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실토: 민주주의라는 것의 고통
"나는 민주주의가 힘으로 이룩될 수 있다는 데 懷疑(회의)를 가졌다"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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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6월호 월간조선에서 발췌
  
  
  스스로 민주질서 세우길 기대
  
   盧대통령은 준비된 자료를 꺼내 육성증언을 시작했다. 자료에는 「민주화의 진통 시작되다」 라는 제목이 달려 있었다.
  
   <민주주의의 실천이란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당시의 시대상은 질서 확보를 위한 행동을 민주주의를 역행하고 말살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민주질서란 官(관)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국민 스스로가 자율적으로 세워 나아가야 하는데도 공권력에 대한 불신은 높기만 했다. 그래도 나는 우리 국민들의 교육 수준이 높으므로 적절한 동기만 유발하면 가닥이 잡혀갈 것이라고 믿었다>
  
   이 대목에서 盧 전 대통령은 권위주의 사회에서 민주화 사회로 가는 과도기의 어려움을 이렇게 토로했다.
   『6共 때 공공질서나 법질서를 엄격히 적용했다면 국가 질서가 완전히 무너지는 상황이 전개됐을지도 모릅니다. 법대로 하자면 위반자들을 잡아 넣어야 하는데, 학생 소요만 하더라도 현행법을 위반한 학생들을 다 잡아넣으면 형무소가 지금 있는 것보다 1백 배가 더 많아도 소용이 없어요. 그러니 뻔히 違法(위법)인 줄 알면서도 잡아넣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지킬 수 없는 법을 만들어 왔다」 이렇게도 말 할 수 있는 것이지요』
  
   다시 盧 전 대통령의 육성증언으로 돌아가 본다.
  
   <한편으로는 노사분규가 도처에서 벌어졌다. 그 동안 억눌렀던 임금을 일시에 올리려는 근로자들의 욕구가 분출했다. 대부분의 기업이 그 요구를 받아들였다간 버티기 힘들게 되어 결국 기업과 근로자가 모두 망하고 말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운동권, 在野(재야), 야당 정치권 할 것 없이 모두가 勞組(노조)측을 부추겼다. 나는 먼저 기업인들이 성의를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임금 인상과 근로조건 개선에 기업인들이 최선을 다하고, 그 다음에는 나와 동지들이 기업인과 근로자들을 만나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설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같은 노력에 힘입어 勞使(노사)협상이 하나 둘 타협되어 나갔다. 그렇지만 뚝 떨어진 국제경쟁력은 되살아 날 줄 몰랐다. 기술과 생산성이라도 올라가야 하는데, 기술과 생산성은 그대로이고 노임만 비싸니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기술과 생산성을 올리기 위해서는 경제구조 자체를 선진국형으로 바꿀 수밖에 없다고 판단해 거의 매달 관계자들을 소집해서 강조하고 독촉하고 격려했다. 금융 및 정책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어려울 것만 같았던 기술, 생산성에서도 서서히 그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경제가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민주주의도 질서를 지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을 때 하나의 위험한 집단이 등장했다. 북한의 金日成을 신봉하는 이른바 主思派(주사파) 학생들이었다. 민주주의 혼란기에는 이들과 같은 사람들이 활동하기 좋게 마련이다. 순진한 학생들은 아직도 대한민국의 정통성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갖지 못하고 있었다. 부정적이거나 애매모호했다. 또 자본주의 초기여서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갈등은 거의 적대관계에 가까웠다. 교수들은 학생들의 인기를 어떻게 얻을까 하고 눈치를 살피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참고 용서하고 기다리자
  
   主思派 학생들은 이러한 사회현상을 교묘히 이용했다. 학생들을 비밀리에 모아 철저한 세뇌교육을 시켰다. 1990년도에는 焚身(분신)자살조까지 만들어 사회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당국이 이들을 힘으로 다스렸다면 이들의 저항은 더욱 심해져 불행한 사태가 오래 지속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이들을 힘으로 다스리기보다는 이들의 실체와 부당성을 노출시켜 학생들 스스로가 과연 그것이 올바른 길인가를 판단하게 했다. 그 결과 나약하기만 했던 교수들도 차츰 힘을 얻어 師道(사도)로서의 사명감을 갖기 시작했다. 학교가 정상을 찾아가면서 민주주의도 궤도에 올라갔다. 사회 곳곳이 민주화되면서 그들은 투쟁 목표를 상실했다. 물론 민주주의의 옥동자를 낳기 위한 産苦(산고)는 이만 저만 힘든 것이 아니었다.
  
   혼란과 무질서에 지친 국민들은 『軍 출신 대통령이 왜 저렇게 힘이 없나. 강하게 잡아야 하지 않는가』 하고 수군거렸다. 심지어 「물 대통령」이라는 말까지 나오게 됐다. 듣기 거북한 것은 물론이고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참모들 보기가 민망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힘으로 다스린다는 것은 그 이상 쉬운 것이 없는 일이었다.
  
   나는 민주주의가 힘으로 이룩될 수 있다는 데 懷疑(회의)를 가졌다. 「더 많은 희생과 代價(대가)를 치르더라도 우리 국민 스스로가 자유롭게 이룩한 진정한 민주주의여야 튼튼한 뿌리가 내려지고, 더 싱싱하게 자랄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었다. 어느 날 기자 간담회에서 내가 『참 용기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고 물었다. 대답하는 기자가 없었다. 나는 『참 용기란 참고, 용서하고, 기다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참석한 기자들은 그 의미를 되새기는 기색이 역력했는데 『이것이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나의 철학』이라고 덧붙였다>
  
   이어서 민주화와 관련된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어떻게 보면 6共시대는 국민들이 민주주의를 체험적으로 교육받은 시기였습니다.
   『민주주의는 공짜가 아닙니다. 반드시 그에 합당한 代價(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지요』
  
   ―민주주의 실천 과정에서 임금 인상이 이루어지고, 또 法治(법치)가 파괴되는 현상이 있었습니다. 또 2백만 호 주택 건설을 했습니다. 이런 것을 비판하는 입장에서는 그만한 돈이 비생산적인 면에 투입됐기 때문에 자원의 배분에 한계를 드러냈고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역할을 했다고 비판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 부담이 金泳三 정권으로 넘어가 무역 적자가 나기 시작한 것 아닙니까.
   『내 재임 중에 계속 무역적자가 생겼지만 金泳三 정부에 넘겨줄 때는 다시 흑자 상태로 인계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金泳三호는 순풍에 돛을 단 배」라고 몇 차례나 얘기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盧 전 대통령의 얼굴은 착잡한 표정으로 변했다.
  
   『경제의 거품을 걷어내고 임금 상승으로 인한 고난을 이겨내니까 기술수준이 뚝 떨어졌습니다. 그것을 어느 정도 회복하고 무역수지가 회복되어 흑자 단계에서 정권을 인계한 겁니다. 그런 기조에서 제7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울 때 전문가들은 실제 성장률이 12∼13%도 가능하다고 했지만 우리가 7%로 억제하고 내실을 기하는 방향으로 긴축을 했습니다. 그런데 金泳三 정부가 억제했던 것을 일시에 풀어버리니까 우리가 거품을 걷어내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맸던 것이 무효가 되어 버린 것이지요』
  
   힘으로 통치하기는 쉽다
  
   ―저는 1987년 大選 때 盧 전 대통령을 지지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일단 당선된 다음에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민주 선거를 통해 출범한 정권은 국민이 정통성을 부여한 것이다. 대통령이 군인 출신이라 해도 민간인으로서 국민의 심판을 거쳤기 때문에 군사정권이 아닌 민주정권이다. 따라서 盧泰愚 정권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사람들과는 함께 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왜 盧 대통령께서 필요한 시기에 공권력을 발동하지 않느냐, 법대로 해야 되지 않느냐 하는 입장이 되었지요.
   『힘으로 질서를 잡으면 통쾌하기도 하고, 또 통치하기도 쉬워요. 검찰총장에게 「저 사람 잡아 넣어」 라고 하면 힘이 납니다. 그런데 「구속하지 말아라. 용서해라」 하면 어깨 힘이 빠지기 마련이죠. 우리 상황에서는 자생력을 기르는 단계를 겪지 않으면 진정한 민주주의가 어려웠을 겁니다』
  
   孫柱煥 전 장관은 盧 전 대통령의 독특한 리더십을 이런 말로 설명했다.
   『힘을 가진 권력자는 강하게 힘을 쓰는 것보다 절제하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盧대통령은 군인 출신입니다. 군 출신 대통령이 힘을 억제한다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안목과 철학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당시는 많은 사람들이 盧 전 대통령이 힘에 밀렸기 때문에, 힘이 없기 때문에 공권력을 쓰지 못하는구나 라고 생각했거든요.
   『물론 그렇게 생각한 사람도 있겠지요. 그러나 뭐든지 명분을 만들어 권력을 휘두른다는 것은 유혹입니다. 극복하기 힘든 유혹이지요』
  
   ―그러면 盧 전 대통령께서는 재임 중 한 번도 약하다든가, 불안감을 가져 보신 적이 없었습니까.
   『그런 감정을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약하다고 불안을 느끼는 사람은 절대 국민 앞에서 「나는 힘이 없다」 이런 소릴 못합니다. 대신 「나는 끝까지 참는다, 나는 약하다」는 소리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강함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6共 정부는 지식인들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해서 지식인들이 하자는 대로 따라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점도 있었을 겁니다. 識者라는 것이 참으로 묘해. 이중적이지요. 그렇지만 국가의 방향을 정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또 識者들입니다』
  
  
[ 2006-02-03, 23:2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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