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 진술조서 - 2003년 6월16
정몽헌 회장 - 『장관님, 現代가 매우 어렵습니다. 도와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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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 특검 진술조서
  
  성명 : 박지원(朴智元)
  주민등록번호 : 420605-○○○○○○○
  주거 :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직업 : 전 문화관광부 장관, 전 대통령비서실 실장
  연령 : 61세
  
  피의사건에 관하여 2003. 6. 16. 남북정상회담관련대북비밀송금의혹사건등의진상규명을위한특별검사사무소 1510호 조사실에서 임의로 아래와 같이 진술하다.
  
  1. 저는 위 주거지에서 처 ○○○와 함께 생활하고 있으며, 딸 ○○, 딸 ○○ 등은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1. 저는 1999. 5. 25부터 2000. 9월경까지 문화관광부장관으로 재직한 사실이 있으며, 재직당시인 2000. 3월경부터 4월경까지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남북당국간 회담에 당시 김대중 대통령 특사자격으로 참석하여 남북정상회담 합의문을 작성한 사실이 있습니다.
  1. 금일 이 부분에 대하여 물으신다면 제가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하여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문 : 진술인이 박지원인가요.
  
  답 : 예, 본인이 박지원이며, 필요하시다면 제 신분증을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때 검사는 진술인이 제시하는 주민등록증을 확인하고, 이를 사본하여 본건 조서말미에 첨부하다.
  
  
  문 : 진술인의 학력 및 경력은 어떤가요.
  
  답 : 문태고등학교 및 단국대학교 경상학부 상학과를 졸업하였으며, 안양대학교 최고경영자과정을 수료하였습니다.
  1970. 럭키금성상사에 입사, 1972년부터 동서양행 뉴욕지사 지사장, 1975년부터 데일리팬숀스(주) 대표이사, 1980년부터 뉴욕한인회 회장, 1981년부터 미주지역한인회총연합회 회장, 1989년부터 인권문제연구소 이사장, 1991년부터 1995년까지 제15대 국회의원(민주당 전국구), 1992년 민주당 김대중대표 특보, 1993년부터 민주당 대변인, 1995년 국민회의 대변인, 1996. 5. 1.부터 국민회의 총재실담당 특보, 1997. 12. 26.부터 제15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 1998. 1. 경부터 1998. 2.경까지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 대변인, <판독 불능> (차관급), 1999. 5. 25일부터 2000. 9.경까지 문화관광부 장관, 2001. 3. 29.부터 2002. 4. 14.까지 청와대 정책담당특보, 2002. 4. 15.부터 2003. 2. 24.까지 대통령비서실 실장으로 재직한 사실이 있습니다.
  
  
  문 : 진술인이 문화관광부장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남북정상회담을 남북당국간 회담에 참여한 사실이 있는가요.
  
  답 : 예, 그런 사실이 있었습니다.
  
  
  문 : 그때가 언제쯤인가요.
  
  답 : 2000. 3. 9. 첫 예비접촉을 시작하여 같은 해 4. 8. 합의문을 작성하기까지 모두 4차례에 걸쳐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남북당국간 회담에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참여한 사실이 있습니다.
  
  
  문 : 그 당시 진술인은 남북당국간 회담에 어떤 자격으로 참석하게 된 것인가요.
  
  답 : 당시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 특사로 다녀오라는 구두상의 지시를 받아 다녀온 사실이 있습니다.
  
  
  문 : 대통령 특사로서 참석하였다고 하는데, 특사로 부여받은 임무는 어떤 것이었는가요.
  
  답 : <판독 불능> 구두상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문 : 그 당시 부여받은 특사자격이 정상회담에 대한 합의까지 이끌어 내라는 역할까지 부여받은 것인가요.
  
  답 : 그렇지는 않습니다. 일단 특사자격은 남북정상회담의 성사가 가능한지 여부를 접촉해 보라는 것이었고, 예비접촉에서 정상회담을 위한 회담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서 자연스럽게 정상회담 합의문까지 작성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2000. 4. 8. 남북정상회담 합의문 작성이후부터는 통일부와 국정원이 총괄하여 추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 : 남북정상회담 추진은 정부의 결정으로 시작된 것인가요.
  
  답 : 애초에는 현대 정몽헌 회장으로부터 남북정상회담에 대하여 북측이 남측과 접촉해 볼 의향이 있다는 의사를 전달받은 이후에 정부가 이에 대한 검토를 거친 후에 타당성이 있다는 판단하에 접촉이 이루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문 :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게 된 배경은 어떤가요.
  
  답 : 정확한 시기는 기억되지 않으나 1999년 말경 아니면 2000년 초경으로 기억하는데, 아마도 1999년 말경쪽이 가깝지 않나 생각됩니다.
  1999년 말경 서울프라자호텔에서 행사가 있었던지 아니면 무슨 약<판독 불능> 나오는 길이었는지 정확치 않는데, 그곳에서 현대그룹 정몽헌 회장을 우연히 만나게 되어 서로 인사를 나누면서 악수를 하는데, 정몽헌 회장이 잠깐 드릴 말씀이 있다라고 하였고, 호텔로비 한쪽으로 가서 정회장으로부터 ‘이번에 자신들이 확인해 보니까 남북정상회담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평소 제가 알고 있는 정몽헌 회장은 성격이 약간 내성적으로 수줍음을 타는 성격인지라 대뜸 그 말을 하고서, 제 의견을 기다리는 듯 하였습니다.
  1998. 2. 25. 김대중 대통령 취임사에서 남북정상회담의 의지를 천명한 이래, 여러 장소에서 그런 취지의 말씀을 하셨던 관계로 당시 대북사업의 일환으로 금강산관광사업을 진행하고 있던 정몽헌 회장이 그런 말을 하기에 ‘일단 한번 알아보겠다‘는 말을 하였고, 그날은 그 정도의 말만 주고받고 헤어졌습니다.
  
  
  문 : 정몽헌 회장의 진술에 의하면 2000. 1월초 서울 중구 소공동 소재 롯데호텔에서 진술인을 만나서 이와 같은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정확한 날짜나 장소까지는 기억하지 못하겠으나, 정몽헌 회장을 호텔에서 만났을 때 이런 이야기를 들은 것은 사실입니다.
  
  
  문 : 대북사업을 하는 현대그룹 정몽헌 회장이 문화관광부장관이던 진술인에게 남북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만한 이유라도 있었는가요.
  
  답 : 정확한 의도는 모르겠으나, 그 당시 현대는 금강산관광선사업을 해오고 있었으며, 외형상으로는 관광사업이기 때문에 문화관광부의 소관 같았지만 사업의 성격상 국정원 및 통일부가 소관 부서로서 실질적인 담당을 하고 있었는데, 현대는 금강산관광사업과 저희 문화관광부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서 장관인 저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문 : 정몽헌 회장으로부터 ‘남북정상회담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어떻게 하였는가요.
  
  답 : 바로 청와대로 대통령님을 찾아뵙고서 “현대그룹 정몽헌 회장이 남북정상회담이 가능할 것 간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라고 보고를 드리자, 김대통령께서도 취임사에서부터 천명해 오시고 계셨기 때문인지 바로 ‘가능하다면 한번 추진해 보라‘는 말씀이 계셨습니다. 저는 “이번 일은 현대로 하여금 사전 접촉을 하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말씀을 드리니까 ‘그렇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문 : 정몽헌 회장으로부터 단지 남북정상회담이 가능할 것 같다는 구두상의 이야기만을 듣고서 그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바로 대<판독 불능>
  
  답 : 김대중 대통령님이 취임하기 전부터도 국내에서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한 소문이랄까 하는 정도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정몽헌 회장과 같이 국내에서는 가장 크고, 금강산관광사업과 같은 구체적인 대북사업을 추진해 오고 있는 그룹의 오너가 그런 말을 하였다는 것에 일단 신뢰감이 있었기 때문에 대통령님께 먼저 보고 드려서 정확한 의중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는 판단 하에 사전검토 없이 말씀을 드렸던 것입니다.
  
  
  문 : 대통령으로부터 추진 승낙을 받고서 어떻게 하였는가요.
  
  답 : 대통령님의 승낙을 받고서 전화였는지 직접 만났는지 기억하지 못하겠는데, 정몽헌 회장에게 “한번 추진해 보라“는 말을 했습니다.
  
  
  문 : 정몽헌 회장은 2000. 1월 하순경 진술인에게 전화를 걸어‘일전에 말씀드린 것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라고 물으니까, 진술인이 ‘한번 추진해 보라‘고 하였고, 다시 ‘이 일은 누가 맡으시겠습니까‘라고 물으니까 진술인이‘이 일은 내가 맡기로 했다‘라고 하여, 정회장이 ‘그럼 일정을 다시 확인해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는 말을 하고 통화를 마쳤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판독 불능> 승낙하신 이후에 보안관계상 연락관계는 저에게 하라는 취지에서 정회장에게 이 일은 ‘내가 맡겠다‘는 말을 했었을 것입니다.
  
  
  문 : 김대중 대통령께서 처음 남북정상회담 가능성 보고를 드릴 때 진술인이 맡아서 처리하도록 지시를 하였는가요.
  
  답 : 그런 구체적인 말씀은 없으셨고, 저보고 한번 ‘알아보라‘는 지시가 계셨습니다. 원래 대통령께서 구체적으로 지시를 하는 성격이 아니십니다.
  
  
  문 : 진술인이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한 보고가 이루어진 이후, 진술인 또는 정부차원에서 대응을 한 사실이 있는가요.
  
  답 : 정확한 날짜는 모르겠는데, 임동원 국정원장을 서울 중구 소공동 소재 롯데호텔에서 만난 사실이 있는데, 임동원 원장이 ‘대통령님이 박장관을 만나서 남북정상회담에 대하여 현대와 어떤 상황인가를 알아보라고 하더라‘는 말씀이 있으셨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정몽헌 회장으로부터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된 경위와 들었던 내용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문 : 그와 관련하여 국정원이 검토했다는 사실에 대하여 알고 있는가요.
  
  답 : 나중에 국정원에서 검토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나, 어떤 방<판독 불능> 모르겠습니다.
  
  
  문 : 그 당시 국정원장이었던 임동원의 진술에 의하면 2000. 2월초 목요일 주례보고를 드리는 과정에서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을 제의해 왔는데, 박지원 문화관광부장관을 만나 그 내용을 알아보고 이 제의의 신빙성과 가능성 등을 분석 평가하여 보고하라‘는 지시를 받았으며, 서울 중구 소공동 소재 롯데호텔에서 진술인을 만나서 ‘북한이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개최할 용의가 있다고 현대측을 통해 알려 왔다‘면서 ‘쌍방 최고당국자의 정확한 의사를 확인하기 위해 제3국에서 특사 접촉을 갖자‘고 제의해 왔다는 설명을 해주었는데, 그때 ‘1999. 12월말 현대측에서 정상회담 추진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에 그럼 그쪽(북측)의 의사가 어떤지 한번 알아봐 달라는 이야기를 했었으며, 얼마전(2000. 1월 말경) 현대측으로부터 정상회담이 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라는 말을 해주었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예, 맞습니다.
  
  
  문 : 임동원 원장은 진술인으로부터 설명을 듣고서 국정원 대북전략국장(이하 ‘5국장‘이라 한다) 김보현을 통하여 북측 제의의 신빙성을 다각적으로 검토하였는 바, 북측의 제의가 신빙성이 있으니 일단 남북간 특사접촉을 통하여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판독불능) 대통령께 보고를 하였으며, 2월 중순경 검토보고를 드린 후에 특사를 누구로 할 것인지에 대하여 논의를 하면서 몇 명의 인사에 대한 거론이 있었고, 그리고 2월 말경 목요일 주례 보고시에 김대중 대통령이 ‘북측이 싱가포르에서 곧 특사들의 예비접촉을 갖자고 한다‘며 ‘박지원 장관을 특사로 임명하니 그를 보좌할 국정원 전문가를 지원하라‘는 지시를 받고서, 그 당시 국정원 5국장 김보현을 추천하여 승인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 내용에 대해서 알고 있는가요.
  
  답 : 대통령님과 국정원간에 있었던 내용이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하여는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
  
  
  문 : 김보현 국장이 특사를 보좌할 것이라는 사실은 언제, 누구로부터 듣게 되었는가요.
  
  답 : 제가 특사로 임명된 이후에 임동원 국정원장이 제게 실무자로 김보현 국장을 보내겠다는 말을 전해 왔습니다.
  
  
  문 : 진술인이 대통령 특사로 임명된 시점에서 북측과의 구체적인 접촉일정이 정해져 있었는가요.
  
  답 : 예, 그 이전에 정몽헌 회장으로부터 북측에서 2000. 3. 9. 싱가포르에서 남북당국간 예비접촉을 갖자는 통보가 있었으며, 북측에서는 아태 송호경 부위원장이 특사로 나올 것 같다는 사실을 전(판독 불능)
  
  
  문 : 이러한 통보는 직접 정몽헌 회장으로부터 받았는가요.
  
  답 : 예, 그렇습니다.
  
  
  문 : 이 부분에 대하여 대통령께 보고가 되었는가요.
  
  답 : 그렇습니다. 정몽헌 회장으로부터 이러한 통보를 받은 직후에 바로 대통령님께 보고를 드렸으며, 대통령님께서는 ‘알았다‘는 말씀 외에 별다른 지시는 없으셨습니다.
  
  
  문 : 진술인이 대통령 특사로 임명되게 된 경위는 어떤가요.
  
  답 : 2000. 2월 말경쯤 대통령께서 저에게 저녁 8시까지 관저로 올라오라는 말씀이 계셨습니다. 제가 관저에 도착하니까 대통령님과 임동원 원장이 함께 앉아 계셨는데, 대통령께서 저보고 하시는 말씀이 ‘2000. 3. 9. 싱가포르 접촉에 박장관이 내 특사로 나가서 이야기를 들어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대북전문가도 아니고, 박재규 통일부 장관이 가는 것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리자, 대통령님께서 ‘박재규 통일부 장관이 출국할 경우 노출되기 쉽고, 저쪽에서 아태 송호경 부위원장이 김정일 특사로 나온다고 하고, 저쪽에서도 대통령 측근이 나오는 것을 바라는 것 같으니까 박장관이 합당한 것 같다‘라는 말씀이 계셔서 “그럼 제가 맡아 보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문 : (판독불능) 임동원 국정원장은 이야기가 없었는가요.
  
  답 : 별다른 이야기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박장관이 하면 잘 할 것이다‘라는 말을 하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문 : 이때 김보현 국정원 국장을 수행 보좌관으로 한다는 말은 없었는가요.
  
  답 : 예, 그런 말은 없었습니다.
  
  
  문 : 예비접촉을 앞두고서 국정원과 사전에 업무협의를 한 사실이 있는가요.
  
  답 : 2000. 3월 초경 국정원 김보현 국장을 외부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이때 자신이 저를 보좌하여 수행하게 된 국정원 대북전략국장 김보현이라고 소개를 하면서, 20~30페이지 분량의 문건을 저에게 건네주고서 그 내용에 대하여 설명을 하였는데, 문건 내용은 북한과의 협상에서 주의하여야 할 사항과 상투적인 질문에 대한 대응 방법 등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문 : 이때 김보현 국장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는 말인가요.
  
  답 : 예, 그렇습니다.
  
  
  문 : 그때가 언제, 어느 장소였는지 기억하는가요.
  
  답 : 2000. 3월 초경이었으며, 정확한 장소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문 :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납북당국자간 접촉을 모두 몇 차례나 이루(판독 불능)
  
  답 : 2000. 3. 9. 싱가폴에서 예비접촉이 있었으며, 같은 달 17~18까지 중국 상하이에서 제1차 회담, 같은 달 23. 중국 베이징에서 제2차 회담, 같은 해 4. 8. 중국 베이징에서 제3차 회담 등 모두 4차례의 접촉이 있었습니다.
  
  
  문 : 2000. 3. 9. 예비접촉이 이루어졌는가요.
  
  답 : 2000. 3. 9. 싱가포르 리츠칼튼 호텔 비즈니스 센터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문 : 예비접촉을 위한 준비과정은 어떠하였는가요.
  
  답 : 예비접촉을 위한 출국준비에 대하여는 국정원측에서 모두 처리를 해 주었으며, 예비접촉을 위한 출국은 보안을 유지하여야 할 필요성 때문에 2000. 3. 8. 당시 제 수행비서이던 하용진만을 데리고 저와 단둘이 출국하였습니다.
  
  
  문 : 현지에 도착하여서는 어떻게 하였는가요.
  
  답 : 저와 하용진 수행비서가 싱가포르 공항에 도착을 하자, 국정원의 김보현 국장과 서훈 과장이 마중을 나와 있었으며, 그들의 안내로 바로 그곳에서 택시를 이용하여 리츠칼튼 호텔에 도착하였으며, 그 다음날인 3. 9. 오전에 남북당국간 접촉이 이루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문 : (판독불능)
  
  답 : 우리측에서는 본인과 김보현 국장과 서훈 과장, 북측에서는 아태 송호경 부위원장, 황철 참사, 권민, 불상자 1명 등이 예비접촉에 참석하였습니다.
  
  
  문 : 이날 현대측 관계자가 예비접촉에 참석하지 않았는가요.
  
  답 : 현대 정몽헌 회장과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 일본인 요시다 등 3명이 예비접촉 장소에 나와서 남북 양측을 소개한 후, 약 5~10분 여에 걸쳐 덕담을 나눈 뒤 회의장을 빠져나갔습니다.
  
  
  문 : 현대측 관계자들을 예비접촉 장소에서 만나기로 사전에 협의가 되었는가요.
  
  답 : 그런 약속은 없었습니다.
  
  
  문 : 협상은 어떤 식으로 진행이 되었는가요.
  
  답 : 예비접촉에서부터 3차례 회담에 이르기까지 항상 저와 김보현 국장, 서훈 과장이 참석하고, 북측에서도 송호경 아태 부위원장, 황철 참사, 권민, 성명 불상자 1명(기록만 담당하였던 것으로 보아 인민보위부 직원 정도로 생각했음)이 항상 참석하였습니다.
  
  
  문 : 진술인과 송호경 간에 독대 형식으로 협상이 이루어진 사실이 있는가요.
  
  답 : 북한은 체제상 남측 인사와의 독대를 허용하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판독 불능> 하는 것 같았습니다.
  
  
  문 : 예비접촉에서 논의되었는 내용은 어떤 것이었는가요.
  
  답 : 한마디로 말씀드리자면 의중 탐색전이었다고 보면 될 것 같고, 송호경은 저와 김대중 대통령과의 인간관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것이 가장 궁금하였던 것 같고, 송호경은 ‘고위층(대통령)이 회담할 용의가 있느냐‘는 등 회담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이루어졌습니다.
  
  
  문 : 예비접촉 결과는 어떠하였는가요.
  
  답 : 송호경 부위원장이 ‘상층부에 당신들의 의중을 보고를 하겠으며, 2000. 3. 17. 중국 상해에서 다시 만나서 논의를 해보자‘고 하였으며, ‘이 내용에 대하여는 상층부의 의사를 받아야 하니까 접촉사실에 대하여 외부에 발표를 하지 말자‘는 제의를 하여, 예비접촉 사실에 대하여는 비밀에 붙이기로 하였습니다.
  
  
  문 : 예비접촉 결과에 대하여는 대통령께 어떤 방법으로 보고가 되었는가요.
  
  답 : 그때 대통령께서 해외순방을 마치고 돌아오신 직후에 예비접촉 결과에 대하여 보고를 드렸으며, 차후 접촉은 2000. 3. 17. 중국 상해에서 갖기로 하였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문 : (판독불능) 어떻게 이루어졌는가요.
  
  답 : 저는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나간 것이기 때문에 대통령께만 보고를 드리면 되는 것입니다. 국정원 부분에 대하여는 김보현 국장이 실무자로 참여하였기 때문에 그 선에서 보고가 이루어졌으리라 생각됩니다.
  
  
  문 : 다음 회담은 2000. 3. 17. 중국 상해에서 갖기로 하였는데, 준비과정은 어떠하였는가요.
  
  답 : 별도의 준비가 없었습니다.
  
  
  문 : 회담을 위한 출국과정은 어떻게 되었는가요.
  
  답 : 국정원측에서 수속을 모두 마친 상태에서 저는 하용진 수행비서만을 데리고 출국하였으며, 저희가 현지 공항에 도착하면 김보현 국장과 서훈 과장이 마중을 나와 있다가 바로 택시를 타고 숙소로 향하였습니다.
  
  
  문 :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남북당국자간 회담이 개최되었는가요.
  
  답 : 예, 2000. 3. 17.부터 같은 달 18.까지 중국 상하이에서 제1차 회담이 개최되었습니다.
  
  
  문 : 1차 회담에 참가한 정부측과 현대측 관계자는 어떠하였는가요.
  
  답 : 우리 정부측에서는 저와 국정원 김보현과 서훈 과장, 북측에서는 아태 부위원장 송호경, 황철 참사, 권민 참사, 성명 불상자 1명 등이 참석을 하였습니다.
  
  
  문 : 이때 현대측 관계자들도 참석하지 않았는가요.
  
  답 : 김보현 국장이나 송호경 부위원장으로부터 정몽헌 회장을 비롯한 현대측 관계자들도 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제가 직접 만나 본 적은 없습니다.
  
  
  문 : 이날 회담은 어느 장소에서 이루어졌으며, 어떤 형식으로 진행되었는가요.
  
  답 : 호텔 회의장에서 이루어졌으며, 예비접촉에서 참여하였던 인원 모두가 협상 테이블에 참여하였습니다. 협상은 양쪽 대표자인 저와 송호경 간에 대화로 진행되었으며, 나머지 배석자는 옆에 앉아서 참관하는 형식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전문지식이 필요한 경우 김보현 국장에게 메모 형식으로 물어보면 옆에서 답하는 형식으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문 : 제1차 회담에서 어떤 내용에 대하여 논의가 되었는가요.
  
  답 : 제1차 회담이 있기 전인 2000. 3. 9. 독일을 순방 중이시던 김대통령께서 ‘베를린선언‘을 발표한 사실이 있었으며, 제1차 회담 출발 하루전에 대통령께서 저를 불러 하시는 말씀이 ‘회담을 할 때 북한이 이것을 하면 이렇게 이익이 된다. 이것을 안하면 이렇게 손해가 된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줘라, 그래야만 북한 (판독불능) 가게 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회담에 임하여서는 ‘우리가 한반도에서 전쟁을 억제하고, 대결구도를 청산함으로써 상생의 공존구도를 구축할 수 있다. 대통령께서는 일생동안 갖은 핍박을 받으면서도 남북교류협력 정책을 주장해 오셨다‘고 설명을 해주었고, ‘1998. 2. 25. 대통령 취임사에서 밝힌바와 같이, 그러한 차원에서 정상회담을 제의했고, 그러한 정책이 햇볕정책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 햇볕정책은 미·일·중·EU, 심지어 베트남까지 전 세계가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상회담을 개최함으로써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하여 교류협력을 확대하면 남북 모두가 잘 살 수 있다‘는 취지로 설명을 하였고, 그 구체적인 사례로 중국의 개방, 베트남의 개방정책, 특히 남측이 6.25 전쟁이후 폐허 상태에서 외국의 자본을 유치하고, 외국 회사의 제품을 임가공해서 수출함으로써 오늘날 세계 11대 경제강국으로 발돋움 할 수 있었다. 북측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남측보다도 더 유리한 조건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첫째 지하자원이 많다. 둘째 훈련된 노동력이 많다. 북측은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남자는 10년간 병역을 마침으로서 얼마나 훈련이 잘되었느냐, 그래서 남측과 교류협력을 하게 되면 전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서방세계와 교류를 확<판독 불능> IBRD(세계은행), IMF 등 국제경제기구로부터의 지원은 물론 일본, 미국 등에서 남측 기업과 공동으로 북측에 투자를 하게 된다. 임가공만 하더라도 남측의 판매망으로 세계에서 주문을 받아서 북측에서 생산을 하면 원가가 저렴하게 되고, 바로 북측에서 중국에 수출하면 우리 남측은 관세가 20%정도 되지만, 무관세 혹은 2~3% 아니냐, 그 이익도 막대하다. 또한 북측에서 가공한 물품을 남측으로 가져와서 ‘MAID IN KOREA‘라벨을 붙이면, 우리는 국제신용도가 있기 때문에 아주 비싼 값으로 외국에 팔 수 있다. 그리고 지하자원과 같은 것을 개발하여 남쪽으로 가져오면 사용할 수 있지 않겠느냐, 개혁개방을 하면 이익이 된다, 잘 살수 있다는 것을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송호경은 굉장한 흥미를 가지면서도 남한에서 직접 투자를 해 줄 수 없느냐면서 미국과 일본을 못미더워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직접 투자를 할 수 있지만 미국과 일본이 투자를 하게 되면 세계가 모두 다 투자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다‘라고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제1차 회담은 어떤 구체적인 논의보다는 정상회담의 필요성을 인식시키기 위해서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서 설명하는 입장이었고, 북측은 경청을 하면서도 실제 가능할(판독 불능) 진술인이 관여한 사항이 있는가요.
  
  답 : 전혀 없었습니다. 저는 베를린선언 자체가 있었다는 것을 2000. 3. 9. 싱가포르에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신문에 난 것을 팩스로 건네 받았습니다. 그것은 문광부 장관과 거리가 먼 것입니다.
  
  
  문 : 이때 구체적인 대북지원 방법에 대하여는 언급이 없었는가요.
  
  답 : 일반론적인 이야기 외에 구체적인 지원 방법에 대하여는 언급이 없었습니다.
  
  
  문 : 남북정상회담 추진에 대한 논의는 어떻게 되었는가요.
  
  답 : 저희측은 ‘김대중 대통령께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청으로 5~6월중 평양을 방문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대중 대통령의 초청으로 같은 해 9월 서울을 방문하여, 매년 이를 정례화하자는 안‘을 제시하였으나, 북한측은 김대통령의 평양방문과 관련하여 김정일 위원장의 이름을 명기하지 말 것을 주장하였고, 회담개최 일정 등에 대한 이견으로 이날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서 회담이 종료되었습니다.
  
  
  문 : 다음 회담일정은 어떻게 하기로 하였는가요.
  
  답 : 2000. 3. 22.부터 23.까지 중국 북경에서 다시 회담을 갖기로 하고 종료하였습니다.
  
  
  문 : 1차 회담결과에 대하여는 대통령께 어떻게 보고가 되었는가요.
  
  답 : 귀국 직후에 대통령께 보고를 드렸습니다.
  
  
  문 : 구체적인 대북지원 방법 등에 대하여 경제부처 등과 구체적인 논의를 하지는 않았는가요.
  
  답 : 대통령께서도 너무 서둘지 말라는 당부의 말씀이 계셨으며, 다른 정부 부처와 협의를 할 단계까지는 아니었습니다.
  
  
  문 : 정부 관계자나 주변국에는 이러한 접촉사실을 설명한 사실이 있는가요.
  
  답 : 임동원 국정원장이 박태준 총리나 보스워스 미국 대사 등에게 접촉 사실을 설명을 하였던 것으로 알고 있으며, 보스워스 미국 대사가 저에게서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연락이 와서 제가 대통령께 보고를 드리니까, 현장에 있었던 숨소리까지 사실대로 알려 주라는 지시를 받고서 상세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문 : 제2차 회담은 어떻게 되었는가요.
  
  답 : 2000. 3. 23. 중국 북경에서 제2차 회담이 개최되었습니다.
  
  
  문 : 이날 김보현 국장과 함께 출국하였는가요.
  
  답 : 제가 김보현 국장 일행과 함께 출국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문 : (판독불능) 김보현 국장과 같은 날 출국한 것으로 확인되는데, 같은 비행기를 타고 출국한 것인가요.
  
  답 : 아닙니다. 김보현 국장은 오전에 출국하고, 저는 하용진 비서를 데리고 오후 비행기로 출국하였으며, 중국 북경 공항에서 마중 나온 김보현 국장의 안내로 호텔로 향하였던 것입니다.
  
  
  문 : 제2차 회담에 참석한 사람은 어떠하였는가요.
  
  답 : 예비접촉과 1차 회담에 참석하였던 동일한 인원이 참석하였습니다.
  
  
  문 : 이날 현대측 관계자가 회담에 참여하였는가요.
  
  답 : 이때도 역시 김보현 국장과 송호경 부위원장을 통하여 정몽헌 회장 일행이 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나, 제가 직접 만나 본 적은 없습니다.
  
  
  문 : 일부러 현대측 관계자를 접촉하지 않았는가요.
  
  답 : 일부러 만나지 않았다는 기억은 없습니다.
  
  
  문 : 남북당국간 접촉이 끝난 이후에 현대 정몽헌 회장과 북측 아태 송호경 부위원장간에 접촉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요.
  
  답 : 접촉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호텔에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만날 수 있는 개연성은 충분하였다고 봅니다.
  
  
  문 : 제2차 회담에서 논의되었던 내용은 어떤 것이었는가요.
  
  답 : (판독불능) 조속히 정상회담을 성사시키자면서 합의문 초안에 대하여 언급하였는데, ‘송과 박은 상부의 뜻을 받들어 다음과 같이 합의한다. 북은 남의 희망을 고려, 올해 편리한 시기에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방문을 하도록 공식 초청한다. 평양 방문 날자는 서로 합의하여 결정한다. 실무적인 문제 등은 차후 협의한다‘라고 하여, 우리측은 ‘첫째 회담은 6월 12일부터 14일 사이에 한다. 두 번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초청한다는 것을 명확히 표현해야 한다‘라고 하자, 북측은 ‘첫째 일정은 6월 중순으로 일단 합의한 뒤, 준비회담에서 최종확정하자고 수정제안을 하였습니다. 둘째 정상회담 상대는 당연히 김정일 위원장이 될 것이지만, 그 이름은 표기할 수 없고, 상부의 뜻이라는 표현이 이를 의미한다. 셋째 북측은 외교 관례상 합의문서에 김정일 위원장을 명기한 사실이 없다‘면서 불가입장을 통보하였습니다. 그런 식으로 몇 차례의 논쟁 끝에 자신들이 작성해온 ‘공동 보도문‘을 제시하면서 상호 서명하자고 제의하여, 저는 합의할 수 없다라고 하여 결국 회담이 결렬되고 말았습니다.
  
  
  이때 검사는 진술인이 제시하는 ‘공동 보도문‘을 확인하고, 이를 사본하여 본건 조서말미에 첨부하다.
  
  
  문 : 그 외에 경제지원과 관련하여 구체적인 지원요청이 있었는가요.
  
  답 : (판독불능)
  
  
  문 : 이날 회담에서 북측으로부터 현금지원 요청을 받은 사실이 있는가요.
  
  답 : 이날 회담에서는 현금지원 요청에 대한 논의는 전혀 없었습니다.
  
  
  문 : 제2차 회담이 종료된 이후 정몽헌 회장과 송호경 아태 부위원장간에 접촉이 있었으며, 정몽헌 회장은 송호경 부위원장에게 ‘어떤 협의가 있었습니까‘라고 물으니까 송호경 부위원장이 ‘그냥 뭐 남쪽에서 비료든, 쌀이든 인도적인 지원을 해주겠다고 하였고, 잘되면 SOC사업을 지원해 줄 수 있다‘고 하였다면서, 남측이 ‘향후 잘되면 10억불이든 20억불이든 몇 년에 걸쳐서라도 지원해 줄 수 있다‘라고 하더란 말을 들었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돈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사실이 없으며, 인도적 차원에서 비료니 식량 같은 것은 계속 지원할 수 있다는 말을 해주었을 뿐입니다.
  
  
  문 : 그래서 정몽헌 회장이 ‘당신들은 뭐라고 했느냐‘라고 하니까 송호경 부위원장이 ‘캐쉬(현금)를 요구를 했다‘라고 하여, ‘얼마나 요구했느냐‘라고 하니까 ‘캐쉬로 5억불을 요구했다‘라고 하여, 정몽헌 회장이 ‘말도 안되는 소리다. 정부가 어떻게 돈을 줄 수 있겠느냐. 그것은 불가능 할거다‘라는 말을 해준 사실이 있었다라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판독불능)
  
  
  문 : (판독불능) 진술인과 함께 회담에 참여하였던 당시 김보현 국장의 진술에 의하면 ‘회담을 하던 중에 돌연히 북한측 송호경 아태 부위원장이 정상회담을 하게 되니까 남측당국에게 경제협력자금으로 현금 5억불을 요구하였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그런 이야기가 없었습니다.
  
  
  문 : 그 당시 회담장에는 남측에서 진술인과 김보현 국장이 참석하였고, 그 직후 송호경을 만났던 정몽헌 회장 모두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알고 있는데 정작 회담의 주체였던 진술인은 그런 이야기를 듣지 못하였다는 말인가요.
  
  답 : 저는 듣지 못하였습니다.
  
  
  문 : 그러면서 송호경이 정몽헌 회장에게 ‘그 동안의 논의되어 오던 사업권을 줄 테니 그 대가로 10억불을 내놔라‘라고 하였고, 저는 “무슨 소리냐 그 동안 논의되어 오고 있는 사업권의 가치를 따져 보더라도 2억불 정도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렇게 줄 수 없다“라고 하였다는데, 그런 내용을 알고 있는가요.
  
  답 : 전혀 모릅니다.
  
  
  문 : 2차 회담에서 다음 회담일정을 정하였는가요.
  
  답 : 합의문 작성에 대하여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다음 회담일정에 <판독 불능>
  
  
  문 : 진술인은 2000. 3. 25.경부터 같은 달 26.경까지 사이에 일본으로 출국한 사실이 있는데 무슨 용무로 출국을 하게 된 것인가요.
  
  답 : 그 당시 한·일 정기 항공편이 부족하여 하루에 1,000여명이 왕래를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일본 니까이 운수상과 제가 형제처럼 지내고 있었기 때문에 그 분을 만나서 협상을 하려고 하였고, 나까소네 문부상 등을 만나서 여러 가지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출국했던 것이고, 그때 기자들도 많이 참석하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 : 제2차 회담에서 다음 회담에 대하여 약속하지 못한 채 사실상 결렬된 상태에서 귀국하였는데 다음 회담을 어떻게 성사되게 되었는가요.
  
  답 : 그건 제가 잘 기억하지 못하겠는데, 국정원에서 연락을 받은 것 같습니다.
  
  
  문 : 2000. 3. 23. 제2차 회담이 결렬된 이후, 2000. 3. 29. 정몽헌 회장이 중국 베이징에서 송호경 아태 부위원장을 접촉한 사실을 알고 있는가요.
  
  답 : 정몽헌 회장으로부터 송호경을 만난다는 연락을 받았던 것 같고, 그래서 저는 만나 보라고 하였던 것 같습니다.
  
  
  문 : (판독불능) 과 접촉을 마치고 난 이후, ‘그럼 이제 더 이상 회담을 하지 않을거냐‘라고 하자, 송호경 부위원장이 ‘더 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라는 여운을 남겨서 ‘그럼 내가 돌아가서 정부측의 입장을 확인해 보고 다시 연락을 주겠다‘라고 한 후, 귀국하여 진술인에게 ‘결렬되었다고 하는데, 그쪽에 대고 다시 한번 해볼 용의가 있다고 하느냐고 하니까, 더 할 용의가 있다고 하는데, 장관님 생각은 어떠십니까‘라고 하자, 진술인이 ‘나중에 가부를 제가 연락을 드리겠습니다‘라고 하였다는데 어떤가요.
  
  답 : 제가 다녀오라고 한 기억이 있으니까, 정몽헌 회장이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면 맞을 것입니다.
  
  
  문 : 그리고 몇일 후에 진술인에게 다시 전화를 하니까 ‘한 번 만나 보기로 했으니까, 그쪽에 연락을 해서 일정을 잡으십시요‘라는 말을 하였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그랬을 것입니다.
  
  
  문 : 2차 회담 종료 후에 김대중 대통령께 결렬 사실에 대하여 보고를 드렸는가요.
  
  답 : 그렇습니다.
  
  
  문 : 결렬된 이후 재개를 위해서도 대통령께 보고를 드렸는가요.
  
  답 : 예, 당연히 보고를 드리고 (판독불능) 인을 받은 다음에 정몽헌 회장에게 다시 재개 여부를 확인해 보라고 하였을 것입니다.
  
  
  문 : 회담과정에서 임동원 원장을 만나서 회담내용에 대하여 협의하거나 한 사실이 있는가요.
  
  답 : 청와대 보고시에 만나는 경우는 있었지만, 회담건을 상의하기 위해서 직접 임동원 원장을 따로이 만나거나 한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문 : 김보현 국장의 진술에 의하면 2차 회담은 북측의 5억불 요구로 결렬된 것이라고 하는 바, 3차 회담을 앞두고서 이에 대하여 대책을 강구하지는 않았는가요.
  
  답 : 그런 사실이 없습니다.
  
  
  문 : 이에 대하여 진술인이 임동원 국정원장, 김보현 국장을 만나서 협의한 사실이 있는가요.
  
  답 : 없습니다.
  
  
  문 : 김보현의 진술에 의하면 2000. 4. 5~6경 시내 호텔에서 임동원 원장과 함께 진술인을 만나 이 부분에 대하여 협의를 도출한 결과 기본적인 지원이외에 북측의 5억불 요구는 과다한 요구라고 판단하였으나, 남측당국이 지원할 수 있는 범위는 ‘첫 정상회담기념으로 (판독불능) 불을 정상회담 전에 줄 수 있다‘는 입장을 정리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그런 일이 없습니다
  
  
  문 : 제3차 회담이 성사되었는가요.
  
  답 : 예, 2000. 4. 8. 중국 북경에서 제3차 회담이 개최되었습니다.
  
  
  문 : 이때 참석자는 어떠하였는가요.
  
  답 : 역시 그 이전에 참석하였던 우리측은 저를 포함한 김보현, 서훈이 참석하였고, 북측에서는 송호경 부위원장, 황철, 권민, 성명 불상자 1명이 참석하였습니다.
  
  
  문 : 이날 회담에서 논의되었던 내용은 어떤 것인가요.
  
  답 : 이날 북한측이 좋은 종이라고 하면서 북한측이 준비한 용지에 ‘공동보도문‘이라면서 작성하여 가져왔는데, 내용 자체가 우리가 3월 2차 회담에서 제시한 내용에서 일부 진전은 있었으나, 우리가 요구하는 내용이 포함되지 않아서 재조정을 시작하였습니다. 약 2시간 가량의 재조정 과정에서 저희는 평양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문구를 넣으려고 하였고, 9월중에 서울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을 명시하자고 하였으나, 결국「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청에 따라 김대중 대통령(판독불능) 평양방문에서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이에 역사적인 상봉이 있게 되며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된다.
  쌍방은 가까운 4월중에 정차문제 협의를 위한 준비접촉을 갖기로 하였다」는 내용의 ‘공동보도문‘에 서명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문 : 이날 회담에서 북측으로부터 현금지원 요청이 없었는가요.
  
  답 : 그런 것은 없었습니다.
  
  
  문 : 3차 회담에서 ‘공동보도문‘에 합의하기까지 2시간 정도밖에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는 말인가요.
  
  답 : 그렇습니다.
  
  
  문 : 중간에 회담이 결렬되고 하는 상황은 없었는가요.
  
  답 : 없었습니다.
  
  
  문 : 정몽헌 회장의 진술에 의하면 송호경 자신이 기다리고 있는 객실로 찾아와서 ‘남측의 입장이 지난번과 바뀐 것이 없어서 더 이상 회담을 진행할 수 없어 끝내고 왔다‘면서 사실상 회담이 결렬되었음을 이야기하면서 현대와 다시 대북사업권에 대한 대가 10억불 이야기를 꺼내 놓으면서 현대에게 7억불을 요구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4억불까지 합의가 되었으며, 4억불 지급시기에 대하여 북측이 회담 전까지 요구하여, 저는 “회담 전까지 4억불을 주는 것(판독불능) 상회담추진을 그만두겠다‘면서 지급시기에 대하여 회담 전까지로 못을 박으려고 하여, ‘그럼 회담 전에 이 자금을 주면 우리 정부측과 계속 협의를 하겠느냐‘라고 하자 ‘그렇게 약속을 한다면 계속하겠다‘라고 하였으며, 돈을 회담 전까지 주는 대신에 금액을 3억 5천만불로 제의하여 그 부분까지 합의가 이루어져 그날 결렬되었던 남북당국자간 회담이 재개되었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현대와 북측간의 대화 내용에 대하여는 저희가 알 수 없으나, 그날 회담이 여러 차례 결렬되었다가 재개되고 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문 : 진술인은 공동보도문이 2시간 여만에 작성되었다고 하지 않았는가요.
  
  답 : 회담은 장시간에 걸쳐 이루어졌지만, 공동보도문이 2시간 여만에 작성되었던 것을 잘못 기억한 것 같습니다.
  
  
  문 : 그 후, 송호경이 남북당국자간 회담을 재개하고 한참 시간이 흘러서 정몽헌을 찾아와서 ‘남측이 한 장(1억불)을 주기로 했다‘면서 ‘남측이 안줄 경우 너희가 대신 지불하라‘는 말을 하였고, 정몽헌 회장이 이를 거절하자 송호경 부위원장이 ‘그럼 당신들이 보증을 서라‘고 하면서 ‘현대측이 정부 몫에 대하여 보증을 하여 (판독불능) 에 현대가 보증을 서기로 하였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예, 전혀 모르는 내용입니다.
  
  
  문 : 이날 회담에 참석하였던 김보현 국장의 진술에 의하더라도 ‘합의문 작성을 하기 전에 북측에서 5억불을 요구하다가 우리측의 1억불이 맥시멈이라는 주장을 듣고서 다시 2~3억불이라도 주었으면 좋겠다고 줄다리기를 하다가 약 1시간 반 정도가 경과될 무렵 우리측의 1억불 지원을 수용하게 되었던 것이다‘라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문 : 이 부분에 대하여도 김보현 국장의 진술과 정몽헌 회장의 진술이 일치함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사실이 아니라고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답 : 그런 내용을 제가 모르기 때문입니다
  
  
  문 : 2000. 4. 8. 남북정상회담에 합의한 이후 어떻게 되었는가요.
  
  답 : 2000. 4. 10. 통일부장관이 제가 배석을 한 상태에서 남북정상회담개최에 대한 발표를 하게 되었으며, 이 발표는 오전 10시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이루어졌습니다.
  
  
  문 : 김보현 국정원장은 남북정상회담의 대가로 1억불을 북측에 지원키로 협의하여 (판독불능) 에 대한 정부의 대책이 있었는가요.
  
  답 : 저는 북측에 대한 지원에 대하여는 논의한 바가 없습니다.
  
  
  문 : 2000. 4. 10. 남북정상회담 개최 발표 이후, 정부의 정상회담을 위한 준비는 어떻게 되었는가요.
  
  답 : 그 당시 정상회담 준비를 위해서 통일부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기구가 설치가 되었으며, 실무대표는 통일부 차관으로 정상회담을 위한 준비를 추진하였던 것으로 알고 있으며, 실질적인 업무 처리는 국정원이 하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 : 진술인은 정상회담 준비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하였는가요.
  
  답 : 예, 제가 준비하고, 그런 것은 없습니다.
  
  
  문 : 정상회담 준비과정에서 북측과의 공식 창구는 어떻게 되었는가요.
  
  답 : 제가 알고 있기로는 국정원이 아닌가 생각되는데, 남북직통 전화가 국정원과 통일부에 같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 : 현대가 3차 회담에서 북측과 4억불을 지급키로 하였다는 내용에 대하여 알고 있는가요.
  
  답 : 2000. 5월 초경으로 기억되는데 소위 7대 경협사업의 대가로 현대가 북측에 5억불을 지급키로 했다는 내용을 임동원 원장으로부터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문 : 현대는 4. 8. 북측과의 접촉에서 이미 4억불을 회담 전에 지급키로 합의한 후, 북측으로부터 확실한 사업권을 확보할 필요성 때문에 뒤늦게 사업계획에 대하여 북측을 상대로 잠정합의를 이끌어내게 된 것이며, 7대 경협사업의 대가로 5억불을 지급키로 하였던 것은 아니라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저는 임동원 원장으로부터 현대가 7대 경협사업권에 대한 대가로 5억불을 주기로 하였다는 내용을 전해 들었을 뿐입니다.
  
  
  문 : 이러한 내용은 언제, 어떤 경위로 전해 듣게 되는가요.
  
  답 :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문 : 임동원 원장은 “2000. 5. 초순경에 ‘현대가 북측과 북한내 대규모 사회간접자본 건설 및 기간산업 투자를 위한 7대 경협사업에 잠정합의하였는 바, 30년간 사업독점권을 확보하여 국내외 기업들과 컨소시엄을 형성·진출하며, 토지사용은 무상제공 받는 등의 혜택을 보장받고, 그 대가로 5억불을 지불키로 합의했다‘는 내용의 정보보고를 김보현 국장으로부터 받았으며, 이러한 정보보고를 받은 이후 박지원 장관, 이기호 수석을 청와대 구내에서 만나서 정보보고 내용을 그대로 알려주고서 경협사업의 대가로 5억불을 북측에 제공키로 하였다는 문제 부분에 대하여 정부가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지에 대한 (판독불능)다.“라고 진술하고 있는데 어떤가요.
  
  답 : 예, 그런 사실은 있습니다.
  
  
  문 : 그 부분에 대하여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 기억하는가요.
  
  답 : 저는 과거에 사업을 했었던 사람으로서 엄청난 사업권을 획득했고, 사회주의국가나 후진국에 사업진출을 하는 과정에서 의례히 비밀리에 대가 거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단 그런 조건으로라도 사업권을 획득하였다는 사실에 저는 놀랐습니다. 그러니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점에 대하여 논의가 있었는지에 대하여는 기억이 없습니다.
  
  
  문 : 논의결과에 대하여 대통령께 보고 드린 사실이 있는가요.
  
  답 : 예, 저와 임동원 원장, 이기호 수석이 현대의 7대 경협사업권에 대하여 논의를 마친 후, 바로 대통령을 찾아뵙고 그 사실에 대하여 보고를 드렸습니다.
  
  
  문 : 보고를 받은 대통령의 반응은 어떠하였는가요.
  
  답 : 현대의 7대 경협사업권에 대하여 임동원 원장이 대통령께 보고를 드리자, ‘현대만 전부 대북사업을 독점하면, 다른 기업들이 북한에 진출 할 수 있겠느냐‘면서 역정을 내셨습니다. 그러자 임원장이 ‘현대가 독점권을 땄더라도 투자가 방대하기 때문에 국내외 (판독 불능) 참가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리고서 별다른 이야기 없이 보고가 끝났던 것 같습니다.
  
  
  문 : 임동원 국정원장의 진술에 의하면 진술인과 이기호 수석이 현대의 북측에 5억불 대가 지급에 대한 보고를 드리면서 5억불 송금에 대한 실정법상의 문제점과 그에 반해서 현대측이 취할 수 있는 이익 등에 대한 논의 결과를 보고를 드리자, 보고를 받으신 대통령께서는 실정법에 다소 어긋나더라도 현대의 사업을 장기적으로 볼 때 인정해 줄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면서 사실상 묵인하는 쪽으로 말씀을 하셨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사업의 대가로 5억불을 지급키로 했다는 내용의 잠정합의서가 작성되었다는 보고를 받으셨지만, 5억불 지급에 대하여 승인하시는 그런 말씀은 없으셨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문 : 임동원 원장의 진술은 북한으로 투자자금 등의 송금을 위해서는 통일부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사항인데, 현대가 북측으로부터 사업권을 취득하는 대가로서 5억불이라는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정상적이지 못하여 결과적으로 통일부장관의 승인을 받을 수 없는 사항이었고, 결국 이러한 자금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지급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실정법을 위반하지 않고서는 지급할 수 없는 것이고, 결국 정부가 이를 묵인해주지 않고서는 불가능 하게 되는 것이라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그 문제에 대하여는 제 업무소관도 아니지만, 제가 직접 관여한 바가 없습니다.
  
  
  문 : 2000. 5월 초경 현대의 7대 경협사업권에 대한 잠정합의서 이후, 정부가 현대를 지원하는 것에 대하여 협의한 사실이 있는가요.
  
  답 : 정부가 당시 NSC(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대북 경협관계를 논의하였고, 경제장관회의나 민주당, 현대 채권단회의 등에서도 현대의 왕자의 난 이후 유동성 위기가 있으니 제2의 대우사태가 나면 또 하나의 IMF가 올 수 있으니 현대는 살려야 한다는 이야기는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와 임동원 원장, 이기호 수석이 만나서 현대지원에 대하여 논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문 : 남북정상회담이 합의된 이후 정몽헌 회장을 만난 사실이 있는가요.
  
  답 : 있습니다.
  
  
  문 : 언제, 어디서 만난 것인가요.
  
  답 : 2000. 5월경 서울프라자호텔에서 한 두차례 정도 정몽헌 회장을 만난 사실이 있습니다.
  
  
  문 : (판독불능)
  
  답 : 정몽헌 회장이 ‘장관님 현대가 매우 어렵습니다. 도와 주십시요‘라고 하여 만났던 것입니다.
  
  
  문 : 정몽헌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이던 진술인에게 지원요청을 할 만한 이유라고 있었는가요.
  
  답 : 정몽헌 회장으로서는 제가 문광부 장관이니까 금강산관광사업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던 것 같고, 남북정상회담 합의에 처음부터 기여를 해온 상태에서 서로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정몽헌 회장이 현대의 유동성위기가 도래하자, 저를 찾아와서 ‘현대가 어렵습니다. 도와주십시요‘라는 말씀을 하셨고, 그래서 “저나 국정원장이나 3차장은 다 돕고 싶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경제분야는 잘 모릅니다. 그러니 경제쪽에 가서 말씀을 하십시요“라는 말을 해주고 헤어졌습니다.
  
  
  문 : 2000. 5월 중순경 진술인이 정몽헌 회장에게 만나자고 연락을 한 사실이 있는가요.
  
  답 : 제가 먼저 만나자고 하였는지, 아니면 정몽헌 회장이 찾아와서 만나게 되었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만났던 것은 사실입니다.
  
  
  문 : 정몽헌 회장의 진술에 의하면 2000. 5월 중순경 진술인이 자신을 보자고 하여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객실에서 만나게 되었으(판독불능) 1억불을 보내야 하는데, 여의치 못하니 현대에서 대신 보내주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하였고, 그 당시 현대도 자금 마련에 고심하고 있던 터라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자 진술인이 ‘정부도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있는데 문제가 있어서 그럽니다‘라면서 요청하여, 정몽헌 회장이 ‘나름대로 노력을 해보겠습니다. 그런데 저희도 자금이 여의치 못하니 자금지원을 부탁드립니다‘라고 하자, 진술인이 ‘알았습니다‘라고 하였다는데 어떤가요.
  
  답 : 그런 적은 없습니다.
  
  
  문 : 결론적으로 현대는 정부가 부담하여야 할 정부의 몫 1억불을 부담하게 된 것인데, 정부의 몫 1억불을 현대가 부담하도록 요청한 정부측 인사가 누구인지에 대하여 알고 있는가요.
  
  답 : 전혀 알지 못합니다.
  
  
  문 : 정부측의 요구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 스스로가 정부가 부담하여야 할 1억불을 부담하려고 하였겠는가요.
  
  답 : 그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문 : 정몽헌 회장이 진술인에게 자금지원 요청을 할 때, 그 자금이 대북송금을 위한 자금에 대한 지원요청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가요.
  
  답 : 그분은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고, 현대가 어려우니 도와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문 : 정몽헌의 진술을 보더라도 진술인에게 자금지원요청을 한 이유가 대북송금 4억불의 자금조달에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고, 정부가 부담하여야 할 1억불까지 떠안게 되어 자금부족이 더욱 어렵게 된 상황에게 자금지원 요청을 하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당연히 당시 정몽헌 회장의 자금지원 요청은 대북송금을 위한 자금에 대하여 지원요청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 어떤가요.
  
  답 : 전혀 모르는 내용입니다
  
  
  문 : 진술인이 직접 당시 이기호 경제수석에게 현대에 대한 지원의 필요성을 이야기한 사실이 있는가요.
  
  답 : 직접 이야기한 적이 없고, 저와 임동원 원장, 이기호 수석 등 3명을 4~5차례 정도 만나서 현대의 유동성위기에 대하여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문 : 2000. 5월 말경 또는 6월 초경 현대증권 이익치 회장을 만난 적이 있는가요.
  
  답 : 만난 적이 없습니다.
  
  
  문 : 2000. 6월 초경쯤 서울프라자호텔 로비에서 이익치 회장을 만난 사실이 없는가요.
  
  답 : 없습니다.
  
  
  문 : 이익치의 진술에 의하면 2000. 6. 1. 정몽헌 회장이 출장을 위해 해외출장을 떠나기 전에 자신을 불러서 자신에게 ‘내가 5월 중순경 박장관에게 자금지원을 부탁해 놓은 것이 있는데, 사장들이 어렵다고 하면 박장관에게 연락을 드려서 내(정회장 자신)가 지난번 부탁드린 것에 도움을 부탁드린다‘는 요청을 하라는 지시를 받았으며, 정몽헌 회장의 자금동원 지시를 받은 사장으로부터 회사의 자금사정이 어렵다는 보고를 받고 난 후, 진술인에게 전화를 하여 ‘정회장님께서 해외출장을 가셨는데, 회장님께서 직접 뵙고 말씀을 전해 드리라는 말씀이 있어서 연락을 드렸습니다‘라고 하니까, 진술인이 그날 저녁 서울프라자호텔에서 식사약속이 있으니까 그곳 로비에서 만나기로 하였으며, 그 시간은 오후 6~7시 사이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이익치 회장으로부터 현대가 어려우니 도와 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문 : 그날 서울프라자호텔에서 진술인을 ‘정몽헌 회장께서 해외출국하셨는데, 정회장님께서 이전에 장관님께 부탁해 놓은 것이 있으니, 자금조달이 어려울 경우 장관님을 직접 찾아 뵙고 도움 요청을 하라는 말씀이 있으셨는데, 대북 송금자금 조달에 어려움에 있어 (판독불능) 의미인지 알고 있는 듯 ‘알았습니다. 내가 다시 연락을 드리죠‘라고 하고, 바로 헤어졌던 것이라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그런 적이 없습니다.
  
  
  문 : 이 부분에 대하여는 정몽헌 회장도 2000. 6. 1. 해외출장에 앞서 앞서 각사 사장들을 불러서 북한에 송금하여야 할 자금의 분담을 지시하였고, 그 자리에서 일부 사장이 자금사정의 어려움을 호소하자, 남북정상회담 협상에 처음부터 참여하여 대북송금 내용에 대하여 익히 알고 있는 이익치 회장을 불러 ‘각 사장들에게 대북송금 지시를 해 두었는데, 사장들이 자금동원에 어려움이 있다고 하면, 박장관에게 이야기하여 협조를 얻어 송금에 차질이 없도록 하라‘는 지시를 하고서 출국을 하였다라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자기들이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지만 저는 이익치 회장으로부터 어떤 부탁도 받은 적이 없으며, 정몽헌 회장으로부터만 현대가 어려우니 도와 달라는 요청을 받았던 것입니다.
  
  
  문 : 이익치 회장은 진술인을 만나서 자금지원 요청을 한 다음날, 오전에 진술인이 자신에게 직접 연락을 하여 ‘경제수석과 이야기가 되었으니, 경제수석에게 가면 도와 줄 것이다‘는 말을 진술인으로부터 들었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판독불능) 현대가 어려우니 도와달라는 부탁을 하였을 때도 저나 임동원 원장이나 3차장이 다 도와주려고 하는데, 우리는 경제쪽은 모르니까 경제쪽에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라고 하자, 정몽헌 회장이 ‘도와달라‘고 하여, “나도 돕겠습니다“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경제수석을 직접 언급한 적은 없습니다.
  
  
  문 : 이익치 회장은 진술인이 경제수석을 찾아가면 도와줄 것이다는 말을 하여, 당시 김윤규 현대건설 사장이 이기호 수석과 평소 업무적인 유대관계가 있어서 김윤규를 이기호 수석에게 보내서 지원요청을 하도록 하였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평소 정몽헌 회장도 이기호 수석과 친분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제 소개가 아니라도 정몽헌 회장이 직접 이기호 수석을 찾아가서 지원요청을 할 정도는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 : 진술인이 이기호 수석에게 현대지원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이 몇차례 정도 되는가요.
  
  답 :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하겠는데, 정상회담 전까지 청와대 옆에 있는 국정원 별관에서 저와 임동원 국정원장, 이기호 수석이 4~5차례 만났던 것 같습니다.
  
  
  문 : 이기호 수석은 2000. 5월 초순경 청와대 옆에 있는 국정원 별관에 (판독불능) 현대가 북한과 대북사업의 사업권 대가로 5억불을 잠정합의하였는데, 여기에는 정부부담 1억불이 포함되어 있다‘고 말을 하였으며 그때 진술인이 “정부 몫 1억불을 현대가 맡아서 처리해 줄 것 같고, 또 현대가 정상회담 성사에 큰 역할을 했으니 경제수석이 현대를 많이 지원해 주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하였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경제문제나 대북문제를 위해서 경제수석이 현대를 도와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 적은 있지만, 구체적으로 정부 몫이 얼마고 하는 부분에 대하여 이야기를 한 적은 없습니다.
  
  
  문 : 그리고 같은 해 5월 중순경 진술인과 임동원 국정원장, 이기호 수석 등 3자가 국정원 별관에서 2차례 정도 더 모임이 있었으며, 이 자리에서 진술인과 임동원 원장이 ‘현대에 대한 특별지원 방안을 강구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으며, 특히 진술인으로부터 강력한 요청이 있었는데, 이기호 수석은 ‘현대에 대한 특별지원 방법은 현재와 같이 투명해진 사회에서는 대단히 곤란한 일이다. 과거와는 다르다. 아마 과거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과거와 같은 정경유착은 있을 수 없다. 할 수 있다면 남북경제협력기금에서 현대의 대북사업추진을 위하여 현대에게 장기 저리로 기(판독불능) 가 임동원 원장이 모두 반대를 하면서 언쟁이 있었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저는 남북경제협력기금이 어떻게 있는지 그 자체를 모릅니다. 그래서 이기호 수석이 그런 말을 했는지 기억이 없습니다. 그 분이 그런 말을 했다면 제가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문 : 그리고 다시 2000. 5월 말경 진술인과 임동원 국정원장, 이기호 수석이 청와대 옆 국정원 별관에서 만났으며, 이 자리에서 임동원 국정원장과 박지원 특사가 “현대가 유동성문제로 대단히 어려운 위기에 처해 있는데, 현대가 어렵게 되면 대북사업 추진도 어려워지고, 이렇게 되면 곧 다가올 남북정상회담에도 악 영향을 줄 우려가 있으니 조속히 지원해 주어야 하지 않느냐“는 강력한 요청을 하여, 자신은 일반적인 원칙과 방법에 의한 현대에 대한 지원을 통해서 단기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당시 대우 문제로 매우 어려웠던 경제상황의 악화를 방지하고, 아울러 이것이 남북관계 개선에 기여할 것으로 보아 ‘경제원칙에 입각한 일반적인 지원방법은 타당하다‘는 이야기를 했었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정확한 날짜까지는 기억하지 못하겠으나, 임원장, 이기호 수석이 있는 자리에서 (판독불능) 제일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했던 것은 사실이고, 임원장도 저와 같은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문 : 박지원 장관과 임동원 국정원장의 이러한 강력한 요청에 의하여 2000. 6. 3. 조찬간담회에서 이기호 수석은 이근영 당시 산업은행 총재에게 ‘현대가 어려움을 겪고 있고, 특히 현대건설의 단기 유동성에 문제가 많다. 현대에 대한 대출이 반드시 되어야 하며 그러지 않아서 현대가 부도가 나면 앞으로 추진할 대북사업 추진에도 영향을 주고, 그렇게 되면 정상회담에도 영향이 갈 수가 있기 때문에 산업은행이 반드시 대출을 해 주어야 되겠다‘면서 사실상 현대에 대한 대출지시를 하였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구체적으로 어떤 은행을 통해서 지원하자는 이야기는 없었고, 현대지원의 필요성에 대한 정책적인 협의를 하였던 것입니다.
  
  
  문 : 그 당시 진술인은 대통령 특사자격을 가지고 이러한 협의에 참여하였던 것인가요.
  
  답 : 4. 8. 남북정상회담 합의문 작성이 된 이후 대통령 특사자격은 끝났지만 예비접촉부터 제가 직접 관여해 왔기 때문에 남북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날 때까지 저와 임동원 원장, 이기호 수석이 함께 상의하는 차원에서 협의가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문 : 진술인은 현대의 (판독불능)
  
  답 : 전혀 몰랐습니다.
  
  
  문 : 2000. 5월 초경 현대가 7대 경협사업권의 대가로 5억불을 북한에 지급키로 한 것에 대하여는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알고 있는가요.
  
  답 : 전혀 몰랐습니다.
  
  
  문 : 당시 남북정상회담에 계속하여 참석하였던 김보현 국장의 진술과 정몽헌 회장의 진술에 의하더라도 정부가 1억불을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하여 북측에 제공키로 하였던 것은 분명해 보이는 바, 그렇다면 특사 자격으로 협상에 참여하였던 진술인은 최소한 송금 부분에 대하여 알고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답 : 전혀 몰랐습니다.
  
  
  문 : 1억불의 대가지급에 대하여 합의가 이루어진 상황이었다면, 싫던 좋던 정부부처 한 곳에서 이 부분에 대한 책임을 졌어야 할 것으로 보여지는데, 남북정상회담 타결 이후에 책임 부서가 없어졌다는 말인가요.
  
  답 : 저는 그러한 사실은 모르는 내용입니다.
  
  
  문 : 이기호 수석의 진술에 의하더라도 현대의 5억불 송금에 대하여는 진술인과 계속하여 협의가 되고 있었고, 그 중에 정부의 몫 1억불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은 분명해 보이는 바, 그렇다면 진술인도 송금결과에 대하여 (판독불능) 는데 어떤가요.
  
  답 : 전혀 몰랐습니다.
  
  
  문 : 그 당시 이 부분에 대하여 대통령께도 보고가 되었던 것은 아닌가요.
  
  답 : 저는 전혀 모르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보고 드린 바도 없습니다.
  
  
  문 : 정몽헌 회장으로부터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고 난 후, 현대에 대한 자금지원이 이루어진 사실은 알았는가요.
  
  답 : 전혀 몰랐습니다.
  
  
  문 : 2000. 6. 7. 현대상선이 이건 대북송금을 목적으로 산업은행으로부터 4,000억원을 긴급대출 받게 되는 과정에 대하여 알고 있는가요.
  
  답 : 전혀 몰랐습니다.
  
  
  문 : 이건 대출은 결국 현대측이 진술인에게 자금지원요청을 하였고, 진술인은 이기호 경제수석에게 현대에 대한 자금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하였고, 이기호 수석은 산업은행 총재에게 현대에 대한 사실상 대출지원을 요청하면서 아주 짧은 기간에 여신심사도 사실상 생략한 상태에서 무담보로 4,0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거액이 대출이 되었는데, 그런 내용에 대하여 전혀 모른다는 말인가요.
  
  답 : (판독불능) 지 못하여 그냥 잊어버리고 넘어갔던 것입니다.
  그랬다가 2002년 국정감사에서 엄호성 의원이 처음 거론하면서 그때 산업은행을 통해서 4,000억원이 지원이 되었는가 보다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문 : 현대상선이 4,000억원을 대출받아 이중 2억불 당시 2,235억원을 북한에 송금한 사실을 알고 있는가요.
  
  답 : 전혀 모르는 사실입니다.
  
  
  문 : 이건 2억불의 송금에 있어서 국정원이 자신들 명의로 북한측 구좌로 송금한 사실을 알고 있는가요.
  
  답 : 2003. 1월 말경에 국정원측을 통하여 그런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그 이전에는 전혀 몰랐던 내용입니다.
  
  
  문 : 남북정상회담이 2000. 6. 12.부터 14.까지 합의된 일정에서 하루 연기된 사실이 있었지요.
  
  답 : 예, 있었습니다.
  
  
  문 : 그 당시 연기된 이유가 무엇으로 확인이 되었는가요.
  
  답 : 언론에 대통령의 이동경로가 모두 공개가 되었기 때문에 북측에서 일정을 부득이 하루 연기하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 : 다음날 대통령의 이동경로가 이미 공개된 경로와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는데 정상회담이 연기사유로는 부족하였던 것 같은데 어떤가요.
  
  답 : 그 사람들의 경호 기준은 우리들과 다르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을 뿐이고, 그 부분에 대하여도 들어서 알고 있을 뿐입니다.
  
  
  문 : 2000. 6. 9. 2억불이 5개로 나뉘어 북한측 구좌로 송금되었으나, 4,500만불 1건이 잘못 처리된 사실이 있었는데, 송금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던 관계로 갑자기 정상회담이 연기되었던 것은 아닌가요.
  
  답 : 그 당시 저는 송금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문 : 남북정상회담이 종료된 이후, 현대에 대한 계속지원을 요청한 사실이 있는가요.
  
  답 : 후속 모임 이후에는 제가 사실상 그런 부분에 대하여는 참석하지 않은 것 같은데요.
  
  
  문 : 2000. 6. 26. 산업은행에서 현대건설에 1,500억원을 지원한 사실을 알고 있는가요.
  
  답 : 전혀 모릅니다.
  
  
  문 : 2000. 6. 20.경 국정원 별관에서 진술인과 임동원 국정원장, 김보현 국장, 이기호 수석이 참석한 정상회담 후속모임에서 진술인이 이기호 수석에게 현대건설에 (판독불능) 에 차질이 있을 것이므로 강력한 대출지원“을 요청하였으며, 이근영 총재에게 다시 현대건설에 대한 자금지원을 요청하여 1,500억원의 자금지원이 이루어지게 되었던 것이라고 이기호 수석이 진술하고 있는데 어떤가요.
  
  답 : 그것은 기억이 없습니다.
  
  
  문 : 이건 1,500억원은 2000. 6. 7. 현대상선이 4,000억원을 대출받은 대금중 1,000억원을 현대건설에 빌려주어, 현대건설이 동 자금을 북한에 송금하였던 자금으로서 6월말 만기일이 임박하여 이를 현대상선에 상환하기 위하여 자금지원 요청을 하였던 것으로서, 이때 이기호 수석은 진술인 등으로부터 현대건설에 대한 자금지원의 필요성을 듣고서 산업은행 총재에게 다시 지원요청을 하게된 것이라고 하는 바, 진술인도 이러한 내용을 알고서 자금지원 요청을 하였던 것은 아닌가요.
  
  답 : 이 부분에 대하여는 모릅니다.
  
  
  문 : 진술인은 ‘현대상선이 산업은행으로부터 대출 받은 4,000억원을 정부가 사용한 것이기 때문에 갚을 수 없다‘라고 한 사실을 알고 있는가요.
  
  답 : 그것은 작년 국정감사 때 언론보도를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문 : (판독불능)
  
  답 :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습니다.
  
  
  문 : 진술인은 2000. 10. 5. 국회운영위원회회의실에서 실시된 대통령비서실 및 대통령경호실에 대한 국정감사의 출석하여 증언한 사실이 있는가요.
  
  이때 검사는 2000. 10. 5. 대통령비서실 및 대통령경호실에 대한 국회운영위원회회의록을 진술인에게 제시하고,
  
  답 : 예, 그런 사실이 있습니다.
  
  
  문 : 진술인은 위 국정감사에 출석하여 증인으로 출석하여 선서를 한 사실이 있는가요.
  
  답 : 예, 저는 국회에서 증인으로 증언을 함에 있어서 국회에서의 증언·감정등에관한법률 제7조의 규정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이 있으면 위증을 벌을 받기로 서약하고 이에 선서를 한 사실이 있습니다.
  
  
  문 : 진술인은 이날 한나라당 국회의원 이주영 의원의 ‘하용진 비서를 데리고 9일부터 11일까지면 2박 3일 동안인데, 그 당시 그곳에서 만난 사람은 누구누구입니까‘라는 질문에 무엇이라고 대답하였는가요.
  
  이때 검사는 (판독불능) 진술인에게 제시하고,
  
  답 : 그 질문에 대하여 제가 “특별히 만난 한국분은 없었습니다. 물론 북한분도 없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싱가포르 거주 중국인, 제가 정치를 하기 전에 사업을 했기 때문에 친분관계가 있는 사람들하고 만나서 좀 쉬었습니다“라고 답변을 하였습니다.
  
  
  문 : 그리고 이주영 의원은 해럴드트리분지 기사를 제시하면서 ‘당시 박지원 장관께서 김보현 당시,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국정원 대북담당3차장과 함께 싱가포르를 방문해서 북측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김용순 위원장의 두 비서진과 비밀접촉을 했느냐 하는 것이 의문으로 남는다‘고 되어 있는데, ‘김용순 위원장의 비서진이라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어요?‘라는 질문에 진술인은 “만난 적이 없고…“라고 답변을 하였는데 사실인가요.
  
  답 : 그렇게 답변을 하였습니다.
  
  
  문 : 그러면서 “그리고 김보현 현 3차장은 제가 아는 바로는 그때는 몰랐습니다“라고 답변을 하였는데 사실인가요.
  
  답 : 예, 그렇습니다.
  
  
  문 : 이날 진술인이 이규택 의원에 대한 추가 답변에서 “그래서 저는 분명히 말씀드리는데 싱가포르에서 누구도 만난 적이 없습니다“라는 답변을 하였는데, 사실인가요.
  
  답 : (판독불능)
  
  
  문 : 그러나 금일 진술결과 그 당시 증인으로서 답변하였던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 확인되었는데 어떤가요.
  
  답 : 우리가 예비접촉을 했는데, 상대방에서 상층부에 보고해서 잘 이루어질지 모르니까 오늘 접촉은 상호간에 보안을 지키자고 약속을 하였기 때문에 물론 남북문제이면서 외교문제이기 때문에 국익차원에서 남북문제를 고려하여 허위증언을 한 것입니다.
  
  
  문 : 이주영 의원의 ‘남북정상회담 그 자체에 관해서 어떤 대가를 주는 것은 없었지요‘라는 질문에 무엇이라고 답하였는가요.
  
  답 : “그런 대가는 없었습니다“라고 답변하였습니다.
  
  
  문 : 그 부분에 대하여는 사실관계가 달라진 내용이 있는가요.
  
  답 : 사실입니다. 지금도 남북정상회담 그 자체에 대하여 어떤 대가를 준 사실이 없습니다.
  
  
  문 : 이날 한나라당 임인배 의원이 ‘현 정권이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무려 4,000억이나 되는 국민의 혈세를 북한에 넘겨준 국기문란사건이고 본 위원은 생각하는데…‘라는 질문에 진술인은 “저는 분명히 정부는 그러한 지원을 한 사실이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고……“라고 답변하였는데 사실인가요.
  
  답 : 4,000억원이 되었든 뭐가 되었든 제가 아는한 정부는 정상회담과 (판독불능)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 : 더 할말이 있는가요.
  
  답 : 저는 산업은행 대출문제에 대해서 우리 3인(박지원, 임동원, 이기호) 회동에서 현대의 유동성과 대북사업을 위해서도 도와줘야 한다는 것에 대하여 강력하게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그것이 이기호 수석에게 문광부장관의 말이 압력으로 느껴졌다면 거기에 대한 응분의 책임을 지겠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부당한 대출을 하라고 하였거나, 산업은행 등 특정은행에 대하여 논의한 바 없습니다. 이기호 수석도 저와 그런 구체적인 사항에 대하여 한번도 협의한 바 없습니다. 2003. 2. 14. 국민들에게 밝히는 기자회견을 갖기 전에 이기호 수석에게 대출관계를 물었지만 전혀 관계하지 않았다고 해서 기자회견에서도 밝히지 않았던 부분입니다.
  
  
  문 : 이상 진술이 모두 사실인가요.
  
  답 : 예, 모두 사실대로 진술하였습니다.
출처 : 월간조선
[ 2003-12-01, 14:2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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