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8/프랑스의 '이상한 패배' 연구

조갑제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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紀行文8/왜 프랑스는 결정적 선제공격의 찬스를 놓쳤는가
  
  이번 알사스 로렌 여행의 경로는 이러했다. 에퍼네이(샴파뉴주)-베르당(알사스)-난시(로렌)-스트라스부르그(알사스)-쉔넨부르그의 마지노 요새(알사스)-바덴 바덴(독일)-하이델베르그-리크빌-카이저버그-콜마(알사스)-안시(프랑스 사보아주)-샤모니(몽블랑)-리용-디존-본느-샤블리(이상 부르고뉴).
  
  우리는 열흘간 버스로만 돌아다녔다. 운전사는 레몽이라 불린 벨기에 사람이었다. 불평없이 성실하고 유모어 감각이 있는 유쾌한 노인이었다. 유럽은 버스 여행을 많이 하게 되는데 운전사를 잘 만나야 한다. 대체로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등 북쪽 유럽인들이 성실하다고 한다.
  
  車中에서 愼鏞碩 단장(여행단장이란 의미로 그렇게 불렀다)은 체험적인 유럽 문화, 역사, 생활상, 포두주를 이야기하고 필자는 교과서적인 역사, 전쟁을 이야기했다. 여행 참가자들도 마이크를 잡고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나 우스개를 하였다. 버스 여행에서만 맛볼 수 있는 즐거움이다. 특히 이번 여행에 참여한 사람들은 평균 연령이 60이고 대부분이 부부동반인데다가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한 이들이었으니 모두가 경청할 만한 이야기거리를 갖고 있었다. 포도주가 맛이 있는 것은 에이징(aeging), 즉 熟成이란 단계가 있기 때문이다. 차중의 사람들이 모두 잘 숙성된 인생을 가진 분들이었기에 그들의 이야기는 포도주보다 더 맛있었다.
  
  필자는 이라크 전쟁이 진행중에 여행을 하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여 車中의 주제를 獨佛 접경지대를 무대로 한 전쟁 이야기로 끌고 갔다. 아침마다 이라크 戰况을 해설해드리기도 했다. 포도주와 전쟁이 이번 여행의 話頭가 된 것이다.
  
  심리학자가 이런 말을 했다. 인간의 정신상태가 가장 안정되어 있을 때는 언제인가. 어린이들이 권투 글로브를 끼고 치고 받은 뒤의 정신상태라고 한다. 때리기만 하면 죄책감이 생기고 얻어맞기만 하면 원한이 생긴다. 때리고 맞든지, 맞고 때리든지 하면 주고받는 계산이 끝났을 때처럼 정신상태가 맑아진다는 이야기이다.
  
  지금의 독일 프랑스가 그런 관계일 것이다. 1870년 프러시아가 비스마르크 수상과 몰트케 장군의 영도하에 프랑스를 꺾을 때까지 독일의 여러 나라들은 프랑스의 밥이었다. 특히 나폴레옹 군대의 침략으로 피해를 집중적으로 본 것이 독일민족이었다. 보불전쟁에 진 프랑스는 1차세계대전의 승리로 복수하고 와신상담하던 독일은 1940년의 승리로 다시 복수하는가 했더니 연합군의 도움을 받은 프랑스는 드골 장군의 영도력하에 국토를 수복하고 어느 새 戰勝國 대우를 받게 되었다.
  
  2차세계대전후 獨佛 양국은 아데나워와 드골의 현명한 지도하에 친선관계를 다졌다. 지금 여론조사를 하면 프랑스 사람들은 독일 사람들을, 독일 사람들은 프랑스 사람들을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한국과 일본 사이의 계산은 어떻게 되는가. 우리의 기억에 생생한 임진왜란과 日帝 36년의 압제 때문에 2-0으로 우리가 일방적으로 당한 것처럼 된다. 삼국통일 과정에서 일본은 망한 백제를 구원하기 위하여 3만 대군을 400여척의 함선에 태워 황해로 보냈다. 663년 白村江의 해전에서 倭의 大軍은 신라 唐 연합군에 의해 전멸되었다. 이 패전을 일본에서는 교과서에 넣어 가르치는데 우리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13세기말 몽골이 고려를 지배할 때 몽골, 고려 연합함대는 두 차례 하카다(지금의 후쿠오카) 해변에 상륙하여 침공작전을 전개했으나 태풍을 만나 실패했다. 元寇의 來襲으로 불리는 이 침공작전까지 치면 우리도 두 번 일본을 친 것이 되지 않는가. 그렇게 계산하여 2대2로 삼고 새로운 생산적인 韓日관계를 만들어갈 수 없을까 하는 이야기도 나눠보았다.
  
  기자가 전쟁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국가가 존재하는 한 전쟁은 피할 수 없는 命題이기 때문이다. 외교로써 100년이 걸려도 풀 수 없는 문제를 전쟁은 며칠만에 해결한다. 전쟁은 국가와 국민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확장시킨다. 전쟁을 한번 겪은 국가와 국민은 (승리했다면) 대체로 건강해지고 실용적으로 되며 신중해진다.
  
  전쟁의 연구는 결국 인간의 연구로 귀착된다. 따라서 전쟁에 관심을 기울이면 사물을 깊게 현실적으로, 또 본질적으로 볼 수 있는 훈련이 된다. 회사 경영, 인생살이에도 도움이 된다. 전쟁의 본질을 알면 정치나 외교나 경제도 그 본질을 볼 수 있다.
  
  예컨대 기자는 이라크 전쟁을 관찰하면서 두 가지를 가장 중시했다. 연합군측의 전사자 숫자와 미국 여론의 전쟁 지지도 변화. 이 두 변수가 부시의 전쟁수행능력을 결정하기 때문이었다. 이라크 전쟁은 두 戰線을 갖고 있었다. 전투현장의 전선과 언론, 특히 텔레비전 화면. 전투현장의 戰線에선 미국이 이기겠지만 언론이란 제2전선에서 지면 여론을 잃게 된다. 민주주의 국가 지도부는 여론의 뒷받침이 약해지면 전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
  
  베르당과 마지노 요새를 본 필자의 想念은 자연히 1940년5월의 아르덴느 숲속으로 달려갔다. 베르당의 살육전에 진저리를 친 프랑스 지도부는 인명희생을 최소화하려는 뜻에서 마지노 요새를 만들어 안주했다. 이 방어적인 전쟁개념은 1930년대 프랑스의 국가적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이를 간파한 히틀러는 戰爭不辭의 공갈작전으로 라인란트 進駐, 오스트리아-체코슬로바키아 병합을 성공시켰다. 영국과 프랑스는 뒤늦게 히틀러의 확장정책에 제동을 걸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하면 선전포고를 하겠다는 경고를 해둔다. 히틀러는 폴란드를 실제로 도울 수 있는 나라는 소련뿐이라고 생각하고 1939년8월말 獨蘇불가침조약을 맺는다. 히틀러는 소련을 중립으로 돌려놓으면 독일이 폴란드를 쳐도 영국이 개입하지 못할 것이라고 誤算했다.
  
  히틀러의 군대는 전격전으로써 폴란드를 한달 만에 요절낸다. 영국은 말로써는 독일에 경고했으나 실제로는 폴란드를 돕기 위해서 군대를 보내지 못한다. 실제로 도울 수단이 없는데 왜 폴란드에 대한 보증을 섰는가 하는 비판이 있다. 영국과 프랑스가 막을 수 있었던 체코슬로바키아 병합은 막지 못하고 막을 수 없는 폴란드 침공은 막겠다고 보증을 함으로써 히틀러를 자극하여 2차세계대전이 벌어졌다는 해석을 하는 사람도 있다.
  
  히틀러가 主力을 폴란드 침공에 돌렸을 때 獨佛 전선에 배치된 병력은 2대 1로 프랑스가 우세했다. 프랑스 98개 사단 對 독일 43개 사단. 사단의 질에서도 프랑스가 우세했다.
  이때 프랑스가 선제공격을 하면서 독일로 밀고 들어갔다면 프랑스 군대는 독일의 루르 공업지역을 점령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히틀러는 항복하든지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을 것이다.
  
  왜 프랑스는 이 선제공격의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다음해 독일로부터 선제공격을 당해 6주만에 무너져버렸던가. 많은 연구가 이 점에 집중되었다. 작년에 나온 하버드 대학의 戰史學者 어네스트 R. 메이 교수의 책 「이상한 승리」(Strange Victory-Hitler’s Conquest of France)를 이번 여행 전에 읽어보았다. 기자는 1996-97년 하버드 대학에서 니만 팰로우(언론재단 연수생)로 수학할 때 메이 교수의 강의를 1년간 들은 인연이 있다.
  
   메이 교수가 著書에「이상한 승리」라고 이름 붙인 것은 프랑스 학자 마크 블로흐가 쓴 「이상한 패배」에 대응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상한 패배」는 우리나라에도 번역되어 있다(까치 출판사). 저자 블로흐는 역사학자였는데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했다. 이 책을 유언처럼 쓴 뒤 독일군에게 잡혀 처형당했다. 이 책은 프랑스의 패배를 연구하는 데 필독서로 꼽히고 가장 많이 인용된 책이기도 하다. 블로흐는 프랑스가 독일군을 너무 깔보고 자신들의 戰力을 과신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메이 교수에 따르면 프랑스와 영국군 지휘부는 히틀러가 감히 프랑스에 대한 정면공격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블로흐는 프랑스 군대가 인명희생을 최소화하는 데 너무 신경을 썼다고도 지적한다. 마지노선을 만들어둔 것은 요사이 이라크 전쟁처럼 과학과 기술로써 인명손실을 代替하겠다는 건전한 발상이었다. 그러나 인간 대신 기계에 너무 의존하게 되면 공세적 상상력이나 신속한 대응이 어렵게 된다.
  
  독일군은 프랑스군과는 대조적으로 자신들이 劣勢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히틀러가 프랑스를 공격하는 작전계획을 짜도록 지시했을 때는 군부가 반대했다. 군부와 히틀러는 강대한 프랑스 군대를 꺾을 방도를 놓고 고민하다가 「기갑부대로 아르덴느 숲 돌파, 프랑스 군대의 배후를 기습한다」는 절묘한 방책을 만든다.
  
  1939년9월이나 10월 독일군이 폴란드 침공작전에 주력을 투입했을 때 프랑스군대가 독일로 쳐들어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메이 교수는 「이상한 승리」에서 이렇게 분석했다.
  
  첫째, 프랑스과 영국군 지휘부는 연합군이 승리하고야 말 것이라고 과신했다. 경제봉쇄나 독일군의 도발에 대한 응징 형식으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굳이 선제공격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둘째, 프랑스군 지휘부는 영국군과 함께 피를 흘려야지 프랑스군만 피를 흘려서는 안된다는 생각에서 단독 진격을 망설였다.
  즉, 어차피 이길 전쟁인데 우리가 먼저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심리구조가 결정적 선제공격의 찬스를 놓치게 했다는 이야기이다.
  
  
  
  
  
  
  
  
  
  
  
  
  
  
  
  
  
  
  
  
  
  
  
  
출처 :
[ 2003-04-06, 17:2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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