富者들이 민주주의를 한다
박정희 독재를 어떻게 봐야 하나? 민주화-누구의 공이 더 컸나? 한심한 지식인들이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외쳤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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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독재를 어떻게 봐야 하나?(완결판)
  *회원토론방에서 퍼옴.
  
  
  << 차례 >>
  
  1. 부자들이 민주주의를 한다.
  2. 민주주의로 가는 길은 2개다.
  3. 박정희의 독재를 어떻게 봐야 하나?
  4. 개발독재라는 자기비하(自己卑下)
  5. 민주화 - 누구의 공(功)이 더 컸나?
  6.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성공한 근대화, 그리고 역사바로세우기
  7. 선진화와 경영자혁명
  
  
  
  
  
  1. 부자들이 민주주의를 한다.
  
  
  한국인들중에는 '자유, 민주, 인권, 반독재'를 소리 높여 외치고, 반독재투쟁을 하면 민주주의(구미식 자유민주주의)를 쟁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사실 구체적인 민주화과정에서 그같은 갈등과 투쟁양상이 나타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민주주의에 도달한 나라는 없다.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데모해서 민주주의가 얻어지는 것이라면, 민주주의 얻기가 그렇게 쉬운 것이라면, 이 세상에서 민주주의를 누리지 못할 나라가 어디 있으랴?
  
  
  남의 나라에서 발전된 민주주의를 책으로 배워 오면서 한국에서는 민주주의에 대해 큰 착각과 잘못이 장기간 저질러 졌고 아직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즉 민주주의를 정치현상, 정치제도로만 생각한다. 그래서 인권보호, 사상, 언론, 표현등의 자유, 다수결에 승복, 공정한 선거, 의회주의, 3권분립, 법치주의등을 외형상으로 이루면 민주주의는 이룬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대부분이다. 그러나 우리가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게 되었듯이, 민주주의란 그와 같은 정치제도 못지 않게 이를 작동하게 하는 “두터운 중산층”이라는 사회경제적인 하부구조가 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민주주의는 부자나라들의 멋있는 삶의 모습이다. 부자나라들이 3-4만불에 달하는, 몸값 비싼 자신들을 스스로 아끼고 돕는 모습이며(인권보호), 유식한 부자들이 현명함과 지혜를 최대한 모아, 보다 더 멋있는 삶을 창조하고 결정해 가는 양식이다.(사상, 언론, 표현등의 자유, 다수결에 승복, 공정한 선거, 의회제 민주주의, 3권분립, 법치주의등)
  
  
  거지나라들이 부자나라들의 멋있는 모습을 흉내내지만, 군사쿠데타가 일어나거나 독재자가 출현하여 곧바로 도로아미타불이 된 사례는 너무나 많다. 거지나라들이 흉내내기에는 너무 많은 비용이 들어 유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며(예로, 죄수의 인권보호를 위해 국민소득 1000불의 중국이 미국수준의 교도소를 운영할 수 있겠나?), 무엇보다도 이 훌륭한 제도를 강렬히 보호하려는 부자들이 너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거지나라들의 민주주의는 대체로 “물렁팥죽 민주주의”이거나 “말로만 민주주의”일 수밖에 없다. 모두다 민주주의를 누리고 싶어 하지만 아무나 민주주의를 누리지 못한다.
  
  
  거지나라 한국에서 지식인이라는 이름의 인간들이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를 외치며 군사독재정권만 타도되면 민주주의는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믿었던 한심하고 웃기는 시절이 수십년간 계속되기도 하였다. 이런 2류, 3류 지식인들이 건국이후 수십년간 우리 사회의 정치, 문화등에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러나 이는 모두 민주주의에 대한 천박한 이해에서 비롯된 만화같은 얘기들일 뿐이다.
  
  
  일단 한번 성취되면 절대 후퇴하지 않는 “탄탄한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부자나라가 되어야 한다. 즉 민주주의라는 정치제도를 강렬히 지지하고 보호하려는 두터운 중산층이라는 사회경제적인 하부구조가 형성되어야 한다. 중산층이란 시민계급(대기업등 상공업자들)수준은 아니더라도 상당한 재산과 교육수준에 도달한 사람들이다.(전문직, 엔지니어, 관리직, 공무원, 교사, 직업군인, 자영업자등) 하루하루의 갈급한 생존에서 벗어난 대규모 중산층들의 보다 질 높은 삶, 보다 인간다운 삶에 대한 열망이 민주주의를 전진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그런데 이 두터운 중산층을 창출하는 문제는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100년-200년에 걸쳐 전 국민이 피땀과 피눈물을 흘리며 경제발전에 성공해야 한다. 많은 후진국들이 반독재투쟁이니 뭐니 다 해 보지만 아직도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누리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은 피땀흘려 노력해서 우선 부자(두터운 중산층 창출)가 될 생각을 하지 않고, 맨입으로 부자가 되려 하고 꽁짜로 민주주의를 얻으려 하기 때문이다.
  
  
  현재 지구상에서 구미식 자유민주주의를 누리는 나라는 서유럽국가들,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일본, 한국정도다. 이 나라들의 공통점은 모두 장구한 세월에 걸쳐 경제발전에 성공했고 모두 대규모 중산층 창출에 성공한 부자나라라는 점이다.
  
  
  2003년 12월 하버드대학 강연에서 원자바오 중국총리는 '중국은 아직도 너무 가난하고 너무 문맹률이 높아 민주주의는 시기상조'라고 밝힌 바 있다. 최근 보도된 중국전체의 중산층 의식조사에서 중산층은 11.9%에 불과했다.(조선닷컴 2005. 9. 4) 민주주의는 고사하고 사회안정을 유지하기에도 불안한 중산층수준이다. 중국의 중소도시에서 폭동이 빈발하는 이유를 이해할 만하다.
  
  
  한국이 매년 10%이상 비약적으로 경제성장을 이룩하던 1980년대에 한국의 중산층은 60%를 넘어섰고, 이 중산층 넥타이부대들이 1987년 6월항쟁에 전국적으로 참여하여 민주화를 비약시켰다. 1997년 외환위기이전까지 한국의 중산층은 70%를 넘어섰었다. 지속적인 안정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좋은 계층구조였다.
  
  
  그러나 외환위기이후 2003년 12월에 발표된 중산층의식조사에서 한국의 중산층은 61%로 떨어졌다. 이 날아가 버린 10%의 중산층이 현재 한국의 정치, 사회적인 불안의 원천이며 노무현같은 사람이 간발의 차이로 대통령에 당선되는 이유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경제불황이 계속되어 중산층이 50%대로 추락한다면(소위 경제양극화의 심화) 사회보장요구가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하거나, 체제를 뒤집어 엎자는 얘기를 일상적으로 듣게 될지도 모른다.
  
  
  이미 노무현 망국노정권이 민족공조니 평화공존이니 하는 달콤한 얘기를 앞에다 걸어 놓고, 과거사청산, 건국후 주류세력 교체, 주적개념삭제, 국가보안법 폐지, 동북아균형자론(말을 바꾼 주한미군철수 주장), 군병력감축등 체제 뒤집어 엎기를 계속 선동하고 시도하고 있다. 블안해지는 안보환경, 혼란스러운 국가정체성하에서 기업인들의 투자는 얼어 붙었고, 경제불황은 지속되고 있다. 붕괴되어 가는 중산층과 더불어 한국사회는 정신분열을 일으키고 있으며 어렵게 성취된 한국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고 있다.
  
  
  두터운 중산층을 창출한 부자나라가 되는 것이 민주주의 성립과 발전의 핵심이다. 두터운 중산층을 창출하려면 열심히 일하고 투자하고 생산하고 건설하고 창조하여 경제발전을 성공시키고 지속시켜야만 한다. 말꾼, 선동꾼, 데모꾼, 말썽꾼들이 아무리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도, 두터운 중산층이 없는 거지나라에서 민주주의는 성취되지 않는다. 부자들이 민주주의를 하며, 거지들은 왕초-꼬붕놀이를 한다.
  
  
  
  
  
  2. 민주주의로 가는 길은 2개다.
  
  
  한국인들은 영국, 미국의 민주화만이 유일무이한 정답인 양 학교교육을 받아 왔다. 그래서 영국식, 미국식이 아니면 모두 이상하고 불결한 것으로 거부해 버리는 단세포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오늘날 민주주의 선진국들이 모두 영국, 미국같은 멋있는 민주화의 길만 걸었던 것은 아니다.
  
  
  영국, 미국의 경우, 충분히 성장했던 시민세력이 시민혁명을 통해 봉건귀족세력을 제압하고 정치권력을 장악하게 된다.(영국은 청교도혁명, 명예혁명등, 미국은 독립혁명) 그후 산업혁명을 통해 경제발전과 대규모 중산층의 성장이 이뤄지며, 성장한 중산층은 보다 많은 자유와 민주를 요구하고, 확대된 자유와 민주는 다시 경제발전과 중산층 성장을 촉진하는 선순환적이고 병행적인 발전을 이룩한다. 경제발전-중산층 성장-정치민주화의 전과정에서 상식과 합리, 타협과 관용같은 미덕이 발견된다. 민간주도의 자유방임적인 분위기속에서 최소 200년이 걸렸으며 널널하고 폼나게 발전해 왔다.
  
  
  그러나 영국, 미국보다 더 화끈한 프랑스대혁명을 자랑하는 프랑스이지만, 곧바로 나폴레옹 황제정으로 굴러 떨어지고, 다시 왕정, 다시 혁명, 다시 황제정으로 한바퀴 다시 돌고, 그러다가 2달동안 빠리꼬뮨의 노동자정권으로 빠졌다가, 100년 가까운 3, 4 공화국의 혼미가 계속된다. 의원내각제였던 3, 4공화국에서 총리의 평균재임기간은 3개월이었다. 프랑스가 안정적인 민주주의를 성취한 것은 1958년 드골헌법에 의한 제5공화국부터니까 50년도 안 된 셈이다. 영국, 미국보다 훨씬 더 헤매고 질퍽거렸고 훨씬 더 살벌했지만, 프랑스도 어엿한 민주주의 선진국임에는 틀림없다.
  
  
  문제는 영국, 프랑스, 미국과 달리, 시민계급의 성장이 불충분해서 시민혁명이 없었던 독일, 일본같은 후진국들이었다. 시민혁명이 없었던 이 후진국들은 자유민주주의의 맛을 절대로 봐서는 안 되는 저주를 받아야 하는 것일까? 그들도 영국, 프랑스, 미국처럼 부자가 되고 민주주의를 이루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독일의 경우, 1871년 비스마르크에 의해 겨우 국내적인 통일을 달성하였으나, 바로 옆에서 이미 산업혁명과 식민지경영을 활발히 추진하고 있는 영국, 프랑스를 바라보면서 초조함을 금할 길이 없었다. 독일이 영국, 프랑스와 어깨를 겨루는 강대국이 되지 못하고 유럽의 3류 농업국가로 전락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국가통일을 주도했던 봉건귀족세력(독일의 융커계급, 일본에서는 사무라이계급)들이 직접 나서서 산업혁명, 시민계급의 형성과 대규모 중산층의 창출을 동시적으로, 급속하게 추진하게 된다. 이빨이 없으니까 고통스럽지만 잇몸으로라도 씹어야 했던 것이다.
  
  
  급속한 산업화의 과정에서 갈 길이 바빴던 그들에게 항상 그렇듯이 방해꾼, 말썽꾼들이 있었다. 사회주의자들은 갈 길 바쁜 나라에서 노동자, 농민들의 불만을 선동해서 체제자체를 뒤집어 엎으려는 용납할 수 없는 망국노, 방해꾼들이었다. 또한 자유주의자들은 조국의 절박한 상황을 외면한 채, 우리도 자유방임적인 영국이나 미국처럼 널널하고 폼나게 가보자며 복창터지는 소리를 해대는 말썽꾼들이었다.
  
  
  이같은 방해꾼, 말썽꾼들을 때로는 탄압하고, 때로는 회유해 가면서 독일은 1871년 독일통일부터 1945년 패전까지 약 80년간 비스마르크의 권위주의체제, 빌헬름 2세의 왕정, 히틀러의 나찌독재체제와 같은 비민주적인 정치체제가 계속되었다.(단 제1차 세계대전이후 성립된 15년간의 바이마르 공화국을 제외한다. 일본도 1867년 명치유신부터 1945년 패전까지 약 80년간 천황제 군국주의를 유지하였다. 물론 일본도 독일의 바이마르공화국에 대응되는 시기에 다이쇼(大正) 데모크라시가 있었다. 이 시기중 1919년 식민지조선에서 일어났던 3.1독립운동에 충격을 받은 일본은 무단정책(武斷政策)을 폐지하고 문화정책(文化政策)을 시행하게 된다.)
  
  
  반면 국가의 산업화정책에 적극적으로 호응했던 대다수의 기업인들과 국민들은 엄청난 자유와 번영과 행복을 누렸고 독일의 중산층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었다. 1930년대를 짓눌렀던 대공황의 공포를 극복하고 독일의 중화학공업은 1930년대에 세계최고수준에 이르렀으며, 독일 중산층의 성장은 영국, 프랑스에 비해 손색이 없는 수준에 도달했었다고 생각된다.
  
  
  만약 1930년대의 독일이 제1차 세계대전의 패전으로 인한 막대한 전쟁배상금의 중압감이 없었고, 영국, 프랑스와 식민지쟁탈전을 벌여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그때 독일(바이마르 공화국)은 자력으로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발전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나찌독재의 광기(狂氣)와 유태인대학살(유태인은 독일 중산층의 성장을 좀먹는 기생충이라고 단죄됨)과 제2차 세계대전은 없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1차대전 종결을 위한 파리강화회의에서, 당대 최고의 경제학자 케인즈는 독일에 대한 막대한 전쟁배상금 부과가 2차대전을 유발할 것이라며 반대했었다. 막대한 전쟁배상금 부과를 결정한 영국, 프랑스등의 의도는, 독일이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독일을 3류 농업국가로 눌러 버리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쟁배상금을 낼 돈으로 독일이 재무장(再武裝)을 하면, 전 유럽을 정복할 만한 군사력을 기를 수 있었다. 나중에 “전쟁배상금 거부”를 내세우며 집권한 히틀러가 그대로 실천했다. 자존심 강한 독일민족은 무릎을 꿇고 사느니보다 히틀러와 함께 서서 싸우기를 원했던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독일을 짓눌렀던 막대한 전쟁배상금은 면제되었다. 또한 영국, 프랑스중심의 폐쇄적인 식민체제는 해체되고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무역체제로 대체되어, 독일은 더 이상 식민지쟁탈전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시달릴 이유도 사라졌다.. 독일은 전쟁에 패했지만, 그들이 전쟁목표(전쟁배상금 거부, 식민지재분할)로 원했던 모든 것을 얻는 기묘한 결과를 낳았다. 다만 동서독분단의 멍에를 안았다. 그러나 산업경쟁력이 뛰어났던 독일에게는 전체적으로 봐서 패전이 오히려 큰 기회가 되었다.
  
  
  또한 독일은 미국의 지원하에 민주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지만, 전쟁전에 이미 두텁게 성장해 있던 중산층을 배경으로 별 문제 없이 자유민주주의국가로 신속히 전환될 수 있었다. 1871년 독일통일로부터 영국․미국 못지않은 민주주의에 도달하는데 독일은(일본도) 최대 100년정도 걸린 것이 아닐까?
  
  
  결국 독일과 일본은, 방해꾼․말썽꾼에 불과했던 사회주의자․자유주의자들을 비민주적인 정치체제로 탄압․통제해 가면서 국가주도의 급속한 경제발전과 대규모 중산층 창출에 먼저 성공한 후, 그 다음 민주주의로 가는 2단계 발전의 길을 걸었다. 이 길은 자유방임적이고 병행적이었던 영국과 미국에 비하면 결코 멋있는 길은 아니었고 그 와중에 끔찍한 전쟁범죄를 저지르는 불운도 있었지만, 시민계급이 미약하고 시민혁명이 없었던 후진국들로서는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인들은 부자나라가 되고 민주주의에 도달하는 길이 여러 갈래가 있었음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국-미국처럼 경제발전과 정치민주화가 멋있게 병행하는 길만이 아니라, 헤매고 질퍽거리는 프랑스의 길도 있었고, 독일-일본처럼 先經濟發展과 中産層 創出, 後民主化라는 급속한 2단계 발전의 길도 있었음을 이해해야 한다. 영국식, 미국식만이 유일무이한 정답인 양 가르쳤던 학교교육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커서 깨달았으면, 다시 고쳐 배우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경제사학(經濟史學)계에서는 이미 인정된 '근대화(산업화과 민주화)로 가는 2개의 길, 즉 선진국 영국-미국의 길과 후진국 독일-일본의 길'에 대한 인식이 어찌해서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도 이리도 생소한 것인지 정말 궁금하다.
  
  
  사회주의자․자유주의자를 탄압했던 독일-일본의 길도 당당한 근대화의 길이라고 주장하면 독재를 옹호하는 사람으로 낙인찍힐까봐 두려워하는가? 독일과 일본이 저질렀던 유태인대학살, 난징대학살같은 전쟁범죄까지 옹호하는 사람으로 오해받을까봐 두려워하는가? 나찌독재를 옹호하는 파시스트로 몰릴 것을 두려워하는가? 일본을 찬양하는 친일파로 몰릴 것을 두려워하는가?
  
  
  그러나 독일․일본보다도 100년이나 뒤떨어진 후진국이었던 대한민국이 결코 갈 수 없었던, 자유방임적인 영국-미국의 길을 하여튼, 어쨌든 갔어야 한다고 고집하는 것은 바보나 위선자가 아닌가? 아니면 독일-일본은 못했을지라도 한국만은 자유방임적인 영국-미국의 길을 성취할 수 있었다고 거품무는 과대망상증 환자는 아닌가?
  
  
  독일과 일본은 시민혁명이 없었던 후진국들도 단기간내에 산업화과 민주화를 이룩할 수 있고 20세기의 강대국으로 등장할 수 있음을 보여준 훌륭한 사례였다. 독일, 일본보다도 100년이나 뒤늦게 근대화를 추진한 대한민국이 영국-미국식 정답보다 먼저 고려해야 할 또다른 정답이었다.
  
  
  
  
  
  3. 박정희의 독재를 어떻게 봐야 하나?
  
  
  1961년 5. 16 군사혁명이 성공했을 때, 대한민국은 시민계급도, 시민혁명도 없는 알거지나라였다. 영국과 미국의 길은 애시당초 불가능한 나라였다. 우리가 근대화를 성취하겠다면 독일과 일본의 길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거리에 실업자는 넘쳐나고 전 국토는 가난에 찌들어 있었다. 국민소득이 아프리카보다도 못한 불쌍한 나라였다. 더욱이 일제가 북한에 남기고 간, 엄청난 중화학설비(150만 일제 관동군의 침략전쟁을 지원)를 고스란히 물려받아 국력이 남한을 월등히 앞서 있었던 김일성집단과의 대결은 너무도 버겁기 짝이 없었다. 통일은 차치하고 우리의 생존자체가 불안했다.
  
  
  또한 우리를 식민지 지배했던 옆나라 일본을 한번 이겨 보고 싶다는 오기도 있었다. 더 나아가 힘이 없어서 주변 강대국들에 짓밟혔던 20세기의 불행했던 역사를 끝장내고 싶다는 비원도 있었다. 갈 길이 너무도 먼 후진국이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100년이상이 걸릴지도 모르고 성공여부도 불확실한 영국-미국의 길을 간다는 것은 바보나 정신병자가 아닌 다음에야 절대 선택할 수 없는 결정이었다. 학교에서는 유일무이한 정답인 양 교육받았지만 우리가 갈 수 없는 길이었고, 가서도 안 되는 길이었다. 물론 독일-일본의 길을 간다해도 성공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고, 정치지도자가 시원찮으면 오히려 더 큰 재앙이 될 수도 있었다.
  
  
  박정희를 비롯한 5. 16 혁명주체들은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수립해서 대한민국의 산업혁명과 상공업자들의 형성과 대규모 중산층의 창출을 동시적으로, 급속히 추진한다. 그들이 팔을 걷어 부치고 직접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이빨이 없으니까 고통스럽지만 잇몸으로라도 씹어야했던 것이다.
  
  
  먼저 섬유, 신발, 가발등의 경공업제품 수출에서 시작되었으나, 포항제철의 경이적인 성공이 확인된 1973년부터 다른 후진국들은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던 본격적인 중화학공업 투자를 감행한다. 현대중공업, 조선공사(현 대우조선)등 세계적인 규모의 조선소 건설이 시작되고 현대자동차의 국산차 포니계획도 추진되었다. 세계최대규모의 창원기계공단, 구미전자공단, 울산, 온산, 여천등 대규모 석유화학공단의 신설, 확장이 숨가쁘게 진척되었다.
  
  
  비좁은 국내시장에서 꼬물거리던 한국의 장사꾼들은 어느 덧 세계시장을 넘나드는 독수리같고 호랑이같은 세계적인 기업인들로 성장해 갔다. 이병철신화, 정주영신화, 김우중신화가 탄생하고 수많은 산업영웅, 건설영웅, 수출영웅의 미담이 신문지면을 메웠다. 대한민국의 급속한 산업화정책을 실천하고 책임질 상공인집단, 경영인집단이 그렇게 형성되고 있었다.
  
  
  거리를 떠돌던 수많은 대졸실업자들은 하얀 와이셔츠와 넥타이로 무장한 산업전사, 수출전사가 되었고 세계시장을 누비는 국제 비즈니스맨들로 양성되어 갔다. 그렇게 우리들의 중산층은 성장하고 있었다.
  
  
  눈물겨운 여공애사(女工哀史)도 많았다. 국졸학력이었던 누나는 여공자리를 간신히 얻을 수 있었지만, 누나의 희생으로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시골식구들은 쌀밥을 먹을 수 있었고 동생들은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고등교육을 받은 동생들은 누나보다 더 나은 직장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들의 중산층은 성장하고 있었다.
  
  
  새마을운동으로 형편이 나아진 농촌에서도 농민의 아이들이 고등교육을 받는 기회는 훨씬 더 늘어났다. 깡촌에서 서울의 명문대에 진학한 학생은 개천에서 용 났다며 온 마을의 축하를 받았다. 그들은 대학졸업후 도시로 진출했고 부모들보다 더 나은 삶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들의 중산층은 성장하고 있었다.
  
  
  반면 대한민국의 경제개발, 산업화, 근대화에 대한 방해꾼, 말썽꾼들은 탄압을 받았다.
  
  
  먼저 남한 빨갱이들이 탄압을 받았다. 그들은 박헌영의 남로당 잔당의 후예들로서 북한 김일성집단과의 연계하에서 남한을 끊임없이 전복하려 한 망국노, 방해꾼들이었다.(주사파계열, 민노당계열, 리영희, 강정구, 강만길등) 그들은 끊임없이 노사분규를 남조선폭력혁명으로 돌변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들은 민주화인사로 위장했고 그들에 대한 탄압을 민주인사탄압이라고 우겼으므로 많은 국민들이 헷갈려 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들은 국가보안법은 반민주악법이므로 즉각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6.25사변으로 3000만 인구중 450만이 피를 흘렸던 기막힌 참극을 당했던 나라에서는, 다른 사상은 모두 용인한다해도 빨갱이사상만은 절대 안 된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것은 최소한의 체제수호권이었다. 450만이 흘렸던 피의 악몽으로 말미암아 빨갱이들에 대한 탄압은 철저했다. 물론 전쟁터에서 적을 사살하는 것이 인권탄압일 수 없듯이, 그들에 대한 탄압은 탄압이랄 것도 없었다.
  
  
  그리고 독일, 일본의 근대화역사에서는 볼 수 없었지만, 분단국가 한국에서는 또다른 유형의 방해꾼들이 있었다. 그들은 공산주의를 용인하며(容共) 남북합작을 추진했던 김구로부터 유래되었으며 '하여튼 통일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고 주장했던 용공 민족주의자들이었다.(백기완류, '우리민족끼리'를 얘기하는 모든 인간들)
  
  
  그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빨갱이는 아니었으나, 그들의 행태는 북한의 통일전선전술이나 연방제 통일에 항상 동조하는 입장이었으므로 빨갱이에 준해 국가보안법으로 다스려도 무방한 방해꾼들이었다. 또 빨갱이들이 이들 용공 민족주의자로 위장하기도 했으므로 사실 엄밀히 구분하기도 어려웠다.
  
  
  마지막으로 자유주의자라는 말썽꾼들이 있다.(김동길, 김영삼, 김대중류. 단 김대중은 자유주의자로부터 용공분자, 빨갱이까지 다양한 사상편력을 갖고 있다.) 이들중에는 영국․미국에 유학한 사람들이 많았고, 아프리카보다도 못한 조국의 절박한 상황을 인식하지 못한 채 우리도 자유방임적이었던 영국․미국처럼 널널하고 폼나게 가 보자는 복창터지는 소리를 해대는 사람들이었다. 국민소득 78불의 나라에서 당장 서구식 자유민주주의를 내놓으라고 아우성치는 철딱서니없는 인간들이었다.
  
  
  그들은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팔을 걷어 부치고 땀을 흘리며 일을 하려는 의지는 별로 없어 보이는 먹물그룹들이었다. 남보다 조금 많이 배웠다는 것을 밑천 삼아 한자리하거나, '자유, 민주, 인권, 반독재'등의 말을 입에 올려 국회의원이 되거나 민주인사, 양심인사라는 명예 한자락 걸쳐 보려는 인간들이었다. 조선왕조의 사대부들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우리에게도 워싱턴, 제퍼슨, 링컨이나 글래드스턴, 디즈레일리같은 훌륭한 정치가가 하나만 나오면 경제발전이든 정치민주화든 멋있게 이룰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천박한 인간들이었다. 미국, 영국사람들이 멋있게 사는 모습만 부러워했지, 그들이 거기에 이르기까지 200년이상 피땀과 피눈물을 흘려 일하고 투자하고 생산하고 건설하고 창조해 왔다는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들이었다. 맨입으로 부자가 되고 꽁짜로 민주주의를 얻으려 하였다. 이런 2류 인간들은 당연히 1류 애국자 박정희에게서 혼이 나 마땅한 인간들이었다. 그들은 때로는 탄압받았고 때로는 회유되었다.
  
  
  박정희의 제3공화국 헌법은 세계 어디에 내 놓아도 흠잡을 데 없는 민주적인 헌법이었으나 이런 방해꾼, 말썽꾼들을 다스리기 위해 그 운용은 권위주의적이었다. 자유, 민주를 주장하던 야당은 때때로 완력으로 제압당했고 빨갱이․용공분자들은 국가보안법으로 철저히 탄압받았다. 종신총통독재(1972년 유신헙법)를 지향했던 제4공화국에서는 자유주의자까지도 체제에 도전할 경우 가차없이 탄압받았다.
  
  
  박정희의 권위주의적 통치가 종신총통독재로까지 강화된 배경은 우선 1969년 닉슨 독트린(자구노력을 하지 않는 아시아국가에 대해 미국은 방위의무를 지지 않는다), 1972년 미국-중공화해(미국의 대소련봉쇄망에 중공을 포함시킴)이후 이어지는 1973년 미군의 대만철수, 1975년 미군철수후 월남의 공산화등 아시아 안보정세가 크게 요동치는데 있었다. 미국이 한국방위의무를 포기할지도 모를, 최악의 경우까지 상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73년부터의 중화학공업화는 자주국방을 기치로 군수산업육성을 크게 의식하고 있었고 국가의 명운을 건 비장함이 흘렀다. 미사일개발, 원자탄개발도 추진되었다.
  
  
  또한 가난했던 대한민국의 중화학공업화는 막대한 외채에 의존했던 만큼, 잘 살아 보자며 중화학공업화를 추진했다가 실패할 경우, 오히려 더 거지가 되어 대대손손 빚더미위에서 신음할 수 있는 위험천만한 것이었다. 박정희정권 전체가 초긴장상태로 들어갔고 반체제 방해꾼․말썽꾼들에 대한 더 이상의 여유와 관용은 금물이었다.
  
  
  중화학공업화의 추진은 대성공을 거두며 '한강의 기적'이라는 세계적인 찬사를 받았으나 불행히도 1979년 2차 오일쇼크로 결정타를 맞는다. 박정희도 이 와중에 비운의 삶을 마감하게 되고 한국경제는 대대손손 빚더미위에서 신음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박정희의 정치적인 후계자였던 전두환은 10. 26사건으로 인한 정치․사회적인 위기와 2차 오일쇼크로 인한 경제위기를 신속히 수습하고, 한국경제가 새로운 성장가도를 달릴 수 있도록 이끌었다. 초대 경제수석 김재익의 역할이 컸다. 혹독한 구조조정과 경쟁력 강화정책으로 내실을 다진 중화학공업은 1980년대 중반 3저호황을 만나자 매년 100억불내외의 무역수지흑자와 10여%의 경제성장률(달러기준으로는 수십%)을 자랑하며 단군이래 최대의 호황을 구가했다. 2차 오일쇼크로 모조리 망한 줄 알았던 박정희의 중화학공업투자가 모조리 성공하는 쾌거를 이룩할 수 있었다. 3저호황은 전세계 공통사항이었지만, 한국만이 중화학공업의 대성공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를 계기로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이후 철강, 기계, 자동차, 조선, 전기, 전자, 반도체, 정보통신, 석유, 화학등 강대국형 고도산업구조를 이룩한 단 하나의 나라가 될 수 있었다. 더욱이 이러한 중요한 기업들의 소유권․경영권을 모두 한국인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결국 한국은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같은 강대국들만이 누리는 훌륭한 밥벌이들을 우리 손으로 직접 영위할 수 있는 삶의 터전을 마련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1980년대 단군이래 최대의 호황으로 한국의 중산층도 비약적으로 성장하여 드디어 60%를 넘어서게 되었고 성장한 중산층들은 당연히 보다 인간다운 삶, 보다 질 높은 삶을 요구하게 되었다. 우리나라가 체육관 대통령선거라든가 언론보도통제로 각종 부패, 부조리가 개선되지 못한 채 묻혀 버리는, 불합리하고 부자유스러운 상황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았다.
  
  
  독일과 일본식 근대화의 길에는 경제발전이 성공하고 두터운 중산층이 창출된 후에는 정치민주화의 계기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독일과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의 패전이 민주화의 계기가 되었다. 한국은 그 계기가 1987년 6월항쟁으로부터 왔다.
  
  
  6월항쟁의 시작은 김영삼, 김대중이 했지만, 수백만의 중산층 넥타이부대들이 전국적으로 참여하면서 전두환 군사독재정권도 어쩔 수가 없었다. 그 수백만 사람들을 모조리 광주사태처럼 총칼로 진압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노태우의 대통령직선제 수용을 유도하며(6. 29선언) 전두환은 유연하게 대응했고, 6월항쟁에 참가한 사람들에게는 철권통치자 전두환의 항복으로 보였다. 6월항쟁은 무혈의 성공을 할 수 있었고, 한국 민주주의는 박정희의 유신헌법이래로 15년간의 군사독재정치의 청산, 대통령직선제의 쟁취라는 크나큰 산을 넘으며 비약할 수 있었다.
  
  
  그러나 6월항쟁도 수백만 중산층의 전투적이고 전국적인 참여가 없었다면, 바로 7-8년전의 부마사태, 광주사태처럼 전두환의 철권에 의해 간단히 제압당했을 것이다. 보다 인간다운 삶, 보다 질 높은 삶을 열망하는 대규모 중산층들이 민주주의를 전진시키는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박정희의 또다른 정치적인 후계자였던 노태우가 직선제 대통령으로 당선된 1987년 대통령 선거는 한국이 경제발전과 대규모 중산층 창출에 이어 정치민주화마저도 훌륭히 성공했음을 입증하는 극적인 드라마였다. 노태우는 곧이어 지방자치제같은 후속 민주화조치도 실시했으며 언론은 유사이래 최대한의 자유를 만끽했다. 대통령을 '물태우'라고 조롱하면서도 아무런 주눅이 들 필요가 없었다.(지금의 언론이 '노개구리', '뇌무현'이라고 조롱하면 아무런 뒷탈이 없을까?)
  
  
  또한 1987년 '노동대폭발'이라 불리웠던 노동자들의 노사분규를 유연하게 수용하면서 임금인상이 급속히 이루어졌고, 그동안 저임금에 주로 의존했던 한국의 대기업들은 본격적인 기술연구소 설립 붐을 일으키며 경제발전의 질적인 향상을 도모하게 되었다.
  
  
  1인당 1만불에 육박해 가는 국민소득과 함께 국민연금․의료보험등 현대적인 복지제도도 도입되었다. 1962년 경제개발당시 박정희가 내세웠던 파이이론(Pie Theory : 파이를 먼저 키운 후에 나중에 나눠 먹자)은 그동안 반체제 방해꾼․말썽꾼들에 의해 그것은 절대 이루어지지 못할 거짓말이며 사기라고 비난받아 왔지만, 박정희의 약속은 그의 정치적인 후계자, 전두환과 노태우를 통해 단 한자한획의 어긋남도 없이, 정확히 이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은 박정희와 전두환의 시절에 방해꾼, 말썽꾼들을 정치적으로 탄압해 가면서 먼저 경제발전과 대규모 중산층의 창출에 신속히 성공한 후 2단계로 노태우의 시절에 정치민주화를 이루었고 현대복지국가로서의 기틀을 잡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까지가 독일과 일본의 길을 따라 근대화를 추진했던 박정희시대의 완결이었다.
  
  
  돌이켜 보면 1962년 박정희의 경제개발로부터 민주주의까지 도달하는데 불과 30년이 걸린 기적이었고, 1948년 대한민국 건국으로부터 따져도 불과 44년만에 이루어진 기적이었다. 영국과 미국이 최소 200년이 걸렸고 독일과 일본이 최대 100년이 걸린 것을 생각하면, 세계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강대국형 산업구조를 완성한 대한민국은 이미 북한과의 체제우위경쟁에서도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다. 현대일본과의 국력차이는 아직도 현저하지만, 우리가 자유통일을 이룩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계속 노력한다면 일본에 필적하고 능가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가질 수 있었다. 이미 그런 가능성과 조짐들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우리가 일본에 필적․능가한다는 것은 세계 5위권내의 강대국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 4대 군사강국들에 둘러싸인, 이 기가 막힌 지정학적인 구도하에서도 20세기에 겪은 청일전쟁, 러일전쟁, 일제식민지, 6.25전쟁, 민족분단과 같은 불행한 역사를 우리 손으로 직접 거부할 수 있는, 자주적인 역량을 갖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다시 한번 대차게 노력한다면 2030년까지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닐까?
  
  
  한국은 독일과 일본의 길을 따라 근대화를 추진했지만, 그들보다도 훨씬 더 빨리 근대화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무역체제하에서 경제개발을 추진할 수 있었던 행운때문이었지만, 한국은 근대화과정중에 독일과 일본처럼 침략전쟁, 유태인대학살, 난징대학살같은 전쟁범죄의 전과기록을 남기지도 않았다. 전과자 독일, 일본보다 더 깔끔하게 근대화를 성취할 수 있었다.
  
  
  세계적인 대성공을 거두었던 88올림픽은, 6. 25와 같은 끔찍한 전쟁참화를 극복하고 이같은 경이적인 기적을 이뤄낸 한국과 한국민들에 대해 전 세계인들이 보낸 찬사와 축복이었다. 피땀과 피눈물을 닦아가며 경제발전과 중산층 창출, 정치민주화까지 불과 40여년만에 이루어낸 위대한 국민들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축복이었다.
  
  
  “...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강인한 의지와 민족중흥의 원대한 이상이 있으며 이 의지와 이상을 끈질기게 펴나온 확신과 긍지가 있습니다. 대망의 80년대는 고도산업국가를 실현하고, 풍요롭고 품위있는 복지사회를 기필코 이룩해야 합니다... 80년대 중반에 가면 우리나라는 주요산업분야에서 당당히 경제강대국으로 등장하게 될 것입니다...” (1978년 12월 21일 박정희 대통령 치사에서)
  
  
  
  
  
  
  4. 개발독재라는 자기비하
  
  
  개발독재이론에서는 독일과 일본의 근대화 경험, 스탈린의 폭압적인 독재하에서 소련이 보여준 사회주의적인 경제발전 경험을 근거로, 후진국들이 경제개발을 위해서는 정치적인 독재가 불가피하다고 인정하였다. 그리고 이는 20세기의 수많은 독재자들을 정당화시키는 이론으로서 맹위를 떨쳤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그 결과를 알고 있지만, 20세기의 수많은 독재자들의 나라중에 경제개발조차 변변히 이룬 나라가 거의 없다. 그 독재자들 대부분은 부정축재, 친인척비리, 해외비밀계좌등으로 얼룩졌으며 오히려 나라를 더 큰 재앙으로 몰아 넣은 채 쫓겨 나거나 살해되었다. 그래서 개발독재라는 말에는 너절하고 지저분한 이미지가 항상 따라 다닌다. 또는 경제개발에는 성공했지만 아직 정치민주화에는 성공하지 못한 덜떨어진 나라라는 이미지도 따라 다닌다.
  
  
  그나마 개발독재의 성공케이스로 평가되는 나라가 한국, 대만, 싱가폴이다.(영국 총독의 식민지지배를 받았던 홍콩도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들 3나라는 모두 경제개발에 성공했다. 그러나 싱가폴은 이광요(리콴유)식 가부장적인 독재가 여전한, 정치민주화와는 거리가 먼 나라며, 대만도 완전한 정치민주화까지는 나아가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반면 한국은 경제개발의 성공에 머물지 않고 민주주의를 성취하는데까지 나아갔다. 오직 한국만이 일본과 더불어 아시아에서 민주주의를 성취한 단 2개의 나라다.
  
  
  또한 경제개발의 내용도 한국은 싱가폴, 대만과는 현저한 차이가 난다.
  
  
  싱가폴은 그야말로 도시국가수준의 경제개발이다. 국제사회나 한국의 지식인들은 아직도 한국과 싱가폴을 직접 비교하는데 익숙해져 있지만, 인구규모․토지규모를 따지면 싱가폴은 서울의 강남(강남구, 서초구, 송파구)과 비교하는 게 맞다. 그리고 서울의 강남과 비교할 경우 싱가폴이 특별히 나은 점은 별로 없어 보인다. 이광요와 싱가폴이 뭐 그리 대단한 게 있다는 말인가?
  
  
  대만은 중소기업중심 - 일본의 부품하청국가로서의 발전전략을 택했다. 이는 중화학공업을 추진할 만한 막대한 돈도, 고급기술인력도 없는 후진국입장에서는 아주 당연하고 속편한 발전전략이었다. 6. 25같은 참변도 없었던 대만은 손쉽게 잘 사는 나라가 될 수 있었지만, 경제개발 60년 역사에도 불구하고 대만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브랜드 기업 하나 키워낼 수 없었다.
  
  
  대만에는 GM, 포드, 도요다, 혼다, 폭스바겐, 푸죠, 르노, 다이믈러-크라이슬러와 당당히 경쟁하는 현대자동차가 없다. 인텔, 노키아, 모토롤라, 소니와 경쟁하는 삼성전자, LG전자도 없다. 신일본제철을 능가하는 포항제철도 없으며, 전세계 조선시장을 호령하는 현대중공업, 대우조선, 삼성중공업도 없다.
  
  
  선진국 대기업들의 부품하청기업에 불과했던 대만의 중소기업들은 중국의 값싼 임금에 밀리자 중국으로 이전할 수 밖에 없었고, 대만은 심각한 산업공동화를 겪어야 했다. 얼마 전 대만정부는 향후 대만의 주력산업으로 금융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발표했었다.
  
  
  반면 한국은 대기업중심 - 자립적인 중화학공업국가를 건설하겠다는 발전전략을 택했다. 중화학공업이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선진국들의 골리앗 대기업들과 진검승부를 각오해야 했다. 실패하면 피흘리고 죽어 나가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당연히 그럴 확률이 너무 높았다. 그래서 모든 후진국들은 중화학공업화를 간절히 바랬지만, 아무도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 전략은 대만과 비교할 때 몇 십배 더 어렵고 위험천만한 것이었지만, 북한을 능가하고 일본에 필적하는 강대국이 되려면 달리 선택은 없었기에, 박정희는 비장한 각오로 중화학공업투자를 감행했었다. 1962년 경제개발 초기에 스위스, 네덜란드같은 '작지만 빛나는 나라'가 되자는 주장이 훨씬 더 우세했었지만, 박정희는 이를 단호히 거부하고 기꺼이 고난의 가시밭길을 걸었다.
  
  
  거지가 하루 밤사이에 용왕(龍王)이 되겠다고 덤비는, 이런 무모하고 위험천만한 결정은 분명 박정희의 독재였다. 대다수가 위험회피자(risk-avoider)일 수밖에 없는 인간사회에서 민주적으로 결정되었다면 절대로 나올 수 없는 결정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위대한 독재였다. 1000년 중국속국이요, 40년 일제식민지였던 더러운 역사와 공녀-갈보-화냥년-정신대-환관내시-징병-징용으로 얼룩진 눈물의 역사를 단칼에 끊어내 버리고, 강대국으로 도약하겠다는 위대한 독재였다. 이 강대국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 방해꾼․말썽꾼들이 있다면, 그들의 분탕질앞에 곁코 굴복하지 않으며 이를 단호히 분쇄해 버리고 계속 돌격하겠다는 비장한 독재이기도 했다. 그리고 전두환시절을 거치며 마침내 강대국형 산업구조의 완성, 중화학공업국가의 건설에 성공할 수 있었다.
  
  
  19세기에는 영국과 프랑스가 강대국이었고, 20세기에는 미국, 일본, 독일이 새로운 강대국으로 등장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후 유일하게 강대국형 산업구조를 완성한 대한민국은 21세기의 신흥강대국으로 등장할 수 있는 첫 번째 후보국가다. 북한을 자유통일하여 덩치를 키우면 한국역사상 광개토대왕이래 두 번째로 세계적인 강대국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발전은 물론 정치민주화까지 훌륭하게 이뤄냈을 뿐 아니라 21세기 신흥강대국으로의 가능성까지 열어 놓은 대한민국과 박정희와 전두환에 대하여 개발독재라는 자기비하는 더 이상 말이 되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개발독재국가가 아니라 독일-일본식 근대화를 정확하게 성공시킨 전세계에서 세 번째 나라일 뿐이다.
  
  
  현재 독일-일본식 근대화를 추진하는 네 번째 나라는 중국이다. 공산당 일당독재체제로 경제발전을 추진하는 중국은, 1989년 자유주의자들이 일으킨 “천안문사태”를 탱크로 깔아 뭉개버리는 유혈참극을 벌인 바도 있다. 공식적으로만 4만여명의 사상자를 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중국이 독일-일본-한국식 근대화를 성공시킨 네 번째 나라가 될지, 개발독재국가에서 멈출지, 아니면 중간에 이도저도 모두 둘러 엎어먹을 국가로 굴러 떨어질지, 한참 더 두고 봐야 한다.
  
  
  그리고 더 이상 대한민국을 대만, 홍콩, 싱가폴과 비교하는, 덩치값도 못하는 짓도 당장 집어치워야 한다. 중국과 인도는 한국의 생산기지와 판매시장으로서 관찰하고 참조할 뿐이다. 21세기 신흥강대국으로의 가능성을 머금은 대한민국이 벤치마킹할 나라들은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뿐이다. 한국은 서쪽이 아니라 여전히 동쪽을 노려보아야 한다. Look East!
  
  
  특히 아프리카보다도 거지나라였던 우리가 갈 수 없었던, 가서도 안 되었던 영국-미국식 근대화의 길만이 유일무이한 정답인 양 생각하는 우매함에서 이제는 깨어나야 한다. 그래서 독일-일본식 근대화의 시각으로 보면 너무도 훌륭했던 한국현대사를, 영국-미국식 잣대를 들이대며 물어뜯고 할키고 자학하는 일도 멈춰야 한다.
  
  
  또 박정희의 경제발전을 효율중시, 민간주도의 자유방임적인 경제발전, 자유무역주의로 집약되는 Adam Smith 경제학의 시각으로 비판하는 멍청한 짓도 반성해야 한다. 박정희의 경제발전은 국민적인 생산력발전 중시, 국가주도의 경제발전, 보호무역주의, 60만 자영농의 육성(새마을운동의 발상은 여기서 비롯되지 않았을까?)을 주장했던 Friedrich List의 독일 역사학파 경제학으로 훨씬 더 잘 이해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끝으로 한국의 기적적인 중화학공업화가 대다수 노동자, 농민의 헌신적인 희생때문이라고 주장하는 팔푼이들이 있다. 그렇다면 이 팔푼이들은 오늘날 다른 후진국들에는 노동자, 농민과 실업자들이 여전히 차고도 넘치는데, 왜 그들은 중화학공업화를 이루지 못한 것인지를 설명해야 한다. 또 한국의 중화학공업화가 미국의 절대적인 지원때문이라고 주장하는 또다른 팔푼이들도 있다. 그렇다면 이 팔푼이들은 한국과 비슷한 처지에 있었던 대만, 베트남, 파키스탄, 이란, 터어키는 왜 중화학공업화를 이루지 못한 것인지를 설명해야 한다. 우리만의 독특했던 이유를 정직하게 말할 수 있어야만 한다.
  
  
  
  
  
  5. 민주화 - 누구의 공(功)이 더 컸나?
  
  
  박정희와 전두환은 방해꾼과 말썽꾼들을 탄압해가면서 산업혁명과 두터운 중산층창출에 전념하여 민주주의를 향한 탄탄대로를 만들었다. 그리고 노태우시절에 대부분의 중요한 민주화, 자유화조치를 이룩해 냈다. 반면 김영삼과 김대중등은 6월항쟁을 성공시켜 눈에 보이는, 손에 잡히는 민주화의 진전을 이루었다. 그들은 1980년대에 두터운 중산층 창출에 성공한 대한민국이 싱가폴․대만처럼 개발독재국가로 장기간 머무르지 않고 바로 민주국가로 전진하도록 기여했다. 그렇다면 두 세력간에 누구의 민주화 공(功)이 더 클까?
  
  
  나는 당연히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의 공이 훨씬 더 크다고 생각한다. 많은 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6월항쟁같은 대중투쟁을 조직하고 성공시킬 수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민주주의에 도달한 나라는 없기 때문이다. 오직 소수의 선진국들만이 경제발전과 두터운 중산층을 창출하여 민주주의를 향한 탄탄대로를 만드는데 성공할 수 있었고, 그 나라들만이 끝내 “탄탄한 정치민주화”까지 나아갈 수 있었다. 전세계 민주주의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민주화-민주주의란, 대통령직선제, 3권의 분립과 견제, 공정한 선거제도, 사상․언론․표현의 자유등을 포괄하는 정치현상만이 아니며 이를 “탄탄하게” 뒷받침하는 “두터운 중산층의 창출”이라는 사회경제적인 현상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두터운 중산층의 창출이야말로 민주화의 도정에서 아무나 이뤄내지 못한 진정 어려운 과업이었다는 사실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즉 산업화가 되어야만 민주화가 이루어진다. 산업화없이는 진정한 민주화도 없는 것이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등의 한국의 산업화세력이 한국의 민주화마저도 90%이상을 이뤄낸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사회에는 “산업화세력 對 민주화세력”이라는 해괴한 2분법이 아직도 횡행하고 있다. 산업화세력은 경제발전에는 절대적인 공이 있지만, 민주화인사들을 탄압한 반민주 독재세력으로서 정치민주화에는 해악만 끼친 세력이라는 것이다. 반면 민주화세력은 경제발전에는 공이 없지만, 정치민주화는 탄압받고 고문받고 감옥가고 억울하게 죽기도 했던 그들만의 공이라는 것이다. 이같은 해괴한 2분법은 구체적인 민주화, 자유화조치가 추진되던 노태우시절에 나타나서 양 세력간의 공존과 화해를 도모하는 기능을 했다. 두 세력 모두 조국근대화에 “반반씩 기여”했으니 앞으로는 싸우지 말고 잘해 봅시다하는 너스레였다.
  
  
  그리고 한국이 방해꾼․말썽꾼들을 정치적으로 탄압했던 독일-일본식 근대화의 길을 걸었기 때문에, 너스레같은 “해괴한 2분법”과 “반반씩 기여”론은 국민들에게 그럴싸하게 먹혀들었고 “민주화는 오로지 민주화세력의 공”이라는 큰 착각에 국가전체가 빠져 들었다. 그래서 어영부영 민주화의 공은, 바로 어제까지 방해꾼, 말썽꾼에 불과했던 민주화세력들이 독점해 버리는 어처구니없는 논공행상이 벌어지고 말았다. 민주화를 위한 진짜 어려운 재주는 호랑이같은 산업화세력이 넘었는데, 민주화의 공은 여우같은 민주화세력들이 독차지해 버리는 기가 막힌 꼴이 벌어진 것이다.
  
  
  그릇된 논공행상이 끼친 해악은 컸다. 어제까지 방해꾼, 말썽꾼들에 불과했던 민주화세력들은 어느 날 갑자기 민주화를 위해 탄압, 고문, 감옥, 순교도 마다하지 않았던 거룩한 도덕적인 세력으로 떠올랐고 국가와 국민의 희망이 되어 버렸다. 국회의원도, 대통령도 당연히 그들의 차지가 되어야 했다. 지역감정까지 결합되면서 영남사람들은 “다음 대통령은 당연히 우리 영삼이”였고 호남사람들은 “당연히 김대중 슨상님”이 되어 버렸다. 민주화에 대한 그릇된 이해와 논공행상으로 말미암아 국가적인 차원에서 심각한 도덕적인 혼란이 왔다.
  
  
  그들이 제왕적인 대통령, 가신정치, 가신비리, 친인척비리를 저지를 반민주적인 인물들은 아닌지 어떠한 침착한 검토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들이 외환위기를 초래할 무능한 인물은 아닌지, 노벨상 받겠다고 국민 몰래. 미국 몰래 핵개발을 하는 김정일에게 5억불을 갖다 바치는 반역자는 아닌지 한번도 진지하게 회의되지 않았다.
  
  
  최악의 사태는, 어제까지 북한의 지령을 받아 남조선 폭력혁명을 기도했던 빨갱이들이 민주화세력의 탈을 쓰고 버젓이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으로 등장하는 것이었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경쟁적으로 이들 빨갱이세력들을 국회의원 공천자로 확보하기에 혈안이 되었었다. 오늘날 국가정체성을 위협하는 노무현 망국노정권의 씨앗이 이때 대량으로 뿌려졌다.
  
  
  
  
  
  6.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성공한 근대화, 그리고 역사바로세우기
  
  
  오늘날 우리가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자랑스럽게 가르칠 만한 첫 번째 사실은 무엇일까?
  
  
  나는 대한민국이 아시아․아프리카 세계에서 일본 다음으로, 두 번째로 근대화에 성공한 나라라는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은 전교 1등은 못했지만 전교 2등을 한 나라다. 현재 우리나라 교육이 이렇게 자랑스럽고 중요한 사실을 얼마나 열심히 가르치고 있는지 궁금하다. 현직교사가 “아, XX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것을 봐서는 영 엉뚱한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아시아, 아프리카 세계에서 두번째로 근대화를 성공시킨 박정희의 현판글씨를 뜯어 내겠다고 노무현정부가 난리를 치고, 전두환-노태우에 대한 훈장서훈을 박탈하는 것을 봐도 뭔가 크게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략과 지배를 받은 후 독립했던 아시아․아프리카국가들의 가장 처절한 비원은 근대화된 나라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다. 한번 잘 살아 보자, 한번 사람답게 살아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처절한 비원에도 불구하고 근대화된 나라를 이루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고 그래서 현재까지 근대화에 명확하게 성공한 나라는 일본과 한국 단 두 나라뿐이었다. 덩치 큰 중국과 인도도 아니었고 동남아국가들, 이슬람국가들도 아니었으며 아직도 미개함을 다 벗지 못한 아프리카 국가들은 더더욱 아니었다. 심지어 백인종의 나라들인 동유럽국가들이나 남미국가들도 근대화에 성공했다고 말하기 힘들다.
  
  
  일본에는 명치유신이래로 일본의 근대화를 성공시킨, 정치, 경제, 군사등 각 분야의 수많은 근대화 영웅들이 있
  
  
  듯이 한국에도 근대화의 영웅들이 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가 우리들의 근대화 영웅들이다. 또 이병철, 정주영, 박태준...등 수많은 기업인들도 우리들의 근대화 영웅들이다. 그들은 일본의 근대화 영웅들에 못지않은, 어쩌면 그들보다 더 뛰어난, 한국의 근대화 영웅들임에 틀림없다.
  
  
  오늘날 우리들 모두가 그들과 함께 이루어 놓은 근대화의 성과를 즐기며 산다. 생기발랄한 자유민주주의와 15000불에 이른 국민소득과 국민연금․의료보험등의 현대적인 복지제도를 누리며 산다. 또 자동차강국, 조선강국, 철강강국, 반도체강국, IT강국, 인터넷강국, BT강국이라는 즐비한 자부심과 88올림픽을 대성공시킨 나라, 월드컵 4강신화의 나라, 한류열풍의 나라라는 감격을 안고 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상당수는 아직도 그들을 독재자, 살인마라고 욕하고 정경유착을 한 자들이라며 거침없이 비난을 해댄다.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의 반만큼이라도 그들을 예우할 수는 없는 것인가? 배은망덕하기로 이보다 더 할 수 있으며, 눈깔이 썩고 영혼이 타락했기로 이보다 더 할 수 있을까?
  
  
  명치유신이래의 그 수많은 일본의 근대화 영웅들중에 민주주의자가 있었나? 없다. 하나도 없다. 그들은 모두 천황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의 통치는 반민주적인 천황제 군국주의였다. 일본의 근대화과정중에는 군사쿠데타가 없었나? 아니다. 두 번 있었다. 일본의 근대화 영웅들중에는 부정부패와 지저분한 여자문제가 하나도 없었나? 아니다. 많이 있었다. 근대 일본의 정치자금은 영국-미국식 기준으로 보면 모조리 부정부패로 봐도 된다. 이런 그들에 대해 일본정부가 앞장서서 영국과 미국식 잣대로 역사바로세우기를 한다며 난자질을 해댄 적이 있었나? 없다! 전혀 없다! 한번도 없다!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제국주의 시절에 아시아․아프리카의 모든 나라가 서유럽국가들의 식민지․반식민지(半植民地)로 굴러 떨어지고 있을 때에, 유일하게 일본만이 자력으로 독립을 유지시킨 그들의 공을 알기 때문이다. 거지나라에 불과했던 일본에서 식산흥업(殖産興業)과 부국강병(富國强兵)에 전념하여, 아시아․아프리카에서는 유일하게 경제발전을 성공시킨 그들의 공을 알기 때문이다. 아시아의 변방에 불과했던 일본이 경제발전에 성공한 후, 아시아의 절대강자 중국을 격파하고(1894, 청일전쟁), 나폴레옹, 히틀러도 이겨보지 못한 유럽의 전통강호 러시아까지 격파하면서(1904, 러일전젱) 하루아침에 일본을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비약시킨 그들의 공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본정부의 총리, 국회의원들은 국제적인 비난과 외교적인 마찰을 각오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으로 낙인찍힌 근대화 영웅들(도오죠 히데끼등)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기까지 한다. 대다수 일본인들도 근대화 영웅들의 훌륭한 점을 즐겨 얘기하지, 그들의 치부를 까발려서 망신주기를 즐겨하지 않는다.
  
  
  그런데 아시아․아프리카에서 두 번째로 근대화에 성공한, 자랑스러운 역사에 빛나는 대한민국에서 역사바로세우기를 한다며 난리를 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근대화를 못한 나라들도 안하는 짓을 그 어려운 근대화에 성공한 나라가 할 필요가 무엇이었다는 말인가? 그것은 역사바로세우기가 아니라 역사대학살이 되고 말았다.
  
  
  노태우시절에 대부분의 중요한 민주화조치, 자유화조치는 이미 다 이루어졌으므로, 김영삼과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그들이 내세울만한 민주화조치, 자유화조치는 남아있지 않았다. 그 대신 그들은 엉뚱하게도 개혁이라는 명분을 들이밀며 “역사바로세우기”를 추진했다.
  
  
  자유주의자 말썽꾼출신답게, 김영삼의 역사바로세우기는 영국과 미국의 시각에서 한국의 현대사를 난자질한 사건이었다. 당연히 영국과 미국의 근대화역사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군사쿠데타나 독재, 그리고 대한민국 근대화의 적이었던, 빨갱이와 용공분자와 자유주의자들에 대한 정치적인 탄압이 징벌의 대상이 되었다.
  
  
  영국과 미국의 민주화만이 유일무이한 정답인 양 교육을 받은 대다수의 국민들은 멀뚱멀뚱 지켜보고만 있었다. 독일과 일본도 분명히 민주화된 국가였고, 그들의 험난했던 민주화 과정을 모를 리 없었던 한국의 지식인들은 대체로 침묵을 지켰다. 변명할 수 없는 비겁과 무능이었다. 오히려 민주화인사라는 명예 한자락을 걸쳐 보려거나 국회의원 한번 해보려는 2류, 3류의 부나방같은 지식인들이 이 난리통속에 날뛰었다.
  
  
  한국 지식인들의 침묵과 비겁과 무능속에서, 전 세계인들이 찬양하고 부러워마지 않았던 한국의 기적적인 근대화 성공스토리는 침을 뱉어야 할 누더기가 되어 버렸다. 박정희의 탄압으로 억울한 피해자가 있었다면 해원해 주고 명예회복시키고 국가가 배상하면 될 일이었다. 전두환과 노태우가 수천억의 부정축재를 했다면 그에 따라 벌을 주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아시아․아프리카의 세계에서 두 번째로 달성했던 조국근대화의 위업마저 역사바로세우기라는 명분으로 국가가 앞장서서 난자질을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아빠는 강도질, 엄마는 창녀질을 해서 우리 집은 부자가 된 것이 아닐까?”하고 의심을 하는 부잣집 아이들처럼, 한국인들은 그들의 자랑스런 역사에 대해 한순간에 자신감을 상실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김대중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마자 전국적으로 “제2건국위원회”를 설치하게 했다. 그 명칭에서도 느껴지듯이, 1948년 이승만의 제1건국이 잘못된 것이므로 김대중의 주도하에 제2건국을 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었고, 김영삼의 역사바로세우기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무엇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 당시 한국은 외환위기로 경제적인 어려움이 심각했으므로 제2건국위원회는 개점휴업상태가 되고, 김대중의 제2건국은 그의 정치적인 양자(養子)였던 노무현시절에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노무현의 역사바로세우기(=친일청산, 과거사 청산, 건국후 주류세력 교체)는 한마디로 이미 죽어버린 김구와 김일성의 망령을 되살려 내어 펄펄 살아 있는 이승만과 박정희와 전두환과 노태우와 대한민국의 뒷통수를 갈겨 보겠다는 수작이었다. 대한민국의 근대화과정중에 가장 심각한 방해자였던 김구와 김일성의 시각에서 한국현대사를 난자질하고 대한민국을 부정하려는 것이었다. 그것이 제2건국의 의미였다.
  
  
  노무현은 그의 취임사등에서 한국현대사가 불의와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였으며 건국이후 주류세력을 교체(숙청)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었다. 노무현은, 이승만이 미국과의 야합을 통해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민족주의세력(김구)이나 사회주의세력(김일성, 박헌영, 김원봉)을 적대시함으로써 분열, 분단상태에 굴러 떨어 졌다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따라서 불의와 기회주의로 태어난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같은 대한민국 근대화의 영웅들에게 망신을 주고, 부관참시를 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그후에는? 망국노들(김일성, 김정일, 김구, 김대중, 노무현)의 길을 따라 민족공조의 이름으로 연방제 통일로 가겠다는 수작이었다.
  
  
  이미 자명하게 판명났듯이, 김구와 김일성은 이승만에게 정치적으로, 역사적으로 패배한 사람들이다.
  
  
  김구의 지고지순했던 독립운동정신은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을 만했지만, 해방정국의 민족지도자로서는 가장 무능했고 그래서 제일 먼저 퇴출당했다. 남북합작노선을 주장했던 김구의 행적은 망국노적인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김구의 공산주의-자본주의에 대한 이해의 수준, 국제정세를 바라보는 안목이 얼마나 천박한 수준이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김구처럼 무능하고 흐리멍텅한 사람이 우리민족의 지도자가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될 일이었다.
  
  
  1930년에 집권한 스탈린의 폭압적인 독재와 끔찍한 피의 대숙청으로 전세계가 공산주의에 대해 몸서리를 치고 있었고, 이에 따라 빨갱이세력의 확산을 막자는 냉엄한 국제냉전체제가 시작되고 있었다. 따라서 그 타당성과 실현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였던 “남북합작노선”을 고집했던 김구는 민족을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warm heart)에 휩쓸려서 머리까지 몹시 뜨거워져 버린(very far from cool head) 2류 정치가임을 스스로 드러냈다. 김구는 이승만의 간절한 만류를 뿌리치고 평양으로 올라갔으나, 아들뻘되는 김일성에게 실컷 농락당한 후, 후줄근한 모습으로 다시 남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암살당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대한민국의 국부 이승만은, 대한민국은 김일성방식의 빨갱이 나라가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되며, 김구방식의 빨갱이들과 간음하는 남북합작국가(연방제 국가)가 되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오로지 당대 최고의 부강국이었던 미국을 열심히 배워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의 국가를 건설한 후, 이를 기반으로 남북통일까지 이뤄내야 한다는 “남한민주기지노선”을 주장했다.
  
  
  이에 반해, 김일성은 “북조선혁명기지노선”으로 대항했다. 해방당시 북한은, 일제가 150만 관동군의 중국침략전쟁을 병참지원하기 위해 건설했던 어마어마한 중화학공업설비를 아무런 전쟁의 피해없이 고스란히 물려 받았다. 일본과 유럽이 제2차 세계대전의 전쟁참화로 황폐화되었음을 고려한다면, 북한은 미국과 더불어 지구상에 존재하는, 단 2개의 짱짱한 중화학공업국가였다. (김일성이 6. 25 남침을 했을 때, 북한이 거의 독자적으로 전쟁을 수행할 만한 물적 기반을 갖고 있었음은 틀림없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6. 25사변은, 미국의 중화화공업설비와 일제가 북조선․만주지역에 건설해 놓았던 중화학공업설비간의 대결이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김일성정권은 친일파청산을 명분으로 악질반동지주의 청산, 토지개혁도 화통하게 해치워 버린 혁명정권으로 각인되었다. 민족사적인 정통성은 당연히 북한에 있는 듯 했고 미래의 경제적인 번영도 보장받은 듯 했다. 김일성이 주창한 “북조선혁명기지노선”의 승리는 너무도 당연해 보였고 “우리의 조국은 북조선일 뿐”이라는 남한 빨갱이들의 외침이 전혀 이상하게 들리지 않았다. 그후 이어진 남한 빨갱이들의 월북(越北)러시를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그들은 오늘날 미국이민을 가는 사람들보다도 더 홀가분하고 희망찬 모습으로 38선을 넘었을 것이다.
  
  
  건국당시 이승만노선은 절대적으로 불리한 가운데 출발하였다. 그후 김일성노선과의 무력대결(6.25사변), 체제우위경쟁을 거치며 반세기 가까이 목숨을 건 사투를 벌였다.
  
  
  이승만이 간절히 꿈꿨던 “남한민주기지”는 후임 박정희의 “위대하고 비장했던 독재”를 통해 구체화되었고, 전두환, 노태우를 거치며 강대국형 산업구조를 완성하고 자유민주주의 국가건설에 성공함으로써 비로소 그 훌륭한 모습을 분명히 드러내게 되었다.
  
  
  그러나 비할 데 없이 짱짱하게 출발했던 김일성노선은, 중공․베트남이 개혁개방을 서둘고, 소련․동구권의 사회주의체제가 붕괴되었을 뿐만 아니라, 북한이 300만명을 굶겨 죽이는 끔찍한 모습을 드러내며 마침내 “이승만-박정희의 남한민주기지노선”앞에서 완벽한 패배를 당하게 되었다.
  
  
  한국의 근대화에 대한 끊임없는 방해꾼들이었던, 김구의 잔당들과 박헌영의 잔당(한국내 김일성노선 추종자)들도 하루아침에 하릴없는 똥친 막대기로 전락하였다. 수년 또는 수십년 그들 나름의 대의를 위해 투쟁해 왔다고 자부해 왔는데, 그들의 인생이 온통 미친 짓이었고 하루아침에 만화(漫畵)가 되어 버리는 쓰라림을 겪어야 했다. 이 무렵 발표되었던 친북좌익의 대부 리영희의 반성문에 잘 나타나 있다.
  
  
  이승만-박정희노선의 승리는 의심할 바 없었다. 북한이 경제파탄에다가 핵무기칼부림으로 국제적인 고립과 압박을 자초하게 되면서 자유통일의 전망도 가시권에 들어오게 되었다. 이제 대한민국은 승리자로서 북한을 자유통일한 후, 헐벗고 탄압받았던 북한주민들까지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만이 줄 수 있는 생기발랄한 기쁨과 행복을 누리게 하면, 이승만-박정희노선은 한반도 전체에서 완성되는 것이었다.
  
  
  이승만-박정희노선은 20세기에는 “일본에 이어 아시아, 아프리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근대화를 달성”한 대성공을 거두었고, 21세기에는 “자유통일과 세계 5대강국 달성”이라는 성공을 보장할 우리들의 보물임이 입증되었다. 이승만의 제1건국이 이토록 훌륭한 성과를 보였는데, 왜 우리가 김대중, 노무현을 따라 제2건국을 해야 한다는 말인가? 이 무슨 미친 망발이란 말인가?
  
  
  그런데 이승만-박정희노선은 승리를 바로 코 앞에 두고 어이없게도 불의의 일격을 맞았다. 김대중의 햇볕정책이었다. 김일성의 공작금을 받아 쓴 원죄(原罪)와 노벨평화상을 기필코 받고야 말겠다는 노탐(老貪)때문이었겠지만, 김대중의 햇볕정책은 제1차 북핵위기이후 까마득히 잊혀져 있었던 북한의 연방제 통일방안에 맞장구를 쳐 주었다.
  
  
  김대중의 햇볕정책이든, 북한의 고려연방제든 모두 김구의 남북합작노선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김대중이 자랑하는 6. 15 남북공동선언은 1948년 당시 김구의 표현대로 하면 6 .15 남북합작선언이라 할 만한 것이었다. 핵무기를 개발하는 김정일에게 5억불씩이나 국민 몰래, 미국 몰래 갖다 바치는 반역을 저지르면서, 이를 민족공조라는 명분으로 덮어 버리려는 악지와 음모를 부렸다.
  
  
  김대중의 햇볕정책이후, 그동안 똥친 막대기로 전락해 있던 김구의 잔당들과 박헌영의 잔당들이 모두 거룩한 민족주의자, 통일운동가로 되살아났다. 망해가던 김정일이 김대중의 퍼주기로 되살아 났다. 그리고 죽어 있던 김구의 망령이 되살아나 난데없는 민족주의의 열기와 반미열기가 우리 사회를 휘감기 시작했다. 장문의 반성문을 쓴 후 죽어지내던 리영희도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와 “수렴론적인 통일”을 해야 한다는 헛소리를 하기도 했다.
  
  
  또한 김정일의 핵무기 공갈앞에서 겁먹은 많은 사람들이 민족공조, 민족화해, 민족교류, 민족통일, 한반도평화라는 듣기 좋은 말에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따라갔다. 한나라당 대통령후보를 찍으면 미국과 사바사바해서 핵전쟁이 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도 느꼈다. 지역감정도 한몫해서 “김대중 슨상님이 하시는 일인데...”라며 눈감고 옳소했다.
  
  
  김대중의 햇볕정책을 계승했다는 노무현 망국노정권이 벌이는 역사바로세우기로 인해, 세계 10위권의 부강국에 오른 대한민국의 빛나는 근대화 업적이 부정되는 것은 물론, 국가정체성마저 위기를 맞는 기가 막힌 상황이 벌어졌다. 노무현의 대통령후보 검증과정이 너무도 짧고 부족했을 뿐 아니라, 그가 김대업사기, 설훈사기, 기양건설사기, 돼지저금통사기등의 불법으로 대통령이 되었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이런 망국노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대한민국 국민들은 뼈저린 자기반성과 함께 올바른 역사인식을 재정립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해방정국에서 벌어졌던 이승만과 김구의 대결이 2006년에도 어처구니없이 재현되고 있다. 60년전에도 백해무익했던 논쟁과 대결을, 원조 빨갱이국가들이 모조리 멸망하고 김정일이 300만을 굶겨 죽인 것이 명백해 진 60년후에도 계속하고 있으니, 우리들의 흐리멍텅한 역사인식, 현실인식이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다.
  
  
  한국은 민주주의라는 훌륭한 제도를 성취하는데 분명히 성공했지만, 이토록 훌륭한 제도를 이용해서 최선의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선출하고 최고의 집단적인 의사결정을 하는데는 아직도 미숙한, 국민소득 1만불짜리의 저급한 민주주의임을 입증하고 있다. 잘못 선출된 노무현같은 망국노를 얼마나 빨리 제거할 수 있는가가 향후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과제일 것이다.
  
  
  
  
  
  7. 선진화와 경영자혁명
  
  
  정치혁명이란 무엇인가? 일언이폐지왈, 그 사회에서 가장 문제해결능력이 뛰어난 집단이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일이다.
  
  
  대한민국이 아시아, 아프리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근대화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간 우리나라의 정치지도자들이 다른 나라보다 문제해결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이었지, 불의와 기회주의로 일관하는 지도자들이었다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아시아, 아프리카 세계에서,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체제-친미반공노선에 대해 가장 투철한 소신을 가졌던 정치지도자들은 누구였을까? 나는 대한민국의 국부 이승만과 현대일본의 설계자 요시다 시게루였다고 생각한다. 그후 한국과 일본만이 아시아, 아프리카 세계에서 가장 분명하게 근대화에 성공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은 건국초기부터 가장 문제해결능력이 뛰어났던 지도자를 갖는 행운을 누렸던 것이다.
  
  
  자본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이상사회의 가능성을 제시했던 레닌과 스탈린도, 민족해방전쟁에서 뛰어난 역량을 보였던 호지명과 모택동도, 인도독립투쟁에서 성스러운 모습까지 보였던 간디와 네루도 그들의 나라를 근대화시키지 못했고, 그들의 국민들에게 만족스런 번영과 자유와 평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이승만은 압도적인 국력의 우위에 있던 김일성의 공격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냈고, 미국이 그리도 꺼려했던 한미동맹조약을 마침내 이끌어 냄으로써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성공하였다. 이승만이 구축해 놓은 한미동맹이라는 안보기반위에서 군출신이었던 박정희와 전두환, 노태우의 경제개발과 복지국가건설이 추진되었다. 그들 군출신집단이 경제개발 추진에 있어서 얼마나 문제해결능력이 뛰어났는지는 최근 중국정부가 공개한 '중국현대화보고 2005-경제현대화연구'에 잘 나타나 있다. 한국이 가장 어려운 조건에서 출발하여 지난 42년간(1960-2002) 가장 위대한 성취를 이룩했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이승만과 군출신 대통령들에 의해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성취한 한국에 있어, 이제 새로운 목표는 선진화라고 얘기한다. 아마 국민소득 3-4만불수준의 선진부국이 돼서 우리의 삶의 질을 더욱 높이고 한국 민주주의를 좀더 성숙시키자는 얘기일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에서 선진화과업을 성취할 수 있는, 가장 문제해결능력이 뛰어난 집단은 누구일까? 나는 한국의 전문경영인집단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중화학공업화가 기적적으로 대성공을 거둔 것이었다면, 그 기적을 실제 산업현장, 현장에서 구체화시켰던, 진정 문제해결능력이 뛰어났던 사람들이 없을 리 없다. 한국의 전문경영인집단이 바로 그들이었다. 한국 중화학공업의 연륜도 이제 30년을 넘어섰고, 크고 작은, 수많은 기적의 사나이들이 대거 양성되었다.
  
  
  한국의 전문경영인집단은 1960년대 수출주도의 경제개발시대이래로 한결같이 세계적인 골리앗 대기업들과 싸워 왔다. 그 피말리는 경제전쟁판에서 그들은 살아 남았고, 최근에는 세계적인 골리앗 대기업들을 추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삼성, LG, 현대자동차, POSCO, 현대중공업, 대우조선, 삼성중공업등의 요즈음 성취를 보라.
  
  
  삼성전자 사장을 역임하고 정통부장관을 맡아 IT839계획등으로 뛰어난 역량을 과시하고 있는 진대제를 보라. 현대건설 사장을 역임하고 서울시장을 맡아 서울시 교통체계개편, 청개천 재개발사업을 통해 참신한 역량을 발휘하고 있는 이명박을 보라. 한국의 어느 집단도 이들보다 더 치열한 단련을 받은 집단이 없고, 실제적인 성과를 끊임없이 생산해 낸 집단이 없다.
  
  
  구멍가게 장수천을 말아먹은, 변호사출신 노무현이 '말장난 정치'에 그칠 수 밖에 없고, 앵무새 앵커출신 정동영은 '이미지 정치'에 탐닉하고 있지만, 한국의 전문경영인집단에게는 이따위 말장난과 허상같은 일상이 용납되지 않았다. 그들의 경쟁자는 항상 세계의 골리앗 대기업들이었으므로 한번 수틀리는 짓을 했다가는 바로 패배와 적자와 도산과 실업으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그들은 항상 긴장할 수 밖에 없었고 최선을 다해 실력과 경쟁력을 키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승리하기 위해 소비자만족 경영을 뼈속깊이 새겨넣지 않을 수 없었고, 거대한 민간기업 조직을 민주적으로,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단련을 통과해야 했다. 그들은 끊임없이 세계를 읽어야 했고, 그래서 그들은 우리 사회에서 세계를 가장 잘 아는 집단이 되었다.
  
  
  3류 정치룸펜그룹인, 김근태, 이해찬류의 영어 한마디 못하는 운동권출신들에게, '만국(萬國)에 의한 만국(萬國)의 경쟁시대'인 세계화시대에 대처할 문제해결능력이 있을 리 없다. 그들은 학창시절부터 이미 3류임을 입증했다. 1980년대 사회주의 국가들이 비상한 붕괴조짐을 역력히 드러내고 있는데도(즈비그뉴 브레진스키의 '거대한 실패, Grand Failure' 참조), 그들은 주체사상과 맑시즘에 빠지는 백치성, 둔감성, 경솔함을 유감없이 드러냈었다.
  
  
  왜 한국의 경제성장이 세계주요국중 꼴찌수준이냐고? 왜 10년 가까이 국민소득이 1만불수준에서 헤메고 있냐고?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소위 민주화시대이래로 한국의 두뇌부에 3류 쓰레기들이 너무 많이 들어와 '국가의 IQ'가 멍청이 수준으로 굴러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 3류 쓰레기들이 도덕성시비, 노사평화질서파괴, 기업지배구조개혁등을 내세워 한국 경쟁력의 핵심이라 할 전문경영인, 민간기업인들을 계속 못살게 굴었기 때문이다. 삼성회장 이건희가 김영삼정권의 초기였던 1993년에 내뱉었던 '정치는 3류'라는 일갈은 지금도 음미해야 할 가치가 있다.
  
  
  선진화를 이룩하려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대제, 이명박이 보여준, 우리의 발전을 지속시키고 삶의 질을 높이는 보석같은 성과들이지, 노무현과 그 주변의 3류 쓰레기들이 주장하는 과거사 청산, 국가보안법 폐지같은 것이 아니다.
  
  
  이제 한국의 전문경영인들이 정치전면에 나서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할 때가 되었다. 국가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기업경영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라도 한국의 정치판이 3류의 쓰레기들로 오염되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해서도 안 된다. 이승만과 군출신 대통령들이 추진해 왔던 “이승만-박정희노선”의 건강한 계승발전을, 이제 한국의 전문경영인들이 담당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선진화는 한국에서 가장 문제해결능력이 뛰어난 전문경영인들이 정치판의 3류 쓰레기들을 청소하고 정치권력을 장악해 가는 '전문경영인들에 의한 정치혁명'이어야 한다. 세계의 골리앗 대기업들과도 싸워서 승리한 한국의 전문경영인집단이 한국의 3류 쓰레기들에게 패배할 이유가 없으며, 이 3류 쓰레기들을 더럽다고 피하기만 해서도 안 된다. 최근 삼성출신의 현명관이 제주지사 출마의사를 밝힌 것은 바람직한 모습으로 보인다. 민간기업경영에서 이미 뛰어난 역량이 입증된 전문경영인들이 보다 더 적극적으로 정치에 진출해야 한다.
  
  
  일본은 아직도 “장사하는 놈 따로, 정치하는 놈 따로”식의 전근대적인 정치문화에 머물러 있다. 따라서 일본에서 세계적으로 뛰어난 경영능력을 증명한 도요다출신 경영자들이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일은 요원해 보인다. 중국은 공산당 원로인 아버지들이 해먹고 그 아들인 태자당들이 대를 이어 해먹는 “밀실속의 공산당 세습귀족독재체제”에 머물러 있다. 중국의 정치체제는 김정일의 세습왕조독재체제보다 별로 나을 것이 없어 보인다.
  
  
  만약 한국이 미국처럼 우리들중에서 가장 우수한 자들이 우리를 지배하게 하는 정치혁명에 제일 먼저 성공한다면, 선진화달성은 물론 21세기의 신흥강대국으로 등장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한국의 경영자혁명의 성공여부에 따라 한국의 미래도 결정될 것이다.
  
  
  노무현이후 집권할 자가 박근혜든, 이명박이든 고건이든, 그 누구이든, 그들이 반드시 해야할 일은 우리 사회의 전문경영인집단을 한국정치의 주력군으로 성장시키는 일일 것이다. 우리들중에서 가장 우수한 자들이 우리를 지배하게 하는 일이다.
  
  
[ 2006-03-13, 20:4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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