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朝특종史/『12·12가 녹음되었다』

金基哲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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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刊朝鮮은 1995년9월호 부록으로 보안사가 녹음한 12.12사건 상황 테이프를 발행했다. 軍事변란의 숨가쁜 현장중계인 이 녹음 테이프는 당시 진행중이던 12.12 사건 수사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月刊朝鮮 1996년4월호에 실린 이 특종 秘話를 소개한다.
  
  부록으로 녹음 테이프를 만들기로 결정
  
  보안사(현 기무사)의 12·12사건 감청 녹취록이 月刊朝鮮 취재팀에 들어온 것은 1995년 7월 말. 12·12 사건은 군사반란이지만 관련자들에 대해서는 기소유예 처분을 내린 검찰발표가 있은 지 9개월 후였다.
  이 자료는 몇몇 기자들에게 입수돼 12·12 사건 관련 기사에서 일부 인용되기도 했다. 녹취록이 있으면 원자료인 녹음 테이프도 존재할 것이라는 당연한 생각에서 취재는 출발했다. 목표는 감청 테이프 입수.
  자료의 소유자를 추적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테이프의 공개에 동의해줄지 여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먼저 녹취록을 들고 통화자로 나오는 예비역 장성들을 찾아나섰다. 그들은 12·12 당시 자신들의 목소리가 녹음된 자료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아는 듯 흥분했다. 그들의 반응도 12·12 당시의 역할에 따라 확연히 달랐다.
  
   합수부측에 가담, 출세가도를 달렸던 신군부 인사들은 대부분 기자와의 접촉을 꺼리거나 소극적인 답변으로 일관했다. 반면 합수부측의 군사반란을 진압하려 했던 육본측 장성들은 반란을 막지 못한 아쉬운 표정을 지으면서 당시의 기억을 하나 둘씩 떠올리기 시작했다.
  
  지난해(1995년) 8월 초 일요일 오후, 녹음테이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취재원의 집을 방문했다. 뜻밖에 그는 녹음 테이프 소유 사실을 선선히 밝히고 함께 들어보자고 권했다. 녹음기에서 울려나오는 12·12 사건 당시 장성들의 생생한 육성을 듣는 순간 16년 전의 역사적 현장으로 빠져 들어갔다. 문자를 통해서 느끼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12·12 사건의 현장이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처럼 긴박한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2~3분 가량 들었을까. 갑자기 테이프가 끊어졌다. 십수년이나 지나 테이프가 낡았기 때문일 것이다. 취재원에게 녹음 테이프를 가져가 수리해서 들어보고 다음날 돌려주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그날 밤 녹음 테이프를 들으며 밤을 꼬박 새웠다.
  다음날 아침 녹음 테이프를 들어본 간부진은 「물건이 된다」고 판단했다. 곧장 특별부록으로 녹음 테이프 제작을 추진했다. 시사잡지 부록으로 녹음 테이프라니….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아이디어였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지만.
  
  취재원에게 양해를 구하는 일이 남았지만 그는 12·12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데 보안사의 감청 테이프 공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설명에 어렵사리 동의했다. 그날 오후 趙甲濟 月刊朝鮮 부장의 주도 아래 나레이션 원고를 쓰고 녹음까지 모두 마쳤다.
  
  역시 당사자의 현장 육성만큼 생생한 증언은 없었다. 육본측 지휘부의 혼란, 지휘관에 대한 허위보고와 하극상은 여과없이 그대로 전달됐다. 책이 나오기 직전 12·12 사건을 수사한 담당 검사를 찾아가 테이프를 들려줬다. 그의 얼굴에는 「이런 자료를 일찍 발견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의 표정이 역력했다. 검찰은 12·12 사건 수사 당시 관련자 진술을 토대로 보안사의 육본측 통화 감청사실은 확인했지만 감청 테이프는 입수하지 못했다.
  
  張泰玩 前 수령사령관이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라
  
  감청 테이프가 공개된 후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방송과 신문 모두 12·12 사건의 진상을 밝혀줄 중대한 자료가 나왔다며 톱뉴스로 다뤘다. MBC와 SBS 양 방송사 모두 月刊朝鮮 9월호 특별부록으로 제작된 감청 테이프를 자료로 활용, 12·12 사건을 다루는 드라마를 경쟁적으로 방영했다. 반란군에 맞서 단호하게 진압의지를 밝힌 張泰玩 당시 수경사령관(現 재향군인회장)은 일약 국민적인 영웅으로 떠올랐고 드라마에서 그의 역할을 맡은 탤런트까지 인기가 치솟을 정도였다.
  
  검찰이 12·12 조사과정 중 보안사의 감청자료 제출을 요구한 데 대해 국방부에서 『그런 자료가 없다』고 발뺌한 사실도 밝혀졌다. 뿐만 아니라 국방부는 1993년 국회 국정조사 도중 국회의원의 질의에 대해 보안사의 감청사실마저 사실무근이라며 허위답변한 사실도 드러났다.
  보안사의 12·12 사건 감청 테이프 공개 후 작년 말과 올해 초 12·12 사건 관련자들이 구속되었다.
  역사를 기록할 뿐 아니라 만들어가는 역할까지 한 셈이다. 그러나 이 모든 공적은 위험을 무릅쓰고 자료공개를 결심한 취재원에게 돌아갈 몫임을 밝혀 둔다.
  
출처 :
[ 2003-05-29, 14:3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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