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10/普佛전쟁의 역사적 의미

조갑제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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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 10/普佛 전쟁의 역사적 의미
  
  한국 사람들은 중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마지막 수업]이란 글을 읽고서 프랑스의 알사스 지방의 역사에 접한다. 이 글 때문에 알사스에서 프랑스어 교육을 금지시킨 독일은 나쁜 집단이 되었다. 우리가 여행하면서 알아본 알사스의 역사는 워낙 복잡하여 그렇게 단순히 선악을 구분할 수는 없다.
  
  1870년 프러시아가 보불전쟁에서 이기고 그 이듬해 프랑크푸르트 조약을 통해서 알사스와 동부 로렌을 프랑스로부터 빼앗아 간 것은 크나큰 후유증을 남겼다. 알사스는 주민이 원래 독일사람들이었지만 로렌은 프랑스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곳이다.
  
  자존심이 상한 프랑스는 독일과 적대관계에 설 수밖에 없었다. 독일과 대항하려는 유럽의 모든 국가는 일단 프랑스와 손잡으려고 했다. 프랑스-독일의 리턴 매치는 불가피하게 된 것이다. 1차세계대전의 불씨는 알사스 합병에서 이미 예비된 셈이다.
  
  보불전쟁은 유럽 및 세계사의 흐름에 큰 변화를 몰고왔다.
  1. 유럽의 패권국가이던 프랑스를 꺾음으로써 독일이 유럽의 주도권을 쥐면서 팍스 브리타니카 질서에 도전하게 되었다.
  2. 영국은 전통적으로 프랑스를 견제하면서 유럽의 세력 균형을 유지하는 정책을 펴왔다. 유럽의 세력 추가 독일쪽으로 기울게 되자 영국은 프랑스와 손잡고 독일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외교 전략을 선회한다. 1,2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와 영국이 연합군이 되어 독일에 대항한 것은 보불전쟁의 결과였다고 볼 수 있다.
  3. 독일이 육상의 패권을, 영국이 해상의 패권을 쥐게 됨에 따라 세계 시장에서 두 나라가 각축하게 되었다. 이런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양국은 산업화를 통한 국방력 증강을 도모하게 되었다. 다른 유럽 국가들도 군사력 건설 경쟁에 뛰어들었다.
  
  보불 전쟁은 전략 전술의 발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1. 보병보다 포병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2. 병력을 동원하고 집중시키는 데 철도망의 중요성이 입증되었다.
  3. 프러시아 군대의 참모조직이 세계 군사조직의 모델이 되었다.
  4. 과학기술력과 士氣가 승리의 요인이었다. 즉 이기겠다는 의지와 수단이 승리의 어머니란 사실이 이 전쟁으로 새삼 정리된 것이다.
  
   북한 핵개발을 저지해야 할 한국인들은 그런 의지를 갖고 있는가. 김대중 정권은 국민들의 그런 승리 의지를 파괴하는 것을 자랑으로 삼은 위선자(또는 반역자)이다. 북한정권에 이길 수단이야 한국이 많지만 의지가 있느냐의 문제이다. 북한정권은 의지는 있는데 수단이 없는 경우였으나 핵무기를 개발하면 그 수단까지 가지게 된다는 이야기가 된다.
출처 :
[ 2003-04-07, 02:1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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