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를 돕는 극성우파들
韓日회담반대운동까지 좌익운동으로 모는 극성파는 우파를 분열시키고 좌파에 공격소재를 공급하고 있다.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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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대학에 입학한 나는 科의 대표가 되었다. 그때 대학가는 韓日국교정상화 반대 시위가 한창이었다. 7월 어느 날 학생회에서 科 대표들을 모으더니 '내일부터 일제히 斷食농성을 하기로 했다' 고 일방적인 지시를 했다. 나는 '대학생인데 다 생각이 있을 것이다. 우리 科는 토론을 해본 다음 결정하겠다'고 말하고 나와 총회를 소집했다. 교실에 약40명이 모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미 확정된 국교정상화를 반대할 것이냐, 지지할 것이냐를 놓고 토론을 벌였다. 사회는 副대표한테 맡기고 나도 토론자로 참여하여 韓日국교정상화 지지발언을 했다. 요지는 간단했다. '낡은 국수주의를 버리고 이웃나라와 협력해야 산다'는 것이었다. 찬성발언은 나 하나밖에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科대표로서 내가 이런 결론을 내렸다.
  '무조건 참여는 안된다. 斷食여부는 각자가 결정해야 한다. 나부터 밝히겠는데 나는 참여 안한다'
  
  科員의 약3분의 1이 斷食농성에 참여했다. 나는 불참했지만 이들이 농성하는 교실을 별 할 일 없이 오갔다. 별로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다가 여름방학이 시작되니 농성도 며칠 뒤 풀렸다.
  
  한일국교정상화 반대시위는 1964년 6월3일엔 서울일원에 비상계엄령을 불렀다. 박정희 대통령은 일본과 교섭할 때 이 학생시위를 잘 이용하여 양보를 많이 받아냈다. 日帝 36년을 정리하고 새로운 관계를 맺는 데 그 정도의 반대시위도 없었더라면 한국인은 魂이 없는 민족이라고 세계의 경멸을 받았을 것이다. 물론 국교정상화를 주도했던 박정희-김종필 두 사람은 한국의 進路를 여는 위대한 결단과 희생을 했다. 두 사람이 먹었던 비판과 욕설은 42년이 지난 지금 훈장으로 바뀌어야 한다. 한일회담에 찬성한 사람은 찬성의 방법으로, 반대한 사람은 반대의 방법으로 다 같이 애국한 것이다.
  
  요사이 李明博씨가 고려대학교 학생이던 시절 韓日국교정상화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그를 좌익으로 모는 놀라운 글들이 인터넷에 자주 등장한다. 그가 일본에서 태어났다고 친일파로 모는 것만큼 사람 잡는 선동이다. 민주투사로 위장한 좌익이 득세하니까 일부 보수층 인사들은 순수한 민주화운동까지도 좌익운동으로 몰려고 한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이명박씨를 변호하면 '조갑제, 당신도 좌익이지'라고 인터넷을 통해서 욕설을 퍼붓는 이들이 나타난다.
  
  이런 극성인사들은 자유진영을 분열시키고 좌익에게 좋은 공격소재를 제공한다. 좌익들은 이들의 거친 행태를 과장해가지고 젊은이들을 향해서 '봐라, 이들이 바로 수구꼴통이야'라고 선전할 것이다. 이들 극성파가 바로 좌익을 돕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에 대한 존중이고 異見에 대한 관용이다. 4.19, 6.3, 부마사태, 광주민주화운동, 1987년의 6월사태는 근본적으로 反共민주화운동이었다. 이 운동 속에 소수의 좌익이 끼여 있었을 수도 있지만 大勢를 이루지 못했고 주도권도 잡지 못했다. 이런 민주화운동을 좌익운동으로 몰아가는 것은 좌익득세에 대한 거친 반동이겠지만 한국 현대사의 귀중한 한 장을 도려내는 일이다.
  
  인간은 괴물과 싸우다가 보면 그 괴물을 닮아가는 수가 있다.
[ 2007-03-16, 11:1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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