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통일교육 교재의 큰 문제점 분석

배진영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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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조선 2002년2월호에 실린 기사이다. 5부 중 1부만 소개했다. 나머지는 월간조선 사이트에 들어가서 보시기 바람.
  
  
  全敎組 刊行 통일교육 교재의 문제점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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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全敎組 刊行 통일교육 교재 「이 겨레 살리는 통일」에 나타난 현대사 및 對北인식의 문제점
  「북한의 입장」에서 북한을 보자고 하는데 그 입장은 「金正日의 입장」인가, 「북한인민의 입장」인가?
  裵振榮 月刊朝鮮 기자 (ironhee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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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g 1 of 5 ▶
  
  「이 겨레 살리는 통일」은 어떤 책인가
  
  주요내용
  「이 겨레 살리는 통일」은 어떤 책인가
  교과서와 다른 全敎組의 현대사 인식
  우리의 군사 主權은 미국에게 있다?
  『북한의 외교는 깡패짓』
  『兩 체제의 공존」이 통일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위원장;이수호) 통일교육위원회가 작년 6월9일 출간한 교사용 통일교육 교재 「이 겨레 살리는 통일」이라는 책이 있다. 서울 교보문고 등 시내 대형서점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이 책은 네 개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 중에서 현대사와 南北관계에 대한 全敎組의 인식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은 제1부 제1장 「교사를 위한 강좌:시급히 교정하여야 할 편견, 고정관념」이라고 할 수 있다. 제1부 제1장은 다시 「對北지원과 민족화해」, 「분단 비용과 통일 비용」, 「안보 교육과 민족화해 교육」, 「南北관계의 균형적 인식과 민족화해 교육」, 「한국전쟁과 민족화해 교육」,「미국과 南北화해」로 세분된다.
  
  제1부 제2장 「학생용 교육자료:화해와 평화통일의 소중함」, 제2부 「주제교육」, 3부 「통일교육 실천사례와 교안」은 제1부 제1장에서 제기된 시각들을 교육현장에서 실천하는 방법들에 관한 것들이다. 補論 「적대와 냉전을 넘어 공존의 통일로 가자」에서는 이른바 「민족화해 교육」의 필요성과 방향, 全敎組의 역할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 내용상의 특징을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南北관계의 균형적 인식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南北관계를 대한민국의 시각이 아닌 제3자적 시각에서 볼 것을 강조하고 있다.
  
  
  둘째, 對北지원에 있어서 상호주의를 비판한다. 분단 비용의 감소와 對北투자라는 관점에서 통일 비용 문제를 보면서 통일 비용를 낮게 산정한다.
  
  셋째, 光復, 反託운동, 6·25 전쟁 등에 대해 李泳禧(이영희), 브루스 커밍스 類의 소위 「진보적 지식인」들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특히 6·25 전쟁에 대해서는 南侵에 대한 책임을 묻기보다는 6·25 전쟁으로 인해 美·日 등 외세가 엄청난 이득을 취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넷째, 노근리 사건 등 이른바 美軍의 양민학살 사건, 駐韓美軍 범죄 등 미국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드러내는 내용들이 많다.
  
  
  다섯째, 이른바 多元主義·文化相對主義·價値中立的 입장에서 북한을 「있는 그대로」, 「우리의 시각이 아니라 북한의 시각에서 볼 것」을 강조한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에 대한 교육이나, 북한에 대한 비판에는 소극적이면서, 북한의 긍정적인 모습들을 애써 강조한다.
  
  여기에 나타난 우리 현대사나 북한에 대한 全敎組의 인식은 기존의 중·고교 교과서들은 물론 금년부터 적용되는 제7차 교육과정상의 교과서에서 보이는 인식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인터뷰는 안 된다
  
  
  이러한 相馳點(상치점)에 대해 全敎組측의 생각을 듣기 위해 기자는 지난 1월3일 이수호 全敎組위원장과 신연식 全敎組 통일교육위원장 앞으로 인터뷰 요청서와 질문지를 보냈다. 우편으로 인터뷰 요청서를 보내고 전화를 해도 全敎組는 대답이 없었다.
  
  기자는 1월5일 「이 겨레 살리는 통일」의 편찬자인 이장원 교사와 통화했다. 이교사는 全敎組 방침을 이유로 인터뷰를 거절했다.
  
  ―북한과는 화해·협력하자고 하면서, 朝鮮日報와는 만나지도, 대화하지도 않겠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조직의 방침이 그러니까…』
  
  
  『全敎組에선 학생들에게 자율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인간이 되라고 가르칩니다. 왜 조직의 방침만 앞세우십니까』라고 물어보자, 이 교사는 『개인적으로 만나는 것은 괜찮지만, 기사 쓰는 것은 곤란합니다』고 대답했다.
  
  ―북한과는 화해·협력하고 감싸안자고 하면서 朝鮮日報와는 대화조차 못 하겠다면, 저희가 金日成·金正日보다 더 잘못을 저질렀단 말입니까?
  
  
  『그런 뜻이 아니라…. 조직에서 방침으로 결정한 것이고, 제가 조직의 직책을 맡고 있기 때문에 …. 그런 면에서 양해를 해 주시고요』
  
  결국 여기서 이장원 교사와의 통화를 끝낼 수밖에 없었다. 그 직후 기자는 신연식 全敎組 통일교육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인터뷰 요청에 대해 신 위원장은 『통일문제에 대해 각기 다양한 시각이 있다는 것은 현실이고, 다양한 시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대화와 토론도 중요한 일이다』라며 개인적으로 만나 이 문제에 대해 토론하는 것은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 위원장도 全敎組 방침을 내세워 정식 인터뷰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朝鮮日報와는 대화도 못 할 만큼 朝鮮日報가 잘못했습니까?
  
  
  『아, 많이 잘못했죠. 그건 스스로 아셔야 합니다. 조직에 몸담고 계신 분들이 바꿔 나갈 생각도 해야죠』
  
  신 위원장은 『全敎組가 朝鮮日報에게 얼마나 피해를 입었는지 아느냐? 朝鮮日報가 얼마나 罪惡(죄악)을 저질렀는지 아느냐?』고 언성을 높이더니, 『그만 하자』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기자는 이 기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全敎組 관계자들과의 만남에 대한 기대를 일단 접을 수밖에 없었다.
  
  
  相互主義는 화해의 걸림돌?
  
  
  「이 겨레 살리는 통일」은 이른바 「對北퍼주기」 및 상호주의 요구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된다. 「받는 것 없이 퍼다만 준다」지만, 「작년(2000년) 對北지원금 총 1억1376만 달러 가운데 정부 지원금 3513만 달러는 패트리어트 미사일 두 대 값에 불과하다」는 것이다(9쪽). 그 뒤로는 북한에 대한 비료지원금이 2000년·2001년 정부의 무기 구입 예산 등과 비교할 때 얼마나 작은 액수인지를 보여 주는 數値(수치)들이 여섯 개 제시된다. 우리가 북한의 어려움을 외면한다면 한국은 「同族의 어려움도 돕지 않는 냉정한 나라라는 이미지를 줄 것」이라는 걱정도 보인다(11쪽).
  
  하지만 金日成 屍身(시신) 관리비 연간 227만 달러, 金日成의 시신을 안치한 금수산 기념궁전 확장 공사비 2억300만 달러를 포함해 1994년 7월 金日成 사망 이후 3년 간 金日成 우상화를 위해 약 3억 달러가 투입되었다는 얘기(대한매일 1997년 7월9일 字)는 보이지 않는다. 1995년 북한 GNP 52억1500만 달러의 약 6%에 해당되는 이 돈이면 톤(ton)當 340달러 선인 태국산 쌀을 85만t 구입, 북한 전체 주민들을 약 두 달 간 먹여 살릴 수 있었다.
  
  對北지원으로 인해 南北화해가 앞당겨짐으로써 우리가 얻게 되는 無形(무형)의 이익은 경제적으로 계산할 수 없으며, 「내가 1000원어치 줄 테니, 1000원 어치 내 놔라」는 식의 경제적 상호주의는 「화해의 걸림돌」이라고 全敎組는 주장한다(11쪽).
  
  
  宋榮大(송영대) 前 통일원 차관은 『對北 지원이 南北화해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은 북한 체제를 움직이는 사람들이 「善한 사람들」이어서 우리의 對北지원에 상응하는 변화를 보일 것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서,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고 말했다.
  
  
  
  『金大中 정부 들어와 북한의 변화를 기대하면서 「先供後得(선공후득)」정책을 써 왔지만, 그 결과가 무엇인가? 북한은 좋은 쪽으로 변화해 온 것이 아니라, 나쁜 쪽으로 변화해 왔다. 받을 것은 다 받고, 대화는 중단했으며, 對南비방은 재개되지 않았나?』
  
  宋 前 차관은 全敎組가 보수진영이 주장하는 상호주의를 「等價性(등가성)의 논리」인 것처럼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우리가 말하는 상호주의는 「非等價性의 논리」에 기초해 있다. 우리가 열 개를 줄 테니, 열 개를 내놓으라는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가 열 개를 내줄 테니, 한두 개라도 내놓으라는 것이다. 그것은 인도적 문제·평화정착에 성의를 보이고, 작은 변화라도 보여 달라는 것이다』
  
  
  『백령도 부근은 한국의 領海가 아니다』
  
  
  「南北관계의 균형적 인식」을 강조하는 것은 「이 겨레 살리는 통일」에서 일관되게 보이는 논리 가운데 하나다.
  
  
  「이 겨레 살리는 통일」은 南派(남파)간첩이나 무장공비들에 의한 對南도발에 대해 北派(북파) 공작원의 존재를 제기한다. 『공작원 문제에 있어서 「南=善, 北=惡」이란 생각은 분명 불균형한 선입견』이며, 「北派·南派 공작원은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南과 北 각기 자기 조국을 위해 자신의 몸을 던진 사람들」이라는 것이다(21쪽).
  
  李珍雨 변호사는 『이것은 제3자의 시각에서 볼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시각에서 보아야 하는 「우리 조국」의 문제이다. 대한민국을 顚覆(전복)하기 위해 南派된 공작원은 우리의 입장에서 國基(국기)를 흔드는 범죄자일 뿐이다』고 비판했다.
  
  「이 겨레 살리는 통일」은 「2000년 정상회담 이후 이루어진 非전향 장기수(南派 공작원)의 北送은 분단의 비극을 풀어가는 중요한 발걸음」이라고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非전향 장기수 송환과 拉北者(납북자), 국군포로 문제를 연계시켜야 한다」는 야당과 「冷戰세력」의 주장은 이들이 「이미 공식화된 北派者 문제에는 침묵하고 있다」는 이유로 「상대방의 잘못은 물고 늘어지고, 나의 잘못은 부인하는 대립적 冷戰 의식의 전형」으로 비판한다. 국군포로 송환 문제에 대해서는 「반공포로 석방과 연계되는 복잡한 문제」라고 하면서 李承晩 대통령의 반공포로 석방은 「전쟁포로에 대한 국제협정을 위반한 것」이라고 비판한다(21∼22쪽).
  
  李珍雨 변호사는 『南과 北은 정치 체제는 둘이지만, 결국 하나의 조국이다. 반공포로는 그러한 상황 속에서 발생한 희생양이자, 우리 국민이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살겠다는 그들을 李承晩 대통령이 석방한 것은 당연하다』고 반박했다.
  
  「이 겨레 살리는 통일」은 북방한계선(NLL) 문제에 있어서도 「南北관계의 균형적 인식」을 요구한다. 이에 따르면 「1999년 西海交戰 때 한국의 언론들은 北의 군함이 한국의 領海(영해)를 침범하였다며 공격적 논조로 적대적 국민 정서를 충동질」하였으며, 「이는 자칫 南北의 상호 과잉대응을 불러와 전쟁으로 치달을 수 있게 하는 위험한 일」이었던 것이 된다. 「이 겨레 살리는 통일」은 李泳禧 교수의 주장을 빌어 北方한계선은 합법적 군사분계선이 아니며, 객관적 사실에 입각하면 1999년 西海交戰이 발생한 백령도 부근은 北측과 유엔군 측이 인정한 한국의 領海가 아니라고 주장한다(23쪽).
  
  이러한 주장은 백령도 등 西海 5개 島嶼(도서)는 1953년 이후 대한민국이 실질적으로 지배해 왔으며, 이러한 사실은 국제법적으로도 존중된다는 것을 무시한 것이다(林炚圭·임광규·변호사). 宋榮大 前 차관도 『NLL은 유엔軍이 일방적으로 선포했지만, 북한도 지난 50년 간 이를 존중해 왔다. 1984년 水害구호물자를 실은 북한 선박들은 NNL을 넘기 전에 우리 해군의 승인을 구했다. 1991년에는 「南과 北의 不可侵(불가침) 경계선과 구역은 1953년 7월27일字 군사 停戰(정전)에 관한 협정에 규정된 군사분계선과 지금까지 쌍방이 관할하여 온 구역으로 한다」고 한 南北 기본합의서에 북한도 사인을 했다』고 지적했다. 「이 겨레 살리는 통일」에는 이러한 내용은 언급되지 않고 있다.
  
  NLL 문제에 있어 북한 측의 주장에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는 全敎組의 논리는 「휴전협정은 이미 쌍방에 의해 거의 無力化되었으며, 이런 불안한 상황을 해결하는 길은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길 뿐」이라는 것으로 이어진다. 북한이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하며 停戰위원회 참여를 거부하고, 1993∼1995년 중립국 감독위원회를 철수시킴으로써 「어떤 돌발 상황이 벌어져도 한반도의 안전을 논의할 틀마저 없는」 현실에 대한 지적은 있어도(24쪽), 그러한 북한의 행위가 「南北 사이의 공고한 평화상태가 이룩될 때까지 現 군사정전협정을 준수」하기로 한 南北 기본합의서에 반하는 것이라는 비판은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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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2003-04-07, 02:3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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