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이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우리 헌법의 제정은 입헌주의의 불안한, 아니 매우 결함 많은 출발이기는 하였지만, 확실히 출발은 출발이었던 것이다>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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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7월17일 국회의사당에서 대한민국 헌법을 공포하는 연설을 한 것은 李承晩 국회의장이었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일반 남녀가 각각 이 헌법에 대한 자기 직책을 다함으로써 자기도 법을 위반하지 않으려니와 남들도 법을 위반하는 사람이 없도록 노력할진대 우리 全민족뿐만 아니라 우리 후세 자손이 같은 자유 복리를 누릴 것이니, 이날 이때에 우리가 여기서 행하는 일이 영원한 기념일이 될 것을 증명하며(중략). 이때에 우리가 한번 더 이북동포에게 눈물로써 고하고자 하는 바는 아무리 아프고 쓰라린 중이라도 좀더 인내해서 하루바삐 기회를 얻어서, 남북이 동일한 공작으로 이 헌법의 보호를 동일히 받으며 이 헌법에 대한 직책을 우리가 다 같이 분담해서 자유활동에 부강증진을 같이 누리도록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축도합니다>
  
  최근 필자가 읽은 '우리 헌법의 탄생'(서해문집, 2006년)이란 책에서 이영록 교수(조선대학교)는 헌법제정의 의의를 이렇게 정리했다.
  
  <그러나 첫술에 배부를 수 있으랴! 아무리 외견적 입헌주의라 할지라도, 놀라운 점은 입헌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한 그 실질화의 과정은 피할 수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정신 자체를 말살하지 않는 한 정신이 현실에 미치는 영향을 피할 수 없는 법이다. 많은 우여곡절을 거치면서도 과연 우리의 입헌주의는 내실을 다져가고 있는 중이 아닌가? 입헌주의가 거의 假死상태에 빠진듯하다가도 다시 놀라운 복원력을 발휘해온 것이 우리 憲政史가 아니었던가? 그런 점에서 입헌주의를 향한 결단, 그 자체가 갖는 역사적 의의가 결함 때문에 과소평가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 헌법의 제정은 입헌주의의 불안한, 아니 매우 결함 많은 출발이기는 하였지만, 확실히 출발은 출발이었던 것이다>
  
  준비기간 없이 103조의 헌법이 적힌 종이 하나를 달랑 들고 시작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역사였다. 연습과 연극을 동시에 해가면서 실천해야 했던 民主였다. 타는 목마름으로 民主를 외쳤으나 실천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그래도 이 정도의 민주주의가 뿌리내리게 되었다. 아무리 약한 시민이라도 서울시청광장에 서서 현직 대통령을 욕하는 연설을 하고도 집에 무사히 돌아간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굶어죽고 얼어죽을 걱정은 없다. 민주주의는 헌법책을 벗어나 이 근사한 나라와 제도를 만들었다. 실로 대견한 일이 아닌가?
  
[ 2006-08-05, 11:5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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