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권은 왜 좌파(左派)인가?
역사관과 對北인식의 측면에서 본 좌파의 인맥, 정책, 가치관.

이주천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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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에서 좌파의 등장은 프랑스혁명(1798-1799)당시로 거슬러간다. 1792년 9월에 소집된 국민공회의 의장석 좌편에 산악파(대부분 자코방클럽소속)가 배석했고, 우편에 지롱드파가 배석되었던 것이 기원을 이룬다. 국민공회의 제1기(1792. 9~1793. 5)에서는 두 혁명분파인 산악당과 지롱드당 사이의 싸움이 계속되었는데, 산악당은 하층계급에 더 많은 정치권력을 주려고 하는 반면, 지롱드당은 부르주아의 공화제를 원하여 프랑스 혁명과정에서 하층계급 중심인 파리의 세력을 줄이려 하였다.
  
   좌파의 인간관과 국가관은 한마디로 ‘평등주의’란 용어로 말할 수 있다. 좌파의 인간관은 자본가, 사회적 강자에 대한 분노와, 노동자, 사회적 약자에 대한 동정이 핵심을 이룬다. 인간을 계급적으로 나누어 이분법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고, 가진 자의 것을 뺏어서 없는 자에게 주자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그런 인식은 국가관으로 발전될 때, 제3세계와 약소국을 동정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 제3세계와 약소국이 빈곤한 이유는 내부적 요인 때문이 아니라, 산업화가 된 강대국들의 경제적 착취가 주원인이라는 것이다. 강대국들은 제국주의 정책을 구사하여 약소국을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으로 약소국가들을 착취하면서 세계질서를 지배한다는 논리이다. 요약하면, 좌파들은 인관관계와 각국 간의 국제질서에서 보다 대등하고 평등한 권리를 요구한 경향이 강하다.
  
   유럽에서 좌파세력이란 사회민주주의세력으로부터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신봉하는 극좌파에 이르는 다양한 세력들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90년대초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연방이 해제되고 동유럽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되면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신봉하는 극렬 좌파들은 대중의 지지를 상실하면서 세력을 잃게 되었고, 그 빈 공간에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신좌파세력이 유럽좌파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이들은 유럽통합과정과 관련하여 '사회적 유럽의 건설,’ '시장과 사회정책의 조화'를 제창하면서 자본주도의 신자유주의적 통합과정에 일정하게 유보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신자유주의적 통합과정에 정면으로 나서서 대항하기 보다는 그 과정에 기본적으로는 순응하면서 그 과정이 만들어내는 부작용이나 병폐를 치유하는데 주된 관심을 보내고 있다.
  
   한국의 좌파는 유럽의 좌파처럼 인간과 국가간의 궁극적 평등을 추구하는 사회주의적 성격에서는 유사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유럽 좌파와 두드러지게 다른 점이 있다. 한국 좌파는 그 성격이 유럽의 좌파처럼 사회주의를 추구하지만 한술 더 떠서 친북, 친공, 용공적 성향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런 친북, 친공, 용공적 성향들은 70년대와 80년대의 대학가에서 군사독재에 저항한 대학내 운동권 핵심원들이 군부독재의 代案을 모색하던 중 북한 김일성 공산체제가 유포한 이념서적과 대남방송에 접하면서 사상적 감염이 들게 되었다. 그들은 20년동안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 군사정권에 저항하였고, ‘민주’와 ‘개혁’의 외투와 갑옷으로 무장하면서 국민 대중들의 관심과 지지를 일정부분 확보하는 데 성공했으며 국민들이 모르는 사이에 점차 세력을 확대하여 한 표라도 아쉬운 노무현 후보에게 접근하는데 성공했고 마침내 그를 앞세워서 권력을 잡았다.
  
   노무현 정권을 구성하고 있는 인맥의 특징은 거의 과거 386세대 운동권 출신이라는 점에 있다. 과거 어느 정부보다 386 운동권세대가 제일 많이 포진하고 있다. 청와대 1~2급비서관의 경우 31명 대부분이 학생운동권 출신인데 이 중 3분의 1은 구속된 경력을 갖고 있었다. 김성욱, “노무현 정부내 운동권세력, 친북반미 주도,“『미래신문』(2003.3.21). 특히 노 대통령의 최측근, 안희정, 이광재, 서갑원 등은 모두 주사파 운동권 출신들이다. 그들이 전향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이제 한국의 지도층은 어느 나라 역사에서도 볼 수 없는 급진적인 세대교체가 되어버렸다. 노무현 정부의 핵심 세력들은 ‘개혁과 주도세력의 교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각종 개혁입법안들을 발의하면서 국정을 쇄신하겠다고 하지만 ① 국정운영의 경험부족으로 인한 국정의 난맥상, ② 한국현대사에 대한 왜곡된 인식, ③ 그릇된 반미감정, 그리고 ④ 편향된 대북인식으로 인해 국민들의 불안감은 날로 가중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후보시절을 포함한 그의 발언을 중심으로 살펴본다면, 그의 역사관과 대북인식에서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던지기 때문에 그가 이끄는 참여정부에 대해서 좌파(左派)라는 명칭을 붙이지 않을 수 없다.
  
   첫째로, 노무현 대통령은 1948년 건국된 대한민국의 정통성에 의문을 던지면서 한국현대사에 부정적 역사인식을 지니고 있다. 해방이후 과거의 한국현대사는 분단과 분열의 역사이고 기회주의자들이 승리한 역사라고 한다. 즉 집권세력이 정통성이 결여되었다는 것이다. “우리의 지난 날은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좌절과 굴절을 겪어야 했다. 정의는 패배했고 기회주의가 득세했다.”(2003.3.1절 기념사). 노무현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분열세력이 승리한 역사로 인식한다. 2000년 안동 강연회에서 그는 말하기를, “해방이 되었을 때, 모든 것이 제대로 되지 못했다. 분열 때문이었다. 남북한 간의 분단, 그리고 남한 내부의 좌우익의 대립 때문이었다. 그 당시 소련을 등에 업고 공산주의 국가를 세우려는 세력이 극한적 대립하는 사이에서, 공산주의나 자본주의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민족의 통일과 자주독립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던 중도통합세력은 모조리 죽임을 당했다. 김구ㆍ여운형ㆍ김규식 등 통합세력은 모조리 패배해 버리고 분열세력들이 각기 득세했다.”
   결국 노무현은 이승만 정권이 친일파 세력의 기반위에 성립되었으며, 그 뒤 독재로 변질되어 정당성을 상실한 측면들을 강조하게 된다. 그러므로 남한과 북한은 분단국가이므로 완전한 국가가 아니라고 한다. 그러니 이승만이 체결한 한미동맹의 업적을 인정하기보다는 그의 장기집권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가지게 된다.
  
   둘째로, 과거의 집권세력이 정통성이 결여되었으므로, 과거가 귀중하게 계승해야할 유산이라고 인식하기보다는 청산의 대상이다. 현재는 과거의 연속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청산과 단절로서 홀로서기를 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자연히 과거의 지배계급, 엘리트층의 교체가 필요하다. 국민들에게 그 세력들을 교체하려고 설득하는 대의명분은 ‘歷史淸算’, ‘過去淸算’의 캐치프레이즈로 나타난다. 그러다보니 어느 집권자들보다 과거사 청산, 친일파 청산을 강조한다. 심지어 “북한이 친일파 청산이 잘되었으니, 남북협상에 앞서 북한에게 약점이 잡히지 않도록 친일파 청산을 서둘러 해야한다”는 논리까지 개발해 둔 상태이다. 친일파 청산은 과거사 청산작업의 일부분이며 初動작업에 불과한 것인바, 그것은 그 다음에 전개될 DJ 정권 이전의 기득권세력에 대한 해제작업을 위한 사전 整地작업의 성격을 띄고 있다는 점에 사태의 중대성이 있다. 즉 그동안 반세기 동안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들고 지도하고 봉사한 엘리트 계층인 냉전, 반공, 우익세력을 대중들로부터 고립, 약화시켜서 명실상부하게 그들의 일반 대중들에 행사한 영향력의 제거하겠다는 전략적 뼈대(strategic framework)를 담고 있다.
  
   세 번째로, 노무현 대통령은 박정희 정권이 이룩한 근대화 업적보다는 불법적 쿠데타와 군사독재와 인권탄압을 부각시킨다. 진정한 근대화는 민주주의 체제하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역설한다. 박정희의 근대화 업적을 애써 외면하면서 지도자의 비전이나 결단이라기보다는 국민들의 공으로 돌린다. “1945년 식민지에서 해방된 나라 중에서 민주주의를 우리 대한민국만큼 잘하는 나라가 없습니다. 경제는 지난 40년간 100배의 성장을 이루어 냈습니다. 전 세계가 놀람과 부러움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습니다.”(2005.3.1절 기념사). 그는 지도자들에 대한 약간의 긍정적 인식은 가지고 있다. “「잘한 것이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우리가 어찌 여기까지 왔을까」생각해보면 우리 국민들의 역량 덕이 아니가 생각한다. 지도자들도 그 시기에 한몫씩은 해줬기 때문에 우리 국민들도 역량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2004.12.2 在美동포 간담회).
  
   네 번째로, 노무현 대통령은 DJ로 넘어오는 국민정부만이 정통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YS는 3당합당 야합으로 정권을 잡았으므로 반쪽의 정통성을 가진 정부이므로 정통성이 없고, 김대중의 국민의 정부가 진정으로 정통성이 있다고 강조하다보니,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게 되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행, 6.15선언, 햇볕정책을 여과없이 무비판적으로 무조건 수용하였고, 심지어 대북원조는 감시체제도 없고 브레이크도 없는 일방주의적, 묻지마 원조, 퍼 주기식 조공(朝貢)원조가 되고 말았다. 미래신문에 의하면, 노무현 정부의 대북지원 규모가 도를 넘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노정부가 지난 2년간 북한에 제공한 지원액수는 공식적으로만 2조3,000여억원(약23억달러)에 달하며 금년 들어서는 10개월동안 쌀 50만t, 비료 20만t 등을 보내는데 1조4,000여억원이 소요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DJ 정권때의 2배에 달하는 규모이다. 김범수, “對北퍼주기 度를 넘었다.「미래신문」, 2005.11.7.
  
   다섯 번째로, 대한민국의 건국사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반면에, 북한 통일에 대한 인식은 애매모호한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아니면 북한의 체제에 대해서 동족, 민족의 논리로 감싸고 있다. 그러나 외신과의 인터뷰에서는 북한체제에 대한 불만을 나타내기도 하면서 대북인식에서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은 혼란되거나 2중 플레이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북한에 대해서는 설명하기 어렵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많은 부분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한 민족으로서 보듬어 가야 하고 끝내 우리가 책임져 가야 될 사람들이라는 생각으로 따뜻하게 문을 열고 대화로써 풀어 나갑시다.”(2004.3.1절 기념사). 이렇게 동족 논리를 전개하다 보니, 북한 김정일 체제와 북한주민을 동일시하게 되고, 남한의 대통령이 북한 김정일의 대변인 역할을 한다는 대외내의 따가운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이 북한을 전혀 비판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미국 언론과의 대담에서는 북한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나는 북한이 낡은 체제를 고집하고 있으며, 북한이 추구하는 가치들이 북한주민의 이해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북한의 행동과 요구들은 국제사회가 수용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북한이 신뢰할 수 있는 상대라고 보지 않으며, 북한의 체제에 동의하지 않는다”(2003.5.19 미 PBS 인터뷰). 이렇게 노무현 대통령은 시기와 상황, 그리고 인터뷰 대상에 따라서 상대방의 구미에 적응하기 위해서 변화무쌍하게 임기응변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다르게 설명하여 왔다.
  
   여섯 번째, 노무현 대통령은 통일 후 체제에 대해서 침묵하거나 논의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그러니 많은 국민들은 통일한국의 이념과 체제에 대해서 대통령이 어떤 입장인지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노무현은 민주당 후보 경선시에 “통일 이후의 체제를 자유민주주의로 해야 한다거나, 남북회담의 과정에서 正體性을 유지해야 한다거나 하는 소모적인 논쟁은 그만 두어야한다”고 「주간동아」에 기고했다. 노 대통령은 후보시절인 2002년 5월 29일 인천유세에서 다음과 같이 발언하여 대통령으로서 품위를 스스로 손상시키고 그의 지적 수준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당혹스런 失言을 하게 된다. “남북대화가 잘 안풀리고 으르렁거리고 싸우고 언제 전쟁이 날지 모르고 하면 다 헛일이 되고 만다”면서 “남북대화 하나만 성공시키면 다 깽판쳐도 괜찮다”고 말했다.
  
   일곱 번째, 인권변호사 출신을 스스로 자랑하는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가로서의 성장 배경이 미국의 링컨 대통령과 많이 닮았다고 자주 언급하곤 했다. 빈곤한 가정출신, 저학력, 그리고 불퇴전의 권력의지를 가진 자수성가형 정치가라는 점 이외에는 같은 점이 없다. 인권의 보편적 적용과 헌법정신에 투철한 지의 여부에서 양자는 너무 다르다. 링컨은 미국헌법정신에 투철했으며, 북부와 남부를 포괄하는 인권의 보편적 적용에 고민했으며 결국 노예를 해방시켰다. 노무현은 이승만, 박정희 정권시대에 불행했던 인권유린사대를 조사하기 위해서 인권위원회를 두는 등 인권문제를 철저히 파헤치려고 하지만, 정작 같은 동포인 북한의 열악한 인권문제에서는 침묵하고 애써 외면한다. 그래서 4번씩이나 유엔에서 결의한 유엔인권결의를 기권하여 국제적 망신을 자초하고 말았다. 그의 변명은 다음과 같다. “궁극적으로 많은 북한인민들을 보호하는 최선의 길은 김정일 정권을 개방하도록 설득하는 것이다. 대결하거나 정치적으로 반대하기 보다는,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그 정권과 대화하는 것이 좋다”(2003.4.11일자 미 워싱턴 포스트지 인터뷰)고 주장했다.
  
   여덟 번째, 노무현 대통령은 흡수통일에 대해서 否定的이다. 후보 시절 그는 “북한의 붕괴를 바라지 않는 원칙이 중요하다”(002.4.14. 관훈클럽 토론회), “통일에는 흡수통일도 있는데, 이 방법은 평화에 대단히 위협이 될 수 있다”(2002.10.31, 동아시아 경제협력을 위한 국제포럼 초청강연)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흡수통일을 반대한다면, 다른 대안은 무엇인가? 그것은 2000년 평양의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낮은 단계든지 높은 단계든지 연방제로 가자는 방안으로 접근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괴상한 연방제에 대해서 국회의 동의를 얻은 적도 없으며, 더 위험한 점은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에 위배된다는 점이다. 또 일반 국민들이 납득할지 강한 의문이 든다.
  
   아홉 번째, 북한 핵개발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태도는 북한이 약소국가로서 미국에 대해 안보 위협을 느낀 나머지 체제유지와 자위수단으로 핵개발을 한 것으로 이해함으로써 북한의 대변인을 自請하고 있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을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억제수단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북한의 주장은 여러 가지 상황에 비추어 일리가 있는 측면이 있다고 본다”(2004.11.12. 미 국제문제협의회 주체 오찬 연설). 노 대통령이 북핵 개발에 이해를 표시한 것은 한 두 번이 아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다른 협상 수단이 없기 때문에 핵무기를 개발하겠다고 위협했던 것”이라면서 “이러한 협상수단 없이 김정일 위원장은 자신의 인민들에게 안전을 확신시킬 다른 수단이 없다”고 말했다(2003.4.10. 미 워싱턴포스트지). 노무현의 이런 유화적 대북관은 미국의 부시 행정부가 추진하는 북핵 포기와 장기적으로는 김정일 정권의 교체 정책과 다르기 때문에 대북문제를 둘러싼 한미공조의 크고 작은 현안문제에서 온갖 마찰을 불러 일으켜왔다. 결국 노 대통령은 국익이란 개념에 대해서 인식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마지막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그리는 미래의 동북아 모델은 EU를 상정한 ‘사회민주주의’ 체제를 구상하고 있는 것 같다. 노 대통령에게 독일, 프랑스 등 유럽 諸國은 시민혁명의 모범이요, 경쟁 지상주의적 미국식 시장경제 체제에 맞서 사회적 連帶를 중시하는 사회, 경제 모델을 가진 나라들이며, 과거사 청산의 모범으로 받아드려지고 있다. “오늘날 유럽에서는 나라가 그렇게 크지 않더라도 대등한 질서 속에서 각기 자기 역할을 하면서 주도적인 역사를 살아가고 있다. 협력과 통합의 질서 속에서 각국이 자기의 운명을 자기가 개척해 나가는, 종속되지 않는 역사를 꾸려 가고 있다”(2004.6.1. 세계韓人회장단 초청 다과회). 대한민국은 반세기동안 해양문명을 대표하는 미국으로부터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유럽식 사회민주주의의 모델로의 U턴에 대해서 국민들은 어리둥절하다. 그 이유는 그 절차와 방법론에 대해서 국민적 공감대가 전혀 형성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이런 좌파적 인식이 낳은 결과는 무엇인가? 열린우리당은 사활을 걸고 4대 개혁입법안(신문법, 과거사청산법, 개혁사학법, 국가보안법)을 만들었고 국가보안법을 제외하고 날치기 방식을 총동원하여 3개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런 권력의 배경을 업고 부끄러움 없이, 공공연하게 대한민국의 역사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사례가 급증하면서 대한민국의 正體性이 심각하게 훼손당하고 있다. 또 노무현 정부의 평등과 분배를 강조하는 사회주의적 정서와 反기업 정서는 기업의 활동을 위축시키면서 투자를 감소시켜서 기업의 해외이전을 부추기는 부작용을 낳았다. 대외적으로는 유화적인 대북관으로 한미동맹 관계가 표류하면서 미일동맹의 하위급 동맹으로 강등될 위험에 처해 있으며, 설상가상으로 북한의 인권이 세계적인 관심사로 떠오른 작금의 국제무대에서 북한 인권을 외면하는 과정에서 국제적 망신과 외교적 고립상태를 자초하고 말았다. 현재 노무현의 집권을 도와준 운동권 386세대는 역사도, 세계의 흐름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그들은 대한민국을 부정하면서, 북한을 동정하고 중국을 가까이하고 미국을 배척하려고 하는 것이다. 대북원조는 남한의 재정 능력을 벗어나 도를 넘었고, 국가적 빚은 늘어만 간다. 그 빗 탕감은 고스란히 후손의 몫이 되고 말았다.
  
  2005년 12월 10일
  
  
  
  
[ 2006-06-26, 15:1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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