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미8군 사령부(상) - (5)한미군 고리 美2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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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한미군 고리 미2사단
  
  연합사의 작전 통제권
  
  루이스 메네트리 대장은 일곱 가지 직책을 겸하고 있다. 미8군사령관, 한미연합사사령관, 주한미군사령관, UN군사령관, 연합사의 지상구성군사령관, 나머지 두 가지는 기자가 들었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국군과 가장 관계가 깊은 것은 연합사사령관으로서 이다. 연합사가 1978년 11월7일에 창설된 것은 UN군사령관이 독점하고 있던 한국군에 대한 작전 통제권에 한국군이 참여한다는 의미를 띠고 있었다.
  
  한국의 지분율은 아직 49% 이하이지만 한반도에 있어서의 작전계획을 미국인 손에만 맡겨놓던 단계에서 벗어나 공동경영 참가식으로 한국군이 일정한 영향력을 제도적으로 확보했다는 뜻이 있다. 1950년 7월에 이승만(李承晩)대통령이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UN군에 넘겨준 뒤 한국군이 한반도작전계획에 형식상으로나마 참여하기 시작한 것은 1965년부터였다. 1968년엔 한미합동작전계획 부서가 만들어졌고, 1971년엔 한미 1군단(한미야전사의 전신·한미야전사는 한국 군 2개 군단과 미 2사단 등 모두 9개 사단을 지휘하는 세계최대의 단일 군단이다)이 만들어져 한미군이 몇 개 사단을 통합 지휘하게 되었다.
  
  연합사의 창설은 한국군의 독자성을 확보하겠다는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의 의지와 주한 미군의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오랜 준비기간을 거쳐 이룩된 일이었다. 한 미군 고위 소식통은 이렇게 말했다. 『주한미군은 5·16 때 무력감을 느꼈고, 닉슨 닥트린이 발표되고 7사단이 철수하자 영향력의 감소를 인식하게 되었다. 박대통령은 자주국방·유신선포로 그의 영향력을 강화해 갔다.
  
  이런 한미간의 역학균형을 현실화하기 위해 1971년에 주한미군은 연합사창설 준비단을 만들어 7년간 작업을 했다. 미군이 다른 나라 군대와 함께 작전 통제권을 공유하는 곳은 나토와 한미연합사뿐이蔑?한미연합사가 한·미군에 대하여 행사하는 권한은 작전지휘권(Operational Command)이 아니고 작전통제권(Operational Control)이다. 작전통제권은 「예하부대의 구성, 과업부여, 목표지시 및 권위 있는 지시, 합동훈련에 관한 지시권한」을 포함한다.
  
  예하부대의 인사, 행정, 군기, 내부 편성 등은 통제대상이 아니다. 연합사 대변인이 지난해 11월에 발표한 「연합사의 한국군 작전통제권의 정의」는 이러했다. 「대한민국 국군의 지휘권은 국가통치권 기능의 하나로서 대한민국정부에 항상 귀속된다. 작전통제권을 규정한 구체적 협정 또는 조약은 변경될 수 있으나. 군사관계 그 자체는 관계 당국이 특별히 수정하지 않는 한 변함이 없다. 한국군 또는 미군이 미 사령부의 작전 통제권 하에 있지 않음을 주목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통제권은 미측 사령관, 한측 부사령관 및 완전하게 통합되고 연합된 참모진으로 구성된 연합사령부가 행사한다. 게다가 작전요소 역시 3개 야전군 중 2개는 한국 장교들이 지휘하고, 나머지 하나는 미국 장교가 지휘하며. 해군 구성군은 한국 장교가. 그리고 공군 구성군은 미군 장교가 각각 지휘하는 양국 체제이다.
  
  한국정부가 연합사로부터 특정부대의 작전 통제권을 회수할 필요가 있을 경우. 한국 합참의장이 한미연합사 사령관에게 서신으로 통보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왔다. 긴급사태 발생시에는 군사 통신회선과 같은 가장 편리한 수단을 통해서 통보할 수 있다. 양국의 협정에는 사령관이 부대의 작전권 변경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결정에 따르기를 거부하거나. 미군에 대한 미국정부의 유사한 결정에 따르기를 거부하는 것을 허용하는 조항은 없다」
  
  동반자 관계의 모색
  
  연합사의 6개 참모부서는 인사참모부장은 한국해군준장(차장은 미 공군대령), 정보참모부장은 한국공군소장(차장 미 공군준장), 작전참모부장은 미 육군소장(차장 한국 육군소장), 보급부장은 미 육군준장(차장은 한국 육군준장)식으로 한미군 양쪽이 세 부서씩 양분하여 지휘하 고 있다. 연합사의 미군 장성들은 거의 두 번 이상 한국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사람들이다. 최근에는 장교들 가운데 1차 진급자들이 많이 한국에 배치되고 있는 게 특징이라고 한다. 연합사의 작전참모, 2사단장 등은 모두 동기생들 중 장성1차진급자라고 한다.
  
  연합사의 한국 측 장성은 『한미간의 군사관계가 종속적인 데서 대등 관계로 바뀌어가고 있는 과정에서 양국 장교들끼리의 협조가 잘 이루어지고 있는 편이다』고 했다. 『미국인들은 합리적이라서 우리가 자료나 논리를 가지고 반박하면 선뜻 수긍을 한다』면서 『최근의 반미감정이 미군을 자극하여 주한미군사회에서 철군의 필요성이 제기되면 우리가 붙들어도 갈 것이다』고 했다. 그는 『우리 국군이 단독으로 북한에 대한 전쟁 억지력을 확보할 때까지는 미군을 이용한다는 계산에서라도 그들을 붙들어 두는 것이 경제개 발에도 유리하다』고 덧붙였다.
  
  한 미군장교는 『한국의 공군과 주한 미 공군의 협조가 가장 잘 이루어지고 있다』고 했다. 같은 무기체제를 가지고 있고. 과학 기술적인 면을 많이 다르고 있으며 미국에 의존하는 면에 강해 자연스럽게 협조체제가 잘 가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연합사의 창설에 따라 한미연합사 사령관은 한국군을 상대하는 세 채널을 갖게 되었다. 즉 국방부장관, 합참 의장, 한국인 대장인 연합사 부사령관. 가장 자주 만나는 이는 연합사 부사령관이다. 한미연합사의 상부기구 는 한미군사위원회다. 한국 측에서 합참의장, 미군 측에선 미 합참의장을 대리한 한미연합사령관이 위원으로 나와 매달 한번씩 회의를 갖고 연합사에 지침을 시달한다.
  
  연합사의 모든 업무가 한미군 장교들의 공동참여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국인 장교들이 근접할 수 없는 사무실이나 비밀문서도 있다. 미군 장교들끼리만 모여 회의를 하면 한국인 연합사 부사령관은 한국인 장교들을 따로 불러모아 회의를 갖는 등 신경전을 편 일도 있었다고 한다. 한미군의 사정에 밝은 한 학자는 『미국은 한국군이 연합사 작전계획이 이외의 독자적인 작전계획을 개발하고 있지 않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했다. 朴대통령 시절에는 이런 연구팀이 군내에 비밀히 조직돼 있었다는 얘기도 있다. 한미연합사는 지난 83년 9월1일에 KAL007편 점보기가 사할린 상공에서 격추되었을 때 미7함대에 부탁하여 해상·해저수색작업을 벌이도록 했었다고 한다.
  
  조기경보 시간의 여유 짧다
  
  기자가 만난 한미연합사 산하의 많은 한·미군 장교들은 기습전에선 적의 전쟁의도를 몇 시간 전에 알아내느냐 하는 조기경보시간이 승패의 열쇠인데, 북한의 전진배치로 이 시간적 여유가 72시간→48시간→20시간 이하로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데 대해 크게 걱정하고 있었다. 더구나 조기경보능력은 한국군에는 전무한 상태이고 거의 완전히 미군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의 전진배치는 한국군의 주한미군에 대한 종憺봉?더욱 강화시켜 주고 있는 셈이다. 전진 배치된 부대는 리치가 긴 권투선수와 같다. 조금만 팔을 뻗어도 상대편을 가격할 수 있다. 상대편은 늘 긴장상태에 있어야 한다.
  
  북한의 전진 배치 이후 철책선을 지키는 한·미군의 근무상황은 더욱 긴박하게 짜여지게 돼 휴일, 휴가, 휴식 등 모든 면에서 장병들은 큰 고생을 하고 있다. 일요일 휴식제를 없애고 여러 부대들 중에서 무작위로 추출하여 요일에 관계없이 1주에 하루씩 쉬게 하고 있다. 종전에는 북한 공군기가 이륙하여 일정한 선 이남으로 내려오면 이에 대응하여 한국공군기가 비상출동하곤 했는데 북한의 비행장이 그 선 이남으로 내려온 바람에 이제는 북한 공군기가 뜨면 즉시 우리 공군기도 떠야 한다. 그 만큼 국방비가 많이 든다는 얘기다. 약 30년간 주한미군에서 일하면서 역대 사령관을 보좌해온 한 미국인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한국인들보다도 북한의 남침을 훨씬 더 걱정해 왔을 것이다. 69∼71년에는 가족을 미국으로 보내 놓을까 생각했었다. 1978년에 한미 야전사의 쿠쉬맨 중장이 컴퓨터로써 남북한 전쟁을 붙여본 적이 있었다. 48시간 전에 북한의 전쟁기도를 알 수 있다는 전제를 두고 한 게임이었는데. 우리가 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은 조기경보 시간의 여유가 더욱 짧아 졌다.
  
  북한의 전력은 우리가 발표한 그대로이다. 역시 서울의 위치가 문제이다. 적은 일단 남침을 시작하면 전격전으로 서울을 포위한 뒤 협상을 시도할 것이다. 서울을 점령하자면 시가전의 수렁에 빠질 염려가 있으니까 서울을 포위하려고 할 것이다. 미군이 서울방위를 작전통제권 범위에 두지 않고 한국군에 넘겨준 것은 서울 방어 실패의 책임을 지기 싫어서이다. 현대전에선 결국 경제력이 승패를 좌우할 것이라고 안심하는 이들이 있는데. 북한이 꿈꾸는 전격전은 며칠. 또는 몇 주로 끝날 것인데 경제력이 개입될 여유가 없다』
  
  『미군 철수하면 까막눈 된다』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으로는 대체로 정치에 관심이 적고 순수 야전군 출신인 지휘관들이 주로 임명되었다. 육사 11기 출신인 이상훈(李相薰)씨(56·현 국가안보 회의 비상계획위원회 위원장·장관급)가 그런 사람이었다. 고향이 충북 청원인 李씨는 대구출신들이 조직한 「하나회」에 대해서 비판적 자세를 견지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고 수도권 부대보다는 전방부대에서 훨씬 오래 근무한 이였다. 지난 6월30일에 기자와 만난 李위원장은 자신이 지난 83년에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으로 임명된 것은 당시 미 8군사령관 세네월드 대장과 사단장 시절부터 좋은 사이였기에 세네월드 사령관이 『영어를 할 줄 알고 작전경험이 많은 사람을 달라』고 한국 측에 부탁하여 성사가 된 것이라고 했다.
  
  李씨는 미군 철수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현재의 대북괴 전력비교는 이렇습니다. 북을 1백으로 보았을 때 한국군은 62.7%, 미군은 5.4%로 합계 68.1%입니다. 1991년에 가면 한미군의 전력이 70%가 되어 방위전력을 확보하게 되고, 1996년에 가면 80%의 전력수준에 도달 전쟁억지력을 갖게 되며. 2006년에 가면 90%의 수준에 도달하여 공세전력을 갖게 됩니다. 우리가 독자적인 전쟁억지력을 갖출 때까지는 미군이 있어야 합니다. 미군이 당장 철수하면 우리는 국방비를 훨씬 더 많이 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李위원장도 조기경보능력이 주한미군의 한국에 대한 가장 큰 기여라고 했다.
  
  『한국군이 가지고 있는 조기경보 장비는 휴전선에 배치된 쌍안경, 관측장비, 통신감청장비 정도인데 주한 미군은 인공위성, SR71, U2, RC135, 조기경보기 등 세계 최신의 전자정보 시스팀을 통해서 북한의 군사 동향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런 정보를 우리가 얻을 수 없다면 당장 까막눈이 돼버립니다. SR71의 1년 운영비가 2억달러. 조기경보기가 한 대에 1억 달러, 그에 딸린 병력이 3천명이나 된다고 하니 미군이 철수하면 도저히 이 조기경보체제를 대체할 수가 없어요.
  
  더구나 미국은 이런 조기경보체제를 외국에 팔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해군력은 연안함대 수준인데. 미 7함대가 한국의 원양을 맡아 예컨대 한국과 중동 사이의 석유수송로까지 보호해주고, 미 공군은 한반도에 긴급 사태가 생기면 일본의 카데나 기지에 있는 313비행사단까지 한국에 전개시킬 수가 있어요. 올림픽 때는 미 해군이 항공모함 등 함대를 한국근해에 파견할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런 엄청난 군사력이 한반도에서 사라지면 우리는 국방비 부담을 훨씬 늘려야 할 것이고 경제발전은 더디어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미군은 한국을 위해서만 일방적으로 봉사하고 있단 말입니까.
  
  『그렇지는 않지요. 주한미군의 존재는 극동에 소련군의 대부대를 붙들어 매어두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주한미군이 없었더라면 이 소련군은 유럽으로 이동하여 나토군과 대치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상대역으로서 미군을 어떻게 생각했습니까?
  
  『미군과 한국군은 동반자관계가 돼야 합니다. 그것은 양국의 공통이익을 조정하는 데서 가능합니다. 우방이리 혈맹이니 하는 감성적 표현보다는 양국의 공통 국익을 도모하기 위해 협력 해나갈 이성적인 방법으로서 동반자 관계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강대국의 지원을 받아야 할 입장이라면, 그 강대국이 미국이란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인처럼 대범하고 신의를 지키려 하는 사람들도 드물 것입니다』
  
  2사단의 화력은 군단규모
  
  6·25때의 북한측 주요공격로였고 재차 남침이 있을 경우에도 그렇게 될 것으로 보이는 판문점-문산-동두천-서울 축선을 지키는 미 제2사단을 한국군에선 「인계철선」이라고 부른다. 북한군이 이 인계철선을 건드리면 미군은 자동 개입하게 될 것이라는 한국 측의 기대감에서 나온 말이다. 1917년 1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에서 창설된 이 부대는 1950년 7월 한국에 상륙 6·25전쟁을 치른 뒤 미국으로 돌아갔다가 1965년에 한국으로 다시 왔다.
  
  이제는 1백 55마일 휴전선 중 약 1km를 맡고 있는 유일한 미군부대이다. 동두천에 사단사령부가 있는 이 부대는 한 한국 장성의 표현을 빌자면 2개 한국군단 규모의 전력을 가진 미 육군의 최강사단이다. 미국 육군에서는 제82 공정사단, 제 101 공중공격사단과 함께 제2사단을 간판스타로 꼽고 있다. 「인디안머리」라는 별명을 가진 2사단의 구호는 「누구한테도 2등이 아니다」(Second to none).
  
  2사단의 병력은 20개 대대 및 단위 부대에 1만 5천명. 한국인 카투사 병사가 2천 3백명이나 파견 나가있다. 2사단의 장비는 엄청나다. 사정거리가 30km인 포탄 24발을 동시에 발사, 목표를 불바다로 만드는 다연장 로켓포(MLR=Multiple Launcher Rocket System)같은 최신형 장비를 가장 먼저 들여오는 부대가 2사단이다. 2사단은 3개 전투여단에 8개 전투대대로 구성돼 있다.
  
  동두천의 캠프 케이시 기지에 있는 제1여단은 약 1백대의 전차를 가진 2개 전차대대와 약 1백대의 장갑차를 가진 1개 기계화 대대로 구성돼 있다. 동두천의 2사단 사령부 바로 남쪽에는 캠프 호비 기지가 있다. 여기에는 약 1천 7백 명의 병력을 가진 2개 경보대대가 제2여단을 구성하고 있다. 제3여단은 문산 남쪽 봉일천의 캠프 하우스 기지에 있다. 1개 기계화 대대와 1개 경보 대대로 구성돼 있다.
  
  파주군 선유리에 본부를 둔 사단 직할의 항공수색대대에는 1백대가 넘는 코브라, 휴이 전투헬리콥터가 배치되어 있고 전차20대로 구성된 1개 전차중대가 있다. 이 8개 전투대대의 무장은 약 1백 20대의 전차, 2백대의 장갑차, 1백대의 중무장 헬리콥터이다. 2사단은 12월에서 2월 사이에는 임진강 자유의 다리 북쪽에 1개 경보대대, 그 나머지 기간에는 2개 경보대대를 상주시키고 있다. 휴전선 안에는 2개의 경비초소(GP)를 운영하며 휴전선을 따라 몇 개의 레이다 기지도 갖고 있다. 이것들은 2사단이 한국의 휴전선 방어에 밀착돼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존재이기도 하다.
  
  사단포병의 규모도 굉장하다. 3개 포병대대는 1백55밀리포 18문씩을 갖고 있다(1개 대대는 자주포, 2개 대대는 견인포). 다른 1개 대대는 8인치포 6문과 다연장 로켓포 6문을 갖고 있다. 즉, 66문의 각종 장거리포를 갖고 있는 것이다. 2사단은 한국군보다 더 열심히 그리고 가혹한 훈련을 받는다. 1년에 6개월은 주둔지를 떠나서 훈련을 받을 정도이다. 2사단에서 근무했던 한 재미동포출신 장교는 『미국인 장교들은 자기의 전문 분야에선 제1인자가 되겠다는 프로 의식이 강한데다가 모험심도 대단하여 전쟁이 나면 참 잘 싸우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자동 개입 가능한가
  
  문제는 이 막강한 전투력이 북한의 남침 때 과연 인계철선의 역할을 할 것인가에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제3조는 「한국이 침략을 받았을 때에 미국은 헌법절차에 따라서 공동대처 한다」고 적혀 있다. 즉, 주한미군사령관이 아니라 미국 대통령이 미군개입 여부에 대한 결정권을 가지며 그 결정은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런 절차에도 불구하고 전쟁초기에 북한군과 2사단이 직접 충돌해 버리면 미 대통령의 한국지원 결정은 쉽게 떨어질 것이라고 일부에서는 기대하고 있지만. 실은 남침이 시작되면 2사단 병력은 뒤로 물러나 다른 한국 군 부대와 함께 기동타격군단을 구성하게 돼 있다.
  
  즉, 개전이 되자마자 2사단이 북한군과 자동적으로 맞붙지는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것은 『2사단이 후방으로 물러나 충돌을 피한 채 미 대통령의 전투명령을 기다린다』는 뜻으로도 해석될 소지가 있다. 나토방위조약에는 한 조약국에 대한 공격은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규정한다는 「자동참전의 보장」이 있다. 한국정부에서는 자동적인 즉각 지원의 보장을 받으려고 노력해 왔으나, 메네트리 사령관의 한 보좌관은 『무리의 회의견제 때문에 그런 보장을 문서화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연합사작전계획에는 북한이 남침한지 약 한달 안에 미군이 수십만의 병력을 한국으로 보낸다고 적혀 있으나, 이 계획대로 미국이 결단을 내릴 것인지는 장래의 상황에 크게 좌우될 것이다.
  
  연합사의 한 한국인 장성은 『우리 희망대로 협정내용을 바꿀 수는 없는 입장이니까 미군이 자동 개입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제도적 장치와 신뢰관계를 형성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 고 했다. 한국군에선 그런 제도적 장치의 하나인 연합사의 작전통제권을 꼽고 있다. 미군에게 작전통제권이란 명분을 주는 대신 우리는 즉각 지원의 보장이란 실속을 차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 작전통제권도 5·16, 12·12사태 때 보듯 국내 문제가 발생하면 쓸모 없게 돼버린다는 것을 한·미군 모두가 잘 알고 있다.
  
  한 미8군 고위소식통은 『한국이 미군으로부터 연합사의 작전통제권을 가져가면 미군이 철수하지 않을 수 없는데, 미국은 법률로써 자국군대가 다른 나라의 지휘를 받지 못하게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고 했다. 현재의 연합사 조직에서는 사령관에 한국인이 취임하면 미군이 한국군 장성의 작전 통제를 받는 형식이 되므로 작전권 이양문제는 연합사구조의 변경을 포함하게 될 것이다.
  
  반미감정으로 범죄 감소?
  
  주한미군의 범죄통계(거의가 한국인에 대한 것)를 보면 한국에서 반미 감정이 표면화되면서 급격하게 줄어드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1981년엔 살인1, 강간6, 폭행85, 절·강도 1백7, 방화3건 등 모두 2백2건, 82년엔 2백14건, 83년엔 2백3건, 84년엔 1백67건이던 것이 2·12총선 뒤 광주사태의 논의 표면화, 미국문화원점거농성사건 등으로 반미감정이 높아지면서 1985년엔 1백18건, 86년엔 1백6건, 87년엔 1백27건, 88년엔 4월말 현재 46건으로 격감했다.
  
  이런 현상은 주한미군이 한국인을 두려워하게 된 것과 관계가 있는 것 같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반미감정으로 해서 미군들이 적어도 옛날처럼 한국인을 만만하게 대하지는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제는 주한미군들이 피해의식 운운할 정도가 되었으니 격세지감이 있다.
  
  최근 군사공군기지 사령관은 부하들이 한국인을 폭행한 데 대하여 한국의 행정당국에 사람을 보내어 사과를 했다. 미8군 공보실체서는 지난 2월19일 포항에서 일어난 미군 13명에 의한 버스 운전사 위협 사건에 대한 자체조사보고서를 만들어 언론기관에 돌렸다. 이 보고서는 12명의 군인을 견책 처분했다면서, 그러나 신문에 보도된 것처럼 미군들이 직접 폭력을 행사한 적은 없고, 운전사가 주관적으로 위협을 느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이것은 주한 미군이 반미감정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한 40대 한국인은 『반미감정이 미국 정부를 겨냥할 때는 별 문제가 없겠지만 미국의 민중을 적으로 보는 식이 되면 곤란하다. 미국인 입장에서 보면 6·25전쟁 때 한국을 위해 싸우다가 피를 흘렸고, 먼 나라에 와서 고생하는 것도 사실이니. 그 동안 한국을 도왔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 미국인까지 제국주의로 몰아붙이면 반한 감정이 일어나지 않을까』라고 걱정했다.
  
  주한 미군사령관의 한 보좌관은 이렇게 말했다. 『5·16이후 한국은 경제개발을 최우선순위에 놓고 나라를 경영했다. 정치 수준은 경제보다 뒤떨어졌고, 군사력 수준은 정치보다 더 뒤떨어져 있었다. 박대통령은 주한미군을 이용하여 뒤떨어진 군사력을 보완해 놓고 경제개 발을 마음놓고 추진할 수가 있었다. 미군이 철수한 뒤 한국의 국방비 부담이 얼마나 높아지는지를 살펴보면 주한미군의 가격을 짐작할 수가 있을 것이다』
  
  리차드 아미티지 미 국방성차관보는 지난 3월16일 미 하원의 군사건설 공사에 관한 세출소위원회의 청문회에 나와 이렇게 말했다. 『17년만에 처음으로 한국에서 대통령이 민주적으로 선출되었다. 이것은 미군이 그 곳에 주둔해 왔고, 그 배후에서 민주화가 일어날 수 있었던 방패를 제공했기 때문이란 것을 논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처럼 대부분의 주한 미군인들은 자신들이 한국과 민주화까지도 돕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러한 그들에게 쏟아지는 반미구호가 그들로부터 그리고 미국 본토사람들로부터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킬지가 관심사다.
출처 : 월조
[ 2003-07-04, 17:1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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