이 죽은 이 마당에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사형 판결 확정 뒤 오휘웅의 동생과 아버지는 소형 녹음기를 가슴에 품고 안덕훈을 수십 번 만났다고 한다. 고문 관계 이야기를 녹음하여 재심 신청의 이유로 삼기 위해서 였다. 그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오휘웅을 다룬 형사 이외에도 고문에 대한 증언은 많았다. 오휘웅의 어머니는 오휘웅이 인천 경찰서 형사계에서 취조받을 때 참고인으로 불려 와서 오휘웅의 비명을 밤새워 들었다고 했다.
  
  오휘웅이 검찰에서 조사받을 때 같은 감방에 있었던 장정룡은 김갑수 변호사(재심 신청 담당)에게 『오휘웅이 검찰에 갔다 오면 이틀 동안은 꼼짝 못하고 들어 누워 밥도 먹지 못한 일이 2∼3차 있었다』고 했었다.
  
  강력범에게 고문을 하는 까닭은 자백을 받아내고 그 자백에서 물증을 찾자는 것이다. 강도 살인범을 고문하여 그가 숨겨든 보석을 찾아내면 고문에 관계없이 범인은 기소되고 고문 그 자체도 묻혀 넘어가 버린다. 오휘웅 사건의 경우, 고문의 소득은 자백뿐이었다. 지문도, 혈흔도, 장갑도 찾지 못했다. 대법원 판결문은 장롱에서 오휘웅의 지문이 안 나온 것은 장갑을 끼고 있었다는 사정을 참작하면 이해가 간다는 투로 설명했다.
  
  장갑 문제는 이 사건의 핵심 중의 하나인데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너무나 소홀하게 취급되었다. 오휘웅은 작업할 때 쓰는 면장갑을 그때 바지 뒷호주머니에 넣고 다녔다고 1심에 진술했었다. 두이분 집에 갈 때도 넣고 갔는지, 그 전에 불교회관 책상 서랍에 넣었는지, 그 기억은 안 난다고 했다. 이 장갑은 결국 찾지 못했다. 그러니 지문이 안나온 이유가 장갑 때문이란 물증도 없다.
  
  더구나 범행때 장갑을 꼈다면 피살자(정시화)의 남편이마에 손톱자국이 생길 리가 없다. 범행때 장갑을 꼈기 때문에 지문이 안 나왔다면 경찰은 어렵더라도 반드시 그 장갑을 확보했어야 했다. 오휘웅이 인멸했다면 그에 대한 설명도 있어야 했다. 적어도 한 인간을 교수대로 보내기 위해서는 그 정도의 노력은 했어야 했다. 검사나 판사도 이 부분의 수사 보강을 지시하지 않은 책임을 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고문은 수사의 논리를 흐트려
  
  고문은 상대가 진범일 경우, 수사를 쉽게 한다는 장점이 있으나, 증거를 왜곡하고 수사의 논리를 흐트려버리는 치명적 약점을 갖고 있다. 고문이란 야만적인 터널을 거쳐서 나온 자백이지, 아니면 우선 폭력을 피하자는 다급함에서 만들어낸 거짓말인지 분간을 할 수가 없다. 나는 고문과 관련된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다.
  
  지난 79년6월 부산시 동래구 칠산동에서 여자 토막 살해 ·유기 사건이 일어났다. 동래 경찰서 수사진은 며칠 뒤 목욕탕 보일러공 정모씨가 범인이라고 공표했다. 나는 마감 시간 직전 그 얘기를 듣고 [진범 체포]라고 기사를 불렀다. 일부 기자들은 아무래도 미심쩍다고 수사간부들에게 대들었다. 수사진은 발칵 하더니 정씨를 데리고 나와 기자회견을 시켰다. 정씨는 술술 자신의 범행을 털어놓았다. 어느 기자가 『너는 죽는게 겁나지도 않느냐? 여기서 모든 게 허위 자백이었다고 한 마디만 하면 바로 풀려날 수 있다』고 했더니 그는 왈칵 화를 내면서 진실된 자백이라고 말했다.
  
  바로 그 다음날 피살된 여자의 신원이 밝혀지고 그 애인 이양길이 진범으로 수배, 3일 뒤 붙들렸다. 풀려난 정씨를 만났더니 그는 『조직적인 고문은 당하지 않았지만 형사들이 겁을 주는 바람에 적당히 스토리를 만들어 자백했다』고 털어 놓았다. 오휘웅도 고문을 받으면서 진술한 내용은 파출소에서 미리 들어두었던 사건 내용을 가지고 추리한 것이라고 얘기했었다. 토막 사건의 오보 이후 나는 경찰자백이란 것은 [일단 못 믿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이범렬 변호사도 『무죄판결을 받은 피고인들의 기록을 보면 경찰에서 자백을 안한 경우는 거의 없다』고 했다. 오휘웅 사건의 경우에 범행 현장은 전혀 보전이 되지 않았고, 기초 자료를 확보하는 초동수사는 엉망이었고 자백은 고문으로 흐트려져 버렸다. 재판의 바탕이 교란돼버린 것이다. 2중3중으로 흐트려진 바탕 위에서 모험을 무릅쓰고 판결을 내리기보다는 교란된 바탕의 재정비를 지시하든지, 아예 무시하고 무죄 판결을 내려버리는 것이 인명을 다루는 법관의 양식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하나님께 건 기대도 효험없이
  
  오휘웅과 그 가족은 대법원의 사형확정 판결 뒤에도 발버둥을 계속했다. 재심 청구, 기각, 기각에 대한 항고, 또 기각, 기각에 대한 재항고……이런 식으로 끈질기게 매달렸다. 재심이 받아들여지려면 원판결에서 유죄의 증거로 채택된 증거보다 증명력에 있어서 객관적 우위성을 지닌 새로운 증거를 제출하든지, 고문과 같은, 수사나 재판 관계자의 직무에 관한 위법 사항을 증명해야 한다. 재심 청구가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대부문의 경우 판결이 뒤집히는 것을 뜻한다. 오씨 측이 제시한 새 증거 가운데는 오휘웅이 감방에서 잠꼬대를 하면서 『억울하다』고 소리치는 곳을 옆에 있던 사람이 들었다는 [기억]까지 등장했다. 감갑수 변호사는 정신분석학자에게 이런 잠꼬대에 대한 해석을 의뢰하기까지 했다.
  
  이즈음 오휘웅의 아버지와 남동생 오문석은 매주 한번씩 면회를 갔다. 이때의 대화를 녹음한 것이 세 개의 테이프로 남아 있다. 이 테이프를 들어보면 오휘웅의 말이 너무나 빠른 데 놀란다. 나는 처음에 테이프 회전속도 조절 장치에 이상이 생긴 줄 착각하기도 했다. 제한 시간 안에 많은 이야기를 하려고 말을 빨리 한 것이었다. 주로 재심청구관계로 어떻게, 어떻게 하라는 지시나 부탁의 말인데, 말투도 초조, 다급하다. 언제 사형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점점 그를 죄어오는 운명의 그림자를 감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사형 확정 뒤의 오휘웅을 가깝게 관찰했던 네 사람을 만났다. 그들의 말―.
  
  김성식(서울 강남구 반포동·가명)
  나는 공무집행방해죄로 구속되어 약1년간 오휘웅과 같은 감방에 있었다. 오휘웅은 생을 체념한 다른 사형수들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생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고 그만큼 고뇌도 큰 것 같았다. 밤에는 깊은 잠에 들지 못하고, 『발자국소리가 들린다』고 중얼거리기도 했다. 보통 사람의 귀로는 감지할 수 없는 먼 곳의 발자국소리도 그는 신기하게도 들을 수 있었다. 그만큼 신경이 예민해 있었다. 그는 『억울하다』는 말을 많이 하지는 않았으나 나는 그의 재판기록만 읽고도 오판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그는 도대체 살인을 할 수 있는 위인이 못되었다. 그에게 있어서 한 가지 즐거움은 매주 한번씩 예배 보러 오는 사형수 교회의 여집사와 만나는 일이었다. 그날엔 괜히 들떠서 마음을 설레는 게 옆에서 보기에도 완연했다. 면도를 깨끗이 하는 등 용모에도 매우 신경을 쓰고….
  
  김정순(서울 구치소 사형수 교회 집사·가명)
  나는 2년간 오씨를 맡아 전도, 교화하는 일을 했었다. 매주 한번씩 만났는데 다른 사형수와는 전혀 달랐다. 보통 사형수들은 죄를 뉘우치고 생을 포기한 상태이기 때문에 전도가 잘 되는데 생에의 집착을 끊지 않은 오씨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10여 년간 일련정종의 간부로 있었으므로 기독교에는 거부 반응을 보였다. 온순하지만 고집이 세고 오기가 있어 보이는 그는 『나는 억울하다』는 이야기를 되풀이했다. 『8분 동안 셋을 죽였다는 게 도대체 말이 되는냐…』고 답답해하였다.
  
  골수 불교신도인 그가 기독교로 개종, 세례까지 받은 것은 하나님의 전지전능에 대한 기대감,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주지 않을까 하는 어떤 희망 때문이 아니었는가 한다. 그 기대가 달성되지 않아서인지 마지막에 가서는 한때 좌절하여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완전히 불교를 버린 것도, 완전히 기독교에 자신을 맡긴 것도 아니고, 생애의 집착과 절망 속에서 번민하다가 간 사람이다. 사형수들은 수많이 접촉해본 나의 경험에 비추어 그는 살인범이 아니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서울 구치소의 모 직원
  오휘웅은 교도소에서 처음에 계속 불교를 믿게 해달하고 했다. 그러나 당시 교도소에선 선교나 천주교밖에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계속 억울하다고 했다 .『선생님도 그런 고문당하면 그렇게 엉터리로 불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고 하면 나는 『그런 문제는 법정에서 이야기해야지, 어쨌든 너 때문에 그런 사건이 생긴 건 사실 아니냐?』고 달래는 데 땀을 뺐다. 오휘웅은 두이분이란 여자와 성관계도 없었다고 했다. 기독교 신앙이 깊어지자『억울한 나를 이런 자리에 서도록 하신 하나님의 섭리는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노력하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으나 늘 염주를 갖고 다니며 불경을 외기도 했다.
  
  김준영(서울 구치소의 사형수 담당 목사. 사형 집행 입회 목사)
  그는 억울한 사형수였다고 생각한다. 구명 운동을 벌이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죽음으로써만 결백 증명 가능!
  
  사형 판결 확정 뒤이 오휘웅은 그의 행동과 말이나 분위기로써 주위의 사람들로 하여금 『이 사람은 억울하다』고 믿게끔 했던 것 같다. 그것이 연극이었다면 오휘웅은 희대의 배우임이 틀림없다. 보통 배우는 무대에서만 연극을 하는데 그는 옥중 생활 중에도 24시간 계속하여 명연기를 했다는 이야기가 되니까.
  
  옥중에서 오휘웅이 겪은 가장 큰 변혁은 그의 개종일 것이다. 아버지는 일련정종의 경인 지구 책임자이고 온가족이 신도이며, 그 자신도 10여년의 포교 경력을 가진 독실한 간부 교인인데 그는 기독교로 개종, 세례까지 받았다. 오휘웅은 개종 사실을 면회 온 가족들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부끄럽게 생각한 때문일까? 진심으로 기독교를 믿는다면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다. 그는 기독교의 신에게 무엇을 바라고, 타산적인 생각에서 기독교를 택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일련정종신도인 가족에게는 개종을 비밀로 붙였던 게 아닐까? 오휘웅이 무고하다면 그가 바란 것은 전지전능한 하나님에 의한 [누명의 벗김]이었을 것이다. 그가 진범이라면 하나님 앞에서 참회함으로써 내세에 구원을 받기를 바랐을 터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오휘웅은 참회는 커녕 항변의 유언을 남기고 죽었다. 그가 진범이라면 그는 교수대 앞에서 명연기로써 인간뿐 아니라 하나님까지 (더 나아가서는 부처까지도) 속이려 했다는 얘기가 된다. 오휘웅이 그런 인간이었다면 우리는 그를 살인범으로 규탄하기 전에 전능의 신에 도전한 세계 최고의 도박사로 동상을 세워 주어야 할 것이다.
  
  오휘웅이 진범이기 위해서는 그는 슈퍼맨이 아니면 안된다. 범행도구의 준비도 없이 순간적인 살의로 10분 사이에 세 사람을 해치우고, 그것도 핏자국과 지문까지 깜쪽같이 남기지 않을 수 있는 사람, 살인 현장에서 집으로 돌아와서는 금방 태연하게 강론을 할 수 있는 사람, 경찰에서 조사 받고 풀려나서도 달아나지 않는 사람, 낮에는 부인하고 밤에는 금방 시인하는 사람, 4년9개월 동안 주위의 사람들이 그를 억울한 죄수라고 믿게끔 한치의 빈틈도 없는 연극을 하다가 형장에서는 하나님도 속이려는 일대 모험을 감행하고 당당하게 죽을 수 있는 사람이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 사람이 중학교를 중퇴하고 수도 검침원으로 일했을까?
  
  대법원 판결문은 오휘웅의 유죄를 뒷받침하는 증거로 두이분이 죽기 전에 『억울하다』고 했다는 동료 죄수의 중언을 지지하면서 [모든 것을 체념한 상태에서 이뤄진 것임을 참작할 때 믿을 수 있다]고 했었다. 그렇다면 교수형을 앞두고 한 오휘웅의 유언도 똑같은 이유에서 신빙성이 있어야 한다. 오휘웅의 유언은 대법원의 유죄판결 논리를 자가당착에 빠지게 했다. 그는 자신의 죽음으로써 대법원 판결문이 가진 논리의 허구성과 말의 덧없음을 입증한 것이다.
  
  여기까지 써 놓고 객관 보도의 원칙, 즉 기자는 보여주기만 할 뿐, 판단은 독자에게 맡긴다는 정신을 내세워 나의 판단을 감추는 것은 비겁한 것같이 생각된다. 나의 개인적 판단을 독자에게 강요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는
  
  첫째, 오휘웅에 대한 사형 판결은 오심이었다고 믿는다. 그것은 이 글에서 제시한 [고문의 증명]으로 충분히 설명될 것으로 생각한다.
  
  둘째, 실체적 진실의 문제에서도 오휘웅은 범인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법원은 법정에 제출된 자료로만 판단했지만 나는 법정의 바깥, 즉 확정 판결 뒤의 오휘웅, 법정의 관심 밖이 된 그에 대한 자료와 형장에서의 태도까지 종합해서 판단한 것이다. 생각해 보면, 한 인간이 죽음으로써만 자신의 결백을 (나 같은 사람에게)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그의 명복을 빈다.
  
출처 : 월조
[ 2003-07-04, 16:4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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