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義는 평화보다 더 소중하다"
우드로 윌슨의 제1차 세계대전 參戰 요구 연설(1917년 4월2일)

번역; 정영목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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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義는 평화보다 더 소중하다”
 
[연설의 배경] 우드로 윌슨은 미국의 제28대 대통령(1913~1921)으로서 제1차 세계대전의 격변기를 통과한 인물이다. 그에게는 미국의 참전 결정을 내리는 과제와 세계대전을 마무리짓고 새로운 세계 체제를 구성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1915년 독일 잠수함이 영국 여객선 루시타니아호를 격침시켜 미국인 128명을 포함한 승객 1,198명이 사망하자 윌슨 대통령은 독일 정부에 강력히 항의, 독일은 그해 9월 중립국 선박이나 민간 여객선은 공격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독일은 1917년 2월 무제한 잠수함 공격을 재개한다. 또 독일 외상 짐머만은 멕시코 주재 자국 전권공사에게 미국이 참전하면 멕시코가 미국을 공격하도록 공작하라는 암호전문을 보냈으나 영국 첩보당국이 이를 가로채 해독하여 미국에 넘긴다. 이런 과정을 통해 결국 윌슨은 참전을 결심하고, 2월3일 의회 연설을 통해 독일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한다고 발표한다. 그리고 1917년 4월2일 의회에서 윌슨은 다음에 수록된 것과 같은 연설을 한다. ‘전쟁교서’로 알려진 이 연설이 있은 지 나흘 뒤 의회는 압도적 다수로 전쟁 결의안을 통과시키고 독일제국에 선전을 포고한다. ‘전쟁교서’는 일차적으로 미국 참전의 계기가 된 문건이라는 의미를 갖지만, 동시에 거기에 나타난 윌슨 대통령의 이상주의적 구상이 실제로 전쟁 후의 세계 질서 재편의 밑그림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윌슨 대통령이 구상한 국제연맹에 정작 미국은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이러니지만). 우리 민족과 관련된 민족자결주의는 1918년에 국제연맹 구상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이지만, 이 문건에서도 그 싹을 찾아볼 수 있다. 러시아의 변화에 대한 우호적 발언은 극좌파인 레닌의 볼셰비키 10월 혁명이 있기 전에 행한 연설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연설에서 가장 유명한 대목은 “민주주의를 위해 세계는 안전해져야 한다”는 대목이며, 이것이 곧 미국의 참전 명분이기도 했다. 마지막 구절은 16세기 독일의 종교개혁가인 마르틴 루터가 했던 말을 원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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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의원 여러분, 내가 의회에 특별 회기를 요청한 것은 심각한, 대단히 심각한 정책 선택의 문제, 그것도 당장 결정을 내려야 할 문제가 있는데, 그 결정의 책임을 내가 떠맡는 것은 옳은 일도 아니고 헌법이 허용하는 일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난 2월3일 나는 여러분에게 독일제국 정부의 특별 발표를 공식적으로 전달했습니다. 발표 내용은 독일 정부가 2월1일부터 법과 인도주의에 의한 모든 제약을 무시하고, 영국과 아일랜드의 항구, 유럽 서해안, 지중해 내의 독일 적국 항구에 접근하는 선박은 모두 잠수함으로 격침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전쟁 초기부터 독일 잠수함전의 목표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작년 4월 이후 독일 정부는 당시 우리와 했던 약속에 따라 잠수함 지휘관들의 행동을 다소 제한했습니다. 그 약속은 여객선은 격침하지 않으며, 공격 대상으로 삼는 다른 선박들의 경우에도 저항하지 않거나 도주를 시도할 때는 적절한 경고를 하여 적어도 승무원들이 구명선으로 목숨을 구할 수 있는 기회 정도는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방 조치는 미흡해서 위험은 여전히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 잔인하고 비인간적 행위로 희생된 조난선들을 통해 여러 번 확인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때까지는 어느 정도 자제가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반면, 새로운 정책은 이 모든 자제 조치를 내팽개쳤습니다. 독일 잠수함은 국적, 선박의 성격, 적재화물, 목적지, 임무를 불문하고 모든 종류의 선박을 경고 없이, 그리고 승선자들을 불쌍히 여겨 구출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무자비하게 격침했습니다. 교전국의 선박만이 아니라 우호적 중립국의 선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심지어 병원선, 또 슬픔과 고통에 시달리는 벨기에 국민에게 구호물자를 싣고 가던 선박들마저 동정심도 없고 원칙도 없는 무모한 공격으로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벨기에로 가던 배들은 다름 아닌 독일 정부가 해당 구역 통과를 보장한 안전통행권을 가지고 있었고, 또 그 특색 때문에 다른 배로 착각할 수가 없었음에도 공격을 당했습니다.
  지금까지 문명국의 인도적 관행에 동의해온 정부라면 절대 그런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나는 잠시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바다는 어떤 나라도 지배권을 가지지 못한 곳이었고, 세계의 길들이 자유롭게 뻗은 곳이었습니다. 국제법은 이런 곳에서 존중하고 준수할 법을 제정하고자 하는 시도에서 출발했습니다. 이 법은 힘겨운 단계들을 거치면서 형성되어 왔습니다. 법 제정 과정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음에도 사실 그 결과는 미흡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국제법은 인류의 양심이 요구하는 바를 반영해야 한다는 명확한 목적 의식을 잃은 적은 없습니다.
  독일 정부는 복수와 필요성을 구실로, 또한 바다에서 달리 이용할 수 있는 무기가 없다는 이유로 최소한의 정의마저 일축해 버렸습니다. 독일 정부가 지금처럼 그 무기(잠수함)를 이용하는 것은 인도주의적 양심의 가책, 또 국제 교류의 기초가 되는 상호 이해에 대한 존중심을 완전히 白眼視(백안시)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나는 지금 그 공격과 관련된 재산상의 손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것도 엄청나고 심각한 일이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은 독일 정부가 非전투원, 남자, 여자, 어린이들을 제멋대로 대량 살상했다는 사실뿐입니다. 사망자들은 현대사의 가장 어두운 시기에조차 순수하고 합법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던 일에 종사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재산이야 돈으로 메울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평화롭고 순수한 사람들의 생명은 그럴 수 없습니다. 교역을 방해하는 현재의 독일 잠수함戰은 인류에 대한 전쟁입니다.
  그것은 모든 나라에 대한 전쟁입니다. 미국 선박들이 침몰했습니다. 미국인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희생되었는가를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다른 중립적이고 우호적인 나라들의 배와 사람들도 같은 방식으로 물 속으로 가라앉았습니다. 그것은 무차별적 공격이었습니다. 이것은 全인류에 대한 도전입니다. 각 나라는 이 도전에 어떻게 대응할지 스스로 결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국민성과 목적의식에 걸맞게 차분히 침착하게 대응책을 선택해야 합니다. 흥분은 금물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복수가 아니며, 나라의 물리적 힘을 과시하여 승리를 거두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권리, 인간 권리의 옹호일 따름이며, 이 면에서는 우리도 인권을 위해 싸우는 여러 나라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President Woodrow Wilson Requests a
  Declaration of War to the German
  Empire(April 2, 1917)
  
  “But the right is more precious than peace.”
  
  Gentlemen of the Congress: I have called the Congress into extraordinary session because there are serious, very serious, choices of policy to be made, and made immediately, which it was neither right nor constitutionally permissible that I should assume the responsibility of making.
  On the third of February last I officially laid before you the extraordinary announcement of the imperial German government that on and after the first day of February it was its purpose to put aside all restraints of law or of humanity and use its submarines to sink every vessel that sought to approach either the ports of Great Britain and Ireland or the western coasts of Europe or any of the ports controlled by the enemies of Germany within the Mediterranean. That had seemed to be the object of the German submarine warfare earlier in the war, but since April of last year the imperial government had somewhat restrained the commanders of its undersea craft in conformity with its promise then given to us that passenger boats should not be sunk and that due warning would be given to all other vessels which its submarines might seek to destroy, when no resistance was offered or escape attempted, and care taken that their crews were given at least a fair chance to save their lives in their open boats. The precautions taken were meager and haphazard enough, as was proved in distressing instance after instance in the progress of the cruel and unmanly business, but a certain degree of restraint was observed.
  The new policy has swept every restriction aside. Vessels of every kind, whatever their flag, their character, their cargo, their destination, their errand, have been ruthlessly sent to the bottom without warning and without thought of help or mercy for those on board, the vessels of friendly neutrals along with those of belligerents. Even hospital ships and ships carrying relief to the sorely bereaved and stricken people of Belgium, though the latter were provided with safe conduct through the proscribed areas by the German government itself and were distinguished by unmistakable marks of identity, have been sunk with the same reckless lack of compassion or of principle.
  I was for a little while unable to believe that such things would in fact be done by any government that had hitherto subscribed to the humane practices of civilized nations. International law had its origin in the attempt to set up some law which would be respected and observed upon the seas, where no nation had right of dominion and where lay the free highways of the world. By painful stage after stage has that law been built up, with meager enough results, indeed, after all was accomplished that could be accomplished, but always with a clear view, at least, of what the heart and conscience of mankind demanded.
  This minimum of right the German government has swept aside under the plea of retaliation and necessity and because it had no weapons which it could use at sea except these which it is impossible to employ as it is employing them without throwing to the winds all scruples of humanity or of respect for the understandings that were supposed to underlie the intercourse of the world. I am not now thinking of the loss of property involved, immense and serious as that is, but only of the wanton and wholesale destruction of the lives of noncombatants, men, women, and children, engaged in pursuits which have always, even in the darkest periods of modern history, been deemed innocent and legitimate. Property can be paid for; the lives of peaceful and innocent people cannot be. The present German submarine warfare against commerce is a warfare against mankind.
  It is a war against all nations. American ships have been sunk, American lives taken, in ways which it has stirred us very deeply to learn of, but the ships and people of other neutral and friendly nations have been sunk and overwhelmed in the waters in the same way. There has been no discrimination. The challenge is to all mankind. Each nation must decide for itself how it will meet it. The choice we make for ourselves must be made with a moderation of counsel and a temperateness of judgment befitting our character and our motives as a nation. We must put excited feeling away. Our motive will not be revenge or the victorious assertion of the physical might of the nation, but only the vindication of right, of human right, of which we are only a single champion.
  
[ 2006-01-20, 10:3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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