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朝특종史/전두환 육성증언-6.29 선언의 진실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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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刊朝鮮의 특종史/全斗煥육성증언…6.29선언의 진실
  
  이 특종은 우연이 아니었다
  
  이 시대의 많은 한국인들은 1987년 6월을 오랫동안 추억하면서 늙어갈 것이다. 온 나라의 국민들이 民主化란 말에 감전된 듯 한 달 동안 흥분된 몸짓과 목소리로 들떠 있었던 그해 6월, 기자도 「직업적 구경꾼」으로서의 직업윤리를 가끔 망각하고 시위대에 합류하곤 했었다.
  그때 기자는 『이 시각 全斗煥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오금을 펴지 못하고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고소해 하였다. 그 시각 全斗煥 대통령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은 金聲翊씨(통치사료 담당 공보 비서관)가 기록한 「全斗煥, 역사를 위한 육성 證言」을 통해서였다.
  月刊朝鮮 1992년 1, 2, 8월호에 게재된 이 기록은 「5共 청와대의 史官」이었던 金씨가 全대통령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공·사석에서 녹음하듯이 적어두었던 매우 사실적인 자료였다.
  1980년대의 격동기에서 그 한복판에 있었던 全斗煥 전 대통령의 생생한 육성은 한 권력자의 인간됨, 상황에 대응해가는 심리변화 과정, 그리고 권력과 인간 사이의 숙명적 속성을 현장중계하듯이 실감 있게 보여준다.
  
  이 자료가 月刊朝鮮에 실릴 수 있게 된 것은 대부분의 특종이 그러하듯이 우연이 아니었다. 月刊朝鮮은 1987년 6·29 선언의 진상에 대해 유별난 호기심을 갖고서 추적해 왔었다.
  1989년 6월호에 실린 「全斗煥 측근 證言―6·29 선언은 全斗煥 작품이다」란 題下의 기사는 5共비리 政局에 政爭의 소재가 되었으나 盧泰愚의 청와대에서 기사 내용을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바람에 언론에선 「6·29 선언 異說」이란 新造語를 고안해내게 되었다. 자존심이 상한 기자는 언젠가는 이 異說을 定說로 바꿔 놓으리라고 작심했다.
  
  평소 가깝게 지내던 金聲翊씨가 미국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뒤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6·29 선언이 盧泰愚 연출·주연으로 잘못 알려지고 있는 데 대해 불만이 있음을 비쳤다. 기자는 그 機微(기미)를 놓치지 않았다.
  
  歷史가 굉음을 내며 달려오는 듯한 충격
  
  盧泰愚 당시 대통령의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인 6·29 선언이 사실은 全斗煥씨가 발상하여 盧 당시 민정당 대표를 설득하여 받아들이게 한 뒤 盧대표의 작품으로 만들어준 巨大한 쇼였다는 사실을 보도한다는 것은 현직 대통령의 가장 아픈 곳을 찌르는 행동이었다. 기자는 그래도 한국 언론에서 이 대담한 폭로를 실어줄 매체는 朝鮮日報의 月刊朝鮮밖에 없을 것이라고 金聲翊씨를 설득해갔다.
  
  이 자료의 역사적 가치를 제대로 살리려면 요약, 발췌가 아니라 全文 수록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편집방향도 밝혔다. 이 기사가 게재되기까지는 성공적인 社內外의 保安이 따랐고 회사 경영진의 결단이 있었다.
  
  1992년 1월호에는 6·29선언 前後의 결정적 시기에 기록된 全斗煥 당시 대통령의 비공개 육성(지시·간담회·회의) 제1부가 2백자 원고지 7백장 분량으로 실렸다.
  6·29 선언이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하게 되는가 하는 것이, 그 발상·연출자인 全斗煥의 육성을 통해서 공개됨으로써 6·29 선언에 대한 시비는 이 자료로써 결판이 났다. 金聲翊씨全는 6·29 선언 하루 전날 全대통령으로부터 6·29 선언의 내용을 통보받았을 때 『역사가 큰 굉음을 내며 달려오는 듯한 충격과 흥분으로 잠시 멍멍해졌다』고 썼다.
  
  기자도 全斗煥 육성 證言을 읽으면서 역사가 만들어지는 순간 순간, 거기에 참여했던 이들의 갈등·고민·결단·애환에 접하고 흥분하였다. 2백자 원고지 2천장 분량의 이 기록(「全斗煥 육성 證言」이란 제목의 단행본으로도 발간되었다)은 1980년대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1차 자료로서 영원히 활용될 것이다.
  
  기자로서는 이 기록이 보여주고 있는 인간 全斗煥의 적나라한 모습이 더 재미있었다. 『정치란 힘 가진 사람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원리야. 그걸 가급적이면 모양 좋게 끌고 가려고 해서 그렇지』라고 말했던 그는 지금 감옥에서 권력의 속성을 반대방향에서 체험하고 있는 셈이다. 이 기록을 읽으면서 기자는 全씨에 대해선 인간적인 好感, 우리는 現代史에 대해서는 가슴 뿌듯한 자랑을 갖게 되었다. 이 육성 證言이 공개된 뒤 안기부와 청와대로부터 불만과 압력이 다소 있긴 했지만 金聲翊씨와 기자는 무사했다. 그것은 盧泰愚 민주화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불멸의 증거이기도 하다.(월간조선 1996년4월호. 조갑제 記).
  
출처 :
[ 2003-05-28, 17:4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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