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핵 게임 - 북한 원전개발과 남한의 대응전략(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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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원폭(原爆)개발과 남한의 대응 전략
  
  박정희(朴正熙)시대 핵 개발 참여자들의 최초 증언
  프랑스 재처리 시설 도입 과정의 내막
  입북(入北)한 원폭전문가 경원하 박사의 역할
  한국의 핵(核)개발 잠재력
  원자력 자립정책과 미국의 견제
  
  <1990년 4월 월간조선>
  
  1. 북한의 핵 개발
  
  북의 원폭개발 성공한다
  
  기자가 이번 취재를 통해서 만난 수십 명의 원자력 관계 학자·기술자들은 거의가 북한이 영변에서 가동중인 연구용 원자로를 核 폭탄용 플루토늄 생산용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그 옆에 있는 직사각형의 건물을 미국 정보기관에서는 연구로에서 생성된 플루토늄을 분리해 내는 재처리 공장이라고 주장하여 왔다. 이 한국 학자들도 미국측 판단에 동의하고 있었다.
  
  그런 견해를 가진 학자들 중에는 1970년대에 故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이 극비리에 추진하였던 핵무기 개발에 참여하여 개발도상국에 의한 原爆개발의 공식에 정통한 이들도 있다. 국내 과학자들과 군사 전문가들은 대체로 북한이 原爆개발에 성공할 수 있고 미국과 소련이 외교적 압력으로 이를 막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였다. 그들은 북한이 1950년대부터 고독하게, 그러나 주체적으로 쌓아온 자체 核 기술로써 연구로와 재처리시설을 돌리고 있으므로 손 쓸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북한은 1950∼1960년대에는 소련에서, 80년대에는 原爆을 비밀리에 개발 중이던 파키스탄에 기술자들을 보내 원자력 기술을 배워오게 한 뒤부터는 약 2천5백 명으로 추정되는 적지 않은 연구人力을 확보하여 조용히 모종의 작업을 해 왔었다. 그 성과가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은 영변지역에 1980년에 자체 기술로 착공, 87년 말에 완공한 연구용 원자로였다. 북한은 소련에서 들여온 1천㎾짜리 연구용 원자로를 2천㎾로 확대했다가 다시 4천㎾ 용량으로 늘렸다. 이런 작업을 통해서 연구로 설계기술을 익힌 다음 본격적인 연구로를 탄생시킨 것이었다. 이처럼 차근차근 자체 기술을 축적 해간 끝에 드디어 原爆개발에 도전하고 있으므로 저력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이 3만㎾짜리 연구로가 북한産 천연우라늄을 사용하는 고전적인 흑연감속재 植 플루토늄 생산용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부터 미국은 소련을 통해서 경고 신호를 보냈다. 核 과학자들은 『원폭 재처리기술은 어렵지 않다. 예컨대 재처리 기술은 정유공장 운영보다 훨씬 간단한 수준이다. 북한이 설계·제작한 연구로는 原爆보다 더 만들기 어려운 것이다. 原爆 제조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의지의 문제다』고 했다.
  
  한국이나 일본이 핵무기를 안 만드는 것은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국제 감시 하에 놓여 있는데다가 만들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原爆을 제조할 때 쏟아질 국제적 압력과 비난을 감수할 만한 의지력을 가진 정치 지도자가 있다면 원자폭탄은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비밀개발에 적합한 체제
  
  원자력 연구소장 한필순(韓弼淳)씨는 『북한이 국제 원자력 기구의 사찰에 응하게 되면 평화적 목적의 원자력 기술 도입이 가능해지는 등 여러 가지 이익이 많은데도 큰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비밀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 의심스럽다』고 했다. 다른 핵 과학자는 『북한의 핵 개발 시스템은 북한산 천연 우라늄→연구로→재처리 공장으로 이어지는 핵연료 순환 사이클을 외국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것이다』고 분석했다. 그럴 경우는 외국에서 간섭할 방법이 없어 외교적 압력이 잘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과학자는 『소련이 북한에 상업용 원자로를 지어주기로 돼 있는데 그러면 영향력이 생기게 될 것이다』고 했다. 우리 핵 과학자들은 또 『북한의 사회체제가 原爆을 만드는 데 가장 적합하다』고 분석하고 있다.
  
  『플루토늄을 다루는 데 있어서 기술적으로 가장 어려운 것은 안정성입니다. 방사성 폐기물을 어떻게 처리하고, 방사능이 강한 사용後 핵연료를 어떻게 다루느냐가 재처리 기술의 핵심인데 북한 사회에서는 여기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 재처리 공장을 자체적으로 만들려면 차폐시설과 정교한 원격 조정 장치를 수입해야 하는데 이것도 경제성을 무시하고 엄청난 투자를 하여 기자재를 자체 개발하면 됩니다. 더구나 보안이 유지되니 안성마춤이지요』
  
  原爆 제조가 그 나라의 평균적인 생활 수준이나 기술 수준과는 별로 관계가 없다는 것은 가난한 인도와 원자력 발전소도 없는 중공이 核 보유국이 된 데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더구나 북한은 군사력을 위해 생활 수준을 희생시켜 온 군사 大國이다. 30여 년에 걸쳐 육성된 원자력 기술 人力은 상업용 원자력 발전소가 한 基도 없는 북한에서 오로지 원폭 제조 연구에만 투입되었을 것이고 바야흐로 그 결실의 순간이 왔다는 게 한 군사 전략 전문가의 예상이었다.
  
  정부내의 핵심자리에 있는 그는 『1993년에 북한이 원자 폭탄을 가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우리 정보로는 북한 연구로가 한 해에 히로시마 투하 원폭 정도의 20kt 짜리 한 두 개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다고 본다. 대응방법으로는 외교적 수단 이외의 방법도 검토하고 있다. 북한이 핵 개발을 중단하지 않으면 우리도 대응 개발하겠다는 여론도 일어날 것이다』고 했다.
  
  북한이 공산권 민주화의 열풍 속에 포위돼 있고 김정일(金正日)이 권력을 승계 받는 시점에서 「북의 원폭」이 현실화된다면 한반도의 군사력 균형은 근본적으로 파괴되고 거기에 바탕을 둔 안정도 흔들리게 될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현재의 군사력 균형은 「북한의 압도적인 재래식 군사력=한국군의 열세한 재래식 군사력+주한미군과 보유 핵」이란 공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북한은 벌써 북한 원자력 시설의 국제 사찰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주한 미군의 핵 철수를 요구, 核 개발을 정치무기로 써먹기 시작하였다.
  
  재미 핵 공학자 경원하 유치 성공
  
  북한의 핵 개발설을 금강산댐의 경우와 비교할 때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금강산 댐 수공설에 대해 미국 측은 회의적이었고 한국 측은 긍정적이었으나 북한의 核 개발에 대해서는 미국 측이 더욱 확증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으며 한국의 핵 전문가들도 동의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미국 정보팀은 1981년에 이미 한국 고위층에게 『북한이 짓기 시작한 영변의 연구로는 핵무기 제조를 겨냥한 것 같다』고 브리핑했었다. 지난 해 여름에 한국의 관계자들에게 이 정보팀은 『연구로와 함께 재처리 시설을 완공한 것 같다. 북한은 1990년대 중반에 核 폭탄을 완성할 것이다』고 보고했다. 영변 원자력 센터에는 연구로와 재처리 시설 이외에도 강변 백사장에 뇌관 시험장을 두고 있는데, 여기서의 폭파 실험 장면이 미국 첩보 위성에 포착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최근 일부 核 과학자들은 프랑스 인공 위성이 찍은 영변 시설 사진을 분석, 북한의 연구로는 당초 예상했던 천연 우라늄 연료·흑연 감속재·가스 냉각식이 아니고 천연 우라늄·흑연 감속재·중수 냉각식이라는 분석도 하고 있다. 가스 냉각식으로 보기에는 건물이 너무 작다는 것이다. 중수 냉각 연구로는 캐나다의 NRX형이 보편적인 형태이다. 북한의 3만㎾ 연구로의 年間 플루토늄 生成 능력은 20kt짜리 핵 폭탄 한 개분인 8㎏(플루토늄은 비중이 약 19로서 8㎏의 부피는 야구공 크기), 영변 재처리 시설의 플루토늄 분리·추출 능력은 한 해에 6㎏정도라는 평가도 있다. 연구로가 캐나다 식이라는 것과 관련, 한국의 관계기관에서는 在美 핵 공학자였던 경원하씨를 주목하고 있다.
  
  경씨는 미국 뉴멕시코주에 있는 국립 로스알라모스 연구소에서 핵 폭탄 제조에 참여하였으며 캐나다 맥길대학 교수로 일하다가 1974년쯤 북한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경씨는 캐나다에서 만든 연구로에 관한 자료 등 많은 기술 자료를 갖고 들어갔고, 이것이 북한 핵 개발에 급 피치를 걸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원자력 학자들은 또 영변 원자력 연구센터의 소장 이승기(李昇基)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6·25전에 서울 공대 학장이었던 李박사는 교토대학에서 섬유공학을 전공했으며 북한으로 올라간 뒤에는 비날론을 개발한 세계적인 화학자이다. 김일성(金日成)의 신임도 두터워 영변 연구소를 金日成이 방문하면 李소장과 같은 방에서 잘 정도였다고 한다.
  
  1942년에 경성제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정근(丁根)도 原爆 개발의 핵심도 인물로 지목되고 있다. 대체로 북한의 화학 분야가 센 편이다. 원폭 제조는 재처리, 연구로 등 화학 공정이 중심으로 돼 있어 북한은 그 기초가 튼튼한 편이라는 것이다. 북한이 외국 기술의 도움 없이 독자적으로 원폭 개발을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근거는 우라늄 原鑛의 존재다.
  
  남한에 부존된 우라늄 원광은 농도가 낮아 연구로의 연료로 쓸 수 없지만 북한의 원광은 그 농도가 0.5∼0.8%로서 정련 과정을 거쳐 연구로의 연료로 쓸 수 있다고 한다. 朴대통령 시대 핵 개발의 주요 참여자였던 한 핵 과학자는 「그때 우리의 핵 개발은 혼선이 많았지만 북한의 개발 방향은 일관성이 있고 기초가 든든해 70년대 한국보다 기술력이 앞선다」고 평가하였다.
  
  최후의 제어 수단은?
  
  중국의 핵실험이 인도를 자극하여 74년에 인도의 핵실험이 있었고 이는 다시 파키스탄을 자극하였다. 파키스탄은 산업 스파이 방식의 핵무기 제조에 집념을 불태워 지금은 거의 성공한 단계다. 아랍의 압도적인 재래식 군사력에 대응하기 위해 이스라엘은 핵무기를 비밀리에 제조해 두고 있으며 이라크는 이슬람 세계의 맹주를 자처하면서 핵무기 개발을 시도하다가 이런 일을 당했다. 1981년 6월7일 이스라엘 공군의 F16, F15 전투기 14대는 이라크 트와이터에 있는 연구용 원자로 건물을 폭파하여 가동을 앞두고 있던 프랑스제 연구로를 완전히 파괴하였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 연구로가 핵 폭탄 제조용이라고 판단, 선제 공격을 가한 것이었다. 이 연구로는 프랑스에서 만들어졌는데 이라크로 보내지기 직전에 항구에서도 한 번 폭파된 적이 있었다. 이라크로 옮겨진 뒤인 1980년 9월에는 연구로 건설 현장이 국적 불명의 팬텀기에 의해 격파 당했었다. 이 팬텀기는 이스라엘 공군기로 추정되었다.
  
  이스라엘과 미국은 이 연구로가 93%의 고농축 우라늄을 核연료로 쓰도록 설계된 것으로 보다 명백한 핵무기 개발용 연구로라고 단정하여 프랑스에 대해 수출금지 조처를 취하도록 압력을 넣어 왔었다. 프랑스는 이 연구로의 연료로 72㎏의 고농축 우라늄을 공급하기로 돼 있었다. 그 정도 양의 순도 높은 우라늄이라면 히로시마型 핵 폭탄을 3∼4개나 만들 수 있다. 이스라엘 정부는 외교적 압력과 테러를 병행하다가 선제 폭격을 해 버린 것이었다.
  
  아랍-이스라엘과 같은 대치 상황에서는 상대방이 핵무기를 갖는다는 것은 국가 생존의 문제로 확대되며 그 위험을 사전에 제거하려는 외교적 노력이 한계에 부딪치면 연구 시설에 대한 선제 공격을 단행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하나의 사례로서 남북한 관계에도 중요한 시사를 던지고 있다.
  
  우리 정부내의 한 인사는 의미 있는 말을 던졌다. 『북한은 핵 폭탄 운반 수단을 동시에 개발하고 있습니다. 소련에서 들여온 스커드 B형 미사일을 개량하여 사정 거리를 5백㎞까지 연장하는 시험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소련을 통해서 북한의 핵무기 제조를 막아 달라고 요청할 것입니다. 우리가 손을 쓸 때도 미국과 소련의 양해가 있어야 하겠지요』
  
  그는 영변의 북한 원자력 연구 센터가 산으로 둘러 싸여 있지만 우리 공군의 F-16은 지형에 맞추어 초저공비행을 할 수 있는 장치를 갖고 있다고도 했다. 북한이 원폭을 만들고 있는 사이 우리가 잠자코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얘기이겠다. 주한 미군의 한 정보 책임자도 『최근 한국 내에서 대응 개발과 예방적 조처의 견해가 나타나고 있는데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
  
  정부내의 관계자는 『북한은 심리적, 경제적 목표를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북한은 본격적인 核부대의 건설보다는 먼저 핵실험에 성공하는 것을 당면관제로 설정하고 한 두발의 핵 폭탄을 개발한 뒤에는 재래식 군사력을 축소, 군사비 부담을 줄이려 할 것이란다. 세계에서 일곱 번째의 核 보유국이 된다는 것은 북한 주민들에게도 대단한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앞으로 2년이 문제인데 우선은 미국과 소련이 북한을 말려 주기를 기다려 볼 것이다. 부시가 직접 고르바초프에게 이 문제를 부탁할 정도이다. 소련이 북한 핵 개발을 말리지 못하면 美蘇군축 협상에도 걸림돌이 될 것이다』고 했다. 北의 원폭에 대한 우리의 대응 능력을 알아보려면 朴대통령 시대의 핵 개발에서부터 점검해 봐야 한다. 이 부분은 그 동안 과장된 면이 있었다. 기자는 이 계획의 참여자들과 극비 자료를 찾아냈다.
출처 : 월조
[ 2003-07-04, 17:5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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