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교과서의 建國과정記述 비판
이승만의 역할을 한 줄도 쓰지 않고 마치 미국이 혼자서 대한민국을 만들어준 것처럼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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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도덕 교과서 中 [민족 분단과 남북한 사회현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정도서편찬위원회>
  
  (1)민족 분단의 과정
  
  분단의 현실
  
  조국이 분단된 채 남북한이 이념과 체제를 달리하여 온 지도 벌써 반세기가 지났다. 본래 우리 민족은 동일한 언어와 문화, 혈통을 지닌 단일 민족으로서, 수많은 국난을 겪으면서도 공동체 의식으로 단결하여 통일 국가를 발전시켜 온 자랑스런 역사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일제의 침략으로 인해 많은 고난을 겪어야 했다. 1910년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기고 35년간 모진 수탈과 압박을 받다가, 1945년 8월 15일에 광복을 맞이하게 되었다. 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의 전후 처리 과정에서 당시 미국과 소련이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한반도를 분할점령함에 따라 남북 분단의 비극이 시작되었다.
  
  <비판: 국난, 국권, 전후 같은 한자어를 한글로 표기함으로써 정확한 뜻이 전해지지 않는다. 國難(국난), 國權(국권), 戰後(전후)라고 표기해야 마땅하다. '전후'라고 하면 前後로 이해할 사람도 많을 것이다>
  
  
  반세기 이상 지속되어 온 분단 체제는 남북한의 사회 발전을 저해하였을 뿐만 아니라, 동북 아시아의 평화 질서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해 왔다. 미국과 소련의 이념적 대립 상황이 빚어 낸 냉전(cold war) 구도가 동북 아시아에서의 냉전 질서를 만들었고, 한반도의 분단을 고착화시켰다. 또한, 역으로 한반도의 분단이 동북 아시아의 냉전 체제와 세계 냉전 구도를 지속시켜 왔다고도 볼 수 있다.
  분단 체제하에서 남북한은 적대적인 체제와 이념 경쟁으로 인해 상호간의 불신과 대립 관계를 지속해 왔다. 또한, 남북한은 모두 국제무대에서의 대립과 민주주의의 퇴보라는 국내외적인 어려움을 겪었고, 특히 북한은 그 과정에서 권위주의적이고 사회 동원을 강조하는 정치 문화를 공고히 하였다.
  
  <비판: 이 교과서 필진은 남북한이 적대적 관계가 된 책임을 분명히 가리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호불신과 대립이 남북한 공동 책임이란 뜻으로 기술하고 있다. 북한정권이 대한민국을 적대시하고 기습남침을 벌였으며 그 뒤로도 아웅산 테러 같은 수많은 무력도발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기계적으로 남북한 양측에 兩非論을 적용한다. 피해자와 가해자를 두고 객관성으로 위장하여 양비론을 적용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가해자, 즉 북한정권 편을 드는 것이다. 북한정권에 대해서 엄정한 자세를 유지하지 못하는 이 교과서 筆陣(필진)은 북한정권을 설명하면서 겨우 '권위주의적이고 사회동원을 강조하는 정치문화를 공고히 하였다'는 정도로 쓰고 있다. 북한정권을 왜 전체주의, 우상숭배, 수령유일지배체제라고 정확하게 표현하지 않는가. 박정희 정권은 권위주의 체제이지만 김일성 김정일 정권은 전체주의 체제이다>
  
  
  이는 장구한 역사 속에서 찬란한 민족 문화를 꽃피워 왔던 우리 민족의 자존심에 커다란 상처를 안겨 주었다. 남북 분단으로 나타난 이런 폐해는 이산 가족의 문제에서 가장 잘 드러나는데, 북에 두고 온 어머니께 띄우는 어느 이산 가족의 편지를 보기로 하자.
  
  보고픈 어머님,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막내 ○○입니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저는 그 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남으로 남으로 이어지는 행렬 속에서, 어머님은 목이 말라 물을 마시고 싶어하던 어린 저를 위해 잠시 물을 구하러 가셨죠.
  그 사이 갑작스런 폭격이 시작되었습니다.
  우왕좌왕 이리저리 폭격을 피하느라 마구 움직이는 피난민들 속에서, 어린 저는 어머니께서 꼭 가지고 있으라고 했던 보따리를 움켜쥔 채, 어머니께서 가신 쪽을 바라보며 얼마나 애타게 ‘엄마’를 불렀는지 모릅니다.
  모든 것이 두려웠고 무서웠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리고 50년이 흘렀습니다.
  아직도 물을 마실 때면 보고픈 어머님의 모습이 떠올라 목이 메입니다.
  그리운 어머님 꼬옥 살아 계셔야 합니다.
  이제 어엿학데 자란 손자의 대견함도 보시고, 예쁜 증손자의 재롱도 보시고, 못다한 저의 효도도 받으셔야 합니다.
  다시 뵈올 날까지 건강하셔야 합니다.
  어머님을 그리워하며…….
  
  <비판: 위의 편지를 읽으면 왜 이산가족이 생겼는지 학생들은 알 수 없을 것이다. 왜 남으로 남으로 이어지는 행렬이 생겼는가를 설명해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것은 북한사람들이 북한의 독재체제를 부정하고 남한의 자유를 선택한 행렬이 아니었던가. 피난 당시 폭격을 했다면 이는 유엔군과 국군의 전투기일 것이다. 학생들은 유엔군과 국군 전투기들이 민간인을 향해서 무차별 폭격을 한 것으로 이해할 것이다>
  
  
  가족 간의 이별이나 단절은 인간에게 있어 가장 큰 고통이라 할 수 있다. 결국, 분단은 민족적 차원에서 번영과 발전을 저해하였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 차원에서도 많은 고통과 불행을 안겨 주었다. 일천만 이산 가족들에게는 혈육과 헤어지는 아픔과 망향의 한을 안겨 주었고, 민족 구성원 모두에게는 갖가지 생활의 불편을 가져다 주었으며, 자유로운 활동을 제약받게 하였다. 뿐만 아니라, 분단은 불필요한 경쟁과 군사적 대치, 자원의 분할 사용 등과 같은 막대한 민족 역량의 낭비와 손실을 초래하였다. 더구나, 서로 다른 이념과 체제 아래에서 장기화된 분단은 우리 민족의 동질성을 훼손하고, 나아가 민족사의 방향을 왜곡, 변질시켜 왔다.
  
  <비판: 분단에 모든 책임을 다 떠넘기고 있다. 과연 사실이 그러한가. 분단은 그 내용이 민족사 최초의 국민국가 대한민국의 건설과 민족사 최악의 전체주의 체제 북한괴뢰정권의 등장이다. 대한민국이 건국된 것은 민족사의 축복이요, 북한정권의 등장은 재앙이었다. 축복과 재앙을 포괄하고 있는 것이 분단이다. 분단은 피했으면 좋았을 불행한 사태였으나 한민족은 분단 속에서도 대한민국이란 민족사적 정통성과 자유민주주의의 기지를 만들었다. 이 남쪽 기지가 분단상태에서도 기적적인 발전을 거듭하여 세계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하였고, 지금은 북한체제를 흡수하여 자유통일로 나아가려고 준비하고 있다. 이런 민족사적 성과는 분단을 萬惡의 근원으로 기술하여서는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분단의 원인과 과정
  
  단일 민족 국가로서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우리 민족이 오늘날 남과 북으로 분단된 배경과 그 구체적 원인은 무엇인가?
  첫째, 한반도가 지닌 지정학적(地政學的) 위치의 중요성 때문이다. 한반도는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이 서로 마주하는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어, 동북 아시아 여러 나라들의 이해 관계가 상충될 때마다 대립과 긴장의 장(場)이 되어 왔다.
  그렇다면 한반도는 왜 북위 38도선을 기준으로 분단되었는가? 북위 38도선을 기준으로 한 국토의 분단은, 연합국들이 일본군의 무장을 해제시키기 위해서 취한 잠정적 조치에서 비롯되었다. 연합국들은 카이로 회담과 포츠담 회담 등을 통해 한반도의 독립 문제에 대하여 여러 차례 논의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 갈 무렵, 연합군측 수뇌들이 참석한 카이로 회담에서는 ‘전쟁이 끝난 후 적당한 시기에 한반도의 독립이 허용될 것’이라는 결정이 내려졌으나, 한국 사람들에 의한 자주적인 독립은 잠정적으로 보류되었다. 또한, 포츠담 회담에서는 카이로 회담의 이러한 결정이 재확인되었다.
  따라서, 제2차 세계 대전의 막바지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의 독립에 관한 연합군측의 구체적인 계획은 신탁 통치를 실시한 뒤 독립을 부여한다는 것 이외에 별다른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특히, 종전이 가까워지자 미국과 소련은 각각 한반도에 대한 자신들의 영향력을 강화하려고 하였다.
  그러던 중, 미국은 1945년 8월 전쟁을 끝내기 위해 일본에 원자 폭탄을 투하하였고, 그 동안 동아시아 진출을 위해 기회를 엿보던 소련은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전하여 한반도의 동북부에 진입하였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연합국측에 무조건 항복하자, 미군과 소련군은 일본군의 무장을 해제시킨다는 명분하에 각각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한반도의 남쪽과 북쪽에 진주하였다.
  이와 같이,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이해 관계 대립과 그들의 불분명한 입장 표명, 그리고 일본군의 무장을 해제시키기 위한 미군과 소련군의 한반도 진주는 조국 분단의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비판: 이 교과서 필진은 미군과 소련군에 조국분단의 공동책임을 지우고 있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미군은 38선을 군사적 관할의 분계선으로 삼으려 했으나 소련은 이를 일종의 국경선으로 만들어버렸다. 소련군은 남북한의 왕래를 금지시키고 자신들의 관할지역내에서 정권을 세우고 사회주의를 건설해감으로써 먼저 민족적 동질성을 변질시켜갔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북분단의 책임자는 소련이지 미국이 아니다>
  
  둘째, 민족 내부의 응집력과 통일에 대한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은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긴 이후에도 끊임없이 독립 운동을 전개하였으나, 이를 효율적으로 추진할 만한 구심점을 형성하지 못하였다. 또한, 3·1 운동 이후 우리의 항일 투쟁은 국내 지역 외에도 중국, 미국, 소련 등지로 흩어져 전개되었으며, 나라를 되찾고 국권을 회복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의견이 대립하게 되었다. 결국, 이러한 의견 대립은 시간이 점점 흐름에 따라 독립 운동 세력들 간에 갈등하고 대립하는 원인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민족주의자나 공산주의자 모두 항일 투쟁에 나서겠다고 하면서도, 기본적인 이념과 노선의 차이 때문에 연합 전선을 형성하지 못했고, 때로는 적대적인 관계로 치닫기도 하였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민족 내부의 응집력을 약화시켰다.
  그러나 1940년대로 들어오면서, 우리의 민족 세력들은 일제 타도를 위해 대한 민국 임시 정부를 중심으로 연합 전선을 구축하려고 하였다. 또한, 이들은 군사력을 가지고 항일 무장 투쟁을 강화해 나가면서, 국제 사회로부터 대한 민국 임시 정부가 우리 민족의 독립 투쟁을 대표하는 망명 정부임을 인정받고자 노력하였다.
  
  이것은, 우리의 민족 운동 세력들이 하나의 정부로 공인을 받고, 또한 이 정부가 일본과의 전쟁에 직접 참여하여 연합군의 일원이 되어야만, 전쟁 이후 한반도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주체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일본이 패망함에 따라 우리의 이와 같은 노력은 결실을 거두지 못하였다. 우리는 전후 처리 과정에서 연합국의 일원이 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민족 운동 세력들은 하나의 정부로 인정받지도 못하였다. 그 결과, 한반도 문제는 당사자인 우리 민족의 의사가 무시된 채, 주변 강대국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처리되었다.
  이제까지 우리는 한반도가 분단된 과정과 원인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우리가 한반도 분단의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분단의 고착화 과정
  
  1945년 8월 15일에 맞이한 광복은, 우리 독립 운동 세력들의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강대국들의 개입에 의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민족 분단의 비극으로 이어졌다.
  한반도의 남쪽과 북쪽에 각각 진주한 미군과 소련군은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군정(軍政)을 실시하였으며, 이들에 의한 통치로 인해 남과 북은 각각 미국식 자유 민주주의와 소련식 공산주의의 서로 다른 체제로 나누어져 각기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광복 이후, 소련군의 힘을 배경으로 한반도의 북쪽에 집권한 공산주의자들은 민족보다 당파나 계급의 이익을 앞세웠으며, 소련의 정책을 무조건 추종함으로써 민족 내부의 응집력을 약화시켰다.
  1945년 12월,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에서는 한국민이 자치 능력을 갖출 때까지 5년 동안 신탁 통치를 실시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러한 내용이 국내에 알려지자, 독립 국가를 갈망해 온 국민들은 우리 민족의 자치 능력과 독립 의지를 무시한 그들의 결정에 대해 분노하여 전국적으로 신탁 통치 반대 운동을 전개해 나아갔다. 일제의 식민 통치를 35년간이나 받아 온 우리 민족이 또다시 강대국들에 의해 신탁통치를 받는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민족적 수치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공산주의 세력은, 처음에는 신탁 통치에 반대하다가 소련의 지령을 받아 갑자기 신탁 통치를 찬성함으로써, 중요한 시기에 우리 민족의 분열상을 대내외적으로 보여 주었다. 이러한 우리 민족의 이념적 대립과 분열은 자주 독립의 역량을 약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강대국들이 한반도 문제에 대해 개입하는 명분을 제공해 주었고, 분단을 고착화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한편, 이미 냉전 상태에 들어가기 시작한 미국과 소련은, 한국의 독립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반탁 세력과 찬탁 세력을 자신들의 나라에 유리하게 이용하려고 하였다. 신탁 통치안에 대한 우리 민족 내부의 분열과 미·소 간의 대립은, 임시 정부 수립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개최된 ‘미·소 공동 위원회’에서도 계속되었으나, 결국 두 차례에 걸친 회담은 모두 결렬되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북위 38도선 이북 지역에서는 소련의 지원 아래 1946년 김일성 중심의 ‘북조선 임시 인민 위원회’라는 사실상의 공산당 정권이 수립되기에 이르렀다.
  한편, 남한의 미군정 또한 북한의 이러한 움직임에 자극을 받아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을 추진해 나아갔다. 또한, ‘미·소 공동 위원회’가 결렬되자, 미국은 한국의 독립 문제를 유엔 총회에 상정시켰고, 소련은 이에 반대하고 나섰다.
  유엔 총회에서는 ‘유엔 한국 임시 위원단’을 구성하고, 이 위원단의 감시 아래 인구 비례에 따라 남북한 총선거를 실시하여 통일 정부를 구성할 것을 결정하였다. 그러나, 소련은 유엔 총회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유엔 한국 임시 위원단’이 북위 38도선 이북 지역에 들어가는 것조차 거부하였다. 그러자 유엔은 가능한 지역에서만이라도 선거를 실시하기로 결의하였다.
  이 무렵, 김구와 김규식을 비롯한 일부 지도자들은 민족의 분단을 막아 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북한측에 남북 협상을 제의하였고 남북 협상 회의에 참여하기도 하였으나,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한 채 김일성의 정치 선전에 이용되는 결과만 남았다.
  남북 협상이 결렬된 뒤, 남한에서는 유엔의 결의에 따라 1948년 5월 10일에 총선거를 실시하였다. 또한, 그 해 7월 17일에 헌법을 공포하였고, 8월 15일에는 대한 민국 정부 수립을 국내외에 선포하였다. 그리고 그 해 12월에 파리에서 개최된 유엔 총회에서는, 대한 민국 정부가 한반도 내의 유일한 합법 정부임을 공식적으로 승인하였다.
  
  한편, 남한보다 앞서 사실상의 단독 정부를 구성했던 북한은, 대한 민국 정부 수립이 국내외에 선포되자 곧바로 선거를 실시하여 ‘최고 인민 회의’를 구성하고, 9월에는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의 수립을 선포하였다.
  이렇게 하여 한반도는 정치적으로 남과 북으로 분단되고 말았으며, 분단 이후, 1950년에 발발한 6. 25 전쟁을 통하여 38도선이 휴전선으로 대체되면서 분단이 더욱 고착화된 채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지금까지 한반도가 통일된 정부를 구성하지 못하고 6.25 전쟁으로 인해 분단이 고착화되는 과정에 대하여 공부하였다. 그렇다면, 민족적 위기 상황에서 야기된 반탁과 찬탁 세력 간의 국론 분열은 우리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다 주었는가? 만약, 당시 남북 협상이 성공했다면 분단을 피할 수 있었을까?
  
  <비판: 대한민국 건국을 주도한 李承晩 초대 대통령의 역할에 대한 언급이 한 줄도 없다. 마치 미국이 대한민국 건국을 홀로 해낸 것처럼 기술하고 있다. 李承晩은 미 군정당국의 반대를 극복해가면서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밀고나갔으며, 이에 미국측이 따라온 것이다. 위의 기술을 읽은 학생들은 대한민국은 미국이 만들어준 나라라고 이해할 것이 아닌가. 李承晩과 한국인들이 공산주의자들에 대해서 막연한 환상을 갖고 있던 미 국무성과 미군정 당국과 맞서가면서 공산화로 이어질 것이 분명한 左右합작을 거부하고 대한민국을 자유민주주의의 이념하에 건국했다는 점을 묵살한 建國史는 역사가 아니다. 필진은 또 김일성이 소련이 써준 시나리오에 따라 북한괴뢰정권을 세웠다는 점을 분명히 설명하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은 선거를 통해서 만들어진 국민국가이며, 북한정권은 소련이 세워준 괴뢰국가라는 차이점을 분명히 기술했어야 했다>
  
[ 2006-01-23, 02:1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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