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한 교장의 자살과 全敎組가 한 일
차 접대를 둘러싼 限時 여교사와의 갈등을 투쟁소재로 삼은 全敎組의 집요한 공격, 全敎組의 일방적 주장을 거의 그대로 보도한 언론, 그 직후에 그는 은행나무에 목을 맸다

월간조선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전율의 記錄] 왜 徐承穆 교장은 은행나무에 목을 맸나?
   (월간조선 2003년5월호)
  
  85세 老母에게 효도하고 두 아들을 海士·空士에 보냈던 모범家長·모범교육자를 자살로 몰고 간 세력은 누구인가
  
  
   *全敎組의 死後 해명은 사실과 배치 / 언론은 全敎組 주장을 일방적으로 보도
  
  ●『기간제 여교사에게 차 시중 강요 물의-말썽빚자 재임용』-대전일보
  ●『예산 보성초등학교 기간제 교사 성차별, 교권침해』-전교조 투쟁속보
  ●『보성초등학교장의 기간제 교사 교권침해 자료 통보』-전교조가 각 학교에 보낸 공문
  ●『교장선생님 차 시중 거절은 「업무 불이행?」』-오마이 뉴스
  
  
  ● 陳모 기간제 여교사 3월18일 무단결근과 동시에 교육부·여성부 홈페이지에 「교장·교감에게 차 시중과 접대를 요구받았다」는 요지의 글 게재
  ● 3월20일, 陳모 여교사 사표제출. 교육부·여성부·예산교육청·예산군청·전교조 등의 홈페이지에 같은 요지의 글 게재
  ● 3월20일, 예산교육청 보성초등학교 방문 진상조사
  ● 3월24일, 全敎組 보성초등학교 방문 진상조사 후 기간제 여교사 「원상복직」과「서면사과」요구
  ● 3월27일, 徐교장 기간제 여교사 보성초등학교에 再임용
  ● 3월31일, 全敎組 徐교장에게「언론 공개」등의 내용이 포함된 향후 투쟁 일정 통보
  ● 4월2일, 대전일보 등 지방 신문에 기사 나옴. 全敎組「보성초등학교 교장의 기간제 교사 교권 침해 자료」각 학교 통보
  ● 4월4일, 徐교장 자살
  
  李相欣 月刊朝鮮 기자 (hanal@chosun.com)
  
  새벽에 목을 매다
  
  
   보성초등학교는 충남 禮山(예산) 군청에서 20km쯤 떨어진 삽교읍 목리에 위치한 조그만 시골 학교다. 한 학년에 한 반씩, 모두 6개 학급이고, 전교생이라야 61명밖에 되지 않는다. 한 학년 학생이 10명 꼴이다. 초등학교 교사는 교장과 교감을 포함해 9명이고, 한 반 규모인 유치원을 담당하는 유치원 교사가 1명 따로 있다.
  
   이 조그마한 시골 학교를 이끄는, 조용한 성격의 徐承穆(서승목ㆍ57) 교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리라고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다. 지난 3월1일 보성초등학교에 발령을 받은 기간제 여교사 陳모(27)씨는 3월18일 「교장·교감에게서 茶 접대를 요구 받았다」는 요지의 글을 인터넷에 처음 올렸고, 徐교장은 이곳 저곳에서 몰아치는 압박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徐교장은 陳씨가 인터넷에 글을 올린 지 15일 만인 4월4일 새벽 5시쯤 예산군 신양면 신양리, 팔순의 老母(노모)가 살고 있는 고향집 뒤편의 은행나무에 목을 맸다.
  
   기간제 교사 陳씨는 보성초등학교에 오기 전 예산읍에 있는 「J 입시학원」에서 지난해 10월까지 3년5개월 동안 일했다. 담당 과목은 국어. 1999년 대학을 졸업한 陳씨는 중등교사 자격증을 땄으나 임용고사에 합격하지 못했다. 그해 5월부터 陳씨는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인 「J 입시학원」에서 일한 것이다.
  
   지난해 10월 陳교사는 주변에 『임용고시를 다시 준비하겠다』며 학원에 사표를 냈다. 학원 원장 崔모씨는 『陳교사가 학원을 그만두고, 나를 天安(천안)에 있는 노동청 천안 사무소에 진정했다』고 주장했다.
  
   崔원장은 『예산의 학원들은 영세해서 대개 퇴직금이 없었다. 강사들에게 퇴직금이 없는 것을 감안해 나는 다른 학원 강사 월급이 140만원 정도할 때 170만원 정도를 지급했다. 이런 사실에 대해 강사들을 채용하기 전에 충분히 얘기했다. 그런데 陳씨는 퇴직금을 주지 않는다며 나를 노동청에 진정했다』고 주장했다.
  
   崔원장은 퇴직금을 달라는 陳교사에게 학원 장부를 보여 주며 어려움을 호소했으나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당시 노동청에서 陳교사의 퇴직금으로 산정한 금액은 약 500만원.
  
   ―陳교사가 학원을 그만둘 때의 상황을 자세히 얘기해 달라.
  
   『지난해 10월, 학원 선생님들 사이에 「陳선생이 곧 그만둔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나는 陳선생을 불러 「지금은 입시철이니까 12월까지 일해 달라」고 부탁했다. 陳선생은 「그때까지 일하면 퇴직금을 주겠는가. 퇴직금 없이 일 못하겠다」고 했다. 그 다음날부터 학원에 나오지 않았다. 사표는 그날부터 며칠 뒤에 팩시밀리로 보내 왔다. 후임자를 구할 시간도 주지 않았다』
  
   ―퇴직하면서 퇴직금을 달라고 한 강사들이 있었나.
  
   『지금까지 한 60명의 강사가 우리 학원을 거쳐 갔다. 지금까지 陳씨를 포함해서 3명이 노동법을 들어서 퇴직금을 달라고 했다. 2명에게는 합의를 해서 퇴직금을 줬다. 진정을 한 것은 陳씨가 처음이다』
  
   ―陳씨가 당신을 언제 노동청에 진정했나.
  
   『10월 말쯤이라고 기억한다』
  
   ―왜 陳씨가 노동청에 진정했나.
  
   『합의를 해서 퇴직금을 주려고 했는데 도저히 합의가 안 될 정도로 서로 감정이 상했다』
  
   ―왜 퇴직금 적립을 하지 않았나.
  
   『내가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다. 이 지역 관행이 그랬고, 법을 잘 몰랐다. 陳씨에게 진정당하고 나서 퇴직금 적립을 시작했다』
  
   崔원장은 지난 1월 500만원의 퇴직금을 陳씨에게 지불했다.
  
   崔원장의 이런 주장을 확인하기 위해 전교조 충남지부를 통해 陳교사와의 연락을 요청했으나 4월17일 현재까지 응답이 없었다. 陳교사의 가족들은 『徐承穆 교장이 자살한 후 陳교사는 서울에 있는 친구 집에 가 있어 연락이 안 된다』고 말했다.
  
  
   「접대 및 접대 기구 관리」
  
   陳교사를 보성초등학교에 소개시켜 준 사람은 신암초등학교 교장인 韓圭福(한규복·53·예산군 초·중등 교장단 장학협의회장)씨였다. 韓교장은 자기 학교에 「기간제 교사」 두 명을 채용하기 위해 예산 교육청 인터넷에 글을 올린 사람 가운데 세 명을 추렸다.
  
   이 가운데 한 명인 陳교사를 보성초등학교 洪承萬(홍승만·57) 교감에게 소개했다.
  
   徐교장은 개학 전에 기간제 교사를 뽑지 못할까 봐 초조해하고 있었다. 徐교장은 父親喪(부친상) 중이라 기간제 교사 선발 문제를 洪교감에게 맡겨 놓았다. 陣씨를 소개받은 보성초등학교 洪承萬 교감은 이 사실을 徐교장에게 보고했다.
  
   徐교장은 『채용하라』고 지시했다. 洪교감은 2월24일 陳씨를 처음 만났다.
  
   陳교사는 3월3일 학교에 첫 출근했다. 3학년 담임교사가 됐다.
  
   陳교사에 대한 학교 측의 공식 기록은 3월5일자 「교내 장학록」에 처음 나타난다.
  
   洪承萬 교감은 3월5일자 「교내 장학록」의 「학습지도」란에는 陳교사에 대해 「학습지도 방법 별도 지도 요청」, 「기본 학습지도 미흡」이라고 기록했다. 「사무관리」란에는 「교실 관리 미흡」, 「항상 臨場(현장에 나감) 지도 필요」라고 적혀 있다.
  
   3월7일, 금요일. 洪교감과 陳교사 사이에 「차 접대 문제」가 처음 거론됐다.
  
   陳교사는 3월20일 교육인적자원부 홈페이지 부조리신고센터 등에 올린 글에서 『7일, 교감선생님이 「아침에 교장선생님 차 좀 갖다 드리고…」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陳교사는 집에 와서 가만 생각해 보니 「그럼 매일 아침 차를 갖다 드리란 소린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인터넷에 올린 글에서 주장했다.
  
   陳교사의 주장에 따르면, 그녀는 다음날인 3월8일 洪교감에게 면담을 요청해서 『매일 아침 교장선생님께 차를 타 드리는 것은 부담스럽다』고 얘기했다. 陳씨는 이날 徐교장도 면담했다. 陳씨는 인터넷에 올린 글에서 徐교장이 『만약 접대할 거면 어디까지 하겠는지, 교감한테는 못하겠다고 했다며, 당돌하군, 윗사람이 시켜서 못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전교조야. 陳선생은 전교조야?』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陳씨는 徐교장이 「교육감님 접대를 무지하게 강조했다」고 주장했다.
  
   陳씨의 주장 가운데 「만약 접대할 거면 어디까지 하겠는지」, 「교육감님 접대를 무지하게 강조했다」는 부분은 일반인들에게 오해를 초래할 만한 표현들이다. 서울 연북중학교 양인자 교감은 『서울에서는 「접대」라는 용어가 오해를 일으킬 소지가 있어 이를 「행사계」라는 용어로 대치한 지 오래됐다. 도시 학교에서는 이 업무만 전담하는 직원을 따로 채용한다. 시골이라서 관행적으로 젊은 교사가 그 일을 맡아 온 것 같다』고 말했다.
  
   「교장선생에게 아침마다 차를 타 드리라는 지시를 했다」는 陳씨의 주장에 대해 洪교감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陳교사에게 매일 아침 교장에게 「차 접대」를 부탁하거나 강요한 적이 없다. 陳교사는 자신에게 배분된 업무인 「접대 및 기구관리 업무」를 못하겠다고 내게 말했다』
  
   보성초등학교에는 교직원들이 해야 할 일을 정해 놓은 「학급담임 및 사무분장」이란 표가 있다. 이 표는 3월3일 개학과 동시에 발표됐다. 사무분장표에 적힌 陳교사의 업무는 「자료/환경」 담당이다.
  
   「자료/환경」 업무에는 「교내환경」, 「미술실 관리」, 「중간활동(보조), 접대 및 기구관리」, 「노인교실」 등 9가지가 있다. 나머지 교사들은 평균 15가지 정도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陳교사가 관리를 맡은 「차 접대함」은 교무실에 들어서면 마주 보이는 창가에 놓여 있다. 150cm 남짓한 높이에 중형 냉장고 크기의 찻장이었다. 한 교사는 「접대 및 기구 관리」를 이렇게 설명했다.
  
   『녹차나 커피 등이 떨어지면 행정실장에게 얘기해서 채워 놓고, 찻잔과 물컵을 깨끗하게 관리하는 일이다. 그 외 운동회, 입학식, 졸업식 등 학부모들이 모이는 행사가 있을 때 물을 준비하고 차를 준비하는 일도 해야 한다. 교무실에서 교사들이 먹고 놓아 둔 컵을 정리하는 것도 「접대」담당 교사의 몫이다. 陳교사가 제일 어리고, 당연히 해줄 걸로 생각해서 그 일을 맡긴 것이다』
  
   徐承穆 교장은 3월25일 아침 예산교육청 학무과장실에 불려가 전교조가 제기한 「차 접대 강요」 혐의에 대해 이렇게 항변했다. 당시 교육청의 기록이다. 徐교장이 억울해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천부당 만부당 한 소리입니다. 교장실에는 냉장고와 온장고가 있어 (거기서) 음료수를 준비하여 교장실에 오는 손님(주로 학부모)에게 교장이 직접 접대하고 있습니다. 陳선생님이 오해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陳선생님에게 손님으로 특정인을 지칭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담당업무 중에서 찻잔 정리와 접대 준비를 없앴습니다>
  
   陳씨는 洪교감이 교장에게 매일 차를 타 올리라고 지시했고, 교장은 교육감 접대를 무지하게 강조했다고 주장했다. 그녀의 주장대로라면 徐교장과 洪교감은 여교사에게 매일 차 시중을 요구하고, 교육감이 오면 잘 보이라고 지시한 것이 된다.
  
   洪교감은 『교육감은 우리 학교가 생긴 이래 단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다』며 『徐교장이 「교육감님 접대를 무지하게 강조했다」는 얘기가 무슨 말인지 도대체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陳교사와 「접대 및 접대기구 관리」 업무를 놓고 얘기를 한 것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 잔의 茶
  
  
  
   陳교사는 『3월8일, 「교장에게 매일 아침 차를 타 주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하자, 洪교감이 「교장은 예산 사람이니까 잘 보여야 해. 陳선생, 직장 생활 안 해 봤나」하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洪교감은 2월24일 陳교사를 첫 대면 하는 날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는 것이다.
  
   『그날 陳선생이 먼저 「교감선생님, 차 한잔 타 드릴까요」 하기에 「좋죠」 하며 한 잔 얻어 마셨다. 그때 陳교사가 「사실은 제가 먹고 싶어서 그래요」 하기에, 「요즘 젊은이는 저런 당돌한 면이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 자리에서 「교장선생님도 예산 사람이고, 陳선생도 예산 사람이니, 어린이 지도 잘해서 다음에 또 채용되게 교장선생님에게 잘 보이세요」 하고 말했다』
  
   徐교장이 陳교사에게서 차를 한 잔 얻어 마신 것은 2월27일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 한 잔의 차가 그를 죽음으로 몰아 가는 도화선이 됐다. 洪교감의 설명이다.
  
   『2월27일 교장선생님이 학교에 나온다기에 인사를 시키려고 陳선생을 불러 냈다. 그날 陳선생이 내게 「차를 한잔 타 드릴까요」 했다. 나는 「좋죠, 그런데 교장선생님도 계시니까 같이 한잔 타 드리면 좋지 않을까요」 하고 물었다. 陳선생은 차를 타서 교장선생님께 드렸다. 그것이 徐교장이 陳선생에 얻어 먹은 유일한 차였다』
  
   徐교장이 차를 한잔 얻어 마셨다는 부분에는 陳교사와 洪교감의 주장이 일치한다.
  
   3월8일, 洪承萬 교감과 陳교사가 「차 접대」 문제로 면담했다는 것도 일치한다. 물론 두 사람이 주장하는 대화 내용은 판이하게 다르다.
  
   洪교감이 주장하는 당일의 상황은 이렇다.
  
   <아침 8시50분쯤에 陳교사가 문을 슬그머니 열더니 나에게 손을 까딱거리면서 『저 좀 보세요』 하고 불렀다. 교감을 손짓으로 불러 내는 것이 내심 버릇 없다고 느꼈지만, 陳교사를 따라 나갔다. 陳교사는 나를 도서실로 데리고 갔다. 도서실은 몸이 움찔 할 정도로 냉기가 돌았다. 陳교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陳교사: 『저, 접대관리 업무 못하겠어요』
  
   洪교감: 『왜, 어제 컵 좀 닦더니 어려워서 그래요?』
  
   陳교사: 『아침에 교재연구도 해야 하고 아이들 생활지도를 해야 하기 때문에 못하겠습니다』
  
   나는 이 사실을 곧바로 徐교장에게 보고 했다.
  
   낮 12시쯤, 陳교사를 데리고 교장실로 갔다. 徐교장은 내가 가져온 기간제 교사 계약서를 꺼내 놓고 말을 했다.
  
   『여기 계약서 마지막에 「기타 수행업무」라고 있지 않아요. 여기에 접대 및 기구관리가 다 포함되는 것입니다』
  
   徐교장은 접대와 접대기구 관리가 무엇인지 설명했다.
  
   陳교사는 『저, 못하겠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徐교장은 『교장의 권한이 있는데 왜 못하나. 계약서를 지키지 못하면 해임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陳교사는 『그럼 그만두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徐교장은 『아니, 혼자 하라는 것도 아니고 수업 중에 하라는 것도 아니고, 컵 닦는 것은 5~6학년 아이들 시킬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하고 설명했다>
  
  
   교장 및 교감과의 갈등
  
   陳교사는 3월20일 인터넷에 올린 글에서 그날 洪교감과의 사이에 오간 대화를 이렇게 설명했다.
  
   <나: 『아침에 아이들 활동도 지도해야 하고 할 게 많습니다. 그래서 그런데 매일 아침마다 교장선생님께 차를 타는 것은 부담스럽습니다』
  
   洪교감: 『내 말을 못 알아듣는군. 교장은 예산 사람이니까 잘 보여야 한다고. 陳선생 직장생활 안 해 봤나?』
  
   …
  
   洪교감: 『못하는 거야?(위협적인 목소리로)』>
  
   陳교사는 「교장에게 차를 타 주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문제를 제기한 것에 대해 교감이 『못하는 거야』라며 화를 내는 상황으로 묘사했다.
  
   오후에 洪교감과 교장실에 갔을 때의 상황은 이렇게 주장했다.
  
   <교장: 『계약서를 보면 기타 업무 이행이 있는데 불이행시 그만둬야 해.<중략> 두 가지만 말해. 옆에서 충돌질한 사람 하고, 만약 접대할 것이면 어디까지 하겠는지. 교감에게는 못하겠다고 했다며, 당돌하군』>
  
   陳교사는 이 대화에 뒤이어 『왜 교장선생님께 아침마다 차를 타 드리며 잘 보여야 하는지, 기간제 교사의 기타 업무에 손님 접대가 들어가는지 지금도 전 모르겠습니다』 하는 자신의 감정을 적은 글을 이어 놓았다.
  
   陳씨는 徐교장과 洪교감과의 사이에 오간 대화의 주제가 「접대 및 기구관리」에 대한 불만인지, 「교장에게 차를 접대해야 하는 문제」인지 분명히 하지 않고 있다.
  
   陳교사는 「차 접대」 건으로 「3월18일」과 「3월20일」 각기 다른 종류의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3월18일」 올린 글은 풀어서 쓴 문장체의 글이었고, 「3월20일」 올린 글은 날짜별로 묶어서 대화체 형식으로 쓴 것이다.
  
   陳교사는 「3월18일」 글에서는 徐교장과 나눈 이날(3월8일)의 대화가 「손님에게 차 접대하는 문제」였다는 것을 스스로 밝히고 있다. 인터넷 글의 관련 부분이다.
  
   <교장선생님이 절 부르더니 계약서를 꺼내들며 陳선생의 기타 업무에 손님들 차 접대도 있다며, 기타 업무를 이행 못하겠으면 그만두라는 식으로 말씀 하시더군요>
  
   교실 하나를 양호실과 반씩 나누어 쓰고 있는 교장실에는 여덟 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소파와 의자가 놓여 있다. 지난 4월6일 들러 본 교장실에는 음료수가 가득 든 냉장고가 설치돼 있었다.
  
   보성초등학교를 찾아오는 외부인은 대부분 학부모들이다.
  
   한 학부모는 『학교에 여러 번 찾아왔지만 교장선생님이 누구에게 차를 타 오라고 시키는 것을 못 봤다』며 『학부모들에게 대개 냉장고에 든 음료수를 꺼내 줬다』고 기억했다.
  
   교무부장인 張모 교사는 『교장선생님은, 커피는 드시지 않고 녹차는 조금 드신다』며 『내가 예전에 한번 차를 타서 들어 갔다가, 「차 안 좋아 하니까 타 오지 마세요」라고 하신 적이 있다』고 했다. 陳교사는 인터넷에서 올린 글에서 「지금도 수업 중에라도 손님이 오면 키폰으로라도 연락해서 내려와 차를 타야 한다는 그분들(徐교장과 洪교감)의 말씀이 귓가를 맴돕니다. 교권이 이렇게 무너지는구나 처음 느꼈습니다」고 주장했다.
  
   「키폰」은 외부에서 온 전화를 교실로 연결시켜 주는 전화를 말한다.
  
   보성초등의 교사들은 陳교사의 이 주장에 대해 『기가 막힌다』는 반응을 보였다.
  
   기자가 만나 본 여러 명의 교사들의 의견은 비슷했다.
  
   『세상에 어떤 정신나간 교장이 손님이 찾아왔다고, 수업 중인 교사를 불러 차를 타게 하겠는가. 상식에 어긋나는 얘기다』
  
   『인품이 훌륭한 徐교장님이 그런 말을 했다고 상상도 할 수 없다』
  
   『교장선생님은 중요한 전화가 와도 수업 중에는 전화를 절대 연결시키지 않았다. 교장선생님은 무엇보다 수업을 중요하게 생각한 분이었다』
  
  
   교장의 수업장학
  
   陳교사는 「교장선생님에 대한 차 접대」문제를 거부한 3월8일부터 교장과 교감이 수업 중에 수시로 들어와 자신을 괴롭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洪교감의 3학년 수업지도는 3월5일과 3월7일에도 있었다.
  
   陳교사에 대한 수업장학은 洪교감이 네 번, 徐교장이 두 번 모두 여섯 번 이뤄졌다.
  
   徐교장이 수업에 처음 들어간 것은 陳교사가 「차 접대」 문제로 교장과 면담을 한 3월8일이었다.
  
   陳교사는 『기분도 전환할 겸 1교시 도덕 시간을 2교시 체육시간과 바꾸어 수업을 진행했다』고 했다. 陳교사는 마침 날이 추워 교실에서 책 읽기로 대체하고 있었다. 이때 徐교장이 들어왔다. 陳교사가 주장하는 대화 내용이다.
  
   <『지금 무슨 시간인가』
  
   『도덕인데 체육으로 바꾸어 책을 읽게 하고 있습니다』
  
   『수업 시간 마음대로 바꾸면 안 돼』>
  
   3, 4교시는 재량활동 시간이어서 陳교사는 아이들에게 컴퓨터 타자연습을 시키고 자신은 교실로 무엇을 가지러 잠깐 왔다고 한다. 이때 교장선생님이 교실에 왔다. 陳교사는 『재량시간이라서 애들은 컴퓨터실에 있다』고 말했다.
  
   陳교사는 교장이 자기를 괴롭히기 위해 자주 들어온다고 생각했다.
  
   3월13일 徐교장의 「교내 장학록」을 보면 陳교사는 교장에게 수업에 들어오지 말 것을 요구했다. 徐교장은 『빈 자리가 있으니 하루 종일 같이 생활하자』는 陳교사의 말에 분격했다. 徐교장의 이 날짜 장학록 내용이다.
  
   <5교시 음악 시간에 컴퓨터를 이용한 음악지도. 전자올갠을 이용. 가창지도 후 계명창 지도. 안전 지도하는 것이 좋다고 지도→본인(陳교사)은 받아들이지 않음.
  
   수업장학(교실 수업 참관 지도)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뜻을 강하게 비침.
  
   지도하는 입장에서 좀 심하다고 할 정도로 빈정거림. (빈 자리가 있으니 하루 종일 같이 생활하자고 하는 등)>
  
   陳교사는 『(3월8일 토요일에) 차 접대를 거부한 이후 다음 주 월요일(10일)부터는 완전히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다』고 괴로움을 표시했다. 특히 그녀는 徐교장이 「청소를 제대로 안 한다」고 꾸지람을 한 것에 대해 「싸늘한 눈빛과 혼내는 어투로」 큰 소리로 겁을 주었다고 했다.
  
  
   인터넷에 비난 글 올려
  
   청소지적 사건은 3월17일 일어났다. 陳교사는 다음날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徐교장의 3월17일자 장학기록에는 「청소시간에 아동과 같이 청소를 하면서 지도해야 한다→본인(陳교사) 바빠서 청소 臨場 지도할 시간이 없다고 함」이라고 적혀 있다.
  
   徐교장과 洪교감은 왜 이렇게 陳교사의 수업시간에 자주 들어갔을까?
  
   洪교감의 설명이다.
  
   『陳교사는 기업체로 말하면 인턴 사원이다. 수시로 가르쳐 줘야 하는 게 교장·교감의 임무다. 다른 선생님들 수업시간에는 들어갈 필요가 없다. 陳교사는 중등교사자격을 가졌지만 연수도 없이 초등학교에 왔다. 어떻게 장학지도를 하지 않을 수 있는가』
  
   洪교감은 이런 일도 있었다고 했다.
  
   『체육 시간인데 陳교사가 정장에 하이힐을 신고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아이들에게 축구 골대를 돌아오라고 시키고 있었다. 그때 특수교육대상(정신지체)인 어린이가 넘어졌다. 내가 달려가서 일으켜 세웠다. 陳선생은 교감인 내가 달려가서 아이를 일으키는데도 지켜만 봤다』
  
   3월18일, 陳교사는 결근했다.
  
   그날 陳교사는 「교장에게 차 접대를 거부했더니 교장·교감이 괴롭혀서 너무 힘들다」는 요지의 글을 교육부·여성부 등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렸다. 陳교사가 얼마나 많은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는지 파악이 되지 않는다. 陳씨의 글은 네티즌에 의해 이곳 저곳으로 퍼졌다.
  
   洪교감은 陳교사가 무단 결근하자 집으로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다.
  
   3월19일에도 陳교사는 결근했다. 洪교감이 전화를 했으나 陳씨의 핸드폰이 꺼져 있었다. 洪교감은 『나중에 진단서를 제출해야 병가로 처리되는데, 진단서를 제출하지 않아 陳교사는 무단결근 처리 됐다』고 말했다.
  
   3월20일, 陳교사는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사직서를 제출했다.
  
   洪교감은 『이왕 시작한 것이니 좀더 해보라고』 말했다. 陳교사는 인터넷 글에서 『사직서를 제출했는데 徐교장이 한 마디의 만류도 없이 「20일까지 근무했으니 열흘 치 월급을 반납해야 해」 하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아무 만류가 없었다는 주장에 대해 洪교감은 『사직서를 내밀기에 「처음이라 어려워서 그럴 텐데 참고 견뎌라」고 말했으나 陳선생이 묵묵부답이었다. 교장실에 가서도 徐교장이 「왜」 하고 물어도 그냥 묵묵부답이었다』고 말했다.
  
   陳교사는 사표를 낸 3월20일 저녁 「여교사라는 이유로 차 접대를 강요하는 현실」이라는 제목의 글을 교육부·전교조·노동부·여성부·예산 군청 등 각종 홈페이지 게시판에 다시 올렸다. 내용은 3월18일의 글과 달리 대화체로 꾸며져 있었다.
  
   첫 공식 반응을 보인 곳은 예산교육청이었다.
  
   3월20일, 예산교육청의 이경훈 장학사는 학교를 방문해 교장 및 교감 등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였다. 「이번 사건은 陳교사에 대한 과도한 업무 분장과 상호간의 공감대를 갖지 못한 교내 장학으로 물의를 빚은 사건」으로 결론 내리고 구두로 시정 조치를 했다.
  
   3월21일, 徐承穆 교장은 「물의를 빚어 죄송하다. 앞으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사유서를 예산 교육청에 제출했다. 이때쯤 陳교사가 3월20일 올린 두 번째 글이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퍼져 나갔다.
  
   3월21일, 전교조 성황진 예산지회장이 학교를 방문해서 徐교장과 3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성황진 회장은 조선일보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번 사건이 상호간에 오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파악하고, 그냥 돌아갔다』고 말했다.
  
   3월22일, 오전 11시30분경 徐교장은 전교조 충남지부장 高在順(고재순ㆍ49)씨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徐교장은 이날 전화 내용에 대해 『묻는 말에 똑바로 답하라. 허위일 時 그냥 두지 않겠다』는 등의.「공갈, 협박」을 받았다고 기록해 놓았다.
  
  
   복직을 요구하는 陳교사
  
   고재순 위원장은 『徐교장과 전화통화를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보성초등학교를 방문하기 전에 교장에게 전화를 건 적이 있는 전교조 충남지부 이진형 사무처장은 『사실확인 차원에서 전화를 했지만, 정중하게 통화를 했다』고 말했다.
  
   3월24일, 전교조 충남지부 이진형 사무처장과 兪日相(유일상·35) 전교조 충남지부 사무국장이 진상조사를 위해 보성초등학교를 방문했다. 徐교장은 이날 이진형 사무처장 등이 『이번 사건은 교권침해라며 陳교사를 복직시킬 것, 접대 및 접대기구 관리를 없앨 것, 陳교사를 타 학교로 추천해 줄 것 등 3가지를 제시했다』고 기록해 놓았다.
  
   전교조 충남지부 兪日相 초등위 사무국장은 이날 교장에게 제시한 세 가지는 복직, 접대업무 폐지, 서면사과 요구였고 그후로도 계속 같은 요구를 했다고 말했다.
  
   洪교감은 『徐교장이 「접대 및 관리업무가 부당하면 삭제를 하겠다. 陳교사를 타 학교에 추천하는 것도 해 주겠다. 우리 학교에 다시 쓰는 문제는 생각을 좀더 해 보겠다」는 대답을 했다』고 말했다.
  
  
   徐교장, 『인터넷에 올린 글을 지워 달라』
  
   이날 전교조는 보성초등학교를 방문해서 진상조사를 펴는 한편, 교육청을 방문하여 「교권침해 및 전교조 비하 발언에 대한 시정조치 요청」이라는 공문을 전달했다. 전교조는 교육청에 진상조사와 陳교사를 원상회복시켜 줄 것을 요청했다. 전교조가 통보한 최종시한은 3월27일까지였다.
  
   3월25일, 예산 교육청은 印長植 장학사를 보성초등학교에 보내 진상을 다시 조사했다. 印장학사는 陳교사가 3월20일자로 인터넷에 올린 글의 진위에 대해 조사했다. 印장학사는 상호이해 부족으로 일어난 사안으로 파악하고, 「접대 및 접대기구 관리항목」을 삭제하라는 등 구두로 시정 조치를 했다.
  
   3월25일, 예산교육청 李鍾鶴(이종학ㆍ58) 학무과장은 陳교사를 他 학교로 추천하기 위해 陳교사와 면담을 했다. 李과장은 보성초등학교에서 15km쯤 떨어진 예덕초등학교의 기간제 교사로 갈 것을 권유했다. 李과장은 『陳교사가 예덕초등학교 교장을 만나서 상담까지 했는데 가타부타 즉답을 하지 않고 「내일 말씀 드리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이튿날 「거리가 멀다」며 예덕초등학교로 가는 것을 거부했다』고 말했다.
  
   3월26일, 陳교사는 徐교장에게 전화를 걸어 『보성초등학교로 복직하겠다』고 했다. 洪承萬 교감은 徐교장에게 『陳교사를 다시 받는 것은 우리가 전부 잘못한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반대한다』는 의견을 말했다.
  
   이날 오후 3시, 徐교장과 陳교사, 교육청 印長植 장학사, 전교조의 이진형 사무처장, 兪日相 초등위 사무국장 등 5명이 예산읍에 있는 전교조 충남지부 사무실에 모였다. 陳교사의 복직문제를 협의하기 위해서였다.
  
   徐교장은 印長植 장학사에게 같이 가 줄 것을 요청했다. 印장학사는 陳교사와 전화통화에서 『장소를 바꾸자』고 했으나, 陳교사는 『전교조 사무실이 아니면 만나지 않겠다고 버텼다』고 한다. 이날 오간 대화내용을 印장학사가 기록했다. 陳교사는 徐교장에게 서면사과를 요구했다.
  
   <陳교사: 『하여간 4월1일자로 복직 희망한다』
  
   徐교장: 『3학년 학부모 설득과 현재 새로 온 기간제 교사 문제도 있다. 교장으로 최대한 노력하겠다』
  
   陳교사: 『재발방지 차원에서 서면사과를 요구한다』
  
   徐교장: 『원상 복직이 서로 간의 신뢰를 나타내는 것이다. 현재 올려져 있는 인터넷 사이트 글을 지워 달라』
  
   陳교사: 『내가 요구한 사항이 원만히 해결되면 지우겠다』
  
   徐교장: 『만나서 오해를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 복직에 최선을 다하겠다』>
  
  
   全敎組, 계속 서면사과 요구
  
   두 사람의 대화를 보면 徐교장은 인터넷에 오른 글들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가는지 제대로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다. 陳교사가 올린 글만 지우면, 모든 것이 끝나는 줄 잘못 알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印장학사는 『이날 대면 때 전교조 사무실에 오마이뉴스 기자가 찾아오자 이진형씨가 이들을 가리키면서 「만약 서면사과를 하지 않으면 저런 분들에게 교장선생님의 부도덕한 면을 알리겠다」고 협박을 하는 등 강압적인 자세로 徐교장을 대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교조 충남지부 이진형 사무처장은 『오마이뉴스 기자가 와서 「기사화 할까요」 해서 「잘 해결될 것이니 기사화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주장했다.
  
   陳씨는 徐교장에게 서면사과를 요구했고, 徐교장은 복직의 조건으로 인터넷에 올린 글을 삭제해 달라고 요구했다.
  
   보성초등 학부모 대표인 金正道(김정도·42)씨는 『徐교장은 어떻게든지 이번 사건을 조용하게 해결하고 싶어 했다. 陳교사를 복직시키고, 陳교사가 인터넷에 올린 글을 지우면 모든 것이 해결될 줄로 생각했다』고 전했다.
  
   3월27일, 陳교사는 徐교장에 전화를 걸어 『4월1일부터 출근하겠다』고 했다.
  
   3월28일, 徐교장은 陳교사로부터 복직에 필요한 서류를 받고, 예산교육청에 陳교사의 복직을 보고했다. 陳교사와 전교조는 徐교장의 「서면 사과」를 계속 요구했다. 최종시한으로 3월28일을 못 박았다.
  
   전교조 충남지부 측은, 徐교장이 3월28일 오전 찾아와 『사과문을 저녁까지 내겠다』고 얘기했다고 주장했다. 전교조 이진형 사무처장은 『3월28일 자정까지 徐교장의 사과문이 오지 않아, 그 후로 각자의 길로 가게 됐다』고 말했다. 徐교장이 기록한 노트에는 이날 전교조 사무실을 방문한 사실이 적혀 있지 않다.
  
   4월4일 徐교장이 자살하자 전교조 측은 『徐교장이 서면사과를 하기로 약속했는데 洪교감과 예산 지역 교장들의 반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徐교장은 교장단과 洪교감과의 갈등으로 괴로워했다』고 주장했다.
  
  
   全敎組, 항의집회·선전, 고발 예고
  
   3월28일, 徐교장은 「陳교사와 내일(29일) 만나서 서약서를 교환하자고 하자, 陳교사가 「전교조 선생님과 만난 후 전화하겠다고 했다」고 노트에 기록했다. 전교조는 『徐교장이 말한 이 서약서는 徐교장이 서면사과를 하고, 陳교사는 서면사과를 다른 곳에 이용하지 않겠다는 것을 서로 서약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3월29일, 徐교장은 陳교사에게 임명장을 우편으로 발송했다.
  
   3월31일, 월요일, 徐교장은 이승에서의 마지막 한 주를 시작했다. 그에게는 잔인한 시간들이었다. 이날 오후 1시경, 보성초등학교에 전교조 충남지부로부터 팩스가 한 장 밀려 들어왔다.
  
   徐교장이 陳교사에게 서면사과하지 않을 경우 앞으로 충남지부가 대응할 일정을 통지한 팩스였다.
  
   <1. 3월31일 4시, 예산교육청 항의집회
  
   2. 3월31일 5시, 예산교육청 항의 집회 후 지역사회 선전 고발
  
   3. 3월31일 6시, 언론(인터넷 언론, 지역신문사)에 투고 등을 통한 여론화
  
   4. 3월31일 6시, 성차별에 대한 여성부, 국가인권위 등에 홍승만 교감 고발
  
   5. 4월1일. 道교육청의 진상조사 요구 및 예산교육청 관리감독 소홀 고발>
  
   전교조는 陳교사 사건을 「성차별」로 규정하고, 이 사건을 공개적으로 쟁점화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예산교육청의 한 장학사는 『이 공문을 보고 전교조의 집요함에 두려움을 느꼈다. 어떻게 전교조가 사실 규명도 없이 교육자에게 이런 협박 문서를 보낼 수 있는지, 겁이 났다』고 했다.
  
   학부모 대표인 金正道씨는 『全敎組가 徐교장에게 끝까지 서면사과를 요구한 것은 「차 시중 요구로 서면사과까지 한 교장」이라는 빌미를 씌워 약점을 잡기 위한 비열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全敎組 소속인 보성초등학교 崔모 교사(36)와 鄭모 교사(41)는 3월31일 全敎組의 첫 번째 위협시위인 예산교육청 항의방문에 참석했다. 두 사람은 이날 오후 3시 조퇴했다. 崔교사는 조퇴 이유로 「은행업무, 공과금 납부」, 鄭교사는 「안과 치료」를 들었다.
  
   崔교사가 조퇴를 내자 洪교감은 『全敎組 집회에 가려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두 사람은 언성을 높이며 싸웠다. 崔교사는 『월말이라 은행에 가려는데 조퇴를 내주지 않아, 항의하다가 언쟁이 붙은 것』이라고 말했다.
  
   교무실 옆 교장실에 있던 徐교장은 이들의 싸움소리를 듣고 교무실로 갔다.
  
   徐교장은 「崔교사가 책상을 치며 교감에게 대들고 있다, 교감을 고충처리 위원회에 고발하겠다고 협박하고 있다」는 기록을 남겼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두 교사는 徐교장이 숨진 후 유족들로 부터 「陳교사를 부추겨 徐교장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며 공갈 협박 등의 혐의로 고소당했다.
  
   徐교장의 영결식 전날인 4월7일 崔교사와 鄭교사는 전국에서 몰려든 수십 명의 기자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다른 선생님들은 영결식 준비에 쓸 물품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날 학부모들은 두 교사에게 아이들을 맡길 수 없다며, 학생들을 데리고 가 버렸다.
  
   교문 주변에는 「우리 교장을 죽게 한 공갈 협박 교사 진○○, 최○○, 정○○은 즉각 떠나라」는 플래카드가 나붙었다.
  
   崔교사와 鄭교사도 얼마나 울었는지 얼굴이 부어 있었다.
  
  
   『시간이 남아 갔다』
  
   두 사람은 『徐교장은 서면사과를 하고 모든 것을 끝내려고 했는데, 洪교감이 막아서 일이 이렇게 됐다』며 洪교감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교감이 陳교사에게 『교장에게 매일 차를 타 주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나.
  
   『陳교사가 그렇게 얘기했다』(최)
  
   ―陳교사가 찻잔을 닦는 걸 자주 봤나.
  
   『한 번 닦는 것을 보았지만 횟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접대 및 기구관리는 초등학교에서는 있어서는 안 되는 항목이다. 행정실에서 해야 한다』(최)
  
   ―陳교사에게 『全敎組에 가서 도움을 받으라』고 이야기했나.
  
   『陳교사와 자주 이야기는 못했지만, 고민이 있는 것을 알았다. 崔선생이 전교조 예산지회에 소개시켜 준 것으로 알고 있다. 행동을 부추긴 적은 없다』(정)
  
   『지금 와서 그때의 모든 상황을 기억해내라고 하는 것은 너무 지치고 힘들다. 나도 부추긴 적 없다』(최)
  
   ―徐교장이 전교조를 비하하는 발언을 한 것을 들었나.
  
   『陳교사가 그렇게 이야기했다고 말했다』(최)
  
   ―교감과는 왜 싸웠나.
  
   『원래 교감과 사이가 안 좋았다. 그날은 조퇴를 해주지 못하겠다고 해서 싸웠다. 책상을 치지는 않았다』(최)
  
   ―교장이 수업시간에 들어가는 것이 잘못되었나.
  
   『수업장학은 양해를 구하고 해야 한다. 수업장학을 그렇게 받은 교사는 없다』(최)
  
   ―모시고 있는 교장을 성토하는 집회에 가는 것이 마음에 꺼리끼지는 않았나.
  
   『아이들 학원비를 냈다. 마침 교육청이 옆이라 가 보았다』(최)
  
   『옛날부터 눈이 안 좋다. 안과 진료를 받으러 갔다가, 시간이 남아 갔다』(정)
  
  
   全敎組, 「접대」를 「차 시중」, 「차 배달」이라 표현
  
   4월1일, 陳교사가 복직 후 첫 출근을 했다. 이날 연합뉴스는 충남발 기사에서 「기간제 여교사에 차 시중 강요 물의」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전교조는 예고했던 대로 3월31일 陳교사 사건에 대해 보도자료를 지방의 언론사에 배포했다.
  
   학부모 대표 金正道씨는 이날 오전 徐교장과 전화통화를 했다.
  
   徐교장은 불안한 목소리로 『일을 조용히 해결하려고 참 많이 노력을 했는데, 내일 지방 어느 신문에 기사가 또 난다』고 걱정을 했다고 한다.
  
   4월2일 대전일보에 「기간제 여교사에 차 시중 강요 물의-말썽빚자 재임용」이란 제목으로 기사가 나갔다. 활자 매체에 의한 첫 번째 보도였다. 조용하게 일이 마무리되길 원했던 徐교장은 혼돈상태에 빠졌다. 이날의 상황을, 「2003. 4. 대전일보 나옴(기사)」이라고 적어 놓았다. 다른 기록과 달리 이날은 날짜를 표기하지 않았다.
  
   이 날짜 충청매일 신문 등 충남지역 대부분의 신문들이 「여교사에 차 심부름 -성 차별」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실었다. 전교조 충남지부의 「보성초 투쟁속보」는 「보성초 교감이 기간제 교사에게 「차 배달」할 것을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전교조는 이 사건을 「차 시중 강요, 성차별, 교권 침해」로 규정하고, 투쟁속보를 만들어 돌렸다. 徐교장 자살 이틀 후 만난 전교조 충남지부 이진형 사무총장을 만났을 때, 그는 「차 배달」이란 용어를 썼다.
  
   대전일보의 卞모 기자는 인용부호도 달지 않고, 여교사에게 차 시중을 요구했다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그는 『전교조에서 주는 보도 자료를 중심으로 기사를 썼다. 교장에게 통화를 했다. 제목에 인용부호가 안 붙은 것은 편집에서 하는 것이라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전교조의 보도자료를 그대로 받아 쓴 지방 일간지 기사들의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언론들은 陳교사 사건의 실체적 진실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채, 전교조가 내놓은 「차 시중」, 「성차별」이라는 용어들을 여과없이 그대로 사용했다. 시골 학교 교장인 서승목씨가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은 아무것도 없었다.
  
   학부모 대표인 金正道씨는 『교장선생님이 전교조의 주장을 100% 받아들인 일부 언론의 악의적이고 무책임한 보도에 고통을 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잘라 말했다.
  
  
   徐교장의 마지막: 『교장선생님의 눈빛이 참 슬퍼 보였다』
  
   언론의 보도가 쏟아져 나온 4월2일 오후 교직원들의 체육대회가 있었다. 徐교장은 충남교육청이 소집한 교장회의에 참석한 후 교직원들이 기다리는 예산 읍내의 韓食堂(한식당)에 갔다. 陳교사도 참석한 이 자리에서 徐교장은 『앞으로 잘 해보자』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
  
   이날 오후 5시30분쯤 전교조 충남지부는 예산 지역 각 학교 교장들에게 공문을 보냈다. 네 장 분량인 이 공문의 제목은 「보성초등학교장의 기간제 교사 교권침해 자료 통보」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공문의 내용은 「보성초에서 발생한 학교장과 교감의 기간제 여교사 교권 침해 및 성차별, 전교조 비하 발언 같은 일이 각급 학교에서 재발되지 않도록 붙임 자료를 통보한다」는 것이었다. 기간제 여교사가 인터넷에 올린 일방적인 주장만을 토대로, 전교조는 법관처럼 이 사건의 성격을 규정해 버렸다.
  
   이 자료에 의해 36년간 교직에 봉사해온 徐교장은 하루 아침에 여교사의 교권을 침해하고, 성차별을 하고, 막말을 하는 교육자로 전락해 버린 셈이다.
  
   공문에는 두 개의 자료가 첨부됐다. 「보성초 교장의 기간제 교사 교권침해 투쟁속보」와 「보성초 교권침해 오마이뉴스 기사」였다. 4월1일자 오마이뉴스는 3월31일 있었던 전교조 예산지부의 예산교육청 항의 방문을 보도한 기사였다.
  
   이 기사는 첫머리에 「기간제 교사에 차 시중을 강요하는 등 교권을 침해하는 사건이 발생해 말썽을 빚고 있다」고 했다. 4월2일 저녁 5시30분쯤 교무실 팩스에 들어온 이 공문을 徐교장은 다음날인 4월3일 출근 후에 보고, 자필로 사인을 했다.
  
   이 학교 행정실장 禹敬植(우경식·30)씨는 『4월3일 출근해서 교장실에 들어가니 교장선생님이 대전일보와 전교조 공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고 했다.
  
   徐교장은 이날 점심시간 전에 禹실장을 불러 『그동안 고생을 많이 했다』고 위로했다. 禹실장은 저녁 퇴근시간에 徐교장이 퇴근을 하지 않고 담배를 피우며 학교를 거닐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徐교장은 오래 전에 담배를 끊었으나 이번 일로 줄담배를 태웠다고 한다.
  
   徐교장은 禹실장을 보고 먼저 가라고 손짓을 했다. 禹실장은 『그때 교장선생님의 눈빛이 참 슬퍼 보였다. 아직도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고 기억했다.
  
   한 여교사는 『陳교사 사건이 터진 후 교장실에 담배 연기가 가득 차 있었고, 교장선생님이 잠시도 앉아 있지 못하고 서성대는 일이 많았다. 결재하러 들어가면 깜짝깜짝 놀라는 일이 많았다』고 울음을 터뜨렸다.
  
   4월4일, 徐承穆 교장은 이날 출근을 하지 않았다. 徐교장은 오전 10시쯤 어머니 집 바로 뒤에 있는 수령 30년 된 은행나무에 목을 매어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徐교장이 자살을 했으며, 숨진 시간이 오전 5시에서 6시경이라고 추정했다.
  
  
   전교조: 『徐교장 죽음은 교장들과 교감 때문』
  
   4월6일 예산의 전교조 충남지부 사무실에서 만난 이진형 사무처장은 『徐교장의 죽음은 교장단과 徐교장 간의 갈등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4월2일 예산교육청에서 열린 교장회의에서 교장들이 徐교장을 질책했다고 들었다. 교장들은 서면사과를 하면 자신들의 권위가 무너진다며, 서면사과를 말렸다고 한다. 특히 교육청 이종학 학무과장이 30분 동안 무안을 주었다고 한다. 그 날 이후 徐교장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고 한다. 徐교장이 「모든 것을 수긍하고, 노력하겠다」고 했다. 전교조의 압력으로 자살했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전교조는 4월9일 기자회견에서 이런 주장을 공식적으로 내놓았다.
  
   이진형 사무처장이 徐교장을 질책했다고 지목한 예산교육청 李鍾鶴 학무과장은 『그날 회의는 황사문제, 사스 예방, 천안초등학교 축구부 합숙소 화재사고, 안전사고 예방 등이었다』며 『보성초등학교 얘기는 회의 마지막에 잠시 언급하고 끝났다』고 말했다.
  
   李과장은 『徐교장이 요즈음 마음 고생이 심하다며, 위로를 해주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이 사건을 예산 현지에서 취재한 朝鮮日報 사회부 취재팀은 「徐교장과 교장들간에 갈등이 있었다」는 전교조의 주장을 확인 취재했다. 교장회의에 참석한 36명의 교장 가운데 연락이 된 28명과 전화통화가 이뤄졌다.
  
   교장회의에서 徐교장에게 「서면사과를 하지 말라」고 요구하거나, 무안을 준 사람은 한 명도 없는 것으로 취재됐다. 韓圭福 신암초등학교 교장은 『徐교장이 숨지기 며칠 전에 찾아와 「전교조에 아는 사람이 없느냐」고 물었다. 내가 왜 그러냐니까 「그냥」 하고 대답했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전교조에 아는 사람이 없느냐고 물었겠냐』고 말했다.
  
   趙雄植(조웅식ㆍ57) 양신초등학교 교장은 『徐교장이 3월23일 「전교조 때문에 못살겠다」고 해서 위로해 준 적이 있다』고 했다.
  
   『徐교장과 나는 1년에 한 번 全 가족이 모이는 계를 하고 있다. 계원은 여섯 쌍이다. 예산에 있는 한 식당에서 모임을 마치고 나오는데 徐교장의 표정이 침울했다. 徐교장은 「전교조 때문에 못살겠다」고 했다. 나는 「그 친구들 수법이 원래 그런데 왜 신경을 쓰느냐」며 위로했다. 4월2일 교장회의 끝나고 나서는 너무 침울해 보여 내가 등을 두드려 줬다. 그런데도 전교조는 교장단 회의에서 압박을 받아 자살을 했다니, 소가 웃을 일이다』
  
  
   『늘 신경이 곤두 선다』
  
   ―학교에서 빚어지는 전교조 교사들과의 갈등에는 어떤 것이 있나.
  
   『교장이 불러도 무시하거나 딴청을 운다. 교장의 권위를 무시하는 방법을 많이 쓴다. 전교조 교사들에게 빌미의 꼬투리를 잡히지 않으려고 긴장하다 보니 늘 신경이 곤두선다』
  
   ―徐교장 죽음을 보고 동료 교장으로서 많은 생각이 들 텐데.
  
   『교장과 교사는 노사관계가 아니다. 동료일 수도 있고, 선후배일 수도 있는 그런 사이다. 교장과 교사 사이에 벌어진 사소한 일을 놓고, 전교조가 교장을 일방적으로 몰아치는 근거가 뭔가. 陳교사 사건은 행정절차에 따라서 처리해야 할 일이었다. 여론재판으로, 인민재판식으로 교육자를 몰아치는 일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정말 걱정이다. 이 모든 것이 전교조의 세 확장 싸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예산 땅이 보수 지역이어서 전교조 세력이 약했다. 그래서 전교조 충남지부를 대전에서 예산으로 옮기면서 세확장에 나섰다. 한 건 잡으려다, 무리수를 둔 것이다』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 高鎭光(고진광ㆍ48) 대표는 4월8일 徐承穆 교장 영결식에서 추도사를 읽었다. 많은 교장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쳤다.
  
   『徐교장은 신의도 염치도 예의도 없는 집요한 협박과 모욕에 시달리다, 가족에게조차 자신의 결백을 입증해 보이기가 난망스런 지경까지 내몰렸다. 그때 교장선생님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徐교장이 죽음을 선택한 것은 한국 교육의 부조리와 부도덕과 무책임에 온몸으로 항변한 것이다』●
  
  
  
  ◈ 誤認(오인) 誤用(오용)된「접대」라는 표현
  
  
  서승목 교장 사건을 이해하는 핵심 단어는 「접대」다.
  
  예산에 있는 전교조 충남지부는 「보성초 투쟁속보」에서 『기간제 교사에게 「접대」 업무를 강요하여 교권을 침해했다』, 『기간제 여교사라는 이유로 요즈음 시대에 「접대」를 강요하는 것은 분명한 성차별』이라고 주장해 왔다.
  
  「李熙昇(이희승) 국어 대사전」에 따르면 접대는 「손을 맞아서 대접함」으로 뜻이 풀이돼 있다. 손님을 맞이한다는 가치 중립적인 용어다. 하지만 「접대부」라는 단어에서 보듯이, 접대는 말이 여성에게 적용되면 통상 性的(성적)인 의미를 포함하는 卑語(비어)로 받아들여진다.
  
  보성초등학교가 작성한 「2003학년도 학급 담임 및 사무분장표」를 보면, 陳교사의 업무내용 중에 「접대 및 기구관리」가 포함돼 있다. 분명 학교를 찾아오는 손님을 맞이하는 업무라는 뜻이다.
  
  다른 여교사가 맡고 있는 업무를 보면 「폐품 수집, 쓰레기 분리 수거」, 「애향단 활동」 등이 포함돼 있다. 陳교사뿐 아니라 모든 교사들이 15~20개의 업무를 맡고 있다. 陳교사는 기간제 교사이기 때문에 9개의 업무만 할당받았다.
  
  陳교사에게 배정된 「접대」는 「쓰레기 분리 수거」나 마찬가지로 교사들 간에 통상적으로 분장된 업무의 하나에 불과했다. 陳교사가 맡은 「접대 업무」는 『녹차·홍차·커피가 떨어지지 않게 체크하고, 찻잔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손님이 오면 차를 타서 내라는 게 아니었다』는 게 이 학교 교사들의 설명이다. 찻잔을 씻는 일은 대개 학생들이 해 왔다고 한다.
  
  陳교사가 『접대 업무를 거부했다』는 글을 인터넷에 올리자, 「접대」는 보성초등학교 사무분장표에서 쓰이던 고유의 의미를 잃었고, 「성차별 행위」로 誤認(오인)되기 시작했다. 학교 현장을 잘 알고 있는 전교조까지 「접대」를 학교 안에서의 맥락과 다르게 誤用했고, 이 사건을 「교장·교감의 기간제 여교사에 대한 성차별」로 몰고 나갔다.
  
  
  --------------------------------------------------------------------------------
  
  ◈ 주민 및 교사 인터뷰
  
  『집하고 학교밖에 모르는 분』
  
  全河釘(전하정·43) 웅산초등학교 교사는 4월4일 徐교장이 숨졌다는 소식을 듣고 그날 저녁 빈소로 달려와 통곡을 했다. 그는 徐교장과 같은 날 발령을 받아 3년6개월간 보성초등학교에서 함께 근무했다. 그는 『교장선생님의 평소 성격을 볼 때 이번 일을 겪으면서 기가 막혔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장선생님은 원래 고민이 있더라도 혼자 속으로 삭이는 스타일이다. 어떤 잘못이든 자신의 부도덕으로 돌리고, 말이 많은 분이 아니다. 말이 없는 분이라 일부러 교장실에 찾아가서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다』
  
  ―徐교장이 왜 자살을 선택했다고 보나.
  
  『자신이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이 하루 아침에 무너진 것 아닌가. 진실이 매도당했을 때 그분의 심정이 어땠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인간적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더군다나 陳교사와는 사제지간이라고 하는데 그 자괴감이 어땠을지 모르겠다』
  
  ―徐교장이 차를 좋아하나.
  
  『교사들에게 「차 한잔 타 달라」고 말하는 것을 듣지 못했다. 교육자로서 평생 쌓아 온 것이 「차 시중」, 「성차별」이라는 표현으로 짓밟혔는데 심정이 어떻겠나.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가 없어 온몸으로 저항을 한 것이다』
  
  全교사는 『徐교장이 방학 때도 쉬지 않고 학교에 나와 손수 단계별 학습장을 만드는 등 오로지 교육밖에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4월9일 全敎組가 교장단과의 갈등 때문에 徐교장이 자살한 것처럼 발표하는 것을 보고 全敎組를 탈퇴했다.
  
  『애도를 하려면 하든지 가만있으려면 가만있지 사람의 죽음을 이렇게 모독하면 안 된다. 그 학교 全敎組 선생님들도 그런 일이 있었으면 교장을 감싸고 막아 주어야지, 교장을 성토하러 집회에 갔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
  
  예산에서 택시운전을 하는 羅모(49)씨는 『全敎組가 뭔지 잘 모른다. 설사 차를 타라고 시켰다고 해도 아버지 같은 사람에게 차 한잔 타 주는 것이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라고 말했다.
  
  그는 『徐교장을 몇 번 태워 봤다. 밖에서 아무리 딴소리 해 봐야 예산에서는 그분의 인품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 분은 집하고 학교밖에 모르는 사람이다』고 말했다.
  
  李鍾鶴 학무과장은 『평생 흠 한 번 안 잡힌 사람이 신문지상에서 그렇게 몰렸으니 어떻겠는가. 陳교사 사건이 터지고 의자에 앉지도 못할 정도로 괴로워했다. 徐교장은 4월1일까지 사태해결을 하려고 모든 노력을 했다. 이제 다 끝났다 싶었는데 全敎組에서 언론에 투고를 했다. 그러고는 4월2일 충남의 全학교에 이런 일의 재발을 방지하자는 全敎組의 공문이 돌았다. 徐교장이 이 공문을 보고 모든 것을 포기한 것 같다』고 말했다.
  
  
  --------------------------------------------------------------------------------
  
  ◈ 학부모들의 말
  
  우리한테 직접 음료수를 내오는 분
  
  4월7일 徐교장의 빈소에는 보성초등학교 자모회장을 비롯 학부모 5~6명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徐교장의 면모를 얘기했다.
  
  『교장선생님은 우리가 방문하면 직접 음료수를 내주었다. 차 한잔 타오라고 시키는 것을 못 보았다. 교장이 여교사에 차를 타 오게 했다는 게 사실이라면 우리가 가만있었겠나. 먼저 내쫓았을 것이다』
  
  『체육복을 입고 잔디를 깎고 직접 일을 하시기 때문에 처음 만난 분은 학교 일 하는 분인 줄 안다. 한번은 동네의 수로에 철조망을 치고 계셨다. 혹시 수로에 애들이 빠질까 봐 그런다고 했다』
  
  『운동회 때 子母會에 음료수를 사다 주신 분이다』
  
  『금년에 운영위원장된 분은 「교장선생님이 연말까지 이 학교에 있겠다고 약속해야 운영위원장을 맡겠다」고 할 정도로 교장선생님은 존경받았다』
  
  『4월2일 모든 것이 원만하게 끝났다고 이야기를 들었는데 全敎組에게 역이용당한 것이다. 교장에게 죄를 인정하게 한 후 터트린 것은 심성 고운 교장을 최대한 이용한 것이다』
  
  『陳교사도 全敎組가 교권침해 건수로 이용한 것이다. 그 사람도 당했다』
  
  
  --------------------------------------------------------------------------------
  
  ◈ 徐承穆은…
  
  효도 지극하고, 수업엔 깐깐하고, 자신에겐 엄격
  
  부친 대소변 받아 낸 孝子
  
  그를 아는 사람들은 徐承穆 교장에 대해 『학교와 집밖에 모르던 사람』이라고 말한다. 徐교장은 3남3녀 중 둘째였다. 선친은 신양우체국에 근무하다 정년 퇴임했다. 徐교장은 부친이 지난 2월21일 사망할 때까지 매일 새벽 4시면 일어나서 15km 떨어진 본가에 가서 부모에게 문안을 하고, 약수를 떠 주고 다시 집에 돌아와 아침을 먹고 학교에 가곤 했다.
  
  특히 작년 8월 이후 부친이 몸을 가누지 못하자 아침마다 들러 대소변을 받아 냈다. 부친이 사망하자 부친이 사용하던 욕창 방지용 쿠션을 한곳에 보관하면서 『곧 어머니도 몸이 불편하면 못 움직일 텐데 그때 써야 한다』고 말했다.
  
  徐교장은 방학 때도 학교에 나가 단계별 학습장을 직접 만들어 개학이 되면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는가 하면, 교사들이 연구수업을 한 데 대한 강평을 한 번도 건너뛰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그와 함께 지낸 교사들은 徐교장이 『특히 기본과 기초교육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徐교장은 평소 수업장학을 중요하게 생각해 왔다고 한다.
  
  徐교장의 사위인 鄭濟薰(정제훈)씨는 장인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장인은 부지런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를 못하는 성격이다. 영수증 몇 년치를 묶어서 모아 두는 꼼꼼한 성격에 물건하나 흐트러지는 것을 못 보는 성격이다. 잘못한 것도 없이 이렇게 매도를 당하니 얼마나 수치스러웠겠나.
  
  기간제 교사 문제는 교육청에서 아무 문제 없다고 끝난 사건인데 全敎組에서 협박을 하고 끝까지 괴롭혔다. 고지식한 마음에 이것을 이길 수가 없었을 것이다』
  
  
  『교육청에선 끝낸 문제였다』
  
  동생인 徐承稷(서승직ㆍ52) 인하大 교수는 이번 陳교사 사건에 대해서 『형님의 노트에 全敎組 충남지부가 공갈 협박했다고 분명히 나와 있다. 간접 살인이다. 또 형님은 陳교사가 인터넷에 띄워 놓은 글 때문에 무척 고민했다』고 말했다.
  
  지난 4월7일 아침, 徐교장의 빈소를 찾았을 때 입관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부인 金順熙(김순희ㆍ53)씨는 울다가 벌떡 일어나서 실성한 사람처럼 두리번거리다가 다시 울기를 반복했다. 金씨의 입에서는 『여보, 여보, 한 번만 불러 줘요』 하는 말만 흘러 나왔다.
  
  공군 대위인 큰아들 정현(30)씨는 『아버지 말을 해 봐요, 나 어떡하라고… 효도할 기회를 줘야 할 거 아니에요』라고 울부짖었다. 해군 중위인 둘째 아들 상현(25)씨는 『우리 진급하면 누구에게 신고하라고』 하며 흐느꼈다.
  
  아버지의 입관이 끝나자 두 아들은 울부짖는 어머니를 껴안고 위로했다.
  
  
  --------------------------------------------------------------------------------
  
  ◈ 부인 金順熙씨가 본 徐承穆 교장
  
  『우리 남편은 남에게 보여 주기도 아까운 사람』
  
   『우리 남편은 남 보여 주기도 아까운 사람인데, 누가 죽였어. 살려내. 여보 여보, 보고 싶어 어떡해』
  
  지난 4월4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보성초등학교 徐承穆 교장의 빈소인 예산 중앙병원. 7일 오전 빈소에는 상복 대신에, 공군과 해군복을 입은 두 아들이 문상객을 맞고 있었다. 군복 입은 모습에 뿌듯해 하던 생전 아버지를 생각해서였다. 기자가 막 조문을 마치고 徐교장의 부인 金順熙(김순희·53)씨에게 인사를 하자, 곧바로 울음을 터뜨렸다.
  
  『술·담배 않고 가족과 제자 교육밖에 모르던 양반이에요. 순진하고 착한 사람인데 너무 억울해요. 힘들었지만, 교사의 아내로 살아온 지난날은 아름다웠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분은 간 곳이 없고…』
  
  金씨는 『힘있는 전교조가 계속 협박하니까 힘 없는 우리 남편이 달리 갈 곳이 없어 죽음을 선택한 것』이라고 통곡, 주위에 있던 친인척과 문상객들은 또 한번 눈시울을 적셨다.
  
  고인이 된 徐교장은 과묵하면서 꼿꼿한 「충청도 양반」이었고 부인 金씨는 조용히 남편을 믿고 따르는 전형적인 현모양처라고 주위에선 말한다. 이들 부부는 정현(30·공군 대위), 지원(28·주부), 상현(25·해군 중위) 등 2남1녀를 두고 예산읍내 자그마한 단독주택에서 오순도순 살아왔다.
  
  이런 단란한 가정에 어느 날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불행은 徐교장이 평생 몸 바친 교단에서 비롯됐다. 남편은 3월 말부터 끊은 지 10년 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고 눈에 띄게 얼굴이 어두워졌다.
  
  밖의 일을 잘 얘기하지 않는 성격이어서 처음에는 자세히 몰랐지만 金씨도 이즈음엔 대략 남편의 고민을 알게 됐다. 그러던 중 4월2일 아침 한 지방 일간지에 관련 기사가 나왔다. 3월31일 전교조 충남지부가 작성, 배포한 보도자료에 근거해 쓰인 것이었다. 남편은 이 신문을 들고 입술이 새파래진 채 안절부절못했다.
  
  『여보, 지금도 계속 사과문 쓰라고 협박해요?』
  
  『응』
  
  『당신 양심에 비춰 잘못한 일이 있으면 쓰고, 그렇지 않으면 쓰지 말아요』
  
  『다른 것은 다 들어줘도 내 양심에 반하는 사과문만은 못 쓰지』
  
  『기사를 읽어 보니 별일 아니네요. 대범하게 생각해요』
  
  세 끼 꼬박 밥 한 그릇씩 비우고 눕기만 하면 자던 이가 숟가락만 대다시피 하며 잠을 설친 지 며칠째였다.
  
  다음날인 3일 일찍 자리에 누웠던 남편이 잠이 안 오는지 밤 11시30분쯤 일어나 살짝 현관 문을 열고 마당에서 혼자 서성이다 새벽 1시쯤 방에 들어왔다. 칭얼거리는 외손자를 거실에서 달래고 있던 金씨는 새벽 2시쯤 남편 옆에 누워 얼굴을 만져 보니 자지 않고 있었다.
  
  『여보, 건강 해칠까 걱정돼요. 편하게 마음먹어요』
  
  『괜찮아, 어서 자』
  
  金씨는 살그머니 남편과 볼을 비비고 잠을 청했다. 남편과 나눈 생전의 마지막 대화이자 신체적 접촉이었다.
  
  운명의 날인 4일 오전 5시쯤 눈을 뜬 金씨는 남편이 보이지 않았지만, 처음엔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언제나 자신보다 먼저 일어나 나갔기 때문이다. 남편은 20년이 넘도록 어김 없이 오전 3시30분에서 4시 사이에 기상, 부모 댁에 다녀온 뒤 아침을 먹고 7시 반쯤 출근했다. 어느 날 金씨가 『교장이 일찍 가면 교사들이 싫어한다는데 좀 천천히 가요』 하니 남편은 『아냐, 학교는 작아도 할 일이 많아. 왜 나 일찍 밥 해주기 싫어서 그래?』 하며 미소 띤 얼굴로 대답하고는 서둘러 학교로 향했다. 남편의 시계추 같은 생활은 인근 주민들까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徐교장은 효심이 무척 깊었다. 3남3녀 중 둘째 아들이었지만 고향을 지키고 있었기에 매일 부모를 찾아뵈었다. 『부모님 생전에 최선을 다해야지. 대신 돌아가시면 울지 않을 거야』라며 극진히 모셨다. 남편은 새벽에 눈을 뜨면 곧장 15km 남짓 떨어진 예산 신양면 본가로 달려갔다. 문안인사를 드린 뒤 마당을 쓸고 빨랫감을 세탁기에 넣고 나서 집에 돌아오는 일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거르지 않았다. 특히 지난 2월21일 작고한 선친이 작년 8월 이후엔 몸을 가누지 못하자, 퇴근 후에도 본가에 들렀다. 대소변을 받아내고 몸이 불편한 어머니(85) 요강까지 깨끗이 비우고는 집에 돌아왔다. 말 그대로 昏定晨省(혼정신성: 밤에 부모의 잠자리를 봐드리고 이른 아침에는 밤새 안부를 묻는다는 뜻)이었다. 심지어 퇴근 후 본가에 갈 때면 평소 근엄한 교장 선생님이 요구르트와 고기, 과일 등을 사느라 장까지 보곤 했다. 샘이 난 金씨가 『나한테도 사다 줘』 했더니 『깜빡 잊었네』 하며 멋쩍게 웃어 넘긴 일도 있었다.
  
  이런 남편의 효심은 자녀들에게도 이어졌다. 하지만 徐교장은 자녀들에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하지 않았다.
  
  『큰아들 정현이가 중학교에 다니던 어느 날 깜짝 놀랐어요. 학교에 다녀오더니 옷을 벗은 뒤 쓰레기 버리고 마당을 쓰는 것이 순서까지 똑같이 아버지가 하던 일을 그대로 따라 하더군요. 산 교육이 별게 아니구나 느꼈지요』
  
  직업군인의 길을 걷고 있는 두 아들이 객지로 나간 10여 년 전부터 거의 매일 오후 6~7시쯤 집에 안부전화를 거는 것 역시 아버지가 말 없이 솔선수범한 영향 때문이다.
  
  徐교장은 원칙을 존중하는 강직한 성품이었다. 또 말은 살갑지 않았지만 행동은 자상했다. 사소한 일도 아내나 자녀에게 시키지 않고 직접 했다. 아침에 본가를 오가는 길에 『동네 사람들과 함께 마시라』며 매일처럼 꼭 20ℓ들이 통 3개에 약수를 떠올 만큼 인심 역시 넉넉했다.
  
  그는 방학 중에도 평일엔 꼭 학교에 나가 구석구석 둘러보고 교사들과 함께 학습자료를 만들었다. 주말엔 본가에 가 농사일을 거들었다. 시골 선생님 아내인 金씨로선 휴일에 가족끼리 오붓하게 어디 한번 제대로 놀러 간 적이 없으니 섭섭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장점이 훨씬 더 많아서 남편을 무척 믿고 사랑했어요. 얼마 전 정년퇴직하면 편안한 마음으로 마음껏 놀러다니자는 말을 듣고 행복해했는데. 이제 무슨 낙으로 살아야 할지…』
  
  金씨는 애틋한 눈길로 영정을 돌아보더니 금세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태어나 자란 곳, 그렇게도 극진히 모셨던 老母가 사는 집 뒤편 나뭇가지에서 「불효」를 저질러야 했던 남편의 마음은 어땠을까』
  
  任度赫 朝鮮日報 기자〈dhim@chosun.com
  
  
  
  
[ 2005-12-22, 00:2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코나스넷  |  리버티헤럴드  |  뉴데일리  |  뉴스파인더  |  뉴포커스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