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를 벗어나는 潘基文 장관의 ‘指鹿爲馬’ 行步
우리는 ‘황건적(黃巾賊)’과 ‘십상시(十常侍)’가 발호하던 중국 후한말(後漢末)의 시대로 돌아가서 살고 있는 것 같다.

李東馥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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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를 벗어나는 潘基文 장관의 ‘指鹿爲馬’ 行步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의 ‘지록위마(指鹿爲馬)’ 행보(行步)가 한 없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반 장관은 최근 미국의 한 일간지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의 ‘남북전쟁’을 화두(話頭)로 삼았다고 한다. “한국인들은 미국이 남북전쟁 이후 겪은 사회 및 정치적 치유의 역사로부터 중요한 교훈을 얻는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의 글의 제목이 ‘한미동맹의 과제’였다고 한다. 그는 한국은 미국의 ‘남북전쟁’으로부터 얻은 교훈 때문에 “북한과 책임 있고 신중한 논의와 교류에 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요컨대, 그의 말의 취지는 어떠한 경우에도 한국에서 미국의 ‘남북전쟁’이 재연(再演)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으로 들린다.
  
  그렇다면, 반 장관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해야 하겠다. 반 장관은 “만약 ‘남북전쟁’이 없었다면 미국은 <미 합중국(United States of America)>과 <미 연합국(Confederate States of America)>이라는 이름의 2개의 ‘국가’로 분단되었으리라는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에이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 대통령이 1860년 ‘분리독립’을 선언한 남부 11개 주의 ‘섬터’ 요새(Fort Sumter)에 대한 ‘선제공격’에 무력으로 대응함으로써 ‘남북전쟁’을 선택한 것은 ‘노예해방’을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것이 아니었다.
  
  링컨 대통령이 ‘남북전쟁’을 결단한 이유는 “미국이 ‘분단국가’가 되는 것을 결코 허용할 수 없다”는 결의 때문이었다. 링컨은 남부 11개 주가 ‘분리독립’을 추구하지 않기만 한다면 ‘노예해방’ 문제에 대해서는 정치적으로 타협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남부 11개 주가 끝내 ‘분리독립’을 ‘선언’하기에 이르자 링컨은 “전쟁을 선택해서라도 국가의 통일은 유지해야 한다”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그때 링컨이 남긴 ‘명구(名句)’가 그의 사후(死後) 세계 모든 나라에서 사람들의 입에 회자(膾炙)되고 있다. “안에서 분열된 가정은 존속할 수 없다”(A House Divided against Itself Cannot Stand)는 것이다.
  
  링컨의 ‘남북전쟁’ 결단은 외로운 것이었다. 의회와 행정부는 물론 여론의 대세(大勢)도 전쟁에 대해서는 부정적, 또는 비판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링컨은 ‘나라의 통일’을 지키기 위해 반대여론의 역풍(逆風)을 감내하면서 그의 ‘고독한 결단’을 내리고 또 이를 수행했다. 미국 전쟁사를 통하여 ‘신화(神話)’적 존재인 로버트 E. 리(Robert E. Lee) 장군이 이끄는 남부군을 대적하는 북부군에게는 쓸 만 한 지휘관도 없었다. 그래서 전쟁 초기의 북부군은 연전연패(連戰連敗)였다. 그러나 ‘원칙’에 투철한 링컨은 굴하지 않았다. 4년간의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그는 전쟁터에서 유능한 지휘관을 발굴했다. 그가 유리시즈 S. 그란트(Ulysses S. Grant) 장군이었다.
  
  전쟁이 드디어 끝났을 때 전쟁의 참화는 참담한 것이었다. ‘남북전쟁’ 기간 중, 남과 북을 통 털어, 도합 63만 명의 ‘전사자’가 발생했다. ‘남북전쟁’을 제외하고, ‘독립전쟁’으로부터 최근의 ‘월남전’ 까지, 1,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을 포함하여, 발생한 미군 ‘전사자’의 총수가 69만 명이다. ‘남북전쟁’의 ‘전사자’는 그 전체 수자보다 불과 3만 명이 적은 수자다. 게다가 ‘남북전쟁’은 링컨 자신의 고귀한 생명까지 앗아갔다. 그리고 ‘남북전쟁’의 여파는 인명피해로 그치지 않았다. 전쟁에서 패한 남부 11개 주는 북부군에 의한 ‘점령지’가 되어 수탈을 당했고 그로 인한 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상처를 치유하는 데 100년 이상의 세월이 소요되어야 했다. 이 기간을 미국역사에서는 ‘America in Gilded Age’라고 일컫는다.
  
  그러나, ‘남북전쟁’의 결과는, 이 같은 고귀한 ‘희생’이 있었음으로 해서, ‘하나의 통일국가’로서 미국의 ‘건재(健在)’를 가능케 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20세기에 들어와서는 ‘프롤레타리아 계급독재’ 이론을 앞세워 구 소련이 주도했던 ‘공산독재’의 거센 북풍(北風)을 잠재우고 오늘날의 ‘유일 초대강국’의 위치에 서는 길을 열어 주었다. 대한민국의 역사에도 유사한 일이 있었다. 196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월남파병’ 결정이 그것이다. 그의 ‘월남파병’ 결정으로 5천 명에 가까운 대한의 ‘건아(健兒)’들이 꽃다운 나이에 그들의 생명을 나라에 바쳤다. 그러나 이들의 고귀한 ‘희생’이 오늘날 세계경제 11위로 우뚝 선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이때 박 대통령의 결단은 링컨의 그것처럼 ‘고독한 결단’이었다.
  
  도대체 반 장관이 말하는 ‘교훈’은 무엇인가? 그의 말은 “미국이 ‘남북전쟁’ 이후 겪은 사회 및 정치적 치유의 역사” 때문에 “‘남북전쟁’은 해서는 안 될 전쟁이었다”는 것이고 그 연장선상에서 한국인들에게는, 말하자면, “어떠한 대가를 치루더라도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으로 들린다. “구더기가 무서우니 절대로 장을 담그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니, 반 장관의 말은, 북한이 핵을 개발하건, 미사일로 무장하건, 인권을 탄압하건, 사람들을 시도 때도 없이 ‘총살’하고 정치수용소에 감금하건, 남쪽으로부터 양민들을 납치해 가건, ‘앵벌이’와 ‘공갈’ 카드를 사용하여 우리로부터 몇 조원의 돈을 뜯어가건 일체 대항하지 말고, 상대방이 듣든지 말든지, 사정하고 애걸하고 심지어는 ‘퍼주기’를 더 해서라도 문제가 불거지지 않도록 ‘봉합’만 하면 된다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망발(妄發)인가.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에 갔을 때 그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링컨 대통령을 꼽는 것을 보고 반신반의(半信半疑)했던 일을 기억한다. 그가 역시 미국 나들이 길에서 “미국이 아니었으면 나는 지금 북한의 정치수용소에 갇혀 있는 신세일 것”이라고 말했다는 기사를 보고 “이것이 무슨 뜬 금 없는 소리인가”라고 의아(疑訝)했던 일도 있다. 최근 보도는 그가 그의 측근들에게 “내가 그때 ‘정치수용소’ 운운의 발언을 했던 것이 나로서는 가장 치욕스러운 일이었다”고 말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한 노 대통령을 놓고 반 장관은 언젠가 “우리가 가는 길이 잘못될 때마다 대통령께서 이를 바로 잡아 주신다”는 ‘노비어천가(盧飛御天歌)’를 불렀었다. 아무리 보아도 반 장관의 ‘지록위마(指鹿爲馬)’는 그 허용된 정도를 훨씬 넘어서고 있다. 그러한 반 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을 노리고 있다. 아무래도 우리는 ‘황건적(黃巾賊)’과 ‘십상시(十常侍)’가 발호하던 중국 후한말(後漢末)의 시대로 돌아가서 살고 있는 것 같다. 양식을 가진 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심경은 참담하다. 옛날 아직 어린 고등학교 학생 시절 국어교과서에서 읽었던 '속대발광욕대규(束帶發狂欲大叫)'라는 한자(漢字) 성어(成語)가 문득 머리 속에 되살아난다.한 마디로 “기가 막혀 미칠 지경”이다. [끝]
[ 2006-09-23, 10:5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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