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지성이 만들어낸 민족주의 신화
이영훈 교수 인터뷰: '맹목적 反日주의’ 와 잘못된 과거사 정리를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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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훈교수 인터뷰 (상)
  한국 문명에 대한 책임과 반성 뒤따라야
  [ 편집부 / 2005-12-30 00:16 ]
  
  '2005년의 12월 마지막 주, 교과서포럼의 공동대표이자 낙성대연구소 소장인 서울대 이영훈교수를 만났습니다. 이 교수는 감성적 민족주의에 취해 '가상의 역사'를 만들어내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며 교과서는 실증적 자료를 바탕으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비판적 시각으로 구성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특히, '맹목적 반일감정'을 자극하는 반지성의 한국사회와, 과거의 역사경험을 일괄적으로 청산하려는 현정부의 과거사정리작업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2006년 보다 다양한 대중운동을 계획중이라는 이영훈교수와 교과서포럼에 큰 기대를 걸어봅니다.-편집자 주'
  
  
  천국과 지옥의 극단을 오간 20세기
  
  ▶ 올해는 광복 60주년, 을사늑약 100주년, 건국 57주년입니다. 지금까지의 대한민국 역사를 총괄적으로 평가한다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 20세기는 어떤 의미에서 극단의 시대였습니다. 한국만큼 극단적인 경험을 한 국민은 없어요. 식민지가 되어 국가와 민족이 해체될 뻔 했고, 해방이후 다시 국민국가를 건설하여 세계 10위의 경제교역국으로 발돋움 했으니까요. 천국과 지옥, 극단과 극단을 왕복한 시대였습니다. 여기서 전제돼야 할 것은 우리 민족 스스로의 노력이 아닌 세계 자본주의 환경의 변화, 지배 헤게모니 세력의 충돌과 교체 과정에 따른 결과라는 점입니다.
  
  - 조선왕조의 실패는 외교.군사노선의 실패뿐 아니라 한반도 문명사회의 실패라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조선왕조에게는 여러 가지 선택이 놓여있었죠. 첫째가 일본제국의 식민지, 둘째는 러시아의 승리를 전제로 한 소련 사회주의 제국, 세 번째가 청나라의 승리를 전제로 한 중국의 식민지입니다. 만약 청일전쟁에서 청국이 승리했다면 한국은 지금의 신강이나 티벳과 같은 나라가 되었을 가능성이 크고, 러시아가 러일전쟁에서 승리했다면 볼세비키 혁명에 휩쓸려 한민족 자체가 소멸될 수도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극적인 변화를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한국민족은 수동적으로 맞고 있었던 것이고 한국의 운명은 타율적인 힘에 의해 결정되었던 거에요.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서늘해집니다. 그런 엄중한 국제정세의 변화와 규정성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되고, 이를 20세기 역사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합니다.
  
  - 올해는 여러 가지 중요한 역사적 의미가 많았던 한 해였는데, 그 자체를 전체적으로 종합해서 20세기 전체를 하나의 역사적 흐름으로 조망하고 우리는 어디에 와 있는가에 대해서 진지하고 자성적 노력이 없었지요. 저는 그것이 ‘지성의 한계’라고 봅니다.
  
  
  아직도 성리학적 담론에 젖어있는 역사학계
  
  ▶ 그렇다면, 왜 이렇게 세 가지 선택, 일본의 동아제국, 소련 사회주의 제국, 중국 대륙의 식민지가 될 수밖에 없었을까요?
  - 가장 중요한 것은 중국에 지나치게 의존적인 정책을 취했기 때문입니다. 중국이 해체되기 직전까지도 조선의 고종은 중국의 번, 제후로서의 국제적 지위를 대단히 명확하게 재확인했고 그 역할에 충실했습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적인 세력들의 국익을 적절하게 조정하면서 헤게모니를 확보해나가는 외교적 지략이 부족했던 것이지요. 그만큼 중화사관에 매몰되어 있었던 겁니다.
  
  - 두 번째는 사회, 국가, 세계에 대한 이해가 지나치게 관념적이었다는 점입니다. 성리학에서 국가는 군국의 실체가 아닌 예의 질서로서 존재합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동심원적 질서의 확장과정의 한 파동으로서 국가가 존재했을 뿐, 스스로 개인과 사회로부터 분리된 독자적 통합기재로서 인식되지 못한 것입니다. 즉, 도덕적으로 정당하면 왕조는 영원히 건강할 것이라는 논리입니다. 이런 성리학적 예의 질서로서 사회가 관념화되었기 때문에 청국이 한반도로 넘어왔을 때 실무적 대응이 불가능했던 겁니다.
  
  - 이처럼 조선왕조는 성리학적으로 순화된, 완벽한 통합을 특징으로 하는 사회였기 때문에 19세기 이후의 조선왕조는 내부적으로는 경제의 대실패로 모순이 증대되고 밖으로는 한반도를 포섭하려는 러시아, 중국, 일본제국의 각축 속에서 전혀 대응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인구 2천만의 국가가 문명적 대응에 실패한 결과는 너무도 엄중한 것이어서, 세계사에서 그 지도가 다시 회복되리라 예견할 수조차 없었던 처참한 상황에 내몰린 것이죠.
  
  - 그런데 불과 100년 전의 사건을 까맣게 잊어버리거나 다른 식으로 호도하고 있으니 정말 안타깝습니다. 국사학계에서는 흔히 ‘선량한 주인과 광폭한 손님’으로 비유합니다. 선량한 주인이 찾아온 손님을 극진히 대접했는데 갑자기 그 손님이 강도로 변해버렸다는 것이죠. 이 역시 성리학적 담론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런 도덕주의적 시각으로 제국주의 시대를 해석할 경우 한국 문명의 책임과 반성은 배제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한국의 위기인 것이구요.
  
  ▶ 올해 초 논란이 됐던 한승조교수님 주장 역시 비슷한 취지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일본 지배를 탓하지만 말고 그 과정에서 배울 것은 배우자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런 본래의 의도는 사라지고 ‘일본의 식민지가 조선에는 축복이었다’는 식으로 호도되어 버렸습니다. 선생님 말씀처럼 역사에서 배우려는 노력보다 도덕적 해석에 치중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 한승조 교수의 주장이 나름대로 진실을 담고 있음에도 이를 성찰적으로 수용할 수 없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대한민국이라는 국민국가 속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교수의 이야기도 식민시대에는 지배이데올로기로서 당연한 것이었고, 50~6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 사람들이 먹는 문제만큼은 해결했다는 식으로 왜정시대를 회고하는 것은 어찌보면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거든요. 하지만 그 시대를 경험하지 못했던, 60년대 이후 공교육을 받았던 50대 이하의 세대, 특히 감성적이고 민족주의적 교육을 받은 20~30대 젊은 층은 반발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대한민국의 성립과 자기발전 과정에서 민족주의를 국가 이데올로기로 신격화한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누구도 저항할 수 없게 된 ‘민족주의’, 폐해가 더 커
  
  ▶ 사실 저희같은 운동권들도 민족주의를 극단적으로 활용했었습니다. 좌우 모두 민족주의를 선동한 결과로 보여지는데요,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진 걸까요?
  - 19세기까지는 민족이라는 감정이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날 한국인들이 알고 있는 백두산 이미지는 조선왕조 시대에는 존재하지도 않았고 민족이라는 말도 없었어요. 민족이라는 말은 러일전쟁이후 일본에서 수입돼 최남선의 ‘3.1독립선언서’에서 공식화되었고, 그 이후에 지식인을 중심으로 보편적으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특히 1920~1921년 레닌의 민족문제에 대한 국제 코민테른 노선이 확립되면서부터 민족은 중요한 혁명적 범주로서 신화화되는 과정을 겪게 되지요. 결국 한국인들의 자기 재생을 위한 염원과 몸부림, 그리고 국제 사회주의운동의 두 가지가 결합되어 강력한 정치이데올로기로 승격된 것입니다.
  
  - 해방이후에는 남북한 집권세력 모두가 철저히 민족을 신화화합니다. ‘개천절’을 정해 단군신화를 국가신화로 만든 것이나, 백두산을 ‘민족의 영산’으로 신격화한 것 등이 그것이지요. ‘백두산 영공에 태극기를 날리자’라는 식으로 민족을 창조해온 겁니다. 식민지 시대를 경험하는 과정에서 경험한 무의식적인 정신적 변화를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조직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보다 극단적인 것이 북한의 경우라면 남한은 좀 더 이성적 모습을 띠지만 이승만과 박정희 전대통령 모두 민족주의를 중요한 정치적 통합 이데올로기로 삼았고, 심지어 권위주의에 저항하는 민주화 세력들도 민족주의를 정치적 동원의 수단으로 활용했습니다. 이제 민족은 누구도 저항할 수 없는 개념이 되어버린 느낌입니다.
  
  ▶ 민족주의가 긍정성과 부정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하나요?
  - 식민지시대에는 물론 긍정적 역할이 있었다고 봅니다. 오늘날 조선인이 현대 한국인으로 재생하는 과정에서 민족주의 역할은 컸다고 보지만, 적어도 민주화가 된 이후의 민족주의는 부정적 측면만 크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왕조의 실질적 몰락은 임오군란
  
  ▶ 조선 해체의 과정에서 갑신정변 세력이 외부세력 사이에서 온존할 힘이 없었다고 하는데 만일 내재적으로 갑신정변 세력들이 힘을 확보하고 있었고 또 신미양요 이전에 미국과의 연계를 강화했다면 그 위기를 탈출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 실제로 그런 노력이 있었습니다. 보통 1905년 을사조약 체결로 조선이 일본의 보호국이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상 조선왕조가 외부세력의 보호국이 된 것은 임오군란 때입니다. 조선은 중국의 번령임을 청국과의 조약에 명시했고 중국의 황제가 명령을 하는 형태로 양국의 외교관계가 정립되었고, 조선의 국왕은 중국에 대한 사대를 맹세했고, 중국에서 재정, 외교고문이 파견되어 조선의 외교.재정권을 장악했습니다. 이게 보호국이 아니면 뭡니까? 개화파가 반발한 것은 바로 이 대목입니다. 중국으로부터의 독립, 조선이 어떻게 자립할 것인가의 문제가 개화파의 최대 관심사였던 것이지요. 갑신정강 제1조에 ‘대원군의 조속한 환국’을 명기한 것도 독립에 대한 의지로 볼 수 있습니다.
  
  - 또 개화파는 임오군란 발생 전에 영국, 미국등과 접촉을 시도했습니다. 예를 들어 1876년 조약 체결시 국제조약의 경험이 없는 조선왕조는 관세없는 통상조약을 맺게 되었고, 나중에 이를 깨달은 조선왕조가 개정을 요구하지만 일본으로부터 거절당했지요. 이 때 개화파들이 영국, 미국 등과의 접촉을 통해 관세에 대한 조선왕조의 권리를 인정하도록 합니다. 이처럼 미국과 영국세력을 끌어들여 일본과 중국을 견제한다는 것이 개화파의 전략이었던 것이지요. 임오군란으로 차질이 빚어지기는 했지만 저는 개화파의 기본 전략, 일본의 우호적 협조를 기대한 것도 옳았다고 봐요.
  
  - 당시 개화파의 개혁이 성공을 했더라면 아시아 역사는 달라졌을 겁니다. 실제 일본은 김옥균의 실패 이후 중국과의 군사대결구도가 불가피함을 깨닫고 전쟁준비에 들어가게 되거든요. 이미 1885년부터 군사비가 일반 재정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급격히 증가하게 되고 1889년에는 그 유명한 ‘한반도는 일본의 국익선이다(한반도에서 일본이 국익을 확보하지 못하면 일본의 존립은 어렵다)’라는 말이 나오게 됩니다. 또 일본 근대사상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후쿠자와 유기치라는 사람이 ‘탈아론(脫亞論, 일본은 아시아를 벗어나서 유럽으로 진출해야 한다)’을 주장하는데 이것 역시 김옥균의 실패를 보고 나온 말입니다.
  
  - 갑신정변은 매우 국제적인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워낙 지지할 만한 중산계층이 없었고, 농촌은 성리학에 기초한 질서가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성공하기는 힘들었어요. 역사학자들은 너무 성급했다고 지적하지만 저는 지금까지도 용산에 외국군이 와 있는 단초를 제공한 임오군란에 대한 위기의식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토오 히로부미는 끝까지 일본의 한국 병합에 반대했다
  
  ▶ 일본의 입장으로 보면 국익에 따른 합리적 판단을 했던 것으로 볼 수도 있겠군요.
  - 일본의 한국병합과정도 많은 연구가 필요합니다. 1876년부터 한국을 침입할 계획을 세워서 단계별로 추진해왔다는, 즉 일본이 처음부터 한반도 병합의도를 분명히 했던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잘못된 겁니다. 한국의 대응, 중국의 대응, 세계의 대응이 상호 교차하는 과정에서 일본으로서도 하나의 불가피했던 선택과정으로 구체화되고 가시화되는 과정이었을 뿐이거든요. 저는 1905년 그 당해까지만 해도 아직은 상황이 유동적이었다고 봅니다. 일본의 초대통감 히로부미 같은 사람도 자신이 실권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 병합을 반대했거든요.
  
  -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지만, 이토오 히로부미는 ‘독자적인 문화를 1천년 이상 갖는 민족을 식민지로 병합한다면 일본으로서는 큰 후환’이라고 말했습니다. ‘대한제국을 도와서 대한제국 스스로 부국 강병해져 일본과 협조적인 세력이 되는 것이 최선’이라는게 이토오 히로부미의 입장이었죠. 1905년 한국의 재정고문으로 파견된 메가다는 화폐개혁과 재정개혁을 단행한 이후 곧바로 토지조사 사업을 시도하지만, 이토오가 이를 막았고 그래도 말을 듣지 않자 일본으로 쫓아버린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토오는 토지조사를 통해 한국에 대한 식민사업을 하는 것이 아직 시기상조라고 보았던 것이고, 나름대로 상황을 관찰하면서 다른 길을 모색했던 것으로 볼 수 있지요. 하지만 송병준을 중심으로 하는 일진회의 이토오 탄핵, 고종의 헤이그 밀사사건 등으로 인해 이토오의 노선은 결국 좌절을 하고 맙니다. 이런 상황으로 미뤄 볼 때 일본의 한국 병합 자체도 끝까지 상황은 유동적이었고 한국인들의 자기 주체적 실천에 따라 다른 길의 가능성도 있었을 것이라는게 제 생각입니다.
  
  - 조선왕조가 20세기 세계사 지도에서 지워질 수도 있었던 엄청난 비극을 발생시킨 원인은 맹목적 반일주의였다고 봅니다. 당시 지배집단에는 일본과의 협력을 모색하는 생각 같은 건 아예 없었거든요. 사실 200~300년간 평등한 관계였던 일본의 지위가 어느날 갑자기 격상되어 조선왕조에 대해 고압적 태도를 보이니 수용할 수 없었겠지요. 나라를 빼앗겨 식민지가 된 이후에도 조선왕부터 시골의 유생까지 일본을 ‘흑치(黑齒, 이가 검은 야만인들)’라며 비하했을 정도니까요. 이같은 맹목적인 반일감정과 문화적 우월감이 결국 실용주의적 외교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망국사를 통해 통절히 반성하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일본과의 협력을 강화해야 하는데 지금 우리나라를 보면 그렇게 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자꾸 드네요.
  
  
  ‘맹목적 반일주의’는 반지성이 만들어낸 민족주의 신화일 뿐
  
  ▶ 제가 학교에서 배웠을 때도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내용으로 국사교과서가 채워져 있었고, 아직까지도 종합적이고 객관적인 서술은 부족한 듯 합니다. 교과서포럼이 출범한 것도 이런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 때문이었겠지요?
  - 국사교과서의 문제는 보통 심각한게 아닙니다. 특히 김대중 정권에 이어 현 정부는 민족과 과거사 청산을 가장 중요한 정치적 전략과 조작의 도구로 삼기 시작했습니다. 노대통령은 취임하면서부터 ‘한국사회에서 정의는 패배했다’고 단언했고, 6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과거사 청산을 국가적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잖아요? 우리는 1970년대 국정교과서 체제로 전환되면서 ‘가상의 역사’를 만들어왔습니다.
  
  - 식민지에 관한 역사 서술도 질적 수준이 얼마나 떨어지는지 몰라요. 일본이 토지의 4할을 빼앗았다거나 식량의 절반을 약탈했다고 하지만, 이것은 시장기재를 통해서 일본의 쌀값이 비싸니까 한국의 쌀이 건너가는 것이고, 또 당시 일반 민중들 입장에서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이야기였거든요. 소작인들이야 쌀밥을 먹을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으니까요.
  
  - 650만 명이나 되는 사람을 강제동원해서 전쟁에 끌고 갔다는 것도 사실이 아닙니다. 소설가 조정래씨는 “600만 명 이상을 동원하고 연행한 일본 총독부의 범죄는 히틀러가 유태인을 600만 명 살해한 것과 같다”고까지 주장했지만, 실제 일본에 간 사람들은 모집, 관할선, 징용에 의해 70만 명 정도로 보는 것이 정설이거든요. 군인과 군속을 합쳐 30~100만 명이고, 나머지 500만 명은 근로보국, 즉 노력봉사 인원입니다. 도로도 닦고 비행장도 닦는 일들로, 얼마전 호남지방에 엄청난 폭설이 내린 뒤 주변 지역 사람들이 동원되어 복구작업을 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이런 것을 ‘강제연행’이라는 말로 둔갑시켜 650만 내지 840만 이라는 신화를 만들어내고, 또 아무런 검증없이 교과서에 쓰고 있는 것입니다. 이건 분명히 반지성이죠. 맹목적인 반일주의는 이미 대중의 정서로 자리 잡았고 노무현대통령에 의해서 정치적 수단으로 동원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독도문제에요. 노대통령은 독도문제를 자신의 정치적 지지도 만회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했으니까요.
  
  
  대한민국의 성립은 抗日운동이 아닌 미국 戰後체제의 결과
  
  - 한 사회가 역사적, 지식적으로 위선에 빠지면 후환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19세기 조선왕조가 망한 것도 마찬가지에요. 조선왕조에서도 병자호란을 수습한 사람은 후에 사문난적으로 몰려 패가망신을 당했고, 아무 대책도 없이 척화론을 주장했던 사람들이 오히려 조선왕조를 200년간 지배하지 않았습니까? 배명의리를 내세웠던 건 분명히 위선이었죠. 이런 위선이 지성을 지배하게 되면 그 사회의 창조적 지성이 질식하고 맙니다. 대한민국의 성립과정이 세계 2차 대전과 미국의 전후체제의 결과임을 왜 못 가르칩니까?
  
  - 자유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체제의 기본이념으로 하는 사회가 들어선 것은 우리의 전통과 직접적 관계가 없는 일입니다. 미국의 점령체제와 그 점령체제를 이해한 식민지 계급에서 성장한 지식인들이 중심이 되어 나라를 세운 것이고, 그것이 올바른 선택이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한국이 존재하게 된 거죠. 우리 역사교과서에는 대단히 조직적이고 군사적인 항일전선이 있었던 것처럼 쓰여져 있지만, 이건 완전한 조작이에요. 김일성처럼 ‘한반도를 군사적으로 해방시켰다’라고까지는 못해도 기본 정서는 같다고 볼 수 있죠. 역사학자들 중에는 민족정기상 어떻게 그런 교육을 할 수 있느냐고 하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저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가르칠 때 학생들이 더 민족의식을 강화하고 문명인으로서 주체의식과 사명의식을 갖게 된다고 믿어요.
  
  *인터뷰 (하)에서 계속
  
  정신차린386 우리의 살 길은 국제화, 일본과 시장통합 이뤄야
  이영훈 교수 인터뷰 (하)
  문명사적 전환을 일괄 청산하려는 과거사정리는 실패할 것
  [ 편집부 / 2005-12-30 00:16 ]
  
  
  
  북한에 대해 아무 비판의식도 없는 지식인사회
  
  ▶ 병자호란을 예로 드셨는데, 결국 신화에 사로잡힌 세력이 가는 곳은 북한같은 체제일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 김대중대통령이 북한을 다녀온 지 5년이 되었지만 북한은 전혀 변화하지 않고 있고 남한만이 정신적 혼란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대학교수들조차도 같은 민족이 노예상태로 있는 북한에 아무 비판의식없이 관광차, 회의차 다녀오고 있으니까요. 지성의 공백과 혼란입니다. 더 우려되는 것은 현 집권세력이 결국 남북문제를 집권의 수단으로서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입니다. 민족이라는, 20세기 들어 한국인들이 발견한 혈연공동체적 정치이데올로기가 일종의 감성체계로, 정치적 동원의 수단으로 전락하게 되면 그 후유증은 상상을 할 수 없습니다. 지금 이미 한국을 성립시켜온 국제 기본질서, 태평양 삼각동맹으로부터 이탈해서 남북연합을 하겠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나오지 않습니까? 정말 역사의식이나 교육이 중요해요. 이런 이야기를 교과서포럼이 국민들한테 성큼 다가가서 해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 지금까지 글로도 많은 곤욕을 치르셨는데 내년부터 대중들에게 적극적으로 그런 이야기를 하시면 훨씬 많은 공격이나 비난이 있지 않을 텐데요.
  - 근대 과학을 키운 바탕은 실증입니다. 지난 40년간 잘못 교육된 세대들이 아무리 공격한다 해도 데이터와 자료를 제시하면 문제없어요. 물론 조심스럽게 전략적, 효율적으로 접근할 필요는 있겠지요.
  
  - 내년에는 낙성대연구소에서 중요한 책 2권이 나옵니다. 1910~1940년까지 일제의 조선 식민지기의 경제적 변화를 오늘날 한국은행이 매년 추계하고 있는 국민계정과 같은 수준의 포괄성과 정확성을 갖는 통계로서 종합 검증하는 책이 2월 경 나올 예정입니다. 연말쯤에는 17~20세기까지 4세기 간에 걸치는 경제통계를 망라한 ‘Historical Statistics in Korea’라는 통계서가 나오게 됩니다. 여기에는 지난 17세기 이후 한국인의 경제생활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장기적 트랜드를 명확히 볼 수 있을 겁니다. 사실 우리의 최대 무기는 이런 것이지요.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아요.
  
  
  교과서포럼, 대중적 활동 강화할 것
  
  ▶ 교과서포럼이 많은 사람들에게 지지를 받고 기대를 모았는데. 올해 중점적으로 다뤄졌던 사업은 무엇이고, 또 내년에는 어떤 활동 계획을 갖고 계신지요?
  - 올해 4차례 포럼을 했는데 새해부터는 지방 순회강연 등을 통해 대중적 활동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글도 많이 써야겠지만 대중적인 강연, 만남을 통해서 교과서포럼의 지평을 넓혀가자는 것이지요.
  
  - 2008년도부터 제8차 교과과정이 시작되는데, 지금 한창 교과과정 개정 작업이 진행중입니다. 가능한 이 과정에 참여하고, 과정 자체를 공개할 수 있도록 요구도 할 생각이에요. 지금은 교과서 편수지침을 만드는 사람이 누구인지 명단조차 밝히지 못하고 있는데 이게 말이 됩니까? 가능한 다양한 전공자가 참석해서 특히 현대사에 관한 균형잡힌 문명사적 서술이 이뤄지도록 요구할 생각입니다.
  
  ▶ 중.고등학교 교과서를 보면 사회경제 영역까지 매우 편향되게 기록되어 있던데 그 문제까지도 다루실 계획이십니까?
  - 제가 볼 때 사회경제 교과서의 문제는 한국 경제가 그동안 어떻게 발전해왔는가, 한국경제의 발전, 경로나 유형, 그것을 가능케했던 주체적 실천, 국민경제로서 한국경제가 갖는 특수성을 학생들에게 교육을 하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는 막연하게 평등주의 이데올로기에 입각해서 기업이나 재벌, 농업문제, 중소기업 문제에 대해 실상과 뒤떨어진 오역, 편향된 평등주의적 교육을 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 얼마 전에도 글을 썼지만 한국경제가 이렇게 고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동력은 우리 경제 내부에 있었던 것이 아니고 미국이 펼쳐놓은 세계 자유주의 무역시장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국내에는 양질의 노동력이 존재했고, 옆에는 일본이라는 세계 제2의 공업국이 존재했지요. 이런 조건을 이용해서 소위 조립.가공의 형태로 수출무역을 일으켰고 선진국의 넓은 시장에 되파는 식으로 축적의 기초를 마련했기 때문에 산업혁명을 고전적으로 수용한 18~19세기 영국 등에서 볼 수 있는 노동자의 저임금 착취는 구조화되지 않았습니다. 저임금이 아니었다는게 아니라 저임금으로 인해서 노동자의 키가 작아진다든가, 교육을 받지 못하는 도시 빈민굴이 세대간에 세습화된다는가 하는 형태의 구조화된 저임금 착취에 의한 경제성장은 아니었다는 것이지요.
  
  - 농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는 줄곧 고미가(高米價) 정책을 계속 취해오지 않았습니까? 이미 70년대부터 농민을 중심에 두지 않고 농업이라는 산업정책을 계속해왔기 때문에 오늘날 이 상황이 된 거에요. 70년대 후반부터 경제기획원 관료들은 농촌경제의 핵심은 농업이 아니라 농민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농촌에 공장, 문화관광사업을 어떻게 도입할 것인가를 기획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30년간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어요. 농민단체의 기득권을 주장하다가 지금의 농업 파탄이 생긴 것이지요.
  
  
  21C 세계무역 시대에 19C식 대륙진출을 말하는 교과서
  
  - 따라서 교과서도 한국 경제가 갖는 고유한 다이나믹성이나 시장변화를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가 살 길은 고급화된 국제화시대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어요. 일본과는 시장통합을 이뤄야 합니다. 과거 박정희 전대통령이 국교를 재개할 당시의 강인한 기세를 갖지 않으면 시장통합을 할 수가 없어요. 세계 제2의 공업국인 일본과 시장통합을 하면 장기적으로 번영할 토대가 마련되고 중국과 북한에 어떠한 돌발변수가 생겨도 안정화될 수 있거든요. 우리나라는 과거 한미동맹을 맺고 한일 국교를 재개한 것과 같은 사명감을 갖고 일본과 시장통합을 추진해야 합니다. 그런 국민적 과제를 교육시키는 것이 우리 사회과 교과서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런데 지금은 대륙으로 진출하자고 합니다. 어느 사회과 경제과 교과서를 보더라도, 또 최근에 나온 근현대사 학습지침을 보면 아시아를 관통하는 철도계획을 써놓고 일본을 제쳐놓고 있어요. 마치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의 철도시대를 연상하면서 한국의 장래를 가르치고 있는 겁니다. 지난 40년간 세계 6대양을 무대로 활발하게 세계경제를 펼친 나라에서 이제와 대륙으로 진출하자며 철도망을 이야기하니 참 한심한 노릇이지요. 이런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민족’이라는 코드를 중심으로 해서 교육이 구조적으로 왜곡돼 있는 겁니다. 이런 교육을 받은 세력이 다음에 집권을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 보통 정권이 허약하면 허위 이데올로기를 동원하고 파시즘이나 나치즘이나 민족주의 같은 것이 동원되는데 박정희 전대통령의 경우에는 내재적으로 발전을 이끌어왔음에도 왜 굳이 민족주의를 동원했을까요?
  - 10월 유신체제가 그렇지요. 박대통령의 실책중 하나라고 봅니다. 박 전대통령이 좋은 정책을 많이 했지만 특히 교육 평준화나 한글전용을 강요한 것이나, 집권책의 일환으로 민족문제를 정략적으로 이용한 것 등은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겁니다. 대략 2가지 정도로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중 하나가 중화학 공업화입니다. 결과적으로 큰 역사적 공을 남겼지만 당시만 해도 모두가 반대를 했었거든요. 미국은 비록 지배는 하지 않았지만 강한 간섭자일 수 있었고, 1968년 이후에는 실제 정치적 긴장관계가 조성되고 중국과의 국교회복이 이런 상황을 가중시키면서 박대통령 스스로 그런 불가피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둘째는 역대 대통령 모두 극과 극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니까 근본적으로는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이 있었는지도 모르지요. 박정희 전대통령의 글을 보면 이런 생각이 묻어나 있습니다. 복잡한 인생의 행로를 걸으면서 적어도 민주주의는 교도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했다고 봐요. 하지만 냉정한 평가를 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요.
  
  
  박정희시대의 패러다임은 끝났다
  
  ▶ 오히려 박정희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박정희 유산을 계속 붙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3불정책이나 민족주의를 증폭시키거나 하는 것이 박정희 유산을 극복하자고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거든요. 성과는 부정하면서도 부정적인 것은 계속 안고 가는 모양새입니다.
  - 박 전대통령이 구축한 패러다임은 정부가 시장 자체의 역할을 떠맡은 것으로 지금은 계승될 수가 없어요. 그때는 시장이 없었지만 지금은 자율적인 시장이 성립되었으니까 과감하게 자율화를 해야지요. 일본과 시장통합을 이루고 민간단위에서 할 수 없는 일을 정부가 전략적으로 소수의 과제를 선택을 해서 집중적으로 추진해야 합니다. 작은 정부가 강한 역할을 하는 것은 박정희의 패러다임이 아니에요.
  
  - 한국 경제의 포인트가 뭡니까? 고급인력의 네트워크를 충분히 활용해서 정보를 얻고, 그것을 바탕으로 선택과 집중 투자를 하는 것이 정부의 가장 중요한 역할입니다. 그런 점에서 여전히 선진화 전략을 위한 정부의 역할은 중요하지만 그렇게 못하고 있어요. 오히려 박정희를 부정하면서도 박정희가 했던 식으로 해보고 싶어서 자꾸 프로젝트를 만들어 내지 않습니까? 자치단체가 해야 할 일에 정부가 나서고, 수도권에 모여있는 클러스트를 해체하겠다는 결정이며 모든게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임기중에 무슨 성과를 내놓고 싶다는 생각에 무리하게 추진하는 거에요. 이런게 오히려 박정희시대의 유산 아닌가요?
  
  
  잘못된 역사해석에 기초한 과거사정리는 반드시 실패할 것
  
  ▶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올해는 대한민국 해방 60주년, 을사늑약 100주년, 건국 57주년입니다. 이런 의미있는 공간속에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긴밀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은 채 ‘과거사정리위원회’만 남아 있는 것 같은데요, 과거사정리위원회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 실패할 겁니다. 잘못된 역사해석에 기초해 있거든요. 전통 조선인이 현대 한국인으로 탈바꿈하면서 치러야 했던 문명사적 전환의 경험을 청산의 대상으로 삼고 있고, 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지불해야 했던 비용을 죄악시하고 있습니다. 물론 국가가 저지른 반인륜적 범죄나 학살, 차별은 규명돼야겠지요. 이건 특별법이 아니더라도 학술적 활동을 통해서나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지난 100년간 지옥과 천당을 오가면서 경험했던 모든 역사적 경험들을 청산의 입장에서, 특히 일제시대 지식인이나 상공업자, 관료로 성장했던 사람들의 대일협력 문제를, 더구나 자발적 협력이 아닌 강요된 협력까지도 일괄적인 청산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올바르지 않아요.
  
  - 둘째, 준비가 되어있지 않습니다. 강제연행진상조사에 대해서는 낙성대연구소에서도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중입니다만, 직접 인터뷰를 해보면 그 시대를 살고 막상 강제노동 현장에 다녀온 사람들의 체험담은 공식화된 법률로서 규정한 것과 엄연히 다릅니다. 소위 말하는 강제동원 연행에 관해서 제대로 된 논문 하나 책 한권이 없어요. 연구가 전혀 안돼 있는데 법을 만들어 청산하겠다는건 잘못이지요.
  
  - 특히 금전적 보상과 과거사 청산을 연계시키고 있다는 것은 정말 최악의 선택입니다. 오늘 아침 신문에도 보니까 어떤 신부님이 광주 민주화운동 때 1억의 보상금을 받아서 사회에 쾌척했다는 기사가 실렸더군요. 제 주변에도 그런 사람이 있어요. 15일 정도 구류를 살고 3천만원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제 사촌이 6.25 참전용사인데 한달에 7만원을 받고 있습니다. 고작 1년에 84만원인데 15일 구류에 3천만원 받은 사람과 비교가 됩니까? 국가보훈체계가 엄청난 대혼란을 겪고 있어요. 전쟁 막바지에는 보수도 못 받고 강제노동에 동원된 사람의 경우 당연히 보상이 돼야겠지만, 39년부터 있었던 모든 형태의 노동을 전부 동원과 포상의 대상으로 규정한다면 엄청난 대혼란이 발생할 겁니다. 실제 2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그런 기대를 하고 있어요. 군청에서 신청하라고 해서 신청서를 냈다는 사람이 20만명에 이릅니다. 아무 준비도 없이 뭘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어요.
  
  ▶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신년 인사 한말씀 해주십시오.
  - 민족주의 신화로부터 벗어나 문명인으로서 자립을 해야 합니다. 문명인으로서 자립하는데 가장 중요한 덕목은 상호협동이지요. 민주적인 사회질서를 건설해나가기 위해서 나에게 주어지는 시대적 사명이 무엇인가, 민족의 성원으로서가 아닌 하나의 문명인으로서, 정신적으로 자립된 인간으로서 자유와 인권에 대해 정신적 자각을 가졌으면 합니다. 하지만 이런 개념도 불분명한 것 같아요. 얼마전 김대중 전대통령은 우리가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큰 도움이 됐다며 먹고 마시는데 기여했다고 하지만, 먹고 마시는 것은 인권이 아니거든요. 인권은 기본적으로 이동의 자유, 결사의 자유, 직업의 자유, 사상과 종교의 자유인데, 우리는 아직 이런데 대한 확고한 개념이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인권과 자유의 십자군으로서, 문명인으로서 자기 자신의 현주소를 확실히 자각해야 합니다.
  
  ▶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끝)
  
  
[ 2006-01-03, 22:1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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