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는 좌익들이 만든 가공현실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중 분배에 소홀하였던 이는 한 사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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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재(再錄)
  
   양극화에 대한 우려의 소리가 높다. 여야(與野) 좌우(左右)를 가리지 않고 양극화 해소야말로 국민화합의 요체라고들 한다. 그러나 그 방법과 원인에 대해서는 입장이 팽팽하게 맞선다. 여당과 좌파는 거의 한 목소리로 분배를 최우선하고 야당과 우파는 대체로 성장을 앞세운다. 양극화의 원인에 대해서는 과거로부터 누적되었다는 것이 20% 지지율을 보이는 집권층의 폭포수같이 요란한 주장이고 좌파정부에서 더 심화되었다는 것이 그 외 사람들의 강같이 유장한 쑥덕거림이다.
  
   조작과 왜곡과 선동에 능한 세력에 맞서려면, 먼저 당연시하는 전제조건을 잘 살펴야 한다. 양극화 문제도 처음부터 우파 곧 親대한민국파는 지는 게임을 하고 있다. 양극화 자체를 기정 사실로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좌파 곧 反대한민국파 때문에 심화된 건 있지만, 이전부터 한국의 큰 문제는 양극화라는 것에 일단 동의하고 나서 논의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잘못된 전제조건을 받아들이면, 이미 상대방이 일방적으로 정한 게임의 규칙에 따라 게임에 임하기 때문에 열 번 싸우면 열 번 지고 백 번 싸우면 백 번 진다.
  
   과연 한국은 장군 출신 대통령들이 군 미필 또는 상병 출신 대통령이 들어서기 전까지 성장 일변도로 정신없이 달려왔던가. 군대식 목표 달성에 눈이 어두워 '하라면 무조건 하고 안 되면 되게 하느라'고 경제성장의 과실이 온통 가진 자에게만 돌아가게 했던가. 이에 대해서는 좌우를 가리지 않고 거의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우파 곧 親대한민국파는 이에 대해서 크게 양심에 찔리는 바가 있어 그 목소리가 호수처럼 잔잔해진다.
  
   천만에!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은 단 한 명도 분배에 소홀한 적이 없다. 첫째, 이승만은 전세계에서 가장 빛나는 농지개혁으로 협동농장의 공산국가보다 질적으로 수십 배 평등한 나라를 만들었다. 마르크스가 긴 잠에서 깨어 남북의 농촌 현실을 골고루 둘러봤다면, 한국이야말로 공산국가요 북한이야말로 봉건전제국가라고 단언했을 것이다. 중국과 베트남이 협동농장을 해체한 후에야 비로소 평등한 국가가 되고 배고픔에서 전 인민이 해방되었다는 것만 보아도, 이승만의 분배 정책이 얼마나 위대한 정책이었는지 알 수 있다.
  
   분배를 가장 객관적으로 나타내는 잣대는 지니계수이다. 0은 완전 평등, 1은 절대 불평등을 나타낸다. 한 가족이 국가 전 재산을 소유한 것이 지니계수 1이다. (인류 역사상 이에 가장 가까운 땅이 북한이다.) 한국은 노조가 자유화되기 전인 1985년에 이미 0.311이었다. 이 수치는 2004년 현재 0.326인 영국보다 낫다. 노조가 자유화된 이후 한국은 소득분배가 더 한층 개선되어 1990년 0.295, 1995년 0.284이었다. 외환위기의 해인 1997년에는 0.283까지 내려갔다. 0.277인 독일 수준이다. 외환위기 이후 급격히 악화되어 1998년에는 1985년보다 못한 0.316, 1999년에는 0.320까지 올라갔다. 그 후엔 점차 개선되어 2004년 0.310이다. OECD 평균이 0.308이니까, 한국은 여전히 소득분배 모범국이다.
  
   미국 0.357보다 한결 낫고 터키 0.439, 멕시코 0.467에 비하면 소득 양극화란 말을 꺼내기가 낯뜨겁다.
   소득 양극화는 중산층이 줄어들고 상층과 하층이 늘어난다는 말인데, KDI의 통계를 보면 어느 정도 타당하다. 1997년 중산층 비중이 68.5%였으나 2004년에는 그 비중이 63.9%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중산층이 4.6% 줄어 들고 하층은 1997년 9.7%에서 2004년 13.6%로 3.9% 늘어났다. 상류층은 21.8%에서 22.5%로 0.7% 늘어나는 것에 그쳤다. 심리적 기준이 아니라 OECD 기준에 따르면, 가구 평균소득(2004년 기준 3213만원)의 중위 소득 50%에서 150%에 해당하는 가구가 중산층이다. 4800만원 이상이면 상류층에 속한다.
  
   좌파정부는 입만 벙긋하면 성장일변도의 과거 정책을 비난하면서 각종 분배 정책을 남발했지만, 결과적으로 소득격차는 더 벌어졌다. 대한민국의 현대사에 대해 지극히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反대한국민국의 편에 서서 자기들 입맛대로 과거사 바로잡기에 혈안이 된 정부에서 중산층은 되려 줄어들고 하류층은 늘었다. 상류층도 양극화를 요란스레 떠벌릴 만큼 늘어난 것도 아니다. 1%도 안 늘어났으니까. 이렇게 되었으면, 스스로 반성하고 反기업정서 퍼뜨리기에 8년간 굿판을 벌인 것에 대해 머리가 땅에 닿도록 사과하고, 아첨꾼들을 물리치고 널리 충신과 현인을 찾아 나서야 할 것인데, 오히려 기세등등하니 웬만한 선진국에 비해서도 양호한 소득분배를 선정적인 보도로 왜곡할 대로 왜곡하여 양극화를 개탄하며 양극화를 심화시킬 게 뻔한 제도와 정책을 만들어내기에 골몰하고 있다. 이에 우파 곧 親대한민국파마저 동조하거나 갈릴레이가 중얼거리듯이 '성장'을 중얼거리고 있다. 심지어 좌파의 코드를 증폭하여 중계하거나 우파의 전파를 교란하는 우파인 척하는 反대한민국파도 있다.
  
   왜 한국은 세계제일의 고성장을 구가하면서도 과실을 골고루 잘 분배했을까. 왜 분배를 요란스레 떠드는 정부가 분배를 더 악화시켰을까. 그것은 한국은 눈에 확 띄는 사회보장정책을 쓰지 않고 일자리를 통해서 거의 완전 고용으로 임금의 형태로 GNP를 분배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오늘날 토니 블레어 총리가 잘 사용하는 '생산적 복지'를 한국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했던 것이다. 언뜻 보면 한국은 서구식 사회보장제도가 없었으니까, 분배는 뒷전에 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생활보호대상자와 실업자에게 직접 돈을 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것은 근로의욕을 떨어뜨리고 자립심을 약화시키고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일이고 일단 시행하면 경직성이 커서 거의 줄이기 힘들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보다는 세계제일의 기업가 정신을 자랑하는 한국의 기업가들이 신나게 일할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그러면 그들이 일자리를 대량생산할 것이고 부지깽이와 지게막대기도 일꾼인 줄 착각하고 입사원서를 들고나설 것이다. 그런 세상에서는 수백 장 입사원서 속에 유서를 몇 장 끼어 넣고 다니는 대졸자가 나올 리 없다. 일자리만 넘치면 초등학생도 잠깐 잠깐 아르바이트해서 제 용돈은 제가 벌어 쓸 수 있을 것이다. 입에 민주라는 말만 달고 다닐 뿐 행동은 하나같이 非민주주적인 작자들이 대학과 기업과 국회와 정부를 장악하여, 권력과 코드를 휘둘러 성장은 두더지 잡듯이 잡고 분배는 씨암탉 잡아먹듯이 잡아먹으면, 대한민국은 기아를 후진으로 넣고 쏜살같이 내리막길을 내려가 머잖아 북한과 비슷한 거지깡패국가가 될 것이다. 하긴 만경대 김씨는 절대 욕하지 않고 갖은 방법으로 추켜세우는 자들이 권력을 독차지하는 것을 미루어보아, 그들의 이상향은 일인당 국민소득 100불인 에티오피아보다 못 살고 통행증이 없으면 제 나라 안에서 동냥하러 다니지도 못하는 '지상낙원'인지 모른다.
   (2006. 1. 5.)
  
  
  
[ 2006-01-21, 15:1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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