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포럼> 북한 核실험과 한·미·일 3각공조[2006년10월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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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정부의 의도는 대북 제재를 이용하여 북핵 문제 해결의 실질적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미국과의 공조’보다 북핵 해결 그 자체가 아니라 우선 6자회담의 속개를 강조하는 ‘중국과의 공조’에 더 큰 무게를 두고 있음을 보여 준다. 북핵 문제 해결의 성패는, 내년 말 대통령선거를 통해 한국에서 정권교체가 일어나지 않는 한, 한국의 ‘이탈’로 이미 현실성을 상실하고 있는 한·미·일 3각공조보다 앞으로 있을 미·중간 ‘전략적 대화’의 성패에 따라 좌우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문화일보 포럼> 북한 核실험과 한·미·일 3각공조[2006년10월23일]
  
  역시 돌파구는 없었다. 지난주 한반도와 그 주변의 4개국 수도(서울·평양·도쿄·베이징)를 무대로 숨 가쁘게 펼쳐졌던 연쇄 순방외교에 걸었던 ‘혹시’ 하는 기대의 종착역은 또다시 ‘역시’였다. 이번 연쇄 순방외교의 압권은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의 ‘특사’로 평양을 방문한 탕자쉬안(唐家璇)과 김정일 사이의 회담이었다. 그러나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베이징 방문 과정에서 드러난 탕의 평양 방문 성과는 여전히 요령 부득이다.
  
  한동안 외신은 탕을 만난 김정일이 핵실험 강행에 대해 ‘사과’했을 뿐 아니라 “더 이상의 핵실험은 없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그 같은 외신 보도는 진위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탕을 만나고 나온 라이스 장관은 “탕으로부터 그런 얘기를 들은 것이 없다”고 부인했다. 이에 대해 중국 측으로부터는 검다 희다 간에 아무런 말이 없다. 지금까지 나온 탕의 말은 “나의 평양 방문은 헛된 것이 아니었다”는 것뿐이다.
  
  이같은 사실은 중국이 탕의 방북을 통해 ‘미국에 의한 대북 금융제재 철회’와 ‘미국의 북·미 양자회담 수용’을 대가로 북한에 ‘2차 핵실험 유보 결정’ 및 ‘6자회담 복귀 약속’을 요구했고, 김정일은 이를 정면으로 거부하지 않고 나름의 조건을 거론하는 ‘유연성’(?)을 과시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지난주 연쇄 순방외교의 목적이, 특히 중국의 영향력을 이용해 북한에 일정한 양보를 강요함으로써 안보리 결의 제1718호에 따른 대북 제재를 실제로 이행하지 않고 위기를 해소하려는 것이었다면 그 외교 노력은 성공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은 결국 안보리 결의 제1718호에 따른 대북 제재의 이행이 불가피해졌음을 의미하며, 그런 뜻에서 라이스 장관의 지난주 연쇄 순방외교가 전통적 ‘맹방’인 한·미·일 3국 간의 ‘공조’를 다지고 이를 토대로 중국의 적극적 ‘동참’을 끌어내기 위한 행보 차원에서 어떠한 성과를 거뒀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성을 제기한다. 그렇게 볼 때 도쿄 방문과는 달리 그의 서울 방문은 점수를 후하게 주더라도 성공적이라고 하기는 어렵게 됐다.
  
  서울에서 그는 노무현 정부로부터 “안보리 결의에 부합되도록 대북 포용정책을 재검토하겠다”는 ‘약속’과 “북한에 의한 핵기술의 제3국 이전을 불허한다”는 ‘합의’를 얻어내기는 했다. 그러나 이같은 수사학적 ‘약속’과 ‘합의’에도 불구하고 라이스 장관은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노 정부의 입장을 꺾는 데 실패했다. 한국의 실질적인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가도 끌어내지 못했다. 그의 서울 방문의 구체적 성과는 “각국의 고유한 지렛대를 활용하기로 했다”는 정도였다.
  
  그런데 노 정부가 그 ‘지렛대’로 2004년 5월에 북한과 합의하여 공표한 ‘남북해운합의서 이행을 위한 부속합의서’를 들고 나왔다는 것은 실로 가소로운 발상이었다. ‘긴장’의 ‘고조’를 이유로 “나라의 운명을 유엔에 맡겨 둘 수 없다”면서 70여개국이 참가하는 PSI 동참을 꺼리는 현 정부가 “미국의 압력이 계속되면 전쟁이 불가피하고 전쟁은 한반도에서 시작될 것”이라는 북한측의 ‘협박·공갈’에 감연히 맞서서 문제의 ‘해운합의서 부속합의서’의 조항을 발동하는 상황을 상정하는 것은 돈 키호테의 세계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비현실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노 정부의 의도는 대북 제재를 이용하여 북핵 문제 해결의 실질적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미국과의 공조’보다 북핵 해결 그 자체가 아니라 우선 6자회담의 속개를 강조하는 ‘중국과의 공조’에 더 큰 무게를 두고 있음을 보여 준다. 북핵 문제 해결의 성패는, 내년 말 대통령선거를 통해 한국에서 정권교체가 일어나지 않는 한, 한국의 ‘이탈’로 이미 현실성을 상실하고 있는 한·미·일 3각공조보다 앞으로 있을 미·중간 ‘전략적 대화’의 성패에 따라 좌우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 2006-10-23, 17:1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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