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도 원한을 갖지 말자"
링컨의 두 번째 취임 연설(1865년 3월4일): “모든 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든 일을 다 하기 위해”

번역: 都正一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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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도 원한을 갖지 않고, 모든 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神께서 우리에게 보게 하신 그 정의로움에 대한 굳은 확신을
 갖고 지금 우리에게 안겨진 일을 끝내기 위해…
 우리들 사이의, 그리고 모든 나라들과의 정의롭고 영원한 평화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될 모든 일을 다 하기 위해 매진합시다”
[연설의 배경] 미국 제16대 대통령 링컨의 재임 기간은 1861년에서 1865년까지이고 이 시기는 남북전쟁 기간과 일치한다. 첫 임기를 끝내고 대통령에 재선된 링컨은 전쟁 종식을 한 달여 앞둔 1865년 3월4일, 두 번째 임기를 출발시키는 취임식을 갖는다. 이 연설은 그날의 취임사이다. 재선에 이르기까지 링컨이 걸어야 했던 정치적 행로는 힘든 것이었고, 1864년 선거전에서도 그의 재선 전망은 불투명한 것이었다. 율리시즈 그랜트가 연방군(북군)의 새 사령관으로 임명되면서 전황이 호전되고 윌리엄 셔먼 장군이 애틀랜타를 함락시키는 등의 성과가 없었다면 링컨은 전쟁을 처음부터 끝까지 수행한 대통령으로 남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그러나 링컨을 미국사의 한 정치적 영웅이 되게 한 것은 남북전쟁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고결한 비전과 확신, 인간에 대한 이해, 종교철학적 思惟(사유)의 깊이다. 이 두 번째 취임사에서도 링컨의 그런 면모는 잘 드러나고 있다. 전쟁에서의 승리라는 전망보다는 전쟁 이후 시대의 화해와 재건을 염두에 두고 미국인의 정신적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는 더 근본적인 문제를 그는 이 취임사의 배경 기조로 잡고 있다. 그가 제시한 것은 용서, 화해, 사랑이며, 이 화해의 정신은 연설문 마지막에 나오는 ‘누구에게도 원한을 갖지 않고 모든 이에 대한 사랑의 마음으로’라는 대목에 잘 요약되고 있다. 그러나 그 화해와 재건의 시대는 링컨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남북전쟁이 끝난 지 닷새 만인 1865년 4월14일, 링컨은 암살자의 총을 맞고 다음날 운명한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대통령직 취임 선서를 위한 본인의 이 두 번째 자리는 첫 취임식 때처럼 긴 연설을 할 계제가 아닙니다. 첫 취임식 때에 본인은 우리가 과연 어떤 길을 추구해야 할지에 대해서 다소 자세하게 말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 이 나라의 모든 시선과 에너지는 여전히 남북 내전에 집중되고 있습니다만, 지난 4년 간 남북 갈등에 관한 모든 문제와 모든 국면들에 관해서는 이미 수많은 공식 발표문들이 나왔기 때문에 본인이 지금 새삼 꺼내놓을 말은 별로 없습니다. 지금 모든 것은 전쟁의 진행 상황에 달려 있고 그 戰況(전황)은 본인은 물론 모든 국민들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상황은 우리 모두에게 대체로 만족스럽고 고무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해 높은 희망을 갖지만 어떤 예측도 할 수 없습니다.
  4년 전 이맘 때 모든 사람들의 생각은 임박한 內戰에 쏠려 있었습니다. 모두가 전쟁 발발을 두려워했고 모두가 전쟁만은 피하고자 했습니다. 그 때 바로 이 자리에서 본인이 취임사를 통해 전쟁이 아닌 방법으로 美 연방을 ‘살려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는 그 순간에도 이 도시 한쪽에서는 반란분자들이 전쟁 아닌 방법으로 연방을 파괴하는 방안, 즉 연방을 해체하고 협상을 통해 재산을 나누어 가지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습니다. 전쟁에 반대하기는 양쪽이 다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한쪽은 연방을 살려두느니 차라리 전쟁을 ‘일으켜야’ 한다는 주장이었고 다른 한쪽은 연방을 죽이기보다는 차라리 전쟁이라도 ‘감수’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남북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 나라 인구의 8분의 1이 흑인 노예들입니다. 그들은 이 나라 모든 지역에 퍼져 있는 것이 아니라 남부 지역에 몰려 있습니다. 노예 소유는 특수하고도 강력한 이해관계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그 이해 관계가 남북전쟁의 원인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전쟁을 일으켜서라도 연방을 깨뜨리고 그 이해 관계를 강화하고 영속화하며 확장하려는 것이 바로 반란자들의 목표였던 반면, 정부는 그 이해 관계(노예 소유 제도)가 다른 지역으로 확장되는 것을 제한하자는 것 이상의 주장은 한 바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일어난 전쟁이 이처럼 규모가 커지고 이처럼 오래 계속되리라고는 어느 쪽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쪽도 남북전쟁을 초래한 원인이 전쟁 종식의 순간에, 혹은 전쟁 종식 이전에 제거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양측은 모두 손쉬운 승리를 기대했을 뿐 이처럼 근본적이고 놀라운 결과가 초래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양측은 모두 같은 성경을 읽고 같은 하느님에게 기도하며 서로 상대방을 응징하는 데 신의 도움을 간청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남이 흘린 땀으로 자기 빵을 얻게 해달라고 감히 정의로운 하느님에게 도움을 간청한다는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만, 우리가 심판 받지 않기 위해서는 상대도 심판하지 않도록 합시다. 남북 어느 쪽의 기도도 신의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어느 쪽도 신의 충분한 응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전능한 하느님은 그 자신의 목적을 갖고 계십니다. “죄많은 세상에 화가 있을지어다. 죄는 짓게 마련이지만 죄를 짓는 자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미국의 노예제도가 바로 그 같은 세상의 죄 가운데 하나이고 신의 뜻대로 이 세상에 있게 마련인 죄의 하나라고 한다면, 그러나 신이 정한 시간 동안 지속된 그 죄를 신께서 이제 그만 거두시고자 한다면, 그리고 그 죄를 짓게 한 자들로 인한 재앙을 징벌하고자 신께서 남과 북으로 하여금 이 끔찍한 전쟁을 치르게 하신 것이라면, 살아 계신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 언제나 그분의 것이라 생각하는 그 신성한 뜻이 아닌 다른 어떤 뜻을 우리가 (이 전쟁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이 거대한 재난의 전쟁이 하루 빨리 끝나기를 우리는 간절히 바라고 열심히 기도합니다. 그러나 품삯 없는 노예를 250년 간 혹사해서 모은 재산이 다 탕진될 때까지, 채찍을 맞아 (노예가) 흘린 피 한 방울 한 방울이 칼에 맞아 (병사들이) 흘린 피 한 방울 한 방울로 모조리 보상될 때까지 이 전쟁이 계속되는 것이 신의 뜻이라면, 3천년 전의 (성경) 말씀 그대로 우리는 그저 “하느님의 심판은 참되어 옳지 않은 것이 없도다”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누구에게도 원한을 갖지 않고, 모든 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신께서 우리에게 보게 하신 그 정의로움에 대한 굳은 확신을 가지고 우리는 지금 우리가 당면한 일을 끝내기 위해, 이 나라의 상처를 꿰매기 위해, 이 싸움의 부담을 짊어져야 하는 사람과 그의 미망인과 고아가 된 아이를 돌보고 우리들 사이의, 그리고 모든 나라들과의 정의롭고 영원한 평화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될 일을 다하기 위해 매진합시다.
  
  
  Abraham Lincoln’s Second
  Inaugural Speech(March 4, 1865)
  
  “With malice toward none, with charity for all, with firmness in the right as God gives us to see the right, let us strive on to finish the work we are in… to do all which may achieve and cherish a just and lasting peace among ourselves and with all nations.”
  
  Fellow Countrymen, At this second appearing to take the oath of the presidential office there is less occasion for an extended address than there was at the first. Then a statement, somewhat in detail, of a course to be pursued seemed fitting and proper. Now, at the expiration of four years, during which public declarations have been constantly called forth on every point and phase of the great contest which still absorbs the attention and engrosses the energies of the nation, little that is new could be presented. The progress of our arms, upon which all else chiefly depends, is as well known to the public as to myself, and it is, I trust, reasonably satisfactory and encouraging to all. With high hope for the future, no prediction in regard to it is ventured.
  On the occasion corresponding to this four years ago all thoughts were anxiously directed to an impending civil war. All dreaded it; all sought to avert it. While the inaugural address was being delivered from this place, devoted altogether to saving the Union without war, insurgent agents were in the city seeking to destroy it without war―seeking to dissolve the Union and divide effects by negotiation. Both parties deprecated war, but one of them would make war rather than let the nation survive, and the other would accept war rather than let it perish, and the war came.
  One-eighth of the whole population were colored slaves, not distributed generally over the Union, but localized in the southern part of it. These slaves constituted a peculiar and powerful interest. All knew that this interest was somehow the cause of war. To strengthen, perpetuate, and extend this interest was the object for which the insurgents would rend the Union even by war, while the government claimed no right to do more than to restrict the territorial enlargement of it. Neither party expected for the war the magnitude or the duration which it has already attained. Neither anticipated that the cause of the conflict might cease with or even before the conflict itself should cease. Each looked for an easier triumph, and a result less fundamental and astounding. Both read the same Bible and pray to the same God, and each invokes his aid against the other. It may seem strange that any men should dare to ask a just God’s assistance in wringing their bread from the sweat of other men’s faces, but let us judge not, that we be not judged. The prayers of both could not be answered. That of neither has been answered fully. The Almighty has his own purposes. “Woe unto the world because of offenses; for it must needs be that offenses come, but woe to that man by whom the offense cometh.” If we shall suppose that American slavery is one of those offenses which, in the providence of God, must needs come, but which, having continued through his appointed time, he now wills to remove, and that he gives to both North and South this terrible war as the woe due to those by whom the offense came, shall we discern therein any departure from those divine attributes which the believers in a living God always ascribe to him? Fondly do we hope, fervently do we pray, that this mighty scourge of war may speedily pass away. Yet, if God wills that it continue until all the wealth piled by the bondsman’s two hundred and fifty years of unrequited toil shall be sunk, and until every drop of blood drawn with the lash shall be paid by another drawn with the sword, as was said three thousand years ago, so still it must be said “the judgments of the Lord are true and righteous altogether.”
  With malice toward none, with charity for all, with firmness in the right as God gives us to see the right, let us strive on to finish the work we are in, to bind up the nation’s wounds, to care for him who shall have borne the battle and for his widow and his orphan, to do all which may achieve and cherish a just and lasting peace among ourselves and with all nations.
  
  * 번역·해설 都正一 경희대 영문과 교수·한국영상문화학회 회장
  
  
[ 2005-12-29, 09:2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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