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爆의 동반자들
그들이 달려가는 그 길은 대한민국 再生의 길이다.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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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爆의 동반자들이 달려가는 그 길은 대한민국 再生의 길이다.
  -좋은 사람 부시와 볼턴, 나쁜 사람 金大中과 盧武鉉-
  
  
  
  2006년 10월9일의 북한 핵실험은 한반도의 대결구도를 보다 분명히 했다. 누가 金正日의 핵개발을 도왔는가? 누가 핵무장한 북한정권 편을 들면서 핵을 갖지 않은 대한민국과 동맹국들을 적대시하는가?
  金正日에게 돈과 정보와 시간을 제공하면서 국제사회의 핵개발 저지 노력을 방해해온 것은 金大中, 盧武鉉이었다. 애국운동권에선 위의 세 사람은 '민족반역 3인방'이니 '핵개발 공범 3인방'으로 불리게 되었다. 金正日의 핵폭탄, 金大中의 햇볕정책, 盧武鉉의 守舊좌파는 공동운명체가 되어 머지 않아 한꺼번에 사라지고 대한민국이 다시 再生의 길을 걷게 될 것이란 예감이 든다.
  2005년 9월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미국 금융기관에 명령을 내려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 은행과 거래를 하지 못하도록 했을 때 나는 金正日과 거의 동시에 이 조치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드디어 金正日의 급소를 찾아 목조르기가 시작되는구나'
  그해 9월19일 북경의 6者회담에서 북한의 핵개발 포기와 그에 따른 지원을 약속한 합의가 이뤄졌다. 이 약속은 꼭 24시간 유효했다. 북한이 억지를 부리면서 이 합의를 휴지로 만든 것은 미국이 시작한 對北금융제재의 표적이 金正日임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金正日은 정권을 유지하는 데 폭력만큼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60억 달러 이상으로 추정되는 자신의 해외 비자금을 미국이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안 순간 그는 등골에서 식은 땀이 났을 것이다.
  
  몸부림
  
  그 뒤 1년간 金正日은 금융제재라는 덫에서 빠져나오려고 渾身(혼신)의 힘을 다했다. 2005년 11월엔 盧대통령을 통해서 頂上회담 때 부시 대통령에게 선처를 부탁했다가 매정하게 거절당했다. 2006년 초에는 金正日 자신이 중국의 胡錦濤(호금도) 주석을 찾아가서 '이러다간 우리 체제가 무너질지 모른다'고 호소했다. 그땐 중국 또한 미국의 금융제재를 당할지 모르는 처지에 있었으므로 도울 길이 없었다. 세계 금융기관들은 미국의 응징을 두려워하여 잇따라 북한과 은행거래를 중단하기 시작했다. 북한의 일반 무역도 지장을 받게 되었다. 金正日의 해외비자금을 인출하고 옮기는 것도 어렵게 되었다. 金正日이 통치수단으로 애용해온 지배층 간부들에 대한 선물공세도 이전과 같지 못했다.
  북한은 6者회담을 거부하고 美北 직접 대화를 애걸했다. 부시 행정부는 '금융제재는 형사사건이므로 북핵 문제와 관련이 없다'고 거절했다. 북한의 지배층 사이에서 金正日에 대한 불만과 不信이 싹트기 시작했다. 달러위조, 마약밀매 등 국제범죄를 지시한 사람도 金正日이고 금융제재 문제를 해결할 사람도 金正日이다. 그는 대단한 중압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는 동요하는 지배층을 안정시키려고 2006년 7월5일 발작적으로 미사일 발사시험을 했다. 미국은 이 공갈에 굴복하지 않았다. 일본이 앞장선 유엔안보리의 對北경고안이 채택되었다.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고 갇혀버린 金正日은 마지막 카드를 꺼냈다. 그것이 10월9일의 핵실험이었다. 말리던 중국의 체면이 망가졌다. 미국과 일본은 중국과 러시아를 설득하여 유엔안보리 15개 이사국이 전원일치로 對北제재안을 통과시키도록 했다. 이 안보리의 결의는 金正日에게 공급되는 사치품도 금지시켰다. 그가 해외여행을 하면 피노체트가 영국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체포될지도 모른다. 그만큼 세상이 변했다. 불과 1년 사이에 이 '움직이는 대량살상무기'는 포위망에 갇히는 신세로 전락했다. 서서히 金正日의 운명에 대한 마지막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느낌이다.
  
  
   좋은 사람 부시와 볼턴
  
  존 볼턴 駐유엔 미국 대사는 유엔안보리의 對北제제결의문이 사치품을 금수품목으로 지정한 데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북한주민들은 상당기간 평균 몸무게와 키가 줄었다. 이번 조치는 김정일에겐 약간의 다이어트가 될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나는 놀랐다. 볼턴 대사가 對北강경파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지만 북한주민들에 대해서 이 정도로 관심이 깊은 줄은 몰랐었다. 인권밖에 모르는 듯 행세해온 盧武鉉, 金大中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을 수 있을까? 두 사람은 우선 북한사람들의 평균 키가 남자의 경우 남한(173.5cm)보다 15cm 가량이 작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알아도 절대로 인정하지 않을 사람이다.
   이들은 김정일을 동족으로 보지만 북한동포들은 동족으로 보지 않는다. 집권세력내의 從金(金正日追從)분자들은 애완견이 죽으면 눈물을 흘리지만 북한주민 300만 명이 굶어죽은 데 대해선 유엔의 인권결의안도 필요없다고 할 정도로 냉담하다. 이런 자들에 비해서 존 볼턴은 얼마나 멋진 사나이인가?
   '북한주민들을 앙상한 난쟁이로 만든 김정일 당신은 다이어트가 필요한 인간이야!'
   이런 말은 독재자에 대한 분노와 북한주민들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나올 수 없다. 盧 정권 사람들이 볼턴 같은 사람을 왜 그토록 미워하는지 알 수 있다. 자신들의 사이비성을 꿰뚫어보는 사람들이 무서운 것이다.
   영어의 viscera는 viscus의 복수로서 내장(內臟)이란 뜻이다. visceral reaction이란 말은 '오장육부가 뒤집어진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이 김정일에 대해서 이런 단어를 사용했다고 하여 화제가 된 적이 있다.
   2002년 10월에 출판된 'Bush at War'(전쟁중인 부시)란 책은 워싱턴 포스트의 봅 우드워드 기자가 쓴 것이다. 그는 칼 번스타인과 함께 1972-74년 워터게이트 도청사건을 취재하여 닉슨 대통령을 하야시킨 대기자이다.
   이 책에는 2002년 8월 우드워드 기자가 부시 대통령의 텍사스 별장에서 가졌던 인터뷰 내용이 실려 있다. 이 자리에서 부시 대통령은 갑자기 '아, 북한 이야기를 해봅시다'라고 말하면서 의자에서 몸을 앞으로 구부렸다고 한다.
   <나는 그가 북한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하도 흥분하여 의자에서 뛰어오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김정일이 역겹다(loathe)'고 말할 때 그는 손가락으로 하늘을 쑤셨다. '나는 주민들을 굶기는 이 자 생각만 하면 오장육부가 뒤틀린다. 아마도 내 종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어쨌든 이 문제에 대해서는 가슴이 뜨거워진다. 나는 정치범 수용소에 대한 정보를 받아본 적이 있다. 정말 끔찍하다. 그는 가족들을 파괴하고 사람들을 고문한다. 나는 그런 사실에 접하고는 경악했다.'
   나(봅 우드워드)는 인공위성이 찍은 수용소 사진을 보았느냐고 물었다. '그렇다, 그것은 정말 나를 경악하게 했다'고 말한 부시는 어떻게 문명세계가 사람들을 굶기고 있는 김정일을 방치하고 그의 어리광을 받아줄 수 있느냐고 개탄했다. 그는 또 북한군이 주한미군을 유린할 수 있는 방대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현실을 잘 안다고 말했다. '그들은 내게 너무 빨리 일을 진행시키지 말라고 한다. 그렇게 하면, 즉 우리가 이 자를 제거하면 (체제붕괴로) 재정부담을 너무 많이 지게 될 것이라는 뜻인데 나는 그런 말을 받아들이고싶지 않다. 그러면 누가 (주민들을) 돌 볼 것인가? 사람들은, 자유를 믿고 인권상황에 대해서 걱정하는 쪽과 그렇지 않은 쪽으로 나눠진다'>
   金正日의 학살과 고문에 대해서 분노하고 북한동포의 참상에 눈물을 흘리며 金大中-盧武鉉類의 위선자들을 경멸하는 점에서 부시와 볼턴 같은 미국의 對北강경론자들은 참 좋은 사람들이다. 金正日, 金大中, 盧武鉉의 비극은 카터나 클린턴이 아니라 부시, 볼턴 같은 사람들을 상대해야 했다는 점이다.
  
   100년 전보다 못 사는 북한
  
   볼턴 대사가 북한사람의 평균키를 언급하였기에 자료를 보았다.
  
   1. 1913년 한국 남자의 평균 키는 161-163cm였다.
   2. 1940년 한국 남자의 평균 키는 166.12cm로 컸다.
   3. 1956년 한국 남자의 평균 키는 166.46cm로 약간 컸을 뿐이다.
   4. 1975년 한국 남자의 평균 키는 169.2cm로 훌쩍 컸다. 근대화의 성공으로 영양섭취가 좋아진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5. 1985년 한국인의 평균 키는 171cm로
   6. 1995년엔 172cm로
   7. 2002년엔 173.3cm까지 높아졌다.
   8. 그런데 북한 남자의 평균 키는 2001년 현재 158cm이다. 이 평균 키는 한일합방 이전 아마도 조선조 말기 수준인 것 같다. 지금 북한 남자 키는 광복 때보다도 약10cm 짧아졌다. 왜인가. 이 의문을 풀어주는 조사 보고서가 있어 소개한다.
   서울대학교 출판부에서 2001년에 펴낸 安秉直 편 「韓國經濟成長史」에서 영남대학교 차명수교수가 쓴「제1장. 우리나라의 생활수준, 1700-2000」엔 재미 있는 대목이 있다.
   <남한이 식민지 시대에 지펴진 근대적 경제성장의 불씨를 상당한 규모의 모닥불로 키워낸 데 비해 북한은 이 불씨를 비벼 끄고 飢餓(기아)와 질병의 세계로 되돌아갔다. 木村光彦(1998:10)에 따르면 북한의 1인당 하루 식량소비는 2차대전 발발 직전 756g에서 1984년 약800g정도까지 증가한 뒤 1996년에는 540g으로 하락했다. 식민지 시대의 쌀임금(임금을 쌀값으로 나눈 값으로서 생활수준을 보여준다)이 하루 2.5되 수준에서 정체하고 있었는데 1인당 식량소비와 쌀임금 수준 사이에 비례관계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1996년의 북한 하루 쌀 임금은 약1.8되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는 같은 시기 남한의 10분의 1정도, 조선시대에 경제상황이 극도로 악화되었던 19세기말의 수준과 비슷한 것이다. 남한과 식민지 과거를 공유하고 있는 북한의 경제적 후퇴는 무엇보다도 경제성장의 필요조건인 私的 소유권과 市場을 파괴한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북한정권은 시장을 파괴한 대신 1937년 전쟁체제로의 돌입과 함께 등장했던 통제경제체제를 계승해서 이를 사회주의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포장했다(Kimura 1999)>
   지금 북한 주민들의 생활은 19세기말 조선조 시절의 수준이라고 한다. 조선조의 19세기말 생활수준은 18세기보다도 훨씬 나빴다. 지금 북한 주민들의 생활수준은 민족사를 통틀어 最惡일 것이다. 북한사람들의 키는 북한경제의 이런 후퇴를 반영한다. 남한에선 살빼기가 소망이고 북한사람들은 金正日처럼 살 찌는 것이 부러움의 대상이다.
  
   이란-이라크戰에 북한군 대거 참전
  
   북한군에서 고위 軍務員(군무원)으로 일한 한 탈북자는 1986년 이란에 가서 약 6개월간 미사일 기지 공사에 참여한 고위급 과학자였다. 그를 편의상 K씨라고 부른다. K씨는 최근 필자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했다. 이란-이라크 전쟁 때 북한군 장교들이 수천 명 참전하여 이란혁명수비대의 지휘관으로 戰線(전선)에 투입되었다는 것이다. 戰勢(전세)가 불리해지자 이라크는 독가스를 썼는데, 이때 북한군 장교들이 많이 戰死했다고 K씨는 말했다. 북한장교 戰死者는 수백 명에 이른다고 했다.
   『테헤란 북쪽에 이란-이라크 전쟁 희생자 묘역이 있습니다. 거기에 전사한 북한군 장교들이 묻혔습니다. 저도 가서 꽃을 바친 적이 있어요. 북한군 전사자 이름이 아랍어로 쓰인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란 사람들은 聖戰(성전)에서 죽었다고 해서 북한 군인들을 이슬람 교도처럼 대우해 주었어요. 이란 정부에선 전사자 1인당 1만 달러 이상 보상해 주었습니다만, 북한 당국에서 다 가로채고 유족에겐 1000달러만 주었습니다. 그래도 고맙다고 했어요. 평양에 돌아온 뒤 참전 북한군 장교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이란-북한은 오랜 혈명관계입니다. 이 점을 알아야 왜 지난 7월 미사일 발사장에 이란 참관단이 와 있었는지, 왜 북한의 핵실험 자료가 이란에 넘어갈 것이 틀림없는지 이해하게 됩니다. 북한은 핵기술뿐 아니라 플루토늄이나 핵폭탄까지 이란에 팔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금처럼 돈줄이 막히면 그 가능성은 더욱 높아집니다. 북한이 이란을 통해서 핵물질을 테러단체에 팔아 넘기면 원래 소스가 어디인지 알아내기 어려울 것입니다』
   K씨에 따르면 북한군 장교들은 교관이나 고문관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직접 중대장·대대장 역할을 맡아 實戰(실전)을 지휘했다고 한다. 이란-이라크 전쟁 때 이란은 축출된 팔레비 왕이 만든 정규군을 믿지 않고, 이란 혁명의 정치적 主力인 혁명수비대를 일선에 투입했다.
   혁명수비대는 혁명의 열정과 순교 정신은 강했지만, 전투에 있어선 아마추어였다. 더구나 무장이 부족했다. 이란-북한의 혈맹관계는 북한이 각종 무기를 세트로 팔아 혁명수비대를 무장시키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K씨는 이 부문의 전문가이다.
   『이란-이라크 전쟁 때 이란은 소총에서 미사일까지 북한제 무기로 싸웠다고 보면 됩니다. 군복을 빼고는 전부 북한제 무기로 무장했습니다. 사단·군단 전체를 무장해 주는 식으로 북한이 통째로 무기를 공급했습니다. 소총·장갑차·자주포·방사포·지뢰·기관총, 스커드미사일과 고속정·잠수정까지 팔았습니다.
   이란은 국제적으로 고립되어 미국과 소련에서 무기를 사 올 수 없었습니다. 중국산 무기는 구할 수 있었으나, 다루기가 간단하고 값이 싼 북한산이 혁명수비대 수준에 맞다고 판단했어요. 사막에서 막 싸우는 데는 정교하고 복잡한 무기가 오히려 역효과를 내지요. 무기를 팔았으니 북한으로선 무기 다루는 법을 가르쳐야 하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實戰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혁명수비대로선 反혁명적인 이란 정규군 장교보다는 북한군 장교들을 더 믿었지요』
   K씨는 '이번의 북한 핵실험 자료가 이란에 팔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란과 북한이 核쌍둥이가 되어 주변 국가를 위협하는데도 유엔이 이를 핵무장을 저지하지 못한다면 對應핵무장론이 나올 것이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 한국에서도 애국투쟁단체가 핵무장론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核무장론의 대두
  
  韓美우호협회 회장인 朴槿 전 유엔대사는 애국운동의 지도자이기도 하다. 이 老외교관은 '북한의 핵무장에 맞설 수 있는 거의 유일하고 효과적인 방도는 對應핵개발이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이 金正日의 목을 비틀어 핵을 포기하도록 만들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희망사항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중국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나 이념에 근거하여 움직이는 나라가 아니다. 철저히 국익을 중심으로 행동한다. 김정일의 핵무장이 國益에 결정적인 손해가 된다는 自覺을 해야 하는데 아직은 멀었다'고 그는 말했다. 중국이 그런 自覺을 하도록 하는 방법은 한국의 핵무장 추진이다. 논리와 법리는 충분하다. 국제사회가 책임지고 김정일의 핵무장을 막지 못하여 敵의 핵위협에 노출된 한국은 국가생존차원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즉, 정당방위 차원의 對應핵무장을 추진하겠다는 국가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정부가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국민운동으로 할 수도 있다.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선 自衛的 핵무장을 공약하는 대통령 후보를 찍겠다는 운동도 가능하다.
   한국은 핵비확산조약(NPT)에 가입해 있기 때문에 핵무장을 추진하려면 이 조약에서 합법적으로 탈퇴하여야 한다. 국제법을 위반하지 않고 對應핵개발을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NPT에 그런 조항이 있다. 10조이다. 그 내용은 '이 조약과 관련된 문제로 비상사태가 발생함으로써 그 나라의 至上의 국가이익이 위험에 처할 때는 이 조약에서 탈퇴할 권리가 있다. NPT 조약 가맹국과 유엔안보리에 3개월 전에 통보하여야 한다'로 되어 있다.
   북한도 이 조항을 들먹이면서 NPT를 탈퇴했다. 북한은 탈퇴하기 이전에 이미 불법적으로 우라늄 농축 방식에 의한 비밀핵개발을 하고 있었다. 이미 살인을 저질러놓고 형법을 없애라고 하는 꼴이다. 북한의 國益을 위협하는 사태도 벌어지지 않았다.
   한국은 그러나 이 10조에 의거하여 탈퇴할 수 있다. 아직 交戰상대인 북한정권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침략당한 한국은 핵무기를 갖지 못한 상황이 조성되었다. 북한정권은 유엔으로부터 침략자로 규정되었고 테러지원국가이다. 더구나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하지 못하여 대한민국을 핵무장한 김정일 정권 앞에 저항불능 상태로 노출시켰다. 이 이상으로 국가를 위험에 빠뜨리는 비상사태는 상상할 수 없다.
   이런 논리로써 조약에서 탈퇴한다면 그 탈퇴에 따른 국제제재나 불이익을 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朴대사의 말이었다. 미국도 내심으로는 그런 핵무장 움직임을 반길지 모른다. 중국에 대한 압력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이 나서서 김정일의 핵무장을 해체하면 우리도 대응핵개발을 중단할 수 있다. 그런 카드로서도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들은 對應핵개발을 선언해야 한다는 것이 老애국자의 충고였다. 대한민국이 배수진을 쳐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결국 金正日 제거와 한국의 핵무장 운동이 北核 문제의 답이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전제 조건으로서 한국내의 從金守舊좌파들이 정리되어야 한다. 2007년에 한국은 선거를 통해서 반역을 진압한 역사상 최초의 나라가 될 것 같다.
  
  
  
[ 2006-10-19, 16:5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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