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美의 代價: 미국은 북한을 중국에 넘긴다
반미의 대가: 결국 한국은 동맹도 잃고, 남북간의 평화통일 실현도 불가능해질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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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韓美동맹
  
  이정훈 교수 자유지식인선언 심포지움 발표 논문
  
   아래 글은 지난 10일 '김정일 정권 종식과 한반도 통일전략'이라는 주제로 열린 자유지식인선언에서 발표된 논문 요약본입니다. 코나스 독자들의 일독을 권합니다. <편집자 주>
  
   북한의 급변사태와 한미동맹
  
   1. 서론
  
   지난 수년간 급변하는 국제안보환경 속에서 韓美 양국은 동맹에 대한 전반적인 태도 변화를 겪어왔고, 이는 韓美 동맹이 단순한 對北 억지력을 넘어서 이념, 기능, 전략, 가치관 등의 포괄적인 차원에서 재정비 되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야기시켰다.
  
   특히 2000년 6월에 성사된 남북 정상회담과 이듬해 9월에 터진 9.11 테러 사태는 韓美동맹의 틀을 위협하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 우선 남북 정상회담은 북한에 대한 위협인식을 바꿔 놓았고, 가시화된 對北 포용정책은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의 존재이유를 훼손시켰다.
  
   9.11 테러 역시 기존의 한미동맹 체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차후 진행된 테러와의 전쟁, 비군사적 안보요인의 부상, 그리고 새 안보환경에 대처할 수 있는 미군의 근본적인 변형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요구하였다.
  
   최근 발표된 4개년 국방전략보고서(QDR: February 2006 Quadrennial Defense Review)에 의하면 미군의 군사 작전 및 전략은 SSTR (Security, Stability, Transition, and Reconstruction) 개념에 맞춰지고 있고, 주한미군의 역할도 이러한 신개념의 연장선상에서 봐야 할 것이다.
  
   그럼 과연 북한의 급변사태時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은 어떻게 적용될 것인가? 북한정권의 붕괴사태 시나리오는 크게 ① 점진적 변화를 통한 연착륙, ② 무력 도발, 그리고 ③ 내부 붕괴 3가지로 분류 가능하다. 그러나 과연 북한의 급변사태가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천명하는 '자국의 평화와 안전에 대한 위협'이라고 인정이 될지 의문이다.
  
   한미 양국의 국익과 전략에 갈등이 있는 현 상황에서 북한의 급변사태는 한미동맹의 자동적 작동을 보장할 수 없다. 그 결과는 북한이 중국으로 흡수될 가능성만 높여주고, 결국 남북 평화통일의 실현 가능성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논의를 개진하고자 한다.
  
  Ⅱ. 냉전기의 한미동맹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 후 자유진영과 공산권으로 남북한이 각각 편입된 대립구조는 곧 이어 1950년 6월 25일 대규모 전쟁으로 이어졌고,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이후에도 적대적 대립상태는 지속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자주국방이 불가능했던 한국은 자연히 미국에 의존함으로써 북한으로부터의 안전보장을 추구하였다. 戰後 한국방위의 기초가 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1954년 11월 17일에 발효된 후 오늘날까지 한미관계에서 안보문제뿐만 아니라 전반적 측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간주되어 왔다.
  
   따라서 한국 안보외교는 이념적 양극구조 속에서 수행되어 온 것으로 특징 지어질 수 있다. 이런 구도는 생존권 보장과 국가발전이라는 이중의 혜택을 부여했으나 동시에 많은 갈등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사실 한미방위조약 협상 이후 거듭되었던 갈등은 주한미군의 철수, 방위비 분담 등 다양한 모습으로 표출되어 양국간의 관계를 위협해 왔다. 방위조약 협상시의 갈등은 신속한 휴전을 원했던 미국과 휴전보다는 통일을 선호했던 한국의 입장차이로 극명하게 대립되었다.
  
   그러나 한미 동맹관계가 더욱 어려워진 것은 한국의 국가안보는 물론 동북아시아의 국제관계 전반에 대해 중대한 영향을 준 사건들이 거듭 일어난 1960년대 후반부터였다. 우선 1968년 1월 21일 북한 공비의 청와대 기습사건이 일어났고, 이틀 뒤인 1월 23일 미 해군함정 푸에블로호가 북한에 납치되었다. 1968년 11월에는 울진, 삼척지구에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거듭되었고, 이듬해인 1969년 4월 14일에는 미 해군 정보수집기인`EC -121`기가 동해에서 추락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곧바로 한미 양국간의 공동 관심사로 부상했으며, 이 사건들의 해결을 둘러싸고 한미 간의 갈등은 한층 심화되었다.
  
   우선 한미 양국은 사태를 보는 시각이 달랐다. 한국은 당시 북한의 공세를 對南 적화공작 차원으로 해석하려 했고, 미국은 월남전의 연장선상에서 한국 사태를 보려 했다. 더 나아가 미국이 푸에블로호 문제는 중시하면서 청와대 기습사건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도 양국간의 갈등을 고조시킨 요인의 하나였다. 그러나 한미 간의 갈등을 심화 시킨 가장 큰 요인은 닉슨 미 대통령이 1969년 7월, 괌에서 아시아 정책과 관련해 발표한 '괌 독트린'이었다. 미국의 전반적인 긴축정책을 시사한 이 발표문은 곧 주한미군의 감축으로 현실화되었다. 당시 한국은 북한의 침략 위기에 직면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을 돕기 위해 월남에 5만 명의 한국군을 파병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로 인한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미국의 철군계획을 계기로 한국은 자주국방을 위한 방위산업을 본격적으로 가동시키는 동시에, 독자적인 핵무기 개발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물론 한국으로서는 미국의 정책방침을 번복 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는 한미동맹 관계에서 한국측의 영향력은 극히 제한되어 있는 반면, 미국측의 영향력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한국은 결국 미국의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고, 따라서 한미 동맹관계는 외관상 불변한 상태로 유지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두 나라 관계에 실제로 아무 변화가 없었던 것만은 아니다. 첫째 1960년대 말부터 격화된 한미 양국간의 갈등은 한국이 미국에 대해 갖고 있던 신뢰를 크게 감소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둘째로 미국에 대한 불신은 곧 한국에서 反美 감정 및 反美 운동으로 확산되었다. 셋째 한국은 보다 독자적인 정책을 수립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하기 시작했고, 이는 미국의 한국에 대한 지원축소로 귀결되었다.
  
   1970년대 이후 미국의 한반도정책이 단지 미국의 세계전략의 일환에 불과하다는 현실을 직시한 한국은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였고, 이런 노력에 힘입어 이후 일어난 두 나라 간의 갈등 시 좀 더 여유 있게 대처할 수 있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특히 카터 美 대통령이 인권문제를 앞세워 주한미군 철수 계획을 추진했을 때, 그리고 1978년 이후 제기된 미국의 방위비 분담 압력이 가중되었을 때 과거와 달리 침착하게 대응했다는 점은 한미 간의 갈등이 어느 정도는 희석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Ⅲ. 탈 냉전기의 한미관계
  
   舊소련의 해체와 동구 공산권의 붕괴로 인한 냉전의 종식은 국제정세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미소간의 정치적 화해로 이념적 양극구조는 분열되었고, 이는 1993년 '제2단계 전략적무기감축협정'(START II)의 체결, '화학무기금지조약'(Chemical Weapons Convention)의 조인, 1996년 세계 5대 핵 강대국들이 모든 형태의 핵 실험을 금지한다는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omprehensive Test Ban Treaty)의 서명 등 실질적 군축으로 이어졌다. 이와 같은 미 러 협력관계는 한반도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국의 국방정책을 지배해 온 동서 이념대립의 종결이 일부에서는 한국이 더 이상 미국의 봉쇄정책에 얽매여 있어야 할 명분이 없다는 논리를 제시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논리는 김대중 정권의 對北 포용정책으로 연결되었고, 역으로 한미동맹은 심각한 反美여론에 시달려야 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등장 이후 미북 관계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면서, 우리 국민의 反美 여론 또한 심상치 않은 확산 조짐을 보여 왔다. 특히 시민 단체들과 방송매체는 체계적인 反美 운동을 통해 사회 전체의 對美 의식 변화를 시도하는 듯하였다. 이들 反美주장의 핵심은 부시 행정부가 무책임하게 한반도 정세를 긴장 속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점인데, 이것이 장기적이고 효율적인 미국의 대외정책 차원이 아닌, 엔론게이트 무마,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 F-15 전투기 판매 등 미국의 국내적인 요인들로 인해 초래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미국이 유일한 강대국으로서 오만함에 휩싸여 한국을 비롯한 개도국들을 무시한다는 인식 역시 反美감정을 부추겼고, 동계 올림픽의 '김동성 사건'과 결정적으로는 여중생 사망사건이 국내여론을 反美 쪽으로 기울게 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문제는 이러한 反美감정이 부시 행정부의 거시적인 세계관이나 정책노선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 기초하지 못했으며, 한미 동맹관계에 중 장기적으로 미칠 수 있는 부정적인 영향을 지나치게 간과했다는 데에 있다. 감정에 치우친 反美운동은 우리의 중 장기적인 국익에 큰 손실을 가져올 수 있다는 뜻이다. 反美감정이 한참 고조되 있을 당시 한 국내 여론조사에 의하면 '한반도 주변 4강 가운데 어느 나라에 대해 가장 호감을 느끼는가?'라는 질문에 중국이 10% 이상의 차이로 미국에 앞서 1위를 차지하는 '이변'이 발생하기도 했다. 아무리 부시 행정부를 불신한다 해도 반세기를 유지해온 한미 '혈맹관계'를 무시한 채 수교한 지 불과 10년밖에 되지 않았고 아직 민주주의를 외면하며 독재적인 공산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을 더 지지한다고까지 나오는 일부 의견엔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 정부를 포함한 우리 사회 일부의 노골적인 반미 성향은 결국 한국의 안보와 정체성에 큰 타격을 가하고 있고, 그 결과는 속속 드러 나고 있다. 주한미군의 대규모 감축과 '2급 기지'로의 하향조정 계획은 이미 진행중이다. 최근 실무 군사관계에 있어서도 이상 기류가 흐르고 있다. 우선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 삭감은 주한미군의 한국인 근로자 1,000명 해고 및 국내 사전배치 장비 철수로 이어졌다. 미국은 또한 한반도 유사시에 대비해 배치해 놓은 전쟁예비물자(WRSA) 탄약 전체를 처분하겠다고 밝혔다. 유사시 10일치 정도의 탄약만을 자체적으로 보유한 우리로서는 치명적인 조치이다.
  
   상황이 이러한 데도 현 정부는 북한의 정권 붕괴와 대량 난민 발생에 대비한 한미간의 작전계획(OPLAN) 5029를 중단시켰고, 대통령은 한국인이 너무 '친미적'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이에 외교부는 '외교부엔 친미파가 없다'며 눈치보기에만 급했다. 일찍이 SOFA 협상, 노근리 조사, 매향리 사격장 등의 문제를 둘러싸고 양국은 이미 긴장관계에 돌입되었었다. 최근에도 전시 작전권 환수, FTA, 전략적 유연성 문제 등의 다양한 현안들이 한미 동맹관계에 강한 압박을 가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만 해도 오키나와 주둔 미 해병대의 잇단 범죄로 오키나와 주민의 반미감정이 고조되면서도, 9.11 테러 이후의 美日 협력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강화되어 가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예의 주시해야 할 것이다.
  
   유럽에서도 親美와 反美의 이해가 교묘하게 교차되었다. 9.11 테러 발생시 '우리는 모두 미국인'이라며 전폭적인 미국 지원에 나섰던 프랑스가 유럽 내 反美감정의 선봉 역할을 하였다. 프랑스를 포함한 대부분 유럽 국가들의 反美 내용은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한 경고이며 이러한 일방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 미국은 제반 현안에 대해 유럽과 상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유럽의 보수와 진보 진영이 미국에 대한 지지 비판을 놓고 서로 비방하면서도 미국으로부터 얻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동일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프랑스이든, 독일이든, 영국이든, 미국의 의도와 사회적 분위기를 정확하게 읽고 반미, 친미를 막론하고 自國의 이익을 위해 전략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상황과는 사뭇 다르다. 우리의 반미성향이 유럽의 경우와 같이 건설적인 國益추구라는 목표를 지향하는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친미, 반미라는 틀을 넘어 원만한 한 미관계를 유지하고, 궁극적으로 우리의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움직임을 음모와 과오로만 인식할 것이 아니라 그 본질을 파악하고 순리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미국의 反테러 전쟁에 반대한다는 본능적인 반응만 보일 것이 아니라, 9.11 테러 이후 급변하는 미국사회, 부시 행정부와 미국 국민이 임하고 있는 反테러 전쟁에 대한 의지, 더 나아가서 우리의 어떠한 대응이 국익을 위한 최선책인지 보다 심도 있게 짚어 볼 필요가 있다.
  
  Ⅳ. 미 군사전략 변화와 한미동맹
  
   2001년 9월 11일은 미국인들에게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격보다 더 뼈아픈 기억으로 남을 듯하다. 미국의 富를 상징하던 뉴욕의 월드트레이드센터(WTC) 건물이 납치된 항공기 자살 테러로 순식간에 무너졌고 미국의 자존심으로 여겨지던 미 국방부 청사마저 무자비한 테러의 희생물이 되고 말았다. 이 사건은 '21세기의 첫 전쟁'으로서, 그 양상이 전통적인 전쟁 개념과는 다르다는 것을 미국인들은 깨달았다. 전쟁은 꼭 국가간의 대결이 아니며, 미국 밖에서만 일어나는 것도 아닌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이 지적한대로 '21세기형 전쟁'은 장기전이 불가피하고 전선도 따로 없다. 그래서 미국은 전쟁을 군부 주축으로 수행하고 본토 국민들은 새로운 전쟁 개념에 맞추어 비상 태세를 유지하면서도 정상적이고 자유로운 생활을 최대한 보장하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테러 전쟁의 수행으로 국민의 일상생활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며 이로 인한 사회적 변화에 대비토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국민들에게 호소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은 현재 戰時상태에 있고 미국의 對外정책도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거대한 틀 속에서 수행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현재 미국이 북한을 한반도라는 특정지역의 개념이 아닌 反테러 캠페인이라는 큰 프리즘을 통해 비추어 보고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어쩌면 현재 미국이 구축하고자 하는 세계질서는 냉전의 흑백 논리보다 더 명백할지도 모른다. 테러와의 전쟁에 가담하여 미국과 함께 자유진영에 합류하거나, 테러를 좌시하여 결국은 미국을 등지는 두 가지 선택이 있을 뿐이다. 反美를 외치기 전에 우리가 정확하게 이해해야 할 것이 바로 이런 점이다. 테러와의 전쟁 차원에서 빚어진 미국의 對北觀 및 對北 정책의 배경에 대해 충분한 이해 없이 비판하고 거부하면 미국이 추구하는 자유진영의 대열에서 점점 멀어질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이 대량살상무기와 미사일 개발 및 확산에 대해 각별히 민감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反테러 전쟁을 치르고 있는 부시 행정부에게 북한은 국제질서를 위협하는 이른바 7대 불량국가 중에서도 상위권 순위를 다투는 위험한 존재이다. 그 원인은 북한이 대량살상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있어 거의 모든 능력을 갖춘 국가이고, 이 점이 곧 미국의 反테러 캠페인에 큰 부담을 안겨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거시적인 시각에서 봤을 때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부시 행정부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반미가 명분을 갖기 위해서는 북한이 실질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증거가 제시될 필요가 있고, 특히 북한이 남한에 미치는 군사적 위협 요인이 실제로 감소되었는지 여부가 확인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안다. 우리 국방부 자료에 의하면 북한은 군사우선정책 하에 군사력을 강화하고 통일전선 전략을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있으며, 따라서 북한에 의한 군사/비군사적 위협이 남한에 상존하고 있음은 명확한 사실이다. 토마스 슈왈츠 주한 미군사령관 역시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북한 위협 가중론'을 제기하며 북한의 군사력이 더욱 강해졌으며, 치명적임을 증언한 바 있다.
  
  같은 맥락에서 북한은 6자회담을 거부하고 있는 동시에 '우리는 이미 자위를 위해 핵무기를 만들었다'면서 핵 무기고를 계속 늘릴 것을 수 차례 시사한 바 있다. 북한의 의도가 협상전략 차원을 넘어 이제는 핵 보유국의 반열에 오르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들이 불식되기 전에는 비난의 화살이 부시 행정부보다는 김정일 정권에 돌려져야 할 것이다. 이제 북한문제는 한반도지역에 국한된 문제라기보다는 '테러와의 전쟁'이 펼쳐지고 있는 새로운 국제질서의 흐름을 가늠할 시험무대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황이 복잡한 만큼 초심으로 돌아가 볼 필요가 있다. 韓美 상호방위조약의 중요성과 당사국으로서의 의무를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이 조약의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당사국 중 일국의 정치적 독립 또는 안전이 외부의 무력공격에 의하여 위협 받고 있다고 인정될 경우 언제든지 양국은 서로 협의하는 동시에 상대 당사국에 대한 무력공격을 自國의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고 인정하고, 공동의 위험에 대처하기 위하여 각자의 헌법상의 절차에 따라 행동한다.'
  
  여기서 과연 테러라는 무력공격을 받아 위기에 처해 있는 미국을 위해 우리가 동맹 당사국으로서 헌법상의 절차에 따라 최선의 행동을 취했는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미 '혈맹관계'라는 특수한 관계를 감안하면 사실 우리는 영국, 일본에 버금가는 전폭적인 對美 지원을 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허나 우리 정부의 전폭적인 對美 지원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일부 여론은 이슬람권을 동조하는 듯한 의견을 시사해 미국에게 부분적이나마 배신감을 느끼게 한 것이 사실이다.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일어난다면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이고, 미국이 우리의 입장을 동맹국으로서 전폭적으로 지지해줄지 의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균형자론'을 비롯해 북한의 위폐 문제에 대한 상반된 입장 등은 지난 수년간 한미 동맹을 끊임 없는 혼란과 대립에 빠지게 했다. 결과는 자명하다. '공동의 적'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부시 대통령은 일찍이 한국을 미국의 동맹국 리스트에서 뺀 적이 있고, 미 공화당도 일본을 핵심동맹으로, 한국은 민주적 파트너로 차별해서 규정한 바 있다.
  
  만약 現정부가 '북방3국'인 북한, 중국, 러시아를 적대시하지 않기 위해서 한미 동맹을 의도적으로 훼손시키는 것이라면 이것은 큰 오산이다. 우선 미국의 뒷받침 없는 한국의 국제적 입지는 크게 약화될 것이다. 또한 '反美'하고 '親中'한다 해서 중국이 한국을 존중해주고 무역, 투자, 고구려사, 탈북자 문제 등에 대해서 양보해 줄 일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중국이 마치 미국을 대체할 만한 우방국으로 여길지는 모르겠지만, 중국은 정작 중국 내의 고구려 유적을 대대적으로 정비하며 '중국 고구려' 관광을 활성화시키는 등 고구려사를 왜곡하는 동북공정 국가사업을 가속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은 베이징 올림픽과 상하이 엑스포를 계기로 대대적인 외교작업을 펼쳐 UNESCO와 같은 국제기구로부터 중국의 동북공정을 인정 받으려고 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우리의 고대사는 그야말로 왜곡된 역사 속으로 묻혀버릴 것이 自明하다. 과연 그때 가서 미국이 한국을 도와줄지 의문이다.
  
   미국이 自國의 이익을 위해서 영구적으로 한국을 필요시할 것이라는 인식은 위험하다. 2006년 2월에 발표된 4개년 국방전략보고서(QDR: February 2006 Quadrennial Defense Review)에 의하면 미군의 군사 작전 및 전략은 SSTR (Security, Stability, Transition, and Reconstruction) 개념에 맞춰지고 있고, 주한미군의 역할도 이러한 신개념의 연장선상에서 다뤄지고 있는 것이다. 주한 미군 재배치 및 감축 논의는 전세계 미군 재배치 계획과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QDR의 핵심 내용은 테러 네트워크의 타파, 적극적인 국토방위, 전략적 우군의 확산, 그리고 불량국가(rogue states) 또는 테러조직의 핵무기 보유 방지이다. 초점이 동북아라는 지역개념에서 글로벌 차원의 대테러 전쟁에 맞춰져 있다.
  
   한국을 포함한 미국의 모든 동맹국들은 앞으로 미국의 가치관을 공유하며 전세계적 군사/안보 부담을 나누는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정부는 긴박하게 움직이는 미국의 對테러 캠페인에 親美 反美를 초월한 협조와 지지를 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앞으로 한미관계에는 메울 수 없는 간극이 발생할 것이고 이는 세계 속에서의 한국 입지가 일본과 호주와는 달리 고립될 것이기 때문이다.
  
  Ⅴ. 북한의 급변사태와 한미동맹
  
   그럼 과연 북한의 급변사태時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은 어떻게 적용될 것인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상기된 바와 같이 북한정권의 붕괴사태 시나리오는 크게 ① 점진적 변화를 통한 연착륙(soft-landing), ② 무력 도발(explosion), 그리고 ③ 내부 붕괴(implosion) 3가지로 분류가 가능하다. 여기서 Soft-landing 시나리오는 급변사태가 아닌 변화를 의미하기 때문에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
  
   즉, 북한의 급변사태는 무력도발 또는 내부붕괴를 의미한다. 무력도발의 경우는 북한 내부의 사정으로 발생될 수도 있고, 외부 위협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인해 발생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무력 도발時 한미동맹이 어떠한 모습으로 작동될 것인가이다. 전면도발일 경우 휴전선에 배치된 북한군의 화력을 감안하면 주한미군의 상당한 피해가 예상되고, 이는 주한미군의 자동개입이 불가피하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도발 범위가 제한적인 low-intensity conflict일 경우 테러, 서해교전, 외진 일부 지역 점령 등 사태에 대한 대응이 평시작전권에 해당하는지 戰時작전권에 해당하는지에 따라 주한미군의 역할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내부붕괴의 경우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물론 미국의 기본 입장은 한반도의 안정 유지이고, 가능하면 자유민주주의적 통일을 지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미간의 대처방법에 있어 이견이 생기면 내부붕괴로 발생한 북한 내의 정치공백은 중국에게 동북공정을 펼쳐나갈 절호의 기회로 부각될 확률이 높아진다. 미국의 적극적인 개입을 한국정부가 反美시각에서 대처하면 바로 이런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다. 미국의 전략적 목표는 이제 對北 억지보다는 북핵 프로그램의 해체이다. 한반도의 비핵화는 對테러전의 연장선상에서 취급 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중국과의 'Big Deal'성사도 가능하다고 본다. 여기서 Big Deal은 미국이 중국의 협조를 얻어 북핵 프로그램 해체라는 중대한 성과를 얻어내는 대신 중국의 적극적인 對北 개입과 사태수습에 있어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동맹에 문제가 없으면 북한의 급변사태 수습은 당연히 UN 주도하의 한미연합군의 몫이다. 그러나 한미동맹은 평택 부지이전과 관련된 진통 및 탈북자 망명사건이 예시하듯이 지금 순탄하지 않다. 북한의 급변시 한미공조를 장담할 수 없다. 그렇다고 韓中공조를 장담할 수도 없다. 결국 미국과 중국은 국익을 챙기는 반면, 한국은 한미동맹의 와해로 인해 엄청난 국익 손상을 입을 수도 있다.
  
  Ⅵ. 결론
  
   韓美 양국의 전략적 시각과 정책에 간극이 있는 현 상황에서 북한의 급변사태는 한미동맹의 자동적 작동을 보장하지 못할 것이다. 북한의 급변사태가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천명하는 '自國의 평화와 안전에 대한 위협'이라고 미국에게 인정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한미 공조가 어려운 상황에서 미국은 중국과 손을 잡고 한국의 뜻과 무관하게 사태수습을 해 나갈 수도 있다는 점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그 상황에서 한국이 국제여론을 등지고 중국의 주도적 역할에 저항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국제여론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보장할 수 있는 중국의 적극적인 개입을 선호할 것이라는 가정하에 한국의 입지는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다. 그 결과는 북한내의 親中 정권 수립 후, 북한은 점진적으로 중국으로 흡수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한국은 동맹도 잃고, 남북간의 평화통일 실현도 불가능해질 수 밖에 없다는 논의를 결론적으로 개진하고자 한다.
  
   이정훈(연세대 교수)
  
  
  
[ 2006-05-15, 23:2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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