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는 韓國史가 아니다"
『발해가 오늘날 한국 사람에게 뭘 전해주었습니까. 망할 때 발해 왕자 大光顯(대광현)이 유민 몇만 명을 데리고 高麗(고려)에 투항했고, 그들이 평안도의 한 지역에 정착한 정도입니다. 고려는 신라의 전통을 90% 이상 이어받은 나라입니다. 王家만 바뀌었을 뿐 지배층도 거의 신라인 출신이었습니다. 발해가 오늘날 한국인을 형성하는 데 피를 주었습니까, 제도를 물려주었습니까. 그런 측면에서 발해가 한국사 속으로 들어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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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기사는 '고구려의 역사'(김영사)를 쓴 서강대 李鍾旭 교수 인터뷰 중 일부이다. 월간조선 2005년 10월호에 실렸다. 인터뷰를 한 기자는 鄭淳台씨이다.
  
  
  
  「절도 모르고 하는 시주」
  
   ─2002년 이후 우리 고교 국사 교과서에선 발해를 「南北國 시대의 北國」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오늘날 우리 「한국」과 「한국인」을 만든 역사가 바로 「한국史」라고 생각합니다. 역사 기술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봅니다. 예컨대 자기 씨족의 역사를 쓴다고 할 때, 始祖로부터 자신에 이르기까지 씨족 전체를 다루는 방법이 있을 겁니다.
  
   또 한 가지 방법은 나에게 피를 전해 준 이가 누구냐를 따져서 쓰는 방법입니다. 작은아버지·큰아버지나 조부·증조부·고조부의 형제들은 나에게 피를 준 사람이 아니니까 제외하거나 略述하고, 아버지-조부-증조부-고조부 이렇게 직계 조상 중심으로 쓰는 겁니다. 저는 후자의 방식으로 역사를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현대 한국인에게 발해는 무엇입니까.
  
   『발해가 오늘날 한국 사람에게 뭘 전해주었습니까. 망할 때 발해 왕자 大光顯(대광현)이 유민 몇만 명을 데리고 高麗(고려)에 투항했고, 그들이 평안도의 한 지역에 정착한 정도입니다. 고려는 신라의 전통을 90% 이상 이어받은 나라입니다. 王家만 바뀌었을 뿐 지배층도 거의 신라인 출신이었습니다. 발해가 오늘날 한국인을 형성하는 데 피를 주었습니까, 제도를 물려주었습니까. 그런 측면에서 발해가 한국사 속으로 들어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북한이 고구려-발해에다 정통성을 부여하는 것은 「절 모르고 시주」를 하는 격입니다. 傍系(방계)를 直系보다 더 높은 위치에 놓으면 그건 우스운 족보나 가족사가 되는 거죠. 李교수께서는 발해를 건국한 大祚榮(대조영)을 靺鞨人(말갈인)이라고 주장하고 계십니다. 그 근거가 무엇입니까.
  
   『발해에서 唐에 보낸 국서에 그들의 국호가 「靺鞨」이라 자처했다는 사실이 「新唐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발해의 3代 국왕 大門藝(대문예)가 일본에 보낸 국서에다 발해를 「고구려의 후예」, 그리고 자신을 「고구려왕」이라 칭했습니다. 三國史記에도 大祚榮이 「고구려 遺將(유장)」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런 발해 王家를 굳이 靺鞨族(말갈족)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까.
  
   『발해왕이 일본에 사신을 파견하면서 고구려 국왕을 자칭한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의 역사기록에는 「渤海」란 용어가 더 많이 쓰고 있습니다. 처음 발해 사람들이 나라를 세울 때 국명을 「靺鞨」이라고 했습니다. 713년에 唐에서 「靺鞨」의 왕에게 「渤海郡王」이란 칭호를 내리면서 渤海라는 국명을 사용합니다. 만일 大祚榮이 고구려 사람이라면 왜 「靺鞨」을 자칭했겠습니까. 고구려인보다 신분적으로 훨씬 格이 떨어지는 종족인데요』
  
  
   渤海의 國書에 나타난 外交的 레토릭
  
   ─고구려는 唐이 신라와 연합하여 멸망시킨 나라인데, 만약 발해가 唐에 국서를 보내면서 「내가 바로 고구려 後身이오」 했다면 그것은 「한 판 붙자」는 얘기와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발해가 일본에 보낸 국서에선 「고구려의 후예」를 자처하고, 唐에 보낸 국서에선 「靺鞨」을 자처한 것은 모두 외교적 레토릭으로 보입니다. 우리 삼국시대에 등장하는 말갈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朱蒙이 나라 세울 때 이미 압록강 중ㆍ상류 지역에는 「靺鞨」로 기록된 종족이 있었어요. 朱蒙이 그들을 제압하고 그 위에 군림한 것입니다. 고구려가 생기면서 끝날 때까지 고구려 땅에 고구려인과 말갈족이 공존한 거죠. 고구려는 신라를 칠 때 말갈軍을 동원합니다. 唐 태종이 고구려의 요동성을 공격했을 때도 고구려는 말갈 군단을 보내 대항시킵니다.
  
   다만 고구려인과 말갈족이 융합해서 산 것이 아니라 서로 거주 지역을 달리했던 겁니다. 따라서 말갈 군단을 지휘하는 자는 당연히 말갈인이었을 겁니다. 大祚榮은 고구려 장군이기는 하지만 말갈 출신으로서 말갈군을 지휘했다고 봅니다』
  
   ─일본에 10여 차례 파견된 발해 使臣들은 거의가 高씨 등 고구려 상층계급 출신으로 보이는 사람들입니다. 남의 나라에 사신으로 간 고위 관직자가 거의 고구려 계통이라면, 발해의 지배층은 고구려인 출신이라고 봐야 하는 것 아닌지요. 발해는 10%의 고구려인 출신이 상층구조, 90%의 말갈인이 하층구조를 이루는 사회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발해 역사가 조선왕조 말기까지 한국史에 끼어든 적이 없는데, 광복 후 사학자 孫晉泰(손진태) 선생이 「조선민족사 개론」을 쓰면서 발해사를 附錄에 넣었습니다. 그러다가 1970년대에 들어 우리 교과서의 통일신라 뒷부분에 발해가 들어갔습니다. 2002년 제7차 국정교과서 과정에서는 아예 「통일신라」가 없어지고 「南北國 시대」로 기술해서 신라와 발해가 대등하게 취급된 것입니다. 발해에는 분명히 고구려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발해의 主流세력이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고구려가 망했을 때 唐에서 20만 명의 고구려인을 끌고 갔습니다. 신라도 7000명을 잡아갔죠. 고구려 왕과 왕자, 귀족 등 중심세력은 다 잡혀갔습니다. 남아 있던 고구려인이 발해의 상층부에 편입되었다 하더라도 발해의 국왕과 더 많은 수의 지배계급은 말갈인이었을 겁니다』
[ 2006-07-04, 02:3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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