紀行7/프랑스의 발상지 램스 대성당 이야기

조갑제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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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사스 로렌 紀行 7/램스 대성당 이야기
  
  
  우리 여행단이 첫날 묵었던 샴파뉴 지방 에페르네와 아주 가까운 곳에 램스(Reims)란 古都가 있다. 이곳에도 노틀담 성당이 있다. 노틀담이란 佛語로 ‘우리의 聖母’란 뜻으로 파리, 스트라스부르그, 샤르트르 등 여러 도시에 同名의 성당이 있다.
  
  램스 성당도 13세기에 건축을 시작하여 16세기에 첨탑이 올라가고도 계속 증축, 파괴, 개축을 되풀이한 역사적 건물이다. 크기는 길이 138미터, 폭이 38미터로서 스트라스부르그 성당과 비슷한 규모이다. 역대 프랑스 왕들의 대부분이 이 성당에서 대관식을 거행했다. 나폴레옹은 파리의 노틀담 성당에서 황제 대관식을 올렸다. 英佛 백년 전쟁 때 활약한 잔다크는 로렌 지방출신인데, 15세기 이 소녀의 敢鬪(감투)정신으로 왕이 된 찰스 7세도 이 성당에서 대관식을 올렸고 그 옆에 잔다크가 서 있었다고 한다.
  
  그 뒤 잔다크는 파리 공략에 실패하고 부르고뉴군에 포로가 된다. 프랑스의 심장부 沃土(옥토)를 장악하고 있던 부르고뉴 公國은 영국과 연합하여 프랑스 왕국과 싸우고 있는 입장이었다. 당사 부르고뉴는 지금의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그 지방까지 통치한 강국이었다. 영불 백년 전쟁에서 영국이 이겼더라면 프랑스가 부르고뉴에 합병되었을 것이다. 지금 기준읃로 보면 부르고뉴는 프랑스를 배신하여 敵國에 붙은 것처럼 되지만 당시는 요사이 우리가 생각하는 민족 단위의 국민국가가 탄생하기 전 王朝 시대였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부르고뉴 공국은 잔다크를 영국군에 넘겼고 영국군은 잔다크를 다시 파리의 종교재판소에 넘겼다. 종교재판소는 이 소녀를 이단으로 규정하여 화형에 처해버렸다.
  
  램스 대성당이 프랑스 王家의 정통을 잇는 상징적 聖所 역할을 하게 된 것은 람스가 프랑스라는 나라의 건국과 관계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서기 3-5세기는 게르만족의 대이동 시기였다. 로마제국이 내부 분열로 약해지자 라인강 동쪽 지금의 독일지역에 살던 게르만족이 서쪽으로 밀려든다. 이때 아시아 유목지대로부터 몰려온 훈족(흉노족의 후신이라고 함)이 게르만족을 압박한 것이 대이동의 다른 이유가 되었다.
  
  고트, 반달 등 여러 부족의 게르만족이 지금의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즉 문명세계로 몰려들어가 결국은 로마제국을 멸망시키게 된다. 지금의 프랑스 동북지역에 나타난 것은 프랑크족이었다. 프랑크족은 소수 지배층이 되어 이 지역을 통치하기 시작했고 왕국을 건설했다. 이 프랑크족의 왕 클로비스는 서기 498년 램스 지방의 주교로부터 傳道(전도)를 받아 기독교로 개종한다. 램스의 노틀담 대성당이 세워진 곳이 바로 그 改宗의식의 장소라고 한다.
  
  프랑스란 말은 프랑크란 말에서 나온 것이다. 지금의 프랑스 사람들은 그 구성이 라틴, 게르만족의 혼합 등 아주 복잡한데 國名은 지배층의 출신을 반영하여 게르만 부족 이름을 채용한 것이다.
  
  서구 문명세계를 점령한 게르만족은 기독교로 개종함으로써 그리스-로마-기독교 문화의 파괴자가 아닌 계승자가 된다. 이는 중국을 점령한 여러 북방유목민족이 漢字-유교문화를 흡수하여 중국화된 것과 비슷하다. 야만이 문명을 점령한 뒤 문명화되어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과정이 동서양에서 비슷하게 진행되었다(지금까지도 중국화를 거부하여 정체성을 지킨 몽골은 예외이다).
  
  프랑크족이 세운 프랑크 왕국은 8세기말 9세기 초에 걸쳐 샬레망 大帝 시절(영어로는 찰스 대제) 지금의 프랑스와 독일을 아우르는 제국으로 성장했다. 프랑크 왕국은 최초의 서유럽 통일국가라고 불린다. 샬레망 대제는 동쪽에서 스페인을 점령한 뒤 밀고들어오는 이슬람 군대를 막아 서유럽의 기독교를 수호했다. 서기 800년 그는 황제라 칭하게 되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된 것이다. 신성로마제국은 독일을 중심으로 한 중부유럽의 느슨한 연방제 국가였다. 그 황제 자리는 전통적으로 독일왕이 차지했고, 나중엔 비엔나에 본부를 둔 합스부르그 왕조가 맡았다. 나폴레옹에 의해 황제란 명칭이 없어지는 1806년까지 신성로마제국 황제는 교황과 함께 유럽의 兩大 세력을 대표했다. 즉 王權과 敎權의 대표자였던 것이다.
  
  샬레망 대제가 죽은 뒤 유언에 따라 프랑크 제국(수도는 지금의 독일 아헨)은 아들들 사이에서 지금의 독일 땅과 프랑스 땅으로 분할되었다. 알사스 지방은 9세기말 이후 프랑스와는 떨어져 독립적으로 700년간(17세기까지) 독립도시국가로 존재했다.
  
  램스의 노틀담 대성당은 1차세계대전 때 獨佛 격전지가 되어 많은 포격을 받았다. 戰後 미국 록펠러 재단의 지원으로 성당은 복구되었다. 1945년5월5월7일 나치 독일군은 람스시에 본부를 두고 있던 연합군 사령부의 아이젠하워 사령관에게 항복했다.
  
  알사스의 古都 콜마에 가보았더니 조각가 아우구스트 바톨디의 生家가 있었다. 바톨디는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을 만든 사람이다. 프랑스는 미국의 독립전쟁 때 워싱턴 장군을 도와 영국군을 무찔렀다. 그런 인연으로 미국 독립기념 100주년을 기념하여 프랑스 국민들이 선물한 것이 자유의 여신상이었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 프랑스가 비판적으로 나오는 가운데 알사스 지방을 여행했는데 美佛 우호 관계를 보여주는 건물과 기념물과 인물들이 특별히 많아 묘한 느낌이 들었다. 알사스 로렌 지역은1, 2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를 도와 독일군과 싸우다가 죽은 미군을 추모하는 기념물이 특별히 많은 곳이다.
  
  
출처 :
[ 2003-04-05, 20:0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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