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우파, 가짜 애국, 가짜 기독인들
흡수통일을 기피하는 자, 自主국방을 두려워하는 자, 좌파와 싸우지 않고 이기주의만 추구하는 자들은 우파도 보수도 아니다.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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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흡수통일을 기피하는 우파는 가짜
  
  
   자칭 보수라는 사람들중에는 통일을 하지 말고 남한사람들끼리만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애국이고 보수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들은 예사로 '赤化도 싫고 통일도 싫다'고 말한다. 이들은 김정일 정권이 무너져서 통일의 기회가 와도 휴전선을 단단히 지켜서 북한체제가 무너지지 않도록 하고 북한難民들이 남쪽으로 내려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사람들은 평화시에 북한주민들이 300만 명이나 굶어죽었다는 사실에 대하여 동정하지 않는다. 이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한국이 赤化되어 자신들의 재산과 자유가 사라지는 것이지, 자유통일로써 노예동포들을 구출해야 하겠다는 마음은 없다. 통일을 해도 아무 부담이나 피해 없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전형적인 공짜심리의 소유자들이고 利己心의 화신이다. 북한체제가 무너지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이들은 김정일 정권 붕괴 방지를 對北정책의 요체로 생각하는 좌파정권과 다름 없다.
  
   분단고착 노선을 신봉하는 이런 이기주의자들이 하는 계산은 과학적으로도 틀려먹었다. 북한사람들이야 죽든 말든 남한만 赤化되지 않고 잘 먹고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불가능하다. 북한에 독재정권이 존재하는 한 남북한간의 '타협이 불가능한 총체적 권력투쟁'은 계속된다. 북한에 독재정권이 존재하는 한 그들은 남한의 민주체제를 파괴하기 위한 공작을 중단할 수가 없다. 남한의 이기적 富者들이 원하는 '우리끼리 잘먹고 잘살자'가 불가능한 것이다.
  
   이런 이기주의적 보수층은 民族주의와 人道주의를 외면함으로써 스스로 守舊세력이고 反통일세력이 되어버렸다. 이런 보수 같지 않은 보수층이 있기 때문에 한국의 우파 전체가 좌파로부터 공격당하고 있는 것이다. 우파도 기준을 정해서 기회주의적인 기득권층과 결별해야 한다. 자유통일을 두려워하는 세력은 보수층도, 우파도, 애국세력도, 자유진영도 아니다.
  
   김정일 정권을 몰아내어 북한동족을 구출하고 북한을 민주화하여 한반도 전체를 자유화하는 것, 그런 자유통일을 통해서 선진국으로 가는 길을 여는 것이 한국 우파의 역사적 임무이다. 이런 노선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까지 反좌파라는 이유만으로 우파 편에 넣어주다가는 우파는 위선자와 이기주의자와 비겁자들의 짐을 대신 지고 주저 앉게 될 것이다.
  
   김정일 정권에 대한 두려움만 있고 분노가 없는 자들, 자신들의 재산과 자유만 소중하다고 생각하고 북한주민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눈물도 관심도 없는 자들이 보수와 우파와 애국을 자처하도록 내버려두어선 안된다. 이들은 좌파보다도 더 非도덕적인 한국 사회의 쓰레기들이다.
  
   유럽의 富者들은 싸워서 王政도 무너뜨리고 정권도 세웠다. 한국의 富者들은 自立 自主 自衛정신이 부족하여 위대한 한국인들이 피, 땀, 눈물로써 만들어준 체제를 좌파에게 팔아넘기고 있다. 좌파가 권력을 잡으면 좌파에게 추파를 던지고 우파가 권력을 잃으면 우파를 공산당보다 더 멀리하려는 한국의 富者들은 반드시 그 代價를 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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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자주국방을 포기한 우파는 가짜이다
  
  
   위대한 민족지도자 이승만(李承晩)의 생애에 있어서 1950년 6월25일 김일성의 남침이 시작되자 서울과 시민, 그리고 군인들을 버리고 몰래 한강을 건넌 뒤 다리를 끊은 행위는 일대 오점(汚點)으로 남게 되었다.
  
   대통령은 국회까지도 버리고 감으로써 2백10명의 의원들 가운데 62명이 서울에 잔류하게 되었다. 이들 중 8명이 피살되고 27명이 납북되거나 실종되었다. 당시 육군본부 정보국 문관이던 박정희는 대통령이 된 뒤 이 역사의 교훈에서 「서울사수(死守)」란 안보개념을 확립하는 한편으로 자주국방력 건설을 추진하게 된다.
  
   박정희는 여러 번 『전쟁이 일어나면 나는 서울에 남아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겠다』는 말을 했다. 1975년4월29일 월남패망을 하루 앞둔 날 박정희 대통령은 「서울사수(死守) 서약」을 발표한 뒤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자기 나라를 자기들의 힘으로 지키겠다는 결의와 힘이 없는 나라는 생존하지 못한다는 엄연하고도 냉혹한 현실과 진리를 우리는 보았다. 충무공의 말씀대로 필사즉생(必死卽生)필생즉사(必生卽死)이다. 이 강산은 ··· 우리가 살다가 이 땅에 묻혀야 하고 길이길이 우리의 후손들에게 물려 주어서 지켜가도록 해야 할 소중한 우리의 땅이다. 영원히 영원히 이 세상이 끝나는 그날까지 지켜가야 한다. 저 무지막지한 붉은 오랑캐들에게 더럽혀져서는 결코 안된다. 지키지 못하는 날에는 다 죽어야 한다>
  
   박정희의 뇌리에는 국가지도부의 서울포기가 가져온 지옥도(地獄圖)가 찍혀 있었다. 그런 상황을 예상하여 막아보려고 애썼던 입장에 있었던 그로서는 뼈에 사무치는 경험이었다. 「한국전쟁사」 제1권은 이렇게 적고 있다.
  
   「한강인도교 폭파로 한수(漢水)이북에서 싸우고 있던 장병들 가운데 4만4천 명의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7사단의 경우 (약1만 명 가운데) 장병5백 명과 기관총4정만 도강(渡江)할 수 있었다. 1사단은 5천 명만 도강하고 각종 대포는 유기되었다. 제2, 3, 5사단 역시 흩어진 채 도강하였기 때문에 부대의 편제를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이 책은 이어서 「군작전을 신뢰하다가 피난길이 막히게 된 정부요원들과 시민들은 학살되거나 지하로 숨어들지 않으면 안되었고 미처 반출하지 못한 정부 재산은 적의 좋은 먹이가 되었다」고 지적했다.
  
   대한민국의 국가지도부는 끝발 순서대로 몰래 서울을 빠져나갔다. 이승만(李承晩)대통령은 27일 새벽2시에, 신성모(申性模)국방장관은 오후2시에, 채병덕(蔡秉德)육군총참모장은 28일 새벽2시에. 채병덕은 서울을 빠져나가기 전에 일선 전투부대에 철수명령을 하달하지도 않았다. 명령을 전투부대에 전달할 만한 통신체제도 유지하지 못했다.
  
   버려진 군인들 가운데 가장 비참한 운명을 맞은 것은 부상자들이었다. 6월24일 현재 서울시내 육군병원에 입원중인 환자는 약1천3백 명이었다. 여기에다가 3일간의 전투에서 다친 3천2백 명의 군인들은 서울대학 부속병원 등 민간병원에도 분산되었다.
  
   서울대학병원은 1개 소대 병력이 지키고 있었다. 28일 인민군이 서울에 진입하자 서울대학병원에선 움직일 수 있는 전상자 80여 명이 한 장교의 지휘하에 뒷산에 올라가 싸우다가 모두 전사하였다. 남아 있던 전상자들은 인민군에 의하여 학살당했다(한국전쟁사 제1권).
  
   박정희는 신라통일 이후 처음으로 자주국방이란 문제의식을 가졌던 지도자였다. 신라통일 이후 약1200여년간 우리 역대 왕조는 사대주의를 외교 국방정책으로 받드는 과정에서 안보는 중국에 맡기면 된다는 생각에 너무 오랫동안 젖었다.
  
   국가지도층의 의식속에서 자주국방이란 개념 자체가 실종되어 버렸다. 박정희는 북한 정권의 위협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자주국방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그의 자주국방은 북한군에 1 대 1로 맞설 수 있는 군사력의 건설인 동시에 주한미군에 너무 의존하지 않는 군사력 건설이기도 했다. 對美 자주란 의미도 포함되어 있었다.
  
   박정희는 주한미군으로 상징되는 對美의존이 불가피하게 국내 정치에 대한 미국의 간섭을 부른다는 것을 절감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反美로 돈 것은 아니었다. 미국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으면서도 미국에 너무 의존할 때 생기는 자주성의 상실과 한국인들의 무책임성을 걱정했던 것이다.
  
   한국의 우파는 지금 주한미군 철수를 반대하고 있으나 자주국방을 우파의 목표로 포기해서는 안된다. 자주국방은 우파의 필수적 도덕률이 되어야 한다. 북한을 압도하는 이만한 경제력이면 우리는 미국의 도움 없이 북한군과 맞설 수 있어야 하고 김정일의 핵개발에 우리 힘만으로써도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경제력에 자주국방의 정신력만 더한다면 가능한 이야기이다. 악랄한 김정일은 지금 자주국방을 하고 있지 않은가. 한국은 지금 비겁한 죄로 해서 악랄한 세력에게 끌려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권력투쟁의 세계에서는 비겁함이 악랄함보다 더 나쁜 것이 아닐까.
  
  
   물론 당장 주한미군을 철수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자주국방을 목표로 삼아 지금부터 자주국방 의식을 함양하면서 주한미군 없는 국방을 준비해야 한다는 말이다. '反김정일 자주국방 의지'를 확립하려면 한국내 김정일 세력을 약화시켜야 한다. 그 뒤에 주한미군 철수와 자주국방 체제가 들어서야 하는 것이다. 한국내에 반역세력을 온존시킨 상태에서 주한미군 철수가 이뤄져서는 안된다.
  
   한국내 김정일 추종세력을 무력화시켜가는 방향의 종착지가 자주국방이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자주국방을 포기한 우파는 미국의 힘에 기생하는 또 다른 사대주의 세력이 될 우려가 있다. 인류 역사상 이 정도의 경제력 격차를 가진 나라가 외국군대의 주둔에 힘입어 경제규모가 수십분의 1도 안되는 집단을 상대로 쩔쩔 맨 사례가 있을까. 우파의 각성은 이런 무책임성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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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안싸우는 江南사람은 우파가 아니다.
  
  
   1. 2002년 대통령 선거일 직전에 서울 강남에 사는 한 부인이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이번 투표날엔 골프 치러 가지 말고 꼭 투표하라'고 부탁했다. 그 친구는 '우리는 이사를 가고 주민등록지를 옮기지 않아 투표장까지 가려면 차를 타야 하는데 나는 차비가 없어 못간다'고 이야기했다. 부인은 '그렇다면 내가 차를 몰고가겠다'고 했으나 친구는 냉정하게 전화를 끊었다.
  
   李會昌 후보가 낙선한 다음날 이 부인은 그 친구한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어제 투표했던가'라고 물으니 친구는 쌀쌀하게 말했다.
   '남편과 함께 골프 치러갔다'
   '차비가 없어서 투표장에 못간다더니 너 그럴 수가 있어?'
   '왜? 이회창이가 두표 차로 떨어졌니?'
   이 말을 듣자말자 부인은 울화가 치밀어 올라 기절하고 말았다고 한다. 이는 實話이다.
  
   2. 이런 농담이 있었다.
   <때려 X이고 싶은 X은? 노무현 찍고 이민 간 X>
  
   3. 며칠 전 서울의 부자동네 사람들이 많이 나온 모임에 갔다. 구청장이 자랑을 했다.
   '그곳에 임대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라는 정보를 미리 입수하니 앞이 캄캄했습니다. 우리 區가 무너질 것이란 위기감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서울시를 설득하여 그곳에다가 체육단련장을 짓기로 했습니다'
   강북에 사는 나는 이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공무원이 이런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해도 되나'하는 생각이 하나이고, 이런 말을 듣고도 모두가 잘했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이 부자마을 사람들의 양심은 도대체 몇 원짜리인가 하는 분노였다.
  
   4. 임대아파트가 옆에 들어서면 주거, 교육환경이 나빠지고, 아파트 값이 떨어진다고 건축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는 부자들이 있기 때문에 좌파들이 득세하고 노무현 대통령의 '양극화 선동'이 먹히는 것이다. 임대아파트 입주자를 마치 백인이 흑인 보듯이 하면서 합법적인 건축을 방해하는 이런 부자들이야말로 한국 사회를 계급적으로 분열시키는 사람들이며 도덕적으로 평가해도 친북좌파보다 못한 존재이다. 임대아파트가 들어선다고 용감하게 억지를 부리는 부자들일수록 평소엔 호화판 생활을 즐기면서 애국운동을 기피하고, 투표일엔 외국여행을 나가는 경우가 많다. 좌파의 도전에 대한 위기의식도 거의 없다. 자신들의 자유와 재산은 그 누군가가 대신 지켜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5. 이런 富者들은 김정일과 그 추종세력의 위협에 직면해서도 자신의 존재를 지키기 위해서 싸우지 않는다. 모든 생명체는 생명체로서의 존립을 위협하는 외부 세력에 대해서는 싸워야 할 생명체로서의 의무가 있다. 생명의 핵심은 자유이다. 자유를 위협하는 세력에 맞서 싸우지 않는 순간 그런 생명체는 생명력을 잃고서 無생물이 되는 것이다. 밟았을 때 꿈뜰대는 지렁이는 생명체이지만 밟아도 반응이 없는 것은 생명이 아니라 시체이든지 돌과 같은 무생물이다. 무생물체는 자유를 상실하여 아무런 가치가 없으므로 쓰레기 취급을 받아도 할 수 없다.
  
   6. 친북좌파들은 자신들의 존립을 보장받기 위하여 피나는 투쟁을 계속해왔다. 여론과 언론과 권력면에서 압도적으로 불리한 조건하에서도 그들은 자신들의 존재가치를 지키고 확장하기 위하여 싸웠다. 그들의 지향점은 틀려먹었으나 생명체로서의 의무는 다한 셈이다. 따라서 도덕적으로 봐서도 싸우는 좌파는 안 싸우는 우파보다 우월하다.
  
   7. 가장 경멸해야 할 부류는 못사는 사람들에게 못되게 굴면서 권력을 쥔 좌파에 대해서는 싸움을 기피하고 굴복해버리는 '잘 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오만함으로써 좌파들을 키웠고 비겁함으로써 좌파들을 강화시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2007년 大選에서 사이비 좌파를 물리치고 정상적인 사람이 이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강남사람들부터 보다 겸손해지고 보다 용감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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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한국기독교가 저지르는 '빌라도의 범죄'
  
  
   몇년 전에 본 영화 '그리스도의 수난'(Passion of Christ)에서는 유태인들이 예수를 죽이는 과정이 잘 그려져 있다. 이 때문에 이 영화가 反유태인 정서를 선동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예수를 죽인 것은 유태 민중이 아니었다. 당시 로마 지배하에 있던 유태사회의 기득권 세력이었다. 유태교의 고위 성직자들. 예수는 주로 이들의 부패를 공격했던 것이다. 제사장 그룹이 예수를 잡아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넘긴다. 빌라도는 예수를 놓아주려고 애쓴다. 살인범 바라바와 예수 중에 한 사람을 놓아주려고 하는데 몰려온 유태인들에게 선택하라고 한다. 당연히 예수를 놓아주라고 할 줄 알았는데 유태인들은 살인범을 석방시켜달라고 한다.
  
   빌라도는 예수로부터 죄를 찾지 못했다면서 갈릴리 지방의 왕인 헤롯에게 데리고 가서 재판을 받으라고 하여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 헤롯도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기 싫어 예수를 다시 돌려준다.
   빌라도는 예수에게 매질을 한 뒤 놓아주었다. 유태인들은 매질 당해 빈사상태에 빠진 예수를 다시 빌라도 앞에 데리고 온다. 유태인 가운데서도 선동의 명수는 대제사장 가이바이다. 영화에서 그는 빌라도를 협박한다.
  
   '예수란 자는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을 거부하도록 선동했으며 왕이라고 참칭했습니다. 반드시 로마 법으로 처벌해야 합니다'
   (신약성경 요한복음 19장12절에는 유태인들이 빌라도를 향해서 이렇게 소리쳤다고 기록했다. '당신이 이자를 풀어주면 당신은 시저의 친구가 아니요. 왕을 자칭하는 자는 그 누구든지 시저에 적대하는 자입니다')
  
   가이바는 예수가 로마황제에게 大逆罪를 저질렀다고 고발한 것이다. 빌라도 총독은 그런 예수를 놓아주었다가는 반란혐의자를 풀어준 것이 된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그래서 물로 손을 씼으면서 자신은 예수의 死刑에 관계가 없음을 선언하고는 예수를 군중에게 넘겨주고 너희 뜻대로 하라고 빠져버린다.
  
   머리 좋은 유태교의 고위층은 빌라도 총독을 협박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요사이 식으로 이야기하면 '이 자는 내란을 선동하는데 귀하가 이를 용서하면 헌법을 거역할 속셈이냐'고 대어든 것이다. 유태교 지도부는 헌법만큼 힘이 센 가이사(시저), 즉 로마 황제의 권위를 빌어 예수를 죽인 것이다. 그 시대 시대마다 절대적 권위라는 것이 존재한다. 지금 북한에서는 김일성 父子의 말이 절대적이다. 한국을 비롯한 문명국가에서는 헌법이 절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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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인들이 예배 때마다 암송하는 '사도신경'(The Apostles' Creed)은 352년의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채택된 교인들의 신앙고백이다. 그 全文은 이렇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니다'
  
   여기서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라고 명시한 것이 눈에 뜨인다. 영어原文은 이렇게 되어 있다.
   'suffered under Pontius Pilate, was crucified, dead, and buried'
   '본디오 빌라도의 治下에서'가 번역과정에서 '본디오 빌라도에게'로 단순화되는 바람에 빌라도에게 직접 예수처형의 책임을 지우는 형식이 되었다. 빌라도가 여러번 예수를 살려주려고 애썼던 것에 비교하면 사도신경의 이 문책은 가혹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예수의 生殺여탈권을 쥔 사람은 유태인들이 아니라 로마총독 빌라도였다. 그가 비록 예수를 살려주려고 노력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참고사항에 불과하다. 그가 유태인들의 선동에 넘어가지 않을 만한 결의와 용기만 있었다면 예수를 보호할 수 있었다. 그는 대중선동에 맞서서 자신의 양심을 지키지 못했다. 그는 양식을 갖고 있었으나 그 양식은 신념화되지 못했다. 대중선동에 굴복하는 권력자의 양심은 범죄이다. 그래서 사도신경은 예수의 살인자로 빌라도를 지목하고 있는 것이다. 빌라도가 범한 죄과는 '방관의 죄'이다. 방관하지 않으면 억울한 죽음을 막을 수 있었던 권력자가 방관한 것을 기독교도는 가장 중대한 범죄로 규정하고 예배 때마다 이를 상기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는 빌라도와 같은 '방관의 죄'를 범하고 있지 않은가. 오늘날 예수처럼 핍박받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우리의 지척에 있는 북한동족들이다. 한국의 1000만 기독교인들이 용기를 가지고 행동하면 김정일 정권을 약화시키든지 밀어내고 북한동족을 구원할 수 있다. 한국사회의 주류층이 된 기독교인들은 그렇게 할 만한 힘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빌라도처럼 한국사회의 권력자이다.
  
   한국 기독교가 독재자로부터 맞아죽고 굶어죽어가는 북한동족들을 구원할 힘이 있는데도 그 힘을 사용하지 않고 독재자 김정일의'악마의 포식'을 계속해서 방관한다면 수백만 동족들을 죽음으로 몰고간 책임을 빌라도처럼 질지도 모른다. 하나님의 눈에는 한국 기독교의 비겁이 김정일의 살육과 같은 무게로 계산될지도 모른다. 한국 기독교인들이 교회당을 최신식으로 짓고, 富者들과 성공한 사람들의 무사태평을 기원해주는 역할에 주력하면서 하나님을 참칭하는 김정일과 그 추종세력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이 '사탄의 세력'에 의한 동족학살엔 눈을 감아버린다면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다행히 오는 2월28일부터 3월1일까지 서울영락교회에서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한 '북한동족과 탈북자들을 위한 통곡기도회'가 열린다고 한다. 이 기도회는 로스엔젤레스의 孫仁植 목사가 주도하여 이뤄진다. 그는 '한국의 교회들이 북한동족 구원을 기도의 주제로 삼아야 교회도 부흥하고 목회자와 신도들도 뚜렷한 삶의 목표를 설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동족과 김정일의 존재를 직시하지 않는 교회와 목회자와 신도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도록 한 빌라도의 범죄를 되풀이하는 것이 된다. 짐승처럼 살아가고 동물처럼 죽어가는 북한동족들을 외면한 채 하나님만을 내세우는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도, 소망의 종교도, 믿음의 종교도 아닌, 사탄의 세력에 굴복한, 부패한 邪敎에 불과하다.
  
   오늘도 기독교인들은 사도신경을 암송했을 것이다. 거기서 나오는 빌라도를 '한국교회'로 바꾸고 예수를 '북한동족'으로 대체하여 다시 한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 2006-05-09, 11:4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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