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선언문 秘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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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년만의 4.19, “4.19정신은 모든 독재의 거부”
  인터뷰/유세희 한양대 교수, 다시 보는 4.19
  
   “이수정 장관 하숙방서 밤새 선언문 기초”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실현은 아직 멀었다. 가야할 길이 멀고도 험한데 요즘 우리사회는 전세계가 거부하는 사회주의를 향해 거꾸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가. 어떤 독재도 정당화 될 수 없다. 1960년 학생들이 흘린 피가 헛되이 돼서는 안 된다”
  
  유세희 한양대학교 부총장은 1960년 4·19혁명 당시 경찰의 눈을 피해 고(故)이수정(전 문광부 장관)씨의 하숙방에서 선언문을 쓰던 때를 회고하며 우중민주주의로 향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 일침을 가했다.
  
  당시 4·19혁명의 집행위원이었던 유 부총장은 자유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독재정권의 탄압을 제거하기 위해 어린 학생들이 피를 흘려야 했던 1960년 봄, 역사의 현장으로 기자를 데려갔다.
  
  “대한민국은 해방이후 미국에 의해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도입됐으나 제대로 수립되지 못했다. 1960년 자유당 말기는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도 채 안됐으니 경제적으로 궁핍했고, 정치적으로는 암울했던 시대다. 당시 학생들은 학내 독서 또는 토론 서클을 통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고민을 했고, 그래서 만든 것이 ‘후진국 문제 연구회’였다. 우리는 자유당 영구집권과 이승만 독재가 포악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서울대 문리대의 정치과 학생을 중심으로 진행됐던 신진회(新進會)가 유근일(전 조선일보 주필)의 필화사건(1957년 서울대 문리대 교지에 실린 ‘무산대중을 위한 체제’라는 글 때문에 학생이 구속된 사건)으로 해체된 뒤 문리대 학생들은 후진국을 연구한다는 명목으로 1959년 봄에 ‘후진국 문제 연구회’를 창립했다.
  
  유세희 부총장은 “후진국 문제 연구회에 가입했던 2∼3학년 학생들 대부분이 4·19혁명에 참여했다. 당시 난 3학년이었는데 故이수정과 이장춘, 서정복 등 15명이 3월 말부터 모여 4·19를 계획했다. 당시 3·15 부정선거로 인해 마산에서 시위하던 고등학생 김주열이 행방불명됐다. 4월 11일 왼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마산 중앙 부둣가의 낚시줄에 걸려 올라왔다. 우리는 어린 아우들이 나서는 것을 보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고려대를 비롯, 서울시내 학교에 4·19 협조문을 보냈다. 각 대학으로부터 ‘동참하겠다’는 답변이 왔고, 우리는 정부 조치에 대한 항의 투쟁을 결심을 확고히 했다”
  
  
  
  1960년 4·19혁명이 일기 하루 전 고려대는 신입생 환영회가 있었고, 이를 계기로 모인 학생들이 암울한 시대를 걱정, 비판하다 ‘울컥’솟는 심장에 몸을 맡긴 채 거리로 뛰쳐나가 정부의 자유당 부정선거를 항의했다. 퇴교 길에 정부가 푼 깡패집단에 고려대 학생들은 무자비로 얻어맞기도 했다. 이러한 소식을 전해들은 4·19 집행부는 그날 밤 급하게 선언문을 준비하고, 플래카드를 제작했다.
  
  유세희 부총장은 격한 감정을 자제하며 선언문을 쓰게 된 과정을 설명했다. “내가 4·19에서 맡은 것은 선언문을 쓰는 것이었다. 학교 강의실에서 쓰려니 학생들이 들락거렸고, 출입하는 형사들도 기웃거려 결국 문리대 대학신문 기자로 활동한 故이수정군과 함께 그의 하숙방에서 쓰기로 했다. 국산 포도주 한잔 마시고 쓰자며 잔을 들고 있는데 마침 철학과 서정복이 놀러와 함께 선언문(초안-유세희, 격문-서정복, 선언문-이수정)을 쓰기 시작했다. 저녁 무렵 선언문과 격문을 끝낸 우리는 정치학과실에 가서 커다란 전지에 붓으로 선언문을 써서 벽보에 붙였다. 다음날 우리는 도서관, 의대, 법대, 미대, 음대를 쫓아다니며 학생들을 모았고, 삽시간에 천 여명이 모여 교문 밖을 나갔다”
  
  4·19 선언문에는 “한국의 일천한 대학사가 적색전제(赤色專制)에의 과감한 투쟁의 거획(巨劃)을 장(掌)하고 있는 데 크나큰 자부를 느끼는 것과 똑같은 논리의 연역에서, 민주주의를 위장한 백색전제(白色專制)에의 항의를 가장 높은 영광으로 우리는 자부한다” “민주주의 이념의 최저의 공리인 선거권마저 권력의 마수 앞에 농단(壟斷)되었다. 언론, 출판, 집회, 결사 및 사상의 자유의 불빛은 무식한 전제권력의 악랄한 발악으로 하여 깜박이던 빛조차 사라졌다. 긴 칠흑 같은 밤의 계속이다”는 내용이 포함돼 당시의 시대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유 부총장은 “대한민국은 직접선거를 통해 민주주의가 만들어지긴 했지만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는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면서 “4·19 때 학생들이 뿌린 피에 보답하기 위해선 감성적이 아닌 냉철한 사고로 법과 절차를 통해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4·19 정신에 대해 “4·19 정신은 모든 종류의 독재 반대이다. 어떠한 독재(이승만 독재, 김정일 세습)도 정당화 될 수 없다. 모든 종류의 독재는 악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그는 “'자유당이 하는 것은 무조건 민주주의이며, 독재에 저항하는 것은 이적행위' 라고 선을 그은 정부에 우리는 반대했고, 또 공산주의 체제를 강력하게 반대하기 위해선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실현밖에 없었다”면서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4·19혁명을 일으켰다”고 말했다.
  
  유 부총장은 4월 19일 광화문에서 김정일 독재에 대한 타도와 남한내 친북세력을 반대하는 집회가 열리는 것에 대해 “남한은 자유민주주의가 소개된 지 50년 만에 문민 대통령 선출을 통해 민주주의의 뿌리를 내려가고 있는데 일부에서는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단순한 민족주의적인 감성에 의해 북한 김정일을 동조하는 세력이 있다”며 “이런 시점에서 4·19 정신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남한만이라도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뿌리를 내려야 하며, 김정일 체제를 옹호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저해하는 요소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며 “이번 4·19청년대회에서 이 두 가지는 꼭 강조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유 부총장은 중국의 천안문 사건과 사회주의 붕괴를 설명하며 “마르크스가 ‘자유민주주의는 망할 것이다’고 했지만 망하지 않은 것은 비판을 통해 자생력을 갖췄기 때문”이라며 “사회주의가 붕괴한 것은 1인 독재로 정부비판 세력이 없어 자체 수정능력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정부를 비판하고 잘못된 것을 수정해 나가야만 자생력을 갖추게 된다”고 말했다.
  
  유 부총장은 “민주주의가 자칫 잘못되면 우중(愚衆)민주주의, 포플리즘(인기영합주의)으로 갈 수 있다”며 “합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무원칙으로 상황에 따라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포플리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아무리 다수라도 합리적인, 민주주의적인 법과 절차를 통해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 부총장은 DJ정권의 햇볕정책에 대해 “김대중 정권은 햇볕정책으로 인해 남북관계가 급속히 해결될 수 있을 것처럼 분위기를 이끌어 갔다. 이 때문에 자유민주주의 체제보다도 남북관계 개선 또는 조속한 통일이 더 큰 과제라고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다”면서 “이로 인해 북한을 비판하면 통일을 반대하는 것처럼 매도당하고 있다. 즉 친북 포플리즘으로 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1990년 붕괴 직전의 소련을 방문했을 때를 회고하며 “멸망하기 직전, 소련의 한 대학교 대자보에 ‘공산당원들을 모두 목매달아 처형하라’는 구호가 적혀 있었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요즘 우리나라 대학교 대자보에는 사회주의가 최상의 가치인 양 ‘미(美) 제국주의 타도’가 적혀있다”며 “이분법적으로 보는 사고가 우리 젊은이들을 이렇게 만들었고, 이러한 책임은 정치세력에 있다”면서 “여중생 사건을 반미로 몰고 간 그 당시 정부 책임이 크다”고 말했다.
  
  
  이혜원 기자 hwlee@independent.co.kr
  
  4.19 선언문
  
  상아의 진리탑을 박차고 거리에 나선 우리는 질풍과 같은 역사의 조류에 자신을 참여시킴으로써 이성과 진리, 그리고 자유의 대학정신을 현실의 참담한 박토(薄土)에 뿌리려 하는 바이다.
  
  오늘의 우리는 자신들의 지성과 양심의 엄숙한 명령으로 하여 사악과 잔학의 현상을 규탄(糾彈), 광정(匡正)하려는 주체적 판단과 사명감의 발로임을 떳떳이 선명하는 바이다.
  
  우리의 지성은 암담한 이 거리의 현상이 민주와 자유를 위장한 전제주의의 표독한 전횡(專橫)에 기인한 것임을 단정한다.
  
  무릇 모든 민주주의의 정치사는 자유의 투쟁사이다. 그것은 또한 여하한 형태의 전제로 민중 앞에 군림하든 ‘종이로 만든 호랑이’같은 헤슬픈 것임을 교시(敎示)한다.
  
  한국의 일천한 대학사가 적색전제(赤色專制)에의 과감한 투쟁의 거획(巨劃)을 장(掌)하고 있는 데 크나큰 자부를 느끼는 것과 똑같은 논리의 연역에서, 민주주의를 위장한 백색전제(白色專制)에의 항의를 가장 높은 영광으로 우리는 자부한다.
  
  근대적 민주주의의 기간은 자유이다. 우리에게서 자유는 상실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아니 송두리째 박탈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성의 혜안으로 직시한다.
  
  이제 막 자유의 전장(戰場)엔 불이 붙기 시작했다. 정당히 가져야 할 권리를 탈환하기 위한 자유의 투쟁은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가고 있다. 자유의 전역(戰域)은 바야흐로 풍성해 가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민중의 공복이며 중립적 권력체인 관료와 경찰은 민주를 위장한 가부장적 전제권력의 하수인으로 발벗었다.
  
  민주주의 이념의 최저의 공리인 선거권마저 권력의 마수 앞에 농단(壟斷)되었다. 언론, 출판, 집회, 결사 및 사상의 자유의 불빛은 무식한 전제권력의 악랄한 발악으로 하여 깜박이던 빛조차 사라졌다. 긴 칠흑 같은 밤의 계속이다.
  
  나이 어린 학생 김주열의 참시(懺屍)를 보라! 그것은 가식 없는 전제주의 전횡의 발가벗은 나상(裸像)밖에 아무 것도 아니다.
  
  저들을 보라! 비굴하게도 위하(威 )와 폭력으로써 우리들을 대하려 한다. 우리는 백보를 양보하고라도 인간적으로 부르짖어야 할 같은 학구(學究)의 양심을 강렬히 느낀다.
  
  보라! 우리는 기쁨에 넘쳐 자유의 횃불을 올린다. 보라! 우리는 캄캄한 밤의 침묵에 자유의 종을 난타하는 타수(打手)의 일익(一翼)임을 자랑한다. 일제의 철퇴 아래 미칠 듯 자유를 환호한 나의 아버지, 나의 형들과 같이….
  
  양심은 부끄럽지 않다. 외롭지도 않다. 영원한 민주주의 사수파(死守派)는 영광스럽기만 하다.
  
  보라! 현실의 뒷골목에서 용기 없는 자학을 되씹는 자까지 우리의 대열을 따른다. 나가자! 자유의 비밀은 용기일 뿐이다.
  
  우리의 대열은 이성과 양심과 평화, 그리고 자유에의 열렬한 사랑의 대열이다. 모든 법은 우리를 보장한다.
  
  -1960년 4월 19일,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학생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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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04-04, 17:5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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