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朝특종史/정부가 탈북자를 받아들이게 한 기사

황성준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月刊朝鮮은 '역사를 기록하며 역사를 만들어가는' 잡지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특종이 역사를 만든다. 그런 특종사례들을 소개한다.
  우선 1994년4월호 月刊朝鮮에 실렸던 탈북벌목공들의 기사이다. 이 기사가 나가자 조선일보 등 다른 언론에서도 보도하였고, 당시 金泳三정부는 그때까지의 태도를 바꾸어 탈북자들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북한 벌목공에 이어 만주로 탈출한 북한동포들도 이 정책의 혜택을 받게 되었다. 특종기를 소개한다.
  ----------------------------
  다 아는 이야기를 특종으로 만든 사연:「북한탈출 벌목공들의 러시아 유랑 25시」(월간조선 1996년 4월호)
  
  「기사가 안된다」고 한 사람들
  
  「特種記」를 써 달라는 말에 조금 당혹스럽다. 탈출 북한 벌목공 문제를 한국에서 최초로 폭로했다고 주목받은 月刊朝鮮 94년 3월호 기사 「북한 탈출 벌목공들의 러시아 유랑 25時」라는 제하의 기사는 다 아는 이야기를 주운(?) 특종이었기 때문이다.
   필자가 탈북 벌목공 문제를 처음 접한 것은 93년 가을 어느 러시아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서였다. 러·조 임업조약에 따라 시베리아 벌목장에서 수만명의 북한인들이 일하고 있는데, 사설감옥이 존재하는 등 심각한 인권침해가 벌어지고 있으며, 많은 북한 벌목공들이 벌목장을 탈출, 유라시아 대륙을 헤메고 있다는 요지의 방송이었다. 이 방송을 보았을 때만 하더라도 무심코 지나쳤다. 「불쌍한 북한인들이 러시아 땅에서도 고생하고 있구나」하는 정도였다.
   당시 탈북 벌목공 문제는 러시아 거주 한국인 사회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특히 많은 벌목공들이 러시아 내의 한국인 교회나 기업으로 찾아와 도움을 요청했기 때문에 러시아 거주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문제였다. 심지어 某일간지 모스크바 주재 특파원과 이 문제를 놓고 대화를 나눈 기억도 있다. 그 기자는 『기사거리가 안된다』며 관심을 표명하지 않았다.
  
  지금은 특종을 쫓는 기자가 됐지만 당시 필자는 기자가 아니었다. 서울에서 대학 시간강사 생활을 하다가 러시아 땅으로 건너와, 상트 페테르부르그 대학에서 한국정치를 강의하면서 러시아 정치경제사를 연구하고 있던 예비학자였다. 단지 러시아 상황을 한국에 알리고 싶어서, 또 생활비에 보탬이 됐기 때문에 「月刊朝鮮」에 글을 기고하고 있었다.
  
   94년 1월 러시아 극우파 지도자 지리노프스키 인터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월간조선」과 연락을 취하게 됐다. 그때 趙甲濟 당시 부장이 『시베리아에서 일하던 북한 벌목공들이 탈출하여 한국 망명을 원하고 있다는 정보가 있는데, 이에 대해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던(당시만 하더라도 통신사정으로 인해 한국소식에 어두웠다) 필자에게는 다소 의외의 질문이었다. 『정확한 숫자와 상황은 잘 모르지만, 이곳 러시아에서는 잘 알려진 이야기』라고 대답했다. 결국 즉각 취재해서 기사화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북한 사람을 동포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당시 탈출 벌목공들을 찾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한국인 교회 등지에 나가면 만날 수 있었다. 또 러시아 인권위원회 직원들을 비롯한 많은 러시아 知人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탈북자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이미 모스크바 주재 한국기자들을 만나 보았으며, 또 대사관 직원들과도 만났으나, 문제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신분만 노출돼 안전문제만 발생하더라며, 취재에 쉽게 응하지 않았다. 『그래도 알리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느냐, 한번 더 속는 셈 치고 취재에 응해 달라』며 매달렸다. 결국 그들은 조금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취재 과정에서 놀란 사실은 일부 한국인들이 북한사람들을 동포로 취급하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이는 소위 많이 배운 사람일수록 심했다. 『급속한 통일은 혼란만을 가져온다』는 논리였다. 그 밖에 『북한을 자극한다』, 『이것은 러시아와 북한의 문제로서 우리가 개입하면 내정간섭이다』라고 고차원(?)의 논리를 동원하는 이도 있었다. 또 『뭔가 죄지은 것이 있으니 탈출한 것이 아닌가』라는 말도 자주 들을 수 있었다.
   「月刊朝鮮」 94년 3월호 「탈북 벌목공 러시아 유랑 25시」 기사가 나간 뒤, 많은 격려와 비난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월스트리트 저널」과 같은 저명 외국언론이 취재 협조를 요청해 오기도 했다. 그런데 일부 대학시절 知人의 반응은 필자의 가슴을 아프게 하기도 했다. 『반공심리를 자극, 통일을 방해하고 있다』는 욕을 먹기도 했다. 그러나 필자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는 것은 2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탈북자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있지 않다는 점이다.
  
   지금도 탈북자의 숫자 등에 대해 이견이 존재한다. 문제는 그런 지엽적인 것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북한 탈출 벌목공 문제가 특종이 된 것은 「콜럼버스의 달걀」과 마찬가지 이야기다. 누구나 할 수 있고, 또 다 아는 이야기. 결국 공로는 북한인권 문제가 한국언론의 특종이 될 수 있는 「발상의 대전환」을 이룩한 「月刊朝鮮」에 있다.
  
  
  
  
  
  
출처 :
[ 2003-05-28, 15:1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리버티헤럴드  |  뉴스파인더  |  이승만TV  |  장군의 소리  |  천영우TV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