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교수의 뉴라이트 비판에 대한 反論
뉴라이트는 사상의 자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동정심 등을 덮어놓고 좌파라고 공격하여 결과적으로 엄청난 좌파들을 양산해내는, 그래서 항상 가공의 '적화 위험'에 떨어야 하는 ‘반공주의’를 비판한 것이다.

홍진표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홍진표- 사상통제, 반공주의의 시대는 끝났다
   홍진표의 이슈파일
  
  
  
  사상통제, 반공주의의 시대는 끝났다
  이상돈 교수의 뉴라이트 비판에 대한 반론
  반공과 반공주의는 다르다
  [ 홍진표 / 2006-06-25 22:44 ] 조회 : 875
  
  
  
  이상돈 교수(중앙대 법대)가 지난 5월 초 “안병직 교수, 아집과 독선 버려라”를 시작으로 독립신문 등 인터넷 매체에 여러 차례에 걸쳐 뉴라이트를 비판하는 글을 쓰고 있는데, 주장의 핵심은 “뉴라이트는 결국 좌파”라는 것이다. 뉴라이트에 대한 이런 류의 공격에는 지만원씨가 가장 앞장서고 있는데, 뉴라이트의 어떤 주장에 대해 근거와 논리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반론을 펴는 것이 아니고 정치권에서 정적을 공격할 때 즐겨 사용하는 '낙인찍기'식 선동문들이라 정상적인 토론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었다.
  
  특히 이 교수는 '(뉴라이트가 좌파라는)느낌이 든다'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사실과 논리에 못지않게 느낌과 직관도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에 이런 식의 표현에 대해 시비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공론의 장에서 실명을 걸고 어떤 주장을 펼 때는 좀더 객관화된 사실과 논리를 가지고 임해주면 진지한 토론이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는 속담처럼 낙인찍기 식의 공격에 대해 반론을 펴다보면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될지는 몰라도, 서로 감정이 상하게 되고 비난이 에스컬레이트 되어 영광은 없이 상처만 남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만 이 교수가 학문을 업으로 삼고 있고, 더구나 논리와 증거를 무척 중시하는 법학을 전공하였기 때문에, 생산적 토론에 대한 기대를 걸면서 몇 가지 반론을 펴려고 한다.
  
  우선 이 교수는 반공주의 비판과 ‘공산주의까지 포용하는 사회’라는 주장을 문제 삼았는데, 이에 대한 반론은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며 이미 다각도의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 주장들을 좌파로 규정하는 증거로 삼는다는 데 있다. '자유주의의 원칙에서 좌파적 주장도 양지로 끌어내어 공론의 장에서 민주적 토론으로 압도해가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라는 의견에 대해 '너 이제 보니 좌파구나'라고 말하는 것은, 김정일 정권을 비판하면 '너 전쟁하자는 거야?'라고 몰아세우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이런 분위기에서 더 이상의 토론은 어려워진다. 사실 이 교수의 논리에 따르면 공산당과 사회민주주의를 허용하고 있는 서구 민주주의 국가의 정부나 국민들 모두 좌파 혐의자가 되어버린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이 교수는 뉴라이트가 더 이상 반공이 필요없다고 주장한다고 강조하지만, 뉴라이트는 공산주의에 반대한다는 의미의 ‘반공’ 그 자체를 문제 삼은 적이 한 번도 없다. 뉴라이트는 사상의 자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동정심 등을 덮어놓고 좌파라고 공격하여 결과적으로 엄청난 좌파들을 양산해내는, 그래서 항상 가공의 '적화 위험'에 떨어야 하는 ‘반공주의’를 비판한 것이다. 이 교수의 구분법대로 하자면, 우파는 항상 소수파의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
  
  60-70년대 철통같던 반공주의는 80년대 대학가 좌파이념의 엄청난 폭발로 쉽게 무너져버렸고, 더구나 사상통제에 대한 반발심이 지식층의 좌경화를 촉진해버렸으니, 반공주의 비판은 막연한 신념의 차원이 아닌 무척 가까운 우리의 역사적 경험에 근거한다.
  
  이 교수가 뉴라이트가 좌파라고 규정하는 방식이야말로 전형적인 반공주의의 모습이다. 예컨대, 안병직 교수의 주장이 변증법의 정반합 논리와 맥락이 같다거나, 필자가 모 신문 칼럼에 모택동의 말을 인용했다는 걸 마르크스주의 옹호의 증거로 제시한다.
  
  안 교수의 논리가 변증법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잘 알 수 없지만, 여하튼 변증법은 헤겔이 체계화했고, 마르크스가 이를 채용했을 뿐인데 변증법 논리의 구사가 마르크스주의 옹호의 증거라면 모택동이 중국의 국공내전 때 손자병법을 끼고 살았고 이를 기초로 그 유명한 ‘16자전법’을 만들었으니 손자병법도 좌파 서적으로 불온시 하자는 것과 다름없다.
  
  미국의 우파논객 모나 채런(Mona Charen)이 레닌의 ‘쓸모있는 바보들’이란 말을 제목으로 인용한 책을 내 한국에서도 관심을 끌었는데, 이처럼 모택동이 아니라 누구의 말이라도 그 자체가 의미가 있다면 인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공산주의자는 100% 잘못된 말을 하고, 우파인사는 100% 옳은 말을 한다는 그런 단순논리가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 평생을 공산주의자로 살아간 주은래와 호지명의 인품에 대해 국내외의 유명한 우파 논객들이 평가한 경우가 있는데, 이 교수의 검열기준에선 이들도 결국 좌파가 되어버린다.
  
  반공주의는 어떤 주장의 옳고 그름에 대해 마르크스주의와 비슷한지 아닌지, 심지어 거기서 채용된 논리나 그들의 말을 인용하는지 이런 기준을 진리 검증의 잣대로 사용한다. 재미있는 건 마르크스는 리카도의 노동가치설, 헤겔의 변증법, 공상적 사회주의자의 유토피아론 등을 채용하여 공산주의 이론화에 활용하였고, 레닌은 프로이센의 군사이론가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을 참고하여 사회주의혁명의 전략전술론을 만드는 등 우파적 지식을 거리낌 없이 활용하였다는 사실이다.
  
  이 교수의 논리에 의하면 바로 위의 표현도 검열에 바로 걸릴 것이다. 마르크스와 레닌을 욕하지 않고 그들의 지식 활용능력을 평가했기 때문이다. 오직 선악의 이분법으로 세상을 재단해야만 진정한 우파가 되는 것일까?
  
  이 교수는 필자가 류근일 선생과의 대담집 <지성과 反지성>에서 체 게바라를 인용했다면서 체 게바라가 얼마나 나쁜 사람이고 쿠바혁명이 얼마나 큰 불행인지를 역설하고 있는데 왜 이런 걸 강조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필자가 체 게바라를 인용한 것은 '북한민주화는 북한사람들 스스로 할 일이지 왜 개입하나'라는 친북좌파들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일부러 그들이 영웅시하는 사람의 행적을 인용하여 그 이중성을 폭로한 것인데 이걸 필자가 체 게바라를 존중하는 것으로 몰아가고 그래서 좌파라고 말하고 있으니 이 대목에 이르면 정말 가슴이 답답해진다.
  
  이 교수가 <지성과 反지성>을 읽어보았다고 하니 그 책에서 필자가 마르크스주의와 북한의 주체사상을 조목조목 비판한 것을 보았을 텐데 이는 전혀 모른 채 하고, 체 게바라 인용이라는 지엽적인 것을 들어 ‘마르크스주의를 옹호하는 것 같은 느낌’을 말하는 것이 과연 공정한 태도일까?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이 교수는 5.31선거 결과를 평가하는 글에서 아무런 근거 제시도 없이 “이명박-원희룡-오세훈으로 이어지는 한나라당의 반박(反朴) 세력이 새로운 정당을 만들 것이며, 손학규 씨도 독자적으로 출마할 것이다”라고 단정하고 있는데, 점쟁이라면 몰라도 이런 식의 정치평론이 과연 가능한지 의문이다. 여하튼 이것도 느낌이라면 할 말이 없지만, 1년만 지나면 증명이 가능하니 지켜볼 일이다.
  
  이 교수는 가장 최근의 글에서 안병직 뉴라이트재단 이사장이 노무현 정부의 친북반미(親北反美)정책을 ‘민족공조’라고 표현한 대목을 “ ‘민족공조’란 남과 북의 좌파들이 쓰는 용어인데, 그러면서 어떻게 한미일 동맹을 주축으로 하겠다는 것인지 황당할 따름이다”라고 쓰고 있다. 처음에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돼 여러 번 읽어보았는데, 좌파들이 쓰는 언어로 그들을 비판했기 때문에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좌파들의 전용어는 ‘소위’, ‘이른바’, ‘그들이 말하길’ 이런 수식어를 반드시 붙여야 한다는 것인가?
  
  70년대에는 ‘사회’라는 제목이 붙은 외국서적이 사회주의 서적으로 오인 받아 가끔 공안당국의 검열에 걸려 반입이 거부되곤 했다. 월북작가들은 이념성이 전혀 없는 작품도 규제되었을 뿐 아니라 그 이름 석자가 지면에 오르지 못해 김00이란 식으로 표기했다. 베트남 공산화 등 극도로 긴장된 상태에서, 공안기관의 리스크 최소화나 실적주의라는 속성까지 고려하면 차라리 당시의 일은 이해할 수 있으나, 대학 강단에 서 있는 학자가 마치 공안기관의 수사관처럼 말과 글을 검열하고 있는 건 어울리지 않는다.
  
  이 교수는 필자가 북한정권을 마피아 집단에 비유한 것에 대해 “김정일 집단을 마피아에 비유한 것도 우습다. 마피아는 보복살인을 일삼았지만 수백만 명을 살해하고 또 다른 수백만 명을 굶겨 죽이는 일은 하지 않았다”면서 불쾌해 한다. 마피아와 공산당 중에 누가 더 지독한 악인지 논쟁하고 싶진 않지만, 마피아 집단은 국가권력을 쥐고 있지 않기 때문에 수백만을 죽일 수가 없다는 사실만 지적하고 싶다. 여하튼 김정일에게 공산주의자와 마피아 중에 어떤 욕을 먹는 것이 더 좋으냐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을 할까? 나아가 우리 국민들에게 이 퀴즈를 내놓으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여하튼 필자는 김정일체제가 사회주의가 아니라고 판단되기 때문에 마피아라는 표현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체제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을 통해 서로 논쟁해 나가면 되는데, 이 교수는 팩트(fact)를 논할 대목에서 이념논쟁으로 비화시키고 있다.
  
  실제로 서구나 일본의 좌파들 중에 김정일체제에 대해 ‘사회주의의 일탈’이라고 보면서 反김정일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이들에 대해 '너는 아직도 좌파니 틀려먹었다'고 비판하는 것과 '비록 이념은 다르지만 김정일을 반대하는 전선에서 함께 하자'고 격려하는 것 중 어느 쪽이 진정으로 북한주민의 해방을 위해 도움이 될지 생각해 볼 일이다. 필자는 비록 공산주의 이념을 반대하지만 이들과 이 대목에 대해 논쟁할 생각이 없으며, 反김정일세력의 확대라는 대의에 더 관심이 있다.
  
  이런저런 할 이야기 많지만 역시 말이든 글이든 다 한계가 있기 때문에 마무리를 지으려 한다. 좌파는 마르크스-레닌으로 이어지는 경전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에 근거해 결속이 잘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너의 주장은 레닌의 이 말에 위배된다'는 식으로 내부 논쟁에서 무척 치졸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서로 자존심을 세우다보면 마르크스와 레닌의 어떤 자구를 놓고 이른바 해석의 논쟁도 벌어지는데 이런 풍토에서 사상적 창조성이나 활달함은 결국 억압될 수밖에 없다.
  
  반면 우파에는 성문법인 아닌 불문법과 같이 전통과 경험에 기초한 공유점이 있으나, 다행히 경전은 없기 때문에 훨씬 더 개방적이고 생산적인 논의 전개가 가능하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모든 문제에 이미 정해진 답이 있다고 하면서, 심지어 용어, 인용, 비유까지도 통제하고 검열하려고 한다면 우파의 사상적 경쟁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이런 사상통제는 이 시대에 더 이상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국민적 호응을 받기도 힘들다. 이 교수가 생산적 토론이 가능한 인물로 변신하기를 기대해 본다.
  
  홍진표 (자유주의연대 집행위원장)
  
  
  222.234.204.235
  
  
  의구심 (06/27 14:34)
  
  한국이 공산주의를 허용한다는 건 국보법폐지와 같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더 발전시킬 생각은 않고 세계적으로 용도폐기된 걸 왜 자꾸 들고 나오나? 반공주의가 해이해져서 지금 같은 사태가 초래된 것 아닌가?
  
  
[ 2006-06-27, 16:5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리버티헤럴드  |  뉴스파인더  |  이승만TV  |  장군의 소리  |  천영우TV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