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미8군 사령부(상) - (4)한국 군부에 대한 시각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제3장·한국 군부에 대한 시각
  
  한국 군부의 대 인사이동
  
  지난 6월 하순 메네트리 미8군사령관을 보좌하는 한 부서에서는 그 즈음 이루어진 한국 육군의 장성급 인사 이동 명단을 놓고, 분석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이종구(李鍾九) 육군참모총장은 취임 직후 2차에 걸쳐 수십 명의 육군 장성들에 대한 승진·보직 이동을 단행했었다. 지난 12월말 전두환(全斗煥) 당시 대통령이 했던 군부고위 인사가 상당히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터라 노태우(盧泰愚) 새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처음 손댄 이번 인사는 대통령의 군 지휘 방식과 군인 맥의 재편성을 엿보게 하는 좋은 자료가 되었다. 7월1일자로 이루어진 이 대규모 군인사의 분석을 맡았던. 한국군에 밝은 한 미국인의 견해는 대충 이러 했다.
  
  「5 공화국에서 육군을 지배했던 집단이 하나회 출신임에는 분명하나 그들은 하나회이기 때문에 그런 자리를 차지했던 것이 아니고, 전두환 대통령과 연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C-라인(Chun-Line)이라고 불렀다. C-라인은 ①전두환 장군의 직속 부하나 보좌관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장성 ②공수특전단 출신 등으로 구성돼 있었다. 이것은 파당주의적(Cronyism) 인사의 결과였다. 이번 인사에서 노태우 대통령은 중장 이상에 대해서만 간여하고 그 아래의 장성인사는 육군참모총장과 육본 인사참모부장에게 맡겼던 것 같다.
  
  전두환씨보다는 훨씬 민주적인 인사였다. 종전에는 장성 인사를 할 때 국군보안사와. 청와대 경호실의 견해가 인사참모부장을 통해서 많이 반영되었으나 이번 인사는 인사참모부장-총장 선에서 주도적으로 한 것 같다. 보안사의 영향력과 육군참모총장의 영향력은 반비례 관계다. 노태우씨와 가까운 장성들이 요직에 앉은 것은 이번 인사의 한 특징이다.
  
  미국 국방성 정보 부서에서는 이번 인사에서 수도방위사령관이 교체될 것으로 전망했으나 우리는 그렇게 생각각하지 않았다. 그 사령관은 전두환, 노태우 두 사람과 똑같이 친하고 개인적인 충성보다는 통수권, 즉 제도에 충성을 바치는 사람인데 국방성에서는 전두환 계열이라고 잘못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 수도방위사령관에 대해서는 몇 년 전 일본의 한국 문제 전문 정보지가 쿠데타 모의설과 관련지어 엉터리 보도를 한 적이 있었다. 한국군 사정에 밝은 미8군에서는 이 보도를 무시해 버렸으나 미 합참본부 산하 정보팀에서는 이 쿠데타설에 대하여 큰 관심을 보여 미8군으로 문의를 해 오는 등 분주했었다고 한다.
  
  미군 정보 관계자들은 3년 전 이 사령관이 수도권 중요 부대의 지휘관에서 제3사관학교 교장으로 전보된 것은, 일부에서 추측하듯 권력 투쟁 때문이 아니고, 겨울철 훈련 중 발생했던 집단 동상사고 때문이었다고 분석했었다. 미군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한국군 장성이 이 수도방위사령관일 것이다. 미8군 정보관계자들은 대체로 한국군 안에서 하나회가 이미 사조직으로서 사라졌고, 그 인맥만 남아 있다고 보는 듯했다. 한 관계자는 『12·12사태로써 정규육사 출신 장교집단이 군부를 장악했으므로 하나회와 존립 목적이 사라진 것이다』고 했다. 그러나 한국군 내부에서는 아직도 하나회가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어 이 문제는 검증을 요한다.
  
  한국군에 안 먹히는 인사부탁
  
  미군이 한국군 고급 장교의 인사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기자의 가설은 이번 취재를 통해서 크게 수정되었다. 지난 30년간 한국 군부를 담당했던 미8군의 한 정보관계자는 이렇게 했다. 『5·16이후에 미8 군은 한국군의 인사에 거의 간여할 수 없게 되었다. 미국을 생래적으로 싫어하는 박정희 대통령이 워낙 군부에 대해서 소상한 지식을 갖고 있어 미8군 측의 조언을 필요로 하지 않았고, 군사원조가 끊기면서 간여할 지렛대도 잃었다. 역대 미8군 사령관은 또 박대통령을 무서워하기도 하고 존경하기도 하였다. 미군 장성들은 문민 통치에 길들여 있어 비록 타국의 국가 원수라 해도 깎듯이 모신다. 8군사령관이 하는 일이라고 는 박대통령에게 경례 붙이는 것뿐이었다.
  
  박대통령이 미8군사령관 고문이던 하우스맨씨에게 장성 진급자를 추천해보라고 한 적이 한번 있었다고 한다. 다섯 사람을 추천했는데 한 사람 만 진급되었다. 그 사람도 이미 진급 대상자로 내정돼 있었던 게 아닌가 한다. 나의 기억으로는 지난 10년간 미8군사령관이 장성으로 진급시켜 달라고 부탁한 10여명(연합사에서 부하로 데리고 썼던 장교들)의 한국 대령 가운데 딱 한사람이 진급했을 뿐이다. 미군 측이 추천하면 한국군부에서는 오히려 물을 먹이는 게 아닌가 할 정도로 효과가 없었다. 미군과 친하다. 영어를 잘한다고 하는 것이 진급 보직 등 인사에서 장애요인이 된 경우를 나는 많이 알고있다. 미군이 보는 한국 장성들은 국수주의자라고 할 정도로 민족주의적이다』
  
  육군본부의 한 핵심간부도 『미군과 친하다는 것이 인사에서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는 것은 확실하다. 특히 연합사에서 근무하면 인사 때 손해를 본다고 하여 그곳으로 가기를 꺼리는 분위기도 있다』고 말했다. 미8군 쪽에는 한국의 군 및 정계에 깊은 인맥의 뿌리를 갖고 있는 한국통이 많다. 이들은 미8군 정보부대의 문관 또는 UN군사령관 고문 자격으로 일해왔다. 가장 유명한 한국통은 하우스맨씨였다. 그는 나이를 속여 소년기에 입대한 사람인데, 한국에서 30여 년간 생활했지만 한국어를 잘 하지 못했다. 그는 해방직후 미 군정시절에 한국에 왔다. 당시는 대위였다. 대령으로 진급할 때까지도 이승만(李承晩)대통령은 그를 『캡틴 하우스맨』이라고 불렀다.
  
  그는 국방경비대 총사령부 고문으로서 한국군의 창설기에 산파역을 맡았다. 초창기 장교들의 양성소였던 군사영어 학교나 그 뒤의 육군사관학교 설립에도 관계했다. 정부수립 후 국군창설 안을 李대통령에게 브리핑한 것도 하우스맨씨였다. 그 브리핑 때 통역을 맡았던 고정훈(高貞勳/전 신사당 총재)씨에 따르면 하우스맨씨는 군의 정치적 중립을 특별히 강조했었다고 한다. 그의 지도 아래서 배출된 새파란 장교들이 그 뒤 장성이 되고 5·16을 거치면서 이 나라의 권력 핵심에 자리잡게 됐으니, 그의 영향력도 커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80년대 초까지 한국에 머물면서 UN군사령관 고문 자격으로 국내 정치에 관한 자문을 하다가 지금은 미국으로 돌아가 살고 있다고 한다. 8군 부사령관 고문으로 있는 캐롤핫지스씨는 한미행정협정 관계의 일을 맡고 있다. 그는 군사고문단 참모장을 역임했고, 교수경력도 있다. 한 미재단 이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의 아내는 한국의 수많은 심장병어린이를 미국으로 데려가 무료수술을 시켜 주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데 「핫지스 할머니」로 통한다.
  
  주한 미군 수뇌부의 판단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또한 사람의 한국통으로는 하우스맨씨에 이어 UN 군사령관 고문실장이 된 스티픈 브레드너씨가 있다. 1950년대부터 그는 미8군의 정보기관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일해 왔다. 일부 한국인은 그를 CIA직원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농구선수 박신자(朴信子)씨의 남편인 브레드너씨는 올해 57세. 미국 로드 아일랜드에서 출생, 예일대학과 하바드 대학원을 나왔다. 6·25때 한국전에서 싸운 경력도 있다. 그의 석사논문(1963년)은 「1960년의 선거위기에 있어서 학생 운동」이다. 4·19때 브레드너씨는 미8군에 있었기 때문에 생생한 체험을 바탕으로 이 논문을 썼다. 4·19에 대해서 외국인이 쓴 가장 뛰어난 논문으로 꼽힌다.
  
  미군 정보기관들
  
  한반도 주변은 미국과 소련의 전자 첩보전이 가장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곳이다. 1968년 1월에 미국의 전자·통신 정보함 푸에블로 호가 북한 해군에 의해 나포되었고 1969년엔 동해안을 정기적으로 정찰비행 하던 미국의 전자 첩보기 EC-l21기가 북한 공군에 의해 격추되었다. 북한은 한때 북한 및 중공상공을 비행했던 세계 최속(음속3배 이상)의 첩보기 SR-71(주로 영상·사진 정보수 집)에 미사일을 쏘았으나 맞추지 못했었다. 이밖에 U-2기, RC-l35 기(주로 전자·통신 정보수집). 그리고 첩보위성과 오끼나와에서 날아오는 조기경보 및 관제기(AWACS) EC-3A가 한반도의 군사정세를 탐지하는 거대한 시스팀을 이루고 있다. 주한미군과 미 공군의 대외공개자료, 그리고 「정보사회」(Intellignece Community·1985년 미국 아메리카 대학 간행)와 같은 서적은 한반도 안팎의 정보수집 현황을 자세히 밝히고 있다.
  
  SR-71, EC-121 등에 의한 통신정보의 수집은 NSA(국가안보국)가 주한미군과 긴밀하게 협조하여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소련도 비슷한 방법으로 북한을 위해 조기경보기를 한반도 주변에 띄워 북한의 조기경보 기능을 대신해주고 있다.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미국정보기관은 여러 가지다. 미8군 산하에는 4개 대대를 거느린 501 육군정보단이 있다. 주로 대북 관계의 전투·전략 정보 수집에 종사하고 있다.
  
  한국에서 활동한 역사가 가장 오래고 한때는 한국 군부와 정치에 관련된 활동도 했었다. 오산 미7공군 사령부 기지에는 미공군의 전자 보안사령부(Electronic Security Command) 산하의 기지가 있다. 이 보안사령부는 전자통신보안, 전자첩보전쟁(Electronic Warfare : 감청·전자방해 등등) 등의 임무를 맡고 있다.
  
  사령부는 텍사스주 샌 안토니오에 있고 태평양 지구 전자 보안사령부는 하와이의 히캄 공군기지에 있다. 오산기지에 있는 부대는 태평양 전자보안 사령부 산하이다. 김일성(金日成) 사망설의 진원지가 이 부대였다는 얘기도 있다. 7공군은 이밖에 OSI라는 보안부대를 두고 있으며 해군에도 같은 성격의 부대가 있다. 국방성 소속은 아니지만 국가안보국(NSA : National Security Ageney)은 한국의 도처에 통신 감청기지를 두고 북한·중공·소련의 통신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이 부대는 주한 미군 사령부의 직할 부대는 아니고 지원부대이다. NSA는 한때 청와대 등 한국 내부의 통신까지 감청한다는 의심을 받은 바 있다.
  
  용산 미군기지 안에는 미 공군 특수활동부대(Special Activities Center)의 태평양 지구 본부 산하의 제32 파견대가 있다. 대인(對人) 정보수집을 맡고 있다. 즉 귀순자 신문이나 적에 대한 지하공작 등을 주된 임무로 삼고 있다. 국방정보국(DIA)은 3군의 정보기관에서 올라온 정보를 종합 분석하는 기관이다. 미 합참본부 산하에 있고, 한국에는 정보원을 상주시키지 않는다고 한다. 특별한 사건이 터지면 전문가 팀을 현지로 보내기도 한다.
  
  미8군에서 한국의 군부·정치 등 국내 상황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정보수집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은 브레드너씨가 실장으로 있는 유엔군 사령관 고문실 뿐이다. 주한미군과 미 태평양 지구사령부의 정보부대 등에서 수집한 한반도 관련 정보는 한미연합사로 집중된다. 연합사에서 정보분석 전문가들이 많아 이 정보자료들을 정밀 판독, 분석, 평가한다.
  
  지난 84년 미국의 첩보위성이 북한의 한 비행장에 평소에 보이지 않던 기종의 항공기가 앉아 있는 것을 사진 촬영하였다. 이 사진을 판독한 연합사의 미군 장교가 이 새 비행기에 주목하게 되었다. 연합사에선 기존 전자·통신감청 자료 가운데서 그 비행기의 조종사가 비행장 관제탑과 교신한 부분을 찾아내었다. 여기서 의심은 더욱 굳어졌다. 연합사에서 이 문제를 제기 미국의 정보기관들이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동원되었다.
  
  그 결과 이 비행기는 미국 휴즈사에서 만든 휴즈 500D형 헬리콥터로서 서독의 한 회사가 수입 북한으로 팔아 넘긴 87대 중 한 대임이 밝혀졌다. 500D형은 상업용이지만 쉽게 군용으로 바꿀 수 있고, 그럴 경우 한국군이 갖고 있는 휴즈사 군용 헬리콥터와 혼동되어 대남 침투에 사용될 가능성이 있었다. 미국 정보기관은 이 정보를 미국 FBI(연방수사국)에 제공. 수사를 하도록 하였다. 이 문제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85년 2월2일 FBI 가 수사 착수를 발표했을 때였다.
  
  하우스맨 브래드너씨의 역할
  
  미8군 정보관계자는 미국 CIA 한국지부의 영향력이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과대 평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CIA한국지부장은 한국에 나와 있는 여러 미국 정보기관들을 조정하는 임무를 갖고 있으나 상하명령관계와는 다른 협조체제일 뿐이라는 것이다. 다만 CIA한국지부는 워싱턴 고위층에 직통보고 채널을 갖고 있어 타 기관을 압도하고 있다. CIA지부는 정보수집 업무에 치중하고 분석은 거의 하지 않는다. CIA 한국지부장은 미국 정부로 올라가는 보고서에 거의 자신의 견해를 넣지 않으며, 자신의 견해가 미국 대사와 다를 경우에는 반드시 다르다는 사실을 보고서에 밝히게 돼 있다고 한다.
  
  하우스맨-브레드너로 이어지는 미 8군사령부의 한국통은 미8군사령관을 통해 한국에 대해 큰 영향을 끼쳐 왔다. 미8군사령관과 장교들은 거의가 2년만에 교체되므로 한국의 군·정치·사회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을 쌓을 여유가 없다. 미8군의 한국통 인사들은 새로 부임하는 8군사령관에게 일종의 가정교사 역할을 하여 한국의 정세를 이해시켜 준다. 하우스맨과 브레드너씨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연합사 사령관 겸 미8군사령관에게 올라가는 한국 국내 정세에 관련된 정보보고를 걸르고, 분석하는 일이었다. 미8군 산하의 501 육군정보여단. CIA한국지부. 또는 한국에 있는 NSA 부대에서 들어오는 첩보 등을 이들 한국통 인사가 종합, 선별, 평가한 뒤 사령관과 그 상부에 올리는 것이다.
  
  이들 팀은 업무 시작시간보다 30분이 빠른 오전 7시30분에 연합사 사령관실로 들어가 사령관에게 한국 국내 사정과 관련된 1일 정보보고를 한다고 한다. 한국인 부사령관에게는 하지 않는다. 연합사 사령관은 이 보고로써 하루하루의 감을 잡고서 일과를 시작하는 셈이다.
출처 : 월조
[ 2003-07-04, 17:1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코나스넷  |  리버티헤럴드  |  뉴데일리  |  뉴스파인더  |  뉴포커스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